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어 아포칼립스 - 사랑과 혐오의 정치학
시우 지음 / 현실문화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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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기의 저자 김정현은 스스로를 동성애에서 ‘전향’한 탈동성애자라고 주장하면서 남성 동성애자가 선호하는 스타일, 성적 관계를 맺는 형식, 찜질방 문화, 군대 내 동성애 등 이른바 동성애자의 현실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는(-) 더불어 독자에게 “감정적으로 인권을 지지”하기보다 “동성애자들의 실태”를 파악해야 한다고 당부한다.


(-)


탈동성애자의 수기는 ‘경험한 사람이 제일 잘 알고 있다’는 당사자 중심주의에 기초해 있다. 수기는 게이 커뮤니티를 성적 비규범성의 온상으로 지목하고 “힘들어하면서도 벗어나지 못하는” 게이 집단에게 ‘치료’가 필요하다고 단정한다. 이는 보수 언론에서 북한 이탈 주민을 북한에 대해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인물로 부각시키고 이들의 경험을 반공주의 강화에 활용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수기는 퀴어 집단에게 성적 낙인을 찍음으로써 퀴어 이슈를 둘러싼 복합적이고 비판적인 논의를 중단시키고 퀴어 커뮤니티에 대한 추문을 일으킨다.

퀴어 가시성이 낮은 한국사회에서 수기의 내용이 경험적으로 반박되기는 어렵다. 수기의 저자인 김정현과는 다른 방식으로 퀴어문화를 누리는 이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기 때문에 그의 재현을 상대화할 수 있는 이야기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이다. 퀴어 집단과 친밀한 관계를 맺은 사회적 경험이 부재한 상황에서 하위문화의 몇 가지 모습을 선정적으로 편집한 수기는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 퀴어 커뮤니티가 오염된 벽장으로 묘사되면서 퀴어 당사자는 자긍심이 아닌 수치심을 느껴야 하는 존재가 된다. 퀴어 논쟁이 펼쳐지는 시기마다 수기가 유포된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퀴어 집단을 자격과 조건을 갖추지 못한 존재로 만드는 수기는 퀴어 변화에 대한 요구를 침묵시키는 장치로 꾸준히 활용되었다.

흥미로운 사실은 여러 이유로 인해서 개신교회를 떠났거나 더 이상 개신교인으로 정체화하지 않는 이들은 ‘탈개신교인’으로 불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들은 ‘개신교인들이 말해주지 않는 개신교회에 대한 비밀’을 폭로하는 내부 고발자로 여겨지지 않는다. 여기에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 이유는 개신교회를 다닌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가 사회적으로 축적되어 있기에 탈개신교회 경험이 여러 사례 중 하나로 받아들여진다는 데 있다. 탈개신교인은 저마다 사연을 지닌 개별적인 존재로서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의 경험을 서술한다. 이에 반해 탈동성애자의 수기에 그려진 동성애자는 얼굴을 지닌 개인이 아니라 하나의 덩어리에 가깝다. 따라서 동성애자 한 명, 심지어 과거에 동성애자였다고 밝힌 한 명의 경험이 모든 동성애자의 ‘본질’을 드러낼 수 있다.

두 번째 이유는 개신교회가 집을 상징한다는 데 있다. 개신교회에서 탈개신교인은 잠시 개신교회를 떠난 사람으로 이해된다. 탈개신교인이 개신교회와의 완전한 단절을 선언했다고 하더라도 마치 돌아온 탕자(루가의 복음서 15장 11~32절)처럼 언젠가 복귀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는 것이다. ‘인생의 방황은 예수님을 만나면 끝나고, 신앙의 방황은 좋은 교회를 만나면 끝난다’는 말이 통용되는 개신교회에서 탈개신교인은 주체적인 선택을 내린 개인이 아니라 방황하는 주님의 자녀로 간주된다. 지독한 낙관주의로 무장한 개신교회에서 탈개신교인의 양심고백은 오직 과거 시제로만 표현될 수 있다. ‘예전에 교회를 떠난 적이 있지만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다시 돌아오게 되었다’는 흔한 간증은 탈개신교회가 애초부터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개신교회가 마침내 되돌아올 집을 상징한다는 점은 반퀴어 운동이 동성애를 정의하는 방식과도 연결된다. 반퀴어 운동은 동성애를 이성애에서 벗어난 비정상적 상태로 규정하고 동성애자에게 이성애자로 돌아올 것을 요구한다. 여기서 동성애는 안정적이고 중립적인 성적 지향이 아니라 일시적 일탈, 인지적 착각, 성적 중독으로 의미화된다. 반퀴어 담론에 따르면, 모든 인간은 이성애자로 태어나기에 우연적이고 예외적으로 일어난 동성 간 성적 실천이 그 자체로 심각한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문제는 이들이 집(이성애 가족질서)으로 돌아오는 것을 거부하고 지옥(퀴어 커뮤니티)에 머물기를 원할 때 발생한다. 마치 하나님 없이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인간의 교만함이 죄악의 근본으로 여겨지듯이, 지배규범을 따르지 않아도 괜찮다고 주장하는 퀴어 집단의 자긍심은 타락의 원천으로 여겨진다.

