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고통에 반응하는 인간의 뇌. 뇌의 왼쪽 검은 사각형 점이 사회적 거부에 대한 반응으로 배측 전두대 피질이 활성화되었음을 보여준다. 인간의 뇌는 신체적 고통에도 이와 유사하게 반응한다.
사회적 유대감을 갈망하는 인간의 욕구는 그 뿌리가 너무도 깊기 때문에 고립감을 느끼면 사고의 능력도 손상을 받는다.
재니스 조플린은 무대 위에서는 다른 사람들과 강한 유대감을 느꼈지만 무대 밖에서는 너무도 외로웠다. 그녀는 약물 과다복용으로 사망하기 전 다음과 같은 노랫말의 곡을 만들었다(-) "나는 2만 5000명과 불타는 사랑을 나눴지만 늘 혼자 집으로 간다."
가장 중요한 점은(-)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들은 다른 어떤 사람만큼이나 사회적으로 잘 어울릴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는 사실이다. 외로움을 탄다는 것이 사교성의 부족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다만 외로움은 원래 가진 사교성을 억누를 때 문제가 생긴다.
암스테르담 자유 대학의 도레트 붐스마는 1991년부터 2003년까지 (-) 일란성 쌍생아 수천 명을 선정해 몇 가지 제시문을 주고 그 문장이 자신들의 삶을 얼마나 정확하게 묘사하는지를 조사했다.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아'와 '나는 외롭다'라는 제시문이었다. 우리는 (-)쌍둥이의 반응이 12년 동안 어떻게 달라졌는지 조사했다. 그 결과 연구 초기에 외로움을 느낀다고 말한 사람은 2년, 6년, 심지어 10년 뒤에도 똑같이 대답한 경우가 많았다.
얼마나 외로움을 쉽게 타느냐는 문제는 부분적으로 유전자의 재량권이다. 그러나 환경이 유전자의 요구를 억제하려고 갖은 수단을 동원할 때는 (-) 자기 조절이 어려워진다.
외로움은 사회적 신호를 받아들이는 우리 수신기의 감도를 높여준다. 하지만 동시에 외로움은 그것이 상징하는 뿌리 깊은 두려움 때문에 수신된 사회적 신호가 처리되는 과정을 방해한다. 그래서 실제로 전달되는 메시지의 정확도를 떨어뜨린다.
외로움을 느끼면, 일상생활의 정상적인 혼란과 좌절은 물론이고 실수조차 극복하기 어려울 수 있다. 그런 일을 쉽게 떨쳐 버리지 못하면 사회적으로만이 아니라 심리적으로도 문제가 생긴다.
외로움을 느끼는 젊은이들은 객관적 판단으로 볼 때 자신들의 상황이 사회적으로 만족하는 사람들보다 스트레스가 더 많지 않은데도 스스로 더 힘들다고 느낀다. 이처럼 힘들다는 주관적인 인식이 가져오는 스트레스가 (-)쌓이면 신체(-)가 손상될 수 있다. 그러다 중년이 되면 만성적으로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들은 사회적으로 만족하는 사람들보다 객관적인 스트레스 요인에 실제로 더 많이 노출된다. 외로운 중년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이혼율이 높고, (-) 불화도 더 많이 겪는다.
젊었을 때부터 자신이 겪고 있다고 주관적으로 인식했던 어려운 상황이 중년이 되면서 현실로 굳어진다.
독립심이 비교적 강한(-) 성격이든 아니면 친밀한 유대감을 반드시 느껴야 하는 (-) 성격이든 간에 외로움의 고통을 느끼고 싶어하는 사람은 없다. 또 대단히 큰 잘못을 해서 외로움에 사로잡히는 것도 아니다.
굶주림이나 통증 같은 불편한 상태에 처하면 우리 스스로 더 나은 조건을 만들려고 노력한다. (-) 그런 문제는 독자적인 행동으로도 간단히 해결 가능하다. 예를 들어 배가 고프면 음식을 먹으면 되고, 발에 가시가 박혀 아프면 가시를 빼내면 된다.
