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자는 어지러운 꿈을 꾸고 눈을 뜬다. 일전에 지난 여름에 다녀왔던 러시아의 먼지 속을 뚫고 버스 한 대가 지나가고 있었는데 모두 꽃단장에 한복 차림이었다. 그들 모두가 자신이 아는 사람들-특히 어머니와 오빠-임에 그 여자는 놀라고 있었고, 버스에 오른 그들은 자기들끼리 그저 웃으며 경사를 치르러 간다고 했다. 거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여자는 어머니가 옆의 고모에게 하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 잘 됐지 뭐야, 좋은 남자를 벌써 만나다니...' 

 내용은 대충 이런 것이었다.  

 '엄마....' 

 그러나 버스는 서서히 그 여자 곁을 지나쳐갔고 버스에 앉은 그 누구도 그 여자를 보지 못했다.  

 '엄마....' 

 그 여자는 버스를 따라 가려다 높게 이는 먼지 바람에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그리고 그 여자가 천천히 눈을 떴을 때 버스가 지나갔던 바로 그 자리에 한 사람이 서 있는 것을 보았다. 잘 보이지는 않았다. 늘....꿈이 그러듯이.... 그 여자는 눈을 깜박거렸지만 여전히 앞은 뿌옇게 보였고 그 사람은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서 있었다. 그렇게 서있는 그 사람의 존재 만으로 그 여자는 문득 그리운 무엇인가가 가슴 속에서 밀어 올라오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눈을 오래 깜박여서 였는지 아니면 아까 맞은 버스의 흙먼지 때문이었는지 눈물이 맺혔다. 그리고 그렇게 잠에서 깼다. 그 여자는 눈에 들어오는 천정을 그저 보고 있었다. 송우현을 만나고 이틀이 지났다. 그 여자에게 송우현은 특별한 사람이 아니었기에 늘상 돌아가던 일상에는 변화가 없었고, 앞으로 이틀 후 밤에는  그렇게 벼르던 여행을 가는 날이기도 했다.그 어떤 것도 그 여자에게 스트레스를 줄 만한 일이 없었는데 왜 이런 꿈을 꾸었을까 그 여자는 중얼거렸다. 시계는 10분전 한 시를 가리키고 있었고 늘상 그랬던 것처럼 그 여자는 10분 후 한 시에 알람이 울릴 것을 알고 있었다. 그 여자는 알람이 울릴 때까지 십분을 더 누워있을까 하다가 그냥 일어나버렸다. 어지러운 꿈을 꾼 이상 더 풀어지거나 헤이해지는 것을 스스로 용납하지 말자 다짐했던 그녀였다.  

"일어났니?" 

 전화기를 타고 어머니의 목소리가 넘어온다.  

 "엄마, 어디야? 집에 들렀다 간 거야? " 

 그 여자가 묻자 그녀는 아니라고 대답한다.  

 "오늘 고객하고 약속 있어서 지금 식당 가는 길이야. 이번에 새로 태어나는 손주가 있다는데 엄마한테 그 아이 보험하나 계약하시겠다시면서.그러니 엄마가 건수 올리는 대신 맛있는 거 사드려야지." 

 그 여자는 어머니의 목소리에는 박카스처럼 자던 사람도 정신 차리게 할 만한 힘이 있다고 재차 느꼈다.  

"그래... 알았어요. 그럼 엄마 얼굴 못보고 출근하네. 나중에 뵈요 그럼." 

"그래, 엄마가 우리 딸 얼굴 보고 싶으면 가게로 갈께 엄마 커피 한 잔 사주라." 

"그래요, 일 잘 보고 오세요."  

 한 시 반. 그녀가 먹으려고 내놓은 밥과 국이 조금은 식어보이는 듯 했다. 그러나 그 여자는 불현듯 밥 상 위의 것을 통해 어머니의 존재를 깨닫는 듯 했다.어린 아이들의 글짓기 주제로 흔하지만 딱히 꼬집어서도 표현 안되는 그런 감정이나 마음 상태를 '사랑'이라고 그냥 정의해버리는 것처럼.... 

 

그 남자는, 아메다바드 버스 정류장에서 외국인 일행과는 목적지가 다른 표를 끊었다. 그는 이제 아그라의 타지마할을 보러 가야했고 외국인 일행은 남부의 뱅갈로로 일정이 잡혀있었다.  

 "너도 같이 가면 좋을텐데... " 

존이 아쉽고 서운하다는 듯 말끝을 흐렸다. 어디에서나 말을 토막내지 않던 그가 그 남자와의 헤어짐이 정말로 아쉬웠던 것 같다.  

 "미안해. 난 그곳은 별 흥미 없거든.잘 알지도 못하고...타지마할은 이번에 못 가면 언제고 내가 갈 수 있을 거란 보장이 없고 해서..." 

 그 남자의 표정도 그리 밝지 않아서인지 존은 나직히 웃었다.  

 "미안해 할 필요 없어. 왜 그렇게 주눅들어서 그래? 괜찮아. " 

그 남자는 어깨를 한 번 으쓱 거렸다.  

"그럼 여기서 헤어지자구. 우리 연락처랑 메일 주소 갖고 있지? " 

그 말에 그 남자는 자신의  앞 가슴을 두 번 툭툭 쳤다. 옆의 다른 이들도 그 모습에 웃으며 자신들의 주머니 속의 그 남자의 연락처를 기억하겠다고 말한다. 한 사람 한사람과의 포옹으로 아쉬운 작별 인사를 마감하고 마지막으로 존과 안았을때 존이 나직히 속삭였다.  

 "너의 인연이 꼭 있을거야. 아프지 않고 힘들지 않아도 그저 행복하게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그 남자는 존의 손을 한 번 굳게 잡고 그들의 가는 모습을 지켜본다.  한낮이었고 땅은 메말라 있어서 사람들이 그 땅을 밟을 때마다 먼지가 일었다. 그렇게 그들은 자신들의 길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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