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마우지는 왜 바다로 갔을까 - 2015년 제11회 세계문학상 우수상 수상작
이성아 지음 / 나무옆의자 / 2015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표지 디자인은 누가 한 것인지? 2013년 출간된 마리 은디아이 <세 여인> 표지 이미지 변형으로 보이는데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4057857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물고구마 2015-09-17 1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표지는 공중정원 박진범씨라고 예전에 문학동네에서 디자인담당하셨던 분이 하셨는데 읽고보니 충분히 저 이미지가 와닿았어요. 억압되어있는 인물들의 모습을 잘 표현한 것 같아요.

물고구마 2015-09-17 1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고로 문학동네에 나온 저책은 읽어보진 않았지만 이책에서도 세여인이 나오네요.
 
인간은 왜 외로움을 느끼는가
존 카치오포 외 지음, 이원기 옮김 / 민음사 / 2013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회적 고통에 반응하는 인간의 뇌. 뇌의 왼쪽 검은 사각형 점이 사회적 거부에 대한 반응으로 배측 전두대 피질이 활성화되었음을 보여준다. 인간의 뇌는 신체적 고통에도 이와 유사하게 반응한다. 


사회적 유대감을 갈망하는 인간의 욕구는 그 뿌리가 너무도 깊기 때문에 고립감을 느끼면 사고의 능력도 손상을 받는다.


재니스 조플린은 무대 위에서는 다른 사람들과 강한 유대감을 느꼈지만 무대 밖에서는 너무도 외로웠다. 그녀는 약물 과다복용으로 사망하기 전 다음과 같은 노랫말의 곡을 만들었다(-) "나는 2만 5000명과 불타는 사랑을 나눴지만 늘 혼자 집으로 간다."


가장 중요한 점은(-)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들은 다른 어떤 사람만큼이나 사회적으로 잘 어울릴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는 사실이다. 외로움을 탄다는 것이 사교성의 부족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다만 외로움은 원래 가진 사교성을 억누를 때 문제가 생긴다.


암스테르담 자유 대학의 도레트 붐스마는 1991년부터 2003년까지 (-) 일란성 쌍생아 수천 명을 선정해 몇 가지 제시문을 주고 그 문장이 자신들의 삶을 얼마나 정확하게 묘사하는지를 조사했다.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아'와 '나는 외롭다'라는 제시문이었다. 우리는 (-)쌍둥이의 반응이 12년 동안 어떻게 달라졌는지 조사했다. 그 결과 연구 초기에 외로움을 느낀다고 말한 사람은 2년, 6년, 심지어 10년 뒤에도 똑같이 대답한 경우가 많았다.


얼마나 외로움을 쉽게 타느냐는 문제는 부분적으로 유전자의 재량권이다. 그러나 환경이 유전자의 요구를 억제하려고 갖은 수단을 동원할 때는 (-) 자기 조절이 어려워진다.


외로움은 사회적 신호를 받아들이는 우리 수신기의 감도를 높여준다. 하지만 동시에 외로움은 그것이 상징하는 뿌리 깊은 두려움 때문에 수신된 사회적 신호가 처리되는 과정을 방해한다. 그래서 실제로 전달되는 메시지의 정확도를 떨어뜨린다.


외로움을 느끼면, 일상생활의 정상적인 혼란과 좌절은 물론이고 실수조차 극복하기 어려울 수 있다. 그런 일을 쉽게 떨쳐 버리지 못하면 사회적으로만이 아니라 심리적으로도 문제가 생긴다.


외로움을 느끼는 젊은이들은 객관적 판단으로 볼 때 자신들의 상황이 사회적으로 만족하는 사람들보다 스트레스가 더 많지 않은데도 스스로 더 힘들다고 느낀다. 이처럼 힘들다는 주관적인 인식이 가져오는 스트레스가 (-)쌓이면 신체(-)가 손상될 수 있다. 그러다 중년이 되면 만성적으로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들은 사회적으로 만족하는 사람들보다 객관적인 스트레스 요인에 실제로 더 많이 노출된다. 외로운 중년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이혼율이 높고, (-) 불화도 더 많이 겪는다.


젊었을 때부터 자신이 겪고 있다고 주관적으로 인식했던 어려운 상황이 중년이 되면서 현실로 굳어진다.


