아킬레우스의 노래
매들린 밀러 지음, 이은선 옮김 / 이봄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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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스 신화의 수많은 이야기 중에서 내가 가장 매력적이라고 생각하는 '트로이의 전쟁'. 그 중에서도 좋아할 수 밖에 없는 영웅, 아킬레우스. 이 작품에서는 신의 피가 흐르는 영웅으로서의 아킬레우스보다는 신이 질투하는 인간의 유한성을 지닌 '아리스토스 아카이오이(그리스의 으뜸)'으로서의 아킬레우스를 다루고 있다. 저자는 호메로스의 원전에 최대한 충실하게 각색하였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님프인 어머니인 테티스 요정이 아킬레우스가 태어났을 때 불사신으로 만들기 위해 스틱스 강에 아킬레우스의 몸을 담그었는데, 붙잡고 있던 발 뒤꿈치만 담그지 않아 발 뒤꿈치가 유일한 인간의 약점을 지닌 부분이라는 이야기는 등장하지 않는다. 그 부분은 꽤나 뒤에 첨가된 이야기라고 한다.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사람은 아킬레우스의 친구, 파트로클로스이다. 왕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실수로 한 소년을 죽인 후 추방되어 프티아 왕국에서 그곳의 왕자로 태어난 아킬레우스와 함께 지내게 되면서 아킬레우스와 각별한 사이가 된다. <일리아스>에서는 아킬레우스와 파트로클로스의 사랑 이야기는 등장하지 않지만, 플라톤의 <향연>에서 이 두 사람의 관계가 사랑하는 사이로 언급된 바가 있다고 하니, 아주 예전부터 사람들은 사랑 이야기를 만들어내는데 재주가 있었던 모양이다.

   개인적으로는 아킬레우스와 파트로클로스의 애정 자체에는 별 관심이 생기지 않았다. 다만, 내가 알고 있던 그리스와 트로이 영웅들의 알지 못했던 다른 면모를 볼 수 있어 흥미로웠다. 예를 들어 나에게 각인된 오디세우스의 모습의 대부분은 트로이 전쟁이 끝나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기까지의 십년 동안의 모습인데, 여기서는 영리한 책략으로 페넬로페를 아내로 얻게 된 이야기부터 트로이 전쟁기간 동안 그가 보여준 중재적인 모습들이 인상적이었고, 천상 영웅이라고 생각했던 아킬레우스가 자신의 명예와 목숨 사이에서 갈등하는 모습 등을 다루는 부분이 좋았다. 그리스군이 이야기의 중심이라 트로이 쪽 사람들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된 바가 없어서 좀 아쉽긴 했지만. 여전히 신들은 밴댕이 소갈딱지의 얄미운 모습으로 등장하는데, 어찌보면 그것이 그리스 신들의 매력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하지만 인간을 농락하는 신들 위에 있는 자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아킬레우스이다. 아킬레우스가 파트로클로스를 죽인 헥토르를 죽이기 위해 먼저 강의 신, 스카만드로스와 대결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당연히 신과 인간의 정면 대결에서의 승자는 신이 될 수 밖에 없다. 어떻게 인간이 신을 이기겠는가. 하지만 인간에게는 속임수가 있고 계략이 있다. 전체 이야기로 놓고 보면 그리 중요하지 않은 장면인데, 나는 이 부분이 아킬레우스가 인간의 목숨을 운명이네 어쩌네 하면서 자기들 멋대로 좌지우지 하려는 신들에게 선전포고를 하는 가장 통쾌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신의 생각이 짧았다. 지금까지 내가 보아온 세월 동안 그의 발은 한 번도 비틀거린 적이 없었다. 아킬레우스는 인간의 부족함이라는 미끼를 던졌고 신은 그 미끼를 향해 달려들었다."

 

   와...신의 생각이 짧았다니...이렇게 간단하면서도 명쾌한 표현이 있을까. 인간의 부족함, 인간의 유한함이 신에게는 미끼가 될 수 있고 질투의 대상이 될 수 있다니..이런 이야기들이 나를 그리스, 로마 신화에 끊임없이 묶어두는 매력이 아닐까.

