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 이야기
김도연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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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하려는 이야기는 바로 콩 이야기다.

사실 나는 꽤 오래전부터 콩과 관련된 이야기를 글로 쓰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막상 쓰려고 하면 그동안 발갛게 달아오른 프라이팬 속의 콩들처럼 소란스럽던 머릿속이 이상하게도 텅 비어버린 것처럼 여겨졌기 때문이다. (-) 콩이라니! 대체 그 자그마한 알 속에 무슨 얘기가 들어 있단 말인가! 더 중요하고 재미난 이야기들이 넘쳐나는 세상인데 겨우 콩알이나 만지작거리는 내가 한심해서 결국 들고 있던 콩 주머니를 컴컴한 곳간 속으로 던져버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콩이 내 마음속에서 영영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콩보다 더 무겁고 값이 나가는 것들, 감자나 배추 당근 당귀 무 옥수수 등등에 대부분의 시간과 힘을 들이다가도 흙 묻은 손을 털고 집으로 돌아오는 저물녘이면 아주 잠깐 ‘아, 콩이 있었지’라고 아무도 몰래 중얼거리곤 했다. 물론 집으로 들어가면 하루의 피곤에 밀려 콩 생각은 저만치 밀어두곤 그대로 잠에 빠져드는 나날이었지만. 고작해야 어지러운 꿈의 끄트머리에서 겨우 한 마디 웅얼거릴 뿐이었다. 언젠가는 콩 이야기를 쓸 거야. 그렇게 웅얼거리다가 지난 10년의 세월이 훌떡 지나가버렸다. 잘 아시다시피 세월이란 게 참 잔인하다 싶을 정도로 빨리 흘러가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고 그때 어떤 사람들은 지나간 시간 속에서 이루지 못한 무엇을 아쉬워하는 경우가 있는데 내게 있어 그것은 다름 아닌 콩이었다. 막연히 콩이었다. 콩과 관련된 아무런 애틋함도 기억 속에 없었는데 바로 콩이었다. 그러니 막막할 수밖에. 이게 대체 뭔가? 왜 하필 팥도 아니고 콩이지? 내 마음이 공연히 억지를 부리는 건 아닌가. 지난가을, 한 포기에 15,000원까지 치솟은 배추값에서 나만 비껴난 분풀이를 콩에게 하려는 것은 아닐까. (-)

 

 

(-) 사실 콩을 생각하면 안 좋은 기억이 먼저 떠올랐다. 늦가을 저물 무렵 밭에서 콩을 줍던 일이 그것이다. 중학생 시절, 학교에서 돌아와 가방을 내려놓기 무섭게 아버지의 불호령에 콩밭으로 호출되던 날이 있었는데 그때 내가 해야 하는 일이 바로 다래끼를 들고 콩을 줍는 거였다. 아버지가 낮 동안 꺾어놓은 콩을 지게에 싣고 떠나면 그 자리에 떨어진 콩알을 하나하나 주워야 했다. 콩알이란 게 특이하게도 꼭 한 번에 한 알밖에 주울 수 없었다. 날은 추워서 손가락은 곱아오고 더군다나 어두워지고 있었다. 자그마한 콩알은 아무리 주워도 다래끼 바닥에서 키를 키우지 않았다. 침침한 눈을 손등으로 비벼도 콩알은 점점 보이지 않았고 곱은 손을 사타구니에 넣고 불알을 만지작거리며 녹였지만 꺼내면 이내 다시 차가워졌다. 아픈 무릎을 두드리며 작은 콩알을 하나씩 줍느니 영어단어 하나를 더 외우는 게 미래를 위해선 나을 것 같았지만 식구들 누구에게도 통하지 않았다. 날이 완전히 어두워질 때까지 꼼짝없이 콩알을 줍는다는 것은 세상 모든 게 다 콩으로 보이거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집으로 돌아와 전등불 아래서 다래끼를 들여다보면 그야말로 콩 반 돌 반이어서 고생했다는 말보다 퉁바리맞는 게 먼저였다. (-)

 

 

“콩이죠. 땅속에서 자라는 콩. 저기…… 제가 지금 콩 이야기를 써야 하거든요.”

“……쓰세요. 콩 이야기!”

