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존재의 이해를 위하여
김성태 지음 / 은행나무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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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인간이 어떤 방법을 정확히 알고 있다면 오류는 발생하지 않는다. 우리가 방법을 알게 되는 시점은 언제나 '이후'이다. 새로운 것을 맞닥뜨리는 그때, 우리는 늘 캄캄할 수밖에 없다. 아무런 방법도 알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술가들은 이때 평범함을 넘어선다. 그들도 힘겨워하면서 무던히 애를 쓰지만, 언제나 결국엔 거기에 접근하는 '방법'을 찾아낸다. 이 방법에 의해서 모든 것이 바뀐다. 때문에 모든 방법은 시도이며, 새로운 전환을 내포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한 시도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우리는 결코 대상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나 새로운 접근을 감행할 수 없다.

(-) 붕대에 묶여 있는 시체에 불과한 미라를 기대감을 가지고 이리저리 들여다본다 한들 달라질 것은 없다. 미라는 여전히 붕대 밑에 갇혀 있는 시간이며, 꽁꽁 묶인 행위이다. 대상들은 바라보임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서 어떤 방법을 발견해주기를 원한다. (-) 미라는 갑자기, 우연한 기회에, 그것이 어떤 결과를 몰고 올지 모르는 어느 순간에, 어떤 주술적 행위가 이루어짐으로써 깨어난다. 미라는 깨어나고 나서야 발화가 가능하고, 자신을 말할 수 있다. 우리는 그것을 붕대로부터 해방시키지 않고서는 어떤 것인지 알 수 없다. 붕대 밑에 어떤 얼굴이 있으며, 어떤 욕망이 잠자고 있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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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주주금석 논어 세트 - 전2권 - 한학자 김도련 선생이 풀어 쓴
김도련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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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 책 『주주금석 논어』는 청람 김도련 선생의 『논어』 주석서이다. 드물게 주자의 집주와 함께 다산茶山의 『논어고금주論語古今註』 외에 여타 주요 주석서의 내용을 아울렀다. 이 책은 1990년에 현음사에서 처음 간행되었다. 간행 직후 13세기 성리학 수준에 맴돌던 한국 유학의 『논어』 이해를 새롭게 한 저술이란 높은 평가를 받았다. (-)

책 제목을 ‘주주금석朱註今釋’이라 했다. 주주는 주자의 집주이고, 금석은 다산의 관점에 입각한 선생의 해석을 뜻한다. 먼저 주자의 풀이를 충실하게 보여준 후 다시 한 번 쉬운 풀이로 설명했는데 주자의 해석과 생각이 다를 경우 다산을 중심에 두고 선생의 관점을 포함시켰다. 이것이 이 책이 여타의 다른 『논어』 주석서와 구분되는 차별점이다. 특별히 주석 부분에 공력을 많이 쏟아 다산을 포함한 제가諸家의 풀이를 아울렀다.