반퀴어 집단은 퀴어 집단을 집으로 가는 길을 찾지 못한 안타까운 이들로 묘사하지만, 퀴어 연구자 사라 아메드Sara Ahmed는 길을 잃는 경험disorientation이 우리를 새로운 세계로 이끌 희망을 담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물론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상황은 어지러움과 혼란을 일으키고 때로는 상실의 아픔을 가져오기도 한다. 낯선 곳에서 풍겨 나오는 위화감, 딛고 설 수 있는 기반이 없다는 불안감, 어느 곳으로 가야 할지 모르는 막막함 때문에 서둘러 집으로 되돌아가거나 정반대로 그 자리에서 얼어붙은 듯 멈춰서 있을지도 모른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길을 잃는 경험이 이 세상에 존재한다고 생각조차 해본 적 없는 것을 느끼는 우연한 순간을 만들면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상황을 가능하게 한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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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되면 - 발달장애인 동생과 함께 보낸 시설 밖 400일의 일상
장혜영 지음 / 우드스톡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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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서 반갑습니다. 저는 생각 많은 둘째 언니라는 이름으로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장혜영이라고 합니다.

이 시간에 한 가지 상상을 하면서 시작해보고 싶어요. 여러분은 이제 막 열세 살이 되셨어요. 열세 살이 된 여러분에게 누군가가 와서 이렇게 말합니다.

너는 이제 가족들과 떨어져서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외딴곳에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들과 평생 살아야 해. 그게 너의 가족들의 생각이고, 너에게 거절할 권리는 없어.”

어떠세요? 만약에 저에게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정말 끔찍한 기분이 들었을 것 같아요. 제가 방금 말씀드린 것은 저의 한 살 어린 여동생에게 일어났던 일입니다. 제 동생은 열세 살 때부터 중증 발달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가족들을 떠나서 무려 십팔 년 동안 시골의 외딴 산꼭대기에 있는 시설에서 살았어요.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저는 최근이 되도록 동생의 삶을 동생 스스로 선택하지 않았다는 것을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어요. 그 사실을 깨달은 순간 이것은 부당한 일이고, 동생이 비인간적인 삶을 사는 한 나에게도 인간적인 삶은 없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고민 끝에 동생을 다시 시설에서 사회로 데리고 와서 둘이 함께 살아가는 날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렇게 동생처럼 시설에 살고 있다가 다시 사회로 나오는 것을 탈시설이라고 해요. 제가 동생의 탈시설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을 주변에 얘기했을 때 사람들 대부분이 물었어요.

비장애인도 살아가기 어렵고 힘든 위험한 사회에 어떻게 네 동생 같은 중증발달 장애를 가진 사람이 나와서 자립할 수 있다고 생각해? 오히려 안전한 시설에 있는 것이 더 나은 삶이 아니야?”

사실 이것은 동생을 데리고 나오기 전에 제가 저 자신에게 가장 깊이 물어봤던 질문이기도 합니다. 나도 이렇게 살기 힘들고 위험하다고 느끼는 이 사회에서 동생이 살아갈 수 있을까? 내가 언제까지나 지켜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내가 먼저 죽을 수도 있는데 동생이 자립이란 것을 할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을 하는데 문득 그럼 나는 대체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던 거지?”라는 질문을 자신에게 하게 됐어요.