사무실로 돌아가는 사서의 들썩이는 어깨를 놓고 볼 때 아무래도 나를 비웃는 것 같았다. 불과 2년 전만 하더라도 그녀는 어떤 존경의 눈으로 나를 대했었다. 그 존경이 무의미한 눈빛으로 되돌아가는 데 걸린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봄날 콩을 심고 가을에 콩대궁을 꺾기도 전에 이미 식어 있었다. 어쩌면 그녀의 말대로 나는 산 아래에 있는 조그마한 이 도서관에서 환갑, 진갑을 모두 지내고 심지어는 열람실의 책상에 엎드려 죽음까지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정경을 떠올려보았는데 이상하게도 슬픔과 기쁨의 경계가 분명하게 나눠지지 않았다. 마치 낮과 밤의 경계가 뒤섞였던 그 늦가을 저녁의 손이 곱아오는 콩 줍기처럼. 죽기 직전까지 시골 도서관에서의 콩 줍기라. 사실 나는 그동안 도서관에 다닌 과거와 도서관에 있는 현재에만 급급했지 도서관에서 맞을 미래에 대해선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건 정말이지 새로운 콩 이야기였다. 색깔이 불분명한.

“마당에 있는 울콩, 경주상회에 가지고 가서 팔아라.”

“그거 몇 푼이나 받는다고 팔아요!”

“오늘 팔아야 안 시들어!”

“에이!”

도서관에 가려고 가방을 메고 나온 내게 건넨 엄마의 울콩을 팔아 오라는 주문이었다. 콩은 구멍이 숭숭 뚫린 붉은 양파자루에 담겨 있었다. 아침나절에 딴 풋콩이었다.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귀찮은 일 가운데 하나가 바로 자루에 담긴 콩을 장거리에 내다 파는 일이었다. 덥고 힘들고 귀찮고 당연히 폼도 나지 않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콩값이 금값도 아니니 투덜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책과 노트가 들어 있는 가방끈을 왼쪽 어깨에 걸치고 오른손에 콩자루를 쥔 채 집을 나섰다. 오전의 마지막 시내버스를 놓치지 않으려면 부지런히 걸어야 했다. 집에서 버스정류장까지 걸어서 10분 정도 걸리는데 덥고 손이 저려오는 터라 버스가 오나 안 오나 확인하며 몇 번을 쉬어야만 했다. 온갖 투덜거림을 콩에게 쏟아놓으며. 그래도 거기까진 보는 사람이 없어 괜찮았다. 마침 장날이라 평소 한가하던 버스는 이 골 저 골에서 나온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그들은 당연히 콩자루를 들고 버스에 올라탄 나를 주시하며 한 마디씩 했다. 강낭콩이네. 콩이 벌써 나오네. 콩값이 어터 되나? 앉을 자리도 없었다. 모두 낯이 익은, 그러나 말을 나눠본 적은 없는 얼굴들이었다. (-)

 

 

“콩 심어서 돈 번 사람 못 봤다!”

당연히 뼈가 있는 말이었다. 사실 나는 강낭콩을 내다 팔은 돈의 거의 대부분을 엄마에게 전해주지 않고 그냥 내 주머니에 넣어버렸다. 액수가 좀 크다 싶으면 어쩔 수 없었지만 나머지는 차비와 담뱃값, 점심으로 사 먹는 김밥값…… 등등의 용도로 사용했다. 부모 자식 지간에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어린 시절에 농촌생활을 겪어본 사람은 알 것이다. 덩치가 큰 농작물이 아버지의 소관이라면 자잘한 것들은 어머니의 영역에 속한다는 것을. 어머니는 그 잡곡들을 장에 갈 때마다 한 말씩 머리에 이거나 배낭에 지고 나가서 팔아 자잘한 생필품이나 반찬거리들을 사 오곤 했다. 거기에다가 그런 곡물이나 봄날의 산나물 같은 것들은 누가 키웠고 누가 뜯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내다 판 사람이 임자라는 농촌의 우스갯말도 있었기에 나는 별다른 죄책감조차 느끼지 않았다. 물론 내가 매일 콩 한 자루를 메고 나와 팔아버린 것도 아니었다. 가끔, 아주 가끔일 뿐이었다. 그런데…… 다시 곰곰이 그때를 생각해보니 어쩌면 엄마는 내가 도시에서 벌여놓았던 일들을 모두 말아먹고 거의 무일푼이 되어 고향으로 돌아온 처지를 모두 알고 있었던 것 같다. 하루에 5,000원을 가지고 도서관을 들락거린다는 사실도. 내게 팔아 오라고 건네준 콩자루는, 그러니까…… 엄마의 안타까움이 분명했다. 터미널 옆 치킨집에 앉아 튀긴 닭이 나오기를 기다리며 생맥주를 홀짝거리던 나는 고개를 꺾어야만 했다.

