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옷 3벌, 겉옷, 속옷, 세면도구, 손가방(여권&비행기표 및 귀중품), 책 2권, 수첩, 모자, 수건과 손수건... 그 여자는 자기의 다이어리에 빼곡히 적는다. 이렇게 적어놓지 않으면 무엇을 빼고 넣어야하는지 몰라서 허둥대기 마련이다. 그 여자는 챙겨가야 할 품목들을 써놓고 여러번 읽고 생각하고 또 읽고 생각한다. 순간 떠오른 그녀의 첫 여행지 필리핀... 고등학교 졸업 후에는 평생 책읽고 여행하며 살리라 했던 그녀도 막상 떠나려니 낯선 곳이라 불안해했던 것을 기억해낸다.    

   " 아니, 얘. 너는 무슨 4박 5일 다녀올 짐이 한 달 살 짐같니?"   

등산용 베낭에 이것 저것 잔뜩 챙겨넣고도 보조 가방에 잡다한 것들을 쑤셔 넣는 그 여자를 보고 어머니는 혀를 내둘렀었다. 

 "무슨 일이 어떻게 터질지 모르잖아. 그러니까 이것 저것 가져가보는 거야."  

 고등학교 3년 내내 파트 타임으로 햄버거가게에서 일하며 벌은 돈으로 대학 등록금 대신 여행을 선택한 딸의 처사를 어찌 해야 할지 몰라 어머니는 한숨을 쉬었었다. 그런데 막상 여행 짐까지 손수 싸는 딸이 감격스러워 어머니 가슴도 벅차고 있었다.

"원래 여행이라는 게 짐은 간소하게 싸고 필요한 건 거기 가서 충당하는 거야" 

 옆에서 지켜보던 오빠도 한 마디 한다.  

"돈이 그다지 많질 않아서 그렇게는 못하구... 괜찮아. 없어서 불편한 거 보다는 낫지." 

그 여자는 그렇게 첫 여행을 다녀왔고 간소하게 짐을 싸가야 한다는 오빠 말을 실감하고 돌아왔었다. 들고 갔던 짐들을 다 간수하기에는 걸어야 할 길도 일정도 만만치 않았기에 그곳에서 만나 인사를 나눴던 모든 사람들에게 자신의 물건들을 조금씩 다 주어버렸기 때문이다. 그 여자는 그 때일을 떠올리고 혼자 웃었다. 

"뭐가 그렇게 재밌어?" 사장님이었다. "나오셨어요?" 그 여자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렇게 좋아? 여행 가는 게?" 사장님의 말에 그 여자는 말없이 웃었다. "자, 받어." 사장님이 그런 그 여자에게 봉투를 내밀었다. "이게 뭐예요?" 그 여자는 받을 생각도 않고 물어본다. "잘 다녀오라고 주는 서비스." 그 여자는 다시 웃는다."안 주셔도 돼요. 요번 월급 보니까 조금 올려주셨던데..." 사장님은 받으라는 듯 그 여자의 손에 쥐어준다."이건 월급 하고 별개니까 받아둬. 여행 잘 다녀오고 아프지 말고 갔다 딴데로 가지 말고 여기 다시 돌아오라고 뇌물 쓰는 거니까." 그 여자는 어찌 할 바를 몰랐다. "감사합니다."  자신의 빈 자리를 잠시나마 채울 알바생을 어렵게 구했다는 사장님의 사정을 알고 있기에, 말보다 더 깊이 울리는 감사의 말이었다.  

