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품안에
카미유 로랑스 지음, 진인혜 옮김 / 문학동네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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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때로 작업장에서 허리와 엉덩이가 꽉 끼는 청바지를 입고, 팔뚝으로 이마를 닦으며, 땀에 젖어 웃통을 벗고 있는 노동자를 보면, 

때때로 검은 안경을 무슨 마스크처럼 쓰고 있는 정력적인 남자가 운전하는 멋지고 빛나는 리무진을 거리에서 마주치면,

(-)

 

그들은 유령이 나오는 밤의 끝자락에 힐끗 보이는 환영에 불과하며, 새벽이 오기 전 그녀를 위해 그들의 순간적인 힘을 보여주는 것뿐이라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그녀는 그들에 대해 잠깐이나마 수치스러운 욕망에 사로잡힌다.

그러나 그 허망한 힘의 전개에서, 남자는 때때로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그녀를 가득 채워준다. 단지 외모─모습을 드러내는 것만으로도.

 

 

_그림자

 

 

 

 

(-)'게이 전용 클럽' 카사 로사에 그녀를 데려간다. 거기에는 여러 개의 방과 층과 단상이 있다. 남자들은 종종 거기서 상반신을 벗고 나무랄 데 없는 육체, 황금 같은 팔, 어깨, 빛나고 매끈한 등, 그들 자신에게 완전히 몰두해 있는 얼굴을 희미한 빛 속으로 드러낸다. 그녀는 짐승처럼 고통스럽고, 한 마리 개처럼 고통 속에 죽을 것만 같다. (-)

그녀는 카사 로사에서 혼자다. 허락받지 못한 것처럼 혼자이고, 극도로 이질적인 존재다. 갑자기, (-)불행하다.

 

 

_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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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욕 버리기 연습 - 먹어도 배고픈 사람을 위한 심리보고서
마리아 산체스 지음, 송경은 옮김, 유은정 감수 / 한국경제신문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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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씬해지고 싶다는 소원은, 우리가 지금까지 어떤 특정한 분야에서 충분히 만족할 정도로 이루지 못했던 무엇이 있음을 드러낸다. (-) 체중은 사실 의식하지 못하는 우리 내면의 전투, 그 결과인 경우가 더 많다.

감정적으로 살아남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에게서 욕구를 분리시키는 방법을 배운다. 우리는 그 욕구를 중요하지 않은 것, 나쁘고 이기적인 것, 게으름의 상징으로 취급한다. 자신이 원하는 가치를 스스로 깎아내림으로써 자신에 대한 진정한 감정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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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책읽기 - 김현의 일기 1986~1989
김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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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체험의 의미를 반성적으로 되새김할 줄 아는 작가이지만 그 한계에 사로잡혀 전망의 확대에는 둔한 작가


 


열정이란 재능을 가리킵니다. 열정 없는 재능이란 없지요(김윤식)


 


어떤 경우에건 자살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그것은 싸움을 포기하는 것이니까. 살아서 별별 추한 꼴을 다 봐야 한다. 그것이 삶이니까.


 


자신의 삶에 대한 의식이 없는 의식에 대해 나는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자작농의 밋밋한 삶은 고양된 혹은 충전된 삶에 대한 감각이 마모되어 있어, 비장이나 장엄에 이르지 못하고 있으며, 그렇다고 사실의 정확한 전달이라는 묘사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지도 못하다. 




비진정성이 진정성의 탈을 쓰고 있다.


 


우리가 문학 작품을 읽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내 생각으로는, 자기의 욕망이 무엇에 대한 욕망인지가 분명하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 그것이 무엇에 대한 욕망인지가 분명하면, 그것을 얻으려고 노력하면 된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인지 분명하지 않다면, 무엇을 욕망하는지를 우선 알아야 한다. 그 앎에 대한 욕망은 남의 글을 읽게 만든다. 남의 이야기나 감정 토로는 하나의 전범으로 그에게 작용하여, 그는 거기에 저항하거나 순응하게 된다. 저항할 때 전범은 희화되어 패러디의 대상이 되며, 순응할 때 전범은 우상화되어 숭배의 대상이 된다. 나는 누구처럼 되겠다가 아니면, 내가 왜 그렇게 돼가 된다. 그 마음가짐은 그의 이름붙이기 힘든 욕망을 달래고, 거기에 일시적인 이름을 붙이게 한다. 왜 일시적인가 하면, 전범은 수도 없이 많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수없이 많은 이야기가 있는 것이다. 물론 그 구조는 그렇게 많지 않겠지만.