“주문한 거 포장해주세요.”

“반 마리를요?”

“반 마리는 안 됩니까?”

“……됩니다.”

 

 

(-) 콩을 두 손바닥으로 감싼 채 흔들어 보았다. 적당하게 간지러운 콩의 소리가 들렸다. 마침 다시 사서가 내 곁으로 다가오자 재빠르게 콩을 두 손에 나누고 움켜쥔 오른손을 내밀며 물었다.

“홀일까요, 짝일까요?”

“자꾸 콩 가지고 장난하면 내쫓을 겁니다.”

“알았어요. 홀? 짝?”

“……짝.”

나는 손바닥을 펼쳤다. 반들반들해진 콩들이 손바닥 위에서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홀이네요.”

“콩 이야기 쓰는 거 정말 맞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서의 표정에는, 만약 사실이 아니면 아무리 10여 년 동안 줄곧 도서관을 드나들었다 해도 영영 추방시키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었다. 나는 두 손에 있던 콩을 작고 투명한 비닐봉지에 담았다. 홀이라는 사실이 왠지 슬퍼졌다.

“다 쓰면 보여드릴게요.”

 

 

택시에서 내린 나는 집을 향해 걸었다. 별들이 총총한 봄밤이었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밤하늘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 내가 아는 별자리는 많지 않았지만 상관없었다. 고작해야 눈에 잘 띄는 북두칠성과 카시오페이아가 전부였다. 콩 이야기가 끝나면 북두칠성의 네 번째 별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있지만 자신할 순 없었다. 사실 콩 이야기만이라도 잘 끌고 나갈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도서관에 앉아 내가 한 일은 고작 손바닥이나 노트북 자판 위 여기저기에 콩들을 올려놓고 들여다보거나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은 것 정도가 전부였다. 그 콩들이 스스로 입을 열고 내게 말을 걸어왔다고 거짓말을 할 수도 없었다. 사실 자그마한 콩 속에 어떤 이야기가 들어 있는지도 확실하지 않았다. 집으로 건너가는 다리 위에서 나는 술 냄새가 가득한 한숨을 하늘로 올려 보냈다. 낮 동안의 구름들은 모두 어디론가 사라지고 별들만 촘촘한 하늘로. 북두칠성의 네 번째 별은 다른 여섯 개의 별들과 달리 그런 내 마음처럼 희미하게 깜박이고 있었다. 그래도 여기 있는 게 얼마나 다행이냐고 내게 속삭이는 것 같기는 했다. 마치 까만 쥐눈이콩의 작은 눈처럼. 그러고 보니 왠지 하늘의 별이나 지상의 콩이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도 들었다. 누가 되지 않는다면 그 별들에게 새로운 이름을 지어주고 싶었다. 목욕탕에서 때를 미는 때밀이, 할머니 등에 업혀 장에 가는 아기, 도서관 옥상에서 콩을 심는 사서, 콩자루를 들고 툴툴거리며 시내버스를 타는 나, 매일같이 콩과 팥을 나누고 합치고 다시 나누는 엄마와 아버지…… 야, 이거 괜찮은 별과 콩의 이야기구나! 나는 집으로 가는 길에 신이 나서 별들의 새 이름을 지어주었다. 아주까리콩, 흰콩, 선비제비콩, 누렁콩, 우렁콩, 푸른콩, 얼룩콩, 밤콩, 좀콩, 작두콩, 완두콩, 까치콩…… 그러다 결국 돌부리에 걸려 손도 못 내민 채 앞으로 넘어지고 말았다. 뭐, 인생에서 가끔 벌어지는 일이었다. 옷에 묻은 흙을 털고 얼얼한 뺨을 문지르는데 개 짖는 소리가 들려와 고개를 드니 집에서 흘러나오는 불빛이 어둠 속에 오롯이 앉아 있는 게 보였다.

 

술 취한 아버지는 잠들었고 돋보기를 쓴 엄마는 둥근 상 위에 콩을 가득 올려놓고 하나하나 고르는 중이었다. 오래된 경전을 읽듯이. 내 꼬락서니를 훑어본 엄마가 입을 열었다.