주자와 다산의 『논어』에 대한 이해는 사뭇 달라서 한자리에 펼치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주자의 집주는 역대의 학설을 집대성한 역작이지만 자신의 사상 천명을 위해 무리하게 논의를 전개한 부분도 없지 않았다. 다산은 『논어고금주』에서 주자의 오류를 200여 군데나 지적했다. 『논어』를 관통하는 기본 개념의 하나인 ‘인仁’에 대한 해석만 해도 판이하게 달랐다. 주자는 인仁을 천지가 만물을 생성하는 마음으로 이해하여 형이상학적으로 풀이했다. 하지만 다산은 초기 유교 경전을 천착해 인仁을 아버지와 아들, 임금과 백성, 주인과 피고용인 사이의 원만한 관계를 말한 실천적 윤리 개념으로 이해했다. 어떤 면에서 다산의 『논어고금주』는 주자 서를 맹목적으로 신성시했던 조선 성리학의 교조주의를 극복한 신사고의 선언이었다. 이 판이한 입각점에서 출발한 두 책을 선생은 한 권의 책 속에 주석을 통해 녹여서 독자들이 차이를 비교할 수 있도록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선생께서는 2012년 7월에 오랜 투병 끝에 세상을 뜨셨다. 올해로 3주기를 맞는다. 선생은 초등학교 졸업의 학력임에도 출중한 한학 실력으로 대학교수가 되어 세상을 놀라게 했고, 이후 고문 연구에 평생을 매진한 학자이시다. 선생에게 이 책은 남다른 의미가 있다. 1990년대 초 교수 초년 시절 필자는 주말마다 정릉의 선생 댁으로 가서 글공부를 했다. 한 5년가량 한시漢詩를 배우고 옛글을 읽었다. 아침 10시에 가면 보통 오후 3~4시는 되어야 나올 수 있었다. 매번 공부의 여가에 당신이 어릴 적 글 읽던 이야기, 서당의 풍경, 처음 선생님을 찾아가 혼나던 사연 등을 들려주시곤 했다. 연암 문장의 위대성을 침을 튀며 설명하다가 이내 사마천의 문장이 어디서 힘을 얻었는지로 화제가 옮아갔다. 흥이 오르면 당신의 득의작得意作을 소리 내서 읽어주셨다. 좋은 문장은 읽을 때 글자 하나하나가 빳빳이 서 있고 나쁜 글은 겉만 멀끔하지 읽으면 비실비실 쓰러진다고 하신 말씀도 기억난다. 「온달전」이 어째서 걸작인지를 설명하실 때는 신이 나서 흥을 주체하지 못하셨다. 서하객徐霞客 같은 이름도 이때 처음 들었다. 옛 문장을 고성대독高聲大讀하실 때면 내 어깨까지 덩달아 들썩여졌다.

한번은 앉은뱅이책상 아래서 낡아 다 떨어진 『논어』 두 책을 꺼내시더니 이렇게 말씀하셨다. “정 선생! 이게 무슨 책인지 알아?” 그러고는 열 살 전후 집에서 10여 리 떨어진 서당을 다니며 글공부할 때의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그 이야기는 이랬다.

쉬운 글만 배우다가 『논어』를 시작하니 갑자기 어려워진 내용을 따라가기가 버거웠다. 하루는 수업이 끝나 나오는데 어떤 사람이 서당 앞에서 자기 집에 있던 책 몇 권을 들고 나와 팔고 있었다. 그중에 한글로 풀이된 『논어』가 보였다. 책을 펼쳐보니 평소 알 수 없어 애타던 풀이가 너무도 친절하게 나와 있지 않은가? 그래서 책을 사겠다며 그 사람을 데리고 10여 리를 걸어 집까지 왔다.

“아버지! 저 책을 사주세요.” 상황을 짐작한 아버지가 따라온 사람에게 책값을 물었다. 곁에 계시던 당신 친구 분이 책값을 듣더니 펄쩍 뛰며 전주 시내 서점에 가면 훨씬 싸게 살 수 있는데 뭐하러 그 비싼 값을 주느냐며 야단을 했다. 그때 아버지의 대답이 이랬다. “여보게! 저 아이가 이 책을 만 냥짜리 책으로 읽으면 책값이 만 냥짜리가 될 터이고, 한 냥짜리 책으로 읽으면 그 값밖에 안 될 것일세. 책을 보겠다고 10리 길을 사람을 데려왔는데 책값을 깎겠는가?” 그러고는 어머니더러 그 사람에게 쌀을 내주라고 했다. 어린 마음에 신이 나서 책을 와락 뺏어 들고 품에 안고 어루만졌다. 그때 어머니께서 제사 때 쓰려고 남겨둔 쌀을 뒤주 바닥에서 박박 긁던 소리를 들었다. 당시는 일제 말기로 공출이 심해 끼니를 잇기도 어렵던 때였다.

