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델 Model - 미래의 기회를 현재의 풍요로 바꾸는 혁신의 사고법
가와카미 마사나오 지음, 김윤경 옮김 / 다산3.0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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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케팅적으로 이 책의 제목은 ‘모델‘이 아니라 ‘비즈니스 모델‘이라고 했다면 어땠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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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터에서
김훈 지음 / 해냄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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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


소설 '공터에서'를 쓴 김훈 작가는 한국일보에서 신문기자 생활을 시작한 후 시사저널, 한겨레 신문 등에서도 일했다. 신문사 퇴사 후 전업 소설가로 살아온 김훈 작가는 '칼의 노래', '현의 노래', '내 젊은 날의 숲', '남한산성', '흑산', '강산무진', '자전거 여행' 등을 쓰며 동인문학상, 이상문학상, 황순원문학상, 대산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 책을 읽은 이유


김훈 작가님의 책은 처음 독서를 시작했을 무렵 '자전거 여행'을 통해 알게 됐다. '자전거 여행'은 읽은 지도 꽤 오래 되서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작가님의 문체만큼은 정말 매력적이었다는 것을 느끼고 이후에 나온 책이라면 모두 구매했을 정도다. 이번에 나온 소설인 '공터에서' 역시 책의 내용보다는 김훈 작가님의 작품이기에 구매를 했고 역시나 예상보다 더 뛰어남을 느낄 수 있었다.


# 줄거리


김훈 작가의 '공터에서'는 마 씨 집안의 가장인 아버지 마동수과 그의 아들 마장세, 마차세까지 192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의 모습을 담았다. 일제시대 만주 일대를 떠돌 수밖에 없었던 아버지 마동수가 겪은 파란만장한 세월과 해방 이후 찾아온 혼란과 한국 전쟁, 군부 독재 시절의 폭압적인 분위기, 대통령의 급작스러운 죽음, 언론통폐합, 급속한 근대화와 함께 찾아온 자본의 물결까지 한 시대의 다양한 사건에 관해 이야기한다.


소설 '공터에서'를 쓴 김훈 작가의 아버지 역시 소설 속 마동수와 비슷한 시기에 살다가 사망했다. 이에 김훈 작가는 자신의 그동안 생각했던 이야기를 소설에 담은 듯 공감 가는 문장으로 독자들을 매료시킨다. 한 시대를 살았던 아버지 마동수와 아버지가 떠난 후 남은 아들들의 모습을 바라보면 과거 아버지, 어머니들이 어떠한 생각으로 인생을 살았는지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다.


# 느낀 점


김훈 작가의 소설 '공터에서'를 읽다 보면 역시나 그의 문장력에 감탄이 나온다. 문장 하나 하나 놓칠 것이 없으며 그의 적나라하면서도 강렬한 표현은 '내 것'으로 만들고 싶어질 정도였다. 시대의 풍파를 몸소 겪었던 아버지 마동수의 삶을 시작으로 그의 아들인 마장세가 머나먼 이국땅에 살며 한국에 잠시 오더라도 가족을 만나지 않은 이유, 아버지, 어머니가 돌아가셨음에도 직접 찾아가지 않고 동생 마차세에게 돈만 보내주는 모습은 한편으론 불쌍하면서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의 핵심 인물이자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마차세 역시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후 뒤늦게 찾아온 그리움들을 일상 속에서 하나둘 발견하고 생전 아버지와 있었던 일들을 기억하면서 자신은 어떤 인생을 살아야 할 지 고민하는 모습이 보였다. 아버지, 어머니가 전쟁 통에서 만난 것처럼 혼란스러운 시대에 아내 박상희를 만나면서 가정을 이루고 자기 또한 아버지가 되어 가는 모습에서 나 역시 아버지가 됐을 때에 어떠한 마음이 들게 될 지 곰곰하게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김훈 작가의 소설 '공터에서'는 담담하게 이야기를 풀어내면서도 한편으론 강렬하게 다가온다. 최근 들어 국내 문학 쪽으로 책을 많이 읽지 않았었는데 김훈 작가님을 통해 국내 소설이 가진 매력을 느낄 수 있어 한동안은 그의 책들을 자주 찾을 것 같다.


# 기억하고 싶은 구절


마동수가 죽던 해에, 중앙정보부장 김재규가 대통령 박정희를 권총으로 쏘아 죽였다. 박정희는 5, 6, 7, 8, 9대 대통령을 지냈다. 박정희는 심장에 총알을 맞고 쓰러져서, '괜찮다. 나는 괜찮아'라고 중얼거렸다. 마동수의 죽음과 박정희의 죽음은 '죽었다'는 사실 이외에 아무 관련이 없다. 마동수의 생애에 특기할 만한 것은 없다 - 7


마지막 날숨이 빠져나갈 때 마동수의 다리가 오그라졌다. 마동수는 모로 누워서 꼬부리고 죽었다. 외출에서 돌아와서 안방 문을 열었을 때, 마차세는 아버지의 꼬부라진 육신을 보고 죽음을 직감했다. 아버지의 사체는 태어처럼 보였다. 죽은 육신의 적막은 완강했다. 돌이킬 수 없고, 말을 걸 수 없었다 - 9


병자의 성기는 까맣게 퇴색해서 늘어졌고 흰 터럭 몇 올이 남아 있었다. 사타구니 언저리에는 검버섯이 돋아났고 고환 껍질에 습기가 차 있었다. 이 성기가 어머니와 섹스해서 나를 잉태시킨 그 성기인가. 그 두 남녀가 섹스를 한다는 것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섹스는 그저 생리 현상일 수도 있으므로, 그런 의문은 성립될 수 없을 터이지만 아버지의 사타구니에 내려앉은 검버섯을 보면서 마차세는 의문의 절벽을 마주 대하고 있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가 있었을까 - 28


