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중국 일본을 물 흐르듯 넘나들며 감칠맛 나는 문체로 완성한 청춘의 질곡.
유려한 필치와 유머로 읽는 맛 나는, 색다른 감성의 미스터리. 하지만 “몇십 년 만에 한 번 나올 위대한 소설”이라는 데는 글쎄. 퍼뜩 영화 <고령가 소년 살인 사건>을 다시 봐야겠다는 의욕이 인다.



"자네 할아버지는 늘 화가 나 있었어요." 위에 씨가 말했다. "가슴속에 아직 희망이 있었던 거죠."
"희망?"
"조바심과 초초함은 희망의 다른 얼굴이니까요."
위에 씨의 말이 무슨 뜻인지 그냥 알 수 있었다. 할아버지에게 그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던 것이었다.

대륙을 떠날 때 멈췄던 할아버지의 시계는 대륙에 한 방 먹이기 전까지는 그대로 멈춰 있었던 것이다.

노인들이 성별을 넘어 손을 맞잡은 그림은 늘 나를 살짝 흐뭇하게 했다. 거기에 있는 것은 온전한 배려뿐이다. 아니면 공범자 의식. 성별을 뛰어넘을 만큼, 노인들은 의외로 권모술수에 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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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깅의 기초>

...초판이 1967년인 걸 몰랐네.
온갖 러닝앱이 난무하는 이때 이 책에 실린 12주차 프로그램을 스스로 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 싶고
초판일과 내용을 고려할 때 101 매뉴얼은 아니고 조깅을 시작한 이들이 읽어볼 만한 고전이 맞을 듯.



인상적인 문장

① 1킬로미터를 4분 21초(?!?!)보다 빠르게 뛰는 것은 조깅이 아니라 달리기다.
천천히 달리면 되는 줄 알았지 조깅과 달리기를 가르는 기준이 있는 것도 몰랐지만 4분 21초라니. 선수 수준 아닌가. 거북이 친구인 나에게만 놀라운 것인가.

② 훈련이지, 혹사가 아니다. 절대 전력을 다하지 말라.
12월 영상 1도인 어느 날 호기롭게 나갔다가 2/3 지점에서 긴급 후퇴. 햇빛 드는 코스는 괜찮았는데 해가 없는 곳으로 들어서서 맞바람까지 맞으니 동태가 됐다. 맞은편 달리는 어르신에게 경외의 눈빛을 보내고 오들오들 떨면서 돌아왔다.

미친 짓이었다. 요즘 들어 달리기할 때 관절도 전과 다른 느낌인데 자신을 너무 과신했다. 방구석에서 요가나 할 걸. 나에게 달리기는 훈련도 아니고 생존을 위한 '조금 빨리 걷기'일 뿐인데 혹사가 웬 말이냐.




<64>

밀크레프는 '천 겹'의 크레이프라는 이름처럼 크레이프를 얇게 켜켜이 쌓아 만드는 게 관건이다. 요코야마 히데오가 밀크레프를 만들면 정말 천 겹을 쌓아서 만들 것 같다. <64>가 그렇다. 천 겹의 소설. 그 밀도가 부담스러운 순간도 있지만 계층과 층위가 켜켜이 만나 하나의 종장을 이루는 촘촘함에는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10년을 매만져 소설을 내놓은 작가는 말한다. "제 스타일로 완성한 이야기의 정원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천천히 구경하십시오." 




📖
미카미는 구라마에의 보고서를 읽었다. 왠지 모르게 그러고 싶었다.


저도 모르게 목소리가 떨렸다.
익명 발표의 어두운 일면과 정면으로 맞닥뜨린 기분이었다. 익명이라는 천이 뒤덮은 것은 기쿠니시 하나코의 이름이 아니라 메이카와 료지라는 한 인간이 이 세상에 살아 있었다는 증거였다. 불행한 결말을 맞이했다고 해도, 평생 단 한 번 신문에 이름이 실릴 기회를, 그 기사를 본 누군가가 그의 죽음을 애도할 기회를, 익명 문제를 둘러싼 갈등에 빼앗긴 것이다.


미카미는 보고서를 든 손을 힘없이 내렸다. 기자들의 태도는 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다들 그를 보고 있었다. 모든 눈동자가 미카미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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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현경 홍보 담당관 미카미 모리유키는 형사부에서 홍보실로 발령난 것을 좌천이자 ‘낙인’으로 여기는 조직 내 경계인이다. 정보 유출에 민감한 형사들에게 미카미는 경찰 동료라기보다 외부인에 가깝고 홍보실 직원들에겐 어차피 때가 되면 본적으로 떠날 형사부 사람이다.

