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민석의 조선왕조실록 - 대한민국이 선택한 역사 이야기
설민석 지음, 최준석 그림 / 세계사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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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에 출연한 후 더욱 인기가 높아진 학원 강사 설민석 씨는 현재 '태건에듀' 대표이사와 '이투스' 대표 강사를 맡고 있다. 역사에 관한 강의를 바로 어제의 일처럼 생생하게 옮겨 설명하는데 탁월하며, 핵심적인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재구성하여 수험생들에게는 물론 일반 대중에게도 끊임없는 찬사를 받고 있다. 그동안 집필한 책으로는 '설민석의 무도 한국사 특강', '전쟁의 신, 이순신', '역적의 아들, 정조', '국사대백과' 등이 있다.


# 책을 읽은 이유


우리나라 사람으로서 난 다른 이들보다 역사에 무지했다. 학창시절 역사에 관심이 없어 공부하지 않았을뿐더러, 평소에 책을 읽는다고 해도 역사와 관련된 내용을 거의 읽지 않았다. 나이를 하나둘 먹을수록 예전보다 역사에 관해 관심이 가게 됐고, 우연히 인터넷 서점을 통해 설민석 씨라는 역사 강사의 책이 인기가 많은 것을 알게 돼 구매해서 읽게 됐다. 유시민 씨의 '나의 한국 현대사'가 1959년부터 2004년까지 담고 있다면 설민석 씨의 '조선왕조실록'은 1392년부터 1910년까지 조선을 이끈 27명의 임금에 관한 내용을 담았다.


# 줄거리


'조선왕조실록'은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를 시작으로 정종→태종→세종→문종→단종→세조→예종→성종→연산군→중종→인종→명종→선조→광해군→인조→효종→현종→숙종→경종→영조→정조→순조→헌종→철종→고종→순종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왕들의 세자 시절과 함께 그들 옆에 있었던 여러 왕후들에 대한 이야기, 그 시대에 터진 다양한 사건에 대해서 설민석 씨가 상세히 알려준다. 책 중간중간에는 독자들이 궁금해할 내용을 초등학생들도 알기 쉬울 정도로 친절히 설명해준다.


# 느낀 점


설민석 씨의 '조선왕조실록'은 조선에 대한 이야기를 나열하며 그 당시 일어났던 다양한 사건을 설명해준다. 보통 이러한 역사책은 그동안 수없이 나왔지만 '조선왕조실록'이 현재까지도 베스트셀러로서 큰 인기가 있는 이유는 누구나 알기 쉽도록 친절하게 설명하기 때문이다. 503페이지에 일반 소설책보다 큼에도 재미있고 빠르게 읽을 수 있었던 이유는 그만큼 쉽게 이야기를 풀이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책을 읽기 전만 하더라도 난 조선의 왕에 대해 상세히 알지 못했었는데 불과 몇백년 전에 있었던 일들을 몇 일 전의 일인 것처럼 생생하게 이야기해주는 설민석 씨 덕분에 역사에 무지했던 내가 조금이나마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된 것에 감사함을 전하고 싶다.


# 기억하고 싶은 구절


정도전이 꿈꿨던 새로운 세상은 무엇이었을까요? 바로 신권 중심의 세상이었습니다. 정도전이 가장 두려워했던 것이 왕조체제에서 오는 폐단이었기 때문입니다. 왕조라는 것은 아버지에게 아들로 대를 잇기 때문에 성군이 나올 수도 있지만, 폭군이 나올 수도 있지요. 따라서 어떤 자질의 왕이 즉위할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으로 본 겁니다. 소위, 복불복이라는 거지요. 성군이 나오면 괜찮지만, 폭군이 나오면 나라가 망할 수 있었습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폭군이 나와도 나라가 망하지 않는 시스템, 메뉴얼을 만든 것이 정도전이지요 - 52


보통 나라를 세운 왕을 '태조'라 하고, 이에 버금가는 업적을 쌓은 왕을 '태종', 제도와 문물을 완성시킨 왕을 '성종'이라고 합니다. 즉, 태조를 세운 창업군주는 '조'를 쓸 수 있고, 이후의 왕들은 태조의 종통을 계승한 것이므로 '종'이라고 쓰는 게 원칙이에요. 하지만, 종통을 계승하지 않고 계승권 밖에 있던 자가 임금이 되면 입승왈조라고 해 '조'를 씁니다. 세조와 인조가 그런 경우이지요 - 60


조선시대 왕들은 크게 2가지 타입으로 나눌 수 있답니다. 첫째, 훌륭한 임금, 성군, 반대로 이상한 왕을 뭐라고 부르지요? 폭군이라고 하지요. 대표적인 성군은 세종과 조선후기 정조를 손꼽을 수 있습니다. 폭군 하면 떠오르는 사람은 연산군이지요. 그런데 두 가지 타입에 해당되지 않는 제3의 군이 있어요. 그게 바로 태종 이방원, 세조 수양대군, 영조 같은 인물이에요. 일례로 영조는 왕이 되기 위해 피바람을 쓰나미처럼 일으켜요. 그것만 본다면 그야말로 광폭한 폭군이지요. 그런데 막상 왕위에 오른 뒤에는 애민정신으로 나랏일과 백성을 보살핍니다. 결국 성군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폭군도 아닌 제3의 군인 거예요 - 90


세종이 제일 싫어하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신하들의 사직서였습니다. 유능한 관료야말로 조선을 이끌어갈 동력이 된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세종이 오늘날의 리더였다면,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처벌받았을지도 모릅니다. 재미 삼아 세종을 악덩 사장으로 비유를 해보았는데요. 세종은 아마 신하들을 조금 피곤하게 해서라도 백성들을 위한 정치를 펴고자 하는 마음을 가졌던 것이겠지요? - 118


만 원권 표지 앞면에 일월오봉도가 있습니다. 다섯 개의 봉우리 위에 해와 달이 있는 모습을 그린 그림이지요. 이 일월오봉도는 임금이 앉는 용상 뒤에 놓인 병풍에 그려져 있던 그림입니다. 조선 왕실의 왕권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지요. 만 원권 뒷면을 보면 여러 개의 점이 찍혀 있는 것을 살펴볼 수 있는데요. 이것은 별자리에요. 태조 이성계 때 만든 고구려의 천문도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천상열차분야지도'라는 천문도입니다. 우리 민족은 하늘에 관심이 많았어요. 이는 '혼천의'를 통해서도 엿볼 수 있어요. 혼천의는 천체의 운행과 위치를 측정하는 기구이지요. 세종은 장영싱을 통해 혼천의를 만들 것을 지시합니다 - 123


오늘날 많은 이들이 측우기를 장영실이 발명할 거라고 알고 있는데, 사실은 문종이 만든 거랍니다. 물론 세종 때 다양한 과학기구가 장영실에 의해 발명된 건 맞아요. 하지만 실록에 측우기는 장영실이 아닌 당시 세자였던 문종의 작품이라는 게 명확히 기재되어 있답니다 - 143


1453년 10월 10일! 김종서의 집에 복면을 쓴 검은자들이 떼거리로 들이 닥칩니다. 퍽! 수양대군이 사람을 모아 불시에 김종서 집에 쳐들어가 쇠몽둥이인 철퇴로 김종서를 죽이고, 황보인 등을 모두 제거해버린 사건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김종서가 안평대군을 추대하려는 역모를 꾀했다는 명분을 내세워 김종서 세력을 숙청하지요. 또한 당시 수양대군의 책사였던 한명회에 의해 조정 신료들의 목숨이 생과 사의 갈림길에 서졌고요. 계유년 하룻밤에 조선의 정치 판도가 뒤집힌 사건! 그리고 수양대군이 절대적 권력을 갖게 된 정변인 계유정난이 발발한 것입니다. 계유정난은 '계유년에 발생한 어지러운 난을 바로잡았다'는 뜻이에요. 김종서와 안평대군의 역모를 진압하고 세상을 평정했다는 뜻이지요.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역사의 승자인 수양대군에 의해 붙여진 이름일 뿐 시살을 수양대군이 무력으로 권력을 장악한 난이라고 볼 수 있어요 - 161


한명회의 살생부라고 혹시 들어봤나요? 야사에 따르면 한명회가 살생부를 작성했다고 전해져요. 이는 조정대신들의 목록으로, 죽일 자와 살릴 자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었던 거지요. 계유정난 당시 한명회는 궁궐 앞에 무사와 대기합니다. 그리고 궁궐로 들어오는 대신 중에서 자기 자기와 반대파인 사람들을 가차 없이 죽여요. 조선 대신들의 목숨이 한명회 한 사람 손에 달려 있던 겁니다. 가장 잔인하면서 단순하게 세조의 반대파들을 제거함으로써 세조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장악하게 된 거지요 - 177


성종의 업적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경국대전의 왕성입니다. 우리가 성종의 여러 업적 중에서도 딱 한 가지만 기억해야 한다면, 바로 '경국대전의 완성'이라고 말해도 될 만큼 중요한 사실이지요. 조선에는 '경국대전' 이전에도 여러 법전이 있었지만, 사회 전반의 법을 두루 다루는 법전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오랜 기간에 걸쳐 비로서 '경국대전'이 완성되었지요. '경국대전'은 성종의 할아버지인 세조 때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해서 손자인 성종에 이르러 완성해 반포하게 됩니다. '경국대전'은 굉장히 세밀해요. 그리고 다른 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조선만의 독자적인 내용이 담겨있지요. '경국대전'의 '형전'에는 자녀균분 상속법이라든지, '호전'에서 매매 및 사유권에 대해 절대 보호할 것 등을 명시하고 있는데요. 이는 중국의 영향을 받지 않은 우리만의 독자적인 고유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 삶의 다방면을 법으로 규정하였고 이를 지키도록 장려하지요. 그때그때 즉흥적으로 일을 처결하는 게 아닌, 모든 것이 법에 기반을 둔 국가 제도가 자리 잡힌 겁니다 - 206


연산군 11년 6월, 연산군은 전국 팔도의 미녀와 튼튼한 말을 구하는 지방 관리인 '채홍준사'를 파견하지요. 또한 천 명의 기생들을 둡니다. 그중에 재주가 뛰어나면 '운평'이라고 하였고, 재주뿐만 아니라 미모가 아름다운 ㄱ ㅣ생은 '흥청'이라 불렀어요. 이들은 연산군의 증조할아버지인 세조가 세원 원각사(현 탑골공원)에 수용되지요. 연산군은 수많은 기생들에게 많은 상을 내리고 궁궐에서 함께 놀이를 즐깁니다. 이러한 놀이 때문에 국고는 텅텅 비게 되고, 나라가 망할 지경까지 이르게 됩니다. 여기서 바로 '흥청망청'이라는 말이 유래한 거지요 - 227


도교가 어떤 종교인지 아나요? 도교는 무위자연과 신성사상을 기반으로 한 중국의 대표적인 민족종교인데요. 자연 속에서 욕심 없이 검소하게 사는 걸 중요하게 생각하지요. 지금까지도 우리 생활 곳곳에 도교의 숨결이 살아있답니다. 예를 들어볼게요. 전래동화 '금도끼 은도끼'에 나오는 산신령, '선녀와 나무꾼'의 선녀 모두 다 신선이잖아요? 이런 것들이 다 도교의 영향이지요. 도교는 유교 국가인 조선의 국기 기관에까지 미쳤답니다. 조선의 관청 중에 소격서라는 곳이 있는데요. 이곳에서 도교와 관련한 제사와 의식을 행했거든요. 그런데 조광조가 이것을 폐지하자 주장하지요 - 239


조선시대의 관직은 1~9품이 각각 '정', '종'으로 분류되어 있는 18품계입니다. '정'과 '종' 중에서 '정'이 더 높은 관직이에요. 즉, 똑같은 정3품, 종3품이라 할지라도 정3품이 더 높은 거지요. 만약 정3품의 관리 자리가 빌 경우, 종3품의 관리가 대리로 업무를 맡아보기도 했답니다 - 244