저는 제 동생의 자립이라는 것이 마치 로빈슨 크루소처럼 모든 일을 혼자 힘으로 다 해결하고, 모든 위협을 스스로 헤쳐가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제 삶을 돌아보니 저는 가족, 친구, 선생님, 혹은 이름도 모르는 수많은 사람에게 필요한 도움을 받고, 그들에게 의존하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었던 거예요. 그런 내가 정작 동생에게는 전혀 다른 기준을 적용하고 있었던 거죠. 제 동생에게 필요한 것은 보호라는 이름으로 시행되는 격리가 아니라동생이 무언가를 배우는 데 필요한 더 많은 시간, 이 사회 속에 적응하며 살아가는 힘을 기를 수 있는 더 많은 기회였음을 알게 됐어요. 그래서 아주 기쁘고, 확신에 찬 마음으로 동생을 사회에 데리고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원하는 사회는 단 하나의 시설도 존재하지 않고, 단 한 명의 장애인도 격리당해 살지 않는 그런 사회입니다.

너무 이상적으로 들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도 처음엔 그랬거든요. 그런데 이 지구상 어딘가에 그런 사회가 있어요. 바로 스웨덴입니다. 스웨덴은 1997년 시설폐쇄법이 제정됐고, 19991231일을 기점으로 모든 시설이 폐쇄됐어요. 국가가 시설을 사서 점차 폐쇄해나갈 정도로 적극적인 정책 의지가 있었고, 그렇게 시설의 모든 장애인은 지역사회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스웨덴이니까, 그쪽은 인권의식이 높으니까,라고 생각하실 수 있지만 사실 스웨덴의 70년대는 지금의 한국과 똑같았습니다. 오히려 정부는 시설을 장려하는 정책을 펴고 있었고, 시설에 가족을 보낸 사람들의 80% 이상이 시설 폐쇄를 반대하는 상황이었어요.

저는 여기서 칼 그루네발트(Carl Grunewald 1921~2016) 박사를 소개하고 싶습니다. 이 분은 스웨덴 보건복지부의 공무원이었어요. 그는 시설에 실태조사를 나갔다가 그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학대와 인권침해의 양상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두 눈으로 보고 탈 시설주의자가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시설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스웨덴 사회에 폭로하기 시작하는데요. 그것이 큰 반향을 일으킵니다. 특히 문제가 많았던 시설들이 폐쇄되면서 그곳에 살던 사람들은 지역사회로 나오게 되었습니다. 칼 그루네발트 박사는 여기서 그친 게 아니라 그렇게 지역사회에 나온 사람들이 어떻게 변화해 가는지,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편견(장애인이 많은 동네는 땅값이 떨어진다는 것과 같은)이 사실과 얼마나 다른지 등에 관해 몇 십 년에 걸쳐 연구하고 사회에 알려나가면서 사람들의 공감을 샀어요. 그 결과, 스웨덴은 어떤 중증 장애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시설이 아니라 지역사회에서 모두와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사회가 되었습니다.

저는 우리나라도 그렇게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현재 장애인 수용시설에 사는 장애인의 수는 3만 명이 조금 넘습니다.

제가 지금 하는 얘기가 단지 이 3만 명을 사회로 데리고 나오자는 것만은 아닙니다. 왜 이 3만 명을 데리고 오는 것이 우리 모두에게 중요한가에 대해서 조금 더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요즘 들어 우리 사회가 아주 촘촘한 격리의 프랙털로 이루어져 있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우리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능력으로 사람들을 서열화하고 분리하고 서로 다른 처우를 하는 경험을 수없이 해왔어요. 우열반, 장애, 피부색 등등 수많은 다르다는 이유들, 상대적으로 열등하다는 이유로 서로를 배제하고 분리하고 격리하고 내가 격리당하고 혹은 남이 격리당하는 것을 지켜보며 자라오면서 어느 순간 그게 당연한 거라고 믿게 된 것 같아요. 그래서 예전에 제가 그랬던 것처럼 장애가 있는 사람들, 더 많은 기회가 필요한 사람들이 오히려 모든 기회를 박탈당하고 사회 밖으로 격리당하는 것을 봤을 때도 뭐 그런 삶도 있는 거지,라며 고개를 끄덕여버리게 되는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이런 격리로 가득한 사회는, 어떤 문제를 해결하고 사람들의 고통을 낮추는 게 아니라 문제와 고통을 숨기는 데 급급하기 때문에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고 오히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더 곪아 터지기 마련이죠.

(-)

제가 이런 말을 하니까 제 채널의 구독자 중에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이 저에게 들려주는 이야기가 있었어요.

그건 현실을 몰라서 하는 소리예요. 우리 교실에선 1, 2등 하는 아이들 외에는 아무도 사람 취급을 하지 않아요. 우리의 존재는 그곳에서 가치가 없어요.”