박상희의 목소리는 늘 비음이 섞여 있었다. '휴가 나왔니?'라고 말할 때 '니?'가 코 속에서 울렸다. 코 속이 아니라, 몸속의 깊은 동굴에서 울리는 소리처럼 들렸다. '니?'는 말하는 사람의 몸속을 통과해 나온 물기로 젖어 있었다. 박상희의 '니?'를 그림으로 그리자면 물 위에 번지는 동심원이 되겠지. 그 동그란 파문이 전화선을 타고 와서 마차세의 귀를 통해 몸속으로 들어왔다. '니?'는 동부전선 산악 고지와 서울 간의 거리를 단숨에 뛰어넘어서 마차세를 '니?' 앞으로 몰아세웠다 - 34


마차세는 관 옆에서 붙어 서서 입관을 지켜보았다. 죽은 아버지의 얼굴은 말을 걸 수 없어 적막했고, 거기에 아무런 삶의 자취가 남아 있지 않았다. 죽은 자의 얼굴은 자신이 죽었다는 것을 모르는 자의 대책 없는 무책임 속에서 편안해 보였다. 마차세는 아버지가 죽어서 더 이상 세상을 의식하지 못하고, 부대끼거나 쓸리지 않게 된 것에 안도했다. 그 안도감은 마차세가 어렸을 때, 술 취해 잠든 아버지를 보고 느낀 안도감과 같은 것이었다 - 44


이도순은 벽 쪽에서 돌아누워서 울었다. 터져 나오는 울음과 울음을 누르려는 울음이 부딪치면서 울음이 뒤틀렸다. 입 밖으로 세어 나온 울음이 몸속에 쟁여진 울음을 끝어냈다. 몸 밖의 울음과 몸 안의 울음이 이어져서 울음은 굽이쳤고, 이음이 끊어질 때 울음은 막혀서 끽끽거렸다. 그 울음은 남편과 사별하는 울음이 아니라, 울음으로써 전 생애를 지워버리려는 울음이었으나 울음에 실려서 생애는 오히려 드러나고 있었다. 몸속에 저렇게 맹렬한 폭발성 에너지가 쌓여서 조용한 일상이 되어왔던 어머니의 생애를 마차세는 짐작할 수 없었다 - 46


마동수의 죽음은 조간신문에 1단 기사로 실렸다. 마동수의 동지들이 그의 죽음을 신문사에 알렸다. 기사는, 고인이 1930년대의 상해에서 반식민 반제국의 선전 활동에 종사했고 임정의 외곽 조직에서 공연 단체를 조직해서 민족자결의 문예운동을 전개했다고, 모호한 어휘를 엮어놓고 있었다. 마차세는 아버지의 죽음이 신문 기사가 된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신문은 마동수의 영정 사진을 싣고 있었다. 이 사람이 날 낳았구나, 마차세는 신문에서 눈을 돌렸다 - 51


어머니 아버지, 그 소리는 자음이 없이 모음만으로 울리는 듯싶었다. 소리가 헤어날 수 없는 주술이 되어서 사람을 결박하는 힘을 마동수는 느꼈다. 그 주술의 힘은 아버지, 어머니의 'ㅓ' 모음과 'ㅣ' 모음 속에 들어 있을 것이었다. 이 주술의 사슬은 끊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모음들은 말하고 있었다. 이것이 무엇인지를 마동수는 알지 못했다 - 76


이 세상이 삭막하고 따분한 까닭은 이 뽕나무 밭에서 벌어지는 소유와 결핍,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가 시간 속에 축적되고 공간 속으로 확산되기 때문이라면서 하춘파는 인생하기지리호(인생은 왜 이리도 지리한가!)라고 일곱 글자를 써서 목발을 짚고 절뚝거리는 포르투갈 노인에게 팔았다 - 77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가 배에서 배로 이어지면서 바다 위로 흘러갔다. 아이고는 저마다의 몸 안에 갇혀 있던 폭발물처럼 터져 나왔다. 선단은 남항했고, 아이고는 해풍에 실려 북으로 흘렸다. 이도순은 남편이 배에 탔는지 알 수 없었다. 수송선 철문이 닫힐 때 문짝에 끼었다가 헌병의 곤봉에 맞아 물 위로 떨어진 사내가 남편이 아닐까 싶기도 했다. 남편은 아기를 업고 있었는데, 그 사내도 등에 무언가를 지고 있었다. 북청이는 의식이었는데, 첫 아이가 태어나서 피 냄새를 풍길 때 이도순은 그 습속에 거역할 수 없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이도순의 신랑은 상고를 나왔고 금융조합 서기 보조원이었으므로 딸 가진 아낙들은 이도순의 혼인을 부러워했다. 배 안에서, 남편은 보이지 않았다 - 100


이도순은 마동수의 수용소로 거처를 옮겼다. 이도순은 거처를 옮겨 간 경위를 잘 기억하지 못했다. 마장세와 마차세는 거기서 태어났다. 이년 터울이 났다. 가축우리에서 어떻게 두 아이가 생겨날 수 있는 것인지, 이도순은 잘 기억할 수 없었다. 땅 밑에서 풀이 돋고, 나무에 잎이 달리듯이 아이가 생긴 것이라고, 죽기 며칠 전에 이도순은 생각했다. 장남 마차세가 여자친구와 술 마시다가 "우리 엄마하고 아버지가 섹스해서 날 낳았다는 걸 나는 믿을 수가 없어"라고 말했는데, 마차세가 자신이 점지될 때의 사정을 정확히 알고 한 말은 아닐 테지만, 부모의 신산스런 삶과 그 사이에서 태어나는 일의 어이없음을 말한 것을 봐서 마차세의 의구심이 전혀 근거 없지는 않다 - 125


아버지는 왜 집에 오지 않는 것일까? 아니다. 아버지는 왜 집에 오는 것일까? 그 두 가지 의문이 동시에 떠올랐다. 마차세는 그 어느 쪽도 알 수 없었는데, 그 두 개의 의문은 한 개의 이문인 듯싶었다. 마차세는 아버지가 헤집고 다니느 세상의 가장자리가 떠오르지 않았다. 아버지는 그 가장자리를 넘어서 저쪽으로 아주 건너갈 것인지를 망설이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라고 마차세는 짐작했다 - 131