 "짜이, 짜이~!"  이어폰을 꽂고 있던 그 남자의 귀에도 울리는 소리였다. 잠에서 깬 그 남자는 아래를 내려다 보았다.같은 칸의 한 가족이  짜이 팔라(인도의 차 상인)에게서 차를 사 마시고 있었다. 라자스탄을 떠나 기차를 달린지 3시간, 이제 조금 더 가면 중간 목적지인 델리에 도착할 것이다. 그 남자는 자신의 모든 짐을 꾸리고 천정 칸에서 내려왔다. 가족 중 아버지인 듯한 사람이 그 남자에게 차를 권했다. 그런 그에게 미안했지만 사양했다. 기차내의 음식을 잘못 먹으면 큰 탈이 난다는 것을 알고 있던 그였다. 사서 들고 왔던 물을 마시자, 그를 호기심 어린 눈으로 쳐다보는 아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 남자는 피부가 하얀 편은 아니었다. 더구나 군을 제대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여행길에 나섰으니 그 때 그을은 피부가 예전만큼도 돌아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보다는 확연한 피부색에 아이들은 이 동양인 사내가 그저 신기했을 것이다. 그 남자는 그들의 눈총에 어떻게 반응할지 몰라, 씩 웃어버렸다. 그러자 아이들은 소리를 내고 웃었다. 일순간 긴장이 풀어지는 기분이었다. "이름이 뭐예요?" 강한 남부 인디언 억양의 영어였다. 그 남자는 처음에는 듣지 못하고 재차 물어야 자기에게 무엇을 물었는지를 알 수 있었다. 그 남자가 자기 이름을 말하고 아이들의 이름을 물었다. 라제쉬, 수자타, 데보라주... 인도식 이름은 듣든지 부르든지 그들의 독특한 커리향이 난다고 생각했다. "몇 살이에요?" 아이가 순진하게 묻자 "23살"이라고 말한다. 물론 한국 나이다. "그렇게 안 보이는데..." 아이의 아버지가 놀란 눈치다. 그 남자는 이번에는 세번째 의례적인 질문이 날아올 것이라는 걸 안다. "결혼 하셨어요?" 그 말에 그남자는 또 씩 웃어버린다. "아니" "왜요?"  아이는 순진하게 물어본다. "글쎄.... " "좋아하는 사람이 없나요?" 아이가 또 묻자 이번에도 그 남자는 씩 웃어버린다. "응....아직... 찾고 있어..." 그 말에 아이는 또 물어본다."찾았나요?" 아이가 너무 물어대자 아이의 아버지가 그들의 언어로 뭐라고 나무란다. 그 남자는 아이가 자신 때문에 곤란하지 말았으면 한다. "괜찮아요..." 그 남자는 아이를 보고 진심을 다해서 말한다. "아직 찾지 못했어. 그래서 타지마할에 가서 소원을 빌어볼 셈이야. 좋은 사람을 만나게 해 달라고..."  아이와 가족들은 그 남자에게 꼭 그 소원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덕담을 한다. 그 남자의 가슴 한켠이 따뜻해 오고, 그 남자는 일순 행복해진다.  반대편 좌석에서 열어놓은 창문으로 커리 냄새 듬뿍 베인 바람이 불어왔다. 정거장이 얼마 남지 않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그 여자는 어지러운 꿈을 꾸고 눈을 뜬다. 일전에 지난 여름에 다녀왔던 러시아의 먼지 속을 뚫고 버스 한 대가 지나가고 있었는데 모두 꽃단장에 한복 차림이었다. 그들 모두가 자신이 아는 사람들-특히 어머니와 오빠-임에 그 여자는 놀라고 있었고, 버스에 오른 그들은 자기들끼리 그저 웃으며 경사를 치르러 간다고 했다. 거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여자는 어머니가 옆의 고모에게 하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 잘 됐지 뭐야, 좋은 남자를 벌써 만나다니...' 

 내용은 대충 이런 것이었다.  

 '엄마....' 

 그러나 버스는 서서히 그 여자 곁을 지나쳐갔고 버스에 앉은 그 누구도 그 여자를 보지 못했다.  

 '엄마....' 