“애비나 자식이나…….”


_『현대문학』 2011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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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의 한가운데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5
루이제 린저 지음, 전혜린 옮김 / 문예출판사 / 199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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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누구든지 의욕을 갖기를 그치면 늙기 시작하는 거야. 얼마 전까지도 나는 무슨 특별한 일이 일어날 것 같다는 생각을 가지고 아침마다 일어났어. 나는 마치 아침마다 문간에 서서 코를 바람 속에서 벌름거리면서 사냥에의 욕망으로 떠는 사냥개와도 같았어. 그런데 지금은 나는 이미 나 자신에게 있어서 조금도 의외의 무엇을 갖고 있지 않아. 그리고 인생은 끝없는 풀밭이 아니라 그 속에서 우리가 최선을 다해야 하는 네 개의 벽이 있는 공간이야.

 

 

  나는 니나가 내 옆에 필요 이상으로 가깝게 다가앉아서 한숨을, 기쁨과 해방의 한숨을 내쉬던 순간을 절대로 잊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우리가 달려가던 시골을 뒤덮고 있던 광선, 늦가을의 갈색과 보랏빛이 섞인 광선, 이 달콤하고 죽음에 중독돼 있는 광선을 잊지 않을 것이다.

  나는 행복했다. 이 시간, 이 한 시간 동안은 행복했다. 그리고 갑자기 미친 듯한 멋있는 유혹이 나를 엄습해 왔다. 왜 우리는 이 시간에 둘이 다 기쁨에 충만하여 딴생각은 없이 행복할 때 살기를 그칠 수 없는 것일까? 이날처럼 조화된 날은 다시는 안 올 것이고 매일은 다만 손실에 불과한 것이 될 것이다.

 

 

  니나는 때때로 특히 대답의 끝 무렵에 퉁명한 자존심의 막을 뚫고 한줄기 호의와 따스함을 보였다. 내가 이 호의를 과대평가하거나 또는 오해하는 것이 아닌가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것을 나는 처음에는 스스로 금하고 있었다. 어쩌면 니나의 성격은 최근에 일반적으로 더 따뜻하고 부드러워진 것이고 이 따뜻함은 나에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다한테 해당되는 것인지도 몰랐다.

  우선 나는 마치 몇 달이나 계속된 가뭄 뒤에 첫 번째 빗방울이 죽은 줄 알았던 싹 위에 떨어지는 것을 본 농부의 아직 의심스러운 긴장된 환희와도 비슷한 나의 기쁨 속에 잠겨 있고 싶다. 너무나 오랜, 희망 없었던 기다림 위에 딱딱하게 떨어진 아픈 기쁨이었다.

 

 

  더 강하게 감동되어 있는 사람은 언제나 손해다. 그의 감정이 어디서나 방해가 되어서 그의 정열에 걸려서 넘어지고 패배할 때마다 자기를 웃음거리로 만든다. 그의 찬스는 번번이 더 적어지고 그의 감정은 그와 반비례되게 커간다.

 

 

  얼마 전에 댁에 찾아갔을 때 나는 얘기할 것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갑자기 그것은 무의미한 일이라고 느껴졌습니다. 사람은 자기 자신에 관해서 얘기해서는 안 됩니다. 순전한 이기주의로 보더라도 안 됩니다. 왜냐하면 마음을 털어버리고 나면 우리는 더 가난하고 고독하게 있게 되는 까닭입니다. (-)

 

  나는 자유롭게 있어야만 한다는 것밖에는 아무것도 분명히 알고 있지 않습니다. 나는 몇백 개의 가능성이 내 속에 들어 있는 것을 느낍니다. 모든 것은 나에게 있어서 아직 미정이고 아주 시초에 놓여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내가 무엇에나를 고정시킬 수가 있겠습니까. 나는 나를 아직 모릅니다. (-) 정말로 모릅니다. 나는 당신이 나에게 제공하신 것을 이해하지 못했을 만큼 어리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다만 당신을 불행하게 했을 뿐일 것입니다. 나는 아무 경험도 없지만 그것을 알 수 있어요.

  (-) 아주 정직하게 말한다면, 나는 글을 쓰겠다는 욕망 이외에는 아무 욕망도 갖고 있지 않습니다. 내가 어떻게 이 작은 죽은 도시에서 끊임없이 죽어가는 노파 옆에서 소금 포대와 식초통 가운데서의 생활을 견디어나간다고 생각하십니까? 만약 내가 이 모든 외적인 것에 완전히 무관심하지 않았던들?