그날 아버지는 마차세를 데리고 이발소에 갔다. 동네 국민학교의 구내 이발소였다. 마차세는 아버지와 나란히 이발 의자에 앉았다. 거울에 비친 두 얼굴이 똑같아서 마차세는 흠칫 놀랐다. 어디라고 딱히 말할 수 없는 그늘까지도 두 얼굴은 닮아 있었다. 마차세는 헤어날 수 없는 사슬에 옥죄이는 느낌이었다. 방과 후의 학교 운동장은 비어 있었고 운동장 너머로 해가 지고 있었다. 노을이 내리는 빈 운동장이 이발소 거울에 비쳤고, 그 위로 닮은 얼굴 두 개가 떠 있었다. 거울 위쪽 벽에 - 132


이발사가 가죽띠에 면도칼을 문지르고 아버지의 의자를 뒤로 젖혔다. 아버지의 턱 밑이 거울에 비쳤다. 후골은 잔주름에 덮여 늘어졌고 수염은 끄트머리가 바스라져 있었다. 숨을 쉴 때마다 턱 밑이 벌컥거렸다. 그때도 아버지의 턱 밑은 뭍으로 올려져서 벌컥거리는 물고기의 아가미처럼 보였다. 아버지는 눈을 감고 있었다. 아버지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아버지의 숨이 가르릉거렸다. 뒤로 젖혀진 아버지의 머리 너머로, 빈 운동장에 어둠이 내렸고 저무는 마을에 불이 켜졌다. 마차세는 아버지가 어둠 속으로 증발해 버릴 것 같은 조바심을 느꼈다. 그 조바심에는 사슬을 끊으려는 충동이 섞여 있었다는 것을 그때 마차세는 알지 못했다 - 133


아버지는 삶에 부딪혀서 비틀거리는 것인지 삻음 피하려고 저러는 것인지 마장세는 알 수 없었지만, 부딪히거나 피하거나 다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아버지는 늘 피를 흘리는 듯했지만, 그 피 흘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삶의 안쪽으로 진입하지 못하고 생활의 외곽을 겉돌고 있었다. 아버지의 죽음은 노새나 말, 낙타처럼 먼 길을 가는 짐승 한 마리가 세상의 가장자리에서 얼씬거리다가 그 너머로 사라져서 보이지 않게 된 것처럼 느껴졌다. 아버지가 이 세상이 다시는 지분덕거릴 수 없는 자리로 건너갔다는 것은 어쨌든 아버지를 위해서 마지막으로 다행스런 일이었지만, 막상 죽음의 소식을 받고 보니 아버지가 건너간 자리는 아주 가까워서 아버지는 가지 않고 다시 이쪽으로 건너올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아버지가 땅 위에 발을 붙이지 못하고 겉돌고 헤매이게 되는 생애의 고통은 아버지의 죽음과 함께 소멸할 것이고 그 고통이 아무리 크고 깊다 한들 이 세상에 흔적을 남기지 못할 것이므로 아버지의 죽음은 살아 있는 사람이 휴- 하고 긴 한숨을 한 번 내쉼으로써 정리할 수 있을 만한 가벼운 것이기도 했지만, 그 한숨 한 번 내쉬기까지가 어째서 그토록 힘든 일이었을까를 마장세는 생각했는데 생각이 되어지지가 않았다 - 140


나는 왜 인연 없는 섬의 원주민 사내와 내 아버지의 죽음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일까. 내 아버지와 시누크의 아버지는 바닷물이 건너편 연안에 닿듯이, 철새가 대륙을 건너다니듯이 보이지 않는 인연의 사슬로 엮어져 있는 것인가. 마장세는 거푸 맥주를 마셨다. 바다는 어두워졌고, 긴 해안단애에 파도가 부딪혀서 인광이 절벽 위로 솟구쳤다가 흘러내렸다 - 152


초콜릿을 처음 먹었을 때 마장세는 정신이 아득했다. 미군 병장은 구두 닦은 값으로 동전 세 개를 주고 의자에서 일어났다. 병장은 주머니를 뒤져서 먹다 남은 초콜릿 반 토막을 땅바닥에 던졌다. 마장세는 초콜릿을 집어서 포장지를 벗겼다. 앞니로 잘라 먹은 자국이 나 있었다. 마장세는 초콜릿을 입안에 넣고 혓바닥으로 빨다가 보채는 이빨의 충동을 이기지 못해 씹어서 삼켰다. 아, 이런 세상이 있었구나, 그날, 새롭고 놀라운 맛의 세계가 마장세의 몸속에서 문득 열렸다. 햇빛이 강렬한 날이었다. 바다와 하늘에 빛이 가득했고, 미군 병장의 구두에서도 빛은 번쩍였는데 그렇게 힘센 맛이 마장세의 몸 안에 가득 찼다. 미군 군화의 번쩍임과 초콜릿 맛이 강렬함은 마장세의 마음속에서 연결되어 있었다. 맛이 목구멍의 끝 쪽으로 사라지면 맛의 기억은 더 강렬해졌다. 지나간 맛은 모두 헛것이었지만 헛것은 입안에 든 먹이보다 더 선명하고 구체적이어서, 지나간 맛과 아직 오지 않은 맛이 빈창자 속에서 뒤섞였다. 배가 고플 때는 햇빛이 더 강렬해 보였고 햇빛을 받는 해운대 모래에서 고소한 냄새가 났고, 먼바다 쪽에서 초콜릿 냄새가 밀려왔다 - 158


난 아버지를 묻을 때 슬펐지만 좋았어. 한 세상이 이제 겨우 갔구나 싶었지. 이런 사람이 다시는 태어나지 않기를 빌면서 흙을 쾅쾅 밞았어. 형은 그 힘들게 지나간 자취가 너무 힘들어서 견딜 수 없는 거지. 형은 아버지를 피해 다니려다가 또 다른 수렁에 빠져가고 있는 게 아닐까? 난 여기서 살 거야. 나도 결혼했으니까 아버지가 되겠지 - 184