조직 내 엘리트 관료와의 갈등, 언론과의 대립, 거기에 고등학생 딸의 가출까지 일련의 사건에서 자신의 존재를 입증하기 위해 분투하는 미카미의 모습은 때론 자기 연민과 자조의 다름 아니다. 경찰 소설의 ‘멋있는 주인공‘과는 거리가 멀다. 외모까지 대놓고 못생겼다고 나온다. 미카미를 쏙 빼닮은 딸은 신체이형장애를 겪다 집을 나갔다.

인간은 불완전하고 삶의 궤적은 가냘픈 철사처럼 구부러지고 펴지기를 반복하면서 방향을 잃고, 그럼에도 길을 찾고, 어지러운 모양만큼 생채기를 내지만 어느덧 새살도 돋는다.

이런 점에서 <64>는 성장 소설이라 할만하다. 쇼와 64년에 일어난 아동 유괴 살해 사건과 모방 범죄로 긴박하게 내달리는, 미스터리 소설의 짜릿함보다 경무과 조사관 후타와타리의 "흰자와 검은자가 평범하게 어우러진 눈"을 지긋이 바라보는 미카미의 담담함. 딸의 "생존의 조건"을 바라는 용기. <64>의 천 겹이 만들어 낸 클라이맥스는 이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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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0권의 추리소설을 읽었다.



고릿적 아이패드 미니를 리더기 전용으로 탈바꿈하고, 눈도 침침하니 TTS를 활용해서 속독(?)도 하고 온갖 자투리 시간에 틀어 놓으니 여흥의 99.9%가 독서로 수렴되긴 했지만 내가 봐도 믿기지 않는군.

종이책의 물성을 찬양하던 나인데(그리고 여전히 그렇지만) 아이패드에 무광 필름 붙여서 글씨도 막 크게 크게! 해서 보니까 너무 좋더라는. 그리고 책에 '못생긴' 흔적 남기기를 싫어하는 나에게 깔끔한 하이라이트 표시와 메모는 너무 유용하다. 미니라 가볍기는 또 얼마나 가벼운지 핸드폰보다 가볍다. 해서 이북 리더기에도 혹했으나, 일단 미니가 숨을 다 할 때까지 버텨보기로. 


하지만 취침 때 듣는 건 개인적으로 별로였다. 웬만하면 머리 대면 자는 타입인데 책 듣다 솔솔 잠이 올라치면 얘기를 마저 들으려는 무의식의 발로인지 문득문득 깨는 바람에 잠들기까지의 시간이며 그 질이 뚝 떨어지는 느낌. 오디오북도 개인 취향으로는 불호에 가까운데 정제되고 극화된 면이 오히려 몰입을 어렵게 한다. 시리 친구들 같은 TTS가 적당히 읽어 주는 게 나은 듯. 영문이 나올 때 쓸데없이 정직한 발음과 '우크라'대학 같은 읽기는 화가 나긴 하지만.


올해 읽은 소설의 2/3는 추리소설이 차지하고, 추리소설의 2/5를 히가시노 게이고가 차지. 게이고 읽기에 지쳐서 틈틈이 다른 작품도 읽다 보니 (나만) 새롭게 발견한 작가도 있고 제법 보람찬 독서 생활을 했다. 재독도 있었는데 놀랍도록 기억이 나지 않았기에 끝까지 잘 읽었다.


노션으로 정리하니 이런 게 좋구나. 편의에 맞게 볼 수 있고 별 반 개도 주고. 내년 DB도 만들었다. 근데 신문물에 밝은 인간이 아니라 은근히 귀찮기도 하다. 글, 특히 인용이 블록 단위로 써지는 거 어떻게 안 되나. 해서 독서 관리 앱 하나 받아두긴 했다. 북플도 제대로 활용 안 하는 마당에 쓰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올해 한 권 정도 더 읽을 수 있을 거 같긴 한데 그래도 딱 떨어지는 숫자가 좋으니까 90으로 마무리. 맘에 든다. 다독가가 된 것 같아 자화자찬 북 치고 장구 치고 후후후. 

    


간략한 소회 

① 중화권 작품

- 옌롄커

추리/미스터리는 아니지만, 올해 별 다섯 개 책 중 하나가 <딩씨 마을의 꿈>이라 써본다. 