 


무언가 있는 듯하면서도 없는 것이 이 시집의 특색이다. 젊은 나이에 지나치게 멋을 부리고 있다. 조로한 척하는 마음의 밑바닥에는 작위적 거속이 자리잡고 있다. 초속은 얻어진 결과이어야지, 바라는 목표이어서는 안된다.




편안함을 바라는 육체와 그것을 보고 불편해하는 의식은 괴리를 일으킬 수 밖에 없을 것.

 


그의 체험의 한계가 느껴진다. 그의 체험은 성실한 교사의 그것이며, 그것에는 그가 보는 텔레비전, 톱 뉴스들(예를 들어 여의도의 이산 가족), 가난한 들풀들에 대한 그의 내적 체험 외에, 책읽기의 체험이 포함되어 있다. 그의 이미지들의 상당수가 70년대의 기본적 이미지들의 변형이며 그것들은 대체적으로 책읽기의 내적 체험의 변주들이다. 그의 체험의 질이 내적 체험이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그는 회상 · 침잠 등의 서정적 세계에 속해 있으며, 그의 시의 상당 부분은 그것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옛 시의 서정성이 두드러지는 것 같지만 회귀 욕망이 절실하다기 보다는 습관적으로 드러나 진부한 산문 같다.


 


무애지사에게 중요한 것은 모든 것에 초연한 척 하는 마음가짐이 아니라,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는, 기쁘면 뛰어놀고 슬프면 울고 가슴 아프면 아프다고 소리지르는 활달함이 아닐까 한다. 그것을 거짓 초연함으로 억누를 때, 유마거사의 흉내를 낼 때, 그의 시는 가짜 도사의 자기 자랑으로 보인다. 병이 곧 마음이라면, 아프다고 외쳐야지, 왜 그것을 자랑해! 할!


 


욕망이 부재의 현존이라는 것의 예를 코제브는 목마름으로 들고 있다. 물 마시고 싶다는 욕망은 물의 부재라는 것이다. 욕망은 공이며 무이다.


 


시는 시로 읽어야 한다. 그의 시는 그의 구체성 속에서 이해되어야지 그것을 낳은 논리 속에서 이해돼서는 안 된다.


 


욕망은 자신을 이분하여 그 중의 하나를 죽임으로써 자신을 죽이지 않고 살아가게 만든다.


 


시인 지망생에게는, 이 시가 왜 좋은가보다는 이 시가 왜 나쁜가 말해줘야 한다.(오규원)


 


주인공들의 가정 환경, 가족 상황이 깊이 있게 나타나지 않는다. 그래서 때로 주인공들이 부유하는 느낌을 준다.


 


언어 표현의 치열함에 비해 말들의 긴장 관계가 느슨하다.


 


한창기씨가 어느 날 갑자기 물었다. 건망증이 심하다를 옛날에는 어떻게 썼는지 아십니까? 옛날이래봤자 일제 시대 얘기겠다. 모르겠는데요. 잊음이 많다예요. 동명사형을 그때는 지금보다 훨씬 많이 썼나보다. 


 


잘못은 사람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읽은 책에 있다는 것   *이영유




그의 시쓰기는 시ㅡ쓰기가 아니라 살아 있음ㅡ확인하기이다. 시ㅡ쓰기는 죽음의 연장이다. 이야기가 그러하듯, 시도 죽음을 생존의 원 밖으로 밀어내려는 힘든 노력이다. 그의 시에 쓰여진 표현을 빌면, 내용이야 나는 모른다, 내가 아는 것은, 이 시를 쓰는 순간에 나는 살아 있다는 것이다.