마차세는 흐린 등을 켰다. 어둠에 파도 소리가 스몄다. 파도가 절벽을 때리고 깨질 때 푸른 인광이 일었다. 파도가 들어올 때, 소리는 어둠을 뒤덮으면서 밀려왔고, 파도가 물러설 때 소리는 어둠 너머로 밀려 나갔다. 들어오는 소리가 가득 찼고, 나가는 소리는 비어 있었는데, 발생 이전의 소리처럼 음정으로 구분되지 않았다 - 186


기호가 실물을 표현하는 능력을 갖는다는 것을 마차세는 긍정하기 어려웠다. 기호와 실물 사이에 허방이 있어서 거기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느낌이었다. 이 거듭되는 억 단위의 숫자를 읽을 때 마차세는 그런 두려움을 느꼈다. 기호가 실물인 것을 잊어버리고 거기에 부딪히면 죽거나 다칠 것이었는데, 기호는 실물과 사소한 관련도 없이 또 돌다가 사라지는 부표와 같았다. 해고되던 날 저녁에 사물함을 정리해서 조용히 회사를 떠나는 사람들도 그렇게 떠돌다가 사라지는 기호처럼 보였다 - 191


아버지가 죽어서 없어지고 난 후의 세상은 더욱 막막했다. 마차세는 그런 막막함에 쫓기듯이 결혼을 서둘렀고, 박상희는 마차세의 조바심을 짐작하고 있었다. 박상희는 마차세의 그 막막함과 서두름을 사랑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세상을 멀리 빙 돌아서 다가오는 사람의 우원한 회로를 마차세에게 말하지는 않았다. 그때 마차세는 결혼이 그 막막한 세상에서 몸 비빌 수 있는 작은 '거점'이 되어주기를 바랐다. 박상희는 생활을 구성하는 온갖 작고 하찮은 것들이 쌓여서, 그것들이 서로 인연을 이루고 질감을 빚어내서 마차세의 시간을 메워주기를 바랐다. 마차세가 아버지와 어미머니와 형의 지난날을 이야기할 때 박상희는 마차세의 목을 안고 마차세의 입안으로 입김을 불어넣어서 자신의 숨결과 몸 냄새를 마차세의 몸안으로 밀어 넣었다. 그런 저녁에는 밥상머리의 이야기가 길어져서 찌개가 식었다 - 199


밥 익는 냄새와 고등어를 굽는 냄새 속에서 죽은 아버지가 떠오르는 까닭은 알 수 없었지만, 그 연상 작용은 어쩔 수 없었다. 마차세는 어쩔 수 없다고 스스로에게 이해시켰고, 그 연상을 내버려두었다. 아버지가 세상에서 활착하지 못하고 떠돌면서 찾아 헤매던 것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그것이 왜소하고 초라한 것이었다 하더라도 무방할 것이고 부끄럽지는 않을 것이었는데, 그 초라한 것들을 세상에서 이루기는 왜 그렇게 어려운 것이었을까. 아버지에 대한 생각은 일상의 밥 먹기나 겨울의 추위나 음식 냄새의 끄트머리에서 살아났다 - 211


핸들이 자주 흔들려서 오토바이 백미러 속의 세상은 불안정했다. 세상은 영상이 되어 그 볼록거울에 비쳤는데, 영상은 깨져서 흩어졌고 또 나타났다. 8차선 도로 전체가 자동차의 엔진음과 에어브레이크의 비명에 덮여 있을 때도, 백머리 볼록거울 속의 세상은 적막했다. 소음에 찬 거리의 이면은 아무런 소리도 발생하지 않았거나, 발생한 소리가 귓속으로 건너오지 않는 무인지경의 적막이었다. 8차선 교차로 신호 대기선에서 백미러를 들여다보면서, 마차세는 중화기와 진지들이 눈에 덮이는 동부 산악 고지의 적막을 생각했고, 직장이 통폐합되어서 강제 실직당하고 사람들이 흩어져 돌아가던 날 저녁의 적막을 생각했다. 여러 적막이 백미러 안에 겹쳐 있었고, 신호가 바뀌면 마차세는 다시 엑셀을 당겨서 튀어 나갔다 - 231


임신의 기별은 몸속 깊은 곳에서 움트는 이물감이나 어지럼증 같았다. 기별은 멀고 희미했는데, 점차 다가와서 몸 안에 자리 잡았다. 낯선 것이 다가오고 또 자라서 몸 안에 가득 퍼져가는 과정을 박상희는 조용히 들여다보았다. 몸속의 어두운 바다에 새벽의 첫 빛이 번지는 것처럼 단전 아래에서 먼동이 텄다. 고등학교 여름방학 때 놀러 갔던 동해의 아침 바다는 어둠이 물러서는 시간과 공간 안으로 수평선 쪽에서 솟아오르는 빛의 입자들이 퍼졌고, 새로운 시간은 살아 있는 살까지 서로 부비듯이 다가왔다. 박상희는 스며서 가득 차는 빛들을 떠올렸다. 임신은 몸의 새벽을 열었다. 가끔씩 안개 같은 것이 목구멍을 넘어왔다. 몸속에 덮은 안개 속에서 해독할 수 없는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는 수런거리면서 이따금씩 가까이 다가왔다. 아직 발생하지 못한 세포들의 숨 쉬는 소리 같기도 했고, 우주공간을 날아가는 별들의 소리 같기도 했다.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무어라고 말하고 있었고, 말하고 있었지만 아직 말이 되어지지 않는 소리였다 - 270


