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는 안녕, - 제1회 문학동네 대학소설상 수상작
이종산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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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산: 국문과로서 문예창작과 수업을 들은 게 3학년이었어요. 4학년 때는 청강을 했고, 문창과는 수업보다는 주변에서 만났던 친구들이 더 도움이 되었던 것 같아요. 국문과는 고전부터, 문창과는 현대를 더 많이 접하는데, 친구들이 누구누구 시 읽어봤니? 하고 건네는 경우가 있었어요. 저는 시를 잘 몰랐어요. 저는 중학교 3학년 때 선생님이 시는 쓰지 마라, 이렇게 말을 하셔서 시집을 안 읽었어요. 시도 안 썼어요. 이민하나, 지금 나온 시인들, 미래파라고 불렸던 시인들의 시를 처음 접하게 되었는데 탈출구가 되었어요. 소설에 대해서는 강박이나 경직이 있었는데, 이렇게 해도 되는구나. 시도 이렇게 쓰는데, 소설도 내 맘대로 해도 되는구나, 거기서 경직이 풀어졌던 것 같고, 거기서 흡수가 되었던 시기가 되었던 것 같아요. 새로운 읽을거리를 찾으면서 계속 깨졌던 것 같고. 코끼리는 안녕,도 대학소설상이 있다는 걸 모르고 쓰기 시작했는데 3학년, 10월 정도에, 아까 독하다고 했는데, 합평에 들어가서는 좋은 얘기도 있지만 대부분은 너의 안 좋은 점이 이런 거니까 고쳐봐라, 그래서 점점 더 경직되는 거예요. 방향을 잃었었는데, 학교 끝나고 집에 왔는데, 과제도 하기 싫고 다 싫은 거예요. 그래서 아 모르겠어.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거야. 그래서 다 내려놓고 썼던 게 코끼리는 안녕,의 첫 문장이었던 것 같아요. 코끼리는 안녕,쓰기 직전, 전날이 제게는 가장 강박이 심했던 때. 처음 문창과 수업 들을 때, 하루에 세 시간씩 잤던 것 같아요. 처음 소설을 쓰는 타과생이니까 더 매달려서 해야겠다, 하고 버텼던 거 같아요. 나중에는 내 맘대로 하고, 내가 좋아하는 걸 내 방식대로, 내 톤이랑 가장 잘 맞는 걸 해보자, 했을 때 가장 잘 풀렸던 것 같아요. 게으른 삶도 그 요령대로, 자기를 한번 내려놓는 요령을 알게 되면 편해지는 거 같아요.

문학동네 독서토론 시간여행’(2014. 9. 20.)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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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꾸제트
질 파리 지음, 성귀수 옮김 / 열림원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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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엄마가 보고 싶기도 한데, 이제야 나는 엄마가 나를 보러 보호소에 오는 일은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레이몽이 집에 돌아가 옷들을 챙겨다주면서 하는 말이, 우리 집이 완전히 ‘봉인’되었다는 것이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아무도 거길 들어갈 수 없게 되었다는 말이야.”

“그럼 엄마가 하늘에서 아빠랑 지내는 게 지겨워져서 다시 맥주나 마시고 싶어져도, 집에 들어갈 수 없을 텐데 어떻게 해요?”

레이몽은 하늘에는 맥주가 아주 많아서 엄마는 영원히 거기서 내려오지 않을 거라고, 때문에 다시는 엄마를 볼 수 없을 거라고 했다. 나는 울었다.


이 얘기를 로지한테 한 적이 있다.

“그런 바보 같은 소리가 어디 있니? 하늘에 맥주 따윈 없단다. 네 엄마는 하늘에서 하프를 연주하고 있어.”

“하프가 뭐예요?” 

“악기 이름이란다.”

“아, 그렇구나…… 근데 엄마가 하프를 연주한다니 이상해요. 엄만 맥주와 텔레비전과 만물시장과 셀린 디옹의 노래들 말고는 아무 관심도 없거든요.”

그러자 로지는 두 손으로 가만히 내 얼굴을 감쌌다.

“그런 말하면 못써요, 우리 꾸제트. 엄마는 무엇보다 너에게 관심이 많았어. 말을 안 할 뿐이지 세상 모든 엄마는 자기 아이를 아주 많이 사랑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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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언제 이 숲에 오시렵니까
도종환 지음 / 난다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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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은 낮은 곳을 택하여 가지만 결국은 바다에 이릅니다.


(-)


아침마다 기온이 떨어져 날씨가 갈수록 쌀쌀해지고 강원도에는 벌써 첫눈이 내렸다는 소식이 들리는 날, 작은 솥에다 고구마를 찝니다. ‘칙칙!’ 하고 소리를 내며 물이 끓는 동안 솥뚜껑을 밀어올리는 힘이 씩씩거리며 달려오는 기관차를 보는 듯합니다. 그 씩씩거리는 힘이 쪄낸 고구마를 반으로 잘라 잘 익은 고구마의 속살을 바라봅니다. 잘 익은 고구마의 노오란 살빛이 참 보기 좋습니다.