 

 

  독자들! 이라고 니나는 내던지듯이 말했다. 독자는 오락을 요구하고 있어. 작가는 따라가기 쉬운 안이한 이야기를 그들에게 제공해야 하는 거야. 처음에는 이것이 일어나고 다음에는 저것, 그러고는 그것. 그렇게 해서 맨 끝에는 행복하건 불행하건 관계없이 하여간 둥근 결말이 있어야 해.

  마치 극장에서처럼 모든 것이 질서정연하게 진행되어가야 돼. 그러면서도 사람들은 자기가 리얼리스트라고 생각하고 있어. 인생에서는 어떤 계산도 들어맞는 법이 없고 아무런 결말을 갖고 있지 않는데도. 결혼도 아니고 죽음도 다만 외관상 결말에 불과해.

  생은 계속해서 흘러가는 거야. 모든 것은 그렇게도 혼란하고 무질서하고 아무 논리도 없고 모든 게 즉흥적으로 생성되고 있어. 그런데 사람은 거기서 작은 조각을 끌어내서 현실에는 있을 수 없고 모든 생의 복잡성에 비하면 우스울 정도인 조그마한 알뜰스러운 설계도에 따라서 건축하고 있어. 모두가 다 꾸며진 사진에 불과해. 내 소설도 마찬가지야.

 

  (-) 고쳐야겠어. 나는 내 소설을 전부 세 번이나 네 번 다시 써. 나는 소재가 자기 자신을 알아볼 수 없게 될 때까지 맷돌에 갈고 또 갈아. 그렇지만 난 지금은 시간이 없어. 아니면 마음의 안정이. 시간은 누구에게나 언제나 있는 거야. 시간은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아.

 

  한나는 톱밥을 태웠다, 로 끝내겠어. 그게 옳아. (-) 그 이하의 문장은 우리 같은 사람들 머리에 곧잘 떠오르는 예의 결말에 불과해. 결말을 짓는 커다란 제스처, 독자 앞에서의 우아한 인사야. 자, 인제는 박수하거라, 끝났으니까. 우리는 모두 허영심이 있어. 그렇지만 난 허영심을 갖고 싶지 않아. 우리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 무섭게 조심해야 돼. 이런 값싼 효과를 자신에 허용할 때 우리는 빨리 타락해버리는 거야. (-)

 

  우리는 영웅이 아니야. 다만 때때로 영웅 노릇을 해볼 뿐이지. 우리는 모두 약간 비겁하고 계산 빠르고 이기적이고 위대함에서는 먼 존재야. 그리고 나는 바로 그걸 그리고 싶었어. 우리가 동시에 선량하고 또 악하고 영웅적이고도 비겁하고 인색하고도 관대하다는 것, 모든 것이 밀접하게 서로 붙어 있어서 구분할 수 없다는 것, 그리고 한 사람에게 나쁜 짓이든 좋은 짓이건 어떤 행동을 하도록 한 것이 무엇인가를 아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그리고 싶었어. (-)

 

 

  자정이다. 나는 굉장히 부드러운 피곤이 엄습해 오는 것을 느낀다. 그것은 내가 여태까지 몰랐던 놀라운 긴장의 회복이고, 내 사지와 감각의 달콤한 해체와도 같은 피곤이다. 그럼 인간이 '행복'하다고 말하는 것이 가능한 일이란 말인가? 나는 앞으로도 절대로 말하지 않을 것이다. 나 같은 인간은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다고. 나는 내 생명을 니나의 손에서 받아들인다.

 

 

 

 

  1933년 10월 28일

  -우리의 짧은 여행의 마지막 날이다. 나는 너무나 아름다운, 완전한 날들을 겪었기 때문에 숨을 쉴 수도 없을 정도다. (-) 이러한 날들에 반복이나 지속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은 모든 경험과 생의 원칙에 위반되는 생각이라는 (-) 전율을 느낀다. (-)

  니나는 건강을 많이 회복했다. (-) 산엔 첫눈이 덮여 있었으나 골짜기는 낮에는 따뜻해서 뜰에서 식사를 할 수가 있었다. 우리는 너무 익은 마지막 산딸기를 따기 위해서 산허리를 종종 돌아다녔다. 이것은 내가 얼마나 오랫동안 하지 않은 일이었던가? (-) 나는 산다. 나는 산다. 백 배나 더.