크고 작은 격리들이 만연하고, 서로서로 격리하는 이유는, 이미 우리가 누군가를 격리하는 게 너무 당연하기 때문이에요. 사회가 정한 모든 기준을 충족한 사람만이 잘살 가능성과 기회와 권리가 주어지고, 내가 못살고 불행한 이유는 내 탓이라고 생각하기를 강요당하는 게 지금의 사회입니다.

이거 너무 이상하지 않아요? 제아무리 강한 사람이라도 인간이라면 아기로 태어나서 별일 없이 죽는다면 노인으로 죽습니다. 그 말은 결국 우리는 누구나 연약하게 태어나서 연약하게 죽는다는 거잖아요. 단 한 순간도 연약하지 않은 사람은 없어요. 그렇다면 우리는 왜 약자를 자꾸 밀어내는 사회를 이대로 두고 있는가, 왜 격리라는 것을 이 사회의 철학으로 여전히 두고 있는가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해야 합니다.

 

(-)

단지 개인의 노력만이 이 모든 격리의 구조를 바꿀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당연히 국가적이고 사회적인 체제와 시스템이 필요하겠지만 저는 무엇보다도 여기 앉아 계신 한 분 한 분의 마음속에서 이건 잘못됐다고 생각하는 마음과 신념을 갖는 것이 이 모든 것들을 변화시키는 좋은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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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 (퀴어 어른이책) 퀴어 어른이책
브라네 모제티치 지음, 마야 카스텔리츠 그림, 박지니 옮김 / 움직씨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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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구! 국제도서전 때 목격하고 여태 기다린 소중된 그림책... 드디어 나왓네요... 감사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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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조협려 세트 - 전8권
김용 지음, 이덕옥 옮김 / 김영사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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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조와하는 김용 영ㅇ웅문 둘부 신조협려에는 중상을 입은 소용녀릉 치료할려고 양과가 고묘 한옥침상 위에 올라가 서로 집중돠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때 고묘에 잠입해 들어온 사백 이막수한테 들키게됞다


여막수는 양고와 소영녀가 강적이라고 생각해 공격하고 한창 치료중이러 다른 어쩌구를 할 수 없는 양과는 꾀를 내어 입김을 후 부는데 이막수는 거기에 놀라 두로 훌쩍 물러난다


잠시루 양과한테 속은걱을 안 이막수는 부끄럽기도 하고 화가 나서 죽고샆으냐! 하면서 죽일려고 하는데 아무 힘도 쓸수없고 무방비로 죽게된 양과는 막수분에게 부탁을 한다


저가 그때 빌려준 옷 한벌을 지금 밧을 수 잇을가요? 

일전에 여막수가 충철정과 결투할때 풍철장이 휘둘른 달아오른 쇠자팡이에 옷이 타버려 알몸이 되다시피 햇을때 양고는 자기가 입고잇던 옷을 던져 몸을 가릴수 잇게 해주엇던 것이다


막수는 그때의 인정을 생각하면 마땅되게 이들을 살려주어야 하지만 호랑이등에 타기는 쉬워도 내리긴 어려운 법, 후롼을 생각하면 어쩔 수 없다 생각하며 양과를 죽일려고 한다


이후 양과와 소용녀는 기지를 발휘해 위기를 모면하지만? 곽부 를 통하여 또다른 위기를 다가온다...


그런데 항상 이때의 무력한 부탁, 옷을 던져준 것 역시 무협지에서 그려고잇는 폭력관 성질이 달르다.. 누구를 죽을 위깅서 구해준 것도 아니고 체면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 사회에서 합의한 채면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그때의 부탁을 돌려밧아지려 하지만 돌아오지 않는다 막수는 자기가 원하지 않앗던 방법으로 두 사람을 돕게 되고, 그것은 결과적으로 두 사람을 더 길고 큰 시련ㅇ 빠드리는 계기가 된다


하지만 어떤 독자가 막수여 너는 정말 이군아... 라고 생각하게 될가? 여기에 김용에 매력이 잇다.

훗날 절정곡애서 정화에 찔려 고통스러운 노래를 불러며 불속에서 죽어갈 때 그녀에 악독돳던 삶에 대하여서도 독자는 한번쯤 공감하고 기도하는 마음을가지게 된다..