 그 여자는 버스를 따라 가려다 높게 이는 먼지 바람에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그리고 그 여자가 천천히 눈을 떴을 때 버스가 지나갔던 바로 그 자리에 한 사람이 서 있는 것을 보았다. 잘 보이지는 않았다. 늘....꿈이 그러듯이.... 그 여자는 눈을 깜박거렸지만 여전히 앞은 뿌옇게 보였고 그 사람은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서 있었다. 그렇게 서있는 그 사람의 존재 만으로 그 여자는 문득 그리운 무엇인가가 가슴 속에서 밀어 올라오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눈을 오래 깜박여서 였는지 아니면 아까 맞은 버스의 흙먼지 때문이었는지 눈물이 맺혔다. 그리고 그렇게 잠에서 깼다. 그 여자는 눈에 들어오는 천정을 그저 보고 있었다. 송우현을 만나고 이틀이 지났다. 그 여자에게 송우현은 특별한 사람이 아니었기에 늘상 돌아가던 일상에는 변화가 없었고, 앞으로 이틀 후 밤에는  그렇게 벼르던 여행을 가는 날이기도 했다.그 어떤 것도 그 여자에게 스트레스를 줄 만한 일이 없었는데 왜 이런 꿈을 꾸었을까 그 여자는 중얼거렸다. 시계는 10분전 한 시를 가리키고 있었고 늘상 그랬던 것처럼 그 여자는 10분 후 한 시에 알람이 울릴 것을 알고 있었다. 그 여자는 알람이 울릴 때까지 십분을 더 누워있을까 하다가 그냥 일어나버렸다. 어지러운 꿈을 꾼 이상 더 풀어지거나 헤이해지는 것을 스스로 용납하지 말자 다짐했던 그녀였다.  

"일어났니?" 

 전화기를 타고 어머니의 목소리가 넘어온다.  

 "엄마, 어디야? 집에 들렀다 간 거야? " 

 그 여자가 묻자 그녀는 아니라고 대답한다.  

 "오늘 고객하고 약속 있어서 지금 식당 가는 길이야. 이번에 새로 태어나는 손주가 있다는데 엄마한테 그 아이 보험하나 계약하시겠다시면서.그러니 엄마가 건수 올리는 대신 맛있는 거 사드려야지." 

 그 여자는 어머니의 목소리에는 박카스처럼 자던 사람도 정신 차리게 할 만한 힘이 있다고 재차 느꼈다.  

"그래... 알았어요. 그럼 엄마 얼굴 못보고 출근하네. 나중에 뵈요 그럼." 

"그래, 엄마가 우리 딸 얼굴 보고 싶으면 가게로 갈께 엄마 커피 한 잔 사주라." 

"그래요, 일 잘 보고 오세요."  

 한 시 반. 그녀가 먹으려고 내놓은 밥과 국이 조금은 식어보이는 듯 했다. 그러나 그 여자는 불현듯 밥 상 위의 것을 통해 어머니의 존재를 깨닫는 듯 했다.어린 아이들의 글짓기 주제로 흔하지만 딱히 꼬집어서도 표현 안되는 그런 감정이나 마음 상태를 '사랑'이라고 그냥 정의해버리는 것처럼.... 

 

그 남자는, 아메다바드 버스 정류장에서 외국인 일행과는 목적지가 다른 표를 끊었다. 그는 이제 아그라의 타지마할을 보러 가야했고 외국인 일행은 남부의 뱅갈로로 일정이 잡혀있었다.  

 "너도 같이 가면 좋을텐데... " 

존이 아쉽고 서운하다는 듯 말끝을 흐렸다. 어디에서나 말을 토막내지 않던 그가 그 남자와의 헤어짐이 정말로 아쉬웠던 것 같다.  

 "미안해. 난 그곳은 별 흥미 없거든.잘 알지도 못하고...타지마할은 이번에 못 가면 언제고 내가 갈 수 있을 거란 보장이 없고 해서..." 

 그 남자의 표정도 그리 밝지 않아서인지 존은 나직히 웃었다.  

 "미안해 할 필요 없어. 왜 그렇게 주눅들어서 그래? 괜찮아. " 

그 남자는 어깨를 한 번 으쓱 거렸다.  