단전 아래쪽에 희미한 진동이 느껴질 때, 박상희는 태어날 아기가 제 아버지를 닮았을 것인지를 생각했다. 그 생각에 마장세와 사진에서 본 시아버지의 모습이 겹쳐왔다. 그세 모습은 서로 멀리 떨어져 있었는데, 한 줄에 묶여 있었다. 줄은 좀처럼 끊어지지 않았다. 박상희는 몸속에 들여온 그 인연의 줄을 느꼈다. 박상희는 줄에 묶여서 괴로워하는 것들을 자신의 몸으로 덮어줄 수 있을 것인지를 생각했다. 몸은 몸속에 들어온 것을 받아내고 있었다. 아침에 마차세가 출근하면, 박상희는 공원에서 산책했고, 오후에서는 서너시간쯤 디자인 일을 했다. 박상희는 자주 눕고, 조금씩 자주 먹었다. 박상희는 생오이, 찐 감자, 찐 옥수수, 양파, 자두, 살구를 먹었다. 몸속에서 먼 몸이 자라고 있었다 - 2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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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과 DSLR로 상상을 담다
신상우 지음 / 아이생각(디지털북스)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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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 사진을 찍는 일을 하고 있는데 이 책을 통해 사진 실력이 더 늘어났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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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판 세트]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 전2권 (양장, 에코백 포함) - 현실 세계 편 + 현실 너머 편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채사장 지음 / 한빛비즈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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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 저자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을 쓴 채사장은 지난 2015년 국내 저자 1위를 기록하고 2016년에는 밀리언셀러 작가가 되었다. 현재는 글쓰기와 강연 등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인문학을 쉽고 재미있게 알리는 일을 하고 있다. 총 누적 다운로드 1억 건을 기록한 팟캐스트 '지대넓얕'의 진행자로 활발히 활동 중이다. 그는 성균관대학에서 공부해 학창시절 내내 하루 한 권의 책을 읽을 정도로 지독하게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많았다.


# 책을 읽은 이유


평소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거나 대화를 나눌 때 지식이 부족하여 말을 잇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다방면에서는 커녕 우리나라와 내 주위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사건과 이슈에 대한 현상을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우연히 알게 된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은 기초 상식이 부족한 나에게 자양분 역할을 해줄 것이라는 기대감에 책을 펼치게 되었다.


# 줄거리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은 총 두 권으로 1권에서는 역사, 경제, 정치, 사회, 윤리 편으로 구성돼 있다. 생산수단이 생겨나게 된 원시시대부터 고도 노예제사회, 중세 봉건제사회를 지나 근대 자본주의, 제국주의, 신자유주의까지 역사와 경제, 정치, 사회의 모습에 대해 이야기한다.


# 느낀 점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을 읽고 느낀 것은 저자 채사장의 글쓰기 실력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누구나 알기 쉽도록 어려운 문제도 가볍게 쓴 그의 문체가 다방면으로 지식을 가지고 있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책을 읽고 있는 내내 느끼게 됐다. 


무엇보다 역사에서부터 경제, 정치, 사회, 윤리로 넘어가는 동안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풀이하면서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지식이 늘어나는 느낌을 들게 한다. 책을 읽으며 느낀 것은 현재 우리 사회의 모습이 계속해서 유지해나갈 수 밖에 없느냐부터 진보와 보수의 대립이 경제 현상과의 연관성에 대해 알게 됐다.


사실 이 책에 나오는 내용 대부분은 학창시절에 배웠던 것들을 상기시킨다. 하지만 일상 생활을 하면서 잊혀지거나 다른 이유로 알지 못했던 지식을 습득시켜준다. 무엇보다 어렵지 않아 술술 읽어나가면서 독자로 하여금 지식이 늘어나는 기쁨을 누리게 해주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 기억하고 싶은 구절


원시부터 근대까지의 역사를 움직이는 핵심 개념이 '생산수단'이라면, 다음으로 근대부터 현대까지의 역사를 움직이는 핵심 개념은 '자본주의의 특성'이다. 구체적으로 말해서, 자본주의가 태생적으로 갖는 모습으로서 '공급량이 언제나 수요량보다 많다'는 특성이다. 여기서의 공급은 시장에 생산물을 제공하는 것이고, 수요는 그러한 생산물을 사려는 욕구나 행위를 말한다 - 30


'신'은 요청된다. 지배자는 신을 부른다. 신이 진짜로 응답을 하거나 말거나 그건 중요하지 않다. 신이 진짜 있는지 없는지의 문제는 지배자의 관심사가 아니다. 지배자 자신이 부를 수 있는 '신'이라는 언어만 있으면 된다. 왜냐하면 신은 지배자가 사회를 지배할 권리를 부여받기 때문이다. 독단적으로 지배하고자 하는 욕망을 지닌 자일수록, 그의 신앙은 절실하다 - 41


서구 사회의 문화와 역사를 관통하는 근원적인 배경은 크게 두 가지다.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이 그것이다. 헬레니즘은 고대 그리스, 로마에 뿌리르 두고 있는 역사적 사조로서, 우리가 그리스, 로마 신화라고 하면 떠오르는 제우스나 아폴론 등의 다신의 이미지와 연관되어 있다. 반면 헤브라이즘은 이스라엘 민족과 야훼나 여호와라고 불리는 유일신인 하나님과의 계약에 대한 역사적 흐름으로서, 우리가 그리스도교라고 하면 떠오르는 것들을 말한다. 쉽게 정리하면 서구는 두 가지 문화를 뿌리로 한다. 그리스, 로마 신화와 그리스도교 - 45


공장은 끝없이 생산물을 쏟아낸다. 공장이라는 생산수단이 있기 전인 중세에 물건을 사기 위해서는 제작자에게 필요한 물품을 미리 주문했다가 완성된 이후에 받을 수 있었다. 즉 수요가 있는 만큼 공급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근대가 되면 상황은 바뀐다. 공장은 주문이 있기 전에 미리 물품을 대량으로 생산해낸다. 물품이 필요한 사람은 기다릴 필요 없이 시장에 가서 이미 생산된 물품을 구입하면 된다. 이러한 특성, 즉 물품을 구입하려는 욕구보다 이미 생산된 물품이 더 많은 상태가 자본주의의 특성이다 - 65