김용분이여.. 갑자기 나는 당신에 글을 읽고싶군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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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어있기 좋은 방
신이현 지음 / 살림 / 199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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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털이를 던지고 학원을 나온 뒤 나는 아무 거리나 어슬렁거렸다. 어디에도 가고 싶지 않았고 누구도 만나고 싶지 않았다. 정말 슬퍼졌을 때는 친구도 위로가 되지 않는 법이다. 나는 완전히 취해서 죽어버려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렇게 초라하게, 아무 즐거움도 없이 살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맨 먼저 포장마차에서 우동을 먹고 소주를 마셨다. 그리고 걸었다. 다음에는 거리에 서서 닭꼬지 한 줄 먹으며 소주를 세 잔 마셨다. 그리고 다시 걸었다. 다음에는 슈퍼에 들어가 조우커를 한 병 사서 주머니에 넣었다. 그것은 주머니에 꼭 알맞게 들어갔다. 나는 거리를 걸으며 홀짝홀짝 조우커를 마셨다. 그리고 다시 슈퍼에 들어가 새로운 조우커를 샀다. 그리고 또 다시 걸었고 이곳까지 온 것이었다.

  수배된 자들이나 몸을 숨기기 위해 캄캄한 밤에 남몰래 드나들 것 같은 여관이었다. 녹이 슬어 얼룩덜룩한 대문 사이로 보이는 흙마당에는 쓰레기 더미들이 지저분하게 쌓여 있었고 한쪽 구석에는 버려진 듯이 오동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다. 내가 이 여관 대문 앞에서 걸음을 멈춘 것은 그 오동나무 때문이었다. 밤바람에 널따란 잎사귀를 한가롭게 흔들고 있는 키가 큰 나무였다. 나는 나무가 무엇인가 내게 말을 건넸다고 생각했다. '괜찮아, 그냥 흘러가는 대로 맡겨둬 보라구.' 분명 그런 소리였다. 나는 녹슨 대문을 열고 여관으로 들어갔다. 2층에 방을 얻어 방문을 활짝 열어놓고 오동나무를 바라보며 밤새워 술을 마셔볼 생각이었다.


 


 나는 좀 울고 싶은 심정이 되었다. 철들면서 지금까지 한번도 행복하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항상 이유를 알 수 없는 불안감을 안고 서성거려야 했다. 속으로는 항상, '좀 즐겁고 싶어' ' 좀 자유롭고 싶어' 하고 중얼거렸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다. 무엇을 해도, 직장을 다니든, 사직서를 던지든, 집에 있든, 밖에 있든, 내 몸이 있는 곳에는 항상 불안감이 따라 다녔다.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문제는 나에게 '인생의 스승' 이 없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진지한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그래서 나는 그럴 듯해 보이는 스승을 찾기 위해 두리번거려 보기도 했었다. 하지만 내 마음에 드는 스승이란 없었다. 고작 '지금이 네 인생에 최고 아름다운 때야. 그 절망까지도 얼마나 황홀한 것인지를 나이가 들면 알게 되지.' '그렇게 살았단 나중에 후회하게 돼. 좀 진지하게 생각해 보라구.' 따위의 말이나 하는 스승은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다. 어느 순간 나는 모든 게 귀찮아져 버렸고 '될 대로 되라지 뭐!' 하고 소리쳐 버렸다.


 


 "우리는 지금, 각자 여행을 가는 길에 이 기차 안에서 처음 만난 거야. 이렇게 마주 앉아서 말이야. 그리고 서로에게 첫눈에 반하는 거지. 어때? 내가 먼저 말을 붙여 볼까?"

 태정은 보글보글 거품 풍선을 만들며 웃었다. 그는 천정을 바라보며 점잖게 입을 열었다.

 "나는 김 태정입니다."

 "나는 윤 이금입니다."

 우리는 잠시 눈길을 마주치며 킥킥 웃었다.

 "내 나이는 스물 둘이지요."

 "내 나이도 스물 둘이지요."

 우리는 다시 눈길을 마주치며 웃었다. 태정이 누운 채 침대 밑으로 손을 뻗어 술잔을 들어 올렸다.

 "술 한잔 하시겠습니까."

 "고맙습니다."

 우리는 술을 한 모금씩 마시고 동시에 바닥으로 잔을 던져 버렸다.

 "어머니와 누이, 나는 외로운 외동아들 입니다."

 "아버지와 어머니, 남동생, 여동생, 나는 불쌍한 장녀입니다."