옌롄커 하면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가 먼저 떠오르는데 맛있는 건 제일 나중에 먹는 나답게, 그러니까 붕어빵은 머리부터 먹는 나답게 묵혀두고 있었다. 그래서 읽은 게 <딩씨 마을의 꿈>. 읽다 보면 원문이 궁금해지는 작품이 있다. 중드 <삼국>을 보며 중국어를 배워볼까 하던 의욕이 십수 년 만에 고개를 들었다(가 금세 수그러졌지만). 중국어는 안 배워도 옌롄커는 좀 더 읽어 보련다. 아, 위화도 열심히 묵히고 있는데 내년에는 읽으리라.


📖

“웃음거리는 무슨, 목숨이 길든 짧든 어차피 한평생인 게야. 이제 와서 남 흉을 봐서 뭐하겠나.”

삼촌은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나는 그 금빛 관 안에서 큰 소리로 외쳤다. "할아버지, 할아버지!" 심장이 터지고 폐부가 찢어지도록 부르짖었다. "할아버지, 저는 이곳을 떠나고 싶지 않단 말이에요. 빨리 와서 절 구해주세요!"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도록 부르짖었다. (...) 그때 학교 전체와 딩씨 마을 전체, 평원 전체에 목이 찢어질 듯한 내 외침이 가득 울려 퍼졌다. 뜨겁게 말라버린 평원 위에 하늘과 땅을 뒤덮을 듯이 비가 쏟아져 내리는 것 같았다.



하지만 아버지는 내가 딩씨 마을을 떠나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할아버지와 학교 뒤쪽의 그 자리를 떠나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내가 새로운 곳으로 가는 것을 몹시 두려워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 딩씨 마을의 꿈 中
















    


- 찬호께이

<13.67> 

알라딘 피드에 의하면 5년전 읽고 싶어했다나(뭐라고요?). 2022년 드디어 읽었다.

마지막 서너 장이 모든 것을 말하는 작품.

"일처리가 심하게 융통성이 없고 선임의 명령에 무조건 따르는" 그가 어떻게 '천리안'으로 거듭날 수 있었나. 그의 마지막은 진한 아이러니를 더한다.


<기억나지 않음 형사>

반전에 의한 반전을 위한 반전이 너무 많다. 

<13.67>처럼 수미상응이 돋보이는 형사물로 시마다 소지의 말처럼 "21세기 본격추리라는 새로운 용어와 창작 방법"에 대한 작가의 이해와 애정이 드러나는 작품이다. 


📖

나는 여자를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조용히 맹세했다. 당신들을 위해 진실을 밝히겠습니다. 그 순간, 나는 그녀의 눈동자가 살짝 움직이는 것을 보았다. 

나는 고개를 숙여 그녀의 얼굴 가까이 다가갔다. 콧속으로 피비린내와는 거리가 먼 향긋한 체취가 스며들었다. 그녀의 두 눈동자가 느릿느릿 나를 향했다. 네 개의 눈동자가 마주쳤다.

"수고해요."

고운 입술이 벌어지더니 웃음을 머금고서 내게 말했다. 

- 서장 中



<마술 피리>

호프만 박사의 오른팔(+왼팔) 한스의 활약으로 즐거운 일독을 했으나 고전/전래 동화에 흥미가 없으면 그닥 매력있는 서사는 아닐 듯.


<디오게네스 변주곡>

마지막 작품 포함 몇몇을 제외하면 다소 심심하지만 음악으로 단편을 정리한, 컨셉 앨범 비스무리한 아이디어는 높이 사고 싶다. 찬호께이의 구성 능력이 돋보이는 단편집.



수미상관식 구성이나 낱 것을 컨셉에 맞게 (재)배열하여 전체 서사를 극적으로 만드는 게 찬호께이의 특기인 것 같다. 그리고 작품 속 음악, 영화, 드라마를 보면 이 작가, 나랑 은근히 취향이 비슷한가? <디오게네스 변주곡>의 경우 음악이 없었으면 별 하나 뺐다.... 반면 <기억나지 않음, 형사>는 같은 이유로 별 반개 더 주고 싶은데 알라딘에선 할 수가 없네.

















- 쯔진천

<동트기 힘든 긴 밤>

얼개는 알고 있어서 예의 사회 비판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무엇이 한 인간을 이토록 끈질기게 했나. 작은 공명심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어떤 것'이 되어 한 인간의 삶에 뿌리내린다. 적자지심, 그것은 신념이라기엔 무모하고 오기라기엔 냉철하다. 여운에 젖어 뒤적여 본 소설의 정체는 반전 그 자체. 중국 작가의 행보를 이역만리 방구석에서 속속들이 알 길은 없으나 감흥이 식어버리는 건 어쩔 수 없구나. 몇 번의 재심 끝에 겨우 출간됐다는 건 중의법이었나? 한국에서 드라마화할 계획이었나 본데 이래저래 흐지부지된 듯. 현재는 어찌 됐나 싶지만 굳이 찾아볼 여력은 없...