   한가지 더 짚어보자면, 이 아킬레우스의 노래는 파트로클로스가 부르는 아킬레우스에 대한 추억의 노래이다. 아킬레우스를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아킬레우스의 유골과 함께 묻히고 비석에 나란히 이름을 새긴 파트로클로스가 없었다면 아킬레우스는 트로이의 전쟁에서 그의 이름을 남기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실제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에서도 존재감 없던 파트로클로스가 아킬레우스의 갑주를 대신 입고 그리스군을 구하러 나서는 영웅적인 선택을 함으로써 <일리아스>의 마지막을 장식하였다고 한다. 아킬레우스에 가려 미처 자각하지 못했던 신화 속 인물을 또 한명 알게 된 셈.

 

   그리고 마지막을 장식한, 얼음장 같던 테티스의 감동적 한마디!

 

"가거라. 그녀가 말한다. 그 아이가 널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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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라야의 지하 비밀 도서관 - 시리아 내전에서 총 대신 책을 들었던 젊은 저항자들의 감동 실화
델핀 미누이 지음, 임영신 옮김 / 더숲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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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리아 내전에서 총 대신 책을 들었던 젊은 저항자들의 감동 실화>라는 부제가 달려있다. 사실, '감동'이라는 단어는 이 책에서만큼은 지극히 자극적이고 어울리지 않는다. 이 책 속의 이야기는 완전히 폐허가 된 다라야의 먼지 풀풀 날리는 풍경만큼 건조하고 지직대고 끊어짐이 반복되는 인터넷선만큼이나 답답하고 결국 고물로 헐값에 팔리고마는 비밀 도서관 책들의 운명만큼이나 절망적엔딩이다. 4년 이상을 고립당한 채 매일매일을 폭격의 공포와 불안 속에서 살아야 했던 다라야 주민들의 이야기에 신파적 감동은 없다. 4차 산업혁명과 인공지능의 시대를 살아가는 2018년 우리에게, 어딜 가든 읽을 책이 넘쳐나는 우리에게 '다라야의 지하 비밀 도서관' 이야기는 감동이라기 보다는 충격이다.

   이 책의 저자는 분쟁지역 전문 기자로 이스탄불에 거주하고 있는데, 어느 날 우연히 SNS에서 시리아 아사드 정권에 의해 폭격당하고 봉쇄된 다라야의 비밀 도서관의 사진과 이야기를 접하고 사진을 찍은 아흐마드 무자헤드라는 젊은 청년과 연락이 닿는다. 다라야는 반군이 활동하고 있는 지역으로 아사드 정권은 반군과 다라야에 남아있는 일반 주민 전체를 테러리스트 및 광신도 집단으로 몰아넣고 그들을 몰살시키기 위해 매일 밤 비행기로 폭탄을 퍼붓고 생존에 필요한 물품이 전달되지 못하도록 철저히 감시하는데, 저자가 아흐마드와 스카이프로 연락이 닿은 날이 벌써 다라야가 그렇게 된지 3년이 되던 해이다.

   폐허의 한복판에서 아흐마드와 친구들은 허물어진 집터에서 한무더기의 책을 발견한다. 끼니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고 매일매일을 폭격의 공포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책이 무슨 소용인가. 하지만 그들은 '주위의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는 때'에 저항의 상징으로 책을 선택한다.

 

"다양한 목소리를 담은 이 책들은 세상의 끝에 고립된 듯한 다라야에서 밖을 향해 조금 열린 창문과 같았다"

 

   다라야의 모든 생존자들을 생매장하겠다고 위협하는 정부군과 국가원수에 대해, 폭력과 광기의 복수극이 아닌 그들의 미친 논리에 대한 반발로 응수하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도발'이라고 생각한 다라야의 종이로 구축한 요새에 관한 이야기는 보란 듯이 세상에 알려져야 했다. 단순히 폐허 속에서 찾은 책들만 모아놓은 도서관이 아니고 남아있는 주민들에게 책의 내용을 전하고 돌아가며 강의를 하고 열악하지만 인터넷을 통해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힘을 얻기도 하고 실생활에 필요한 지식들을 배포하기도 하면서 불안감을 다스리고 폐쇄된 공간이 주는 위협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고자 했다.

