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에 못가는 이유 - 제3의 詩 1
장정일 지음 / 문학세계사 / 199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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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강정 간다」를 쓸 무렵


그때, 나는 타자기를 내 생명같이 아꼈었다. 내 방이 아닌 곳에서는 한 줄의 책을 읽는 것은 물론, 한 줄의 글을 쓰는 것조차 부끄럽고, 어색하고, 힘이 들었던 결벽으로 인해, 나의 방이 아닌 다른 대명천지에 뻔뻔히 쭈그리고 앉아, 타자기 뚜껑을 열고서는, 하얀 모조의 타자지를 더럽히는 일도 없긴 했지만, 어쨌든 나는 내 여섯번째 장기나 되는 듯이 크로바 타자기를 들고 다니길 좋아했었고, 내 인생이, 이것과 떨어져 살 수 없을 것이라는 어렴풋한 예감에 몸을 떨곤 했다.

떨칠래야 떨칠 수 없는 문학행위에 대한 원초적인 의심과 두려움을 안은 채로, 밤 새워 책을 읽고 몇 줄의 글을 썼던 그때, 신나는 음악이 나올 때마다 잠시 책읽기를 멈추고 춤을 추어댔던 AFKN-FM을 끄고, 100원짜리 토큰 두 개를 들고, 몸을 떨며 달려간 낙동강 줄기의 강정. 나는 너무 좋아했다. 집 앞에서 3번 버스를 타고 한 30분쯤 내달리면 나오는 허허벌판.

강정 하면, 나는 맨 먼저 개떼들을 생각한다. 시골도 아니고 도시도 아닌, 어중간한 대도시 근교의 유원지에 떼지어 서성이는 잡종개들. 겨울에는 두손에 꼬리를 모아 쥔 채 양지녘을 찾아 빌빌거리다가, 여름에는 마을 사람에 의해 동네 뒷산에서 그을려져 자가용을 타고 온 도회인에게 먹어치워지는 개. 강정에 대한, 숱한 괴로운 추억들 가운데 어찌 나는 욕망과 식탐 채우기에 눈이 벌건 개들을 제일 먼저 생각하는 건지……

아주 자주 대구 동성로의 대구백화점 뒷골목에서 시작했던 술자리가 다음날 새벽이면 강정의 삭막한 모래판으로 옮겨져 있곤 하였다. 술은 이미 취하였고 버스는 물론 택시비도 떨어졌을 때─아예 택시비 같은 건 없기도 했지만─꼭 그 가운데 한두 명이 강정에 가자는 제안을 했고 우리는 뽕환자처럼 거기에 따랐다. 서너 시간을 힘들여 걸어가 당도해봤자 모기떼만 잔뜩 우리 살을 뜯으려고 기다릴 따름인 강정. 해가 뜰 때까지 도란거리거나 가지고 간 소주를 마시다가 첫차가 오면, 욕하며, 푸석한 모래밭과 탈모증처럼 드문히 서 있는 미루나무의 강정을 떠났지만, 우리는 끊임없이 그 자리로 돌아왔고, 그중 몇몇은 시인이 되었다.

다시, 개를 말해야겠다. 어느 선배와 3박째 낚시질을 했던 그 백사장에서였지. 새벽 낚시가 재미있다는 선배를 따라 억지로 눈을 뜨고 몸을 일으켰을 때 나는 보았지. 강 저켠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이쪽켠으로 건너오는 제 주인을 따라, 뱃전에 붙어 강을 헤엄쳐 오던 개 한 마리를. 그 강은 폭이 200미터도 더 넘는 데다가, 해마다 청년을 집어 삼키는 물살은 또 얼마나 험한가? 그 개는 물살에 약간씩 떠밀려 강을 대각선으로 길게 갈랐고, 개가 강변에 다다랐을 때 이켠에 다다른 배와는 한 100미터 정도가 멀어져 있었지. 그 개의 주인은 학생이었고, 개는 자주 주인을 따라 강을 건넜던 거야. 아, 그것을 목격한 나는, 내 인생 전체가 저주받은 느낌이었네. 미래의 내 인생이 아무리 위대해봤자 저 개보다 나을 것인가? 그리하여 고심해 설정한 내 인생 최고의 목표와 의미가 겨우 <개처럼 살자!>가 될 때!

