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토 청목 스테디북스 88
장 폴 사르트르 지음, 김미선 옮김 / 청목(청목사) / 2003년 5월
평점 :
절판


  지금은 재즈가 들려오고 있다. 거기에는 맬로디가 없고, 오직 음과 짧은 진동의 무수한 연속이 있을 뿐이다. 그 진동은 쉬지 않고 계속된다. 그것은 나타나게 했다가 없애곤 하는 확고한 질서가 있어 그 진동들로 하여금 잠시도 숨을 돌리고 스스로를 위해 존재할 여지를 주지 않는다. 진동은 흐르다가 점차로 가빠져서 나를 한 대 후려갈기고 사라진다. 나는 그것을 멈췄으면 좋겠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다. 만약 내가 그 진동의 하나를 멈춘다 해도 내 손가락 사이에는 평범하고 힘없는 한 소리밖에는 남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그것들이 사라져 버리는 것을 용납해야 하며, 그 소멸을 내가 차라리 '바라기' 까지 해야 할 것이다. 나는 그렇게도 혹독하고 힘찬 인상을 거의 알지 못한다.

  나는 훈훈함을 느끼기 시작한다. 행복을 느끼기 시작한다. 그것은 아직은 이상할 게 조금도 없다. 그것은 '구토' 속의 조그마한 행복인 것이다. 이 행복은 끈적끈적한 물구덩이 밑에, '우리의' 시간, 즉 자줏빛 멜빵과 옴푹 팬 의자의 시간의 밑바닥에 펼쳐져 있다. 그것은 폭이 넓고 말랑말랑한 순간순간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둘레에서 기름의 띠처럼 번지고 있다. 그 행복은 생겨나자마자 이내 늙어 버린다. 20년 전부터 나는 그것을 알고 있는 것 같다. 

  다른 행복도 있다. 내 외부에는 그 강철로 된 허리띠, 음악의 협소한 연속이 있다. 그것은 우리의 시간을 한쪽에서 또 다른 쪽으로 가로질러 놓고, 그것을 거부하고 날카로운 작은 송곳 같은 것으로 우리의 시간을 갈기갈기 찢어놓는다. 우리의 시간과는 다른 시간이 있는 것이다.

 

  (-) 몇 초 후면 흑인 여자가 노래를 부를 것이다. 그것은 불가피한 일 같다. 그만큼 이 음악의 필연성은 강하다. 이 세상이 주저앉아 버린 그 시간, 그 시간으로부터 오는 그 아무것도 이 필연성을 방해하지는 못한다. 그 필연성은 질서에 따라 스스로 멈출 것이다. 내가 그 아름다운 목소리를 좋아한다면 바로 그렇기 때문일 것이다. 성향이라든가 슬픈 곡조 때문이 아니다. 그 소리는 오래 전부터 수많은 음에 의해서 준비된 결과이며, 그 결과를 만들어내고자 수많은 소리가 죽어 버렸다. 그런데도 나는 불안하다. 음반이 멈추려면 어떤 대수로운 일이 필요가 없다. 용수철이 망가진다든가 아돌프가 기분을 바꾸면 그만이다.

  강인함이란 것이 그렇게도 약해질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야릇하고 감동적인가. 그것을 중단시킬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모든 것이 그것을 파괴해 버릴 수도 있다. 마지막 소리가 꺼졌다. 다음에 오는 짧은 침묵 동안에 나는 됐다고, '무슨 일인가 일어났다'고 절실히 느꼈다. 

 

  무엇인가가 시작되지만 그것은 곧 끝나기 마련이다. 모험은 연장되지는 않는다. 모험은 그 자체가 사멸됨으로써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 사멸을 향해, 나는 되돌아오지 않고 끌려간다. 순간순간은 그것을 이어오는 순간을 이끌기 위해서 생겨난다. 그 모든 순간에 나는 온 마음의 애착을 느낀다. 그 모든 각각의 순간은 유일한 것이며, 아무것과도 대치될 수 없다는 것을 나는 안다. 그러나 그것이 소멸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아무런 짓도 하지 않을 것이다. 

 

  내 생각은 이렇다. 가장 평범한 사건을 모험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우리는 그것을 남에게 '이야기하기'만 하면 되고도 남는다. 그것이 바로 사람이 속고 있는 점이다. 인간은 늘 이야기를 하는 자이며, 자기의 이야기와 타인의 이야기에 둘러싸여서 살고 있다. 그는 이야기를 통해서 그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을 본다. 그리고 또 그는 마치 남에게 이야기나 하는 것처럼 자기의 삶을 살려고 애쓴다.

  그러나 사느냐, 이야기하느냐 둘 중의 하나를 택해야만 한다. 

 

  인간이 살고 있을 때는 아무 일도 생기지 않는다. 환경이 바뀌고 여러 사람이 들어 왔다가 나가고, 그뿐이다. 결코 출발이라는 게 없다. 나날이 아무런 리듬도 이유도 없이 그저 지나갈 뿐이다. 그것은 끊임없고 단조로운 덧셈에 불과하다. 가끔 사람들은 부분적인 결산을 한다. 이를테면 '나는 3년간 여행을 했다. 부빌에 온 지 3년이 된다고 말하는 것이다. 결말도 역시 없다. 아내와 자식과 도시를 한꺼번에 떠나는 일은 결코 있을 수 없다. 그리고 모든 것이 비슷하다. 상하이, 모스크바, 알제리도, 2주일이 지나면 모두가 같다. 때로는 드문 일이지만ㅡ사람은 결말을 짓는다. 어떤 여자와 붙어 살다가 구차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번갯불과 같은 순간이다. 그 다음에는 행렬이 다시 시작된다. 사람은 다시 시간과 날짜의 덧셈을 시작한다. 월, 화, 수, 4월, 5월, 6월, 1924년, 1925년, 1926년.

 

  나는 혼자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각자의 보금자리로 돌아가고 없다. 그들은 라디오를 들으면서 석간 신문을 읽고 있다. 일요일은 이제 씁쓸한 맛만 남겼고, 생각은 이미 월요일에 가 있다. 그러나 나에게는 월요일도 없고 일요일도 없다. 있는 것이라곤 무질서하게 밀려오는 나날들과, 그리고 번갯불같이 일어나는 마음 속의 움직임 뿐이다. 

 

  (-) 비가 온다. 비는 더러운 유리창들을 가볍게 때린다. 거리에 아직 가장을 한 아이들이 있다면 비는 종이로 만든 가면을 적셔 더럽게 만들 것이다.

  웨이트리스는 전등을 켠다. 2시밖엔 안 됐는데 하늘은 컴컴하다. 바느질을 하기에는 어둡다. 부드러운 빛, 사람들은 집집마다 전등을 켰을 것이다. 그들은 책을 읽다가 창문 너머로 하늘을 올려다본다. 그들에게 있어서는‥‥‥ 그것은 별문제이다. 그들은 다른 방법으로 늙어 갔다. 그들은 유산이라든지, 선물에 둘러싸여 살고 있으며, 가구 하나하나가 추억이다. 조그마한 추가 달린 시계, 메달, 초상화, 조개, 문진, 병풍, 숄, 그뿐인가, 술병이 잔뜩 들어 있는 장식장, 옷감, 낡은 옷, 신문 등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모든 것을 보존했다. 과거, 그것은 소유자의 사치다.