산업화를 통해 자본주의가 된 국가들은 자본주의의 특성인 공급과잉 문제에 필연적으로 봉착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수요를 늘리기 위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야만 한다. 시장을 개척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식민지를 만드는 것이다. 식민지를 만들어 원료를 공급받고 가공품을 판매하면 된다. 산업화가 빠르게 진행된 유럽이 필연적으로 거칠 역사의 방향이다. 실제로 산업화된 유럽의 국가들은 식민지를 차지하기 위해 세계로 뻗어나갔다. 영구은 인도로 갔고, 스페인은 남미로 갔고, 프랑스는 아프리카로 갔다. 그곳에 식민지를 만들어, 자국에서 만든 생산품을 강제로 판매했다. 대표적인 예가 인도다. 영국은 인도를 식민지화한 후에 자국의 면직물을 인도에 판매하고 그 대가로 아편을 받았다. 그리고 받은 아편을 중국에 판매한 대가로 홍차와 막대한 부를 얻었다. 어쨌거나 인도는 영구의 면적물 산업에 종속되면서, 많은 자원과 부를 영국에 빼았겼다. 면직물로 인해 국가 전체가 영국에 종속된 것이다. 그래서 간디는 영국산 면직물의 수입을 막기 위해 옷을 스스로 제작해서 입자는 운동을 펼쳤다. 우리가 간디 하면 물레를 감고 있는 모습을 떠올리는 것은 이 때문이다. 물레는 영국산 면직물에 대한 거부이며, 궁극적으로 영국 제국주의에 대한 저항을 상징했다 - 70


실제로 다수의 민간인은 고통스러울 수 있으나, 전쟁은 일부 부르주아 혹은 일부 국가들에 막대한 부를 창출해준다. 자본주의는 전쟁과 가까울 수밖에 없다. 전쟁은 자본주의 국가들을 유혹한다. 사실 오늘날의 자본주의를 유지해주는 핵심 요소는 두 가지다. 하나는 전쟁이고, 다른 하나는 유행이다. 전쟁과 유행은 자본주의라는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쌍둥이 형제라 할 수 있다. 전쟁이 공급과잉의 문제를 단번에 해소하듯, 유행은 필요를 뛰어넘는 막대한 소비를 창출해서 공급과잉 문제를 해소한다. 충분히 사용할 수 있는 옷과 핸드백들이 매년 옷장 구석에 쌓여가거나 쓰레기통으로 향한다. 전쟁과 유행 없이 자본주의를 유지하기는 어렵다 - 77


우리는 보통 역사를 영웅사관적인 시각으로 바라본다. 영웅사관이란 평범한 보통 사람들의 능력을 초월하는 천재적이고 카리스마 넘치는 특정 인물이 역사를 이끌어가는 주인공이라고 보는 관점이다. 이와 반대되는 역사관이 민중사관이다. 민중사관은 역사를 이끌어가는 주체를 민중으로 본다. 우리가 세계대전을 영웅사관의 시각으로 본다면, 세계대전을 일으킨 사람은 히틀러가 된다. 반면 세계대전을 민중사관의 시각으로 본다면, 세계대전을 일으킨 원인은 경기침체의 고통을 극복하고자 했던 독일 민족의 의지가 된다. 영웅사관과 민중사관은 어느 것은 옳고 다른 것은 그르다기보다는, 역사 해석을 다채롭게 해주는 역사 사유의 두 시각이라고 하겠다 - 89


'국가'는 요청된다. 국가라는 개념은 신의 개념과 마찬가지로 지배를 정당화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그리고 특히 '애국'에 대한 강요는 지배자들을 편리하게 한다. 그래서 애국은 국가적 차원에서 장려되고 교육된다. 애국자와 국가유공자에 대한 보상과 기념 절차에 국가적 차원의 지원이 이루어지고, 사회는 이들을 지칭하는 어휘를 검열하고 교정한다. 반대로 애국과 거리가 먼 사람들에게는 공공연한 정치, 사회적 압력이 가해지고, 이들을 지칭하는 어휘들에는 거칠고 모욕적이며 배타적인 언어들이 허용된다. 그러나 '국가'에 대한 요청은 자본주의만의 특성은 아니다. '신'을 요청할 수 없는 모든 지배 권력은 애국을 장려한다. '신'과 '국가'에 대해 객관적으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여기서 '신'과 '국가'에 대해 객관적으로 사고한다는 것이 '신'과 '국가'의 존재를 부정해야 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신'과 '국가'의 객관적인 의미를 초월해서 사회, 정치적으로 과장되고 포장된 의미가 나에게 강요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신중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 101


사람은 타인이 아닌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야만 한다는 인간적 한계로 인해서, 자기 자신을 중심으로 세상을 나름대로 해석하며 살아간다. 자신이 경험한 만큼의 세상만을 이해하며 사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우리는 과거를 상상할 때, 과거의 사람들도 우리와 비슷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비슷하게 생각하고, 비슷하게 느끼고, 비슷하게 소비했다고 말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지금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세계는 신자유주의라는 매우 소비적이고 시장중심적인, 인류 역사상 유례가 없는 매우 독특한 세계다. 신자유주의 체제에 살지 않았던 과거의 사람들은 우리와는 너무도 다르게 살았을 것이다. 다른 세계에서 산 만큼 지금의 우리와는 다르게 생각하고, 느끼고, 생활했을 것이다. 지적 대화를 위한 첫 여행지가 역사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금 내가 발 딛고 있는 세계가 매우 독특한 세계임을 아는 것, 내가 사는 세계가 지금까지의 인류 전체가 살아왔던 평균적이고 보편적인 삶의 모습은 아님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이 독특한 세계에 발 딛고 서 있는 독특한 자신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다. 왜곡된 '세계'에 서 있는 왜곡된 '나'를 이해하는 것, 이것이 지적 대화를 위한 가장 기본적인 준비다 - 104