몸을 떨어 물에 젖은 털을 부르르 털곤, 제 주인을 향해 열심히 달려가던 개를 보며, 나는 텐트 속에 구르고 있던 타자기의 뚜껑을 살며시 벗겼다. 그리고 밝아오는 햇살 속에 쭈그려 앉아 타자기에 하얀 종이를 끼우고 썼다.

<……이젠 더 도망갈 길 없어, 어쩔 수 없어, 시를 쓰긴 한다. 그러나 시가 나를 천사와 같은 위대함의 반열에 끼워넣어 주지 않음은 물론, 그 스스로 위대한 것도 아님을 안다…… 아무것도 아닌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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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스터머
이종산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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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쓰는 동안 나는 친구의 집과 부모님의 집을 오가며 살았다. 어느 날은 버스를 타고 부모님 집에서 친구의 집으로 가고 있는데 어디에도 내 집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 버스 안에서 증발하고 싶었다. 하지만 결국 그날도 버스에서 내렸고 곧장 카페로 가서 매일 하던 일을 했다. 글쓰기.

나는 다른 작가들이 쓴 책에서 '누구누구를 위해'라는 문장을 볼 때마다 그 말이 참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을 위해 쓰다니. 그럴 수가 있나?

『커스터머』를 쓰기 시작했을 때 이 작업은 나에게 탈출구였다. 그 탈출구는 오직 나를 위한 것이었다. 원고가 꼴을 갖출 쯤에는 그게 내 집이 됐다. 그리고 출간을 앞둔 지금 나는 이 책이 필요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들어와서 머물 수 있는 집이 되기를 바라고 있다.

나는 여러 의미에서 소수자이고, 그 때문에 어딘가에 가거나 누군가를 만날 때면 내가 환영받지 못할 수 있다는 불안을 느낀다. 그 불안은 집이 없는 기분과 비슷하다. 

전에는 '누구누구를 위해'라는 말이 오만한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 말의 의미를 알 것 같다. '그동안 고마웠어요. 앞으로도 계속 당신을 사랑해도 될까요?' 아마 그런 의미인 것 같다. 나는 집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커스터머』를 썼다. 자기 이상의 존재가 되는 여정에서 집을 잃어버린 사람들을 위해. 그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과 감사를 전한다.


_작가의 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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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모습 랜덤 시선 19
이규리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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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모습

 

 

눈송이 뭉쳐 가만히 들여다보면

설핏 무슨 기미가 어른거린다

너무 흰 것엔 그늘이 있지

보호막 같은 그늘

 

흰 밥, 흰 고무신, 흰 상복, 흰 목련

모든 빛을 다 반사하므로 얻는다는

흰색은 사실 비어 있는 색

누군가 떠난 그늘의 색

 

눈 뭉쳐 등허리에 쑥 집어넣을 때

소스라치던 냉기는

눈의 그늘이었을까

눈물 그렁한 사람이 볼 수 있는

어쩌면 없는 짜안한 모습

 

서둘러 떠나는 사람을 더 오래 기억하듯

눈은 오래 머물지 않아서 그립고

그리움은 만질 수 없어서 멀다

만지면 없어지는 사람을

누가 미워할 수 있겠나

 

 

유월 비

 

 

중앙내과 2층 회복실에서 링거 주사 맞는다

유리창은 비 맞는다

창틀에 모여 머뭇거리다 떨어지는 비

주사기 대롱 속의 비

혈관으로 들어와 섞인다

사이랄까, 틈이랄까

링거 주사 맞을 댄 몸속으로 주사액이 들어오는 게 아니라

한 땀 한 땀 간격이 들어오고

, 톡 소리가 들어온다

한잠 푹 주무세요, 의사가 쓸데없는 곳을 만져 잠을 깨우지 않아도

간격과 소리 사이에서 잠이 툭 끊어진다

손짓 하나, 바라보는 눈짓 하나

한 꽃 피는 시간이나 따끔했던 연애도

끊어지지 않는 것 어디 있더냐

유월 비도 저렇게 끊어질 듯 내려와 닿고

한 생애를 위해 수만 컷의 필름이 서로 앙물려 있을 텐데

끊어지지 않는다면

목숨인들 여기까지 어떻게 왔을 건가

앞의 빗줄기가 뒤의 비를 마중하듯이

 