 


네 삶이 그런 삶이라 해도, 그 삶은 아름답다. 그렇다고 다른 삶이 안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네 삶과 다른 삶은 다 변하고 있다. 움직이고 있다. 그 변화의 원리는 사람은 "스스로 깨닫는 방법"[67]에 이를 뿐이라는 것이다.


 


읽힌다. 그러나 감동적이지는 않다. 울림이 옅어서, 재치도 재치 같지가 않고 고통도 고통 같지가 않다. 그렇다고 마르셀 에메처럼 가볍게 날지도 못한다. 우화적이지도 않다. 그럼 뭣일까? 지루한 가벼움이랄까. 가난도, 사랑도, 데모도‥‥‥ 다 둔하게, 지루하게 가볍다. 악마 같은 고통이 더 필요하다.


 


위의 경우와는 좀 다른 의미로 치기투성이이다. 이때의 치기란 자기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잘 알지 못하면서 강력하게 자기 주장을ㅡ자기 주장을? 남들의 주장을 서툴게 엮어놓은 것을ㅡ내세우는 데서 생겨나는 치기이다. 읽기가 민망스럽다.


 


기형도가 죽었단다. 아니 이게 웬일이야. 한 달 전에 그와 같이 술 마실 때의 그의 표정이 떠오른다. 울고 싶은 듯, 찡그리고 싶은 듯,, 웃고 있는 얼굴이었지만 묘한 표정이었다. 아니 문화부에서 편집부로 자리를 옮긴 것이 그렇게 가슴아팠단 말인가. 집에 들어가기 싫어 혼자 영화를 보다 죽다니!




외동이의 동이는 업둥이의 둥이와 같이 어린이를 나타낸다. 외딸과 외아들을 총괄하는 어휘로 외동이라는 말을 쓰는 것은 좋으나, 외롭다의 외와 겹쳐 쓸쓸하다는 심적 가치가 부가돼, 말의 울림이 썩 미묘하다.




시평은 문체에만 의존하고 있으며, 감탄보다는 미문에 더 의존하고 있다. 잘못하면 기술자가 되겠다. 조심해야 할 단계이다. 더 뚫고 나가기 위해서는 더 고통해야 하는데, 그의 고통은 자꾸만 제스처로 느껴진다.



읽을 만한데 깊은 감동을 주지 않는다. 수사가 세계관을 압도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말들의 빈틈을 좀 줄여야 하겠다. 그래야 읽힌다. 


 


재치가 넘쳐난다. 그 재치는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절제되어 있지 않아, 과시적으로 느껴진다. 과시적 재치는 우선은 그럴듯하지만 쉽게 싫증난다. 그녀의 재치가 더 세련되거나 더 신중해졌으면 좋겠다.


 


장광설이다. 자만심이 지나치고, 논리가 너무 신문기사적이다. 선정주의를 너무 빨리 배웠고, 자기가 쓴 것이 대단한 것으로 알고 있다. 젊었을 때에는 대개 그렇다고들하나, 좀 심하다. 절제를 배워야겠다. 그리고 자기가 뚫을 수 있는 길이 무엇인가를 숙고할 필요가 있다.


 


대부분의 경우 말주정에 가깝다. 구어체는 할 말이 웅변적이지 않으면, 깊은 감명을 주지 않는다.




울림이 많은 이미지인데 시인은 더 발전시키지 못한다. 그것이 그녀의 시인으로서의 한계다. 그녀의 무의식은 아직 으깨지지 않고 단단히 합리성으로 무장되어 있다.


 


아름다운 문장 한두 개로 소설을 버티고 있다. 더 깊어져야 한다. 깊어지기 위해서는 좀더, 바타이유가 쓰는 의미로 위반이 많아져야 한다.

 

 

 

그의 단점은 좋은 작가와 나쁜 작가를 자기 나름으로 구분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모든 작가들이 분석의 대상이 될 수는 있지만, 뛰어난 작가들과의 싸움을 통해서만 비평가도 자란다. 자라지 않는 비평가를 보는 것은 나이든 난쟁이를 보는 것처럼 괴롭다.