그러나 그 불편한 상태가 외로움이라면 거기서 벗어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서로가 상대방과 유대를 맺고 싶어해야 한다. (-) 그러나 이런 조건이 맞지 않으면 좌절감 때문에 적개심이나 우울증 혹은 절망에 빠질 수 있으며, 사교술만이 아니라 자제력까지도 잃을 수 있다. 그럴 경우 손쉽게 얻을 수 있는 쾌락으로 고통을 덮어 버리려는 욕구가 자제력을 억눌러 난잡한 성생활이나 폭음과 폭식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이런 부정적인 행동이 생활 속에 자리 잡으면 자기방어적인 행동이나 냉담함 또는 도발적인 행위가 겉으로 드러나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좋은 인상을 주지 못한다. 그 결과 (-) 다른 사람들로부터 실제로 따돌림을 당하게 된다.
연구팀은 각 참여자들과 면담을 거쳐 어떤 사람에게는 아무에게도 선택받지 못했다고 고의적인 거짓말을 했다. 그러고는 "하지만 괜찮아요. 다음 과제를 혼자 해도 됩니다"라고 말해주었다. 반면 다른 참여자에게는 인기가 너무 좋아 모두가 같이 일하고 싶지만 그룹 인원이 너무 많아지면 곤란하기 때문에 그냥 혼자서 다음 과제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시 말해 한 그룹은 사회적인 고통을 받게 했고 다른 그룹은 즐거움을 느끼도록 했다.
그들에게 주어진 과제는 미각 테스트였다. 연구팀은 참여자 각각에게(-) 쿠키 서른다섯개 가 든 접시를 나눠주고는 맛과 질감, 그리고 냄새를 정확히 판단하는 데 필요한 만큼 충분히 먹고 난 뒤 쿠키를 평가하라고 주문했다.
사회적 소외감으로 고통을 받도록 유도된 참여자들은 평균 아홉 개를 먹었다.
그러나 모두가 같이 일하고 싶어한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은 참여자들은 절반 정도만 먹었다. 사회적 단절감이 비만을 초래하는 음식에 대한 식욕을 돋우었다는 뜻이다. 그뿐 아니라 소외감은 쿠키의 맛을 더 좋게 느끼도록 했다.
따돌림을 당한다고 생각하도록 유도된 참여자 대다수는 사회적으로 인정받는다고 느낀 사람들보다 쿠키 맛을 더 좋게 평가했다. 그러나 자기 조절에 실패했다는 점을 보여주기라도 하듯이, 그들은 특히 맛있다고 느끼지 못했을 때에도(-) 많은 양의 쿠키를 먹었다.
로버트 와이즈는 사회학자로서 사회적 소외감이 새로운 친구를 사귀고, 낯선 사람에게 좋은 인상을 주고, 다른 사람과 협력하고, 다른 사람을 실제보다 더 호의적으로 볼 수 있도록 하는 동기 유발이 될 수 있다고 믿었다. (-) 그러나 다른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려는 욕구가 좌절될 때는 지속되는 사회적 소외감으로 인해 긍정적인 충동이 부정적인 충동으로 바뀐다. 한 실험에서 소외감을 느끼도록 인위적으로 유도된 참여자들은 다른 사람을 더욱 가혹하게 평가했고, 벌칙을 가하는 규칙이 있으면 다른 사람들에게 더 많은 벌칙(-)을 가하려 했다. (-)그들은 비합리적이고 자멸적인 위험을 무릅쓰며, 코앞에 닥친 시험을 준비하기보다는 재미있는 놀이에 탐닉하는 경향을 보였다.
