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으로 드나드는 남자
마르셀 에메 지음, 이세욱 옮김 / 문학동네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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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학생의 생일날 책을 몇권 선물했더니 답례로 돌아온 게 바로 <벽으로 드나드는 남자>였다. 읽을 책이 좀 밀려 있긴 했지만 지도학생이 세 번이나 “그거 읽으셨어요?”라고 묻는 바람에 날 잡아서 읽었다. 책이 재미있어서, 그리고 176쪽밖에 안되는 얇은 책이라서 오래지 않아 읽을 수 있었는데, 다 읽었다고 자랑하려니 지도학생이 외국으로 떠버렸다. 안그래도 부진한 올해 독서실적을 생각하면 한권이라도 더 읽어야 하지만, 일이 그렇게 되니 좀 허무해진다.


마르셀 에메가 쓰고 베르베르 소설의 전담 번역자 이세욱이 옮긴 이 책은 제목과 저자 모두 내게 생소해, 선물을 받지 않았다면 아마도 읽어보지 않았을 거다. 2002년에 나왔고 5년만에 11쇄를 찍은 걸 보니 그래도 꽤 팔린 책인데 난 왜 몰랐을까? 책선물의 가치는 바로 이런 데 있는 거라는 걸 다시한번 상기해 보며 표제작의 줄거리를 언급해본다. 주인공은 자신이 벽을 드나드는 능력을 가졌다는 걸 알게 되었다. 처음에는 상사를 곯려주는 데 그 능력을 사용하는데, 머리만 내놓고 상사에게 “당신은 깡패에다 상놈에다 개망나니요”라고 말하는 장면은 상상만으로도 즐겁다. 그는 일반인의 예상처럼 값비싼 물건들을 훔치는 길로 접어들고, 범인이 자신이란 걸 동료들이 안 믿어주자 일부러 잡힌다. 감옥 안에서도 탈출과 체포를 반복하던 주인공은 순간의 실수로 벽에 갇히는 처지가 된다. 자, 이 단편은 도대체 뭘 말하려고 하는 걸까? 공명심으로 망한 사내의 이야기? 아니면 능력을 나쁜 일에 쓰면 망한다는 교훈? 책 뒤에 붙은 해설을 보니 옮긴이가 많은 장을 할애해가며 설명을 해놨던데, 그걸 보니 여전히 모르겠어서 이렇게 정리하기로 했다. “재미있으면 됐지, 꼭 이해해야 해?”


다른 단편들 역시 뛰어난 상상력이 발휘된 재미있는 것들인데, 특히 <생존시간 카드>을 읽으면서는 저자의 상상력에 존경심을 품게 된다. 갑자기 <나무>가 생각난다. 천재작가라고 생각했던 베르베르가 자신의 상상력을 그냥 책으로 엮은 건데, 거기 실린 단편들이 상상력을 발휘하는 데 그쳤다면 에메의 단편들은 그 상상력을 작품으로 멋지게 승화시켰다. <나무> 이후 베르베르 책을 더 이상 안사는 것과 달리 <벽으로>를 읽으니 에메의 다른 책을 사보고 싶어진다. 말썽만 피우는 지도학생이 간만에 고맙다. 그는 이 사이트를 절대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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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7-08-05 2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혹 그 학생이 미자인가요? 이 책 저도 궁금해요^^

부리 2007-08-06 2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노아님/아아 예리하신 마노아님!! 비결은 역시 선글래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