재위기간이 38년이나 되는 왕(중종)이지만, 후손들이 왕보다 조광조를 더 기억하고 있다는 건 무얼 말할까요? 왕의 업적보다 신하인 조광조의 업적이 더 위대하다는 뜻이지요. 하지만 조광조의 개혁에는 아쉬운 점도 있어요. 바로 너무 급진적이었다는 것이죠. 조광조의 일화를 통해 우리는 너무 급진적인 개혁이 부작용을 일으키기도 한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어떤 일을 추진할 때는 항상 주변을 살펴가며 차근차근 해나가야겠지요 - 248


명종에게는 자식이 없었어요. 외아들 순회세자가 있었으나 14세에 병으로 갑자기 사망했거든요. 중종의 적자였던 인종과 명종 모두 자녀가 없었기 때문에 다음 왕위는 중종과 후궁 사이에 태어난 자손에게 넘겨져야 했습니다. 즉 중종의 손자 중에서 선택되어야 했던 거지요. 이때, 선택된 사람이 바로 중종과 창빈 안씨 사이에서 일곱 번째 아들로 태어난 덕흥대원군의 셋째 아들 하성군입니다. 인종과 명종에게는 조카뻘이지요. 드디어 16세의 하성군이 왕위에 올랐으니, 그가 바로 제14대 임금, 선조입니다 - 273


1592년 4월에 시작한 전쟁은 다음 해 봄까지 이어졌습니다. 전쟁이 생각보다 장기화되자 명나라와 일본은 전쟁에 대한 강화교섭을 시작해요. 그런데 1596년 9월, 일본이 말도 안 되는 허무맹랑한 요구를 해요. 명나라의 황녀를 일본의 후비, 첩으로 보내라고 하지 않나, 조선의 경기, 충정, 경상, 전라 지역을 내놓아야 한다고 하지 않나, 또 조선의 왕자와 신하들을 인질로 삼아야 한다고도 말합니다. 도요토미의 무례한 협상 요구 조건으로 인해 회담은 결렬되었고, 1597년 다시 전쟁이 발발하였으니 이것이 바로 '정유재란'입니다 - 297


병으로 지친 백성들의 삶을 위로하기 위해 '동의보감' 저술을 지시하지요. '동의보감' 편찬사업은 선조 당시에 시작되었는데, 왜란으로 잠시 중단되었거든요. 이를 1601년에 광해군이 재개하여 240여 종의 의서를 종합한 최고의 의서 '동의보감'이 탄생하게 됩니다. 사실 '동의보감'을 저술한 허준은 당시 유배지에 있었어요. 1608년 선조가 세상을 떠났을 때, 당시 의원이던 허준에게 그 책임을 물어 유배를 보냈기 때문이지요. 허준은 1년 8개월 동안의 유배지 생활을 하면서 드디어 '동의보감'을 완성합니다. 그리고 이후 한양에 돌아와 광해군에게 이를 바칩니다 - 309


광해군과 인조(당시 능양군)는 서로 삼촌과 조카 관계입니다. 인조는 삼촌인 광해군에 대한 반감이 높았어요. 그 이유는 광해군이 자신의 불안한 왕위를 지키기 위해, 위협이 될 만한 종친들을 모두 제거했기 때문이지요. 결국 종친 견제로 인한 한 왕족의 반발과 폐모살제 및 중립외교에 대한 신하들의 반발이 서로 일치하면서 인조반정이 일어나게 된 겁니다. 인조반정이 일어나자 광해군은 몸을 숨겼으나 금세 발각되었고, 강화도 교동에 유배됩니다. 이후 유배지는 제주도로 옮겨져요. 광해군은 1623년 49세의 나이에 폐위되었으나, 18년의 유배생활 끝에 1641년 6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 318


후금운 조선 정부의 천명배금 정책에 불만을 품고 있었어요. 당시 명나라 장수 모문룡이 조선에 망명하자, 조선이 그에게 가도라는 섬에서 주둔하는 것을 허락하고 군사를 원조한 것에 불만을 가졌던 것입니다. 하지만 후금 입장에서는 명나라르 치려면 조선의 경제적 지원이 절실했습니다. 이런 가운데 이괄의 잔당 세력들이 조선 침략에 앞장섰으니, 후금으로 서는 이게 웬 떡이야 싶었겠지요. 결국 1627년 1월, 3만의 후금 군대가 '전왕 광해군의 원수를 갚는다'는 명문을 앞세워 조선을 침공합니다. 이에 인조는 황급히 강화도로 피난을 떠나요. 후금은 더는 전쟁을 계속 하지 않을 테니, 명나라와 사이좋게 지내지 말 것을 당부하지요. 그리고 조선과 '형제관계'를 맺을 것을 요구합니다. 이에 조선은 그간 오랑캐로 여겼던 후금과 화친을 맺고, 후금은 군대를 철수하니, 이것이 1627년에 발생한 첫 번째 호란, 정묘호란입니다 - 325


여러분, 잠실이 원래 섬이었다는 거 아세요? 여의도와 마찬가지로 한강의 섬이었는데, 1970년대 박정희 대통령 때 매립해 현재의 모습을 갖게 된 거지요. 잠실에 삼전동이라는 곳이 있어요. 거기에 원래 나로터였는데, 그 나루터로 인조가 끌려간 거예요. 매서운 한겨울이니 한강 물이 꽁꽁 얼어 있었겠지요. 얼어붙은 한강 바닥에 제단을 쌓고 청나라 황제가 올라가 있었는데, 그 얼음 바닥에서 인조가 무릎을 꿇습니다. 그리고 청나라 황제에게 삼궤구고두례를 하지요. 즉 무릎을 꿇고 양손을 땅에 댄 다음 머리가 땅을 닿을 때까지 3번 숙여요. 그렇게 3번, 총 9번을 청나라 황제에게 절한 겁니다. 이때, 이마가 바닥에 쿵! 하고 소리가 날 정도로 닿아야 합니다. 결국 인조는 이마가 찢어져 온몸이 피로 물들어요. 이것이 바로 '삼전도의 굴욕 사건'입니다 - 329


우리나라에 제일 먼저 표류한 서양인이 누군지 아세요? 바로 네덜란드인 벨테브레이입니다. 일본이 아닌 제주도에 온 이 사람, 어떻게 해야 할까요? 뭐 다시 네덜란드로 보내줘도 되겠지만, 당시 조선은 서양인이 들어오면 절대 돌려보내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내부에서 은밀히 북벌을 준비하고 있었잖아요. 혹시라도 그 정보가 외부로 새어나갈까 걱정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벨태브레이를 서울로 끌고 옵니다. 결국 벨테브레이는 당시 최고 부대였던 훈련도감에서 일하게 됩니다. 황당하지요? 그런데 도망갈 수도 있으니, 아예 도망을 못 가게 용의주도하게 수를 써요. 다리르 부러뜨렸냐고요? 그게 아니고 조선 여자와 결혼을 시켜요. 그런데 아이까지 생겼네요. 그러니 그의 입장에선 처자식 놔두고 도망갈 수 없잖아요. 결국 이름을 박연으로 바꾸고 조선땅에 눌러삽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흘러, 네덜란드 상인들이 또 제주도에 표류하게 됩니다. 역시 서울로 끌려와요. 이 사람들이 그 유명한 하멜 일행이에요 - 342


숙종은 조강지처가 그리워지기 시작했어요. 게다가 장희빈의 미모가 아무리 뛰어나다 해도, 세월을 이길 수는 없지요. 또 왕비가 된 장희빈은 다른 후궁들을 질투하고 방자하게 행동합니다. 이러한 태도는 더욱 숙종의 마음을 떠나게 했고요. 그리고 여기서 숙종의 새로운 연인이 등장하니, 그녀가 바로 무수리 최씨입니다. 무수리는 궁궐의 최하층 천민이에요. 궁녀들의 옷을 빨아주는 천민이지요. 야사에 의하면 무수리 최씨는 인형왕후의 직계 몸종이었다고 해요. 어느 날 숙종은 헛헛한 마음으로 궁궐을 거닐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방에 촛불이 켜져 있는 거예요. 호기심에 가 보니, 웬 어린 무수리가 상을 차려놓고 기도를 하고 있어요. 무슨 일이냐고 물으니, "오늘이 인현왕후 생신인데, 궁궐 밖에 계시니, 이렇게라도 중전마마를 위해 기도하게 되었다"고 답합니다. 숙종은 무수리 최씨의 모습을 기특하게 여겨, 그날 밤 그 방에서 그녀에게 술 한 잔을 따라 보라고 하지요. 그렇게 숙종의 환심을 얻은 무수리 최씨는 훗날 아들을 낳고 숙빈이 되고요. 이때, 낳은 아들이 연잉군, 훗날 조선의 21대 임금이 되는 영조입니다 - 376


영조는 즉위 초부터 탕평에 대한 의지를 강하게 드러냅니다. 자고로 어진 임금이란 정치에 치우침이 없어야 한다고 본 사람이 바로 영조거든요. 그리고 이러한 의지를 드러내는 비석을 세웠으니, 바로 탕평비지요. 오늘날 이 탕평비는 아주 가까운 곳에 있는데요. 바로 성균관대학교 저문 왼편에 있습니다. 보통 대학교 정문의 왼편에는 경비실이 있을 것 같은데, 성균관대학교에는 탕평비가 있는 거지요. 그 이유는 무러까요? 그것은 바로 성균관대학교의 정문 자리가 성균관의 입구이기 때문입니다. 영조는 1742년에 미래의 관료 양성소인 성균관 앞에 탕평비를 세우고, 당파와 관계없이 관리를 등용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거지요 - 396


보통 세자는 하루에 두세 번씩 왕실 어른들게 문안을 드려야 합니다. 하지만,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도록 이선은 병을 핑계로 문안을 드리러 가지 않아요. 그리고 영조 역시 아들을 부르지 않습니다. 결국 두 사람의 불신은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었지요. 이선의 비행은 왕실 집안의 문제로만 끝나지 않습니다. 그렇게 아버지는 아들을 역적으로 만들어 뒤주에 가두게 하지요. 이로써 아버지가 아들을, 왕이 세자를 죽인 희대의 사건이 일어났으니, 그것이 바로 임오화변입니다. 사도세자가 죽은 해가 1762년 임오년이라고 해서 그리 부릅니다. 영조의 하나밖에 없는 아들은 역적이 되어 뒤주에서 죽음을 맞이합니다. 그리고 영조는 자신의 아들에게 마지막 선물을 했으니, 그것이 바로 오늘날 우리가 부르는 이름, '사도'이지요 - 414


조선후기에는 청나라를 통해 서양의 학문인 서학이 유입되었는데, 그중에서도 천주교도 있었답니다. 천주교는 오늘날의 가톨릭으로,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정신을 강조했으며 조상에 드리는 제사를 거부하는 것 등의 교리가 특징이지요. 신분의 차이가 엄격하거니와 조상을 모시는 제사를 매우 중요한 예로 생각한 조선에서는 당연히 이를 오랑캐 종교라 치부합니다. 그런데 정조 때부터 천주교를 믿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생겨나기 시작해요. 그중에는 나랏일을 하는 신하들도 여럿 있었고요. 당시의 정서로는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일이 일어난 거지요. 하지만 정조는 천주교를 믿는다는 이유로 대대적인 탄압을 하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순조 즉위 후 정순왕후가 수렴청정하자마자 천주교에 대한 대대적인 박해가 시작됩니다. 1801년에 발생한 최초의 대규모 박해가 바로 신유박해이지요. 당시 박해를 주도했던 세력이 바로 정순왕후 측근인 노론 강경세력이었습니다. 그들의 박해는 순수한 의도가 아니라 정치적 반대파를 제거하기 위한 명분이었지요. 특히 정조 시절 성장했던 남인 세력이 이때 몰락하게 되는데, 그중 실학을 집대성한 정약용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정약용은 신유박해 이후로 무려 18년 동안 귀양 생활을 하게 되지요 - 448