또다른 연구에서 바우마이스터는 (-)참여자들에게 앞으로 사회적 따돌림을 당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한 후 그들에게 기하학적 도형을 그려 보라고 했다. 종이에서 펜을 떼지 말고 선을 이중으로 긋지도 않고 도형을 그려야 한다는 조건이 붙었다. 겉보기에는 아주 흔한 공간 추리력 테스트 같지만 사실은 풀 수 없도록 조작된 문제였다. 진짜 테스트는 각 참여자가 당시에는 알지 못했지만 그 해결할 수 없는 과제를 얼마나 오랫동안 풀려고 애쓰는지 알아보는 것이었다. (-) 앞으로 의미 있는 대인 관계를 맺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는 이야기를 들은 참여자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더 빨리 테스트를 포기했다.
외로움 때문에 인내심이 바닥난 상태에서 외로움을 극복해야 한다면 너무도 가혹한 일이다. 또 실제 생활에서 외로운 사람들을 면담한 결과를 보면 그 고통이 너무도 잘 드러난다. 사소한 일과를 일부러 만들어 자기 조절을 하려고 애쓰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 노력은 단순한 의례적 과제가 될 수 있다. 높은 수준의 실행 능력이 요구되지 않는 일을 말한다. (-) 운 좋은 사람들은 그보다 깊이 있게 자기 행동을 조절할 수 있는 활동을 찾는다. 실제로 의미 있는 새로운 일과를 말한다.
1990년대 초 심리학자 샐리 보이젠과 게리 번트슨은 숫자와 셈하기를 잘하는 침팬지의 자기 조절 능력을 최초로 연구했다. (-)우리는 시바에게 두 접시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했다. 각각의 접시는 캔디가 하나도 없는 것에서부터 최대 여섯 개가 담겨 있는 것까지 다양했다. 시바는 (-) 더 많은 캔디가 담긴 접시를 선택했다. 인간처럼 시바도 캔디를 좋아하기 때문에 당연한 선택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의도한 게임(-)은 (-)선택한 접시를 제외하고 선택하지 않은 접시의 캔디를 가져가도록 하는 게임이었다.
캔디가 보이지 않은 상태에서 상징적 기호인 숫자로만 실험을 했을 때 시바는 훨씬 더 잘했다. (-)
실제 캔디가 눈앞에 보이자 침팬지들은 이른바 심리학자들이 말하는 '간섭 효과' 때문에 좌절을 겪었다.
침팬지들은 숫자든 실제 캔디든 간에 주어진 과제를 잘 인지했다. 그들은 규칙을 숙지했고, 숫자 개념도 잘 알고 있었다. 다만 눈앞에 보이는 그 달콤한 캔디에 정신이 팔릴 수밖에 없었다.
우리의 실험에서도 참여자들은 (-)규칙을 잘 숙지했다. 단지 그들은 집중력을 분산시키는 간섭 효과를 극복하는 데 필요한 자기 조절 능력을 발휘할 수 없었을 뿐이었다. 마찬가지로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도 아이스크림을 통째로 먹거나, 동료들에게 짜증을 내거나, 상대를 가리지 않고 무분별하게 성행위를 하거나, 엉뚱한 젤리를 사왔다고 신랑에게 소리를 지르는 일이 옳지 않다는 사실을 안다. 다만 (-) 사회적 유대감이 있을 때보다 고립감을 느낄 때 이런 충동을 극복하기가 어려울 뿐이다.
외로운 사람은, 특히 파트너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역할을 맡았을 때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이야기를 잘 들어줬다. (-) 그렇다면 우리 인간은 외로움을 느낄 때도 사회성을 발휘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특정 역할을 부여받는 실험 조건이 아니라 실생활의 현실적인 조건에서는 외로움이 그러한 능력을 짓누른다. (-)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들은 실험에서는 사회성을 발휘하면서도 스스로의 평가에서는 자신이 다른 사람들보다 사회성이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우울증에 대한 회고'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윌리엄 스타이런의 <보이는 어둠>과 함께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