 

 

 

  (-) 오늘 오후는 이별을 용이하게 만들어주었다. 진부한 맛이 내 혀 위에 얼마 동안 남아 있다가는 없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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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야멘타 하인학교 (무선) - 야콥 폰 군텐 이야기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6
로베르트 발저 지음, 홍길표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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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여기서 배우는 것이 거의 없다. 가르치는 교사들도 없다. 우리들, 벤야멘타 학원의 생도들에게 배움 따위는 어차피 아무 쓸모도 없을 것이다. 말하자면 우리 모두는 훗날 아주 미미한 존재, 누군가에게 예속된 존재로 살아갈 거라는 뜻이다. 우리가 받는 수업은 우리에게 인내와 복종을 각인시키는 데 가장 큰 의의를 둔다. 이 두 가지 특성이 몸에 밴 채로는 성공할 턱이 없다, 아니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내면적인 성공이라면, 가능하다. 하지만 내면의 성공이 무슨 소용인가? 내면에서 이룩한 것들이 우리에게 먹을 것을 주기라도 하는가? 나는 정말이지 부자가 되고 싶다. 마차를 타고 다니면서 돈을 물 쓰듯 써보고 싶다. (-)

 

 

이곳 벤야멘타 학원에서는 상실감을 느끼는 법과 견디는 법을 배운다. 나는 그것이 일종의 능력, 훈련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훈련을 거치지 않은 사람은 유능하고 아니고를 떠나서 그저 덩치 큰 아기, 칭얼대기만 하는 울보로 남을 것이다. 우리 훈련생들은 바라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그렇다, 삶의 희망들을 가슴속에 품는 것이 우리에게는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더할 나위 없이 느긋하고 밝다. (-) 우리에게 위안을 주는 것들은 많다. 그것은 우리가 대체로 매우 열성적이고 진취적인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자신을 너무 높이 평가하는 사람은 자신감을 잃게 되거나 모욕을 당하게 될 때 위태롭다. 자의식에 찬 사람들은 의식에 적대적인 무언가를 끊임없이 맞닥뜨리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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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은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할 거야 2 - 히말라야의 여신
현경 지음 / 열림원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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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아는 어떤 기독교인들도 공공장소에서 나에게 이렇게 인사하지 않을 뿐더러 나 또한 이렇게 대답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에게는 그렇게 인사해주고 싶었다. 그것이 바로 지금 그가 모든 것을 버리고 선택한 세계이기 때문이다.

 

  내 앞에 나타난 남자는 내가 아는 마르고, 예민하고, 불타는 눈을 가진 아름다운 남자가 아니었다. 5년 동안 그는 많이 변해 있었다. 뚱뚱하고, 부흥사 아저씨들의 갈라진 목소리를 가진, 평범해 보이는 보수적인 목사였다. 이 더운 날 까만 양복에, 하얀 와이셔츠에, 까만 넥타이까지 맨 남자. 그 앞에 앉아 있는 목이 깊이 파인 복숭아색 여름 원피스를 입은 여자와는 너무나 '종류가 다른' 거룩한 목사님이었다. 이렇게 서로 다른 모습을 하고 마주 앉아 있는 우리들의 모습이 무슨 비극적 희극의 한 장면 같았다. (-)

 

 

 

  (-) 그는 메뉴를 내밀어 제일 좋아하는 음식을 마음껏 시키라고 했다. 유니언 신학교 교수가 된 것을 축하하는 의미에서 자기가 저녁을 살 테니까 편하게 주문하라고 했다. 그는 내게 항상 이렇게 너그럽게 주고 또 주는 남자였다. 해군장교 첫 월급을 몽땅 털어 이화여대 앞에서 정장 한 벌 없는 가난한 여학생이었던 내게 예쁜 정장을 맞추어주던 일이 생각났다. 잠깐 동안 눈앞이 흐려진다. 울면 안 된다. 태연한 척하며 음식을 주문하고, 그 동안 서로에게 일어났던 '공식적인' 변화들에 대해 이 이야기, 저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이야기가 무르익고 저녁식사가 끝날 때쯤 되자 그가 갑자기 이상한 질문을 했다.

 

  "저 보고 싶지 않았어요?"