  어디에 내 과거를 간직해 둘 수 있을까? 사람은 자기의 과거를 호주머니에 넣어둘 수는 없다. 과거를 정돈하기 위한 집을 한 채 가져야만 한다. 나는 내 육체밖에는 가진 것이 없다. 자신의 육체만 가지고 있는 아주 고독한 사람은 추억을 간직할 수가 없다. 추억은 육체를 거쳐서 지나가 버린다. 나는 슬퍼해서는 안 된다. 나는 자유롭기만 했으니 말이다. 

 

  (-) 갑자기 나는 진실을 알았다. 이 사람은 머지않아 죽을 것이다. 그도 이미 잘 알고 있다. 거울에 비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을 게다. 매일매일 그는 조금씩 결국 썩고 말 시체의 모습과 비슷해진다. 그들의 경험이란 그런 것이다. 가끔 내가 경험에서 죽음의 냄새가 난다고 한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경험, 그것은 그들의 마지막 요새다. 의사는 그 마지막 요새를 믿으려고 한다. 그는 참을 수 없는 현실에 대하여 눈을 감고 싶은 것이다. 고독하고, 알아낸 것도 없으며 과거도 없이 지성은 우둔해지고 육체는 무너져 간다는 그 비참한 현실에 대하여. 

 

  (-) 내 생각에는 오늘의 세계과 내일의 세계와 유사하다는 것은 게으른 탓인 것 같다. 오늘이야말로 변화하고 싶어하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모든 것', '모든 것'이 일어날 수 있었다.

 

  나는 그에게서 결점 찾기를 단념했다. 그러나 그가 나를 놓아 주지 않았다. 순간 나는 그의 눈 속에서 냉정하고 무자비한 비판을 알아챘다.

  그 때 나는 우리를 갈라놓고 있는 모든 것을 깨달았다. (-) 그의 비판은 칼날처럼 나를 들고, 내 존재의 권리에 대해서도 의문을 던졌다. 그것은 정말이었다. 나는 항상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나는 존재할 권리가 없었다. 나는 우연히 나타나서 돌처럼, 식물처럼, 세균처럼 존재하고 있었다. 내 생명은 되는대로 여러 방향으로 뻗어갔다. 그 생명은 간혹 애매한 신호를 나에게 보내기도 했지만 아무 결과도 없는 윙윙 소리 밖에 나는 느끼지를 않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미 죽어 버린 흠잡을 데 없는 그 미남자에게 있어서, 국방군 파콤의 아들인 장 파콤에게 있어서는 전혀 달랐다. 심장의 고동이라든가 그의 내부기관의 희미한 소리가 그에게는 순간순간의 순수한 작은 권리와 같은 형태를 띄고 있었다. 60년간 그는 확고하게 존재의 권리를 행사했다. 훌륭한 회색 눈동자가! 삶에 대한 가장 작은 의문도 결코 그 눈동자를 스쳐가지 않았다. 

 

  (-)  내가 존재한다면 그것은 존재하기를 내가 두려워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갈망하고 있는 저 무無로부터 나 자신을 끄집어내는 것이 바로 나, '나'다. 존재하는 데 대한 증오, 권태, 그것이 '나'로 하여금 존재시키는' 방식이며, 존재 속에 나를 밀어넣는 방식인 것이다. 

 

  (-) 나는 비존재와 그 엄청난 충만의 중간은 없다는 것을 알았다. 만약 사람이 존재한다면 '거기까지', 곰팡이의 상태까지, 그 팽창의 상태까지, 그 추잡스런 상태까지 '존재' 해야 한다.

 

  우리는 자신을 주체하지 못하는 거북한 존재들의 무리였다.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누구나 거기에 있을 이유가 조금도 없다. 당황하고 어딘지 불안한 개개의 존재는 다른 존재와의 관계에서 여분이라는 것을 느끼는 것이었다. '여분' 이것이야말로 저 나무들, 저 철책들, 저 조약돌들 사이에서 내가 설정할 수 있는 유일한 관계였다.

 

  (-) 본질적인 것, 그것은 우연이다. 원래, 존재는 필연이 아니라는 말이다. (-) 나 보기에는 그것을 이해한 사람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들은 필연적이며 자기 원인이 됨직한 것을 생각해 냄으로써, 이 우연성을 극복하려고 했던 것이다.

 

  모든 것이 충족하고 모든 것이 행위 속에 있다. 미약한 흐름은 없었다. 모든 것이, 가장 미미한 도약까지도 존재에 의해서 만들어졌다. 그리고 나무 둘레를 방황하고 있던 모든 존재하는 것들은 아무 데서도 오지 않고 아무데로도 가지 않았다. 그것들은 존재하다가 다음에는 갑자기 존재하지 않는 것이었다. 존재는 기억이 없는 것, 사라져버린 것들이며, 존재는 아무것도, 추억조차도 가지고 있지 않다. 도처에 무한하게, 여분의 것인, 항상 어디에나 있는 존재, 그 존재는 존재에 의해서만 한정된다. 근원이 없는 존재들의 그 풍요함에 충격을 받고, 어리둥절하여 의자 위에 몸을 내던졌다.

  곳곳에 개화와 환희가 있고, 내 귀에서는 존재들이 윙윙거리고 있었으며, 내 육체 자체가 꿈틀거리며 벌어져서, 우주의 발아에 몸을 내맡기는 것이었다. 그것은 지긋지긋한 일이었다. '그러나 왜?' 이렇게 나는 생각했다. '왜 이렇게 많은 존재들이 있나? 그들은 모두가 서로 비슷한데' 서로 비슷한 나무들이 그렇게 많아서 무슨 소용이 있을까? 마치 나자빠진 벌레의 서투른 노력처럼(나도 그 노력의 하나였다) 그렇게도 많은 존재들은 사라졌다가는 악착같이 되살아나고, 또 사라지는 것이었다.

  그 풍성함은 너그러운 인상을 주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였다. 그것은 음침하고, 괴롭고, 스스로를 어찌할 줄 몰랐다. 그 나무들, 그 서투른 큰 몸집을‥‥‥ 나는 웃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책에 묘사해 놓은 꿈틀거리는 소리, 폭발 소리, 거창한 개화로 가득 찬, 놀라운 봄이 문득 생각났기 때문이다. 

 

  화요일, 부빌에서

  이것이 자유라는 것일까? 눈 아래에서는 마당들이 도시를 향해서 힘없이 내려가고 있고, 마당마다 집이 한 채씩 서 있다. 나는 바다를 본다. 무겁고 움직이지 않는 바다. 나는 부빌을 본다. 날씨가 좋다.

  나는 자유롭다. 나는 살아야 할 아무런 이유도 없다. 애써 찾아낸 모든 이유들은 사라지고, 다른 이유는 이미 생각할 수가 없다. 나는 아직 충분히 젊고, 새로운 출발을 하기에 충분한 힘이 남아 있다. 그러나 무엇을 새로 시작해야 하나? 가장 혹독한 공포들과 구토들로부터 안니가 나를 구해 주리라고 얼마나 간절하게 기대하고 있었던가. 이제야 그것을 깨닫는다. 내 과거는 죽었다. 드 를르봉 씨는 죽었다. 안니는 나에게서 모든 희망을 빼앗아 갔을 뿐이다.

  나는 마당과 마당 사이로 난 그 흰 길 속에서 고독하다. 고독과 자유, 그러나 이 자유는 어딘지 죽음과 비슷하다.