이후 그 책은 하도 읽어 책장이 나달나달해지고 표지가 떨어져 나갔다. 여러 번 해지고 낡은 것을 깁고 새 표지를 씌워 소중하게 간직해왔다며 내게 보여주셨다. 책의 여백마다 선생의 메모가 빼곡했다. 지금도 이 책만 보면 그때 뒤주 바닥을 긁던 바가지 소리가 들린다시며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굵은 눈물을 뚝뚝 흘리셨다. 겨울날 추운 서재에서 낡은 책을 쓰다듬으며 뜨거운 눈물을 떨구시던 그날 오후의 일이 오래 두고 생각난다. 선생은 그때 해주신 아버님의 말씀을 잊지 못해 ‘이 『논어』를 기필코 만 냥짜리 책으로 만들어야지’ 하는 다짐을 숱하게 했다. 그로부터 47년이 지난 1990년에야 그 꿈을 이루었다. 이 책은 이제껏 수백 종의 『논어』 번역서가 간행되었지만 안목 있는 분들이 최고의 번역서로 꼽았던 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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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에서 별까지 - 심야총서 8
쌩떽쥐베리 / 청하 / 199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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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영원한 母音

어린 왕자에게 보내는 편지

 

법정

 

1

어린 왕자!

지금 밖에서는 마른 바람소리가 들린다. 낙엽이 구르고 있다. 창호(窓戶)에 번지는 하오의 햇살이 지극히 선(善)하다.

이런 시각에 나는 티없이 맑은 네 목소리를 듣는다. 구슬같은 눈매를 본다. 하루에도 몇 번씩 해지는 광경을 바라보고 있을 그 눈매를 그린다. 그리고 이런 메아리가 울려 온다.

‘나하고 친하자. 나는 외롭다.’

‘나는 외롭다…… 나는 외롭다…… 나는 외롭다……’

어린 왕자!

이제 너는 내게서 무연(無緣)한 남이 아니다. 한 지붕 아래 사는 낯익은 식구다. 지금까지 너를 스무 번도 더 읽은 나는 이제 새삼스레 글자를 읽을 필요가 없어졌다. 책장을 훌훌 넘기기만 하여도 네 세계를 넘어다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행간에 씌어진 사연까지도, 여백에 스며 있는 목소리까지도 죄다 읽고 들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몇해 전, 보다 정확히 말한다면 1967년 5월, 너와 마주친 것은 하나의 해후(邂逅)다. 너를 통해서 비로소 인간관계의 바탕을 인식할 수 있었고, 세계와 나의 촌수를 헤아리게 된 것이다. 그때까지 보이지 않던 사물이 보이게 되고, 들리지 않던 소리가 들리게 된 것이다. 그러니까 너를 통해서 본래적인 나와 마주친 것이다.

그때부터 나의 가난한 서가(書架)에는 너의 동료들이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 애들은 메마른 나의 가지에 푸른 수액(樹液)을 돌게 한다. 솔바람 소리처럼 무심한 세계로 나를 이끄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하는 일이 곧 나의 존재임을 투명하게 깨우쳐 주고 있다.

더러는 그저 괜히 창문을 열 때가 있다. 밤하늘을 쳐다보며 귀를 기울인다. 방울처럼 울려 올 네 웃음소리를 듣기 위해. 그리고 혼자서 웃음을 머금는다. 이런 나를 곁에서 이상히 여긴다면, 네가 가르쳐 준 대로 나는 이렇게 말하리라.

─별들을 보고 있으면 난 언제든지 웃음이 나네……

 

2

어린 왕자!

너의 아저씨(쌩 떽쥐뻬리)는 이렇게 말하고 있더라.

─어른들은 숫자를 좋아한다. 어른들에게 새로 사귄 동무 이야기를 하면, 제일 중요한 것은 도무지 묻지 않는다. 그분들은 ‘그 동무의 목소리가 어떠냐? 무슨 장난을 제일 좋아하느냐? 나비 같은 걸 채집하느냐?’ 이렇게 말하는 일은 절대로 없다. ‘나이가 몇이냐? 형제가 몇이냐? 몸무게가 얼마나 나가느냐? 그애 아버지가 얼마나 버느냐?’ 이것이 그분들의 묻는 말이다. 그제야 그 동무를 아는 줄로 생각한다.

만약 어른들에게 ‘창틀에는 제라니움이 피어 있고 지붕에는 비둘기들이 놀고 있는 아름다운 붉은 벽돌집을 보았다’고 말하면, 그분들은 이 집이 어떻게 생겼는지 생각해 내질 못한다. ‘일억 원짜리 집을 보았다’고 해야 한다. 그러면 ‘거 참 굉장하구나!’ 하고 감탄한다.

