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한 남자가 나왔다
다닐 하름스 지음, 김정아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4년 9월
평점 :
절판


아빠가 무슨 노래인가 부르려고 했을 때, 무언가가 창문을 두드렸다. 엄마는 놀라서 벌떡 뛰쳐일어나 분명히 누군가 밖에서 창문을 들여다보는 것을 봤다고 소리치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은 그건 불가능하다고 단언했다. 왜냐하면 그들의 아파트는 삼층이고, 그렇기 때문에 거인이나 골리앗이라면 몰라도, 보통 사람이 밖에서 창문 안을 들여다본다는 것은 말도 안 되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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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창 밖에서 우리를 보고 있는데, 내가 어떻게 기분이 좋을 수가 있겠어." 엄마가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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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당혹스러워 양팔을 벌렸다.

"여기 봐." 창문으로 다가가 양쪽 창문을 활짝 열어젖히면서 아빠가 엄마에게 말했다.

어떤 사람이 칼라가 달린 더러운 옷을 입고 손에 식칼을 들고 창을 통해 안으로 기어들어 오려 하고 있었다. 이를 본 아빠는 서둘러 쾅 하고 창문을 닫았다. "아무도 없잖아."

그러나 칼라가 달린 더러운 옷을 입은 사람은 창 밖에 서 있다가 방을 들여다보고, 마침내 창문을 열고 방 안으로 들어오기까지 했다.

엄마는 너무나 흥분했다. 그녀는 히스테리 발작을 일으켜 꽈당 하고 넘어졌지만, 아빠가 가져다 준 술을 좀 마시고 버섯을 좀 먹고 나서 진정했다.

아빠는 곧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다시 모두 식탁에 앉아 계속해서 술을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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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아빠가 화가 나 낯을 시뻘겋게 붉히고 소리치기 시작했다.

 

"뭐! 뭐라구! 너희는 나를 아무짝에도 쓸데없는 인간이라고 생각하지! 너희는 나를 인생 낙오자 보듯이 하고 있어! 나는 너희들 밥이나 축내는 식충이가 아니야! 너희들이야 말로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인간들이야!" 아빠가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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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아빠는 식당에 앉아 큰소리로 욕을 퍼붓다가, 아침이 되자 서류뭉치를 챙겨들고 하얀 모자를 쓰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조용히 일터로 갔다. <1929년 5월 31일)

 


지금 나는 졸리지만 자지 않을 것이다. 나는 종이와 펜을 가지고 이야기를 쓸 것이다. 나는 내 안에서 어마어마한 힘을 느낀다. 나는 이 모든 것을 어제 이미 다 생각해 놓았다. 이것은 어떤 기적도 행하지 않는 우리 시대에 사는, 기적을 행하는 자에 대한 이야기가 될 것이다. 그는 자신이 기적을 행하는 자이며, 어떤 기적도 행할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알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그를 아파트에서 쫓아낸다. 손가락 하나만 흔들면, 그 아파트를 차지할 수 있다는 것을 알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고, 대신 아파트에서 고분고분 떠나 교외에 있는 헛간에서 지낸다. 그는 이 낡은 헛간을 아름다운 벽돌집으로 변화시킬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계속 헛간에서 살다가, 평생 동안 단 한 번의 기적도 행하지 않은 채 그렇게 생을 마감한다.

 

어느 날 오를로프는 으깬 완두콩을 너무 많이 먹어서 죽었다. 이 사실을 안 끄를로프도 역시 죽었다. 쓰삐리도노프는 저절로 죽었다. 스삐리도노프의 부인은 찬장에서 떨어져 역시 죽었다. 스삐리도노프의 아이들은 연못 속에 빠져 죽었다. 쓰삐리도노프의 할머니는 술로 세월을 보내다 길을 떠났다.

 


한 노파가 지나친 호기심 때문에 창문에서 굴러 떨어져 산산조각이 났다.

다른 노파가 창에서 몸을 쑥 내밀고 산산조각난 노파가 있는 아래를 보기 시작했는데, 지나친 호기심 때문에 역시 창문에서 굴러 떨어져 산산조각이 났다.

그리고 나서 세 번째 노파가 창문에서 떨어졌고, 네 번째, 또 다섯 번째.

여섯 번째 노파가 떨어졌을 때, 나는 그들을 쳐다보는 데 싫증이 나서, 말쩹스키 장터에서 누군가 어떤 장님에게 털실로 짠 목도리를 주었다고들 하기에 그리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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