 

"우리가 책을 읽는 것은 무엇보다 인간성을 유지하려는 것이에요"

 

   이 모든 열정과 용기에도 불구하고, 4년간의 물자 봉쇄는 그들의 육체를 서서히 갉아먹는 악마였다. 먹을 것으로 사람을 무릎 꿇게 만드는 전략은 지독히도 효과적인 무기로 작용했다. 네이팜탄으로 온 도시를 불태워 다라야를 매장시킨 아사드 정권의 악랄함에, 저항하던 반군은 더 이상의 희생을 막기로 결심한다. 8000명의 주민들이 대피소에서 나와 뿔뿔히 흩어지고 다라야의 저항정신과 희망의 상징이었던 도서관은 정부군에 의해 짓밟히고 책들은 버려지거나 헐값에 팔려나갔다. 여전히 아사드 정권은 건재하고 지금도 시리아의 어디에선가는 다라야와 같은 상황이 벌어지고 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라야의 지하 비밀 도서관에 관한 이야기를 접했다면 그들 역시 책을 통해 위조된 진실을 걸러내고 획일적 사상을 거부할 수 있는, 그리하여 잔혹한 폭력에 맞서 자아를 회복할 수 있는 용기를 갖게 되리라 믿어본다. 다라야의 지하 비밀 도서관 이야기가 사람들의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지며 그들의 '멍든 내상'을 치유하는 기폭제가 되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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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 에이징 -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지금 현명하게 사는 법
마티아스 홀위치.브루스 마우 디자인 지음, 한정 옮김 / 청미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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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와....내가 자기 계발서를 마지막으로 읽은 게 언제이지? 사실 자기계발서는 현재의 내 취향은 절대적으로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선택한데에는 두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청미'라는 작은 출판사에서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작품을 50여년이 지난 이후에 재출간했다는 것에서 오는 믿음이고 둘째는 출판사의 블로그를 책임지는 지기님의 정성과 홍보 덕분이다. 빽빽한 글밥과 페이지 수가 나의 책 구입에서 꽤나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는 걸 감안하면 꽤나 이례적인 선택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이 책은 단순 자기계발서의 범주에 넣기에는 아까운 책이다. 나이듦에 대한 새로운 관점과 어떻게 나이듦을 준비해야 하는지에 대한 실용적인 충고는 너무나 현실적이고 광범위한 주제를 다루고 있어 뜬구름 잡는 자기계발서와는 다르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백세 시대에 아직은 인생의 절반 정도 밖에 살지 않았고 부모님 두 분 모두 살아계시고, 여전히 직장도 다니고 있는 나의 입장에서는 책의 전반부가 더 와닿는 부분이고 부모님을 생각해보면 책의 후반부가 최대한 빨리 적용해야 할 필수적 충고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부모님이 거주하시는 오래된 주택의 리모델링을 생각하고 있는 요즘, 그저 깔끔하고 예쁘게만 해야겠다고 생각했던 부분이 좀 창피하기도 했다. 앞으로 움직임이 어렵고 어쩌면 병으로 누워계시기만 할지도 모르는 미래를 생각해보았을 때, 혼자 일어나기 어려운 경우를 대비해 욕실 곳곳에 손잡이와 의자를 만드는 것, 휠체어가 드나드는 것에 문제 없을 정도의 방문 크기와 문턱을 없애는 것, 작은 차이에도 민감한 신체조건을 감안한 조명이나 가구 등의 배치 같은 지극히 현실적인 체크리스트를 담고 있어서 실용서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물론 아무래도 저자가 미국인이다보니 우리나라의 환경이나 정서와 맞지 않는 부분은 존재하다. 그럼에도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나이듦'이라는 방문자를 피할 도리는 없다. 사실, 나는 나이듦이 좋다. 이십대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도 없다. 그만큼 나이듦이 나에게 가져다 준 지혜와 변화와 습관과 생각들을 나는 사랑한다. 내가 백세까지 살아갈 지 아니면 당장 낼모레 생을 마감할 지 모르는 일이지만 더 나은 미래가 있다고 한다면 그리고 그 미래가 지금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한다면, 지금은 이십대때와는 달리 그 충고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다고 해도 좋겠다. 뉴 에이징, 나이듦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원칙과 실행까지, 단순히 오래 사는 것이 아니라, 잘 사는 것에 방점을 찍는 하루하루를 위한 고민을 담은 감각적인 책이다.