  오늘로써 내 생활은 종지부를 찍는다. 나는 내일 내 발 밑에 전개되어 있는 이 도시에서 이미 떠나고 없을 것이다. 이 곳에서 나는 그렇게도 오래 살았건만, 이 도시는 땅딸막하고, 시민적이고, 대단히 프랑스적인 이름에 불과해질 것이다. 내 기억 속에서 그 이름은 피렌체나 바그다드라는 이름이 주는 의미밖에는 가질 수 없으리라. '부빌에 있었을 때, 하루 종일, 대체 무엇을 하고 지냈을까?' 하고 자문하는 시기가 오리라. 그리고 이 태양, 이 오후에 대해서 아무것도, 아무런 추억조차 남아 있지 않으리라.

  내 모든 생활은 내 뒤에 있다. 내 생활을 남김없이 본다. 나를 여기까지 끌고 온 그 형태와, 그 느린 동작들을 본다. 거기에 대해서는 할 말이 별로 없다. 그것은 한 마디로 패배한 승부였다. 그뿐이다. 내가 엄숙하게 부빌에 들어온 지 2년이 된다. 나는 첫판에서부터였다. 두 번째 다시 걸었으나 역시 졌다. 나는 패배한 것이다. 동시에 나는 사람들은 늘 패배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긴다고 생각하는 건 더러운 놈들 뿐이다. 이제, 나는 안니처럼 하겠다. 나는 살아 남으련다. 먹고 자고, 자고 먹고, 나무들처럼, 웅덩이처럼, 전차의 붉은 의자처럼, 천천히 고요하게 존재하겠다.

  '구토'는 잠시 멎었다. 그러나 그것이 다시 찾아오리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그것이 내게는 정상적인 상태인 것이다. 다만 오늘 내 몸은 그것을 견디기에 너무나 기진맥진해 있다. 따분하다. 그뿐이다. 가끔 눈물이 날 정도로 나는 하품을 한다. 그것은 깊고 깊은 권태며, 존재의 깊은 마음이며, 나를 만든 재료 자체다. 나는 내 몸을 소홀히 하지 않는다. 오히려 반대다. 오늘 아침에 목욕을 하고 면도를 했다. 다만 그 모든 꼼꼼한 짓을 다시 생각해 볼 때, 어떻게 내가 그 짓을 했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그런 짓은 그처럼 헛된 일이다. 아마 나에게 그런 짓을 시킨 것은 습관이라는 것들일 것이다. 습관은 없어지지 않았다. 그것들은 여전히 분주하다. 조용히, 약삭바르게 그들의 피륙을 짜고 있다. 습관은 유모처럼 나를 씻겨 주고, 닦아 주고, 옷을 입혀 준다. 

 

  이 언덕 위에서 나는 얼마나 그들과 아득히 떨어져 있는가를 느낀다. 내가 마치 다른 족속에 속해 있는 것 같다. 그들은 하루의 일을 끝내고 사무실로부터 나온다. 그들은 만족한 태도로 집들과 광장들을 바라보고, 그것이 '그들의' 도시이고, '훌륭한 상업 도시'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다.

 

  허공에 내던진 물체는 모두 같은 속도로 떨어진다. 공원은 매일 겨울에는 오후 4시에, 여름에는 오후 6시에 닫는다. 납은 335도에서 녹고, 전차의 막차는 오후 11시 5분에 시청 앞에서 떠난다. 그들은 평온해 보이지만, 약간 우울하다. 그들은 '내일'을 생각하지만, 그것은 말하자면 또 하나의 오늘에 지나지 않는다. 도시들은 아침마다 똑같이 돌아오는 단 하루를 가지고 있을 뿐이다. 일요일이면 사람들은 그 하루를 즐기기 위해 좀 화사하게 꾸미기도 한다. 바보자식들 같으니. 

 

  (-) 어쩌면 이 모든 일이 생겨나지 않을 것이고 눈에 띄는 아무런 변화도 생겨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어느 날 아침에 사람들이 덧문을 열 때, 사물 위에 묵직하게 놓여 있어서 기다리고 있는 것 같은 무서운 일종의 의미에 놀랄 것이다. 그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계속된다면 수백 명씩 자살자가 생겨날 것이다. 

  그렇다. 그러한 변화가 조금이라도 생겨난다면 나는 그 이상의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또 사람들은 갑자기 고독 속에 잠기는 다른 사람들을 볼 것이다. 고독하게 된 사람들은 무섭고 기형적인 모습으로, 완전히 고독해진 모습으로 거리를 달리고, 눈을 부릅뜨고 재앙에서 벗어나려고 하면서 날개를 치는 벌레같은 혀를 가지고 내 앞을 지친 걸음걸이로 지나갈 것이다. 

 

  저녁때가 된다. 첫 전등불이 도시에 켜진다. 제기랄! 그 도시는 기하학적 현상에도 불구하고 그렇게도 '자연스럽게' 보일까! 그 도시는 얼마나 저녁으로 짓눌린 모습을 하고 있단 말인가? 

 

  (-) 그때는 음악이 없었다. 나는 우울하고 냉정했었다. 주위의 모든 물체들을 나와 같은 존재 즉, 일종의 비참한 고통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세계는 내 외부에서 그렇게도 추하고 테이블 위의 저 더러운 컵, 유리의 갈색 반점과 마들렌의 앞치마, 마담의 뚱뚱한 애인의 친절한 태도, 이런 것이 모두 추했다. 세계의 존재 자체가 그렇게도 추했다. 그래서 나는 내 집에 있는 것처럼 마음이 편했다.

  지금 색소폰의 곡조가 들려온다. 그러나 나는 부끄럽다. 영광스러운 사소한 고통, 표준형의 고통이 막 태어났다. 색소폰의 4박자, 그 소리가 오간다. 그리고 '우리처럼 해야지. 적당히 괴로워해야지'라고 말하는 것 같다. 그렇다, 좋다! 물론 나는 그렇게 '적당히', 그리고 자기 만족을 하는 것도, 자기를 가엾게 여기는 일도 없이 무정한 순결성을 가지고 괴로워하고 싶었다.

 

  이상한 잡음이 나는 것을 보니 거기에 금이 간 모양이었다. 그런데 가슴을 죄는 그 무엇이 있다. 그것은 이 멜로디가 축음기 바늘의 약간 긁적거리는 소리와 전혀 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멜로디는 그렇게도 먼 뒤쪽에 있다. 이것도 나는 알고 있다. 즉, 판은 금이 가고 닳았으며, 가수는 아마 죽었을 것이다. 나는 가려고 한다. 나는 기차를 탈 것이다. 그러나 과거도 미래도 없이, 하나의 현재에서 다음의 현재로 멀어져 가는, 존재하는 것들의 뒤에 매일매일 해체되고, 벗겨지고, 죽음을 향해서 미끄러져 가는 그 소리들 뒤에, 멜로디는 사정없는 증인처럼 젊고, 힘차게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다.