"그럼 여기서 헤어지자구. 우리 연락처랑 메일 주소 갖고 있지? " 

그 말에 그 남자는 자신의  앞 가슴을 두 번 툭툭 쳤다. 옆의 다른 이들도 그 모습에 웃으며 자신들의 주머니 속의 그 남자의 연락처를 기억하겠다고 말한다. 한 사람 한사람과의 포옹으로 아쉬운 작별 인사를 마감하고 마지막으로 존과 안았을때 존이 나직히 속삭였다.  

 "너의 인연이 꼭 있을거야. 아프지 않고 힘들지 않아도 그저 행복하게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그 남자는 존의 손을 한 번 굳게 잡고 그들의 가는 모습을 지켜본다.  한낮이었고 땅은 메말라 있어서 사람들이 그 땅을 밟을 때마다 먼지가 일었다. 그렇게 그들은 자신들의 길로 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미안해요. 놀라게 해서..." 

 이미 문자로 받은 말이다.  

"그리고 당신을 좋아한다는 건 진심이었어요." 

 그 역시 문자로 받았다. 이 사람은 문자로 쓴 말을 되풀이 함으로 아까운 나의 시간을 좀먹고 있다. 그러나 그 여자가 놀란 것은 자신이 이토록 아닌 것에 대해 냉정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이해가 되지 않는군요. 제 어디가 마음에 안 드는 건지..." 

 그 여자가 그의 얼굴을 보자 송우현은 멋적은 듯 웃었다.  

 "그거 알아요? 전 학교에서 나름 킹카 축에 속한답니다. " 

 그 여자는 한숨이 나오려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지금까지 만난 모든 여자들과 만난 첫날 키스했구요. " 

 그 여자는 잠시나마 그에게 호감을 느꼈던 자신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 지 몰랐다.  

 "차는 건 제 쪽이었지, 여자 쪽이 아니었거든요. " 

지금 송우현이라는 이 남자는 자신의 전적을 자랑하러 온 것일까 아니면 그런 그를 거절한 자신을 책망하러 온 것일까? 

 "누구한테 차인 거, 당신이 처음 입니다. " 

 송우현의 눈이 빛났다.  

 "그래서....당신을 더 놓치고 싶지 않습니다. " 

 그 여자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당신의 매력, 가까이 보고 싶네요. 저랑...정식으로 사귀어 보실래요?" 

 그 여자는 그제서야 긴 한 숨을 내쉬었다. 이 남자가 자신의 시간을 전부 써가면서 한다는 말은 다시 그 집착의 언어이다.  

 "아니요....." 

 그 여자는 단호하게 말했다.

 "우현씨....당신은 당신 말처럼 괜찮은 사람이에요. 그러니까 좋은 사람 만나세요. " 

 그 여자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가게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그를 등진 자신의 모습이 한심해 보였다.   

 한 낮의 열기가 식은 사막의 밤이 차가워질 즈음, 다른 사람들은 모두 잠자리에 들어갔다. 땡볕에 이동하고 움직인 터라 몹시 피곤했을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남자는 담요 한 장을 의지하고 밖으로 나왔다. 사막의 하늘에 뜬 별들을 카메라에 담고 싶은 욕심이었으나 애석하게도 달이 환하게 밝은 그 즈음 하늘에는 별 대신 얼마 안되는 구름이 떠다니고 있었다. 자신이 너무 감상적이었나 싶어 그 남자는 피식 헛웃음을 웃었다. 그러나 사막의 밤 하늘, 별이 아닌 달이 뜬 밤도 그닥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아직 안 자고 있었어?" 

 짐이었다.  

 "그러는 너는?" 

 그 남자는 이 짐이라는 남자가 마음에 들었다. 이 밤에 그와 있게 된 것도 말할 수 없는 반가움이었다.  

 "잘 거야. 조금 있다가.... 내 코고는 소리에 모두 날 샐까봐 다들 잔 다음에나 들어가 자려구." 