 

지금 우리 둘레에는 숫자놀음이 한창이다. (-) 잘 산다는 것은 눈에 보이는 숫자의 단위가 많을수록 좋다는 것이다. 따라서 다스리는 사람들은 이 숫자에 최대한의 관심을 쏟고 있다. 숫자가 늘어나면 으시대고, 줄어들면 마구 화를 낸다. 말하자면 ‘자기 목숨의 심지가 얼마쯤 남았는지는 무관심이면서, 눈에 보이는 숫자에만 매달려 살고 있는 것이다.’

(-)

 

어린 왕자!

너는 그런 사람을 가리켜 ‘버섯’이라고 했던가.

─그는 꽃향기를 맡아 본 일도 없고, 별을 바라 본 일도 없고, 누구를 사랑해 본 일도 없어. 더하기밖에는 아무 것도 한 일이 없어. 그러면서도 온 종일, 나는 착한 사람이다, 나는 착한 사람이다 하고 뇌이고만 있어. 그리고 이것 때문에 잔뜩 교만을 부리고 있어. 그렇지만 그건 사람이 아니야, 버섯이야!

 

그래, 네가 여우한테서 얻어들은 비밀처럼,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는 보이지 않아. 잘 보려면 마음으로 보아야 한다. 사실 눈에 보이는 것은 빙산의 한 모서리에 불과해. 보다 크고 넓은 것은 마음으로 느껴야지. 그런데 ‘어른들’은 어디 그래. 눈앞에 나타나야만 보인다고 하거든. 정말 눈뜬 장님들이지. (-)

 

 

3

어린 왕자!

너는 단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꽃인 줄 알았다가, 그 꽃과 같은 많은 장미를 보고 실망한 나머지 풀밭에 엎드려 울었었지? 그때에 여우가 나타나 ‘길들인다’는 말을 가르쳐 주었어. 그건 너무 잊혀진 일이라고 하면서 ‘관계를 맺는다’는 뜻이라고.

길들이기 전에는 서로가 아직은 몇천 몇만의 흔해빠진 비슷한 존재에 불과하여 아쉽거나 그렇지도 않지만, 일단 길을 들이게 되면 이 세상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존재가 되고 만다는 거야.

─네가 나를 길들이면 내 생활은 해가 돋은 것처럼 환해질 거야. 난 어느 발소리하고도 다른 발소리를 알게 될 거다. 네 발자국 소리는 음악이 되어 나를 굴밖으로 불러낼 거야.

그리고 여우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밀밭이 어린 왕자의 머리가 금빛이라는 이 한 가지 사실 때문에, 황금빛이 감도는 밀을 보면 그리워지고 밀밭을 지나가는 바람소리가 좋아질 거라고 했다.

그토록 절절한 ‘관계’가 오늘의 인간 촌락에서는 퇴색해 버렸어. 서로를 이해와 타산으로 이용하려 들거든. 정말 각박한 세상이다. 나와 너의 관계는 없어지고 만 거야. ‘나’는 나고 ‘너’는 너로 끊어지고 말았어. 이와 같이 뿔뿔이 흩어져 버렸기 때문에 ‘나’와 ‘너’는 더욱 외로워질 수밖에 없는 거야. 인간관계가 회복되려면 ‘나’ ‘너’ 사이에 ‘와’가 개재되어야 해. 그래야만 ‘우리’가 될 수 있어. 다시 네 동무인 여우의 목소리를 들어볼까.

─사람들은 이제 무얼 알 시간조차 없어지고 말았어. 다 만들어 놓은 물건을 가게에서 사면 되니까. 하지만 친구를 팔아 주는 장사꾼이란 없으므로 사람들은 친구가 없게 됐단다. 친구를 갖고 싶거든 날 길들여!

(-)

 

5

어린 왕자!

이제는 너를 길들인 후 내 둘레에 얽힌 이야기를 전하고 싶다.

『어린 왕자』라는 책을 처음으로 내게 소개해 준 벗은, 이 한 가지 사실만으로도 한 평생 잊을 수 없는 고마운 벗이다. 너를 대할 때마다 거듭 거듭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그 벗은 나로 하여금 하나의 눈을 얻게 해 주었으니까.

