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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경삼림(重慶森林) [HD 텔레시네] (dts) - 할인행사
왕가위 감독, 임청하 외 출연 / 아인스엠앤엠(구 태원) / 2007년 8월
평점 :
품절
<<중경삼림>> (1994)
- 사랑이 앞으로 가야할 길
왕가위 감독의 영화 <<중경삼림>>은 두 가지 에피소드를 통해서 현대인의 사랑에 대해 이야기 한다. 첫 번째 에피소드는 현대에 사랑이 소비되는 형태를 보여주고 있고 두 번째 에피소드는 과거와 미래에 얽매여 현재를 보지 못하는 사랑에 대해 보여준다.
100일 빵이라는 것이 있다. 이것은 한 쌍의 연인이 100일이 되는 것을 기념하여 주위의 친구들이 축하해주면서 각자 100원짜리 동전을 주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100일 동안 이 연인이 깨지지 않고 버틴 것에 대견함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기념일이 점점 앞당겨지고 있다. 22땡, 33땡, 심지어는 럭키세븐 땡도 있다. 럭키세븐 땡은 진도의 완성이라고 하는 섹스에 이르는 시기(1주)로 보는데 이후 계속 갈지 그만 둘지를 고민하는 때를 의미하기도 한다. 이 처럼 현대인의 사랑은 점점 빠르고 짧게 소비되는 경향을 보인다. 특히 연애 대상자의 연령이 낮을수록 더욱 그렇다.
<<중경삼림>>의 첫 번째 에피소드는 빠르게 소비되는 현대인의 사랑에 대해 이야기 한다. 젊은 경찰관인 233호는 실연을 당한다. 그리고 그가 하는 행동은 그녀를 대신할 수 있을 만한 여자에게 전화를 걸어보는 것이다. 이는 결국 실패하고 만다. 그가 다니던 패스트푸드 점의 메이라는 여종업원도 그가 빠르게 낚지 못했기에 놓치고 말았다. 이후 옛 애인이 좋아하던 파인애플 캔을 1달 간 사먹으며 실연의 아픔을 달랜다. 그런데 이 과정 속에서 그를 살펴보면 그는 그다지 슬퍼하거나 괴로워하지 않는다. 그저 맛있게 먹어치운다. 서른 번째 파인애플 캔을 구입한 5월1일 옛 애인에게 자신은 파인애플 캔에 불과했다는 것을 깨닫는다. 가벼운 간식거리인 파인애플이 그들의 사랑에 비유되는 것이다.
그가 눈물을 흘리지 않기 위해 조깅을 한다고 하지만 사실 조깅은 5월1일이 되어서야 한다. 단지 소비된 사랑에 대한 자기 의식적인 행동이었던 것이다. 마약밀매 중계인으로 나오는 노란 가발 연인에 대한 그의 사랑도 지극히 소비적이다. 그가 그녀에게 접근한 이유는 이 술집에 처음으로 발을 들이는 연인을 사랑하겠다는 자기 선택에 의한 것이었다. 이 말은 그녀가 누구였든지 상관없이 사랑을 소비해 보겠다는 의지였다. 그녀가 쉬러가자고 했을 때 그는 그녀가 진짜 쉬자는 의미였는지 몰랐다고 고백한다. 없으면 허전해서 구입하게 되는 물건처럼 사랑도 그렇게 현물 취급되는 현대인의 사랑을 첫 번째 에피소드는 전한다.
지난 주말 절친한 친구로부터 부탁을 받았다. 그는 <<꿈꾸는 다락방>>을 감명 깊게 읽었다면서 자신의 미래에 대한 글을 써달라는 것이었다. 이유인즉 이 책에 따르면 자신의 소망을 간절히 꿈꾸면 그것이 이루어지는데 특히 글로 써서 구체화하면 실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었다. 어느 작가가 그렇게 하여 늙은 나이에 젊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이상형과 똑같은 여성을 만날 수 있었다고 책에 적혀있다고 했다. 그는 그가 꿈꾸는 미래에 대한 줄거리를 아주 상세하고 디테일하게 말해주었다. 그의 미래는 없고 다만 기대에 불과한데 실제처럼 믿어가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오늘의 현실 속 여자는 의미가 없었다. 그의 곁에서 지금도 맴돌고 있는 그 여자를 그는 도무지 보질 못한다.
