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는 할말을 어디에 두고 왔는가
허수경 지음 / 난다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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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보통학교 동창회

어머니가 봄날 보통학교 동창회를 다녀왔다. 육십 년 만에 만났다고 했던가. 인생을 겪고도 또 겪어 할머니가 다 되어,
이제 파뿌리가 된 작은 소녀들은 바닷가에 배를 띄워놓고 소주도 조금 마시고 맥주도 조금 마시고 옛이야기 사이사이에 깔깔거렸다고 했다. 선생님 부부도 참석하셨는데 그분들은 비행기를 타고 왔다고 했다. 일본인이기 때문이었다. 학생들이 다 할머니이니 선생님 부부는 그들보다 더 나이가 들었건만 제자들이 주는 대로 맥주도 잘 마셨다고 했다. 그리고 헤어질 때 서로 서로 손목을 잡고 울었다고 했다. 아마도 이 지상에서의 마지막 만남일 것이기 때문이리라. 자신의 삶에 대한 설움과 연민에 겹쳐 서로를 부여안고 우는, 한 세대가 사그라지는 순간을 어머니는 보고 왔건만 명랑하게 하시는 말씀, "선생님이 숙사에서 낮잠 잘 때 숙사 문을 바깥에서 잠가버렸단다. 점심시간이 끝나고도 선생님은 숙사에서 나오지 못하고, 우린 학교 땡땡이 치고 조개 주우러 갔단다. 아이구 말도 마라, 그 봄볕이 얼마나 살갑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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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동네 100호 - 2019.가을
문학동네 편집부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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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형님 책 언제 나오나요.. 퓸격잇는디스 한데 모아 읽고싶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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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짐승아시아하기 문지 에크리
김혜순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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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울아 거울아 세상에서 가장 신비한 거울아! 거울아 거울아 동굴처럼 어두운 거울아! 혹은 거울아 거울아 세상에서 가장 어두운 거울아! 부르는 너는, 그 거울에 비친 너를 하나도 남김없이 다 견뎌낼 수 있는가. 너는 너를 얼마나 잘 가꾸었기에 온전히 ‘나’인가.

 


어차피 그들에 대해서 말한다는 것, 그것은 커다란 치즈 덩어리에서 단지 한 조각을 떼 내어 냄새를 맡아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은 하나가 아니다. 그들은 무한겹겹, 여럿이다. 그들의 신은 하나가 아니다. 3억의 신이 그들 곁에 있다. 그러나 이도 다가 아니다. 신들은 늘 분열한다. 신들은 무한한 방식으로 자신들의 화신을 시시때때 무한수로 만들어낸다. 그리하여 어느 신의 이름은 1천8백 개다. 그는 하늘과 땅, 바다에 걸쳐 골고루 자신의 형상들을 뿌려놓다 못해, 반수獸반인, 반어魚반인, 반사蛇반인까지 만들어놓는다. 심지어는 자신을 넘어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 혹은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의 분신의 형상으로 환생하기도 한다. 남의 자궁으로 들어가 다시 태어나기는 예사다. 그들은 자신들의 과거, 미래, 현재를 동시에 산다. 필요할 때마다 분열, 증식한다. 그들처럼 나는 하나가 아니다. 나는 여럿이다. 나는 무수하다. 나는 수시로 환생하고, 수시로 죽으며, 살아서 죽고, 죽어서 산다. 심지어 어떤 나는 너에게 속해 있다. 나는 우주에 미만하다. 아 놀라워라, 이 땅엔 우주의 지존의 육화된 화신들이 득실득실하다. 나는 지금 이 순간 그들 중 하나다. 하나인 그것들이다. 나는 나의 실체를 모르지만, 나의 전부를 알 수 없지만, 지금 이 순간 여럿이다. 나인 그것들이 뒤엉켜 서로 사랑하고 자식을 낳고, 자식이 또 자식을 낳는다. 당신은 그 모두를, 그 모든 형상을 구분할 수 있겠는가. 당신은 그들 중 누구를 사랑하는가. 사랑한다고 말하는가. 누구든 나에 대해 말하는 것은 쥐 두 마리가 생산한 세상의 모든 쥐 중에서, 몇 마리를 실험실에 가두어놓고, 그 쥐에 대해 말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 모든 쥐 중 한 마리가 태어나서 죽고, 다시 태어나서 죽기를 거듭하다가 오늘 자동차에 치인 한 순간, 존재의 덮개를 벗는다. 언제나 세상을 들쑤셔 도려낸, 그 상처로 만들어진 길은 많고도 많지만, 세상의 모든 쥐 중 한 마리는 저에게 정해진 그 길로만 다니다가 어느 순간 존재의 모자를 벗어던진다. 나도 그 쥐 새끼 한 마리처럼 세상의 상처인 길 위를 떠돌다가 좀더 멀리 나가본다.