 

  (-) 결정을 내릴 수가 없다. 내게 재능이 있다는 것이 확실하다면‥‥‥그러나 절대로, 절대로 나는 그런 종류의 것을 써본 일이 없다. 역사에 관한 논문을 쓴 적은 있지만 그렇다. 앞으로도 안 쓰겠다. 한 권의 책. 한 권의 소설. 그 소설을 읽고 다음과 같이 말하리라. '그것을 쓴 사람은 앙트완 로캉탱이다. 그는 카페에 빈둥거리며 다니던 머리카락이 붉은 놈이었다'라고. 그리고 그들은 내가 그 흑인 여자를 생각하듯이, 내 생활에 대해서 생각할 것이다. 마치 무슨 귀중하고 반 전설적인 일처럼 말이다. 한 권의 책. 물론, 처음에는 그것이 지리하고 피곤한 일에 불과할 것이다. 그리고 존재하는 것도, 또 내가 존재한다고 느끼는 것도 그로 인해 없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 책이 완성되고, 내 뒤에 그것이 남을 때가 반드시 올 것이다. 그 책의 빛이 조금이나마 내 과거 위에 떨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때 아마도, 나는 그 책을 통해서, 내 생활을 아무 혐오감 없이 회상할 수 있으리라. 아마도 그 어느 날, 등을 오그리고 내가 탈 기차 시간을 기다리고 있는 이 시간, 이 음울한 시간을 뚜렷이 회상하면서, 나는 아마도 가슴이 마구 두근거리는 것을 느낄 것이다. '모든 것이 시작된 것은 그날, 그 시간이었다'라고 말할 때가 오리라. 그리고 나는 과거로서, 다만 과거로서만 나를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날이 저물었다. 프랭타니아 호텔 이층의 두 창문에 막 불이 켜졌다. 새 역의 공사장에서, 축축한 목재 냄새가 코를 찌른다. 내일 부빌에는 비가 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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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들
W. G. 제발트 지음, 이재영 옮김 / 창비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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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 얼마 후 코즈모가 실제로 자취를 감춰버렸다. 사람들이 어디를 얼마나 오래 뒤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결국 할아버지가 이삼일 후에 그 집의 맨 위층에서 코즈모를 발견했다. 오랫동안 잠가두었던 아이들 방 안에 있었던 것이다. 그는 작은 스툴 위에 앉아 두 팔을 축 늘어뜨린 채, 가끔씩 보스턴이나 헬리팩스(-)로 가는 증기선들이 느릿느릿 지나가는 바다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고 한다. 왜 거기로 올라갔느냐는 할아버지의 물음에 코즈모는 형이 잘 지내는지 보려고 했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할아버지의 말에 따르면 그에게 형은 없었다. 코즈모의 상태가 다소 호전되자 암브로스 할아버지는 (-) 의사의 권유에 따라 코즈모와 함께 캐나다 고산지대에 있는 밴프로 갔다. 두 사람은 유명한 밴프 스프링스 호텔에서 여름 내내 머물렀는데, 코즈모는 고분고분하지만 아무것에도 관심이 없는 멍한 아이처럼 행동했다. (-) 10월 중순에 눈이 내리기 시작했는데, 코즈모는 창가에 서서 호텔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엄청나게 큰 전나무숲과 까마득한 높이에서 고르게 쏟아지는 눈송이들을 몇 시간이고 쳐다보았다. 그는 손수건을 말아서 쥐고 있다가 절망감이 밀려올 때마다 그것을 깨물었다. (-) 코즈모는 (-) 그해가 저물기 전에 죽음을 맞이했다.

 

 

  (-) 하늘은 잔뜩 흐려 있었다. 방갈로 앞 보도에 서 있는 피니 이모의 모습은 그 전날 이모 자신이 내게 그려주었던 아델바르트 할아버지의 모습과 똑같았다. 너무 무거워 보이는 검은 겨울외투를 입고 나를 향해 손짓하다가 이모는 손수건을 꺼내들었다. 차의 백미러를 통해 보이는 이모의 모습이 하얀 배기가스 속에서 점점 작아지고 있었다. 지금 생각하니 그때 이후로 누군가가 나와 이별하면서 손수건을 꺼내들었던 일은 한번도 없었다. 그뒤 며칠 동안 뉴욕에 머무르면서 나는 눈물 마를 날이 없던 테레스 이모의 삶과, 아욱스부르크의 유대인 회당 지붕에서 일하는 카지미르 외삼촌의 모습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가장 나의 관심을 끌었던 사람은 암브로스 아델바르트 할아버지였다. 할아버지가 생을 마감한 병원으로 직접 가보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당시로서는 곧장 그 병원에 갈 생각까지는 없었다. (-) 1984년 초여름이 되어서야 나는 이타카에 가보기로 했다. 지독하게 알아보기 어려운 필체로 적어놓은 아델바르트 할아버지의 1913년 여행일기를 겨우 해독하고 나자, 이타카로 가는 일을 더 미루어서는 안될 것 같았다. 나는 다시 비행기를 타고 뉴욕으로 갔고, 도착하자마자 자동차를 빌려 17번 고속도로를 타고 북서쪽으로 차를 몰았다. 도로 주변으로는 크고 작은 고장들이 눈에 들어왔는데, 이름만 귀에 익은 고장들도 있었지만 실은 어디 박혀 있는지도 몰랐던 곳들이었다. 먼로, 몬티첼로, 미들타운, 우츠보로, 워워씽, 콜체스터, 카도씨아, 디포짓, 델하이, 네버씽크, 니니베 등의 이름을 스쳐지나면서 나는 내가 자동차와 함께 원격 조종을 받으며 거대한 장난감공원을 누비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거인족의 아이가 이미 오래전에 사라져버린 다른 세계의 폐허에서 마을 이름들을 골라 거기에 갖다 붙여놓은 것 같았다. (-) 차들의 속도가 거의 똑같았기 때문에 다른 차를 추월하는 일도 드물었는데, 그래도 추월하는 경우에는 시간이 얼마나 오래 걸리는지, 나란히 달리는 두 대의 차에 탄 사람들이 서로 제법 면식을 쌓을 정도였다. 나 역시 반시간가량 어떤 흑인 가족의 차와 나란히 달리게 되었는데, 내게 온갖 신호와 웃음을 보내는 그 가족의 모습을 보면서 마치 내가 그 집 식구들의 좋은 친구라도 된 듯했다. 헐리빌로 빠져나가는 출구에서 그 차가 커다란 포물선을 그리며 내게서 멀어져갈 때, 아이들은 뒤쪽 차창 바깥으로 고개를 내밀고 어릿광대 같은 표정을 지어 나를 웃겼다. 결국 그들이 보이지 않게 되자 나는 한동안 버림받은 사람처럼 몹시 허전한 기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 도로는 거대한 고원을 가로지르고 있었는데, 오른쪽으로 늘어선 언덕들과 작고 둥근 산들이 완만한 상승곡선을 그리며 북쪽 지평선 근처에 있는 중간 규모의 산맥으로 이어져 있었다. (-) 인적이 거의 없는 고지대를 바라보고 있자니, 어릴 적 수도원학교를 다닐 때 세계지도 위로 몸을 수그리고 미국의 여러 주들을 돌아다니는 상상을 하면서 아릿한 동경을 느꼈던 기억이 났다. 당시에 나는 미국의 주 이름들을 알파벳 순서에 따라 모두 외울 수 있을 정도로 미국에 몰입했었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처럼 지루하던 지리 시간, 대낮인데도 창밖이 새벽처럼 침침하던 그때, 나는 지금 내가 달리고 있는 이 지방뿐만 아니라 북쪽의 고지대에 있는 아디론덱 산맥까지 샅샅이 훑어보았다. 이 지방의 풍경이 고향과 아주 흡사하다고 카지미르 외삼촌이 내게 말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 

 