지금까지 읽은 책도 적지 않지만, 너에게서처럼 커다란 감동과 결정적인 영향을 받은 책은 일찌기 없었다. 그러기 때문에 네가 나한테는 단순한 책이 아니라 하나의 경전이라고 한대도 조금도 과장이 아닐 것 같다. 누가 나더러 지묵(紙墨)으로 된 한 권의 책을 선택하라면 주저하지 않고 선뜻 너를 고르겠다. 내게는 화엄경(華嚴經)이나 임제록(臨濟錄)과 같이 즐겨 읽는 성인의 말씀도 적지 않지만.

(-) 너를 읽고 좋아하는 사람한테는 이내 신뢰감과 친화력을 느끼게 된다. 설사 그가 처음 만난 사람이라 할지라도 너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그는 내 벗이 될 수 있어. (-)

(-)그러니까 너는 사람의 폭을 재는 한 개의 자다. 적어도 내게는.

그리고 네 목소리를 들을 때 나는 누워 뒹굴면서 들어. 그래야 네 목소리를 보다 생생하게 들을 수 있기 때문이야. 상상의 날개를 마음껏 펼치고 날아 다닐 수 있는 거야. 네 목소리는 들을수록 새롭기만 해. 그건 영원한 모음(母音)이야.

아, 이토록 네가 나를 흔들고 있는 까닭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그건 네 영혼이 너무도 아름답고 착하고 조금은 슬프기 때문일까. 사막이 아름다운 건 어디엔가 우물이 숨어 있어서 그렇듯이.

네 소중한 장미와 고삐가 없는 양에게 안부를 전해다오. 너는 항시 나와 함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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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와 수치심 - 인간다움을 파괴하는 감정들
마사 너스바움 지음, 조계원 옮김 / 민음사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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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균적인 사람'이 이러한 작품에 실제로 혐오를 느낀다면, (-) 평등에 헌신하는 사회는 이러한 작품을 우려하기보다는 (-) '평균적인 사람'과 그가 받은 교육에 문제가 없는지 걱정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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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기쁨
에릭 엠마뉴엘 슈미트 지음, 류재화 옮김 / 열림원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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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하면서 마리는 마침내 모든 걸 자유롭게 표현하고, 추억을 늘어놓았다. 무엇보다 자신도 미처 생각지 못했던 범죄의 동기를 발견하는 일이 즐거웠다. 만일 살인이 계속되었다면, 범죄를 저지르는 이유는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매번 달랐을 것이다. 어떤 날의 이유가 마음에 들지? 화요일? 수요일? 아니면 금요일이나 토요일? 전부 좋았다. 그녀는 그 미묘한 차이를 사랑했다.



은박 상자들만 빛을 내는 매우 흐릿한 날이었다. 밖은 눈이 포근하게 내리고 있었다. 길가에서는 자동차들이 부릉부릉 소리를 내며 서둘러 달리는 것도 같았으나, 귀에 솜을 넣은 듯 잘 들리지 않았다.

카트린은 자신의 삶이 일요일 오후 같다고 생각했다. 길고, 음울하고, 막연한 희망과 모호한 회한으로 가득 찬 느낌. 맛볼 만한 달콤함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좋았겠지만, 모든 게 너무 썼다.



(-) 구명 튜브에 매달린 물에 빠진 사람처럼 이상적인 남편이라는 자신의 업무에 매달렸다. 그것만이 그를 구원했고, 그가 만들어내고 싶은 현실이었다. "그래, 연기는 확실하게." 그는 그렇게 자주 중얼거렸다. "역할에 충실하기, 내 불안이나 내적 혼란을 결코 드러내지 않기."

그가 옳았을 수도 있다. 형식은 간혹 우리를 구제한다. 무질서에 위협받는다면 겉모습이라도 지켜야 우리는 혼돈 속으로 처박히지 않는다. 겉모습은 껍데기이므로 강하다. 그것은 버틴다, 그것은 우리를 버티게 만든다. "떨어지지 말기." 그는 이 말을 반복했다. "무너지지 말기, 겁에 질리지 않기, 그녀가 견뎌내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기, 그녀가 나에게 가할 상처도 두려워하지 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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