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한창 하고 있는 발리에서 생긴 일이라는 드라마에...

오현란씨가 부른 노래가 나오는데..

제목은 remember이구 굉장히 좋아요.

다른 노래도 3곡 정도 더 있는데..

넘 좋아서 계속 듣고 있어요.내용은 이별에 대한 것이지만..

멜로디 정말 좋아요.

들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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맘에 드는 걸로 골라 가지고 맘에 안드는건 알아서 지워^^

늦게 줘서 미안~

둘이 다정하기도 하지~* ㅋㅋㅋ

I'm not good at taking pic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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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처가 아물고 난 다음에 받은 약은 상처를 치료하는 데 사용하기에는 너무 늦고, 도리어 그 아프던 기억을 상기시키는 역할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것은 단지 시기가 엇갈려 일어난 실패의 사소한 예에 불과하지만, 남을 돕고 도움을 받는 일이 경우에 따라서는 도움이 되기는커녕 더 큰 것을 해치는 일이 됩니다.


  함께 징역을 살아가는 사람 중에는 접견도, 서신도, 영치금도 없이 받은징역을 춥게 살면서도 비누 한 장, 칫솔 한 개라도 남의 신세를 지지 않으려는 고집 센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모르는 사람들은 이러한 사람들을 두고 남의 호의를 받아들일 줄 모르는 좁은 속을 핀잔하기도 하고, 가난이 만들어 놓은 비뚤어진 심사를 불쌍하게 여기기도 하고, 단 한 개의 창문도 열지 않는 어두운 마음을 비난하기도 합니다.


  남의 호의를 거부하는 고집이 과연 좁고 비뚤고 어두운 마음의 소치인가. 우리는 공정한 논의를 위하여 카메라를 반대편, 즉 베푸는 자의 얼굴에도 초점을 맞추어 조명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칫솔 한 개를 베푸는 마음도 그 내심을 들추어보면 실상 여러 가지의 동기가 그 속에 도사리고 있음을 우리는 겪어서 압니다. 이를테면 그 대가를 다른 것으로 거두어들이기 위한 상략적(商略的)인 동기가 있는가 하면, 비록 물질적인 형태의 보상을 목적으로 하지는 않으나 수혜자 측의 호의나 협조를 얻거나, 그의 비판이나 저항을 둔화시키거나, 극단적인 경우 그의 추종이나 굴종을 확보함으로써 자기의 신장(伸長)을 도모하는 정략적(政略的)인 동기도 있으며, 또 시혜자라는 정신적 우월감을 즐기는 향락적(享樂的)인 동기도 없지 않습니다. 이러한 동기에서 나오는 도움은 자선이라는 극히 선량한 명칭에도 불구하고 그 본질은 조금도 선량한 것이 못됩니다. 도움을 받는 쪽이 감수해야 하는 주체성의 침해와 정신적 저상(沮喪)이 그를 얼마나 병들게 하는가에 대하여 조금도 고려하지 않고 서둘러 자기의 볼일만 챙겨가는 처사는상대방을 한 사람의 인간적 주체로 보지 않고 자기의 환경이나 방편으로 삼는 비정한 위선입니다.


  이러한 것에 비하여 매우 순수한 것으로 알려진 `동정' 이라는 동기가 있습니다. 이것은 측은지심(惻隱之心)의 발로로서 고래(古來)의 미덕으로 간주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동정이란 것은 객관적으로는 문제의 핵심을 흐리게 하는 인정주의의 한계를 가지며 주관적으로는 상대방의 문제해결보다는 자기의 양심의 가책을 위무(慰撫)하려는 도피주의의 한계를 갖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동정은 동정받는 사람으로 하여금 동정하는 자의 시점에서 자신을 조감케 함으로써 탈기(脫氣)와 위축을 동시에 안겨줍니다. 이 점에서 동정은, 공감의 제일보라는 강변(强辯)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동감과는 뚜렷이 구별되는 값싼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여러 가지를 부단히 서로 주고받으며 살아가는 징역 속에서, 제게도 저의 호의가 거부당한 경험이 적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상대방의 비좁은 마음을 탓하기도 하였지만, 순수하지 못했던 나 자신의 저의를 뒤늦게 발견하고는 스스로 놀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사실, 남의 호의를 거부하는 고집에는 자기를 지키려는 주체성의 단단한 심지가 박혀 있습니다. 이것은 얼마간의 물질적 수혜에 비하여 자신의 처지를 개척해나가는 데 대개의 경우 훨씬 더 큰 힘이 되어줍니다.


