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나라 없는 나라 - 제5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이광재 지음 / 다산책방 / 2015년 10월
평점 :
'동학농민운동'이라 하면 무엇을 떠올리는가? 최근의 국사 교과서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내가 배웠던 23년 전 고등학교 국사 시간에는 농민들에 대한 수탈을 참지 못하여 일으킨 전봉준과 농민의 난으로 기억된다. 그리고 잊혀졌던 것이 '동학농민운동'이었다.
<나라 없는 나라>는 '동학농민운동'을 전개했던 당시의 모습을 소설로 풀어낸 작품이다. 이 작품을 보다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동학농민운동'을 보다 사실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나 역시 <나라 없는 나라>를 읽으며 다시금 동학농민운동에 대한 내용을 다시 읽어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동학농민운동은 부패 척결과 내정 개혁 그리고 외세 침략을 우려했던 민초들의 항거였다고 보여진다. 더욱이 전봉준이 대원군을 만나 그들이 생각하는 세상에 대한 의견을 피력하는 순간은 무척이나 가슴 뭉클해지는 장면이다.
"백성이 가난한 부국이 무슨 소용이며, 이역만리 약소국을 치는 전장에 제 나라 백성을 내모는 강병이 무슨 소용이겠나이까?"
한번 말이 트이자 거리낌이 없었다.
"그러면 그대는 정치를 할 생각인가?"
"바르게 세상 이치를 펴는 일이라면 여향의 백성보다 적합한 이들이 없나이다. 때가 오면 흙을 갈고 비가 오면 물을 대니 그들이 어찌 순리를 모른다 하며, 함께 누리는 즐거움을 낙으로 아는 자들인데 그것을 다만 무지라 하겠습니까. 사대부들이 있다 하나 그들의 일이 노(老)니 소(少)니 벽(僻)이니 시(時)니 풀뿌리 하나 나고 자라는 이치에 맞지 않으므로 노상 의리(義理)를 이야기한들 어찌 그것을 정치라 하오리까?"
"하면 상(常)이 반(班)이 되고 반이 상이 되면 그것이 그대의 원인가?"
"그것은 진실로 바라는 바가 아니올시다. 반상이 뒤집히기로 세월이 흘러 다시 오늘이 되고 말진대 이는 또 하나의 폐단입니다. 반도 없고 상도 없이 두루 공평한 세상은 모두가 주인인 까닭에 망하지 않을 것이며, 모두에게 소중하여 누구도 손대지 못하게 할 것이니 이것이 강병한 나라 아니옵니까? 비록 양이(洋夷)라 하나 그들은 민회(民會)를 만들어 다스리는 법을 정하고, 임금을 백성이 뽑는 나라도 있다 들었습니다. 그들은 강한 나라입니까, 약한 나라입니까?"
| 이광재, <나라 없는 나라>, 11쪽
비록 그들의 열망은 성공으로 기록되지 못했지만, 그런 노력들이 있었기에 민주주의가 당겨질 수 있었지 않았을까 싶다. 한편으로 언제나 쇄국정책과 함께 떠오르는 흥선대원군으로 인해 우리나라가 개방과 개혁을 하지 못했다는 비하를 해야하는 것일까? 라는 생각도 가지게 되었다. 어찌보면 자주적인 조선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고 동학운동의 주축이었던 농민들도 사농공상의 계급이 없는 세상을 원한 것이지 외세를 동원한 개혁과 개방을 원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작가 역시 '작가의 말'을 통해 한 말이 나에게는 무척 와닿는다.
알다시피 그 시절 자주적 근대의 가능성은 부정되고, 조선은 식민지로 전락하여 타의에 의해 세계의 화염 속에 던져졌다. 그리고 책임을 져야 할 국가는 멀쩡한데 엉뚱하게도 이 나라가 반 토막 나는 것으로 사태는 끝나버렸다. 그러니 그 시절은 오늘의 첫 번째 단추가 분명하다.
근대적 문물을 재빠르게 수용했어야 한다는 잣대로 과거를 평가할 수는 없다. 그것은 몇 가지 가능성을 놓고 뽑기를 제대로 했어야 한다는 말과 같다. 서구적 근대가 반드시 우월하다고 볼 수도 없지만 그나마 조선이 접한 건 일본에 의해 굴절된 근대의 변종이 아닌가, 따라서 그를 추종하던 세력과 기득권 세력이 친일파가 된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바로 그들과 그 후손들이 지금 우리의 '갑'이다. 그 '갑'들이 한국사를 국정교과서로 만들겠다고 말하는 세상이다. 역시 그곳이 첫 단추다.
중국은 세계를 향해 전승절이라는 이름으로 군사 퍼레이드를 벌였다. 말이야 어떻게 붙이든 일본에서는 침략도 하고 전쟁도 하도록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게 우리가 당면한 동아시아의 모습이다. 120여 년 전에 해양과 대륙이 힘을 겨뤄 폭압적으로 세력교체를 하는 바람에 조선이 크게 뒤틀렸는데 그 양대 세력이 지금 심상치가 않다는 뜻이다. 그나마 전에는 하나의 조선으로 대응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한반도가 두쪽이다. 어째 우리만 난처한 지경에 빠진 것 같다. 어쨌든 이것도 왠지 첫 단추를 연상케 한다.
<나라 없는 나라>는 고어(古語)체로 쓰여져 있어 책을 읽기가 쉽지 않았다. 책의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려웠던 부분이 많이 있어서 시간이 오래 걸린 것도 사실이다. 더구나 동학농민운동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이해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더욱 어려웠는지도 모른다.
해마다 6월이면 '호국보훈의 달'이라고 하여 영화들도 국가를 지켜내는 영화들이 속속 개봉된다. 최근 몇 해 동안은 <명량>, <연평해전>이 그러하였다. 이제 국가를 위해 희생한 인물들을 바라 보는 시각도 조금은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