<<중경삼림>>의 두 번째 에피소드는 오늘을 살지 못하는(의식적으로) 남녀가 사랑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그리고 있다. 영화의 남자 주인공인 경찰 633은 실연을 한다. 그 후 그는 옛 애인에 대한 그리움 속에 오늘을 살아간다. 그리고 그녀가 돌아올 것이라는 가상의 미래 속에서 오늘을 살아간다. 그가 오늘을 사는 방법은 오늘을 외면하는 것이었다. 그런 그를 사랑하는 소녀인 아비가 등장한다. 그녀는 그를 사랑하여 그의 집에 몰래 들어가 옛 애인의 흔적을 지워간다. 하지만 그는 오늘이 아닌 과거와 미래 속에 살기에 오늘의 변화를 알지 못한다. 아비 역시 오늘이 위태롭기는 마찬가지이다. 아비는 미래 속에 산다. 그래서 그는 오늘을 직시하지 못한 채 몽유인처럼 사는 것이다. 이는 633이 현실로 돌아와 아비의 존재를 깨닫고 아비에게 데이트 신청을 했을 때 오히려 아비가 1년이라는 유예기간을 정하고 떠나면서 명백히 드러난다. 이후 영화는 1년 뒤 재회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끝이 난다. 영화의 마지막은 또다시 헤어져야 함을 암시하지만 만약 이들이 과거나 미래가 아닌 현재를 살게 됐다면 그 헤어짐은 슬픈 것이 아닐 것이다. 없는 미래가 오늘에 오는 것이 아니라 오늘이 미래를 만들어 가기 때문이다.
철학자 아우구스티누스에 따르면 과거, 현재, 미래라는 시제는 문법상으로만 존재 할 뿐 이라고 한다. 그는 과거는 없고 오직 기억만이 있으며, 미래는 없고 다만 기대가 있을 따름이라고 하며 존재하는 시간은 현재, 이 순간뿐이라고 하였다. 633과 아비와의 위태롭고 애처로운 사랑의 빗나감은 이러한 착각하는 시간 개념 속에 있었다. 나는 영화를 보면서 내 친구 주위를 맴돌고 있는 오늘의 현실 속 여자를 그가 보기 까지는 얼마나 걸릴지를 생각해 보았다. 영화 속에서처럼 1년이 필요할 수도 있겠고 더 걸릴 수도 있다. 어쩌면 현대의 속도감에 치여 그 여자는 다른 남자의 품으로 가버릴 지도 모르는 일이다.
<<중경삼림>>은 두 가지 에피소드를 통해 현대인들의 사랑에 대해 두 번 꼬집는다. 첫째는 현대의 빠른 속도감 속에 사람의 사랑도 현물이 되어버림을 보여준 것이고 둘째는 사랑을 이루기 위해 치르는 오늘을 보는 과정을 보여준 것이다. 이 영화가 발표된 20세기 후반은 이미 지나갔고 이제는 21세기가 된지도 오래다. 문명의 속도는 더욱 빨라져 연애 역시 그런 속도감 속에서 현물로 소비되고 있고 그 정도는 더 심화되었으며 현실을 망각하는 도시의 몽유인들은 더욱 많아지고 있다. 우리는 이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 노력은 우선 현물이 되어버린 사랑을 인간답게 하는 것이다. 그것은 사람과 사랑을 대할 때의 마음가짐만큼은 느리게 가질 때 가능하다. 또한 과거와 미래 속에서 살아 이미 없거나 아직 없는 것에 묻혀버릴 것이 아니라 살아가고 있는 오늘을 직시하고 그 주변을 살펴 서로를 쳐다볼 때 가능하다. 그리고 그 때가 되면 <<중경상림>>의 꼬집음에 더 이상 아파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추천강도 ★★★☆
08.10.01 두괴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