 


김혜순_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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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아려 본 슬픔 믿음의 글들 208
클라이브 스테이플즈 루이스 지음, 강유나 옮김 / 홍성사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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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로부터 그렇게 빨리 회복하고 있느냐고? 그러나 그 질문은 애매하다. 맹장을 떼어 내는 수술을 한 후 회복하고 있느냐는 질문과, 다리를 절단한 후 회복하고 있느냐는 질문은 사뭇 다른 의미이다. 수술이 끝나면 다친 곳이 아물든지 환자가 죽든지 둘 중 하나다. 만약 아문다고 하면 격렬하고 지속적인 고통도 잠잠해질 것이다. 그는 곧 원기를 회복할 것이며 의족을 하고 쿵쿵거리며 다닐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는 ‘회복하였으니까.’ 그러나 잘린 부위를 통해 평생토록 쿡쿡 쑤시는 고통을 느낄 것이며 상당히 아플 수도 있다. 그리고 그는 언제까지나 외다리 사나이로 남아 있게 될 것이다. 그가 그 사실을 잊는 순간은 거의 없다. 목욕할 때나 옷 입을 때, 앉아 있을 때나 다시 일어설 때에도, 심지어는 잠자리에 누웠을 때에도 모든 것이 다를 것이다. 그의 모든 생활방식이 바뀔 것이다. (-)

현재 나는 목발 짚는 법을 배우고 있다. 아마도 곧 의족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결코 두 다리로 서게 될 수는 없다. 




카드놀이를 하는 사람들은 게임에 돈을 걸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사람들이 게임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분명 이와 같다. 하나님이든 아니든, 선한 신이든 우주의 가학적 신이든, 영생이든 비존재든, 그에게 아무것도 걸지 않으면 진지할 것이 하나도 없다. 그러다가 판돈이 엄청나게 높아져 마침내는 가짜 돈이나 푼돈이 아니라 세상에서 가진 모든 것을 내놓아야 할 순간이 되어서야 얼마나 진지하고 심각한 사태인지 깨닫게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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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이별에 대해서 말하지 않는다 - 김언 시론집
김언 지음 / 난다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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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창작 강의를 그동안 해오면서 공통적으로 강조한 것은 두 가지인 거 같아요. 누구나 알 만한 얘기입니다. 자기 목소리에 충실하라는 것입니다. 속된 말로 자기 꼴리는 대로 쓰라는 것이죠. 남 눈치 보지 말고. 순화해서 얘기하면 자기 기질에 충실하라는 말이겠죠. 기질이 저마다 다를 텐데, 자기 기질이란 건 뭘까. 제가 저를 돌아봤을 때 저는 완전한 인간이 아니잖아요. 불완전한 인간이란 말이죠. 불완전하다는 것은 어딘가 접시로 치면 깨진 자국이 있거나 흠집이 난 채로 살아가는 인간이라는 말이고요. 저 말고 누구나 마찬가지겠습니다만은 누구나 흠집이 나거나 부족하거나 결핍된 지점이 분명히 있을 겁니다. 현실에서 살아갈 때는 그 못난 지점 때문에 너무 힘들어요. 집에 돌아가면 머리를 찧고 싶은 순간이 많죠.


