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동물의 무기 - 잔인하면서도 아름다운 극한 무기의 생물학
더글러스 엠린 지음, 승영조 옮김, 최재천 감수 / 북트리거 / 2018년 6월
평점 :
본문만 따지면 약 300여페이지의 많지 않은 분량이지만 그 내용만큼은 꽉 들어찬 촘촘한 읽을거리와 생각거리를 제공한다. 다양한 동물들의 '극한의 무기'는 어떻게 생겨나서 발전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진화생물학적 관점과 그와 비교할 수 있는 인간의 무기는 어떻게 동물들의 그것과 비슷하게 혹은 다르게 경쟁해 왔는지에 대한 흥미로운 관찰과 실험의 결과물이다. 장수풍뎅이가 가지고 있는 뿔과 사슴의 뿔이 어떤 유사성을 가지고 있으리라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다. 농게의 집게발과 인간에 의해 탄생한 극한의 무기가 도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진화생물학적 관점에서 보자면, 파리이건 쇠똥구리이건 코뿔소이건 인간이건, 극한무기의 자연사는 '정확히 동일'하다는 재미있는 관점이 궁금하다면 이 책이 명쾌한 대답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동물들은 보통 서식지와 먹이의 유형에 맞추어 무기의 구조가 변화된다. 예를 들어, 같은 종이라 하더라도 큰가시고기는 호수에 사느냐 바다에 사느냐에 따라 골질의 갑옷판 수와 가시의 길이에 차이를 보인다. 즉 방어할 필요가 없는 경우 무기가 퇴화되는 것이다. 사실 무기는 '과다한 비용'을 요구하기 때문에 포식자들에게는 무기 크기에 대한 타협이 필요하다. 무기가 커지면 방어력과 살생력은 높아질 수 있으나 휴대성과 기동성이 저하된다. 그래서 보통의 경우는 한가지가 특화되면 다른 기능은 떨어지는데, 그에 대한 선택이 서식지와 먹이의 유형에 따른다는 것이다. 하지만 어떤 특수 상황에서는 이 균형이 깨지게 되는데 이 부분이 이 책의 핵심 내용이라 말할 수 있다.
왜 동물들의 무기는 커지는 것일까. 첫번째 이유는 바로 '경쟁'에 있다. 자연계에서는 암수의 번식을 위한 소요시간에 많은 차이가 있다. 수컷은 언제나 번식을 할 준비가 되어있는 반면 암컷은 한달에 한번만 가능하거나 그마저도 임신기간과 양육 기간을 포함하면 암컷이 번식을 위한 짝짓기가 가능한 시간은 수컷의 수십분의 일밖에 안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여기에서 다윈이 말한 '성선택'을 위한 경쟁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러한 성선택은 각 개체가 가지고 있는 유전형질을 극한까지 밀어붙임으로써 극한의 무기를 만들어낸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오로지 번식이다. 자신의 유전적 유산이 역사의 심연으로 사라지는 것을 막기 위해 수컷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시도는 바로 암컷에게 뽑히기 위해 용을 쓰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무기가 무한정 커질 수는 없다. 즉, 무기를 크게 하는데 들어가는 비용이 그로 인한 이익보다 초과하는 경우에는 무기 경쟁이 주춤해진다. 게다가 무기의 확장에 더 많은 에너지를 쏟을 수록 신체의 다른 곳의 성장에 이용할 수 있는 에너지는 줄어든다. 실제로 엘크나 사슴의 경우는 막강한 뿔이 필요로 하는 칼슘과 인을 먹이에서 섭취하기 어려워 몸의 다른 뼈들에서 빌려온다고 한다. 그래서 번식기의 사슴은 상대적으로 뼈가 허약해서 부상을 입기 쉬우며 번식기가 지난 후 재빨리 영양을 보충하지 않으면 큰 무기의 댓가를 혹독하게 치루게 된다. 여기에서 무기가 갖는 경제 논리가 등장하는데, 바로 '경제적 방어 가능성'이다. 최고 수컷의 경우, 극한 무기 투자로 인한 번식 성공은 관련 비용을 상쇄하고도 남지만 그렇지 않은 수컷의 경우는 이러한 극한 무기에 대한 투자는 별 소용이 없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무기를 발달시키지 않는다.
한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이러한 극한 무기가 실제로 전투나 싸움에서 사용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수컷의 지위와 싸움 능력을 '보여주는' 역할에 만족한다는 것이다. 즉 무기의 크기가 너무나 뚜렷이 보이기 때문에 경쟁자 수컷들은 서로를 쉽게 평가할 수 있어서 무기의 크기가 서로 비슷한 경우가 아니고서는 싸우려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저자는 이것을 '억제력'이라고 지칭하는데, 이러한 억제력 때문에 자연계가 마냥 전쟁터가 되지는 않지만 전투 비용을 아끼는 보상으로 생각되면서 오히려 무기의 진화를 가속화하는 동기가 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이 동물계의 무기 논리를 인간에게도 적용한다. 물론 동물의 무기와 인간의 무기는 생물학전 진화와 문화적 진화라는 차이점이 있기는 하지만 무기 크기의 진화와 선택이라는 부분에서는 어느 선까지는 두 종류의 무기가 정확히 동일한 길을 걷는다. 하지만 인간의 무기가 그 선을 넘는 상황이 발생했는데, 바로 대량살상무기의 발명이다. 행성과 인류의 존재 자체를 위협하는 대량살상무기는 동물에서 찾아볼 수 없다. 그리고 그 대량살상무기를 너무나 많은 국가가 쉽게 소유할 수 있게 되면서 더 이상 '억제력'의 기능을 발휘하기도 어렵다. 자연에서는 큰 무기의 보상 수준이 폭락하면 크기를 축소하는 쪽으로 빠른 선택이 이루어지는데 그렇지 못한 경우는 멸종에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의 극한의 무기는 축소될 기미조차 보이지 않고 그로 인한 우리 인류의 암담한 미래에 겨냥한 저자의 메시지가 무겁게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