  사람은 스스로를 도울 수 있을 뿐이며, 남을 돕는다는 것은 그 `스스로 도우는 일'을 도울 수 있음에 불과한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저는 "가르친다는 것은 다만 희망을 말하는 것이다"라는 아라공의 시구를 좋아합니다. 돕는다는 것은 우산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으며 함께 걸어가는 공감과 연대의 확인이라 생각됩니다.

- 신영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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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렉상드르 자르뎅의 <아내처럼 멋진 드라마는 없다> (까치, 1994)를 읽다

 

 

  사랑을 주제로 하는 대부분의 소설, 영화, 연극은 미지의 대상(소년, 소녀, 유부남, 유부녀)에 대한 눈멀음을 내용으로 한다. 다시 말해 "그것들은 모두 갑자기 눈앞에 나타난 여자를 정복하는 것으로 만족하고 있다." 하지만 상상도 하지 못할 튀는 행동을 자주 벌인 탓에 얼룩말이라는 별명을 가지게 된 이 소설의 주인공 가스파르 소바주는 아직 그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험난하기 그지 없는 사랑을 하기로 한다. " ... 그러나 결혼생활 15년 만에 자신의 아내를 재정복한다는 것은? 아무리 상상력이 풍부한 유혹의 천재라도 그런 모험은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얼룩말의 고민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셰익스피어, 스탕달, 그리고 그 외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가들도 재정복이라는 주제에 접근하기를 꺼렸다면, 그것은 불가능한 일임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은행의 소파에 앉아 가끔씩 들춰보는 여성지식으로 말하자면, 권태기 극복 정도나 될 얼룩말의 아내 재정복은 셰익스피어의 희극처럼 활기차고 우습다. 각 방 쓰기에서부터 익명인을 가장한 편지 쓰기, 가짜로 바람피우기, 자살소동 등등. 아내의 관심을 끌고 연애 시절의 정열을 복원하기 위한 남편의 노고는 그러나 카미유의 넌더리를 사고 끝내는 아내로부터 별거를 당하고 만다. 까닭은 고등학교 교사인 아내의 취미가 다름 아닌 "19세기 연애소설"을 읽는 일. 다시 말해 아내에게 사랑은 육체의 것이라기보다 영혼의 소유였던 것이다. 2년에 걸친 별거 끝에 얼룩말은 암에 걸려 시한부 삶을 살게 되고, 사랑이 영혼의 문제였던 만큼 아내는 육체가 쇠진해가는 남편에게로 돌아온다.

 

  아내를 재정복하기 위해 얼룩말에겐 죽음이 필요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소설은 비극이 아니다. 로미오와 줄리엣에겐 후일담이 없지만, 못 말리는 얼룩말은 "나는 나의 과부를 유혹"할 거라며 사후의 책략을 짠다. 즉 비극이 아니라 희극이라는 얘기. 소설의 말미에 작가는 아마추어 발명가이기도 했던 얼룩말의 아내 재정복이 어떤 종류의 보상심리라는 것을 말해 준다 : 얼룩말은 운명의 큰 줄기가 그려지고, 완성되거나 끊어지는 마흔다섯 살에 참혹한 실패감을 느꼈다. 그 나이에 "자신은 셰익스피어나, 베토벤이나, 간디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는 특별한 재주가 없는 것을 인정하고, 참담한 심정으로 서로 괴롭히기보다는 사랑을 가꾸어가는, 부부생활을 자신의 걸작으로 만들 계획을 세웠던 것이다. 부부가 이루어내는 화음, 영원한 교향곡, 로맨틱한 나날들. 모나리자를 그려 인류를 즐겁게 하는 대신에, 아내의 마음에 드는 인생에 근접하는 무형의 작품을 창작함으로써, 자신의 마음을 달래려 했던 것이다."