독립심이 비교적 강한(-) 성격이든 아니면 친밀한 유대감을 반드시 느껴야 하는 (-) 성격이든 간에 외로움의 고통을 느끼고 싶어하는 사람은 없다. 또 대단히 큰 잘못을 해서 외로움에 사로잡히는 것도 아니다.


굶주림이나 통증 같은 불편한 상태에 처하면 우리 스스로 더 나은 조건을 만들려고 노력한다. (-) 그런 문제는 독자적인 행동으로도 간단히 해결 가능하다. 예를 들어 배가 고프면 음식을 먹으면 되고, 발에 가시가 박혀 아프면 가시를 빼내면 된다.


그러나 그 불편한 상태가 외로움이라면 거기서 벗어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서로가 상대방과 유대를 맺고 싶어해야 한다. (-) 그러나 이런 조건이 맞지 않으면 좌절감 때문에 적개심이나 우울증 혹은 절망에 빠질 수 있으며, 사교술만이 아니라 자제력까지도 잃을 수 있다. 그럴 경우 손쉽게 얻을 수 있는 쾌락으로 고통을 덮어 버리려는 욕구가 자제력을 억눌러 난잡한 성생활이나 폭음과 폭식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이런 부정적인 행동이 생활 속에 자리 잡으면 자기방어적인 행동이나 냉담함 또는 도발적인 행위가 겉으로 드러나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좋은 인상을 주지 못한다. 그 결과 (-) 다른 사람들로부터 실제로 따돌림을 당하게 된다.


연구팀은 각 참여자들과 면담을 거쳐 어떤 사람에게는 아무에게도 선택받지 못했다고 고의적인 거짓말을 했다. 그러고는 "하지만 괜찮아요. 다음 과제를 혼자 해도 됩니다"라고 말해주었다. 반면 다른 참여자에게는 인기가 너무 좋아 모두가 같이 일하고 싶지만 그룹 인원이 너무 많아지면 곤란하기 때문에 그냥 혼자서 다음 과제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시 말해 한 그룹은 사회적인 고통을 받게 했고 다른 그룹은 즐거움을 느끼도록 했다.

그들에게 주어진 과제는 미각 테스트였다. 연구팀은 참여자 각각에게(-) 쿠키 서른다섯개 가 든 접시를 나눠주고는 맛과 질감, 그리고 냄새를 정확히 판단하는 데 필요한 만큼 충분히 먹고 난 뒤 쿠키를 평가하라고 주문했다.


사회적 소외감으로 고통을 받도록 유도된 참여자들은 평균 아홉 개를 먹었다. 


그러나 모두가 같이 일하고 싶어한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은 참여자들은 절반 정도만 먹었다. 사회적 단절감이 비만을 초래하는 음식에 대한 식욕을 돋우었다는 뜻이다. 그뿐 아니라 소외감은 쿠키의 맛을 더 좋게 느끼도록 했다.


따돌림을 당한다고 생각하도록 유도된 참여자 대다수는 사회적으로 인정받는다고 느낀 사람들보다 쿠키 맛을 더 좋게 평가했다. 그러나 자기 조절에 실패했다는 점을 보여주기라도 하듯이, 그들은 특히 맛있다고 느끼지 못했을 때에도(-) 많은 양의 쿠키를 먹었다.


로버트 와이즈는 사회학자로서 사회적 소외감이 새로운 친구를 사귀고, 낯선 사람에게 좋은 인상을 주고, 다른 사람과 협력하고, 다른 사람을 실제보다 더 호의적으로 볼 수 있도록 하는 동기 유발이 될 수 있다고 믿었다. (-) 그러나 다른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려는 욕구가 좌절될 때는 지속되는 사회적 소외감으로 인해 긍정적인 충동이 부정적인 충동으로 바뀐다. 한 실험에서 소외감을 느끼도록 인위적으로 유도된 참여자들은 다른 사람을 더욱 가혹하게 평가했고, 벌칙을 가하는 규칙이 있으면 다른 사람들에게 더 많은 벌칙(-)을 가하려 했다. (-)그들은 비합리적이고 자멸적인 위험을 무릅쓰며, 코앞에 닥친 시험을 준비하기보다는 재미있는 놀이에 탐닉하는 경향을 보였다. 