 

당나귀와 당나귀 같은 아이와

 

 

어느 집이나 자식 여럿이고 보면 순하고 좀 모자란 아이 있게 마련이다 그런 아이는 대개 왜소하고 병약해 거친 일이 피해간다 욕심도 없고 말썽도 안 피우는 아이 겉으로 똑똑하고 잘난 형제들 모두 모이는데, 있는 듯 없는 듯 당나귀가 꼭 그렇다 무거운 수레도 못 끌고 쟁기질도 맞잖은, 괴나리봇짐이나 덜렁 안장에 얹어보면 착하게 생긴 눈을 반쯤 뜬 채 몸에 비해 커다란 머릴 설렁인다 없으면 허전하고 곁에 있어야 맘이 놓이는 덜 자란 아이, 좀 모자란 것이 내도록 눈에 밟히는 것은 그 속에서 덜 자란 자기 모습 보기 때문일까 당나귀가 식구를 키우는 집, 칠 벗겨진 그 집 대문이 눈에 익다

 

 

낮달

 

 

무슨 단체 모임같이 수런대는 곳에서

맨 구석 자리에 앉아 보일 듯 말 듯

몇 번 웃고 마는 사람처럼

 

예식장에서 주례가 벗어놓고 간

흰 면장갑이거나

그 포개진 면에 잠시 머무는

미지근한 체온 같다 할까

 

또는, 옷장 속

슬쩍 일별만 할 뿐 입지 않는 옷들이나

그 옷 사이 근근이 남아 있는

희미한 나프탈렌 냄새라 할까

 

어떻든

단체 사진 속 맨 뒷줄에서

얼굴 다 가려진 채

정수리와 어깨로만 파악되는

긴가민가한 이름이어도 좋겠다

 

있는가 하면 없고, 없는가 하면 있는

오래된 흰죽 같은,

 

 

부록

 

 

가려져 있나 싶지만

뒤에 있어서 더 자유롭고

자유롭기 때문에 과감한 것 같다

원래 타고난 끼가 가볍고 발랄해

책임질 일도 없다

장자가 못 된 설움을 분방함과 바꾸어라

그냥 지나치다 잠시 자리 잡았는데

월척이 올라온 것처럼

흘려놓은 상식들 주워 담다 보면

저렴하게 행운을 만나기도 한다

근엄하게 폼 잡은 본문보다

가려운 등 슥슥 긁어주는 부록이

효자손이다

효자손은 효자가 아니지만 가깝고

부록은 본문이 아니지만 재미있다

부록처럼 살아온 당신,

오늘부터 당신이 주인공이다

조실부모한 이가 그렇듯이

어긋나며 넘어지며 단단해진다

일찌감치 당돌해

좌충우돌 더 깨질 것도 없다

정수리에 야구모자 삐딱하게 눌러놓은

,

말고 너 뒤!

 

 

님짜장

 

 

운문사 가는 길, 동곡 지날 때쯤

짜장면집 있다

입구 작은 입간판에 님짜장이라 적혀 있는데

님과 함께 가는 곳인지

이곳에 함께 가면 님이 되는지

님과 짜장이 어울리지 않는 것도 같고

억지로 어울린다 생각할 수도 있는데

어쨌든 님이라면 그저 마음들이 너그러워져서

님 보듯이 짜장도 먹고 싶어진다

호기심 반 설렘 반으로 식당 안에 들어서는 순간

님짜장이란 다름 아닌

스님 짜장의 머리글자가 지워진 걸 알게 되는데,

그 짧은 순간에 구성한 별별 상상력이 객쩍어

급히 떠올린 님을 슬그머니 내려놓는데,

기름진 고기 대신 스님 머리 같은 버섯 듬뿍 넣은 게

이거야말로 님에게 먹이고픈 짜장 아닌가

주인은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입간판 전혀 고칠 생각이 없는데

짜장면 먹다 생각해보니

우리에게 님은 잃어버린 지 하 오래여서

이때만이라도 님을 한번 생각해보란 뜻 아닌가 해서

 