 그 남자가 웃자 짐도 따라 웃었다. 둘은 그렇게 말없이 밤 하늘을 보았다.  

 "달을 보면 무슨 생각이 떠오르지?" 

 뜬금없는 짐의 물음에 그 남자는 생각에 잠겼다.  

 "난 달을 보면서 내 여자친구를 생각하기로 했어." 

 "여자 친구가 있었어?" 

 짐이 그 남자를 지긋이 보았다.  

 "응...있었지...너 처럼 한국인...." 

 "정말?지금 어디 있는데? 미국에?" 

 짐은 잠시 달을 올려다 본다.  

 "죽었어...." 

 "뭐?" 

 그 남자가 놀라자 짐은 손을 흔든다.  

 "이미 3년도 더 된 일이야." 

짐은 지갑을 꺼내더니 사진 한장을 꺼내보인다.  

 "누구야?" 

 짐의 얼굴에 쓸쓸함이 깃든다.  

 "내 아들, 제임스..."   

 머리조차 노란 짐과는 달리 사진 속의 아이는 검은 머리에 갈색 눈동자를 하고 있다.  

 "그럼 이 아이가..." 

 또다시 짐의 얼굴에 쓸쓸함이 깃든다.  

 "그녀는.....이 아이를 낳고 죽었어...." 

 그 남자는, 심한 입덧이라 생각한 여자친구가 결국 8개월이 채 되지 않은 아이를 수술로 낳은 뒤, 위암 말기라는 절망적인 사실을 알았다고 했다. 이미 손을 쓸 수 없을만큼 힘들었던 그녀의 병은 인큐베이터의 아들조차 신경쓸수 없을 만큼 그를 슬프게 했었다. 그러나 수술 후 이틀을 자고 깬 그녀는 짐을 안심시켰다. 외려 그녀의 빈 자리를 사랑으로 낳은 아들이 채울 수 있으니 다행이라며 그를 위로했다. 크리스천인 그녀는 그를 위해 기도하는 날이 많아졌고, 기운 없고 힘들 때라도 아기를 매일 보러 갔으며, 인큐베이터에서 아기가 회복되어 나온 날에는 손수 젖병을 들어 우유를 먹이기도 했다. 모유를 못먹이는 아쉬움을 달래면서...아기가 50일 쯤 되고 함께 가족 사진을 찍기로 한 날, 짐은 자는 듯 죽어있는 그녀를 발견하고 오열했다. 그렇게 그와 그녀의 사랑은 끝이 났었다.  

 "나는 라자스탄 사막에 매 해 오지. 처음에는 혼자 였다가 일행이 생기길래 같이 오는 것이고..." 

 짐은 아이의 사진을 쓰다듬었다.  

 "왜?" 

"왜냐하면, 지금의 너처럼, 여행중에 혼자 다니는 한국인이 있었는데, 그게  그녀였거든.  "  

 짐은 두 친구와 인도 여행을 온 후, 소개받은 가이드와 같이 오는 한국인 여자와 일행이 되었는데, 그게 그 둘의 인연이 됬었다.   

 "그녀를 기리기 위해 난 여기에 오는 거야. " 

그 남자는 짐의 사연에 할 말이 없었다. 이 멋있는 남자가 그런 고통의 시간을 보냈을 줄 그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이 봐. 내가 왜 이런 이야기를 너에게 하는 줄 알아?" 

 짐이 담요를 단단히 움켜쥐며 그 남자를 보았다.  

 "이 사막에 너만의 파티마를 만날 거란 너의 허황된 꿈, 그만 잊어버리도록 해." 

 "왜지?" 

 "만남이 극적이면, 그 끝도 그럴 수 있으니까. 나처럼..." 

 그 남자는 할 말을 잃어버린다.  

 "그냥...평범한 사랑이 나을 수 있어....오다 가다 만난 인연과 결혼해서 아이들을 낳고...그렇게 서로 살아가면서 늙어가는 거야...그게...덜 로맨틱하더라도... 외롭지 않을 테니까..." 

