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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이별에 대해서 말하지 않는다 - 김언 시론집
김언 지음 / 난다 / 2019년 3월
평점 :

시창작 강의를 그동안 해오면서 공통적으로 강조한 것은 두 가지인 거 같아요. 누구나 알 만한 얘기입니다. 자기 목소리에 충실하라는 것입니다. 속된 말로 자기 꼴리는 대로 쓰라는 것이죠. 남 눈치 보지 말고. 순화해서 얘기하면 자기 기질에 충실하라는 말이겠죠. 기질이 저마다 다를 텐데, 자기 기질이란 건 뭘까. 제가 저를 돌아봤을 때 저는 완전한 인간이 아니잖아요. 불완전한 인간이란 말이죠. 불완전하다는 것은 어딘가 접시로 치면 깨진 자국이 있거나 흠집이 난 채로 살아가는 인간이라는 말이고요. 저 말고 누구나 마찬가지겠습니다만은 누구나 흠집이 나거나 부족하거나 결핍된 지점이 분명히 있을 겁니다. 현실에서 살아갈 때는 그 못난 지점 때문에 너무 힘들어요. 집에 돌아가면 머리를 찧고 싶은 순간이 많죠.
그런데 한편으론 나를 특징짓는 것이, 내가 완전한 인간이 아니라면 그 깨진 지점일 것 같아요. 이 세상의 모든 접시에 흠집이 있다고 한다면 그게 다 똑같지 않을 거잖아요. 나의 깨진 자국과 당신의 깨진 자국은 다를 수밖에 없죠. 그게 한 사람, 한 사람의 고유한 지점인 거 같아요. 그게 어떻게 보면 그 사람의 본질이라는 거죠. 그리고 시는 그 사람의 못나고 모자란 것을 놓치지 않고 바라봐야 한다는 거. 왜? 그게 나의 본질이니까. 이건 나의 잘못된 지점, 과오를 덮기 위해 쓰는 말이 아닙니다. 시는 그 사람의 완전함, 장점에 대해서 쓰는 게 아니라 못난 지점을 바라보면서 쓰는 것이라는 거죠.
시는 자기 잘난 힘으로 쓰는 게 아니라 못난 힘으로 쓴다고 할 때 시를 쓰기 위해 선결되어야 하는 작업은 자기를 들여다보는 시간입니다. 자기가 누구인지, 어떤 기질의 사람인지, 자기를 들여다보고 자기에 대해서 열심히 써보는 시간이 필요한데 막상 그게 쉽지가 않죠. 누구나 자신에 대해서 말해보라고 하면 머쓱하죠. 나를 있는 그대로 소개하기가 쉽지 않을 뿐더러 자기 기질 깊숙이 파고든다는 건 아주 힘이 듭니다. 자기 자신을 직시하는 거, 응시하는 건 웬만해서는 회피하고 싶어합니다. 자기 못난 점을 누가 알까봐 염려하기 이전에 정면으로 보는 일 자체를 본능적으로 회피하는 거 같아요.
그런데 시를 쓰기 위해서는 자기의 못난 점을 들여다보는 게 필요하고, 그 방편으로 나를 대신할 만한 사물을 하나 가져와서 말을 해보는 것이죠. 나를 대신할 사물은 그래도 좀더 효과적으로 적절하게 자기를 대신해서 말이 나올 수 있는 사물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대체로 어떤 사물들을 추천드리냐면 자기가 좋아하는 사물, 평소에 좋아하고 기억에 많이 남아 있는 사물을 한번, 자기를 대신하는 대상으로 삼아보자고 합니다. 지금 얘기하는 것은 실제로 시창작 시간에 같이 해보고 있는 작업입니다. 우선은 자기를 대신할 사물을 찾아보는 시간을 가집니다.

근데 자기를 대신할 만한 사물이 누구에게는 꽃이 될 수도 있고 누구에게는 벽이 될 수도 있어요. 한번 떠올려 보십시오. 나에게 많이 남아 있는 사물은 각자 조금씩 달라요. 누구는 연기에 꽂혀요, 누구는 구름, 누구는 바닥, 굴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고. 그럼 이제 그 사물에 대해 써보자고 하면 아무리 나를 대신하는 사물이라고는 하지만 그 사물을 얘기하는 것이지 나를 얘기하는 것은 아닌 것 같죠.
거기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어요. 굴에 대해서 얘기해보자, 하면 말하는 사람마다 굴이 다르게 나와요. 즉, 어떤 대상에 대해 말한다는 것은 그 대상을 말하는 나에 대해 말하는 일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니 대상을 들여다보고 그것을 써나가는 과정은 자기를 들여다보는 일이에요.
그런데 이것도 한계가 있어요. 예를 들어 연기를 정하고 쓰면, A4 한 장 정도 쓰면 할말이 없어요. 할말을 더 많이 끄집어내기 위해서는 연기에 대한 기억을 더듬어보거나, 또는 연기를 대상으로 해서 처음 보는 것처럼 묘사를 해봅니다. 연기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감각을 해보는 것이죠. 대상이 불이라고 한다면 불은 세상을 뜨겁다고 느낄까요, 차갑다고 느낄까요. 또 빛은 세상에서 가장 빠른데 세상이 자신만큼 빠르다고 느낄까요, 아니면 자신이 빠르기에 세상이 한없이 느리다고 느낄까요. 결국 이 작업은 자기 기억을 들여다보고 상상하는 시간과 겹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7월 31일 명동 카페꼼마 김언 시인 강연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