(-) 애브램스키 박사에게서 맨먼저 눈에 띄는 것은 극도로 흥분한 사람처럼 잔뜩 치솟아 있는, 촘촘하고 새빨간 머리카락이었다. (-) 박사는 내가 갑자기 나타난 것에 별로 놀라는 기색도 없이 내게 고리 세공 의자를 내밀어주더니, 다시 양봉 작업을 계속하면서 내가 하는 말을 들었다. 이윽고 내가 말을 끝내자, 그는 도구들을 옆으로 치우고 나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코즈모 쏠로몬은 직접 보지 못했지만, 당신의 할아버지는 압니다. 1949년, 그러니까 내가 서른한살 때 수련의로 판슈톡 교수와 함께 일하기 시작했으니까요. 아델바르트 씨의 경우를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는 것은, 내 생각이 완전히 바뀌기 시작하던 즈음에 그를 알게 되었기 때문이지요. 그렇게 생각을 고쳐먹은 덕택에 나는 판슈톡 교수가 죽고 난 뒤 몇십년 동안 정신과의사로서의 활동을 차츰 줄여나가다가 결국 완전히 중단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바깥 생활을 시작한 것이 1969년의 일이니, 얼마 전에 퇴직 십오주년을 맞았지요. 날씨에 따라 보트 창고나 양봉장에서 지내면서 이른바 현실세계의 일은 잊고 삽니다. 물론 보기에 따라서는 내가 영락없는 미친 사람이겠지만, 당신도 아시다시피 이런 문제는 보는 관점에 따라 달라지지요. 사마리아 병원이 텅 비어 있는 것은 보셨을 겁니다. 내가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그 병원을 포기해야만 했습니다. 이 호화로운 나무궁전 안에서 얼마나 많은 고통과 불행이 쌓여갔는지 아마 아무도 제대로 모를 겁니다. (-) 암브로스 아델바르트 씨가 친척들의 뜻에 따라 입원한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정신병원의 감독을 받겠다고 나섰던 것은 사실입니다. (-) 판슈톡 교수는 그가 노년의 중증우울증이 무감각한 긴장병과 결합한 경우라고 진단했지만, 보통 이런 상태에 수반되는 육체적인 퇴락현상이 그에게서는 전혀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에 어딘가 모순이 있었습니다. 오히려 그는 자신의 외양에 지극히 공을 들였지요. 언제나 완벽하게 정장을 차려입고 나비넥타이를 깔끔하게 맨 모습이었어요. 그런데도 그가 그냥 창가에 서서 창밖을 바라보는 모습만 보아도 어떤 극심한 불치의 고통에 시달리고 있는 것 같았지요. 당신의 할아버지만큼 심한 우울증에 걸린 사람을 본 적이 없습니다. 그의 사소한 말들, 몸짓들, 죽는 날까지 그대로 유지하던 습관들, 이 모든 것들이 실은 세상에 거듭 작별인사를 하는 것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예절에 어긋나는 행동은 절대 하지 않으려던 분이어서 식사때만 되면 어김없이 식당에 나타나 음식을 받기는 했지만, 그분이 실제로 먹는 양은 옛날 사람들이 사자(死者)의 시신과 함께 무덤에 묻었던 상징적인 식량만큼이나 적었지요. 당시 아델바르트 씨가 얼마나 기꺼이 충격요법을 받아들이는지, 그런 모습이 내 눈에도 띄었어요. 그때는 몰랐지만, 돌이켜보면 1950년대 초반에 시행되었던 충격요법은 실로 고문이나 학대에 가까웠습니다. 다른 환자들의 경우에는 대개 완력을 써서 강제로 기구실로 끌고 가야 했는데(-), 아델바르트 씨는 예정된 시각만 되면 정확하게 나타나 기구실 문앞에 앉아서 머리를 벽에 기대고 눈을 감은 채 자신에게 닥칠 일을 기다리고 있었어요. 

  (-) 처음 정신과의사로 일하기 시작했을 때 나는 충격요법이 인간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했지요. 판슈톡 교수가 내게 ‘실제 경험들’을 여러 번 생생하게 설명해주기도 했고, 대학에서 공부할 때도 인슐린 투여를 통해 간질병과 유사한 발작을 일으키는 방법을 쓰면 환자들이 퍼렇게 변한 일그러진 얼굴로 몇분 동안 웅크린 채, 이를테면 생사를 건 싸움을 벌인다는 보고도 들었으니까요. 이런 방법과 비교하자면 전기치료의 도입은 그 자체로서 이미 상당한 진보였다고 할 수 있었지요. 충격의 양을 정확하게 조절하고, 심한 반응이 나타나면 치료를 즉각 중단할 수도 있었으니까요. (-) 판슈톡 교수는 1차 세계대전 직전에 렘베르크(-)의 병원에서 신경정신과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러니까 정신의학이 주로 입원환자들을 안전하게 관리하고 억제하는 데에 집중하던 시기였지요. 그 때문에 그는 이를테면 태생적으로 어떤 특정한 사고의 경향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지속적으로 충격요법을 받은 환자들이 대부분 정신이 황폐해지고, 기능저하를 보이고, 의기소침한 태도가 현저해지고, 사고능력이 저하되고, 근육의 긴장도 떨어지고, 심지어 전혀 말을 하지 않게 되어도 그런 것을 치료의 성과로 간주했습니다. 그래서 우리 병원의 첫 환자 중 한사람이었던 아델바르트 씨가 여러 달에 걸쳐 진행된 일련의 충격요법을 받으면서 다른 환자에게서는 볼 수 없었던 지극히 순종적인 태도를 보였던 것을 새로운 요법의 성과로 치부했던 것이지요. 하지만 당시에 이미 나는 아델바르트 씨의 그런 태도가 실은 자신의 사고능력과 기억능력을 가능한 한 근본적이고 철저하게 말살시키고자 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임을 감지하고 있었습니다. 

  (-) 내가 당초에 판슈톡 교수를 믿게 된 것은 아마도 그의 오스트리아 억양 때문이었을 겁니다. 그의 억양을 들으니 (-) 나의 아버지 생각이 났던 것이지요. 판슈톡 교수는 고향 린츠(-)에서 자리잡아보려고 했고, 내 아버지는 빈의 레오폴트슈타트(-)에서 술장사를 하며 살아보려고 했었는데, 두 사람 모두 당시의 열악한 상황 때문에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결국 아버지는 1921년초에 미국을 향해 떠났고, 판슈톡 교수도 그해 여름에 뉴욕으로 갔지요. 판슈톡 교수는 곧 의사로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 같은 시기에 내 아버지는 로우어 이스트 싸이드의 소다수 공장에서 일어난 보일러 폭발사건으로 인해 목숨을 잃었습니다. 사고 뒤, 군데군데 몸이 탄 아버지의 시체가 발견되었지요. 브루클린에서 자라면서 나는 아버지를 많이 그리워했습니다. (-) 어머니는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산송장이 되다시피 했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내가 사마리아 병원의 수련의로 일하기 시작했을 때, 판슈톡 교수가 내 아버지와 여러모로 비슷했기 때문에 일체의 비판적인 태도를 버리고 무조건 그를 따르게 된 것이 아닌가 합니다. (-)