보은 지방의 황토는 고구마를 잘 키워내는 좋은 흙입니다. 파삭파삭한 고구마의 맛이 바로 황토가 키워낸 맛입니다. 황토 중에서도 보통의 고구마를 밤고구마로 키워내는 황토의 불그스레한 빛깔은 잘 익은 흙의 빛깔입니다. 바위가 잔돌이 되었다가 다시 고운 황토로 변해온 오랜 겁의 세월이 그 빛깔 안에 녹아 있습니다.


잘 익은 감빛은 또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손안에 꽉 차는 감의 느낌, 힘을 더 주면 터질 것 같아 가만히 감의 무게를 쥐고 있노라면 부드러우면서도 팽팽한 감의 살, 말랑말랑하면서도 탱탱한 감의 살갗을 손 가득 느끼며 잘 익은 것의 감촉이란 바로 이런 것을 말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주홍빛이란 말 대신 감빛이라고 이름을 바꾸었으면 좋겠습니다. 과일이 가장 아름다운 것은 제대로 익었을 때입니다. 익을 대로 익은 과일의 농익은 빛깔 중 하나가 홍시의 감빛입니다. 


(-)


영문학자 박혜영 교수는 2004년 ‘올해의 평화상’을 받은 인도의 여성 작가 아룬다티 로이에 대해 이야기하며 왜 우리가 다른 존재를 깊이 들여다보아야 하는지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어떤 존재이건 일단 깊이 들여다보면 결코 우리와 연결된 그 고리를 쉽게 잘라내지 못할 것이다. 가령 맑은 강물을 깊이 들여다본 사람이라면 그 물속에 시멘트를 쏟을 수 없을 것이다. 나무가 자라는 것을 두고두고 지켜본 사람이라면 그 나무를 베어내지 못할 것이다. 또 죽어가는 동물의 눈을 오래 들여다본 사람이라면 결코 덫을 놓을 수 없을 것이다. 우리가 다른 존재를 처음 사랑했을 때의 그 착한 설렘을 기억하고 있다면 결코 다른 존재의 고통과 슬픔에 대해 눈을 감을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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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
류시화 지음 / 더숲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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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에 앉은 새는 가지가 부러질까 두려워하지 않는다. 새는 나무가 아니라 자신의 날개를 믿기 때문이다."



투우장 한쪽에는 소가 안전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구역이 있다. 투우사와 싸우다가 지친 소는 자신이 정한 그 장소로 가서 숨을 고르며 힘을 모은다. 기운을 되찾아 계속 싸우기 위해서다. 그곳에 있으면 소는 더 이상 두렵지 않다. 소만 아는 그 자리를 스페인 어로 퀘렌시아Querencia라고 부른다. 피난처, 안식처라는 뜻이다.


퀘렌시아는 회복의 장소이다. 세상의 위험으로부터 자신이 안전하다고 느끼는 곳, 힘들고 지쳤을 때 기운을 얻는 곳, 본연의 자기 자신에 가장 가까워지는 곳이다. (-) 곤충이 비를 피하는 나뭇잎 뒷면, 땅두더쥐가 숨는 굴이 모두 그곳이다. (-) 명상 역시 자기 안에서 퀘렌시아를 발견하려는 시도이다.


전에 공동체 생활을 할 때, 날마다 열 명이 넘는 방문객이 찾아왔다. 지방에서 온 이들은 며칠씩 묵어가기도 했다. 살아온 환경과 개성이 다른 사람들로 늘 북적였다. 다행히 집 뒤쪽, 외부인의 출입이 차단된 작은 방이 내게 중요한 휴식처가 되어 주었다. 그곳은 오로지 나만을 위한 공간, 나의 퀘렌시아였다. 한두 시간 그 방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을 다시 만날 기운이 생겼다. 그 비밀의 방이 없었다면 심신이 고갈되고 사람들에게 치였을 것이다.


(-)


내 삶에 힘든 순간들이 있었다. 그 순간들을 피해 호흡을 고르지 않으면 극단적인 선택을 하거나 부정적인 감정들로 마음이 피폐해질 수 있었다. 그럴 때마다 여행은 나만의 퀘렌시아였다. 여행지에 도착하는 순간 문제들을 내려놓고, 온전히 나 자신이 되었으며, 마음의 평화를 되찾았다. 그러고 나면 얼마 후 새로운 의욕들을 가지고 다시 삶 속으로 뛰어들 수 있었다.


