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택시 - 매 순간 우리는 원하지도 않았고 상상하지도 못했던 지점들을 지난다 아무튼 시리즈 9
금정연 지음 / 코난북스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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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재밌다 너무 재밌어!!
(그리고 ˝정말 다행이지 뭐야...˝ 이거 너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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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돈은 「팬텀 이미지」에서 “나는 일이 겹치는 걸 좋아하고 일을 생각하고 바라보면 어느 순간 멀리 떨어진 곳에서 서서히 일의 중력이 서로를 끌어당기는 게 보인다. 그러니 어디로든 가야 한다. 무엇이든 읽어야 하고 어떤 이야기라도 해야 한다.”고 적었다.

 보리스 그로이스는 『코뮤니스트 후기』에서 “이런 실천의 행위에 있어 무엇보다도 본질적인 것은 어느 시점에선가 종결을 지을 결단을 내려야만 한다는 점”이라고 적었다.

 야곱 타우베스는 『바울의 정치신학』에서 “건너편에서 무슨 일인가가 먼저 일어나야만, 그런 다음 우리가 그걸 볼 수 있습니다. 별빛이 우리 눈을 찌른 뒤에야 말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아무것도 못 봅니다. 안 그러면 우리는 계속해서 올라갈 겁니다. 내일이고 모레고 계속 노력할 것이고요. 아도르노, 이 사람은 도무지 손을 놓질 못합니다. 바로 그래서 미학자인 것이지요. 그러나 벤야민이나 칼 바르트는 그런 식의 나이브함은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고 적었다.

 가야트리 스피박은 『지구화 시대의 미학 교육』에서 “모순적인 가르침들은 늘 우리에게로 온다. 우리는 그것들을 듣는 법을 배우고 게임 속에 남아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결정할 때, 또 우리가 결정하는 대로, 우리가 그 이중구속을 말하자면 하나의 구속으로 부수어버렸다는 것을 안다. 또한 우리는 곧 변화에 착수해야 한다는 점을, 혹은 과제이건 사건이건 일들이 바뀔 것이라는 점을 안다. 이 점을 알 때, 윤리적, 정치적, 법적, 지성적, 미학적 결정들을 수반하는 전형적인 정서는 후회와 가책, 적어도 불편함이라는 스펙트럼이다.”라고 적었다.

 김예령은 「너울너울 잠잠」에서 “어떤 출발은 온갖 종류의 원천적인 결격으로부터만, 무언가를 도저히 제 것으로 맡을 수 없다는 뼈아픈 자각으로부터만 가능해진다. 중요한 건 점점 더 강해지는 게 아니라 한없이 약해지는 것.”이라고 적었고 「없이」에서 ““어쩌면 표현이 불가능한 행위라는 확신에 그 두 손이 묶여 있지 않”아서, 그래서 시작하지 않을 도리조차 없을 때 시작되는 시작이 그들을 밀고 간다. 그들이, 자신들의 원인들을, 필시 중요로웠을 숱한 가능성들을, 관계들을, “유예중인 자유”를 지운다. 그것들이, 남는다. 오, 그란 리피우토. 없이, 기다린다.”고 적었다.

 이렇게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의 내가 좋아하는 글들을 모아놓으면 꼭 무슨 일이 발생할 것 같지만 원래 그런 건 불가능하므로 언제나 그렇듯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지만 어쨌든 기분은 좋아지고 그런데 이 기분은 뭘까 생각해보면 예전에는 분명 이런 글들에서 에너지를 얻어 뭔가 애틋해지고 따뜻해지는 기분에 휩싸였지만 요즘은 그런 건 없고 그냥 예전에 내가 이런 글들을 보며 좋아하고 이런 구절 앞에서 앞으로 계속 나아가지 못한 채 나의 즐거움을 조용히 지켜보며 즐거워하는 귀여운 장면들이 떠오르고 그런 것이 좋고 그렇게 사는 것이 참 중심이 잡혀있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언제나 그렇듯 나는 또 다시 중심에서 멀어지고 탈각되고 그렇게 또 아무 생각 없이 아무런 시간도 그리거나 펼쳐내지 못한 채 그렇게 가만히 있다.