 

  갑자기 말문이 꽉 막혔다. 보고 싶지 않았냐고? 그와 별거를 시작한 89년부터 너무나 그를 그리워했다. 그 다음 몇 년 간 울며 다녔다. 젊은 연인들만 보면 눈물이 맺혔고, 유모차에 아이를 태우고 가는 부부들을 보면 아무 데서나 주룩주룩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수많은 외로운 밤에 그를 안고 싶어서, 그가 너무 그리워 팔이 끊어지듯 아팠었다. 이혼을 한 후, 재혼을 해서 아이를 낳으려고 전 세계로 남편감을 찾아다닐 때, 새로운 남자와 데이트를 시작하면 한동안 항상 그가 생각났다. 어떤 남자도 그처럼 순수하지 않았고, 그처럼 일편단심이지 않았고, 그처럼 나를 '여신'같이 바라보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어떤 남자도 그처럼 여자를 위해 자신의 전 존재를 과감하게 던지지 않았다. 그는 나의 사랑의 '입맛'을 버리게 만들었다. 그를 사랑하지 않아서 그와 헤어진 게 아니었다. 그와 함께 살 수 없어서 헤어진 것이다. 우리가 계속 같이 있다가는 우리 중에 한 사람이 꼭 죽어나갈 것만 같았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부부로서의 인연은 끝났다. 전 남편과 만나서 무드 잡고 싶지 않았다. (-)

 

 

 

  나도 할 수만 있다면 그에게로 돌아가고 싶다. 항상 퇴근길에 꽃을 사 오던 남자. 꽃을 들고 엘리베이터에서부터 내 이름을 부르며 뛰어오던 남자. 자다가도 "여보, 사랑해!"하고 잠꼬대를 하던 남자. 나도 어떨 땐 이 외롭고 힘든 독신 생활을 청산하고 그에게로 돌아가고 싶다. 천둥 치고 비 오는 날 놀라서 잠을 깨도 항상 나를 품에 안고 있던 남자. 아침 햇살이 쏟아지는 침대에 누워 자고 있는 나를 한없이 바라보던 남자. 그의 시선에 눈을 뜨면 "당신이 너무 예뻐서. 당신은 작품이야."하고 말해주던 남자. 나도 그 따뜻하고 포근한 부부의 삶으로 돌아가고 싶다. 그러나 그와 나 사이에는 이제 건널 수 없는 세계관의 차이가 있다. 그와 나는 더 이상 같은 방향을 바라보지 않고, 같은 정신적 우주에서 살지 않는다. (-)

 

 

 

  시간이 늦어 이제 집에 가야 할 것 같다고 그에게 말했다. 택시를 타고 가겠다는 나를 그가 굳이 데려다주겠다고 우겼다. 그의 차를 타고 뉴욕의 거리를 달린다. 침묵이 흘렀다. 항상 차 속에서 새들처럼 재잘거리던 우리였다. 긴 침묵 속에서 집 앞에까지 달려왔다. 갑자기 이제 보면 다시는 이 남자를 보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울면서 그에게 두서 없이 이말 저말을 했다.

 

  난 당신을 정말 사랑했었다고. 그리고 당신은 너무나 좋은 애인이고 남편이었다고. 이제는 당신을 원망하거나 미워하지 않는다고. 당신을 지금도 사랑하지만 우리는 같이 살 수 없는 사람들이라고. 더 이상 내 가슴을 뛰게 하는 일이 당신 가슴을 뛰게 하지 않고, 당신 가슴을 뛰게 하는 일이 내 가슴을 뛰게 하지 않는다고. 나는 당신의 보수적인 기독교 근본주의라는 에너지의 장 속에서 살아갈 수 없다고. 생존할 수 있을진 모르지만 속으로 매일 죽어갈 거라고. 이제 제발 나를 잊고 혼인하라고. (-)

 

  그에게 횡설수설하면서 울고 또 울었다. 오랜 침묵 끝에 그가 "잘 알았습니다"하고 대답했다. 눈물로 온통 젖은 얼굴과 몸으로 그를 껴안았다. 그리고 나지막이 말했다. "God bless you!" 그의 차에서 내려 차가 안 보일 때까지 그에게 손을 흔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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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한 남자가 나왔다
다닐 하름스 지음, 김정아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4년 9월
평점 :
절판


아빠가 무슨 노래인가 부르려고 했을 때, 무언가가 창문을 두드렸다. 엄마는 놀라서 벌떡 뛰쳐일어나 분명히 누군가 밖에서 창문을 들여다보는 것을 봤다고 소리치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은 그건 불가능하다고 단언했다. 왜냐하면 그들의 아파트는 삼층이고, 그렇기 때문에 거인이나 골리앗이라면 몰라도, 보통 사람이 밖에서 창문 안을 들여다본다는 것은 말도 안 되기 때문이었다.