   아래 두 문장은 지금 나에게 가장 적절한 조언!

 

적을수록 더 좋습니다

생활을 단순화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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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불빛의 서점 - 서점에서 인생의 모든 것을 배운 한 남자의 이야기
루이스 버즈비 지음, 정신아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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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서가를 넘어 탐서가의 서점에 대한 오마주, 서점과의 러브 스토리를 담은 에세이이다. 나도 책읽기를 좋아하고 종이책의 질감과 페이지를 넘길때의 바스락거리는 소리, 그리고 종이책에서 나는 향을 좋아하지만 '나는 과연 서점에 얼마나 가는가'를 생각해보게 만들었던 시간이었다. 저자의 서점에 대한 애정은 서점에서 일하기 위한 노력으로 발전한다. 2년동안 자신을 채용해주지 않았던 서점에 매주 들락거리며 문학지식테스트를 우수한 성적으로 통과하고 드디어 업스타트 크로에서 그렇게 원하던 서점 직원으로 업계에 발을 들여놓는다. 이를 시작으로 여러 서점을 돌아다니고 외판원도 해보고 아뭏튼 책만 가까이 있다면 다른 건 개의치 않아 보일만큼 책과 서점에 대한 애착이 남다르다.

   언제부터 책이란 존재는 인류에게 중요했을까. 책을 한자리에 모은다는 아이디어는 누가 언제 생각해냈을까. 물론 처음은 아니겠지만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은 엄청난 책 저장소로 명성이 자자했다.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후원 아래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원들은 항구를 통해 들어온 모든 화물을 수색해 책을 찾아내고 책이 나오면 도서관으로 옮겨 책 전체를 일일이 베껴 적었다고 한다. 이렇게 베껴 쓴 책을 원래의 배로 돌려보내고 원본은 자기네가 보관했다고 하니 완전 도둑놈이기는 하나 이후 1800년동안 다른 어느 도서관도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소장규모를 능가할 수 없을 정도였다니, 대단한 필사 능력에 놀라울 따름이다.

   대형 체인 서점들 및 인터넷 서점의 등장으로 동네 서점들이 사라진 것은 전 세계의 공통된 현상이다. 간헐적으로 독립서점이나 유명인이 소일거리처럼 하는 듯 보이는 서점들이 생겨나서 입소문을 타고 있기는 하지만 클릭 하나로 책을 집에서 편히 받아볼 수 있는 요즘, 그런 곳으로 발걸음을 옮기기는 쉽지 않다. 굳이 변명을 해보자면 나에게는 오프라인 서점들이 그리 매력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책 속에 등장하는 저자가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는 서점들의 모습을 나는 우리나라 서점들에서 보지 못한다. 헌책방도 대형 체인 서점이 장악하고 있는데, 사실 내가 생각하는 헌책방의 매력은 생각하지도 못했던 책을 우연히 발견하고 게다가 싸게 살 수 있다는 것 아닐까. 거기에 헌책의 원래 주인의 감성 담긴 흔적까지 있다면 재미가 더한다. 그런데 요즘 대형 체인에서 운영하는 헌책방은 책의 상태를 최상, 상, 중, 하 등으로 나누고 누가누가 더 새 책인가로 책의 가치까지 정한다. 책등이 조금 찢어졌거나 책 안쪽에 밑줄이 있거나 하는 책은 받지도 않는다. 또 그들 사이트에서 운영하는 개인 판매자들은 어떠한가. 새로운 중고가 업데이트 되지마자 빛의 속도로 사라지는 이유는 개인 판매업자들이 싹슬이 해가는게 아닌가라는 의심이 들 정도이다. '이집트인들의 목욕장을 데우는 불쏘시개가 되고 말았을지도 모르는 책을 살려내고 지금도 움직이게 하는' 헌책방의 본질은 사라진지 오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책읽기와 사재기를 멈출 수 없다. 아직 읽지도 않은 책들이 더미로 쌓여있음에도 책을 구입하는게 명백한 허세라 하더라도 괘념치 않는다. 저자도 같은 마음이라는 것에 위안을 삼는다. 지금 막 서점에서 새 책을 구입한 사람의 다음 행동을 살펴보자.

