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설계도를 찾아서
게르하르트 슈타군 지음, 장혜경 옮김 / 해나무 / 2004년 3월
평점 :
절판


게르하르트 슈타군의 <우주의 수수께끼>를 만족스럽게 읽은 적이 있어서, 사실 생명이라는 주제에 큰 관심은 없었지만 같은 저자라는 이유만으로 과감하게 구매 버튼을 눌려서 사버렸다.

제일 처음 책을 손에 잡아본 순간 이게 하드커버란 걸 알고, 괜히 너무 어려운 책을 고른 건 아닌지 걱정부터 들었다. 그리고 표지 앞뒤로 무슨 올챙이 같은 것이 잔뜩 그려져 있었는데, 곰곰이 보다가 그만 볼이 붉게 달아(?) 올라버렸다. 그것은 정자들이었다. 그래도 표지만 보고 책을 평가할 만할 때는 지난 나 이므로 무작정 읽어보기로 했다.

우리는 생물학 시간에 세포와 진화론, 물리학 시간에 원자와 전자, 화학 시간에 원소와 화학 반응, 지구 과학 시간에 지구의 형태를 학교에서 배웠었다. 하지만 이것들은 서로 관련이 전혀 없는 것일까? 모든 물질은 원자로 구성되었다고 물리학 시간에 배웠는데, 그럼 세포도 원자로 이루어 졌을까? 그렇다면 도대체 생물과 무생물의 차이점이 뭘까? 그리고 암석으로만 존재했던 원시 지구에 생물이 어떻게 만들어 졌을까? 모든 생물은 진화했다고 하는데, 저 보잘것없는 박테리아가 인간으로 진화했다는 것이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 그렇다. 저자도 똑같은 질문을 하면서 글을 시작하고 있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내가 제대로 책을 골랐구나 싶었다. 지금 당신이 학생이라면 학교에 가서 똑같은 질문을 해보아라고 말하고 싶다. 선생님이 매우 어려워하지 않을까 싶은데, 왜냐하면 이 책에서도 그에 대해 아직 확실히 밝혀내지 못했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지구의 탄생부터 세포의 생성까지 하나하나 짚어 가고 있지만 그들의 연결고리를 찾는데 어려움을 보이고 있다. 난 과학자들이 자존심(?)에 숨겨놓았던 문제를 알게 되는 것 같아 슬슬 흥미가 돋기 시작했다.

이렇듯 저자는 여러 과학 분야들을 서로 선을 긋지 않고 총 통합하여 책 제목처럼 생명의 설계도를 찾아 분주히 노력하고 있다. 정말 발음하기 어려운 이름을 가진 게르하르트 슈타군의 과학적 지식과 글 솜씨에 놀라움이 느껴진다.

중반에 가면서 각가지 화학 기호들과 DNA, 세포 분열들을 설명하는데 좀 지루한 면이 없지 않아 있었다. 역시 난 화학과 생물 분야에 관심이 적은 건 사실인가 보다. 밤을 세워가며 DNA 분석에 노력하는 과학자들에게 존경을 표하고 싶다.

하지만 고대 생물들을 연도별로 알아보는 것과 드디어 인류가 탄생하는 부분에서는 책 속으로 점점 빠지게 만들었다. 교과서와 TV에서 간단히 소개하는 인류의 진화과정을 봐 왔지만, 호모 어쩌고 하면서 나오는 이름에 어렵다고 넘어가기만 했었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해 체계적으로 자세히 알게 되어 너무 좋았다. 짧게는 몇 만 년 길게는 몇 백만 년 전 우리의 조상들의 생활 모습을 상상해 본다는 것을 흥미로운 일이다. 보통 역사책에 나오는 몇 백 년, 몇 천 년은 그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니까 말이다.

책 중간에 10장 분량으로 칼라 사진들이 담겨져 있는데 매우 볼 만 하다. 이 책을 읽어볼 생각이 없더라도 서점 갈 기회가 된다면 이 부분만 살짝 한번 봐도 괜찮겠다.

책의 뒷부분에 가면 인간 복제와 유전자 조작, DNA 컴퓨터까지 가면서 이것 갈 때까지 가는구나 싶었다. 막바지에 가서는 두뇌를 컴퓨터에 연결하는 것과 육체와 의식의 분리하는 것까지 나오는데, 거의 난 충격에 책을 다 읽고도 쉽게 놓지 못했다. 저자는 전자 회로에 인간의 신경세포를 연결하는 과정과 그 활용 가능성, 그리고 인간의 정신 세계를 뇌에서 완전히 분리하여 다른 곳에 저장하여서 영원히 죽지 않는 초인을 들려주는데, 당신은 이 말만 듣고 쉽게 믿을 수 있겠는가? 놀랍게도 이 책은 SF 소설책이 아니다. 저자는 과학적 근거를 가지고 말하는데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갑자기 과학이 두렵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이 책은 나에게 특별한 경험을 안겨주었다. 거기에다가 수많은 과학 지식들도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어서 더욱 만족스러운 시간을 가졌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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