(-)

"누군가 창 밖에서 우리를 보고 있는데, 내가 어떻게 기분이 좋을 수가 있겠어." 엄마가 소리쳤다.

(-)

아빠는 당혹스러워 양팔을 벌렸다.

"여기 봐." 창문으로 다가가 양쪽 창문을 활짝 열어젖히면서 아빠가 엄마에게 말했다.

어떤 사람이 칼라가 달린 더러운 옷을 입고 손에 식칼을 들고 창을 통해 안으로 기어들어 오려 하고 있었다. 이를 본 아빠는 서둘러 쾅 하고 창문을 닫았다. "아무도 없잖아."

그러나 칼라가 달린 더러운 옷을 입은 사람은 창 밖에 서 있다가 방을 들여다보고, 마침내 창문을 열고 방 안으로 들어오기까지 했다.

엄마는 너무나 흥분했다. 그녀는 히스테리 발작을 일으켜 꽈당 하고 넘어졌지만, 아빠가 가져다 준 술을 좀 마시고 버섯을 좀 먹고 나서 진정했다.

아빠는 곧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다시 모두 식탁에 앉아 계속해서 술을 마셨다.

(-)

갑자기 아빠가 화가 나 낯을 시뻘겋게 붉히고 소리치기 시작했다.

 

"뭐! 뭐라구! 너희는 나를 아무짝에도 쓸데없는 인간이라고 생각하지! 너희는 나를 인생 낙오자 보듯이 하고 있어! 나는 너희들 밥이나 축내는 식충이가 아니야! 너희들이야 말로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인간들이야!" 아빠가 소리쳤다.

(-)

그리고 아빠는 식당에 앉아 큰소리로 욕을 퍼붓다가, 아침이 되자 서류뭉치를 챙겨들고 하얀 모자를 쓰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조용히 일터로 갔다. <1929년 5월 31일)

 


지금 나는 졸리지만 자지 않을 것이다. 나는 종이와 펜을 가지고 이야기를 쓸 것이다. 나는 내 안에서 어마어마한 힘을 느낀다. 나는 이 모든 것을 어제 이미 다 생각해 놓았다. 이것은 어떤 기적도 행하지 않는 우리 시대에 사는, 기적을 행하는 자에 대한 이야기가 될 것이다. 그는 자신이 기적을 행하는 자이며, 어떤 기적도 행할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알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그를 아파트에서 쫓아낸다. 손가락 하나만 흔들면, 그 아파트를 차지할 수 있다는 것을 알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고, 대신 아파트에서 고분고분 떠나 교외에 있는 헛간에서 지낸다. 그는 이 낡은 헛간을 아름다운 벽돌집으로 변화시킬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계속 헛간에서 살다가, 평생 동안 단 한 번의 기적도 행하지 않은 채 그렇게 생을 마감한다.

 

어느 날 오를로프는 으깬 완두콩을 너무 많이 먹어서 죽었다. 이 사실을 안 끄를로프도 역시 죽었다. 쓰삐리도노프는 저절로 죽었다. 스삐리도노프의 부인은 찬장에서 떨어져 역시 죽었다. 스삐리도노프의 아이들은 연못 속에 빠져 죽었다. 쓰삐리도노프의 할머니는 술로 세월을 보내다 길을 떠났다.

 


한 노파가 지나친 호기심 때문에 창문에서 굴러 떨어져 산산조각이 났다.

다른 노파가 창에서 몸을 쑥 내밀고 산산조각난 노파가 있는 아래를 보기 시작했는데, 지나친 호기심 때문에 역시 창문에서 굴러 떨어져 산산조각이 났다.

그리고 나서 세 번째 노파가 창문에서 떨어졌고, 네 번째, 또 다섯 번째.

여섯 번째 노파가 떨어졌을 때, 나는 그들을 쳐다보는 데 싫증이 나서, 말쩹스키 장터에서 누군가 어떤 장님에게 털실로 짠 목도리를 주었다고들 하기에 그리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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