그런데 한편으론 나를 특징짓는 것이, 내가 완전한 인간이 아니라면 그 깨진 지점일 것 같아요. 이 세상의 모든 접시에 흠집이 있다고 한다면 그게 다 똑같지 않을 거잖아요. 나의 깨진 자국과 당신의 깨진 자국은 다를 수밖에 없죠. 그게 한 사람, 한 사람의 고유한 지점인 거 같아요. 그게 어떻게 보면 그 사람의 본질이라는 거죠. 그리고 시는 그 사람의 못나고 모자란 것을 놓치지 않고 바라봐야 한다는 거. 왜? 그게 나의 본질이니까. 이건 나의 잘못된 지점, 과오를 덮기 위해 쓰는 말이 아닙니다. 시는 그 사람의 완전함, 장점에 대해서 쓰는 게 아니라 못난 지점을 바라보면서 쓰는 것이라는 거죠.


시는 자기 잘난 힘으로 쓰는 게 아니라 못난 힘으로 쓴다고 할 때 시를 쓰기 위해 선결되어야 하는 작업은 자기를 들여다보는 시간입니다. 자기가 누구인지, 어떤 기질의 사람인지, 자기를 들여다보고 자기에 대해서 열심히 써보는 시간이 필요한데 막상 그게 쉽지가 않죠. 누구나 자신에 대해서 말해보라고 하면 머쓱하죠. 나를 있는 그대로 소개하기가 쉽지 않을 뿐더러 자기 기질 깊숙이 파고든다는 건 아주 힘이 듭니다. 자기 자신을 직시하는 거, 응시하는 건 웬만해서는 회피하고 싶어합니다. 자기 못난 점을 누가 알까봐 염려하기 이전에 정면으로 보는 일 자체를 본능적으로 회피하는 거 같아요.


그런데 시를 쓰기 위해서는 자기의 못난 점을 들여다보는 게 필요하고, 그 방편으로 나를 대신할 만한 사물을 하나 가져와서 말을 해보는 것이죠. 나를 대신할 사물은 그래도 좀더 효과적으로 적절하게 자기를 대신해서 말이 나올 수 있는 사물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대체로 어떤 사물들을 추천드리냐면 자기가 좋아하는 사물, 평소에 좋아하고 기억에 많이 남아 있는 사물을 한번, 자기를 대신하는 대상으로 삼아보자고 합니다. 지금 얘기하는 것은 실제로 시창작 시간에 같이 해보고 있는 작업입니다. 우선은 자기를 대신할 사물을 찾아보는 시간을 가집니다.






근데 자기를 대신할 만한 사물이 누구에게는 꽃이 될 수도 있고 누구에게는 벽이 될 수도 있어요. 한번 떠올려 보십시오. 나에게 많이 남아 있는 사물은 각자 조금씩 달라요. 누구는 연기에 꽂혀요, 누구는 구름, 누구는 바닥, 굴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고. 그럼 이제 그 사물에 대해 써보자고 하면 아무리 나를 대신하는 사물이라고는 하지만 그 사물을 얘기하는 것이지 나를 얘기하는 것은 아닌 것 같죠.


거기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어요. 굴에 대해서 얘기해보자, 하면 말하는 사람마다 굴이 다르게 나와요. 즉, 어떤 대상에 대해 말한다는 것은 그 대상을 말하는 나에 대해 말하는 일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니 대상을 들여다보고 그것을 써나가는 과정은 자기를 들여다보는 일이에요.


그런데 이것도 한계가 있어요. 예를 들어 연기를 정하고 쓰면, A4 한 장 정도 쓰면 할말이 없어요. 할말을 더 많이 끄집어내기 위해서는 연기에 대한 기억을 더듬어보거나, 또는 연기를 대상으로 해서 처음 보는 것처럼 묘사를 해봅니다. 연기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감각을 해보는 것이죠. 대상이 불이라고 한다면 불은 세상을 뜨겁다고 느낄까요, 차갑다고 느낄까요. 또 빛은 세상에서 가장 빠른데 세상이 자신만큼 빠르다고 느낄까요, 아니면 자신이 빠르기에 세상이 한없이 느리다고 느낄까요. 결국 이 작업은 자기 기억을 들여다보고 상상하는 시간과 겹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7월 31일 명동 카페꼼마 김언 시인 강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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