짐은 아이의 사진에 오래 입을 맞추고 텐트로 들어가버렸다. 그 남자는 그렇게 오래 앉아있으면서 하염없이 달을 보았다. 슬며시 부는 바람에 모래가 피부를 때렸다. 달도 별도 없던 습한 밤, 나뭇가지 소리가 스산한 그 밤의 적막함을 온 몸으로 받으며 혼자 보초를 서던 군대의 어느 날이 떠올랐다. 다른 사병들은 헛것이 보인다던 그 때, 그를 휘감았던 것은 진한 외로움이었다. 그 외로움이 짐의 것과 겹쳐 그를 감싼 것 같았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ftd montreal 2010-07-30 06: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재밌네여

간서치 2010-07-30 08: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ed 2011-08-22 1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다음화 없나요? 너무 재미있어요

간서치 2011-09-19 01:00   좋아요 0 | URL
댓글 주신 것 인제 봤습니다. 감사합니다. 읽어주시는 분이 있다는 걸 알고 며칠동안 열심히 썼습니다. ^^*
 

"무슨 말인지 모르겠냐구요..." 

 그 여자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지 몰랐다. 그러니까 지금... 이 당돌한 남자가 나에게 고백을 하고 있는 것이다. 책에서 읽어왔던 설렘이나 기대를 준비하지 못하고 느껴볼 새도 없이 그런 모든 과정과 절차를 다 까먹고 이 송우현이라는 낮도깨비같은 남자가 나에게 고백을 하고 있다. 그 여자는 더더욱 표정이 굳어갔다.  

 "당신을 많이 좋아합니다....." 

 송우현의 눈이 그 여자에게는 부담스럽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서 있는 곳은 길 한 가운데가 아닌가! 배달 오토바이가 그들을 피해 쌩하고 달려갔다. 그 여자의 시선이 흐트러진 순간, 여자는 송우현의 입술이 그녀의 입술에 닿는 것을 느꼈다. 그 여자는 온 몸이 차갑게 얼어붙는 것 같았다. 송우현을 밀치며 그 여자는 한 발짝 뒤로 물러났다.  

 "난 안 좋아해요. " 

 그의 시선을 외면하면서 그 여자는 빠르게 말했다.  

 "우현씨하고 밥 한번 먹은 거 오늘 만난 거, 그게 다예요. 우리는 그런 사이일 뿐이에요." 

 그 여자는 그 곳을 피하고만 싶었다. 만난 지 만 하루도 안 된 사이에 남의 입술을 멋대로 훔치다니, 이 무슨 무례한 경우인가! 그러나 걸음을 떼는 그녀를 송우현이 가로막는다.  

 "내가 싫은가요?" 

그 여자는 너무 피곤하고 놀라서 가슴이 터질 것 같아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자신을 부여잡았다.  

 "아니요, 싫고 말고가 없어요. 난 우현씨를 몰라요. 잘 알지도 못하는데 싫고 좋고가 어디 있겠어요? 단지 우현씨가 생각하는 만큼 난 우현씨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말이에요. " 

 송우현의 얼굴에 놀란 빛이 돌았다. 무얼까? 그의 당혹스런 얼굴은? 그는 다른 여자에게도 나와 같은 말을 들어본 적이 있을까? 

 "내가.....키스해서 놀란 건가요?" 

 이 무슨 바보같은 말인지... 

 "네. 그렇기도 해요." 

 그 여자는 숨길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송우현의 조그만 행동이라도 모두 털어내고 싶었다.  

 "다음부터는 그런 거 할 때.... 조금 더 신중해서 하세요. 잘 알지도 모르는 사람, 좋아하는지 확신도 못하는 사람에게 갑자기 이런 일 겪는 거 별로거든요. " 

 그 여자는 송우현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리고 저는 아직 할 일이 많아서 누굴 사귀고 할 여유는 없어요. 제 말 뜻 알아 들으시겠죠?" 