<무증거 범죄>

두 '천재'의 대결 구도라는 점에서 작위적인 연출은 어쩔 수 없지만, 허무한 종장은 되려 현실적이다.


<다만 부패에서 구하소서>

가볍게 웃자고 읽었는데 생각 외로 탄탄하다. 개인적으로 <동트기 힘든 긴 밤>, <무증거 범죄>보다 구성이 나았다. 취향 저격의 풍자, B급 유머의 A급 완급 조절이 일품.

   

중국의 히가시노 게이고라는데 술술 읽히는 것은 물론 플롯, 묘사, 캐릭터 구축 전반에서 반 수 위 같기도. 세 작품 밖에 안 읽기는 했지만. 생소한 중화권 현대 문학, 그중에도 추리소설은 찬호께이, 레이미 이름 정도만 알았지 그야말로 무지의 영역이었다. 좋은 작품으로 2022년이 즐거웠고 쯔진천 읽기(작가와 작품을 분리해서 볼 때)는 올해의 수확이라고 할 수 있겠다...

















② 히가시노 게이고 40+1

2022년을 추리소설의 해로 만들어 준 장본인. 이유는 기억도 안 나는데 올해 히가시노 게이고 모아 읽기나 해보지 싶어 한두 권 읽다 보니 이 지경이 돼버렸네. 화수분 게이고답게 아직 읽을 책이 남았지만, 당분간은 안(못) 읽는 것으로.

왜 [40+1]인가 하면 <눈보라 체이스>는 완독을 안 해서(방치 중).


게이고식 블랙 '유모어'에 엄지척을 준다면, '겨울 스포츠 시리즈'는 내 취향의 극단. (스키장에서 굴러 내려오는 몸뚱이라 그런지) 기술 설명 이런 거 흥미 하나도 없고, 일어나는 사건에도 별 감흥이 없고, 전개도 궁금하지 않다. 스노보드 마니아인 작가는 애정을 담아 쓴 것이겠지만. <조인 계획>은 그럭저럭 읽었다. 스키 실력을 겨루는 스포츠가 아니라서 그런가. <아름다운 흉기>가 여기서 비롯되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장편소설 살인 사건>>에서 역설하듯 어렵지 않고 군더더기 없다는 게 게이고의 장점. 가볍지 않은 소재도 쉽게 쉽게 쓴다. 역으로 말하면 깊이가 덜하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장광설이나 tmi 없이 게이고만큼 담백하게 써내는 작가를 꼽기란 쉽지 않다. 

개인적으로 형사/탐정이 등장해야 미스터리 읽는 맛이 나는데 ― 오가와라 반조 경감은 구닥다리라고 신랄하게 까지만 ― 그런 의미에서 <기도의 막이 내릴 때>로 '가가 시리즈'가 끝나다니 아쉽다(덩달아 슈헤이도 못 본다). 왠지 양산화되고 식상하다 느낌이 들다가도 <신참자> 같은 작품은 왜 게이고가 롱런하는 작가인지 알게 해준다. 

























올해를 보람차게 해 준 히가시노 게이고로 이번 정리 마무리. 

나머지는 2023년을 기약하는 것으로. 



📚2022 추리소설의 해 vol.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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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석은 자의 독>

먼저 읽었던 <우물과 탄광>이 고단함 속 온기라면 <어리석은 자의 독>은 그야말로 막장의 처절함이랄까. 60년대 폐광촌을 시작으로 반세기 시대 조류에 쓸리고 발버둥 치는 인간 군상을 곱씹게 된다. 

1963년 지쿠호 미이케 탄광 사고가 추리 소설의 얼개에 담겨 각 인물의 '주판알'과 '독'은 저마다의 업을 짓는다. 미카와 갱 탄진 사고는 전후 최악의 탄광 사고라고 한다. 사고 40년이 지나 피해 보상 소송은 마무리됐지만 에너지 전환 정책과 맞물려 소리 없이 밀려난 폐광 노동자들은 여전히 일산화탄소 중독 후유증에 시달렸다.

소설 속 한 문장이지만 지쿠호에는 한국인, 조선적이 많았다. 식민지 강제징용으로 끌려온 이들이 터를 이룬 것이다. 이 때문인지 폐광촌 이야기는 더욱 마음을 짓누른다. 60년대 미이케 노동 투쟁은 총노동의 패배로 끝났지만 전후 일본 노동 안전 운동의 분기점이 된다. 하지만 이조차 남의 일인 사람들이 있을 터였다. 