 

,

 

 

잘 말하기는 반쯤 말하기라고,

말하지 않은 반 토막이

아주 잠깐 캄캄한 반 뼘이

쉼표는 아닐까

반쯤만 말하고 아쉽게 헤어진 연인들이

돌아볼까 말까 머뭇거리다

결심한 듯 다시 제 속도로 묵묵히 가는,

그런 순간

말보다 더 큰 울림

반 이상의 말이 휴지부에 있다

 

길을 잠시 끊는 개울이나

산자락이 숨겨놓은 느닷없는 절벽과 계곡은,

쉼표다

잘 흐르는 문장에 쏙 내민 혓바닥처럼

아찔한 붉은 꼬리점

좀 힘들겠지만

남겨둔 반쯤이 내일을 물고 온다

쪽잠처럼 자세를 다 풀지 않는 휴식

쉬어 가라고, 좀 조절하라고

뭣보다 체하지 말라고

딱 한 음절, 한 걸음이

전 문장을 꽉 잡고 있다

 

 

그 비린내

 

 

먹다 만 고등어 다시 데울 때

지독하게 비린내가 난다

두 번의 화형을 불만하는 고등어의 언어다

이렇듯 한 번 다녀갈 땐 몰랐던 속내를

반복하면서 알게 되는 경우가 있다

 

물간 생선 먹는 일같이

마음 떠난 사람과의 입맞춤이 그렇다

요행을 바라는 마음 없지 않지만

커피잔에 남아 있는 누군가의 립스틱 자국처럼

낯선 틈이 하나 끼어든다

 

아깝다고 먹었던 건 결국 비린내였나

등푸른 환상이었나

재워줄 뜻이 없으면

어디서 자느냐고 묻지 말라 했다

갑남을녀들

서로 속는 척, 속아주는 척

 

먹다 만 고등어,

먹다 만 너,

사향 냄새는 생리 주기도 당긴다는데

벼리면서 단단해진다는데

그런데, 두 번씩 달구어 비리디비린

마음아 넌?

 

 

 

 

방금 대웅전을 둘러본 한 패거리의 남자들, 불두화 앞에서 키들거린다 스펀지 넣은 뽕브라자 같다느니 한 스물댓은 됐을 거라는 둥, 꽃송이째 손아귀에 넣고 조물조물한다 오랫동안 금욕에 들었던 꽃들, 불편해할 줄 알았는데 웬걸 머리를 더 꼿꼿이 치켜든다 자기표현에 서슴없는 요즘 아이들 같다 음핵들이 촘촘히 박혀 한 덩어리를 이룬 저 꽃을 누가 부처의 머리로 보았을까 저기 평생 젖가슴 조물거려야 할 후생들의 업보는 키들거리는 손가락 안에 머물러 있다 해도, 저들이야 웃든 말든 나, 꽃나무 옆 당간지주처럼 무뚝뚝해 있다가 슬그머니 다가가 꽃숭어리 어루어본다 저릿한 속살 맛이다 말하지 않은 것들이 내 안에도 너무 많다

 

 

어느 날, 우리를 울게 할

 

 

노인정에 모여 앉은 할머니들 뒤에서 보면

다 내 엄마 같다

무심한 곳에서 무심하게 놀다

무심하게 돌아갈,

어깨가 동그럼하고

낮게 내려앉은 등이 비슷하다

같이 모이니 생각이 같고

생각이 같으니 모습도 닮는 걸까

좋은 것도 으응

싫은 것도 으응

힘주는 일 없으니 힘드는 일도 없다

비슷해져서 잘 굴러가는 사이

비슷해져서 상하지 않는 사이

앉은 자리 그대로 올망졸망 무덤처럼

누우면 그대로 잠에 닿겠다

몸이 가벼워 거의 땅을 누르지도 않을,*

어느 날 문득 그 앞에서 우리를 울게 할,

어깨가 동그럼한 어머니라는

, 나라는 무덤

 