 

  얼룩말은 살아생전 예술가로서의 자기성취를 완벽히 달성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 소설의 끝은, 그의 우스꽝스러운 노력이 헛되지만은 않았다고 말해준다: "... 까미유는 그들 부부의 모험을 글로 써볼 결심을 했다. 그녀는 이렇게 가스파르의 무형의 작품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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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는 교사가 아이를 변화시킨다

                                                            이영미 ( 대구 경상여중 교사 )  
                                                             E-mail: rhea84@hanmail.net

    얼마 전 모 방송의 인터뷰에서 교사로서 아이들을 대할 때 가장 중심에 두는 것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믿음과 칭찬’이라고 했더니 “너무 교과서적인 것이 아니냐”는 아나운서의 반문을 받았다. 나는 참으로 작은 것에 가치를 두고 살아가는 사람인지라 남다른, 특별하게 내세울 만한 교육철학은 없다. 다만 그 아나운서의 말처럼 너무나 교과서적인, 그러나 정말 잃지 말아야 할 것은 아이들에 대한 ‘믿음’과 그 아이들을 ‘칭찬해 줄 수 있는 여유’가 아닐까 한다.


   믿음은 그렇다 치고 칭찬해 줄 수 있는 ‘여유’라니? 이렇게 반문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칭찬이란 아이가 가지고 있는 ‘칭찬 받을 거리’가 있어야 가능한 것이 아니라 아이를 바라보는 어른들의 넉넉하고 여유 있는 마음이 찾아낼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기에 학생들을 대하는 교사들의 시선과 마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런 ‘여유로움’이 아닐까 한다. 그 여유로움의 저변에는 아이들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한다. 많은 아이들이 내게 그런 여유와 믿음이 결코 헛되지 않다는 것을 확신시켜 주지만 그 중 다영이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


   몇 해 전 아이들의 저축을 거두어 관리하는 일을 하는 회계을 했었던 다영이. 나는 아이들에게 자신이 하고 싶어하는 일에 스스로 입후보하게 하고, 선거를 통해 학급 간부를 뽑는데, 다영이는 회계에 지원했고 아이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 회계 일을 맡게 되었다. 다영이는 자신을 지지해 달라는 연설 대신 인기 가수의 흉내를 냈고 아이들 대부분은 그 노래와 춤에 매혹되어 다영이에게 표를 준 것이리라.


   “그 아이에게 절대 돈은 맡기지 마세요. 어떤 사고를 칠지 몰라요. 아마 좋아라 하고 그 돈 들고 가출해 버릴 걸요. 1학년 때 가출에 싸움에 사고를 몇 번이나 쳤는지 몰라요.” 다영이가 저축을 담당하게 되었다는 말에 많은 선생님들이 걱정해 주시며 하신 말씀이다.


   “돈을 선생님께 맡길 필요 없어. 그 일은 전적으로 다영이의 일이야. 선생님의 일을 네가 대신 해주는 것도, 조금 도와주는 것도 아니야. 저축을 거두고 대장을 정리하고 그 돈을 몇 시간 보관하고 있다가 수납하는 일까지 모두 너의 일이야. 다른 반처럼 돈을 선생님 서랍에 보관해 준다던가 하는 일은 없을 거야. 선생님이 도와주지 않는다고 서운해 하지 않길 바래. 왜냐하면 그 일은 네 일이니까.” “그러다 잃어버리면요? 적은 돈이 아니에요. 칠십만 원이 넘어요.”


