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어 아포칼립스 - 사랑과 혐오의 정치학
시우 지음 / 현실문화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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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기의 저자 김정현은 스스로를 동성애에서 ‘전향’한 탈동성애자라고 주장하면서 남성 동성애자가 선호하는 스타일, 성적 관계를 맺는 형식, 찜질방 문화, 군대 내 동성애 등 이른바 동성애자의 현실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는(-) 더불어 독자에게 “감정적으로 인권을 지지”하기보다 “동성애자들의 실태”를 파악해야 한다고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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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동성애자의 수기는 ‘경험한 사람이 제일 잘 알고 있다’는 당사자 중심주의에 기초해 있다. 수기는 게이 커뮤니티를 성적 비규범성의 온상으로 지목하고 “힘들어하면서도 벗어나지 못하는” 게이 집단에게 ‘치료’가 필요하다고 단정한다. 이는 보수 언론에서 북한 이탈 주민을 북한에 대해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인물로 부각시키고 이들의 경험을 반공주의 강화에 활용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수기는 퀴어 집단에게 성적 낙인을 찍음으로써 퀴어 이슈를 둘러싼 복합적이고 비판적인 논의를 중단시키고 퀴어 커뮤니티에 대한 추문을 일으킨다.

퀴어 가시성이 낮은 한국사회에서 수기의 내용이 경험적으로 반박되기는 어렵다. 수기의 저자인 김정현과는 다른 방식으로 퀴어문화를 누리는 이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기 때문에 그의 재현을 상대화할 수 있는 이야기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이다. 퀴어 집단과 친밀한 관계를 맺은 사회적 경험이 부재한 상황에서 하위문화의 몇 가지 모습을 선정적으로 편집한 수기는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 퀴어 커뮤니티가 오염된 벽장으로 묘사되면서 퀴어 당사자는 자긍심이 아닌 수치심을 느껴야 하는 존재가 된다. 퀴어 논쟁이 펼쳐지는 시기마다 수기가 유포된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퀴어 집단을 자격과 조건을 갖추지 못한 존재로 만드는 수기는 퀴어 변화에 대한 요구를 침묵시키는 장치로 꾸준히 활용되었다.

흥미로운 사실은 여러 이유로 인해서 개신교회를 떠났거나 더 이상 개신교인으로 정체화하지 않는 이들은 ‘탈개신교인’으로 불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들은 ‘개신교인들이 말해주지 않는 개신교회에 대한 비밀’을 폭로하는 내부 고발자로 여겨지지 않는다. 여기에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 이유는 개신교회를 다닌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가 사회적으로 축적되어 있기에 탈개신교회 경험이 여러 사례 중 하나로 받아들여진다는 데 있다. 탈개신교인은 저마다 사연을 지닌 개별적인 존재로서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의 경험을 서술한다. 이에 반해 탈동성애자의 수기에 그려진 동성애자는 얼굴을 지닌 개인이 아니라 하나의 덩어리에 가깝다. 따라서 동성애자 한 명, 심지어 과거에 동성애자였다고 밝힌 한 명의 경험이 모든 동성애자의 ‘본질’을 드러낼 수 있다.

두 번째 이유는 개신교회가 집을 상징한다는 데 있다. 개신교회에서 탈개신교인은 잠시 개신교회를 떠난 사람으로 이해된다. 탈개신교인이 개신교회와의 완전한 단절을 선언했다고 하더라도 마치 돌아온 탕자(루가의 복음서 15장 11~32절)처럼 언젠가 복귀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는 것이다. ‘인생의 방황은 예수님을 만나면 끝나고, 신앙의 방황은 좋은 교회를 만나면 끝난다’는 말이 통용되는 개신교회에서 탈개신교인은 주체적인 선택을 내린 개인이 아니라 방황하는 주님의 자녀로 간주된다. 지독한 낙관주의로 무장한 개신교회에서 탈개신교인의 양심고백은 오직 과거 시제로만 표현될 수 있다. ‘예전에 교회를 떠난 적이 있지만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다시 돌아오게 되었다’는 흔한 간증은 탈개신교회가 애초부터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개신교회가 마침내 되돌아올 집을 상징한다는 점은 반퀴어 운동이 동성애를 정의하는 방식과도 연결된다. 반퀴어 운동은 동성애를 이성애에서 벗어난 비정상적 상태로 규정하고 동성애자에게 이성애자로 돌아올 것을 요구한다. 여기서 동성애는 안정적이고 중립적인 성적 지향이 아니라 일시적 일탈, 인지적 착각, 성적 중독으로 의미화된다. 반퀴어 담론에 따르면, 모든 인간은 이성애자로 태어나기에 우연적이고 예외적으로 일어난 동성 간 성적 실천이 그 자체로 심각한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문제는 이들이 집(이성애 가족질서)으로 돌아오는 것을 거부하고 지옥(퀴어 커뮤니티)에 머물기를 원할 때 발생한다. 마치 하나님 없이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인간의 교만함이 죄악의 근본으로 여겨지듯이, 지배규범을 따르지 않아도 괜찮다고 주장하는 퀴어 집단의 자긍심은 타락의 원천으로 여겨진다.

반퀴어 집단은 퀴어 집단을 집으로 가는 길을 찾지 못한 안타까운 이들로 묘사하지만, 퀴어 연구자 사라 아메드Sara Ahmed는 길을 잃는 경험disorientation이 우리를 새로운 세계로 이끌 희망을 담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물론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상황은 어지러움과 혼란을 일으키고 때로는 상실의 아픔을 가져오기도 한다. 낯선 곳에서 풍겨 나오는 위화감, 딛고 설 수 있는 기반이 없다는 불안감, 어느 곳으로 가야 할지 모르는 막막함 때문에 서둘러 집으로 되돌아가거나 정반대로 그 자리에서 얼어붙은 듯 멈춰서 있을지도 모른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길을 잃는 경험이 이 세상에 존재한다고 생각조차 해본 적 없는 것을 느끼는 우연한 순간을 만들면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상황을 가능하게 한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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