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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글 맨
크리스토퍼 이셔우드 지음, 조동섭 옮김 / 창비 / 2017년 7월
평점 :
음. 보여지는 삶을 잘살고 있군(나말고). 그것들이 아무 소용없고 아무 의미 없어질 때까지 보여주고 보여주어서 닳게 만들고 싶다.
싱글맨. 난 앞부분부터 몰입도 쩔었는데... 결국 몰입이란 경험에 대한 재탕? 허기인 것인가? 음. 그 상황을 재현하고 싶어, 다시 그 감정, 그 드라마에 나를 ‘설득력 있게’(변명하지 않을 수 있게) 밀어넣고 싶어, 이런 뜻이었을까. 형과 같이 살던 집, 인천 간석오거리의 오피스텔 그 아래 식탁, 좁은 통로, 화장실, 서로 싸운 거, 죽어감(죽어가는 줄 착각했던) 등등.. 드라마퀸이 되어서 열심히 감정을 소비할 수 있었던, 그것을 고급스럽게 소비한다는 인상을 주어서 ‘좋다!’라고 외쳤던 책이다, 동시에 내가 늘 호감 있는 사람들에게 가지는 안타까운 마음. 이 사람을 어떻게 할 수도 없고 안 할 수도 없는 상태. 해도 소용없고 안 해도 소용없는 상태. 하면 망할 것이고 안 해도 망하는. 일반남에 대한 호감을 주체 못하는 나에 대한 경멸, 혐오, 불만, 안타까움 등이 자존심과 뒤섞여 나를 사람들에게서 분리시키고 나아가 서서히 나를 의심하게끔, 내 삶의 방식이나 지향하는 바를 거듭 의심하라고 스스로에게 요구받는 경험. 그런 맥락에서 읽었던 책이다. 아, 같은 사람, 비슷한 사람이 썼구나, 라고 읽는 사람이 믿게끔 만들었던. 하지만 늘 좋은 문학작품은 그게 다가 아니야, 라고 말해준다. 그래서 늘, 내가 생각할 수 있는 것보다 적어도 한두 개의 생각은 더 하게끔 만들어준다. 내가 만들어놓은 사고의 경로, 사건의 인과관계가 아닌 다른 지점을 비춰주는 희미한 빛으로서의 소설. 싱글맨을 읽고 내가 느낀 건 뭐였는지? 그 부분에서는 지금은 잘 모르겠다. 다만 내가 표현하지 못했던 지점들을 더 잘 표현할 수 있게 해주었다는 것. 아마도 내 경험 역시 이와 같이 세련되게 재구성하고 싶다, 라는 욕구만이 내가 느꼈던 지루함에 대한 보복(으...)처럼? 느껴졌는지도, 라는 건 너무 뻔한 생각이다. 음 토요일에는 다른 책에 대해 말해야 하는데, 어떻게 보면 이것이 더 흥미로운 이야기다. 지금 나는 너무 근친적이네. 나한테 술 마시는 거 좋아해요? 라고 물으면 어떤 사람에게는 좋아해요! 라고 대답하고 어떤 사람에게는 그냥 음료수 좋아해요, 라고 말한다. 당연히 당신이라면 전자가 누구인지 알겠지. 그렇게 취기가 오를 때, 뭔가 할 수 있을 것 같고 해봐도 될 것 같은 기분, 그것들이 나를 잠식하고 나는 그게 아무것도 나에게 해줄 수 없다는 걸 안다(돈을 대신 벌어주지 않는 것처럼). 그것은 그냥 꿈이다. 술기운에 꿈이 잠깐 눈앞에 다가오는 것이다. 그 경멸과 가라앉진 않은 잔잔한 흥분이 뒤섞인 상태로 초조하게 잔을 기울이다 헤어져선 아무나와 자러 간다. 자, 집에 갈게요, 조심히, 빠이, 택시 태워 보내고 남은 나는. 나는 충실히 나였고 자신을 존중해주었기 때문에, 하고 싶어했던 것들을 술 마시는 동안 잘 억눌렀기 때문에 나에게 상을 준다. 그 보상은 스스로를 인간 이하로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어제 느낀 건, 아 이제 이게 재미가 없다. 예전에는 내가 망가질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내게 망칠 게 남았고 더 무너뜨릴 게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게 아무 재미도 없었다. 그럴 수 있다고 믿을 때와 지금은 너무 달랐다. 인간 이하? 그것은 빤한 것이다. 그것은 그저 욕구이고, 욕구와 욕구의 반응이다. 일시적이고 지속되지 않는다. 어제 느낀 것은, 이것만으로는 안 된다, 이것만으로는 안 된다. 이게 전부가 아니다, 라는 생각이었다. 지속되려면, 무언가가 지속되려면 정교해져야 하고, 다듬어져야 한다. 인간 이하가 아니라 그 이상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렇게 될 수 있다는 확신+필요한 기다림의 시간, 사이에서 나는 너무 지루하다고 느꼈다. 그 지루함을 달래는 놀이로서의 자기드라마에 대한 흥미도 이제 거의 다 잃었다. 빨리 남은 일부도 잃어버리고 싶다.
2014. 6.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