또다른 연구에서 바우마이스터는 (-)참여자들에게 앞으로 사회적 따돌림을 당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한 후 그들에게 기하학적 도형을 그려 보라고 했다. 종이에서 펜을 떼지 말고 선을 이중으로 긋지도 않고 도형을 그려야 한다는 조건이 붙었다. 겉보기에는 아주 흔한 공간 추리력 테스트 같지만 사실은 풀 수 없도록 조작된 문제였다. 진짜 테스트는 각 참여자가 당시에는 알지 못했지만 그 해결할 수 없는 과제를 얼마나 오랫동안 풀려고 애쓰는지 알아보는 것이었다. (-) 앞으로 의미 있는 대인 관계를 맺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는 이야기를 들은 참여자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더 빨리 테스트를 포기했다.


외로움 때문에 인내심이 바닥난 상태에서 외로움을 극복해야 한다면 너무도 가혹한 일이다. 또 실제 생활에서 외로운 사람들을 면담한 결과를 보면 그 고통이 너무도 잘 드러난다. 사소한 일과를 일부러 만들어 자기 조절을 하려고 애쓰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 노력은 단순한 의례적 과제가 될 수 있다. 높은 수준의 실행 능력이 요구되지 않는 일을 말한다. (-) 운 좋은 사람들은 그보다 깊이 있게 자기 행동을 조절할 수 있는 활동을 찾는다. 실제로 의미 있는 새로운 일과를 말한다.


1990년대 초 심리학자 샐리 보이젠과 게리 번트슨은 숫자와 셈하기를 잘하는 침팬지의 자기 조절 능력을 최초로 연구했다. (-)우리는 시바에게 두 접시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했다. 각각의 접시는 캔디가 하나도 없는 것에서부터 최대 여섯 개가 담겨 있는 것까지 다양했다. 시바는 (-) 더 많은 캔디가 담긴 접시를 선택했다. 인간처럼 시바도 캔디를 좋아하기 때문에 당연한 선택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의도한 게임(-)은 (-)선택한 접시를 제외하고 선택하지 않은 접시의 캔디를 가져가도록 하는 게임이었다.


캔디가 보이지 않은 상태에서 상징적 기호인 숫자로만 실험을 했을 때 시바는 훨씬 더 잘했다. (-)

실제 캔디가 눈앞에 보이자 침팬지들은 이른바 심리학자들이 말하는 '간섭 효과' 때문에 좌절을 겪었다.


침팬지들은 숫자든 실제 캔디든 간에 주어진 과제를 잘 인지했다. 그들은 규칙을 숙지했고, 숫자 개념도 잘 알고 있었다. 다만 눈앞에 보이는 그 달콤한 캔디에 정신이 팔릴 수밖에 없었다.


우리의 실험에서도 참여자들은 (-)규칙을 잘 숙지했다. 단지 그들은 집중력을 분산시키는 간섭 효과를 극복하는 데 필요한 자기 조절 능력을 발휘할 수 없었을 뿐이었다. 마찬가지로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도 아이스크림을 통째로 먹거나, 동료들에게 짜증을 내거나, 상대를 가리지 않고 무분별하게 성행위를 하거나, 엉뚱한 젤리를 사왔다고 신랑에게 소리를 지르는 일이 옳지 않다는 사실을 안다. 다만 (-) 사회적 유대감이 있을 때보다 고립감을 느낄 때 이런 충동을 극복하기가 어려울 뿐이다.


외로운 사람은, 특히 파트너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역할을 맡았을 때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이야기를 잘 들어줬다. (-) 그렇다면 우리 인간은 외로움을 느낄 때도 사회성을 발휘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특정 역할을 부여받는 실험 조건이 아니라 실생활의 현실적인 조건에서는 외로움이 그러한 능력을 짓누른다. (-)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들은 실험에서는 사회성을 발휘하면서도 스스로의 평가에서는 자신이 다른 사람들보다 사회성이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우울증에 대한 회고'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윌리엄 스타이런의 <보이는 어둠>과 함께 읽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나탈리 골드버그 지음, 권진욱 옮김 / 한문화 / 2013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단순한 사실만 나열하거나 재미있는 일화나 적고 마는 작가로 끝나고 싶지는 않았다. 내 가족의 진실을 찾아 내어 작품으로 완성시키겠다는 소망이 있었다. 그러나 누가 이걸 알아 줄까? 아무도 알아 주지 못하리라는 불안과 '가족'이라는 소재를 다루기에는 턱없이 함량미달이라는 반복적인 자기비하에 시달리고 있었다.