  (-) 당신의 할아버지는 운명하시기 전에 관절과 사지가 점점 마비되는 증세를 보였는데, 아마도 충격요법 때문이었을 겁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델바르트 씨는 자기 몸을 추스르는 것조차 아주 힘들어했지요. 옷을 입는 데에만 거의 하루가 걸렸습니다. 소매 단추를 채우고 나비넥타이를 매는 데에만 몇시간이 걸렸어요. 그렇게 겨우 옷을 입자마자 다시 옷을 벗을 생각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지요. 게다가 지속적인 시력장애와 심한 두통에 시달리기도 했는데, 그 때문에 도박장에서 일하는 사람처럼 녹색 쎌로판으로 눈을 가리고 다닐 때가 많았습니다. 그가 운명하던 날, 처음으로 치료 시간에 그가 나타나지 않아서 나는 그의 방으로 가보았지요. 아델바르트 씨는 쎌로판으로 눈을 가린 채 창가에 서서 공원 너머의 습지를 바라보고 있더군요. (-) 왜 평소처럼 약속한 시간에 오지 않았느냐고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하더군요. (-) (나비 잡는 사람을 기다리다가 무심결에 잊어버린 모양입니다.) (-) 아델바르트 씨는 이렇게 수수께끼 같은 말을 한 뒤에 즉시 나와 함께 치료실의 판슈톡 교수에게로 가서 여느 때처럼 모든 조치들을 고분고분하게 받아들였습니다. 그가 누워 있던 모습이 떠오르는군요. 이마에는 전극들을 달고, 이로 고무쐐기를 물고, 치료용 침대에 박음질해놓은 범포(帆布)로 꽁꽁 묶여 바다 한 가운데 곧 수장될 사람처럼 누워 있었지요. 충격요법은 문제없이 진행되었습니다. 판슈톡 교수는 아주 낙관적인 소견을 작성했지요. 하지만 나는 아델바르트 씨의 얼굴을 보고 그에게는 아주 미약한 힘만 남아 있을 뿐, 이미 완전히 파괴된 상태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마취에서 깨어났을 때, 그의 눈은 기묘하게 초점을 잃은 상태였고, 그의 가슴에서 한숨이 새어나왔습니다. 그 한숨소리가 지금까지도 귀에 생생하군요. (-) 다음날 새벽, 양심의 가책 때문에 괴로워서 잠을 이루지 못하던 나는 그의 방으로 올라가보았습니다. 그는 에나멜가죽으로 만든 구두를 신고 정장을 말끔하게 입은 채 침대에 누워 죽어 있더군요. 여기까지 말한 후 애브램스키 박사는 입을 다물고 길이 끝나는 곳까지 나를 바래다주었다. 작별할 때도 그는 입을 열지 않았다. (-)

 


가뭄이 극심하던 1991년 9월 중순, 나는 영국에서 출발하여 도빌로 갔다. 씨즌은 벌써 끝난 지 오래였고, 수입이 좋은 여름 씨즌을 조금 더 연장해볼 심산으로 그곳 사람들이 개최하는 미국영화 페스티벌도 이미 끝나 있었다. (-) 나는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한때는 전설적이었던 해수욕장이 이제 가망없이 몰락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오늘날에는 어느 나라에 가든, 지구상의 어디를 가든 다를 바가 없다. 자동차와 부띠끄 상업, 그리고 온갖 방식으로 점점 더 확산되어가는 파괴중독증으로 인해 살아남은 곳이 없다. (-) 내가 도빌에서 맞은 첫날 아침에 거리를 산책하면서 (-) 아무도 살지 않는 듯한 이러한 빌라들 앞에 한동안 가만히 서 있으면 신기하게도 거의 예외없이 (-) 창문의 덧문 하나가 살짝 열리고 손 하나가 밖으로 나와 천천히 걸레를 털어댄다. 그런 광경들을 보고 있자면 도빌의 모든 건물 내부는 컴컴하고, 그 안에는 영원히 바깥으로 나오지 못하고 영원히 먼지만 털어야 하는 저주받은 여자들이 소리도 없이 움직이고 있으며, 우연히 그녀들의 감옥 앞에 서서 물끄러미 건물을 쳐다보는 낯선 행인들이 나타나기만 기다리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 노르망디 호텔은 여전히 고급호텔의 면모를 유지하고 있었다. (-) 직원들은 겉으로는 아주 깍듯해 보였지만 실은 냉정하면서도 때로는 거의 모욕에 가까운 예절로 그들을 대하면서 정확하게 짜인 일과에 따라 그들을 조종했다. (-) 

 

 

비망록에 적힌 할아버지의 마지막 기록은 성 스테판의 날에 쓴 것이다.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뒤 코즈모는 심한 열병을 앓았지만 차츰 회복되는 중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할아버지는 그 전날 오후 늦게 눈이 내리기 시작했으며, 호텔 창가에 서서 찬찬히 내려앉는 어스름 속에 하얗게 떠 있는 도시를 보자니 옛날 생각이 많이 난다고도 적어놓았다. 그는 나중에 이런 글귀를 추가했다. 기억이란 때로 일종의 어리석음처럼 느껴진다. 기억은 머리를 무겁고 어지럽게 한다. 시간의 고랑을 따라가며 과거를 뒤돌아보는 것이 아니라, 끝 간데 없이 하늘로 치솟은 탑 위에서 까마득한 아래쪽을 내려다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 누구도 이런 도시를 상상할 수 없을 것이다. 건물도 참으로 많고, 식물들도 다채롭기 그지없다. 하늘 높이 솟아 있는 소나무 우듬지들. 아카시아, 코르크나무, 무화가나무, 유칼리나무, 노간주나무, 월계수, 실로 나무들의 천국이다. 그늘진 비탈들, 졸졸거리는 개울과 우물이 있는 작은 숲 들. 산책할 때마다 나를 놀라게 하는, 아니 경악하게 하는 것들이 나타난다. (-) 궁전 같은 건물들이 늘어선 거리가 갑자기 협곡에서 끝난다. 극장에 갔다가 대기실의 문을 열고 나오면 뜻밖에도 작은 숲으로 들어서게 된다. 갈수록 좁아지는 어두운 골목을 따라가다가 막다른 골목을 만난 줄 알고 낭패감에 휩싸여, 마지막 희망을 걸고 모서리를 돌아서면 돌연 연단처럼 생긴 곳이 나타나 광활한 파노라마를 조망하게 된다. 벌거벗은 언덕을 끝없이 올라가다 보면 문득 그늘진 계곡에 들어서 있음을 깨닫게 되고, 어떤 집의 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길거리가 나오는가 하면, 시장을 돌아다니던 중 갑자기 묘비명들이 나를 둘러싸고 있음을 알게 되기도 한다. 콘스탄티노플에서는 죽음 자체와 마찬가지로 묘지 또한 삶의 한가운데에 자리잡고 있다. 사람이 죽으면 싸이프러스 나무를 한그루씩 심는다고 한다. 그 촘촘한 가지들 사이에 터키의 비둘기들이 집을 짓는다. (-) 오늘 그곳을 지나갈 때, 길모퉁이에서 돌연 시야가 탁 트이더니 산의 푸른 능선과 눈 덮인 올림포스 산의 정상이 보였다. 나는 한순간 내가 스위스나 고향에 와 있는 줄 알고 가슴이 메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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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한길컬처북스 2
이부영 지음 / 한길사 / 199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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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우리는 착하고 바르다는good 말과 온전한 혹은 전일적whole이라는 말을 혼동한다. 마치 일생을 통해 선을 행하고 성인의 자질을 계발하면 우리 안이 빛으로 가득 채워져서 어두움은 저절로 사라질 것처럼 생각한다. 그러나 심층심리학에서는 전혀 다른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 빛을 밝히면 밝힐수록 어두움 또한 확대된다는 것이다.(-)

 

  (-) 신화에 등장하는 인물 중 (-) 메두사 (-) 여신은 공포 그 자체다. 그런데 이 무시무시한 메두사와 싸움을 할 때 메두사 등 뒤에 거울이 있으면 싸우던 사람이 미쳐 버린다고 한다. 메두사보다 오히려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그림자가 훨씬 끔찍하기 때문이다.

  이 두려운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면 끝없이 타인이나 다른 그룹에 투사하게 된다. (-) 남성은 여성에게, 백인은 흑인에게, (-) 나치는 유대인에게 투사를 해왔고 그 결과는 끔찍한 파괴로 나타났다.