빈부격차가 커지는 원인은 잉여생산물이 아니라 생산수단에 있는 것이다. 생산수단이 발생시키는 사회적 영향력 때문에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개인이 생산수단을 가지지 못하게 했다. 대신 자본가의 생산수단을 빼앗아서 노동자에게 돌려주려고 했다. 노동자가 생산수단을 공동 소유하고 국가가 이를 관리하는 것이다. 이렇게 국가가 생산수단을 관리하는 것을 '국유화'라고 한다. 반대로 개인이 생산수단을 소유할 수 있게 하는 것을 '민영화'라고 한다 - 125


초기 자본주의는 시장의 자유만이 존재하는 경제체제다. 그리고 후기 자본주의는 초기 자본주의이 문제점을 극복하여 등장하는데, 시장의 자유를 축소하고 정부가 시장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경제체제다. 다음으로 신자유주의는 후기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비판하며 등장하는데, 정부의 개입을 축소하고 시장의 자유를 확대하려는 경제체제다. 마지막으로 공산주의는 시장의 자유는 인정하지 않고, 정부의 강력한 개입과 통제만이 존재하는 경제체제다 - 127


수요는 없는데 물가는 오르는 상황, 다시 말해, 경기는 침체하는데 인플레이션이 발생한 이 상황을 어려운 말로 '스태그플레이션'이라고 한다. 이런 거지 같은 상황은 우리가 앞에서 봤던 자본주의의 특성으로 인해 발생했던 상황과 정반대다 - 142


공산주의는 쉽게 말해서, 생산수단을 노동자들이 공동 소유하자는 이념이다. 생산수단을 공동 소유하려는 것은 생산수단을 개인이 독점하면 그 사람이 권력을 갖고, 타인을 지배하고 착취하기 때문이다.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를 없애기 위해서는 생산수단을 누군가 독점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그래서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모든 생산수단이 국가에 의해 관리된다 - 159


사회, 경제적 문제를 해결하고 노동자 중심의 세계를 만들어내는 주체를 노동자 스스로 보는 입장을 공산주의라고 한다. 반면 노동자는 실제로 스스로를 극복할 능력을 갖추지 못했으므로 엘리트계급 또는 부르주아들이 스스로의 권리를 내려놓고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해나가야 한다는 입장을 사회주의라 한다. 이는 누가 사회를 바꿀 수 있는지에 대한 입장 차이로 공산주의와 사회주의를 구분하는 것이다 - 163


성장과 분배는 기본적으로 반비례의 관계를 갖는다. 성장을 추구하면 분배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반대로 분배를 추구하면 성장에 문제가 발생한다. 물론 성장이나 분배를 주장하는 입장이 다른 입장을 절대적으로 거부하거나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성장을 주장하는 입장은 우선 성장을 시키고 분배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분배를 주장하는 입장은 우선 분배가 이루어져야 성장도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맞는 말이다. 성장과 분대를 대립되고 모순되는 개념은 아니다. 문제는 시기다. 언제 분배할 것인가? '우선' 분배하자는 입장과 '이후'에 분배하자는 입장의 거리가 너무도 멀어 보인다. 당장 오늘의 삶이 궁핍한 이에게 이후에 찾아올 미래 사회의 성장은 무의미하다. 또한 다국적 기업의 위협에 전력을 다해 저항하며 기술의 발전을 위해 힘쓰는 기업에 우선적인 분배를 위한 세금 인상은 기술 투자 의욕을 저하시킨다 - 180


신자유주의는 정부의 개입을 비판하고 시장의 자유를 중시하는 체제다. 신자유주의가 그나마 최선의 체제이므로 계속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은 현재의 사회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자는 입장이다. 그래서 우리는 신자유주의를 옹호하는 입장을 '보수' 혹은 '우파'라고 한다. 보수란 안정 지향적인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신자유주의를 유지하려는 입장을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아무리 새로운 것과 변화를 추구하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지금의 신자유주의를 옹호한다면 보수에 속한다고 하겠다 - 197


신자유주의를 비판하는 입장을 '진보' 혹은 '좌파'라고 한다. 이들은 시장의 자유를 중시하는 신자유주의의 입장을 비판하고, 정부의 개입이 필요함을 주장한다. 그런데 정부의 개입을 추구하는 입장은 매우 다양하다. 대표적으로는 후기 자본주의와 공산주의가 있다. 사회주의, 사회민주주의도 여기에 포함되고, 아예 산업화나 국가 자체를 비판하는 환경주의자나 무정부주의자들도 신자유주의를 거부한다는 점에서 진보에 포함된다. 이와 같이 정부의 개입을 추구한다는 공통점으로 인해 진보는 전혀 다른 체제들을 동시에 지칭하게 된다는 점이 흥미롭다. 예를 들어 후기 자본주의는 분명히 시장을 인정하는 자본주의 체제다. 반면에 공산주의는 시장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체제다. 이렇게 이질적인 두 체제는 신자유주의를 비판한다는 공통점으로 인해 함께 진보로 지칭된다. 다만 오늘날 일반적으로 진보라 할 때 그것이 지칭하는 것은 후기 자본주의나 사회민주주의다 - 198


각각의 정치 이념이나 정당들은 스스로를 상징하는 차별적인 색상을 가지고 있다. 역사적 측면을 고려할 때, 세계적으로 자유주의는 파랑색을, 사회주는 빨간색을 상징색으로 사용해왔다. 그 기원은 프랑스 대혁명에 있다. 프랑스 국기인 삼색기가 파랑, 흰색, 빨강으로 나뉘어 있는 것도 이와 연결된다. 이 삼색기는 절대왕정에 저항한 시민혁명 정신을 표상하고 있다. 각각의 색깔은 자유, 평등, 박애를 상징한다. 즉 파랑은 자유, 흰색은 평등, 빨강은 박애인 것이다. 우선 공산주의가 빨강을 상징색으로 선택하면서 자연스럽게 자본주의는 자유를 상징하는 파랑을 선택하게 되었다. 이러한 색상에 의한 이념 표식은 일반적으로 널리 사용되어왔다 - 212