_쥬디스 게스트



 

우리는 소중한 존재들이며, 우리의 삶 또한 그러하다는 것을 작가가 되려는 당신은 알고 있는가? 덧없이 지나가 버리는 세상의 모든 순간과 사물들을 사람들에게 각인시켜 주는 것, 그것이 작가의 임무다. 만약 우리 인생의 작고 평범한 부분들이 중요하지 않다면, 우리는 당장 원자폭탄에 의해 전멸당해도 아무 할 말이 없는 것이다.

 

 

친구가 "난 네 작품이 너무 사랑스러워" 하고 말하면 그 좋은 기분을 그저 간직하면 된다. 대지와 의자가 당신 몸을 쓰러지지 않게 받쳐준다는 사실을 믿는 것처럼 그 친구의 말을 그대로 믿어라.


 

글쓰기는 다른 작가들과 관계를 맺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절대 질투심이 자리 잡아서는 안 된다. 만약 누군가가 대단한 작품을 썼다면, 그가 작품을 통해 세상을 좀더 명료하게 만들어 준 것에 대해 당신은 진심으로 감사해야 한다.

 

 

우리는 더 큰 사람이 되어 두 팔로 세계 전체를 담는 글을 써야 한다. 거친 황야에서 홀로 떨어져 글을 쓸 때도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들과 같이 있어야만 한다. 우리는 이 모든 것과 분리된 존재가 아니다.

 

 

예술가는 외롭고 고통스러운 존재라는 생각 같은 것은 떨쳐버려라. 어차피 인간은 누구나 고통스럽다. 자신만이 고통스럽다고 생각해서 문제를 더 어렵게 만들 이유는 없다.


 

결국 세상에 완벽한 것은 없다. 진정 글을 쓰고 싶다면 모든 것을 잘라내고 쓸 수밖에 없다. 글을 쓰기 좋은 완벽한 환경도, 습작 노트도, 펜도, 책상도 없다면, 자신을 유연하게 훈련시킬 수밖에 없다. 아무리 낯선 환경 속에서도, 완전히 다른 장소에서도, 글쓰기 훈련은 계속되어야 한다. 기차 안에서, 버스 안에서, 허름한 부엌 식탁에서, (-) 샌드위치를 먹는 중간중간에도 당신은 글을 써야 한다.

 

 

우리가 무언가에 전적으로 매달려 심혈을 기울였다면, 그 일은 그것을 그만두어야 할 때가 언제인지도 우리에게 분명하게 알려 준다.

 

 

자신이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 믿고 인내심과 유머 감각을 키우라. (-) 훈련에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믿음을 잃지 말고 저 너머에 있는 광활한 인생을 바라보라.

 


대중을 절대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대중은 진실의 단면을 보고 싶어 한다.


 

이 세상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그렇게 견고하지도 않고, 구조적으로 완벽하지도 않으며, 영원하지도 않다는 사실을 배워야 할 때가 있다는 뜻이다. 우리의 삶은 언젠가는 당도할 죽음을 향해 가고 있는 것이며, 이 죽음을 막을 것은 아무것도 없다.


 

모든 작가들은 독자들로부터 이해받기를 바란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가 만든 작품을 세상에 내놓는다. 그러니 당신의 글을 읽을 독자에게 당신 심장의 더 깊은 곳으로 들어오는 기회를 만들어 주라. 당신은 가톨릭 신자, 남자, 남부 사람, 흑인, 여자, 양성애자 그리고 하나의 인간이 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독자에게 설명해 주어야 한다. 당신은 이 모든 것에 대하여 어느 누구보다 더 많이, 더 정확하게 알고 있다.


 

자신이 쓴 글에서 어느 부분이 살아 있고 깨어 있는지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우리의 글이 계속 타 들어가 환한 빛을 내는 그 지점이 결국 하나의 시와 산문이 된다. 그리고 이 차이는 누구나 알 수 있다.

 

 

나쁜 글은 세상에 이미 너무 많다. 그래서 좋은 글을 단 한 줄만 써도 당신은 유명해질 것이다. 미적지근한 글은 사람을 잠들게 만든다.