 다만 내가 이 글을 쓰게 된 시작점은 정지돈이 말했듯 어쨌든 가만히 있을 순 없고 타우베스의 말처럼 무언가에 점진적으로 수렴하겠다는 의지와는 단절한 채 그로이스의 말처럼 종결을 지으면서 그래도 뭔가를 할 수는 있지 않을까 고민하며 스피박과 김예령을 불러냈다. 모든 환영과 환상을 털어내고 그 어떤 건축물도 없는 흙바닥 위에서 어쨌든 무언가를 하겠다는 마음을 갖는 건 정말 쉽지 않지만 이들은 결국 무언가를 하고 있고 또 그것을 잘하고 있다. 환상을 털어내고 또 다른 환상들이 계속해서 끼어든다. 어쩌면 애초에 문제 같은 건 없었고 거울에 비친 민낯의 내가 가장 마지막의 나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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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토크 VOSTOK 매거진 7호 - 사랑, 당신과 나의 처음과 끝
보스토크 프레스 편집부 지음 / 보스토크프레스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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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운성은 「얼굴 없는 표면」에서 "이처럼, 모호한 사진은 거기에 희박하게나마 잔존하고 있는 가시성을 통해 우연적 의미작용의 회로를, 의미심장한 오독의 네트워크를 가동시킨다."고 적었고 정지돈은 「팬텀 이미지」에서 "우리는 코모도 호텔로 가는 길에 콩고드 호텔을 우연히 발견했다. 버려진 수영장에는 낙엽이 가득했고 갈라지기 시작한 아이보리색 벽면에서 시멘트 가루가 떨어졌다. 오후 네 시였고 기울어진 햇살이 호텔 뒤편 산책로를 비추었다. 한기와 상우는 외투를 벗고 산책로를 따라 걸었다. 어떤 우연이 있고 우연들이 겹쳐서 일어나면 그것을 우연이라 부를 수 있을까. 이미 일어난 일을 우연이라고 할 수 있을까. 나는 일이 겹치는 걸 좋아하고 일을 생각하고 바라보면 어느 순간 멀리 떨어진 곳에서 서서히 일의 중력이 서로를 끌어당기는 게 보인다. 그러니 어디로든 가야 한다. 무엇이든 읽어야 하고 어떤 이야기라도 해야 한다."라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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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구름이 모일 때 인문 서가에 꽂힌 작가들
베시 헤드 지음, 왕은철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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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은 마카야라는 한 인물이 남아프리카공화국로부터 국경을 넘어 보츠와나로 도망치는 것에서 시작한다어떤 구체적인 갈등이 있었고 그가 무슨 연유에서 감옥에 있었으며 어떻게 하여 국경을 넘었는지는 설명되지 않는다처음부터 그렇다이 소설은 그 다음의 이야기들을 다루고 있다마카야는 한 노인을 만나게 되고 그를 따라 골레마음미디라는 마을로 가게 된다그곳에는 길버트라는 영국 출신 백인이 농업개혁을 위해 힘쓰고 있다둘은 힘을 합쳐 척박한 아프리카의 땅에 농작물을 심는 등그리고 무엇보다 마을의 여성들이 중심이 되어 재건하는 풍경을 그린다.


   이 소설의 놀라운 점은 작가가 갈등과 고난을 갈등과 고난처럼 다루지 않는다는 점이다일이 잘 풀리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긴장이 문득문득 독자를 엄습하지만 사실 그와 같은 근심은 그저 섣부른 걱정이었음으로 드러난다마카야 또한 자신이 떠나온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정치범으로 감옥에 갇혀있었던 사실이 암시되고 언급될 뿐 자세한 이야기는 서술되지 않는다우리의 시간이 그렇다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지만 일어나지 않는다대개 걱정은 우리의 뜻 모를 기대를 기분 좋게 빗나간다서사는 갈등으로부터만 발생하지 않는다.


마카야가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아니그렇게는 못 하겠어요내가 내 발로 막다른 골목에 들어왔는지 어쩐지도 모르겠고지금은 모든 것에 신물이 나 있을지 모르지만언젠가 정리되면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은 뭐든 할 거요.”

조시 애플비스미스는 잠시 그를 바라보다가 조용히 말했다그래도 나는 당신을 위해 모험을 해보겠소.”(97)


깡마른 노인들이 옷을 벗고 나무 그늘 밑에 앉아 떨리는 손으로 바구니를 짜고 있다면 더 좋을 것 같았다종교 없이도세상 사람들의 죄를 위에 죽어서 사람들에게 그들이 저지르는 죄에 대한 책임감이 없게 만든 신들 없이도사람들은 살 수 있을 것이었다.(218)


마텐지의 집을 향해 걸음을 서두르는 마을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이런 생각들이 스쳐지나갔다박해를 받는 건 더이상 폴리나 세베소만이 아니었다골레마음미디 마을 전체였다그리하여 갑작스레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마을 중심에 다 모여 얼굴을 마주하게 되자그들은 각자 마음의 짐을 덜어내며 서로를 바라보고 웃었다결국 다들 같은 마음이었기 때문이다.(286)


   이 소설은 여러 면에서 낯설었는데 결정적인 갈등이 없었다는 점갈등이 있어도 일이 수월하게 해결된다는 점슬픔이 엄습해도 그 감정에 도취되어 자기연민을 실행하는 인물이 없다는 점밭을 갈고씨앗을 뿌리고상품작물을 심고우물을 파고 관개수로를 설치하는 모습들이 자세히 서술되는 것을 읽어가며 독자들은 무언가가 격렬히 싸우고 사라지는 이미지를 머릿속에 그리게 되는 것이 아니라 점차 무언가가 생겨나고 쌓여가는 튼튼한기분 좋은 중력감을 경험하게 된다이것을 단순히 유토피아이고 서정적이며 희망에 찬 소설이라 부르기보다는우리의 상상력을 더 확장시켜 근거 없는 불안과 두려움에 우리 자신을 빠뜨려 스스로 감성적 나르시시즘에 걸어 들어가는 포즈에 저항하며주어진 일을 하고 해야 할 일을 해나가는 다부진 태도들을 떠올려보자애초에 우리는 그렇게 살았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게 될 것이다섣부른 불안에 스스로를 연민하기에 시간은 무한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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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구름이 모일 때 인문 서가에 꽂힌 작가들
베시 헤드 지음, 왕은철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8월
평점 :
절판


그 다음, 의 이야기. 사람들이 모여 무언가를 해나가고 그게 성공할지 잘될지 모르나 어쨌든 무언가를 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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