"집에 오는 길로 그 책은 아직도 읽히기를 기다리는 책 더미 맨 꼭대기로 가거나, 아니면 아예 몇 년간 방치될 수도 있는 바닥으로 갈 수도 있다. 바로 지금 읽지 않은 책들 더미 속에서 나는 클라우디오 마그리스가 쓴 <다뉴브 강의 역사>란 책과 세계 일주의 패턴, DNA, 언어 등에 관한 과학적인 연구 논문집 한 권을 막 찾아냈다. 나는 이 책들을 읽고 싶지만 불행히도 두 권 다 가구의 일부가 돼 있는 형편이다. 20년 전에 사서 내 붙박이 책장 맨 아래쪽에 두었던 <아이네이스>를 끄집어 내려면 아마 내년은 지나야 할 것 같다."

 

책의 뒷부분이 훨씬 흥미롭다. 사장될뻔한 작가와 작품을 여럿 살린 실비아 비치의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 같은 서점에 관한 이야기. 제임스 조이스가 <율리시스>의 표지는 무조건 푸른색 바탕에 흰색 글자가 들어가야만 한다고 주장했던 이야기(지금 바로 내 옆에 있는 율리시스를 들여다보는데, 검정바탕에 검정 글씨이다...출판사가 요런 것까지 신경 써주면 참 좋을텐데..하긴 요즘은 초판본과 같은 표지라고 광고하는 책들도 간혹 보이기는 하더라). 미국은 매년 12월의 마지막 주간을 금서주간으로 정해 검열에 맞섰던 투쟁의 역사를 기리고 금서로 지정되었던 책들을 전시하는 쿨한 이야기들이 담긴 책의 후반부가 나에겐 더 매력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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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의 무기 - 잔인하면서도 아름다운 극한 무기의 생물학
더글러스 엠린 지음, 승영조 옮김, 최재천 감수 / 북트리거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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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만 따지면 약 300여페이지의 많지 않은 분량이지만 그 내용만큼은 꽉 들어찬 촘촘한 읽을거리와 생각거리를 제공한다. 다양한 동물들의 '극한의 무기'는 어떻게 생겨나서 발전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진화생물학적 관점과 그와 비교할 수 있는 인간의 무기는 어떻게 동물들의 그것과 비슷하게 혹은 다르게 경쟁해 왔는지에 대한 흥미로운 관찰과 실험의 결과물이다. 장수풍뎅이가 가지고 있는 뿔과 사슴의 뿔이 어떤 유사성을 가지고 있으리라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다. 농게의 집게발과 인간에 의해 탄생한 극한의 무기가 도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진화생물학적 관점에서 보자면, 파리이건 쇠똥구리이건 코뿔소이건 인간이건, 극한무기의 자연사는 '정확히 동일'하다는 재미있는 관점이 궁금하다면 이 책이 명쾌한 대답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동물들은 보통 서식지와 먹이의 유형에 맞추어 무기의 구조가 변화된다. 예를 들어, 같은 종이라 하더라도 큰가시고기는 호수에 사느냐 바다에 사느냐에 따라 골질의 갑옷판 수와 가시의 길이에 차이를 보인다. 즉 방어할 필요가 없는 경우 무기가 퇴화되는 것이다. 사실 무기는 '과다한 비용'을 요구하기 때문에 포식자들에게는 무기 크기에 대한 타협이 필요하다. 무기가 커지면 방어력과 살생력은 높아질 수 있으나 휴대성과 기동성이 저하된다. 그래서 보통의 경우는 한가지가 특화되면 다른 기능은 떨어지는데, 그에 대한 선택이 서식지와 먹이의 유형에 따른다는 것이다. 하지만 어떤 특수 상황에서는 이 균형이 깨지게 되는데 이 부분이 이 책의 핵심 내용이라 말할 수 있다.