조선 정부는 순조 때부터 천주교 신자들을 엄하게 벌하고, 대대적인 숙청과 귀양을 단행했습니다. 현종 시기에도 마찬가지였는데요. 그 대표적인 모습이 바로 '오가작통'의 시행입니다. 오가작통은 말 그대로 다섯 집을 하나로 묶는 것인데요. 다섯 집을 묶어 하나의 통으로 보았고, 이 다섯 집에서 천주교 신자가 한 명이라도 나타마녀 나머지 네 집을 엄하게 벌한 겁니다. 원래 오가작통은 춘추전국시대 법가사상에서 나온 것으로, 이웃을 서로 감시하게 함으로써 국가가 백성을 쉽게 통솔할 수 있도록 한 제도입니다. 하지만 조선시대에는 백성들을 구휼하기 위한 구황제대로 사용되기 시작했지요. 유교국가인 조선에서는 백성들을 감시하기보다는 다섯 집이 서로 도와가며 살도록 한 겁니다. 하지만, 조선후기가 되면서 이러한 오가작통의 의도가 변질된 거지요. 이를 통해 얻은 정보로 범죄자를 색출하고 체포하는 데 사용한 겁니다. 더욱이 조선후기에는 막대한 세금이나 부역을 피하고자 떠돌아다니느 사람이 많았기 때문에, 더욱 오가작통을 통해 이웃에 연대책임을 물어 사회를 통제하고자 한 거고요. 만약 한 가구가 도망가거나, 천주교 신자가 발생하면 나머지 이웃들이 고스란히 그 처벌을 뒤집어써야 했으니까요. 이렇게 오가작통을 이용해 대대적인 천주교 박해가 일어났으니, 그게 바로 1839년의 '기해박해'입니다. 즉, 오가작통법 때문에 조선 사회는 이웃 간의 정이나 연대의식은 사라지고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는 삭막한 사회가 된 겁니다 - 460


아버지 고종이 1907년 헤이그 특사 사건으로 강제 퇴위당하자 이를 대신해 숙종이 즉위합니다. 하지만 고종과 숙종은 당시 상황에 대한 반발로 양위식에 나타나지 않아요. 식을 거행해야 하는데, 주인공인 두 사람이 등장하지 않은 거지요. 결국 다른 두 사람을 대리로 양위식을 하는 어이없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순종이 왕이 된 1907년부터 일본은 조선에 대한 침략을 더욱 노골적으로 단행해요. 조선의 입법권, 관리 임명권, 경찰권, 사법권 등을 야금야금 일본의 것으로 바꾸더니 1910년 8월 29일에는 조선의 주권을 아예 그들이 차지하는 한일병합조약을 체결해요. 이로써 1392년 태조 이성계가 세운 500여 년 동안 유지되어 온 조선왕조는 1910년 8월 29일! 경술국치로 인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맙니다 - 4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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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체크 : 경제.상식 편 - 세상을 바로 읽는 진실의 힘 팩트체크 3
JTBC 뉴스룸 팩트체크 제작팀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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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걸을 더 들어간 뉴스'라는 모토로 지난 2013년 시작된 JTBC 뉴스룸 '팩트체크'는 앞서 쓸데없는 유머스러운 뉴스를 내보냈던 타 방송사와는 달리 시청자가 정말 궁금한 점을 파헤치며 300회가 훌쩍 넘은 현재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지난해 5월 '팩트체크' 정치·사회 편, 세상을 바로 읽는 진실의 힘과 11월에 나온 세상을 바로 읽는 진실의 힘 이후 올해 7월 경제 상식 편으로 새롭게 출간됐다. 이번 경제 상식 편에서는 일상생활에서 궁금했던 다양한 이야기들을 상세히 알려주며 잘못 알려진 정보를 바로잡아 주어 책을 읽는 내내 여러 궁금증을 해결할 수 있었다.


카톡방 음담패설 법적 처벌 가능성부터 범죄자의 신상 공개 기준, 직장인 평균 월급 264만 원의 진실, 법인 명의 외제 차와 법인세, 한국의 남녀 임금 격차, 한국식 나이 셈법 등 간단한 상식이지만 평소 뉴스를 자주 보지 않는다면 모를 궁금한 것을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이와 함께 실내에서 빨래 건조가 건강을 해치는지, 선풍기를 틀고 자면 돌연사를 하는지, 돼지고기를 덜 익혀 먹어도 되는지, 미래에 바나나를 먹지 못하는지 등 정보의 홍수 속에서 잘못된 내용을 바로 잡아주며 제대로 된 진실을 알려준다.


평소 TV를 거의 보지 않아 뉴스룸을 보기보다는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로 인터넷 포털 사이트를 통해 뉴스를 읽고 있다. 하지만 인터넷에서 생산되는 뉴스는 자극적이거나 크게 중요하지 않은 내용을 부풀리며 그저 클릭유도식이 많지만, 뉴스룸 '팩트체크'는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대한민국에서 일어나는 각종 사건과 이슈를 상세히 알려준다는 점에서 앞으론 뉴스룸을 꾸준히 시청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팩트체크'를 만드는 일명 '팩트체커'의 하루를 시간별로 알려준다. 개인적인 일상은 물론이며 점심, 저녁도 대충 때우며 오로지 시청자들에게 진실만을 알리기 위한 이들의 노력이 정말 본받을 만하면서도 존경스러웠다.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며 제대로 된 진실만을 추구하는 이들은 우리에게 있어 귀이개, 사이다, 효자손 같은 존재인 것 같다.



* 기억하고 싶은 구절


단톡방에서 시시콜콜 다른 사람을 험담한 게 모두 처벌 대상이 되는 것일까. 처벌 대상이 되려면 조건이 중요하다. 형법상 명예훼손죄나 모욕죄와 관련해 법전에 나와 있는 공통된 단어가 '공연히'이다. '공공연하게 했다'는 '공연성'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는 의미다. "OO이 진짜 나쁜 놈이다"라고 혼잣말을 하면 죄가 안 되지만, 여러 사람 앞에서 소리 질러 말한다면 공연성이 충족되는 것이다. 단톡방인 경우에는 '공연성'이 있다고 판단될 가능성이 높다. 그 채팅방 안에 여러 명이 있다면, 이들 중 어떤 대화 내용에 대해 침묵하거나 그 말에 동조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이들을 통해 대화 내용이 외부로 발설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전파성'과 '공연성'이 생긴다. 실제로 문제가 된 사건들이 대부분 이런 과정을 거쳤다. 이 조건을 충족한 단톡방이라면 그 안에서 제3자의 사회적 평가를 깎아 먹을 만큼의 험담이 나올 경우, 명예훼손이나 모욕이 될 수 있는 것이다 - 43


피의자 신상공개 여부는 특강범상 경찰이나 검찰이 결정하게 돼 있다. 기본적으로 경찰 내부 지침이 있긴 하지만 지침에 따라서만 결정되는 않는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었다. 중앙대 법학과 황일호 교수는 국민 여론이 어디로 가는지에 따라서 왔다 갔다 하는 측면을 지적했다. 사생활 보호가 중요하다 싶으면 제한적으로 공개하고, 국민의 알 권리가 더 중요하다 싶으면 공개를 하는 식이라는 것이다. 결국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하고 유사 범죄를 막는 효과를 기대할 것이냐. 아니면 무죄 추정의 원칙과 인권 존중에 무게중심을 둘 것이냐에 따라 공개와 비공개가 결정되는 셈이다. 실제 얼굴이 공개된 뒤 재판에서 무죄가 드러난 경우도 있고, 신상공개가 유사 범죄를 막는다는 효과도 학문적으로 입증된 게 아니라서, 조심스럽게 봐야 한다는 지적도 많다 - 51


스테로이드를 복용하고 나니 근력이 10% 정도 좋아지고, 또 타구 비거리에 영향을 미치는 스윙 속도 역시 5% 빨라지면서 비거리 자체가 10% 늘어나는 결과가 나왔다. 그렇게 되면 타구는 담장 너머인 117미터까지 날아가고, 홈런이 되는 경우가 많아진다. 홈런 확률이 50% 이상 늘어난다는 게 해당 연구 결과였다. 프로선수들에게는 엄청난 유혹이 아닐 수 없다. 다이어트 약을 잘못 먹었다, 한약을 잘못 먹었다. 혹은 발모제를 잘못 발랐다는 등 선수들의 변명이 이어지다 보니, 도핑 테스트가 너무 엄격한 것이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에게 확인한 결과, 이 역시 사실과 거리가 멀었다. 발모제를 한두 번 발랐다고 해서 도핑 테스트에 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도핑 테스트를 통해서 금지약물이 검출되는 경우는, 직접 먹거나 혈관을 통해 투약할 때라는 것이다. 발모제 같은 바르는 약이 검출되려면 수개월 동안 하루에수 수차례씩 발라야 검출이 가능하다고 한다 - 60


2015년 나온 엠네스티 연례 보고서에서도 이주노동자 권리, 집회·시위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 등에서 문제를 제기하며 "현 정부 2년 차에 들어서면서 인권이 후퇴하는 경향이 보였다"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한국이 인권 자유국이 아니라고 얘기하면 억울하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권이사회 의장국이 된 걸 부풀려서 '인권 선진국 인정'이라고 말하는 것 역시 사실이라고 할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부풀린 영광이 아니라 더 잘하기 위한 냉정한 자기반성이다 - 89


국제금육 면에 초점을 맞춰 보면, 일단 외국의 투자자들은 컴퓨터 모니터 앞에 앉아 달러를 들고 어느 나라에 투자를 하면 수익을 많이 올릴지 물색한다. 그러다 '한국이 좋겠다"고 결정을 내렸다면 한국 기업의 주식을 사거나 원화로 발행된 채권, 아니면 원화 자체를 사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사겠다는 사람이 전 세계에서 몰려 한국에 달러가 밀려들어오면 원화는 귀환 몸이 돼 화폐 가치가 올라간다. 원화 가치가 오르면 적은 원화만 가지고도 달러를 많이 바꿀 수 있으니, 원-달러 환율은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반대로 외국인 투자자들이 '한국 시장 별로다'라고 판단해 주식이나 채권이나 원화를 팔아치운다면, 즉 투자했던 달러를 도로 빼간다면 원화 가치는 떨어지고 환율은 오르게 된다. 이번 브렉시트 이후에도 이런 식의 외국인 투자자 거래가 유독 한국에서 많아지면서 원화 가치가 급락, 원-달러 환율이 급등한 것이다 - 103


일본은 미국 국채나 부동산 등 다른 나라 자산을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는 나라 중 하나다. 물론 국가부채가 국내총생산(GDP) 대비 230%에 이를 정도로 빚더미에 올라 있지만, 채권의 대부분을 자국민들이 사서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해외로 갑자기 돈이 빠져나갈 여렴가 없다. 즉 여러 곳의 자산에 분산 투자를 잘 해놓은 한편, 자신에게 돈 꿔준 빚쟁이들은 당장 돈 갚으라고 독촉할 일이 없으니 밖으로 보기에는 이만큼 안전한 투자처도 없는 셈이다. 그런데 이런 위기 시에 전 세계에서 돈이 몰려드는 것은 일본으로서 전혀 달갑지 않은 일이다. 그동안 일본은 아베 총리가 앞장서서 엔화 가치를 낮추려고 상당히 노력을 해왔다. 엔고(높은 엔화 가치) 탓에 수출도 잘 안 되고 내수경기도 살아나지 않는다고 판단해서다. 지난 4년간 계속 돈을 풀면서 엔화 가치를 꽤 많이 끌어내렸는데, 이번 브렉시트로 인해서 물거품이 됐다. 그러자 일본 내에서는 이본이 영국 이상으로 어려워질 수 있다는 보도도 나오고 있다 - 106


