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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기쁨
에릭 엠마뉴엘 슈미트 지음, 류재화 옮김 / 열림원 / 2017년 8월
평점 :
절판
이야기를 하면서 마리는 마침내 모든 걸 자유롭게 표현하고, 추억을 늘어놓았다. 무엇보다 자신도 미처 생각지 못했던 범죄의 동기를 발견하는 일이 즐거웠다. 만일 살인이 계속되었다면, 범죄를 저지르는 이유는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매번 달랐을 것이다. 어떤 날의 이유가 마음에 들지? 화요일? 수요일? 아니면 금요일이나 토요일? 전부 좋았다. 그녀는 그 미묘한 차이를 사랑했다.
은박 상자들만 빛을 내는 매우 흐릿한 날이었다. 밖은 눈이 포근하게 내리고 있었다. 길가에서는 자동차들이 부릉부릉 소리를 내며 서둘러 달리는 것도 같았으나, 귀에 솜을 넣은 듯 잘 들리지 않았다.
카트린은 자신의 삶이 일요일 오후 같다고 생각했다. 길고, 음울하고, 막연한 희망과 모호한 회한으로 가득 찬 느낌. 맛볼 만한 달콤함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좋았겠지만, 모든 게 너무 썼다.
(-) 구명 튜브에 매달린 물에 빠진 사람처럼 이상적인 남편이라는 자신의 업무에 매달렸다. 그것만이 그를 구원했고, 그가 만들어내고 싶은 현실이었다. "그래, 연기는 확실하게." 그는 그렇게 자주 중얼거렸다. "역할에 충실하기, 내 불안이나 내적 혼란을 결코 드러내지 않기."
그가 옳았을 수도 있다. 형식은 간혹 우리를 구제한다. 무질서에 위협받는다면 겉모습이라도 지켜야 우리는 혼돈 속으로 처박히지 않는다. 겉모습은 껍데기이므로 강하다. 그것은 버틴다, 그것은 우리를 버티게 만든다. "떨어지지 말기." 그는 이 말을 반복했다. "무너지지 말기, 겁에 질리지 않기, 그녀가 견뎌내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기, 그녀가 나에게 가할 상처도 두려워하지 말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