 

꼭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우리는 '성공이 행복이다'라는 등식에 너무도 익숙해져 있다. 하지만 성공을 해도 외로움은 사라지지 않는다. 성공은 또 다른 고립감과 실망을 가져온다. 모든 성공이 다 마찬가지다. 그러니 자신이 느끼고 있는 것을 받아들이는 여유를 가지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죽음의 푸가 - 파울 첼란 시선
파울 첼란 지음, 전영애 옮김 / 민음사 / 2011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무도 흙으로 진흙으로 우리를 다시 빚어 주지 않는다,

아무도 우리의 티끌에 혼을 불어넣어 주지 않는다.

아무도.


_<찬미가> 중에서

 

 

 

새벽의 검은 우유 우리는 마신다 저녁에

우리는 마신다 점심에 또 아침에 우리는 마신다 밤에

우리는 마신다 또 마신다

우리는 공중에 무덤을 판다 거기서는 비좁지 않게 눕는다


_<죽음의 푸가> 중에서

 

 

우리는 서로 바라본다,

우리는 서로 어두운 것을 이야기한다,

우리는 서로 양귀비와 기억처럼 사랑한다,

우리는 잠을 잔다, 조개에 담긴 포도주처럼,

달의 핏빛 빛줄기에 잠긴 바다처럼.


_<코로나> 중에서

 

 

 

그는 헛맞추지 않고,

돌을 돌로 치며,

그의 시계에서는 피가 울리고,

그의 손에서는 그의 시각이 시간을 친다.

그이, 보다 아름다운 공을 가지고 놀아도 좋다

너에 대해, 나에 대해 이야기해도 좋다.


_<누군가> 중에서

 


기도하소서, 주여,

저희가 가까이 있나이다.


_<흑암> 중에서

 

 

흑암: Tenebrae. '어둠' 외에도 '죽음의 밤'이라는 뜻도 있는데, 특히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직후 골고다 언덕을 뒤덮은 어둠을 가리킨다. (-)

 

 

침묵, 숯이 된

두 손 안에서

금처럼 끓인.

 


커다란, 잿빛,

모든 잃어버린 것처럼 가까운

누이의 모습.


_<연금술의 소화액같이> 중에서

 

 

그 부스러기로

당신은 우리의 이름을 새로 반죽하고

그 이름들을 내가, 당신 눈과

닮은

외눈을 손가락 끝마다 달고

닳도록 더듬는다,

깨어나며 당신에게로 다가갈 수 있는

한 자리를 찾아

환한


_<꿈꾸지 못한 것에> 중에서

 

 

시는 자신을 주장합니다-그렇게 극단적인 말을 많이 하고 나서 이런 말까지 하는 걸 용서하십시오-시는 자신을 주장합니다, 자기 자신의 가장자리에서요, 자신을 되부르고 데려옵니다, 존속할 수 있기 위해서요, 몸을 내맡기지 않고 그것의 '이미 더는 아님(Schon-nicht-mehr)'에서부터 자신의 '그래도 아직(Immer-noch)'에로요.


(-)


시는-그 어떤 조건에서도!-여전히-인지하는 사람의, 나타나는 것을 향하고 있는 사람의, 이 나타나는 것에게 묻고 말을 거는 한 사람의 시가 됩니다. 시는 대화가 됩니다-자주 절망적인 대화이지요.


(-)


저는 그 모든 것을 매우 부정확한, 불안하기에 부정확한 손가락으로 지도 위에서 찾고 있습니다-아이들을 위한 지도 위에서요, 고백하지 않을 수 없듯이.

이 장소들 중 그 어느 곳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압니다, 그런 장소들이, 특히 지금, 틀림없이 있으리라고, 그리고...... 저는 무언가를 찾아냅니다!

 

_<자오선-게오르크 뷔히너 상 수상 연설> 중에서

 

 