   왜 동물들의 무기는 커지는 것일까. 첫번째 이유는 바로 '경쟁'에 있다. 자연계에서는 암수의 번식을 위한 소요시간에 많은 차이가 있다. 수컷은 언제나 번식을 할 준비가 되어있는 반면 암컷은 한달에 한번만 가능하거나 그마저도 임신기간과 양육 기간을 포함하면 암컷이 번식을 위한 짝짓기가 가능한 시간은 수컷의 수십분의 일밖에 안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여기에서 다윈이 말한 '성선택'을 위한 경쟁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러한 성선택은 각 개체가 가지고 있는 유전형질을 극한까지 밀어붙임으로써 극한의 무기를 만들어낸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오로지 번식이다. 자신의 유전적 유산이 역사의 심연으로 사라지는 것을 막기 위해 수컷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시도는 바로 암컷에게 뽑히기 위해 용을 쓰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무기가 무한정 커질 수는 없다. 즉, 무기를 크게 하는데 들어가는 비용이 그로 인한 이익보다 초과하는 경우에는 무기 경쟁이 주춤해진다. 게다가 무기의 확장에 더 많은 에너지를 쏟을 수록 신체의 다른 곳의 성장에 이용할 수 있는 에너지는 줄어든다. 실제로 엘크나 사슴의 경우는 막강한 뿔이 필요로 하는 칼슘과 인을 먹이에서 섭취하기 어려워 몸의 다른 뼈들에서 빌려온다고 한다. 그래서 번식기의 사슴은 상대적으로 뼈가 허약해서 부상을 입기 쉬우며 번식기가 지난 후 재빨리 영양을 보충하지 않으면 큰 무기의 댓가를 혹독하게 치루게 된다. 여기에서 무기가 갖는 경제 논리가 등장하는데, 바로 '경제적 방어 가능성'이다. 최고 수컷의 경우, 극한 무기 투자로 인한 번식 성공은 관련 비용을 상쇄하고도 남지만 그렇지 않은 수컷의 경우는 이러한 극한 무기에 대한 투자는 별 소용이 없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무기를 발달시키지 않는다. 

   한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이러한 극한 무기가 실제로 전투나 싸움에서 사용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수컷의 지위와 싸움 능력을 '보여주는' 역할에 만족한다는 것이다. 즉 무기의 크기가 너무나 뚜렷이 보이기 때문에 경쟁자 수컷들은 서로를 쉽게 평가할 수 있어서 무기의 크기가 서로 비슷한 경우가 아니고서는 싸우려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저자는 이것을 '억제력'이라고 지칭하는데, 이러한 억제력 때문에 자연계가 마냥 전쟁터가 되지는 않지만 전투 비용을 아끼는 보상으로 생각되면서 오히려 무기의 진화를 가속화하는 동기가 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이 동물계의 무기 논리를 인간에게도 적용한다. 물론 동물의 무기와 인간의 무기는 생물학전 진화와 문화적 진화라는 차이점이 있기는 하지만 무기 크기의 진화와 선택이라는 부분에서는 어느 선까지는 두 종류의 무기가 정확히 동일한 길을 걷는다. 하지만 인간의 무기가 그 선을 넘는 상황이 발생했는데, 바로 대량살상무기의 발명이다. 행성과 인류의 존재 자체를 위협하는 대량살상무기는 동물에서 찾아볼 수 없다. 그리고 그 대량살상무기를 너무나 많은 국가가 쉽게 소유할 수 있게 되면서 더 이상 '억제력'의 기능을 발휘하기도 어렵다. 자연에서는 큰 무기의 보상 수준이 폭락하면 크기를 축소하는 쪽으로 빠른 선택이 이루어지는데 그렇지 못한 경우는 멸종에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의 극한의 무기는 축소될 기미조차 보이지 않고 그로 인한 우리 인류의 암담한 미래에 겨냥한 저자의 메시지가 무겁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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