 송우현은 말이 없었다.  

그랬는데 이 남자가 계속 전화를 하고 있다. 미안하다는 말, 다시 생각해보라는 말,진지하게 만나고 싶다는 말을 담은 문자를 스무 차례나 받은 뒤였다. 그 여자는 송우현의 집요함에 이미 그동안 가졌던 호감마저 떨어진 상태였다. 아니, 그녀의 진심어린 말을 못 알아들은 그의 행동이 이상하게 느껴지기조차 했다.  

 

그 남자는 아까부터 짜증이 나려는 것을 꾹꾹 눌러 참고 있었다. 30분 전부터 불을 지피려고 노력을 했었지만 생각만큼 되지 않은 탓이다. 다른 텐트의 사람들은 어느 새 모닥불을 피워서 가지고 온 소시지로 바베큐를 준비하고 있었다. 도데체 저들은 소시지를 어떻게 공수해 온 것인지... 

"잘 돼고 있어?" 

 중국인 찬이 와서 물었다. 손에는 두 어개의 소시지가 들려있다.  

 "잘 안돼." 

 그 남자가 어깨를 으쓱하자 찬이 웃었다.  

 "네 얼굴을 보니 알 만하다." 

 "무슨 소리야?" 

 그 남자의 되물음에 찬은 배를 잡고 웃다가 손에 든 소시지를 떨어뜨릴 뻔 했다. 

"얼굴에 검댕이가 장난 아니야. " 

 그 남자는 손으로 얼굴을 문대본다. 찬의 말이 농담이 아님을 안다. 순간 또 한번 짜증이 확 치밀었지만 외려 미소짓는다.  

 "이리 나와. 내가 해 볼께." 

 어느 새 짐이 와서 그 남자의 손에서 라이터를 받아든다.  짐은 거의 혼자 힘으로 그와 다른 남자들이 함께 묵을 텐트를 세우다시피 했다.

 "어릴 때 난 보이 스카웃에 있었는데, 캠핑 때는 꼭 부싯돌과 마른 나뭇잎을 가지고 불을 지피곤 했어. " 

 "정말? 나도 보이 스카웃이었는데..." 

 짐이 그 남자의 얼굴을 본다.  

 "그래? 그런데 왜 불을 지피는 데 애를 먹지?" 

 짐의 말에 그 남자는 뭐라 할 말이 없다.  

 "난 보이 스카웃에서도 이런 건 해본 적이 없어. 늘 같이 갔던 선생님이 했었지." 

 짐은 조용히 웃다가 불을 지피고는 곧 모닥불을 만들어낸다.  

"소세지를 여기까지 공수해 오느라 무척 애를 먹었어. 매번 호텔에 들를 때마다 냉장고를 빌렸다구. 이 날을 위해! 맛있게 먹으라구." 

 짐은 다른 텐트를 향해 걸어갔다. 찬은 소시지에 나무 꼬챙이를 꽂고 불에 굽기 시작했다. 다른 편에서 스코티쉬 남자가 걸어왔다. 그 남자는 찬이 건네주는 소시지를 받았으나 눈으로는 짐을 찾았다. 이 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짐의 영향력 안에 있을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찾은 듯 했고, 그 역시 그의 리더쉽에 동화되고 있었다.  

창 밖을 보던 그 여자는 정지된 듯 서 있었다. 송우현이 밖에서 그녀를 보고 있었다. 그가 그녀를 보면서 가게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행동이 슬로우모션 같았다.  

 "얘기 좀 해요. " 

 그 여자는 또다시 벙어리가 된 듯 말이 없었다.  

 "잠깐이면 되요." 

 손님도 많이 찾아오지 않는 시간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예상대로 사막은 만만한 곳이 아니었다. 그 남자는 몇 번이나 낙타 등에서 쓰러질 것 같은 자신을 곶추세웠다. 처음으로 탄 낙타의 승차감(?)이 기분 좋았던 건 잠깐이었다. 이미 한 시간여를 탄 후라 엉덩이가 배겼고 천으로 감싼 정수리는 햇볕으로 인해 현기증이 났다.  

