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되면 - 발달장애인 동생과 함께 보낸 시설 밖 400일의 일상
장혜영 지음 / 우드스톡 / 2018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만나서 반갑습니다. 저는 생각 많은 둘째 언니라는 이름으로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장혜영이라고 합니다.

이 시간에 한 가지 상상을 하면서 시작해보고 싶어요. 여러분은 이제 막 열세 살이 되셨어요. 열세 살이 된 여러분에게 누군가가 와서 이렇게 말합니다.

너는 이제 가족들과 떨어져서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외딴곳에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들과 평생 살아야 해. 그게 너의 가족들의 생각이고, 너에게 거절할 권리는 없어.”

어떠세요? 만약에 저에게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정말 끔찍한 기분이 들었을 것 같아요. 제가 방금 말씀드린 것은 저의 한 살 어린 여동생에게 일어났던 일입니다. 제 동생은 열세 살 때부터 중증 발달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가족들을 떠나서 무려 십팔 년 동안 시골의 외딴 산꼭대기에 있는 시설에서 살았어요.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저는 최근이 되도록 동생의 삶을 동생 스스로 선택하지 않았다는 것을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어요. 그 사실을 깨달은 순간 이것은 부당한 일이고, 동생이 비인간적인 삶을 사는 한 나에게도 인간적인 삶은 없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고민 끝에 동생을 다시 시설에서 사회로 데리고 와서 둘이 함께 살아가는 날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렇게 동생처럼 시설에 살고 있다가 다시 사회로 나오는 것을 탈시설이라고 해요. 제가 동생의 탈시설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을 주변에 얘기했을 때 사람들 대부분이 물었어요.

비장애인도 살아가기 어렵고 힘든 위험한 사회에 어떻게 네 동생 같은 중증발달 장애를 가진 사람이 나와서 자립할 수 있다고 생각해? 오히려 안전한 시설에 있는 것이 더 나은 삶이 아니야?”

사실 이것은 동생을 데리고 나오기 전에 제가 저 자신에게 가장 깊이 물어봤던 질문이기도 합니다. 나도 이렇게 살기 힘들고 위험하다고 느끼는 이 사회에서 동생이 살아갈 수 있을까? 내가 언제까지나 지켜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내가 먼저 죽을 수도 있는데 동생이 자립이란 것을 할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을 하는데 문득 그럼 나는 대체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던 거지?”라는 질문을 자신에게 하게 됐어요.

저는 제 동생의 자립이라는 것이 마치 로빈슨 크루소처럼 모든 일을 혼자 힘으로 다 해결하고, 모든 위협을 스스로 헤쳐가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제 삶을 돌아보니 저는 가족, 친구, 선생님, 혹은 이름도 모르는 수많은 사람에게 필요한 도움을 받고, 그들에게 의존하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었던 거예요. 그런 내가 정작 동생에게는 전혀 다른 기준을 적용하고 있었던 거죠. 제 동생에게 필요한 것은 보호라는 이름으로 시행되는 격리가 아니라동생이 무언가를 배우는 데 필요한 더 많은 시간, 이 사회 속에 적응하며 살아가는 힘을 기를 수 있는 더 많은 기회였음을 알게 됐어요. 그래서 아주 기쁘고, 확신에 찬 마음으로 동생을 사회에 데리고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원하는 사회는 단 하나의 시설도 존재하지 않고, 단 한 명의 장애인도 격리당해 살지 않는 그런 사회입니다.

너무 이상적으로 들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도 처음엔 그랬거든요. 그런데 이 지구상 어딘가에 그런 사회가 있어요. 바로 스웨덴입니다. 스웨덴은 1997년 시설폐쇄법이 제정됐고, 19991231일을 기점으로 모든 시설이 폐쇄됐어요. 국가가 시설을 사서 점차 폐쇄해나갈 정도로 적극적인 정책 의지가 있었고, 그렇게 시설의 모든 장애인은 지역사회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스웨덴이니까, 그쪽은 인권의식이 높으니까,라고 생각하실 수 있지만 사실 스웨덴의 70년대는 지금의 한국과 똑같았습니다. 오히려 정부는 시설을 장려하는 정책을 펴고 있었고, 시설에 가족을 보낸 사람들의 80% 이상이 시설 폐쇄를 반대하는 상황이었어요.