현장에서 일하는 수입차 딜러들에게 확인해본 결과, 실제 법인 차량들은 현금보다는 리스 등의 형태로 구입하는 경우가 많았고, 회사 대표들이 와서 직접 차를 보고 선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니까 차를 회사 명의로 사서 대표 본인이 사적으로 타고 다니느 경우가 많다는 얘기였다. 공무를 위해서나, 의견을 위해서 고급 차량이 필요할 수도 있지만, 2억 원이 넘는 스포츠카의 용도를 설명하기엔 부족해 보인다. 법인들이 이런 고급 수입차를 선호하는 또 다른 배경에는 세금 감면이 있다. 법인 차량을 운용하는 데 들어간 돈을 '업무상 비용'으로 처리해 법인세를 깎을 수 있기 때문이다. 법인 차량으로 선호도가 높은 BMW 520D를 예로 들어보자. 이 차를 구입해서 5년 동안 운행할 경우, 금융비용이나 기름 값, 정비 등을 포함하면 약 1억 800만 원 정도가 든다. 그런데 이 차량이 법인차가 되면 이 금액을 사업에 필요한 경비로 신고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법인세 계산을 할 때 그 금액만큼 공제해서 세금을 매기게 되고, 결론적으로 약 2600만 원의 세금을 아낄 수 있다. 게다가 실제로 차를 이용하는 대표는 자기 주머니에서 돈이 나가는 경우가 없으니, 이중 혜택을 보는 셈이다. 대표 본인은 자기 돈 안 쓰고, 회사는 세금을 덜 내고, 결국 국가는 그만큼 세금을 못 걷는, 명백한 꼼수다 - 138


원산지 표기와 관련해 법적인 빈틈이 있는 셈인데, 이런 모호한 상황은 다른 품목에서도 종종 발생한다. 예를 들어 브라질에서 재배한 커피 원두를 미국으로 가져가서 볶았다면, 이 경우 원산지를 어디로 봐야 하느냐도 국내에서 법적 분쟁까지 갔다. 소비자들 입장에서는 보통 커피나무가 자란 곳이 원산지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 간단치가 않았다. 수입품에 대한 관세 부과를 담당하는 세관이 2011년에 '볶은 커피' 수입 업체를 대대적으로 단속했다. 다른 나라에서 다 키운 커피콩을 미국에서 볶기만 한 것을 가지고 '미국산'이라고 표시했다며, '원산지 표시 위반으로' 과징을 수십억 원을 부과했다. 그러자 수입업체가 소송을 냈고, 이듬해 나온 판결에서 업체들에 무죄가 선고됐다. '로스팅은 단순히 볶는 게 아니라 노하우가 필요한 고도의 기술집약적 공정이다. 온도, 가열 시간에 따라 커피 고유의 깊은 맛이 결정되기 때문에 로스팅한 곳을 원산지로 봐야 한다'는 게 판결의 요지였다. 커피콩이 콜롬비아산이건 케냐산이건, 로스팅을 마친 원두는 미국산이 맞다고 판단된 것이다. 그런데 이런 기준 때문에 제품에 표시된 내용만 봐서는 실제 원재료가 어느 나라에서 자란 것인지 모르게 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 146


원산지 표시와 관련한 논란은 방송 교양프로에도 자주 등장하는 주제다. 특히 유명한 이야기가 국내에서 키운 재료로 김치를 담갔다면 '국산' 김치, 수입 재료를 가져다 한국에서 담갔다면 '국내산' 김치라고 표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산'과 '국내산'이 각각 다르기 때문에 둘을 잘 구분해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김치(국내산)'라고 표시한 음식점을 조심해야 한다는 식의 경고까지 돌았다. 하지만 농산물 품질관리원 관계자에게 확인한 결과, 이는 잘못된 이야기였다. 김치 안에 들어가는 재료들 중에서 물, 식품 첨가물, 주정을 제외한 모든 원료가 국산이면 '국산'이나 '국내산'으로 원산지를 일괄 표시할 수 있다는 게 관계자의 설명이었다 - 148


일단 Corea로 표기를 바꾸게 되면 바꿔야 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영문 표기 약자를 그동안 Republic of Korea를 줄인 ROK로 사용해 왔는데, 이걸 ROC로 바꿔야 한다. 유엔 등 국제사회에 알려야 하는 막대한 교체비용은 물론이고, 현재 대만에서 ROC(the Republic of China)를 이미 쓰고 있는 문제도 있다. 또, 금융시장에서 현재 사용하고 있는 원화 표시를 KRW(Korea Won) 대신 CRW(Corea Won)로 바꾼다면 혼란을 피할 수 없다. 이메일 주소 등에 쓰는 약어 kr도 cr로 바꿔야 하는데, cr은 코스타리카에서 이미 사용하고 있다. 게다가 요즘 주가를 올리고 있는 K-팝이란 말도 C-팝으로 바꿔야 하는데 익숙지 않아 하는 팬들이 많을 것이다 - 190


다른 과일은 병이 한번 돈다고 해서 종 자체가 위협받는 일은 없는데 바나나는 유독 예외다. 이는 독특한 재배 방법 때문이다. 원래 야상 상태의 바나나는 크고 딱딱한 씨가 가득 차 있어 먹기가 아주 힘들다. 그러다 씨가 없는 돌연변이가 나타나면서 이를 개량해 식용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그런데 바나나는 본래 나무라기보다 '여러해살이 풀'이다. 그래서 한번 수확하고 나면 밑동을 잘라 다시 줄기가 자라게 하는 방식으로 키운다. 농장을 조성하기 위해 새로 심을 때도 뿌리만 잘라 옮기면 된다. 씨로 번식하는 게 아니다 보니 한 농장에 유전적으로 똑같은 바나나 나무들만 있어 병충해가 한번 휩쓸면 멸당할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 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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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꽃도 꽃이다 2
조정래 지음 / 해냄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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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꽃도 꽃이다1'과 마찬가지로 조정래 작가님은 2편에서도 현 교육의 문제점에 관해 이야기한다. 1편 마지막 부분에 나왔던 원어민 교사들이 생각하는 우리나라의 교육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 실제 외국인들이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대강 알 수 있었다.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것을 찾았지만 판·검사, 의사가 되라는 부모의 말에 결국 가출까지 하게 되는 학생의 이야기부터 자신의 학생은 아니지만 같이 마음 아파하며 도와주려고 하는 선생님의 모습을 보면 먼 곳에서의 일이 아닌 우리 주변에서도 흔히 생기는 것이었다.


부모님의 공부 절대주의가 아이들에게 있어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게 하는지, 수십에서 많게는 수백만 원의 돈을 쓰며 시킨 선행 학습이 우리나라의 교육을 얼마나 망치고 있는지 여러 가지 사례를 들며 이야기하고 있다. 부모의 욕심으로 인해 꿈을 포기하고 심지어 가출, 자살 등 나쁜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는 것을 왜 알지 못하는지 책을 읽는 내내 한심한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풀꽃도 꽃이다'에서는 우리나라의 교육 비판과 함께 아이들이 받는 고통, 앞으로 미래에 다가올 암울한 현실에 관해 이야기한다. 이는 학생과 부모님 뿐만 아니라 20대 청년의 입장에서도 중요하다. 책에 나오는 혁신학교와 같이 아이들이 즐겁게 공부할 수 있는 여건이 앞으로 미래에 태어날 우리 아이들이 경험하지 못한 채 그저 주입식 교육만 하게 된다면 우리나라의 미래를 장담할 수 없게 된다.


책을 읽다 보면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 그렇지 못한 학생을 나누며 차별하는 선생님의 모습이 보인다. 나 역시 학창시절 공부에 관심이 없어 잘하지 못했는데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에게 방해가 된다는 이유만으로 한 반에서 자리를 반으로 가른 적이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공부를 못하는 아이들을 따로 학습시키는 것이 아니라 수업 중 쳐다봐주지도 않은 채 존재조차 없애버리려 했던 선생들이 나의 학창시절의 기억이었다. 공부를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 한 사람으로서의 존중을 대해주는 것이 스승으로서의 올바른 참교육이 아닐까 싶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혁신학교가 생기게 된 배경부터 일반학교와는 무엇이 다른지에 대해 집중적으로 알려준다. 현교육의 문제점과 이제는 심각한 수준을 넘어 아이들을 죽이게 하는 사교육을 없애기 위한 방도로 조정래 작가님은 혁신학교를 늘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마찬가지로 나 역시 우리나라의 미래와 아이들을 위해 혁신학교가 더욱 많이 생겼으면 하는 바람이다.


성적보다는 인간의 가치를 더 소중하여 여기는 교육만이 진정한 참교육이라 생각한다. 그저 외우기만 하는 주입식 교육을 벗어나 생각하고 토론하며 지식의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말이다. 그래야만 우리나라가 더욱 살기 좋은 나라가 되지 않을까.



* 기억하고 싶은 구절


- 반 총장이 지난번에 연임을 하려고 할 떄 유럽 쪽에서 반대를 하고 나섰잖아. 그 공개적인 이유가 뭔지 알아? 그가 영어를 잘하지 못하니 유엔사무총장으로서는 더 이상 자격이 없다는 것이었어. 그런데 말야. 반 총장이 어떤 사람인 줄 알아? 한국 고등학생들 중에서 영어를 제일 잘하는 사람으로 뽑혀 미 정부 초청을 받아 케네디 대통령을 만난 인물이야. 그리고 평생을 외교 관료로서 영어를 하고 산 사람이야. 그런데도 영어를 잘 못한다고 유엔 무대에서 공개적인 공격을 받은 거야. 언어란 그런 거라구. 태생적으로 생득언어가 다르니까. 우리가 제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한국 사람들처럼 한국말을 잘할 수 있겠니? 그건 애초에 불가능한 일 아니냐. 이 쉬운 사실을 못 깨닫고 계속 아이들 혀 수술을 해댄다면 그건 어쩔 수 없는 그들의 비극이고, 운명이지 뭐 - 18


- 언어가 인간을 지배한다는 말 고등학교 때 배웠지? 또, 언어는 인간의 영혼을 경작한다는 말도, 지금 한국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우리 미국의 문화식민지가 되려 하고 있어. 우린 얼마나 고마운 일이야? 벌써 그 현상들이 도처에서 나타나고 있다고. 그 많은 아파트들의 이름이 거의가 다 영어고, 그 많은 상점들의 간판도 날마다 영어가 늘어나고 있고,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들의 브랜드도 거의 다 영어고, 심지어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이름이나 한글 신문들의 지면 타이틀까지도 영어투성이야. 이런 식으로 한 20년쯤 가면 한국은 어떻게 되겠어? 자기네 글 천대하고 우리 영어 떠받드는 문화식민지로 변할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지. 너와 나 같은 사람은 위대한 공헌자가 되는 거고 - 42


- 초등학교에서 주는 상들은 많았다. 전통적으로 주어지는 우등상, 개근상 등을 비롯해서 새로 생긴 모범상, 봉사상, 착한 어린이상, 글짓기상, 독후감상, 달리기상, 그 외에도 여러 가지가 많았다. 그리고 학교 밖에서 실시되는 각종 경시대외의 상까지 합하면 그 수를 헤아리기가 어려울 지경이었다. 어쨌거나 학생들을 격려하고 칭찬하기 위해서는 상을 많이 주는 것은 좋은 일이었다. 교육이란 올바른 도덕적 인간을 만들고, 개성과 능력을 개발해 내고, 삶에 자신감과 힘을 불어넣어주는 것이라면 여러 가지 상으 그 중요한 일을 해나가는 데 보조 역할을 충실히 하는 거였다 - 50


- 기존 사회는 언제나 자기들의 기득권과 권위를 지키기 위해서 기존 가치를 절대 신봉하는 동시에 그 어떤 도전 세력도 용납하지 않는 배타주의를 고수했다. 따라서 자기들의 세계를 조금이라고 흡집 내거나 흔들려고 하는 대상이 나타나면 그 선봉장인 매스컴이 나서서 가차 없이 총칼을 휘둘러댔다. 그 일제 공격의 목적은 기존 가치를 수호하기 위하여 새로 터진 사건을 무조건 은폐하고 묵살하여 덮어버리는 것이었다 - 72


- 교육이란 인간에 대한 이해와 사랑의 실천이었다. 지식의 일깨움이나 전달은 그다음이었다. 그런데 세태는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그 반대로 세찬 바람을 일으키고 있었다. 아니, 그 반대라고 할 수도 없었다. 공부가 강조되고, 경쟁이 신봉되면서 인간에 대한 이해와 사랑은 실종되어 그 자취가 묘연했다 - 90


- 3, 4학년짜리들이 선행 학습으로 5, 6학년 수준의 수학 문제를 척척 풀어내는 실력을 과시했다. 그런 아이들이 젓가락질을 하지 못했고, 손톱을 깎지 못했다. 심지어는 나무젓가락을 제 손으로 쪼개 쓰지 못하는 형편이었다. 그건 그런 아이들의 잘못이 아니었다. 그 엄마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생활 태도를 숨김 없이 보여주는 것이었다 - 94