 "얼마나 더 가야 하지요?" 

 그 남자가 앞서 가던 가이드에게 물었다. 

 "조금만 더 가면 됩니다.조금만 더요...." 

가이드는 누구한테나 조금만 더 가면 된다고 대답했다. 그들의 조금만 더의 개념은 무엇일까? 그 남자는 가이드에게 더이상의 상세한 정보를 얻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능선을 이루는 사막을 보았다. 사실 라자스탄의 사막은 사막이라 할 수 없는 곳이다. 모래가 많이 쌓인 곳이 아니라 그저 황량한 곳일 뿐이었던 것이다. 멀리서 특이한 복장에 코부터 귀까지 뱅글을 잔뜩 달은 여인들이 손도 대지 않은 채 물동이를 머리에 이고 지나가는 것을 보는 것도 심심찮은 일이었다. 사실, 인도인들이 게으르고 가난하다는 것들에 그 남자는 내심 반대하고 있었다. 땅이 척박하고 환경이 더 고약할수록 그곳에 사는 사람들과 아이들은 한 번도 자신에게 손을 벌린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심지어 자그마한 아이마저 자신의 동생인 듯한 더 작은 아이들을 돌보고 있었다. 사람 사는 곳 어느 곳이나 사람이 살 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헤이,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는 거야?" 

 어느 새 짐이 옆에 와 있었다. 짐은 낙타를 곧잘 몰았다. 그는 낙타나 사람이나 좋은 친구가 되면 잘 다스릴 수 있다고 말했었다.  

 "아니, 아무것도...그냥...여러 생각들을 해봤었어..." 

 "그래? 뭐, 괜찮은 생각이라도 한 거야?" 

 "그런 건 아니구....." 

 "그럼 낙타에서 떨어지지 않게 조심하라고. 너는 너무 현자 같은 모습을 하고 있으니까 말이야." 

 짐이 웃자 그 남자도 그냥 웃었다. 어떻게 들으면 기분 나쁜 말이지만 짐의 말 속에  숨은 뜻이 그다지 나쁜 것이 아님을 눈치 챈 탓이다.  

 

 그 여자는 조용히 울리는 휴대폰을 하염없이 보았다. 5통 째였다. 송우현 그 남자. 성격도 급하고 솔직한 데다 집요하기 까지 하다. 그 여자는 오늘 아침, 송우현에게서 걸려온 전화를 받고 편의점에서 만나, 그 여자의 집까지 함께 동행했었다. 

 "...이제 집에 가면 뭐하세요?" 

피곤에 지친 그 여자는 사실 말이 별로 없다. 송우현은 이 얘기 저 얘기를 늘어놓고 있는 중이었다.  

 "가서 씻고 자야지요, 저녁에 또 일하려면..." 

 "아...그럼, 이따 저녁 때 우리 만날래요?" 

 "네? 왜요?" 

 송우현이 그 여자의 얼굴을 본다.  

 "우리 사귀는 거 아니었어요?" 

 그 여자의 표정이 굳는다. 그는 도무지 모를 말을 하는 것 같다.  

 "글쎄요...." 

 그 여자가 말을 못하자 송우현의 표정도 조금씩 굳어간다.  

 "전화번호 받고 밥 한번 먹고 아침에 일찍 당신 마중 나온 거 보면 모르겠어요?" 

 ".........." 

두 사람은 걷던 걸 멈추고 서로 마주 본다.  

"이런 말 이상하게 들릴 지 모르지만....당신은 내가 만난 여자들 중 가장 독특한 사람이에요.그리고 난 그런 당신이 좋아요. 헤어나올 수 없을 만큼...." 

그 여자는 다시금 자기가 무엇을 들었는지 확신 할 수 없다. 송우현이라는 이 남자는 아까부터 도무지 모를 말을 하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