----- 📖

일본항공기 사고가 일어난 지 30년이 되는 해라는 뉴스는 TV에서도 여러 번 나왔다. 성대한 위령제가 열렸고 유족과 일본항공 사원, 지역 주민들이 그날을 애도했다. 단독기 사고로는 세계 최다인 520명이 목숨을 잃은 그야말로 끔찍한 사고였다. 매년 사고가 일어난 날이 다가오면 사람들의 기억을 환기시키는 뉴스가 꼭 나온다. 절대 잊을 수 없고 두 번 다시 같은 사고가 일어나서는 안 된다며 호소했다. 그것은 옳은 동시에 중요한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사망자 수에 필적할 정도의 희생자를 낸 탄광 사고가 과거 자주 일어났다는 이야기는 이제 그 누구도 입에 올리지 않는다. 1963년 일어난 미쓰이미이케미카와 탄광 탄진 폭발 사고 때는 458명의 사망자가 나왔다. 살아남은 이들은 일산화탄소 중독증 환자가 되어 죽음에 버금가는 고통에 시달렸고 내 아버지도 그 중 한 명이었다. 1965년에는 미쓰이야미노 탄광에서 가스 폭발 사고가 일어났다. 희생자는 237명. 지하 갱도에서 일어난 탄광 사고로 수많은 이들이 한꺼번에 사망했지만 그런 일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


일본항공기 사고보다 고작 4년 전 일어난 호쿠탄유바리 탄광의 가스 유출 사고 때는 갱내 화재를 진화하려는 광부들을 그대로 남겨 두고 갱도에 물을 쏟아 부었다. 갱도를 수몰시키는 방법은 살 수 있는 사람도 전부 내팽개치는 것이었다. 지하에 있는 광부들은 불길과 물길로 목숨을 잃었다. 마지막 시신을 찾은 건 사고가 일어난 지 반년이 흘러서였고 최종 사망자는 93명을 기록했다. 이후 나라에서 석탄 에너지 정책을 전환하자 땅 밑에서 일어난 사고들은 모조리 역사의 그늘 속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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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세기를 관통하는 시대 흐름과 '껍데기'라는 인물은 <13.67>의 어떤 이를 떠오르게 한다. 추리 소설로는 다소 아쉬운 면면이 있지만 비단 추리물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점도 맞닿아있다. 





<서장 다나카 겐이치의 우울>

콧바람 내뿜으며 술술 읽거나 어처구니가 없어서 책장을 탁 덮거나. 물론 난 전자다. 한데 (한국인의 피 때문인지 쓸데없는 예민함인지) 다나카 서장이 몰두하는 프라모델 종류는 은근히 거슬린다. 이런 찜찜함에 별 하나 뺀다. 결국 '잃어버린 것'을 찾지 못하는 걸 보면 엘리트 관료주의를 풍자하는 고도의 장치려나. 


----- 📖

나는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놀라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뭐가 ‘좋았어!’라는 거야? 이 사람들은 들개가 아니야. 미친개야!


나도 모르게 몸을 뒤로 젖혔다. 이 들개들, 자신의 주먹이 으깨져라 후려치다니……. 전혀 제어가 안 되고 있어. 역시 미친개야. 나와는 태생이 달라.


아버지도 들개였어. 


역시 관료다워! 대단하다, 엘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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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락의 아내>

자기 고백에 온도가 있다면 톨락의 그것은 노르웨이의 겨울보다 차가울 듯하다. 그의 이야기에 자꾸 몸서리가 쳐지는 건 내가 추위를 싫어하는 탓이겠지.

간결한 호흡으로 무미건조함과 애수를 넘나들며 이토록 찝찔한 내용을 담아내는 작가의 공력이 만만치 않겠다 싶은데 저자 소개를 보니 노르웨이 대표 작가인 모양이다. 번역된 작품으로 동화 몇 편이 있는데 <톨락의 아내>가 보여주는 특유의 형식과 필치는 이런 이력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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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내 곁에는 잉에보르그도 없다. 내 삶의 작은 불빛이 꺼져버린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내 곁을 떠나지 않은 것도 있다. 그것은 바로 과거의 나. 변하지 않은 나. 듣고 있나?


왜 모두들 내게서 세상을 빼앗아 가려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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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고 모아 읽기'라는 번듯한(!) 이유라지만 올해는 (추리) 소설 편중의 해였다. 소설 한두 권 읽은 해도 있더니 이놈의 독서 편식은 고쳐지지 않는다. 그리고 게으름도. 정리는 도대체 언제쯤 할 수 있으려나. (하기는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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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토끼 (리커버)
정보라 지음 / 아작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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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담과 괴담과 우화의 삼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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