   “네가 책임져야지. 모든 일에는 책임이 따르는 거잖아. 그리고 회계 일은 네가 한다고 했고 아이들은 너를 믿었기 때문에 너를 선택한 거고.” “믿기는요. 다른 애들하고 다르게 춤추고 노래하고 하니까 재미 삼아 뽑아 준 거죠. 저 자신 없어요. 잃어버릴지 모르잖아요.”


   “왜 잃어버릴지 모른다는 생각만 해? 잘해낼 수도 있잖아. 다영이는 나중에 사업해서 돈을 많이 벌 거라며? 지금부터 돈 관리하는 거 배워 두면 좋잖아. 넌 아마 정말 돈을 잘 버는 사업가가 될 거야. 선거 때 선생님은 알아 봤지. 남이 하지 않는 방법을 생각해 내는 거, 다른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거, 모두 사업가로서의 자질이지. 하지만 가장 중요하고 꼭 갖추어야 할 것이 있다고 생각해. 바로 책임감과 믿음이지. 사업하는 사람에게는 무엇보다 중요하거든. 다영이는 그 두 가지도 갖추었다고 생각하지만 아직 선생님이 눈으로 확인해 볼 기회가 없었으니 장담은 못하겠구나. 친구들의 저축을 관리하면서 그것들을 보여준다면 좋겠어. 네게 맡겨진 일은 끝까지 네가 책임지는 거. 그러면서 네 꿈인 사업가로서의 능력도 키워가고 말이야.”


   나는 겁이 난다며 내미는 돈이 든 가방을 다영이 손에 쥐어 교실로 돌려보냈고, 정말 다영이는 1년 동안 내 입에서 ‘저축’이라는 단어가 나오지 않게 회계로서의 일을 잘해 냈다. 정보고등학교를 나와 올해 사회 초년생으로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다영이가 보내 온 편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선생님의 널 믿어, 라는 말. 정말 무섭던데요. 한 번도 그렇게 철저하게 저를 믿어 준 사람은 없었거든요. 가끔 그 돈 들고 나가 펑펑 쓰고 싶다는 생각했었어요. 하지만 그 믿음 깨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참을 수 있었고, 그 힘으로 지금까지 온 것 같아요. 저 보고 사업가가 될 자질이 보인다고 칭찬해 주셨던 거 기억하세요? 장래 희망 적는 곳에 사업가라고 적고 칭찬 받은 적은 그 때가 처음이었어요. 지금은 비록 옷가게 점원이지만 언젠가는 내 가게를 가진, 진짜 사업가가 될 거예요. 사업가가 되기 위해 공부 잘해야 사업가가 된다고, 인문계 고등학교 가고 대학 가야 한다고, 성적 올리라고 혼내지 않으셔서 고마웠습니다. 대신 성격이 시원해서 꼭 사업가가 될 수 있을 거라는 칭찬에 너무 기뻐서 울 뻔했던 거 아직도 생생해요. 손님들도 저보고 시원시원해서 장사하면 잘하겠다는 말 자주 한답니다.”



   ‘저축 관리를 잘한 다영이는 그 후 학교 생활도 잘 하고 공부도 열심히 해서 성적도 오르고…….’이런 글은 쓰지 못한다. 그건 사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영이는 그 후 성적이 별로 오르지도 않았고 가끔 학생과에 불려 가는 일도 있었고 내가 다영이에게 기대한 것도 그런 것이 아니었기에. 다만 그 일로 다영이가 얻은 ‘세상에 대한 믿음’, 그 하나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나를 넉넉한 마음으로 기다려줄 수 있는 교사로 살아갈 수 있게 해 준 다영이에게 고마울 따름이다


                                   한국교육개발원 발행(2003월 10월 3주)
  
                                   주간교육정책포럼의 글중에서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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