동물들은 본능적으로 퀘렌시아를 안다. 뱀과 개구리는 체온으로 동면의 시기를 정확히 알며, 제주왕나비와 두루미도 매년 이동할 때가 되면 어디로 날아가 휴식할지를 안다. 그것은 존재계가 생명을 지속하기 위한 본능적인 부름이다. 그 휴식이 없으면 생명 활동의 원천이 바닥난다. 인간 역시 언제 일을 내려놓고 쉬어야 하는지 안다. 우리가 귀를 기울이면 몸이 우리에게 말해 준다. 퀘렌시아가 필요한 순간임을. 나 자신으로 통하는 본연의 자리, 세상과 마주할 힘을 얻을 장소가 필요하다는 것을.


(-)


투우장의 퀘렌시아는 처음부터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다. 투우가 진행되는 동안 소는 어디가 자신에게 가장 안전한 장소이며 숨을 고를 수 있는 자리인지를 살핀다. 그리고 그 장소를 자신의 퀘렌시아로 삼는다. 투우사는 소와의 싸움에서 이기려면 그 장소를 알아내어 소가 그곳으로 가지 못하게 막아야 한다. 투우를 이해하기 위해 수백 전 넘게 투우장을 드나든 헤밍웨이는 "퀘렌시아에 있을 때 소는 말할 수 없이 강해져서 쓰러뜨리는 것이 불가능하다."라고 썼다.


삶은 자주 위협적이고 도전적이어서 우리의 통제 능력을 벗어난 상황들이 펼쳐진다. 그때 우리는 구석에 몰린 소처럼 두렵고 무력해진다. 그럴 때마다 자신만의 영역으로 물러나 호흡을 고르고, 마음을 추스리고, 살아갈 힘을 회복하는 것이 필요하다. 숨을 고르는 일은 곧 마음을 고르는 일이다.


(-) 누군가 말했듯이, 인생은 쉼표 없는 악보와 같기 때문에 연주자가 필요할 때마다 스스로 쉼표를 매겨 가며 연주해야만 한다.


가장 진실한 자기 자신이 될 수 있는 곳, 그곳이 바로 퀘렌시아이다. 나아가 언제 어디서나 진실한 자신이 될 수 있다면, 싸움을 멈추고 평화로움 안에 머물 수 있다면, 이 세상 모든 곳이 퀘렌시아가 될 수 있다. 신은 본래 이 세상을 그런 장소로 창조했다. (-) 그런 세상을 투우장으로 만드는 것은 우리 자신들이다.


(-)


(-) 인도의 오래된 경전 『야슈타바크라 기타』(-)

'삶의 파도들이 일어나고 가라앉게 두라. 너는 잃을 것도 얻을 것도 없다. 너는 바다 그 자체이므로.'


출간 전 연재

http://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6405215&memberNo=202154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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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정원에 핀 꽃들처럼 - 신학자 현경이 이슬람 순례를 통해 얻은 99가지 지혜
현경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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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은 광주항쟁이 있었던 해이고, 내 나이 24세였다. 광주의 원혼이 떠돌며 울고 있던 한국에서 나는 숨 쉬는 법을 잊어버린 사람처럼 가슴이 답답했다. 그리고 항상 목이 말랐다. 김지하 시인의 시구,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가 주문처럼 마음속을 떠나지 않았다. 당시 나는 한국기독학생운동에 깊이 참여하고 있었다. 서울 주변 빈민촌에서 도시 빈민들과 성 노동자 여성들의 아이들을 위한 야학 선생을 했고, 동대문 시장 근처의 한 노동조합에서 공장 노동자들을 위한 오락 선생도 했다. 그리고 대학원 1학년생으로 금서였던 한국의 민중신학, 남미의 해방신학 책들을 몰래 공부하고 있었다.

(-)

별달리 용감하지도 철저하지도 못했던 나는 어떤 의미에서 학생운동의 '주변인'이었다. 그때는 잘 몰랐었지만 지금 뒤돌아보니 나는 선과 악이 칼날같이 구분되는 이분법적 우주를 영혼의 바닥에서부터는 믿지 않았던 것 같다. 좋은 시절에 태어났다면 무정부주의자, 자연주의자, 아니면 아무 주의자도 아닌 것이 내게 가장 어울렸을 것이다. 하지만 그 시절 우리는 "선과 악이 싸울 때 누구의 편에 설 것인가?"라는 시대의 질문에 대답해야 했다. 대답은 어떤 편을 선택하는 행동으로 이어졌고 그 행동은 나 같은 주변인도 경찰서에 잡혀가게 만들었다.

어느 날 나는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세 명의 사복경찰에게 납치되어 눈이 가려진 채 까만 승용차에 실려 갔다. 그들이 데려간 곳은 경찰서 지하실이었다. 우리들이 '고문실'이라고 부르는 곳이었다.

(-)

"하나님은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주는 나를 푸른 초장에 눕게 하시고 잔잔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비록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난다 해도 내가 두렵지 않음은 주가 나와 함께하시고 그의 지팡이가 나를 보호하시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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