 태정이 고개를 들었다. 나는 누운 채 그의 입술에 키스를 했다. 그의 입 속에 가득 고였던 침이 내 입으로 넘어왔다.

 "어릴 때 내 꿈은 슈퍼맨이었지요."

 "어릴 때 내 꿈은 원더우먼이었지요."

 우리는 잠시 황당한 눈길을 주고 받았다.

 "담배 한 대 하시겠습니까."

 "고맙습니다."

 우리는 각자 담배를 물고 불을 붙였다.

 "지금은 되고 싶은 것이 없는 한심한 남자지요."

 "지금 나도 되고 싶은 것이 없는 한심한 여자지요."

 우리는 서로 눈길을 마주하며 과장스레 한숨을 쉬었다.

 "내 나이 여섯에 한글을 뗏지요."

 "내 나이 열 셋에 첫 월경을 했지요."

 태정과 나는 와악 웃음을 터뜨렸다.

 "내 나이 열 둘에 아버지 돌아가셨지요."

 "내 나이 열 둘에 아버지 집을 나갔지요."

 우리는 배를 잡고 웃기 시작했다. 나는 빙글빙글 돌아가는 사이키 조명 아래 누워 있는 기분이었다. 모든 것이 제멋대로 출렁거렸다.

 "내 나이 스물에 방위가 되었지요."

 "내 나이 스물에 첫 경험을 했지요."

 우리는 또 다시 웃어대기 시작했다. 어디선가 와장창 유리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웃음을 멈추지 않은 채 고개를 들었다. 옆방이 아니라 바로 태정의 방 유리창이었다. 나는 웃음을 뚝 그쳤다. 태정이 머리맡에 있던 재털이를 유리창을 향해 던져버린 것이었다. 방바닥에는 유리파편이 꼴사납게 흩어져 있었고 그는 빈정거리듯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그는 갑자기 화난 사람처럼 고개를 숙인 채 바닥에 흩어진 파편들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손을 뻗어 날카로운 파편 하나를 주웠다. 그는 파편 쥔 손등으로 내 볼을 천천히 쓰다듬었다. 나는 거칠게 그를 쏘아보았다.

 "왜 이래, 술 취했어?"

 나는 날카롭게 소리쳤다. 순간 이마 쪽에서 섬찟한 느낌이 전해져 왔고 붉은 피가 뚝뚝 떨어져 내렸다. 나는 갑자기 위장이 비틀렸고 마셨던 술을 왁 올려 버렸다. 나는 고꾸린 채 이마를 만졌다. 아무렇지도 않았다. 침대 위에 떨어진 피는 나의 것이 아니라 태정의 손에서 떨어진 것이었다. 그는 입을 앙다문 채 파편을 으스러져라 쥐고 있었다.

 "미쳤어? 주먹을 펴, 주먹을 펴란 말이야!"

 나는 그의 손목을 잡고 흔들었다. 그러나 그는 내 손을 홱 뿌리치며 허리를 접고 그 사이에 손을 숨기고 꼼짝도 않았다.

 "왜 이래! 손을 펴!"

 나는 그의 어깨를 마구 후려쳤다.

 "고집불통, 정말 계속 이러면 난 가버릴테야. 진짜로!"

 나는 신경질적으로 소리치며 벌떡 침대에서 일어났고 그는 픽 쓰러지며 피 묻은 손으로 나의 발목을 잡아당겼다.


 

 

 대학 다니는 것이 그럴 듯해 보이는 것은 다니지 않는 사람들이 꾸며낸 환상임이 분명했다. 직접 그곳에 다녀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대학이라는 것이 얼마나 별볼일 없는 곳인지를 적어도 열 가지 정도는 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책이라고 몇 권 끼고 잔디 새순을 밟으며 어슬렁거리다가 휴강을 한다고 하면 좋아라 만세를 부르며 기념으로 술집으로 뛰어가는 이들이 득시글거리는 곳이 대학이었다. 물론, 도서관을 들락거리거나 그럴 듯해 보이는 모임에 참여하라고 목소리를 높이며 '참된 대학인'의 모습을 보여주려고 꽤 노력을 하는 이도 있기는 했다. 하지만 나는 아무 데도 관심을 가질 수가 없었다. 스터디니 뭐니 하면서 알고 싶지도 않은 이론에 핏대를 올리는 따위는 정말 질색이었다. 도대체 그래서 어쨌단 말인가, 나는 늘 뒤에 앉아 이렇게 투덜거리며 일년을 보냈다.