- 코스모스가 피면서 여름이 가고, 들국화가 피면서 가을이 왔다. 코스모스가 지면서 가을이 깊었고, 들국화가 지면서 낙엽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 시간의 흐름에 따라 교정의 무성했던 느티나무 잎들도 가을빛을 머금다가, 황금빛으로 물들다가, 이제 서늘한 바람곁을 타고 잎들이 분분히 낙엽 지고 있었다. 깔깔하면서 청결한 느낌의 느티나무 단풍이 바람결을 타고 흩날리며 떨어지는 모습은 가을 정취의 절정이었다. 슬픔이기도 하고, 사무침이기도 하고, 서러움이기도 하고, 고적함이기도 하고, 그림움이기도 하고, 허무이기도 하고, 텅 빈 공간이기도 한 그 감정, 그건 깊은 사색의 길이고, 자아 발견의 여로이기도 했다 - 159


- 청소년 알바는 전국적으로 어림잡아 23만에서 25만 명 정도였다. 그 많은 수의 임금은 어떤 기관에서 나서서 법에 정해진 대로 어김없이 지급하도록 감시 감독한다면 어떻게 될까. 청소년들을 고용해 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영세 상인들 중 무척 많은 수가 영업을 포기하는 사태가 벌어질 것이다. 왜냐하면 영세 자영업에서는 인건비 비중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그렇게 자영업이 큰 타격을 입게 되면 그 영향은 바로 일반 소비자들에게 미치게 된다. 그러니까 우리는 최저임금도 안 되는 청소년들의 알바비 덕분에 '통 큰 가격'이라고 선전해대는 음식을 배달받아 먹고 있는 것이다. 전후의 혹독한 굶주림 속에서 '넝마주이'라는 가난한 청소년들이 도시의 청결을 해결해 주는 보이지 않는 공을 세웠듯이 오늘의 가난한 청소년들도 법을 보장하는 임금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우리 사회의 밑바닥 경제를 그렇게 떠받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업주들만 가엾은 청소년들의 노력을 갈취하는 것이 아니었다. 돈이 돌고 돌듯 우리 사회, 우리들 모두가 그 갈취에 동참하고 있는 것이었다 - 212


- 부모와 자식은 절대 변할 수 없는 한 핏줄이되, 그 생명체로서의 존재는 완전히 별개의 독립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개성도, 능력도, 성격도 다 다르다는 사실, 그래서 그들의 인생도 다 다르게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하고, 인정해야 합니다. 그 다름에 대하여 우리 조상들은 일찍이 명언을 남기셨습니다. '자식은 겉을 낳지 속을 낳지 못한다,' 그런데 우리 사회의 수많은 부모들이 그 다름을 받아들여 자식과 나를 분리하지 못하고 동일시하기 때문에 숱한 문제들이 발생하는 겁니다 - 279


- 우리나라 부모들은 대부분 자기와 자식들을 분리하고 독립시키질 않고 자기와 동일시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가장 비극의 씨고, 뿌리입니다. 그 동일시로 인해 자식의 출세가 자기의 출세가 되고, 자식의 성공이 자기의 성공이 됩니다. 그런 비이성적 사고방식이 자식에게 집착하게 만들고, 그 집착이 자식이 1등 하기를 바라 자나깨나 공부를 닦달하게 되고, 그러다 보니 공부에 별 흥미가 없는 애들은 문제아로 몰리며 별의별 일들이 다 생기게 되는 것 아닙니까. 이 세상에 어려운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가장 어려운 일이 자기를 객곽화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자식과 나를 분리시켜 생각하는 것. 그것부터가 자기를 객관화하는 일입니다. 그것부터 실행이 되도록 노력하고, 연습해야 합니다 - 280


- 애들이 성적만 중시하고 경쟁만 부추기는 일반학교에 염증을 느끼고, 더 다니고 싶어하지 않으면 어쩌겠습니까. 공부란 그게 재미가 있어서 자꾸 하고 싶어하는 사람만 열심히 하면 되는 것이지, 공부가 적성에 맞지 않는 사람들까지 죽자 사자 매달릴 필요는 없는 일입니다. 인생살이에서 공부란 취지에 따라, 필요에 따라 적당하고 알맞게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무한 경쟁이라는 황당한 깃발을 내걸어놓고 서로 1등 하겠다고 혈안이 되어 교육 광풍을 일으키고 있지 않습니까. 어리석기 짝이 없는 체력 낭비고, 금력 낭비고, 국력 낭비고, 인생 낭비입니다. 아이들의 인생은 아이들이 주인이고, 주인공입니다. 그들이 싫어하는 일을 강요하지 말고, 그들이 좋아하는 길로 가도록 도와주십시오. 그게 부모의 참된 역할입니다 - 283


- 혁신학교의 3대 정신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경쟁 아닌 협력', '주입 아닌 토론', '배제 아닌 배려', 그 세 번째 정신에 의해서 자신은 지옥에서부터 천당으로 구원을 받은 것이었다. '배제 아닌 배려', '그것은 일반학교에서는 꿈꿀 수 없는 것이었다. 일반학교는 우열반을 편성해 공부 좀 못하는 학생들을 노골적으로 차별하고 배제시키는 일을 능사로 삼고 있었다 - 320


- 바다는 메꾸어도 사람 욕심은 못 메꾼다. 돈은 귀신도 부린다. 돈이면 지옥문도 여닫는다. 돈만 있으면 의붓자식도 효도한다. 돈 없다는 사실은 있어도 돈 남는다는 사람은 없다. 돈만 있으면 처녀 불알도 산다. 돈 있어 못난 놈 없고, 돈 없어 잘난 놈 없다. 돈 싫다 하고 계집 마다는 놈 없다. 돈과 사람에 대한 이런 속담들은 사람의 심리와 세상 인심을 속속들이 꿰뚫고 갈파하는 예리한 칼이고, 따로 철학을 공부할 필요가 없을 지경이었다. 사실 속담 백여 개만 잘 간추려 반추하며 산다면 인간관계에 무리할 일이 없고, 탐욕으로 심신을 상할 리도 없고, 삶의 지혜가 궁해질 리가 없었다. 그건 우리 선조들이 생활 속에서 자식들을 가르쳤던 생활교육이었고, 인생을 바르게 터득하게 하는 철학 교육이었다 - 324


- 혁신학교는 2009년 실시한 제1대 민선 교육감 선거에서 경기도 교육감 후보가 내세운 핵심 공약이었다. 교육감을 국민의 투표로 직접 뽑는다는 것도 세상의 변화를 보여주는 혁명적 사건이었는데, 진보를 내세운 교육감 후보가 아무런 거리낌 없이 혁신학교 실시를 공약으로 당당하게 들고나온 것은 더욱 혁명적 사건이었다. 그런데 그 후보가 당선되어 버린 것이었다. 그것이야말로 보수적 교육계를 강타하는 한층 더 혁명적인 사건이었다. 그런데 그 혁명적 사건을 일으킨 것은 누구였을까. 진보 후보였는가, 아니다. 그 후보를 교육감으로 당선시킨 유권자들, 이 땅의 교육이 바뀌지 않으면 안 된다고 인식하고, 그런 욕구가 실현되기를 바라고 있었던 학부모들이 그 혁명적 사건의 주체였다 - 334


- 학교라는 조직체에서 교사 하나란 얼마나 미미하고도 허약한 존재인가,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 외에 독자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란 아무것도 없었다. 더구나 교육계 전체로 보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티끌일 뿐이다. 지구상의 70억 인구 중에서 한 개인의 존재처럼 - 3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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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꽃도 꽃이다 1
조정래 지음 / 해냄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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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나에게 있어 책으로 처음으로 만났던 조정래 작가님의 '정글만리'를 읽었었다. 한때는 모두가 비웃음을 쳤지만 언제부턴가 세계적으로 1위 국가였던 미국을 위협하는 존재로 급부상했던 중국의 무시무시함을 '정글만리'를 통해 알게 됐다.


'정글만리' 이후 3년 만에 신작을 낸 조정래 작가님의 '풀꽃도 꽃이다'는 우리나라 교육의 문제점과 2016년 현재 10대 아이들의 고충과 부모님과의 갈등에 관해 이야기한다. 그와 함께 '풀꽃도 꽃이다'의 주인공이자 선생님인 강교민이 말하는 교육자가 가져야 할 책임과 현 교육이 학생들을 어떻게 괴롭히는지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다.


사실 난 학창시절 부모님의 간섭 아래 공부를 한 적도 없었고, 현재 2세를 낳지 않아 현 교육이 어떤 문제가 있었으며 아이들이 얼마나 고통받는지 관심이 없었다. 조정래 작가님의 신작이기 때문에 보게 된 '풀꽃이 꽃이다'를 통해 우리나라 교육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


부모라면 누구든 자기 자식이 최고이고 잘 되길 바란다. 하지만 그런 마음으로 인해 오히려 사랑스러운 아이를 괴롭히고 불행하게 만든다. 그저 '내가 아닌 너를 위해서라는' 잘못된 생각으로 인해 행복해야 할 아이들의 10대 시절을 송두리째 망친다. 이로 인해 아이가 불량스럽게 변한다거나 심지어 자살하거나 자신의 부모를 죽이는 예전이라면 상상도 하지 못했던 사건들이 생기기도 한다.


'풀꽃도 꽃이다'는 총 2권으로 이루어진 장편 소설이다. 1권에서는 이명박 정권에 대한 비판을 시작으로 교사 강교민과 그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건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이어 학교 폭력과 아이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은따(은근한 따돌림)에 대해 나오며 이러한 가운데 교육자가 학생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 현실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마지막 부분에서는 쉽게 돈을 벌기 위해 한국으로 온 원어민 교사와 나온다. 원어민 교수의 이야기에 따르면 우리나라 부모들은 원어민 교수에 대한 절대 조건이 있다. 그것은 발음과 영어 능력이 아닌 백인, 푸른 눈, 금발이었다. 이에 원어민 교수들은 우리나라를 우습게 보고 그저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나라라고만 생각한다. 2권에서는 이에 대해 어떤 내용이 나오게 될지, 현 교육의 문제점에 대해 조정래 작가님이 무슨 이야기를 들려줄지 기대가 된다.