-돌 위에 나는 뉘어 있어, 그때, 너 알지, 석판 위에, 그리고 내 곁, 거기 그들이 뉘어 있었어, 나 같았던, 다른 사람들이, 나와 달랐던 사람들이 똑같이, 형제자매들이, 그리고 그들이 거기 누워 있었어, 자고 있었어, 자고 있었어, 또 자고 있지 않았어, 그들은 꿈을 꾸었어, 또 꿈을 꾸지 않았어, 그들은 나를 사랑하지 않았고 나는 그들을 사랑하지 않았어, 내가 그저 한 사람이었기 때문이지, 그런데 누가 그저 '한 사람'을 사랑하려 하겠어, 그런데 그들은 여럿이었어, 거기 내 주위에 빙 둘러 누운 사람들보다도 훨씬 많았어, 그런데 누가 모두를 사랑할 수 있다고 하겠어, (-) 나는 나를 사랑할 수 없었던 그들을 사랑하지 않았어, 나는 촛불을 사랑했어, 거기서 왼쪽 구석에서 타고 있는 촛불, 난 그걸 사랑했어, 그것이 타 내렸기 때문에, 그것이 타 내리지 않았기 때문에, (-) 형제자매여, 촛불이 아니라, 나는 그 '흘러내리는 불타오름'을 사랑했어, (-)

 

_<산속의 대화> 중에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문학동네 82호 - 2015.봄
문학동네 편집부 엮음 / 문학동네 / 2015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글을 쓰는 일은 외롭고도 묘한 일입니다. 한 소설을 시작해 첫 몇 쪽을 쓰는 동안은 절망의 순간들을 통과해야 합니다. 길을 잘못 든 것 같다는 생각이 날이면 날마다 들지요. 그러니 되돌아가 다른 길로 접어들고 싶다는 유혹이 거셉니다. 이 유혹에 지지 말고 가던 길을 가야 합니다. 한겨울 한밤중에 차를 몰고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빙판길을 가는 일과 얼마간 비슷하다 보면 됩니다. 선택의 여지란 없지요. 되돌아갈 수는 없는 노릇, 언젠가는 안전한 길이 나올 것이며 안개도 걷힐 거라고 자신을 타이르며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

 

작가와 독자 사이에 이런 조화로운 관계가 존재하려면, 작가는 절대로 독자를 혹사하지 말아야 하며─가수가 제 목소리를 혹사한다고 말할 때의 의미와 같이 썼습니다─독자를 본인도 모르는 사이 아주 서서히 이끌어 책이 차츰차츰 독자에게 스며들 수 있도록 충분한 여백을 남겨주어야 합니다. 침술에서, 정확한 한 지점에 침을 놓기만 하면 거기서 유발된 흐름이 신경계로 퍼져나가는 것과 흡사한 기술이 여기에서도 통하는 것입니다.

 

(-)

점령기의 파리는 참 이상한 도시였습니다. 겉보기에는 ‘이전 같은’ 삶이 계속됐습니다. 극장이, 영화관이, 연주회장이, 식당이 문을 열었지요. 라디오에서는 노래가 흘러나왔습니다. 심지어 극장과 영화관에는 전전(戰前)보다 사람이 더 많이 들었습니다. 그 장소들이 마치 함께 모여 서로 바싹 다가들며 안도를 나눌 피난처이기라도 한 양 말입니다. 하지만 파리가 더이상 전과는 같은 곳이 될 수 없음을 일러주는, 사소해 보여도 기괴한 사실들이 있었습니다. 자동차가 없는 까닭에 도시는 적막했습니다. 그 적막 속에서 나무가 살랑거리는 소리, 말발굽이 또각대는 소리, 대로를 걷는 군중의 발소리와 웅성거리는 이야기 소리가 들렸습니다. 거리의 적막과 겨울철 오후 다섯시부터는 손바닥만한 빛줄기도 창문으로 새나가지 못하게 하던 등화관제의 적막 속에서 이 도시는 저 자신이 결핍한 도시, 나치 점령군이 일렀듯 “눈(目) 없는 도시” 같았습니다.


_파트릭 모디아노_거대한 망각의 백지 앞에서_문학동네 2015 봄

 

 

길을 잘못 든 것 같다는 생각과 싸워야 하고, 이만 되돌아가 다른 길로 접어들고 말 것 같아 시작도 하지 못한 어떤 글을 써보고 싶다. 무얼 그려내고 싶은지 알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일단 출발하라고, 그래도 된다고 괜찮다고 하는 듯한 목소리와 마주친 느낌. 독자는 가수의 목소리와 같아서 혹사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 충분한 여백을 남겨주라는 말이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이전과 같은 삶이 될 수 없다고 말하는 적막 속의 소리를 따라 밖으로 나가고 싶어지는 봄. 고개만 내미는 것이 아니라 큰걸음으로 쭉쭉 걸어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