 

 

  (-) 그림자는 우리 자신의 일부분이지만 우리가 보려 하지 않거나 이해하는 데 실패한 부분이다.

 

 

  (-) 우리의 흥미를 끈 것은 연극이 타인에 대해서 얘기해 준 것이라기보다는, 우리 스스로에 대해 엿보게 해준 것, 밖으로 드러나려고 했으나 우리 입장으로는 운 좋게도 그러지 못한 그림자처럼 아련한 느낌과 감정의 세계인 것이다. 이것은 또한 우리의 내부에서 한없이 오래된 조상 대대로의 회상에 대한 호출이 이루어진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


  (-) 웃는 사람에게는 친절과 싹싹한 쾌활성이-적어도 겉으로는-있으며, 이것을 고려하지 않는 것은 잘못일 것이다. (-)

  (-) 꿈은 긴장의 이완이다. 사물이나 사람과 정당한 관계를 유지하고, 실제로 있는 것만을 보고, 현재 일어나고 있는 것만을 생각하는 것은 지적인 긴장의 부단한 노력을 요구한다. (-)

  (-) 습관의 세계에서 사람은 자기가 그 일원인 사회에 끊임없이 적응을 계속하기 위해 더 이상 노력하지 않는다. 즉 삶을 영위하기 위하여 필요했던 주의로부터 이완되는 것이다. (-) 이 경우 지성의 방심보다는 의지의 방심이 보다 문제되며 결국 이것은 게으름인 것이다. (-) 

 


나는 캄캄한 동굴 앞에서 그 안으로 들어가려 한다. 그러나 나는 되짚어 나오는 길을 찾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으로 전율했다.

 


  돌 하나가 날아와 내 자동차의 앞유리를 깨뜨렸다. 이제 나는 폭풍우 속에 그대로 몸을 내어맡긴 셈이었다. 눈에서 눈물이 쏟아졌다. 이런 자동차로 목적지에 이를 수 있을까?

 

(-) 부지중에 저지른 실수는 극히 드문 것이긴 하지만 뜻밖의 세계를 드러내고, 당사자는 이해하기 어려운 세력과의 관계 속으로 끌려들어간다. 프로이트가 밝혔듯이 이러한 실수는 우연히 생긴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욕망과 갈등이 억압된 결과 나타난 것이다. 그것은 부지중에 표출된, 삶의 표면에 잡힌 주름이다. 그리고 이 주름의 골은 (-) 영혼 그 자체만큼이나 깊다. (-) 


 (-) 자기의 그림자와 자기의 빛을 동시에 자각하는 사람은 자신을 두 측면에서 본다. 그리하여 그는 중앙으로 나온다.

 

 

  자기의 정신적 존재를 낮과 동일시한 사람은 밤의 꿈을 아무것도 아니라고 무시한다. 밤이 낮과 마찬가지로 긴데도- . 우리는 낮에 작은 것이 밤에 커지고 또 그 반대인 경우를 알고 있다. (-)

 

 

  밝은 것을 상상한다고 밝아지지 않는다. 어둠을 의식화함으로써 밝아지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불쾌하고 그래서 인기가 없다.

 

  (-) 어둠의 바다를 통과한 태양만이 아침의 바다 위에 떠오르는 일출의 환희와 구원을 주는 존재로서 인정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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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의 시학 동문선 문예신서 183
가스통 바슐라르 지음, 곽광수 옮김 / 동문선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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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우울한 인간은 세상이 사물이 되는 것을 본다. 그것은 피난처, 위안, 환희다. (-) 괴테의 「신 멜루시나」(-)는 실제로는 아주 작은 사람인데 일시적으로 정상적인 크기를 갖게 된 여인을 사랑하게 된 남자의 이야기다. 이 남자는 이 여인이 공주인 아주 작은 왕국이 들어 있는 상자를 그 사실을 알지 못한 채 가지고 다닌다.

 


밀로슈 (-)는 거기에서 하나의 낡은 세계를 되찾는다. 우리들이 삶에 하나의 형용사를 갖다 붙일 때, 그 즉시 그 형용사는 강력한 힘을 가지게 된다는 사실을, 지나치면서 지적해 두기로 하자. 침울한 삶, 침울한 존재는 세계에 서명을 한다. 그것은 사물들 위에 번져 가는 채색보다 더한 것이다. (-) 


 (-) "오후 그녀가 차에서 내려 돌아오는 곳이 내 집이라는 것은 나에겐 확실히 감미로운 것이었다. 그러나 그보다 더욱 감미로웠던 것은, 그녀가 잠의 밑바닥으로부터 꿈의 계단의 마지막 몇 층계를 다 올라와 의식과 생명의 세계로 소생하는 것이 바로 내 방이라는 것, 그녀가 한순간 '여기가 어디지?'하고 의아해 하며 램프 때문에 눈을 가까스로 가늘게 뜨고선 주위에 있는 대상들을 쳐다보고, 내 집에서 깨어난 것을 확인하자, 우리 집이었구나 하고 스스로 대답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녀가 불확실해 하는 이 감미로운 첫 순간에 나는 새삼 그녀를 보다 완벽하게 소유한 듯했다. 왜냐하면 그녀가 외출에서 돌아와 곧장 자기 방으로 들어갈 때와는 달리, 지금은 알베르틴이 자기가 내 방에 있다는 것을 알아채자마자 내 방이 그녀를 사방으로 포위하고선 간직해버렸기 때문이다……."(RTP, Ⅲ, 74) 

 

 (-) 한 수인이 그의 감방의 벽에 풍경을 하나 그려 놓았다: 그 그림에서는 조그만 기차가 터널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간수들이 그를 찾으러 오면, 그는 그들에게 '내가 내 그림에 있는 저 조그만 기차 안에 들어가 뭘 좀 검사하고 나올 수 있도록 잠시 동안 기다려 달라고 상냥하게' 요구한다. '그들은 언제나처럼 웃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나를 좀 모자라는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나 자신을 아주 조그만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내 그림 속으로 들어가, 그 조그만 기차에 올랐다. 그러자 기차는 굴러가기 시작했고, 그 조그만 터널의 깜깜한 구멍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 


세계는 크다. 하지만 우리들의 내부에서 그것은 바다처럼 깊다. _보들레르

 

종각의 고독 가운데 있는 인간은 여름 햇빛으로 환한 광장 위에서 '부산을 떠는' 저 아래 인간들을 가만히 바라보는 것이다. 그 인간들은 '파리만하고,' '개미처럼' 이유 없이 움직인다.

 

  이전에 나는, 깊은 바다를 체험한 이는 더 이상 다른 사람들과 같은 사람이 다시 될 수는 없다고 쓴 바 있다. 지금 이 순간(사막 한가운데 있는)과 같은 순간에 (-) 상상 속에서 나는, (-) 내가 걸어가고 있는 공간에 물이 흘러넘치게 하고 있었다. 나는 지어낸 침수 가운데 살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유동적이고 빛나며 유익하고 밀도 있는 물질 가운데서 몸을 옮겨가고 있었는데, 그 물질은 바닷물이었고 바닷물의 추억이었다. 그 상상의 작위적인 기술로써 바위와, 침묵과, 고독과, 하늘에서 떨어지는 황금빛의 햇볕을 내게 우호적이 되도록 하여, 나를 위해 그 진저리나는 메마름의 세계를 인간적인 것으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내 피곤마저 그로하여 가벼워지는 것이었다. 내 무게는 몽상 속에서 그 상상적인 물 위에 받쳐져 있었던 것이다.