* 기억하고 싶은 구절


- 성적을 저렇게 공개하고, 성적표에 등수를 명시하고 있는 건, 이름표를 달게 하는 것과 함께, 일본에게 식민 지배를 당한 그 잔재입니다. 일본에게 식민지로 짓밟힌 것도 씻을 수 없는 치욕인데, 해방 70년이 된 지금까지도 그 제도를 그대로 이어받고 있다니, 이건 식민지로 짓밟힌 것보다 더 큰 치욕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성적표에 석차를 기록하는 것은 일본이 세계에서 유일한 국가입니다. 사람을 성적순으로 줄 세우는 그 야비한 짓을 우리는 그대로 흉내내고 있는 것이고요. 이게 도대체 말이 되는 일입니까 - 21


- 대한민국 국민은 6.25 직후의 폐허의 가난 속에서 미국의 원조에 그저 감읍하고, 동물 사료용 가루우유마저 서로 많이 받아먹으려고 허겁지겁했던 거지 군상이 아니었다. 40~50년 동안 밤낮없니 뼛골 빠지게 일해서 1인당 GDP 2만 5천 불대의 배부름을 향유하고 있는 자존심 제대로 갖춘 존재들이었다. 그런 대상들에게 '광우병에 걸리든 말든 값싸니까 먹어라' 하는 식으로 말을 해댔으니 그게 통할 수가 있겠는가. 더구나 트라우마를 열등감으로 심층 깊이 감추고 있는 살마들의 심리는 얼마나 난해하고 복잡한가. 우리 한국 사람들은 거지꼴로 미국의 원조를 받아먹어야 했던 아픈 과거를 공동의 부끄러움과 열등감으로 가지고 있지 않은가. 더구나 미국을 대할 때는 그 부끄러움과 열등감이 미국에 대한 선망과 같은 비중으로 엇갈리는 것이다. 대통령의 경박한 그 말은 바로 그 열등감을 정통으로 찔러버린 것이었다 - 26


- 일제고사 부활은 시행 발표와 함께 즉각적인 반대에 부닥쳤다. 문제는 학생보다 선생들이 먼저 반대하고 나섰다는 데 있었다. 첫째 학생들 실력 향상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되고, 둘째 불필요한 경쟁을 과열시켜 학생들을 괴롭히고, 셋째 국가적인 재력 낭비고 정력 소모라는 것이다. '4대강 살리기' 사업을 국민의 75퍼센트가 계속 반대했는데도 무작정 밀어붙여 22조라는 상상하기 어려운 국민의 혈세를 탕진하고, 수수만년의 생명을 지닌 네 개의 큰 강을 '죽이기에 성공'한 것처럼 일제고사도 전국의 수많은 학생들을 괴롭히고 국가 교육을 망치는 여러 상처를 남기고 막을 내리게 되었다. 일제고사가 야기한 두 가지 큰 문제는 전국적인 경제 유발과 성적순 줄 세우기였다. 전국의 학생들이 한낱한시에 시험을 보고, 그 결과로 전국 석차를 공개하는 것이었다. 이런 단행이 무슨 획기적 교육 혁명이나 되는 것처럼 대통령꼐서는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을 제치고 앞으로 나서서 '무한 경쟁'만이 지속적 국가 발전의 동력이라고 자못 흥분된 어조로 역설해 댔다 - 35


- 일제고사는 일제 망령의 부활이라는 비판과 함께, 인성이 파괴되도록 아이들을 무작정 무한 경쟁으로 내모는 것은 교육을 훼손시키고 포기하는 비교육적 행위이며, 전국적으로 전체 석차를 공개해 아이들을 줄 세우기 하는 것은 인격 살해를 자행하는 가장 비인간적인 행위이라며 항의하고, 어서 빨리 일제고사를 중단하라고 요구하고는 했다. 그러나 그런 소리는 소수의 불평불만을 가차 없이 묵살될 뿐이었다. 대통령은 '4대강 살리기'를 반대하는 여론이 커질수록 불도저식을 더욱 거세게 몰아대는 것과 똑같이, 일제고사도 기세등등하게 밀어붙여 나갔다. 성적을 비관해 자살하는 아이들이 해마나 늘고 있었지만, 엽기적인 사건이 아니한 '사소한 자살'은 언론에 한 줄도 보도되지 않고 흔적 없이 묻혀버리고는 했다. 한 해 300명 선의 청소년 자살자가 일제고사 실시를 계기로 해마다 증가해 마침내 하루 1.5명인 500명을 넘고 있었다. 그러나 일제고사는 멈출 기미 없이 기세 좋게 치러졌고, 전체 석차는 끄덕없이 공개되고 있었다 - 39


- 일제고사를 볼 때마다 아들의 등수가 떨어진다고 아들을 때려오던 엄마가 매를 견디지 못한 아들 손에 맞아 숨진 것이었다. 아들을 매질해 댄 엄마의 학대는 일제고사가 처음 치러진 다음부터 시작되어 3년 넘게 지속된 것이었다. 아들은 첫 일제고사에서 4천 등까지 했다. 그건 SKY 대학에 너끈히 들어갈 수 있는 성적이었다. 그러나 그것으로 만족할 수는 없었다. 조금만 더 애쓰면.. 엄마의 욕심은 동하기 시작했다. 서울대학교! 아아, 내 아들이 서울대 학생이 될 수 있다! 그런 '가문의 영광'을 놓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일가친척들 앞에서, 친구 동창들 앞에서 그보다 더 폼 나고, 광나는 일이 어디 있을 것인가 - 41


- 이 세상에 문제아는 없다. 문제 가정, 문제 학교, 문제 사회가 있을 뿐이다. 교육가 닐 - 49


- 지금도 원망스러운 것은 자신을 찾아오지 않은 아버지가 아니라, 자신을 퇴학시킨 학교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는 동안 이상하게 학교가 그리웠고, 마음 잡고 공부를 하고 싶었답니다. 계모 때문에 가출을 한 것이지, 공부가 싫어서 가출을 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진짜 마음잡고 공부하려고 했다고 합니다. 가출 생활은 사람이 사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얘기를 듣고 나서 얼마나 충격이 컸는지 모릅니다. 왜 교육이란 한 명의 낙오자도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했는지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그 여자를 퇴학시킨 것은 교육이 저지른 살인입니다. 그 어떤 경우에도 교육은 처벌이 아니라 용서고 보살핌이고 사랑입니다. 교육자는 제2의 성직자여야 한다는 페스탈로치 선생의 말씀은 역시 불변의 진리입니다 - 59


- 대한민국의 자본주의 노동이 인정사정없고, 피도 눈물도 없이 가혹한 것 잘 알아. 특히 대기업일수록 출근 시간은 있고 퇴근 시간은 없는 야만적 경영이라는 것도 잘 알아. 거기다가 대기업 간부가 되려면 그 길이 얼마나 치열한 경쟁이고 고달픔인지도 잘 알아. 그렇더라도 그것으로 아들에게 아무런 정을 주지 않고 내다 버린 것처럼 해버린 애비로서의 무책임이 합리화되는 건 아니야. 자식 가진 이 세상의 남자들에게는 두 가지 임무가 똑같이 주어져 있어. 하나는 가정으로서의 밥벌이 임무고, 다른 하나는 애비로서의 사랑 베풀기 임무야. 좋아, 자네가 매일 격무에 시달리다 보면 애비로서의 임무가 소홀해질 수 있다는 걸 인정해. 그럼 주말 이틀이 있잖아. 그 이틀을 다 자식 사랑에 바치라는 것도 아니야. 그중에 하루만이라도 아이를 위해 써야 해. 일요일 아침 일찍 아들을 데리고 공중목욕탕에 가는 거야. 발가벗은 몸으로 탕 안에서 물장난도 치고, 아이를 끌어안고, 얼굴도 맞부비고 하는 거야. 그보다 더 좋은 스킨십, 깊고 뜨거운 정 나누기가 어디 있겠는가. 거리를 두고 사랑한다는 말 백번 하는 것보다 훨씬 더 효과가 크지 - 70


- 그게 이 나라 엄마들의 공통된 문젯거리야. 내 자식만은! 내 자식만은! 그런 경쟁의식으로 서로 앞서가려고 기를 써대니 애들이 다치고 상하고 병들고, 그 정도가 너무 심해서 나라고 사회고 큰 탈 나게 생겼어. 모두 그 터무니없는 욕심 버리고 정신들 차려야 하는데, 큰일이야. 이건 교육열이 아니라 끝없는 이기주의가 뒤엉켜 벌이는 난투극이고, 자식들 정신병자 만들고, 죽여가는 어리석기 짝이 없는 광태야. 이런 사회적 비극은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유일해 - 75


- "영수국 외에는 아무 책도 못 읽게 하잖아요. 영수국에서 배울 수 없는 것을 배우는 좋은 책이 얼마나 많은데, 그 재미를 모르고 무조건 못 읽게 하니 얼마나 무식한 거예요" 아이는 두 번씩이나 '영수국'이라고 말했다. 그 무심곁에 흘러나온 말에 첫 번째 자리를 빼앗기고 세 번째로 밀린 국어의 딱한 현실이 있었다. 그 어찌할 수 없는 현실의 반영을 강교민은 서글픈 마음으로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 110


- 아이들이 저희들끼리 핸드폰으로 문자를 주고받을 때 어마 아빠를 '미친년', '개새끼'는 예사고 그보다 훨씬 더 심한 욕으로 불러댄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러나 저희들에 대한 엄마의 사랑을 '독약'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건 처음 아는 사실이었다. 강교민은 풍선에서 바람이 빠지듯 전신의 맥이 풀리는 것을 느꼈다. 이렇게 엄마에 대한 불신과 적대감이 이 아이에게 무슨 말로 엄마의 사랑이며 엄마의 마음을 이해시킬 것인가, 강교민은 그지없이 막막하고 난감하기만 했다. 그러나 상담이라는 것은 어차피 이런 난관을 헤쳐가야 하는 길이었다 - 115


- 정답은 명확하게 나와 있었다. 그러나 강교민은 그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것은 결론이었고, 자연스럽게 거기에 이르기 위해서는 건너뛰어서는 안 되는, 차근차근 밟아 나아가야 하는 경과가 있었다. 아이를 그런 막다른 벼랑까지 몰아간 모성의 시행착오 과정을 착실히 밟으며 엄마가 자신의 잘못을 이성의 힘으로 납득하고 시인했을 때에만 비로서 다다를 수 있는 지난한 길이 '다 포기하는 것'이었다. 모성이 강할수록 자식에 대한 욕망은 커지고, 욕망이 클수록 집착하고 되고, 집착이 클수록 시행착오를 많이 범하게 되고, 시행착오가 많을수록 자기 아집이 강해져 '다 포기'는 불가능할 수밖에 없었다. 그 연쇄적 회오리 속에 아이들의 자살은 끊임없는 행렬을 이어오고 있었다 - 125


- 어린 자식이 있다면 최선의 능력을 다해 돕고 지도하고 보호해야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이에게 공간을 허용하는 일이다. 존재할 공간을, 아이는 당신을 통해 이 세상에 왔지만 '당신의 것'이 아니다. 에크하르트 톨레 - 144


- 아더매치는 30여 년 전, 80년대에 기승으 부리고 있던 군부독재를 향해 내뱉었던 유행어였다. 아니꼽고, 더럽고, 매스껍고, 치사하다 - 159


- '광주 사태'를 일으키고 집권한 전두환 정권은 시급히 민심을 얻어야 할 필요에 따라 여러 가지 파격적인 조취를 취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야간 통금 해제였고, 88올림픽 유치였고, 교복 자유화였다. 그런데 야간 통금 해제의 성공과 대조적으로 실패한 것이 교복 자유화였다. 그때만 해도 1인당 GDP 3천 불 정도라서 자유화된 학생들 옷에서 빈부격차가 너무 심하게 드러났던 것이다. 생각지도 못했던 교복의 공이 드러난 것이었다. 그다음에 야기된 문제가 학생들에게 피해를 입히는 범죄의 빈발이었다. 같은 또래의 불량배들이 학생들 사이에 자연스럽게 섞여 들어 쉽게 범행을 저질렀던 것이다. 이것 또한 그동안 교복이 세워온 공이었다. 그래서 교복은 부활되었다. 단, 군복 냄새가 풍기는 일본식 교복에서 탈피해 미적 감각을 살린 다양한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이었다 - 169


- 예, 일진 그것 분명히 나쁜 존재입니다. 건전하고 건강한 교육 현장을 위해서 명백히 제거해야 할 존재입니다. 그러나 보십시오. 한여름 철의 잡초가 줄기만 자꾸 잘라낸다고 없어지는 겁니까? 뿌리까지 다 뽑아버려야 제거됩니다. 일진이 꼭 그렇습니다. 일진이라는 애들은 왜 생겨났습니까? 그 뿌리가 무엇일까요? 그 답은 너무 자명하고, 찾기 쉽습니다. 다만 묵살하고, 외면하기 때문에 문제지요. 그 뿌리는 경쟁 교육, 점수 따기에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무한 경쟁 교육 아닙니까? 인간 교육, 인성 교육, 적성 교육, 창의 교육 다 팽개치고 달달 외우는 암기 교육으로 점수 잘 따는 것만 최고로 쳐다 보니 낙오자를 수없이 양산해 냈습니다. 그러니깐 일진이라는 아이들도 그 잘못된 암기 교육의 피해자란 사싱입니다. 그 아이들은 암기를 잘 못하거나, 취미가 없다는 죄 아닌 죄로 학업 포기 상태로 방치되고, 그 좌절감과 스트레스 탈출구로 빠져 나간 것이 일진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깐 명확히 말하자면 일진은 동료 학생들의 가해자인 동시에 잘못된 교육의 피해자라는 사실입니다. 선생님이 말한 대로 일진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그들을 엄벌해 학교에서 내쫓아버린다고 합시다. 그럼 그들은 사회에 나가 뭐가 되겠습니까. 곧바로 조폭이 되고 말 것입니다. 모든 학교는 조폭 세력 공급처가 될 거구요. 그럼 우리 사회는 어찌 되겠습니까. 망하는 길밖에 없는 거지요. 그런 심각성 앞에서 우리는 다시금 참된 교육이란 무엇인가 하는 명제와 만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교직을 천직으로 삼으려 했을 때 각자의 전공과는 상관 없이 교직 과목을 공통적으로 공부했습니다. 우리는 언젠가부턴가 잊어버리기 시작한 그 원론을 되찾아야 하고, 그 원론을 고수해야 합니다. 교육은 그 어떤 경우에도 단 한 명의 학생이라고 포기하지 말아야 하며, 교육은 단순 지식을 무조건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인간답게 바르게 육성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 311