 


그의 의식은 농부의 의식이라기보다는, 소시민의 낭만적 결의가 기본을 이루는 의식이다. 그 점에 대해서는 최두석이 적절하게 지적하고 있다. 그의 시가 깊은 감동을 주지 않는 것은 그 허세 때문이다. 아름다운 말들은 그때 장식으로 변한다.


 


그는 소설가답게 그 무의식의 위협을 잘 알고 그것을 경계하고 있으나, 그의 시적 정의는 때로 그 경계를 넘어선다.


 



대부분이 좋지 않다. 너무 상투적이고 너무 무반성적이다. 많이 쓰면 그러나 재미있는 구절은 한둘 있게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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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니어그램의 지혜 - 나와 세상을 이해하는 아홉 가지 성격 유형, 개정판
돈 리처드 리소.러스 허드슨 지음, 주혜명 옮김 / 한문화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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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많은 사람이 삶에 마음을 열려고 하지 않는 것은, 너무 건강해지면 자신이 얼마나 많은 상처를 입었는지에 대해 더 이상 불평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건강해진다면 우리를 괴롭힌 것에 대해 부모님을 계속 처벌할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는 부모나 배우자에게 화가 나면 지나치게 먹거나 마시거나 흡연을 함으로써 자신이 얼마나 불행한지를 보여 주려고 한다. 자신을 학대함으로써 감정을 표현하려고 하는 것이다.


(-)


슬픔 치유하기

가슴을 변화시키는 과정은 어려울 수도 있다. 가슴을 열어 감에 따라서 우리는 자신의 고통과 만나고 다른 사람의 고통을 더 인식하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 성격의 많은 부분은 우리가 이 고통을 경험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생겨났다. 우리는 가슴의 민감성을 닫음으로써 통증에 대해서 무감각해질 수 있다. 그러나 그 고통을 완전히 피할 수는 없다. 우리는 자기 자신과 주변 사람들을 비참하게 만드는 만큼만 고통을 인식할 때가 많다. (-)

(-)

신성한 사랑은 우리를 통하여 세상에서 스스로를 표현하려고 한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 안에 축적되어 있는 모든 장애물과 진실이 아닌 것을 깰 수 있다. 우리는 의식을 성장시키는 과정에서 분명히 슬픔과 고통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 뒤에는 사랑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라. 그 사랑은 우리를 성장시키는 힘이며 우리가 가려고 하는 목적지이기도 하다.



용서에 대하여

(-) 어떻게 우리는 예전의 모습에 우리를 묶어 놓고 앞으로 나가는 것을 막는 상처와 적개심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우리는 사랑하기를 '결정할' 수 없는 것처럼 용서하기를 '결정할' 수 없다. 용서는 우리의 본성으로부터 일어나며 상황을 더 깊이 이해하는 데서 온다. (-) 용서는 우리가 자신의 분노, 미움, 적개심, 복수하고 싶은 욕망을 완전히 경험한 후에그러한 충동을 행동으로 옮기지 않고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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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배처럼 텅 비어 문학과지성 시인선 485
최승자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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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듯한 풀빵 같은



하늘의 바람을 불게 하는 자는 누구인가

누군가 운명을 주고 누군가 운명을 건네받는다

이 운명은 누가 주는 것인가

따듯한 풀빵 같은 그러나 끝내

먹지는 않고 손에 쥐고 있을

따듯한 풀빵 같은 이 운명은

누가 내게 주는 것일까




슬픔을 치렁치렁 달고



슬픔을 치렁치렁 달고

내가 운들 무엇이며

내가 안 운들 무엇이냐

해 가고 달 가고

뜨락 앞마당엔

늙으신 처녀처럼

웃고 있는 코스모스들




나는 육십 년간



나는 육십 년간 죽어 있는 세계만 바라보았다

이젠 살아 있는 세계를 보고 싶다

사랑 찌개백반인 삶이여 세계여


창문을 여니 바람이 세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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