 

*브레히트의 시 나의 어머니에서 빌려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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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와 수치심 - 인간다움을 파괴하는 감정들
마사 너스바움 지음, 조계원 옮김 / 민음사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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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천적'이라는 말이 인간 행위와 무관하다는 뜻이라면 핸디캡(handicap)은 '선천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인간 기능의 일부 영역(들)에 생긴 손상은 인간의 개입 없이도 있을 수 있지만, 사회가 이러한 손상을 특정한 방식으로 다루는 경우에만 핸디캡이 된다. 일반적으로 모든 인간에게는 장애가 있다. 죽을 운명이고, 시력이 나쁘며, 무릎이 약하고, 등과 목이 안 좋고 건망증이 있는 등 [누구나 어느 정도는] 장애를 안고 살아간다. 그러나 다수(또는 가장 강력한 집단)가 이러한 장애를 갖고 있을 때 사회는 여기에 맞춰서 적응한다. (-) 특정 사람이 엄청난 노력을 하고 집중적인 훈련을 통해 특정한 성취를 이뤄내더라도, 우리는 일반적으로 이 성취를 '정상적'인 일반인들에게 요구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4분에 1600여 미터를 달릴 수 있는 사람만 일하러 갈 수 있는 세상을 설계하지 않으며, 우리가 4분에 1600여 미터를 갈 수 있도록 돕는 인공 기관(자동차, 기차, 버스)을 발전시킨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많은 사람들이 갖고 있는 장애에 대해 맞추려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이 지닌 손상이 일반적이지 않고, '비정상적인'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걷거나 달리는 사람과 같은 속도로 움직이기 위해 휠체어를 사용하는 사람과 자신의 발로 불가능한 것을 성취하기 위해 자동차를 이용하는 사람 사이에 타고난 '선천적인' 차이는 존재하지 않는다. 두 경우 모두 인간이 갖고 있는 재주를 통해 개인이 할 수 없는 것을 보충한다. 차이가 있다면 차는 일반적이고 휠체어는 일반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


(-) 유럽과 미국에서 유능한 성인이라는 허구를 점점 더 지지하면서, 이른바 "스스로 값을 지불"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돌보는 비용을 공개적으로 규탄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장애인교육법과 장애인법이 요구하는 특별한 지원 구조에 드는 비용이 '자연적'이지 않다는 점을 다시 한 번 기억해야 한다. 그러한 비용은 장애인과 이른바 비장애인 간의 사회 이전의 차이에서 생기지 않는다. 이것은 우리가 사회를 평균적인 사람, 즉 우리가 '정상'이라고 오도하여 부르는 사람에 맞게 세상을 설계해 왔기 때문에 생기는 비용이다. 우리는 완벽성이나 완전무결함이라는 나르시시즘적 허구로 정당화하면서, 사회 제도가 지배 집단의 필요에 의해 입각해 조직되어 온 결과 좀 더 큰 취약성을 안게 된 다수의 사람들이 지니는 세상 속에서 살아갈 권리를 부정해서는 안 된다.


_마사 너스바움_혐오와 수치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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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대단하다고 하지 마라
해릴린 루소 지음, 허형은 옮김 / 책세상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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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함의 징표이자 수치심의 원천인 내 오른손어렸을 때는 그 손을 주머니 속이나 등 뒤에 감추었다하지만 오른손님은 감춰져 있는 걸 싫어했다그럴 때면 영악하게도 내 치마 뒷자락을 슬쩍 들어 올려 온 동네 사람들한테 내 속옷을 보여주었다손님이 오면 어머니는 내 오른손을 어머니의 두 손으로 꼭 감싸 쥐어 보이지 않게 했다내가 느끼는 수치심은 어머니에게서 배운 것이다.

 

그 그림이 내 오른손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치유해주었다고 말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그건 아니었다이후 몇 년 동안 그린 다른 손 그림들도 마찬가지였다평생에 걸친 자기혐오에는 쉬운 해결책이 없나 보다서서히 치유해가는 방법 말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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