저는 여기서 칼 그루네발트(Carl Grunewald 1921~2016) 박사를 소개하고 싶습니다. 이 분은 스웨덴 보건복지부의 공무원이었어요. 그는 시설에 실태조사를 나갔다가 그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학대와 인권침해의 양상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두 눈으로 보고 탈 시설주의자가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시설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스웨덴 사회에 폭로하기 시작하는데요. 그것이 큰 반향을 일으킵니다. 특히 문제가 많았던 시설들이 폐쇄되면서 그곳에 살던 사람들은 지역사회로 나오게 되었습니다. 칼 그루네발트 박사는 여기서 그친 게 아니라 그렇게 지역사회에 나온 사람들이 어떻게 변화해 가는지,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편견(장애인이 많은 동네는 땅값이 떨어진다는 것과 같은)이 사실과 얼마나 다른지 등에 관해 몇 십 년에 걸쳐 연구하고 사회에 알려나가면서 사람들의 공감을 샀어요. 그 결과, 스웨덴은 어떤 중증 장애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시설이 아니라 지역사회에서 모두와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사회가 되었습니다.

저는 우리나라도 그렇게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현재 장애인 수용시설에 사는 장애인의 수는 3만 명이 조금 넘습니다.

제가 지금 하는 얘기가 단지 이 3만 명을 사회로 데리고 나오자는 것만은 아닙니다. 왜 이 3만 명을 데리고 오는 것이 우리 모두에게 중요한가에 대해서 조금 더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요즘 들어 우리 사회가 아주 촘촘한 격리의 프랙털로 이루어져 있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우리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능력으로 사람들을 서열화하고 분리하고 서로 다른 처우를 하는 경험을 수없이 해왔어요. 우열반, 장애, 피부색 등등 수많은 다르다는 이유들, 상대적으로 열등하다는 이유로 서로를 배제하고 분리하고 격리하고 내가 격리당하고 혹은 남이 격리당하는 것을 지켜보며 자라오면서 어느 순간 그게 당연한 거라고 믿게 된 것 같아요. 그래서 예전에 제가 그랬던 것처럼 장애가 있는 사람들, 더 많은 기회가 필요한 사람들이 오히려 모든 기회를 박탈당하고 사회 밖으로 격리당하는 것을 봤을 때도 뭐 그런 삶도 있는 거지,라며 고개를 끄덕여버리게 되는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이런 격리로 가득한 사회는, 어떤 문제를 해결하고 사람들의 고통을 낮추는 게 아니라 문제와 고통을 숨기는 데 급급하기 때문에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고 오히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더 곪아 터지기 마련이죠.

(-)

제가 이런 말을 하니까 제 채널의 구독자 중에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이 저에게 들려주는 이야기가 있었어요.

그건 현실을 몰라서 하는 소리예요. 우리 교실에선 1, 2등 하는 아이들 외에는 아무도 사람 취급을 하지 않아요. 우리의 존재는 그곳에서 가치가 없어요.”

크고 작은 격리들이 만연하고, 서로서로 격리하는 이유는, 이미 우리가 누군가를 격리하는 게 너무 당연하기 때문이에요. 사회가 정한 모든 기준을 충족한 사람만이 잘살 가능성과 기회와 권리가 주어지고, 내가 못살고 불행한 이유는 내 탓이라고 생각하기를 강요당하는 게 지금의 사회입니다.

이거 너무 이상하지 않아요? 제아무리 강한 사람이라도 인간이라면 아기로 태어나서 별일 없이 죽는다면 노인으로 죽습니다. 그 말은 결국 우리는 누구나 연약하게 태어나서 연약하게 죽는다는 거잖아요. 단 한 순간도 연약하지 않은 사람은 없어요. 그렇다면 우리는 왜 약자를 자꾸 밀어내는 사회를 이대로 두고 있는가, 왜 격리라는 것을 이 사회의 철학으로 여전히 두고 있는가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해야 합니다.

 

(-)

단지 개인의 노력만이 이 모든 격리의 구조를 바꿀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당연히 국가적이고 사회적인 체제와 시스템이 필요하겠지만 저는 무엇보다도 여기 앉아 계신 한 분 한 분의 마음속에서 이건 잘못됐다고 생각하는 마음과 신념을 갖는 것이 이 모든 것들을 변화시키는 좋은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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