- 교육부에서는 연간 5,500건에 달하는 공문 폭탄을 투하했다. 선생들은 해당 부서에 따라 그 보고서를 작성하느라고 많은 시간을 탕진하며 골이 빠졌다. 그러니까 선생은 현장 교육자가 아니라 행정관료로 전락해야만 했다. 그러다 보니 교육자 역할은 그만큼 소홀해져 선생들은 어쩔 수 없이 수업 준비가 부실해졌고, 학생에 대한 관심도 등한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마치 교육부는 교육을 위해 존재하는 기관이 아니라 교육을 망치려고 있는 이상한 조직 같았다. 교육부는 왜 그 많은 공문을 남발해 대며 교육을 망치는 행태를 하는 것일까. 그것은 중앙의 통제와 지배를 강하게 함으로써 권력의 안정을 꾀하고자 했던 군부독재의 욕구였다. 그런데 군부독재가 타도된 지가 언제인데 그 후의 권력들도 그 악습을 그대로 답슴해 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저 권력의 마성인 지배욕구를 그대로 드러내는 뻔뻔스러운 작태였다 - 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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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는 그런 곳이 아니야 - 토박이가 알려주는 진짜 제주
김형훈 지음 / 나무발전소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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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모으고 독서하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하루에 한 번쯤 신간을 구경하기 위해 도서 쇼핑몰을 구경한다. 여름이라 그런지 여행에 관한 책이 많이 보이는데 그중에서도 제주도에 관한 책이 많았다. 최근 유럽 쪽에는 테러 사건으로 인해 관광객들이 해외 여행을 포기하고 국내로 전환하고 있다. 국내 여행의 대표 관광지로 불리는 제주도이기에 그만큼 제주에 관한 책이 쏟아지고 있다.


제주도에 살면서 현재 내가 속한 지역에 관한 일을 하는 나에게 제주도 여행 책이란 목차부터 너무 뻔했다. 애초에 제주 도민을 공략한 책이 아니었겠지만 대부분의 책 속 내용은 거기서 거기라 읽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알게 된 '제주는 그런 곳이 아니야'는 여행객보다는 제주도에 사는 사람을 위해 쓴 책인 것을 알 수 있었다. 제주 여행에 관한 일을 종사하는 나에게 있어서도 무척이나 중요하며 현재 내가 사는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알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이 책을 주문하게 됐다.


최근에 읽었던 제주도에 관한 책은 고희범 저의 '이것이 제주다'였다. '이것이 제주다'는 제주 사람들도 잘 모르는 역사와 문화, 자연환경에 대해 알려준다. 그런 점에서 '제주는 그런 곳이 아니야'와 비슷한 것 같았지만 목차를 비교했을 때 두 책 모두 읽어보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제주는 그런 곳이 아니야' 저자 김형훈 씨는 제주토박이가 아니지만 오래도록 제주도에 살며 현재는 지역 언론사에서 활동하고 있다. 이 책에서는 크게 다섯 가지 주제로 제주도에 관해 이야기해주는데 무엇보다 신화와 역사에 관한 내용이 많이 담겨 제주도에 살고 있음에도 처음 듣는 이야기가 많았다. 그동안 제주도에 관해 많이 알고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책을 읽어 보니 제주도는 알면 알수록 새로웠다.


첫 번째 장에서는 제주의 산담, 밭담, 올레, 포구, 동자석, 환해장성, 돌하르방, 방사탑 등 제주도에 살면 최소한 한두 번은 만나게 되는 것에 관해 소개됐다. 그중에서도 포구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포구가 하나의 관광지나 명소가 아니라 과거 도민들이 죽음마저 불사하고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알게 되었다. 앞으로 제주도에 있는 여러 포구에 방문한다면 전과는 다른 기분을 느낄 것 같다.


두 번째 장에서는 신흥리 오탑, 대평리, 질지슴, 신지방코지, 썩은섬, 강정동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제주를 알고 싶다면 꼭 들려야 하는 신흥리 마을과 한라산, 가파도, 마라도, 형제섬을 가까이에서 바라볼 수 있는 대평리 마을은 아직 가보지 않았기에 꼭 방문하고 싶은 곳이다.


세 번째 장에는 제주도에서도 가장 유명한 오름 중 하나인 용눈이 오름, 철새들이 많이 다녀가는 조개못, 이외 솜반내, 논짓물, 조간대, 금산공원, 한라산, 곶자왈을 소개하고 있다. 각 명소들에 대한 친절한 소개와 함께 저자가 직접 찍은 듯한 훌륭한 사진이 담겨 있어 책을 읽는 내내 한 번쯤 방문해야겠다는 생각에 따로 메모까지 해 둘 정도였다.


네 번째 장에서는 온평리, 물맞이, 이중섭 문화의 거리, 추사 유배지, 제주해녀, 갈옷, 자리, 제주초가, 신당, 석굴암, 테시폰, 옹기, 제주어, 추자도에 대해 알려준다. 제주도의 역사와 현재까지도 만날 수 있는 여러 문화와 명소에 관해 상세히 알려주며 제주도가 세계자연유산임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해줬다.


마지막 장에서는 제주 4.3사건, 제주도에 정착한 이주민, 월정리, 원도심에 관해 이야기한다. 저자는 '제주는 그런 곳이 아니야'를 통해 제주도의 무분별한 발전에 관해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다. 제주도의 천연 자연을 지키려고 하기보다는 그저 관광지로서 지역 경제 발전만을 생각하는 것은 나 역시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후에 나의 2세가 태어나 제주도에 대해 알려줄 때 제주의 자연 환경을 오롯이 보여주고 싶다. 여러 볼거리가 가득해 많은 사람들이 구경 오는 것도 좋지만 이곳에서 사는 원주민과 이주민을 위한 보금자리가 훼손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우리에게 낙원인 제주도는 누군가에게는 삶의 터전이라는 저자의 말처럼 제주의 환경과 역사를 올바르게 지키고 싶다.


* 기억하고 싶은 구절


- 제주도 하면 올레를 떠올리는 사람이 대다수가 아닐까 한다. 그만큼 올레는 많이 알려졌다. 하지만 올레를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올레를 안다는 사람들은 그냥 걷는 길로 여기고 있다. 그건 사단법인 제주올레의 역할이 컸다. 그런데 사단법인 제주올레에서 말하는 올레와 필자가 쓰고 있는 올레는 개념이 전혀 다르다. 제주올레는 '걷는 길'을 말하는 브랜드이지만, 올레는 그와는 다르다. 올레는 단순한 길이 아니라,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공간이다 - 28


- 사람들은 제주바다의 속성을 모른다. 낭만적인 포구가 아니라 진정한 의미에서의 포구를 말이다. 제주바다는 화산섬이기에 다르다. 삶을 위해 필요한 포구는 화산섬이라는 특성상 쉽게 만들어질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제주도의 해안선은 단조롭고 썰물과 밀물의 차이도 크지 않았다. 그런 특징들은 천연적인 포구를 갖추기 어려웠고, 제주사람들이 얼마나 힘을 들여 포구를 만들었는지를 보여준다. 제주인들은 바다를 경영하기 위해 죽음도 불사하며 포구를 만들어갔다. 몸을 던져 숱하게 널린 검은 돌을 등에 지고 날랐다. 담벼락으로, 밭담으로, 혹은 산담으로 쓰였던 돌은 포구를 만드는 데도 쓰였다. 구멍이 뚫린 그 돌들을 하나둘 옮겨 바다를 채우는 작업부터 제주바다의 경영은 시작됐다. 그러나 산업화는 제주만이 가진 포구의 멋을 앗아가고 있다 - 38


- 대부분의 제주포구는 제주사람들의 땀이 배여 있다. 그런데 자연적으로 생겨난 포구도 있었다. 천연포구인 온평리의 쾌성개다. 쾌성개는 탐라국의 기원과 관련 있는 곳이기도 하다. 탐라국의 세 왕자가 세 공주를 맞은 뜻깊은 곳이기 때문이다. 쾌성개는 인공이 전혀 가미되지 않았다. 자연 그대로의 포구였으며, 1960년대까지도 충천도 선적이 이곳에 배를 대고 뭍으로 해녀들을 실어나르곤 했다 - 40


- '내가 만일 동자석을 세운다면' 이런 질문을 던져본다. 제주 돌이 사람을 닮고, 제주사람 역시 돌을 닮을 수밖에 없다면 내가 세우는 동자석은 나를 닮을 테니까. 그러나 제주 사람들은 너무 흔한 것이기에 돌이 인간에게 선물한 것들의 의미를 잊고 산다. 때문에 수많은 동자석은 주인을 떠나 다른 데로 흘러가야만 했다. 석공이 그 사실을 안다면, 무덤의 주인이 그 사실을 안다면 얼마나 애통해할까. 동자석은 무덤 곁에 있을 때라야 존재 가치가 있는데 말이다 - 46


- 조천읍 신흥리엔 가슴 아픈 전설이 흐른다. 이곳 노인들은 어린 시절부터 들어온 신흥리의 이야기를 가슴속 깊은 곳에서 꺼내줬다. 현용준이 펴낸 '제주도 전설'에도 신흥리 마을지에도 없는 옛이야기다. 신흥마을이 생긴 뒤다. 왜구들이 들락날락했다. 오죽하면 신흥리의 옛 이름이 왜포일까. 주민들은 풍족하지 못한 삶 때문에 바다에 나가 파래, 톳 등을 캐며 생계를 이어갔다. 어느날 한 왜인이 '멤을 거리러' 바다로 나온 박씨를 겁탈하려 든다. 그러자 박씨는 도망치다 볼래낭(보리수나무) 밑에서 죽고 만다. 주민들은 박씨를 위해 그 자리에 당을 만들어 모시고 있다. 그곳이 볼래낭할망당이다. 박씨는 아기를 낳지 못하고 저세상 사람이 됐고, 주민들은 양자를 들여 신흥동 산밭에 하르방당도 세웠다 - 73


- 제주도를 한 바퀴 빙 돌며 만들어놓은 해안도로. 도로가 나지 않은 해안이 거의 없을 정도가 됐다. 이처럼 제주도를 둘러싼 해안도로는 많은 볼거리를 제공하지만 그 반대로 많은 것들을 세상에서 사라지게 한다. 신흥리의 큰 포구는 해안도로 때문에 사라졌다. 볼래낭할망당에서 동쪽으로 가면 이곳 주민들이 '엉알'이라고 부르는 포구가 나온다. 30~40톤에 달하는 배도 이곳에 댔으며, 전남 강진에서 옹기를 실은 배가 오가기도 했다. 그러나 해안도로가 개통되면서 계곡을 방불케 하던 옛 포구는 영원히 사라졌다. '비배기사막'이라 부르는 모래동산도 양어장이 들면서 사라졌고, 거대한 환해장성도 볼품없는 밭담으로 변하고 말았다 - 79


- 대평리는 중국과의 만남이 서려 있는 곳만큼이나 낯선 이방인 그대로다. 제주에 있으면서도 제주답지 않은 고을이라면 너무 과장됨일까. 한국의 산야는 곳곳에 골짜기를 만들고, 그 골짜기를 따라 마을을 이룬다. 굽이굽이 산을 휘감아 내려가는 도로를 골짜기가 벗삼는 그 맛이 뭍 지방을 여행할 때 나그네들에게 주는 하나의 매력이다. 그런 기분을 대평리에서 느끼게 된다. 아니, 제주에서는 느끼지 못하는 새로움이다 - 82