 


 "그만 자......"

 그는 약간 풀이 죽은 얼굴로 말했다.

 "난 지금 불안해"

 나는 눈을 번쩍 뜨면서 말했다. 그는 내 위에 엎드리며 나를 껴안았다.

 "어떻게 해줄까...... 어디든지 데려다 줄게......"

 태정이 내 이마에 키스를 하고 나를 일으켜 세웠다.

 "싫어, 아무데도 가고 싶지 않아, 어디도 싫어."

 나는 두 팔로 머리를 감쌌다.

 "아냐, 그럴 땐 어디든 밖으로 나가는 게 최고야."

 "여기가 내 밖인 걸 뭐......"

 나는 다시 침대 위로 엎어졌다. 태정은 침대 밑으로 들어가 배낭을 꺼냈다. 그는 술잔에 남은 술을 마시고 술병과 잔을 배낭 속에 집어 넣었다. 그리고 배낭을 걸머쥐고 일어났다. 나는 부시시 그를 따라 일어났다. 태정이 문을 열었고 나는 그의 등 뒤에 서서 밖을 내다 보았다. 검은 오동나뭇잎 사이로 놀란 불빛들이 새어들어왔다.

 "아, 아니야, 좀...... 더 있다가, 저 불빛이 완전히 꺼져버리면......"

 나는 얼른 문을 닫고 주저 앉았다.


 


 나는 아무것도 가지지 않길 원했다. 그것이 무엇이든, 그림 한 점이든, 레코드 한 장이든, 내 것이 되면 그것은 골치 아프고 무거운 짐이 되어버린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었다. 여고시절 수학선생님도 그랬다. 그녀는 나무를 좋아하지만 자기 집에는 풀 한 포기 조차 없다고 했다. 선생님은 남의 정원을 기웃거리고 거리의 가로수를 보는 것으로 대만족이라는 것이다. '남들이 잘 키워 놓은 나무를 실컷 볼 수 있는데 왜 내가 수고스럽게 키워야겠니. 그리고, 내가 나무들을 키우면 나무는 금방 죽을지도 몰라. 나는 진짜 게으름뱅이거든.' 그때 나는 그녀가 얌체 같다는 생각을 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무엇이든지 가진다는 것은 골치 아픈 일인 것이다.

 더구나 원래부터 가져져버린 가족 같은 건 더욱 그렇다. 그런 내가, 아무런 힘도 들이지 않고 무언가를 가져버린 것이다. 그것은 정원에 서 있는 나무 따위에는 비교도 안되는 것이다. 내가 가진 이것은 내 방 어디에도 아닌, 내 가방 어디에도 아닌, 바로 내 뱃속에 들어앉아 꼼짝마, 하고 총구를 겨누고 있다. 나는 이것이 무거워서 견딜 수 없다. 뱃속에 우주덩어리 하나가 들어 있는 것만 같다. 너무 무거워서 바로 누울 수도 없다. 엎드리지 않으면 잠을 이룰 수도 없을 지경이다. 내 몸 하나도 주체를 못해 비틀거리는 주제에 아이를 가졌다니, 그 애가 태어나면 분명 나를 보고 코웃음을 칠 게 뻔한 일이었다.


 


 내가 그를 사랑했는지 어쨌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와 함께 나는 신나게 웃어댈 수 있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함께 침대 위에서 뒹굴었고 술을 마셨고 담배를 피웠다. 그것은 사랑했다는 것보다 더 대단한 것이었다. 나는 고개를 젖히고 술을 한 모금 마셨다.

 외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와 함께 있을 때, 그때도 나는 외로웠고 혼자라는 생각을 가지지 않은 적이 없었다. 그러나 지금, 그가 없는 지금은 훨씬 더 외롭게 느껴졌다. 나는 진짜, 완전히 혼자가 되어버린 기분이었다. 아아, 나의 쌍둥이 왕자...... 나는 육교 난간으로 허리를 고꾸러뜨리며 울음을 터뜨렸다. 내 손에서 떨어져나간 술병이 철둑 어딘가에 떨어져 부서졌다. 그리고 긴 기차의 기적소리와 뒤이어 달려온 바퀴 소리가 내 울음소리 위로 지나갔다. 철컥 철컥, 기차의 바퀴는 규칙적인 소리를 냈고 나는 시간이 가고 있는 소리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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