  (-) 침묵과 내 사하라 생활의 느린 전진이 내 내부에 잠수의 추억을 일깨우는 것이었다. 그러자 일종의 아늑함이 내 내부의 이미지들을 적셨고, 이렇게 (-) 나는 내 내부에, 바로 깊은 바다의 추억들에 다름 아닌, 빛나는 반사된 이미지들을, 반투명의 두꺼움을 지닌 채, 걸어갔다.


위대한 작가가 낱말 하나라도 나쁜 뜻으로 쓸 때, 나는 언제나 가벼운 충격, 가벼운 언어의 고통을 받는다. 우선 낱말들은, 모든 낱말들은 일상 생활의 언어 가운데서 정직하게 그들의 맡은 바를 이행한다. (-) 가장 범속한 현실에 결부되어 있는 낱말들이라도,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시적 가능성을 잃어버리지는 않는다. (-) 


 (-) 문학비평가란 자기가 만들 수 없을 작품에 대해서, (-) 자기가 만들고 싶지 않은 작품에 대해서 판단을 내리는 사람인 것이다. 문학비평가는 필연적으로 엄격한 독자일 수밖에 없다. (-) 우리가 시를 읽으며 시인이 되고 싶은 유혹을 되살고(-) 있다는 것을 아무도 알지 못한다. 독서에 다소 열정적인 독자라면 누구나 독서로써, 작가가 되고 싶은 욕망을 키우고 또 억누르는 법이다. 읽은 페이지가 너무 아름다울 때에는 겸손이 그 욕망을 억누르지만, 그러나 그 욕망은 다시 태어나게 마련이다. (-) 자기가 좋아하는 작품을 되읽는 독자라면 누구나, 그 좋아하는 책이 자기 자신에게 관계되어 있다는 것을 안다. (-) 


(-) 영혼이라는 말은 불멸의 말이다. 어떤 시작품들에 있어서는 그것은 지울 수 없는 말이 되어 있다. 그것은 숨결의 말이다.[샤를 노디에 Charles Nodier, (-) 거의 모든 민족에 있어서 영혼을 뜻하는 여러 상이한 명칭들은 모두 숨결의 변형들이며, 호흡의 의성어들이다.]  (-) 

  (-) 알비에서의 조르주 루오 작품 전람회를 위한 훌륭한 소개의 글에서 르네 위그 René Huyghe는 다음와 같이 쓰고 있다: '루오가 어디를 통해 자기 작품에 대한 규정들을 부숴 버리는지를 알아내려고 한다면……, 아마도 우리들은 이젠 다소 쓰이지 않게 된, 영혼이라는 말을 환기해야 하리라,' (-) 영혼이야말로 (-) 내적인 빛을, (-) 번쩍이는 색깔들의 세계, 빛나는 태양의 세계로 번역해 내는 그러한 내적인 빛을 소유하고 있는 것이다. 이리하여, 루오의 그림을 사랑함으로써 이해하기를 바라는 사람에게는 (-) 외부 세계의 빛의 반영이 아닌 내적인 빛에 참여해야 하는 것이다. (-) 화가, (-) 그는 어떤 광원에서 빛이 비쳐 나오는지를 알고 있다. 그는 붉은 빛깔의 열정의 내밀한 뜻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그림의 근원에는, 싸우고 있는 영혼이 있다. 야수파의 예술은 내부에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그림은 그러므로 영혼의 현상이라고 할 것이다. 작품은 열정에 타는 영혼을 구원해 주어야 하는 법이다.
     
  
  (-) 기억력이라는 그 과거의 극장에서는 무대 장치가 오히려 인물들을 그들의 주된 역할에 붙들어 두는 것이다. 우리들은 때로 시간 속에서 스스로를 알아본다고 생각하지만, 기실 그것은 우리들의 존재가 안정되게 자리잡는 공간들 가운데서 일련의 정착점들을 알아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들의 존재는 흘러나가려 하지 않으며, 잃어버린 시간을 찾으러 떠났을 때에 과거에 있어서까지도 시간의 흐름을 '멈추려'고 하는 것이다. 공간은 그것의 수많은 벌집 같은 구멍들 속에 시간을 압축해 간직하고 있으며, 공간은 그렇게 하는 데 소용된다.

  그리고 만약 우리들이 역사를 넘어서려고 한다면, (-) 타인의 존재로써 이루어지는, 언제나 너무 우연적인 부분을 떼내어 버리려고 한다면, 우리들은 우리들의 삶의 달력이 그 삶의 이미지들 가운데서만 엮어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

  그리하여 그러한 고독들을 앞에 두고 (-) 묻는다: 그 방은 컸던가? 그 지붕 밑 방은 잡동사니로 차 있었던가? 그 구석은 따뜻했던가? 그리고 빛은 어디서 흘러 들어오고 있었던가? 또 그 공간들 속에서 존재는 침묵을 어떻게 알고 있었던가? 그는 고독한 몽상이 거하던 그 여러 숙소들의, 그토록 특이한 침묵을 어떻게 음미하고 있었던가?

  이 경우 공간은 전부이다. 왜냐하면 이제 와서 기억을 생생하게 하는 것은 시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 우리들은 생각할 수만, 구체성의 두터움을 모두 빼앗겨 버린 추상적인 시간의 선을 따라 생각할 수만 있을 따름이다. 우리들이 오랜 머무름에 의해 구체화된, 지속의 아름다운 화석들을 발견하는 것은, 공간에 의해서, 공간 가운데서인 것이다. 무의식은 머무르고 있는 법이다. (-)

 

그리고 우리들의 지난 고독들의 모든 공간들은, 우리들이 고독을 괴로워하고 고독을 즐기고 고독을 바라고 고독을 위태롭게 했던 그 공간들은, 우리들 내부에서 지워지지 않는 법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우리들의 존재가 그것들을 지우고 싶어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들의 존재는 본능적으로, 그의 고독의 그 공간들이 본질적이라는 것을 안다. (-) 이젠 지붕 밑 방이 없을지라도, 다락방이 망실되었을지라도, 그렇더라도 여전히, 우리들이 어떤 지붕 밑 방을 사랑했으며 어떤 다락방에서 살았다는 사실은 남을 것이다. 우리들은 밤의 꿈속에서 그리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 초라한 작은 방들은 조개껍질 같은 가치를 지니고 있다. 그리고 우리들이 잠의 미로의 끝에까지 갔을 때, 우리들이 잠의 깊은 지역에 다다랐을 때, (-) 알게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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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로티즘 현대사상의 모험 28
조르주 바타유 지음, 조한경 옮김 / 민음사 / 1999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 삶이란 그 본질에 있어서 방황이며, 낭비이다. 삶은 모든 생명력을 무제한으로 낭비한다. 삶은 삶 자체를 절멸시킨다. (-)

 

 

 (-) 주인공에게 곤경이 없다면, 그리고 고통이 없다면 주인공의 삶은 결코 우리의 흥미를 끌 수도 없으며, 우리에게 매력적인 것이 될 수도 없으며, 독자로 하여금 그 모험에 동참하도록 유인할 수도 없을 것이다. (-) 독서란 다른 사람의 모험이 자아내는 존재 상실의 위기를 고통을 치르지 않는 채 한번 체험해 보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만약 용기만 있다면 우리 자신도 한번 그렇게 살아 보고 싶은 것이다. (-) 그러나 우리의 그 욕망은 신중함-또는 비겁함-보다 강하지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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