- 여행이 업이 아닌 이상 그 자체가 일상이 될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여행을 하려면 익숙한 것들과의 결별이 뒤따른다. 어차피 하나를 얻으려면 하나를 잃는 것이 세상의 이치라 하는데, 바닷가 여행을 하다가 감기라는 불청객을 맞기도 한다. 감기를 달고 살아가는 사람에겐 전혀 낯선 일이 아니겠으나 그렇지 않은 사람에겐 그야말로 팔팔하고 생기 넘치던 익숙함고의 결별이 아닐까 - 87


- '제주도의 푸른 밤'을 찾아 많은 이들이 제주에 온다. 50만 명을 좀 웃돌던 제주도의 인구는 최근 몇 년 사이에 10만 명 가까이 늘어 이젠 60만 명을 넘어서서, 조만간 70만 명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고 한다. 긍정 부정을 떠나서 많은 이들이 살다 보면 땅이 그 땅 본연의 역할을 하는 게 어려워진다. 땅에 무언가 계속 들어선다는 말이다. 썩은섬도 조만간 그런 운명을 겪지 않을까 해서 우려된다. 섬이 아름다운 이유는 물과 떨어진 존재 그 자체만으로도 가치를 지니기 때문이다 - 104


- 용당리 바닷가에는 사람이 살지 않는다. 그런데도 이곳 주민들의 삶은 바다가 지배하고 있다. 원래 용수리였으나 1952년 용수리에서 떨어져 나오며 용당리라는 이름을 얻게 됐다. 용당 사람들이 솔해라고 부르는 바다는 1960년대 들어서야 용당리 것이 됐다. 마을 사람들이 솔해로 나오려면 바다로 난 길을 족히 2km는 걸어야 했다. 마을과 떨어져 있지만 바다를 찾는 이유가 있다. 솔해에서 나는 톳, 천초, 소라 등은 용당마을 사람들을 먹여살리는 소득원이기 때문이다. 솔해가 용당 사람들의 삶을 지탱하는 재원이라면, 솔해에서 뭍으로 나 있는 조개못은 그곳 사람들의 쉼터였다. 가족을 데리고 바다도 구경하고, 갯벌탐사도 벌일 수 있는 그런 곳이다 - 126


- 썰물 때 바다는 공존의 중요성을 일깨운다. 사람이 혼자 살지 않듯 사람과 자연도 하나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런데 우린 그 바다를 메워오기를 수십 차례 해왔다. 바로 내수면이나 공유수면 매립이었다. 바다를 배우면 새로운 땅이 만들어진다. 순전히 사람만을 위한 공간이다. 육지에선 간척사업이라고 하면서 '국토가 늘었다'고 강조해 왔다. 새만금도 그렇게 됐다. 아니, 제주바다도 그렇게 돼왔고, 지금도 진행되고 있다. 각종 개발에 따라, 해안도로의 등장에 따라 바다는 메워지고 있다. "바다가 메워지면 뭐가 좋을까"라고 물어보자. 바다에 시멘트를 실고, 수많은 사람을 갖다놓으면 뭐가 좋은지, 자연은 글자 그대로일 때가 이름값을 한다. 바다를 메우는 것과 바다를 메우지 않고 생태체험을 하는 것 가운데 어떤 게 더 이득일까 - 143


- 겨울바람은 한라산의 남북으로도 서로 다른 광경을 보여준다. 1100도로를 기준으로 한다면 다소 따뜻한 남쪽보다는 북쪽의 눈꽃이 더 아름답다. 북서계절풍은 북쪽의 눈을 날리고, 그 눈은 가지에 하나둘 붙어 눈꽃이 된다. 정신없이 불어대는 바람에 눈밭이 나무에 꽂히듯, 아니 박히면서 만들어지는 게 눈꽃이다. 한라산의 눈꽃은 뭍지방에서는 거의 볼 수 없는 제주만의 것이기도 하다. 뭍에서 그런 눈꽃을 만나려면 지리산의 새석평전쯤은 가야 한다. 어느 코스로 갈까. 한라산은 코스마다 특색이 있다. 한라산 정산까지 갈 것인지, 그렇지 않을지를 선택해야 한다. 정상까지 간다면 성판악과 관음사 코스를 택한다. 성판악 코스는 한라산 동쪽 주능선으로 다소 밋밋하지만 힘들지 않고 편안하게 오를 수 있다. 관음사 코스는 한라산의 능선과 계곡 등 깊은 맛을 느끼며 등산할 수 있다 - 162


- 정상을 굳이 가지 않는다면 어리목으로 올라 영실로 내려오는 코스를 권하고 싶다. 어리목은 한라산의 서북 방면이어서 겨울철 계절풍을 곧바로 받는다. 따라서 오를 때는 바람을 등지며 갈 수 있지만 내려올 때는 바람을 맞아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어리목 코스를 이용해 오른 뒤 서남 방면의 영실 코스로 내려오면 바람도 피하고 겨울 산행의 여러 느낌도 함께 감상할 수 있다. 한라산은 겨울이 좋다. 요즘은 한라산을 오르는 이들이 너무 많아 탈이긴 하지만 한라산이 덜 아프게, 오르는 이들을 통제하는 방법은 없을까 - 163


- 온평리 바닷가는 쾌성개라 부른다. 세 신인이 이곳에 떠내려온 석함을 보고 쾌성을 질렀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 석함이 닿은 포구는 오퉁이다. 그러나 오퉁은 한참 헤맨 뒤 나타난다. 팻말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여기에 사는 이들도 단박에 찾아내지 못하기도 한다 - 174


- 이중섭은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서귀포에서 피난생활에 들어간다. 그해 1월부터 12월까지 솔동상 작은 초가의 2평도 채 안 되는 방에서 네 식구가 살았다. 서귀포시는 이중섭이 살았던 초가를 복원했다. 당시의 모습 그대로 복원된 이 초가는 그의 채취가 묻어 있는 국내 유일의 유적이다. 여기에 놀라운 사실을 하나 더 쓰겠다. 이중섭을 아는 이가 여기 초가에 머물고 있다. 어느새 100세를 바라보는 김순복 할머니다. 우리 나이로 96세인 김순복 할머니는 지금도 정정하다. 서귀포시에서 초가를 매입했으나 할머니는 떠나지 않고 있다. 이중섭의 흔적을 끝까지 간직하고 싶어서일까 - 190


- '조선왕조실록'에 '해녀'라는 단어는 단 한 차레 등장한다. 이때 해녀는 제주의 여성을 말하는 단어가 아니다. 동래부(부산)에 설치된 왜관을 상대로 생선과 채소를 파는 이들을 가리켜 해녀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어쨌든 제주에서 해녀라는 단어는 애당초 없었다. 물질의 의미를 들여다본다면 해녀 스스로가 말하는 '좀녀'가 직업으로서의 물질 행위에 보다 가깝다. '좀녀'로 쓰는 한자는 물질을 하는 기본 요소인 잠수 행위가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 사이에서는 '좀녀'이지만 뭇사람들에겐 '해녀'가 익숙해져 버렸다. 사회적 언어가 돼버린 '해녀'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 됐다. 고유 제주어가 사라지다니 너무 아쉽다 - 204


- 해녀들의 도구 가운데 그들의 사고방식을 읽을 수 있는 걸 하나 소개한다. 작은 전복 껍질인 본조갱이가 있다. 해녀들은 잠수로는 으뜸이지만 하염없이 바닷속에 몸을 담가둘 순 없다. 물질을 하다 보면 지치게 마련이고, 숨을 쉬어야 한다. 바다에서 좋은 물건을 봤는데 캐기 힘들면 어찌해야 할까. 그때 쓰는 게 본조갱이다. 해녀들은 미처 캐내지 못한 해산물 곁에 본조갱이를 놔둔다. 그러면 그것을 본 다른 해녀들은 임자가 있는 것으로 알고 건드리지 않는다. 그들만의 불문율이다 - 208


- 조선 초만 하더라도 제주사람들의 배 건조술은 당대 최고 수준이었다. 그러나 제주사람들의 발은 묶였다. 조선정부가 제주를 뜨지 말라는 '출륙금지령'을 내렸기 때문이다. 먼 바다로 나서지 못하는 제주사람들은 테우(떼배)를 만들며 삶을 살았다. 테우를 쓰면서 그물로 뜨는 방식으로 자리를 잡았다. 그러고 보니 자리 사냥은 핍박받는 제주사람들의 '살기 위한 선택'이었다. 그 선택이 이젠 우리에게 즐거움을 준다. 자리는 날 것으로, 구이로, 젓갈로 우리 제주사람의 품에 남아 있다. 누가 뭐래도 6월엔 자리만한 게 없다. 제주에서는 '자리'라고 부르지만 그들의 본 이름은 자리돔이다. 맛은 6월 장마철이 최고다. 산란기여서 뼈가 나긋나긋해 뼈째 썰어먹기에 그만이다 - 220


- 지금도 우리 할머니들은 신당을 찾는다. 솔직히 말하면 글쓴이의 어머니도 최소한 1년에 한 번은 신당에 들른다. 이유는 딱 한 가지다. 자식과 손자들이 아무 탈없이 잘살라고 그곳에서 무언가 읊어댄다. 그래야 마음이 편해지기 때문이다.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건 어느 종교에서나 마찬가지다. 구원은 기독교에만 있지 않다. 불교에도, 우리 할머니들이 믿는 민간신앙에도 있다. 경전이 있어야만 종교는 아니지 않는가. 어느 것이나 종교는 하나다. 그것이 제주사람들의 마음 깊숙이 자리한 것이라면 더 그렇지 않을까 - 234


- 족보는 얼마나 믿을 만한가. 이 글을 읽는 사람 가운데 족보를 믿는 사람들은 있을까. 우문을 꺼낸 이유는 계복학이라는 게 '불가지', 즉 알 수 없는 영역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한 세대를 대략 30년으로 잡곤 한다. 본격적인 족보가 만들어진 시기가 17세기, 즉 1600년대이니 지금으로부터 400년 전이다. 이때 만들어진 족보는 조상을 거슬로 올라가서 만드는데 최고로 올라가더라도 기원년이 시작이다. 세대를 기준으로 하면 고작 60세대에 지나지 않는다. 현대 사피엔스가 세상에 등장한 시기를 지금으로부터 15만 년 전으로 잡는다. 그걸 기준으로 한다면 제대로 된 우리 조상의 세대는 5,000세대여야 맞다. 그러나 계보학적으로는 길어야 60세대이니, 모든 조상의 99%는 알 수 없다는 답이 나오는 셈이다 - 286


- 언젠가는 이주민도 원주민이 된다. 그러기에 제주에 오고자 하는 이들은 제주를 먼저 알고 와야 한다. 제주에 먼저 온 이들도 마찬가지다. 어설프게 제주를 알고, '제주도가 이렇다'고 말을 해서는 곤란하다. 이주민들은 제주에 대한 공부에 열중하고, 나름대로 역작을 내놓기도 한다. 그러다 간혹 왜곡도 저지른다. 그런 왜곡을 볼 때 원주민들은 화가 난다. 그러니 충돌이 일어나게 된다. 제주에 이주를 꿈꾸시는 분, 이미 이주를 해오신 분들이 제주사랑이 넘치는 것은 좋지만, 원주민의 속마음을 우선 이해하려 했으면 좋겠다. 그래야 자연스럽게 이주민에서 원주민으로 성공적인 탈바꿈을 하게 된다 - 297


- 개발행위는 기억의 파괴를 부르는 일이다. 원도심에서 기억은 무척 중요하다. 기억은 동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가슴에, 머리에 차 있는 생각들이다. 원도심이 화두로 떠오른 건 그런 기억의 저장고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내게 뭔가를 했던 일이나 장소에 대한 애착을 갖는다. 그건 추억이다. 자신이 가진 추억을 되새기려고 원도심을 찾는다면 그게 바로 기억의 공간으로서 역할을 한다. 기억은 사라지지만 기억을 보존하는 방법으로는 기억이 지닌 것들을 '있게 놔두는' 것일 수도 있다 - 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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