자본가와 노동자는 사회에서 가장 대립적이고 첨예한, 화해할 수 없는 경제집단이다. 사회를 자본가와 노동자의 대립으로 구분하는 시각을 갖는 것은 사회 현상을 명료하게 이해하는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인 방법이다. 더 단순하게 말하면, 사회의 모든 문제는 자본가와 노동자의 대립에서 발생한다고도 할 수 있다. 그리고 보수와 진보의 개념도 정확히는 자본가와 노동자의 이익 대립에서 발생하는 개념으로 봐야 한다. 권위와 부에서 앞서 가는 자본가의 목표는 뒤따라오려는 노동자와의 차이를 더 벌리거나 유지하는 것이고, 권위와 부를 가지지 못한 노동자의 목표는 앞서 가는 자본가와의 거리 차이를 좁히는 것이다. 궁긍적인 측면에서 노사의 협력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노사가 협력했다고 할 때, 그것의 실제 의미는 노조와 사측 중 누군가는 이익이 되었고 누군가는 손해를 감수했다는 것이다.  혹시나 노조와 사측이 이익의 절충안을 찾았다 할지라도, 그것은 단기적이고 불안한 적과의 동침일 수밖에 없다. 자본가의 이익을 우선할 것이냐, 노동자의 이익을 우선할 것이냐에 대한 정치적 입장이 보수, 진보 구분의 본질이다 - 222


사회에서 발생한 특정 사안에 대해 이해하기 위해서 신문을 보고 정보를 검색하는 것은 실제 그 사안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사회 문제를 보수와 진보로 구분하지 못하고, 자본가와 노동자의 대립으로 구분하지 못하고, 시장의 자유와 정부의 개입 간의 갈등으로 구분하지 못하고, 세금의 인상과 인하의 관점에서 보지 못하는 사람은 세상이 혼란스럽고 복잡하며 어렵다 - 237


엘리트주의, 독재는 치명적인 한계를 갖는다. 그것은 잘 알려진 것처럼 소수에 의한 정치는 최고 권력자를 쉽게 타락하게 만든다는 데 있다. 불완전하고 갈등이 끊이지 않는 체제임에도 불구하고 현대 사회에서 민주주의가 채택되고 유지되는 것은 인류가 역사적 경험들을 통해 소수의 독재가 얼마나 치명적인 문제점과 한계를 갖는지를 확인했기 때문이다. 고대와 중세의 절대군주 아래서 백성들은 노예였으며, 근현대에 등장한 독재자들, 독일의 히틀러, 소련의 스탈린, 중국의 마오쩌둥, 북한의 세습적 독재자들은 개인적 실책과 부패로 인해 민중을 폭력적 상황에 처하게 만들었다 - 261


이상적 개인에 의한 이상적 정치는 실현 불가능하다. 독재자나 민주주의자나 어쩔 수 없이 특정 집단의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고, 이로써 필연적으로 소외되고 희생되는 집단이 생긴다. 모두를 만족시킬 이상적인 정치는 없다. 따라서 이상적인 독재자, 엘리트는 불필요하다. 정치에서 요구되는 것은 뛰어난 인물이 정답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이익에서 충돌하는 이해당사자들이 대화의 협의를 통해 이견을 조율할 절차가 마련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익의 직접적인 당사자가 정치에 직접 참여할 여건을 마련한다는 점에서 민주주의는 엘리트주의의 비현실성을 압도한다 - 264


개인주의는 국가나 사회보다 개인이 어떠한 식으로 우선한다는 사상을 말한다. 반면 집단주의는 개인보다는 국가나 사회가 더 우선한다는 사상이다. 개인주의나 집단주의는 어떤 것이 옳고 그른지 따지기 어려운 이념과 신념의 측면을 갖는다. 사실상 이 두 가지 견해는 상호 논박되지 않는다. 다만 개인마다 차이가 있겠으나, 일반적으로 개인주의는 서구에서 지지되어왔고, 집단주의는 동양에서 지지되어온 측면이 있다 - 301


대중은 정직하고 순박해서, 미디어와 사회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사실만이 진짜 사실이라 믿고, 그들이 자신을 속일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들은 미디어가 보여주는 세계 이면에 대해 의심하는 행위를 무가치하고 반사회적인 행위인 양 거부한다. 의심 없는 대중은 사회와 미디어의 말을 앵무새처럼 따라 하고, 그들이 욕하는 대상을 같이 욕하고, 그들이 칭찬하는 대상을 같이 칭찬하며, 웃기면 웃고, 울리면 운다. 하지만 단적으로 말해서 당신의 삶이 현재 비참한 상태에 놓여 있다면, 재벌기업의 특정 제품이 세계 점유율 1위가 되고 스포츠 스타가 세계권대회에서 금메달을 따는 것은 당신에게 절대 중요한 일이 아니다. 미디어가 재벌기업과 스포츠 스타를 칭찬하고 열광하는 모습을 반영한다고 해서, 그 열광을 앵무새처럼 따라 할 필요는 없다. 그것은 내 고등학생 자녀가 자기 반에 전교 1등이 있다고 나에게 자랑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 327


의무론과 목적론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 시간성을 토대로 이해해 볼 수도 있다. 시간의 과거, 현재, 미래의 직선을 생각해보자. 현재의 행위를 할 때, 과거부터 주어져 있는 의무를 고려해서 행동한다면 의무론자가 되는 것이고, 미래에 발생할 결과를 고려해서 행동한다면 목적론자가 되는 것이다. 결과를 고려한다는 점에서 목적론을 '결과주의'라고도 부르고, 결과를 고려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의무론을 '비결과주의'라고 부르기도 한다 - 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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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공부법 - 모든 공부의 최고의 지침서
고영성.신영준 지음 / 로크미디어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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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에서 ‘완공‘ 검색시 ‘완벽한 공부법‘이 나오지 않는다. 처음엔 책 제목이 ‘완공‘인 줄 알고 계속 찾다가 안 나오길래 예스24에서 검색했더니 ‘완벽한 공부법‘이라고 나와서 다시 알라딘에서 찾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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