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석은 자의 독>

먼저 읽었던 <우물과 탄광>이 고단함 속 온기라면 <어리석은 자의 독>은 그야말로 막장의 처절함이랄까. 60년대 폐광촌을 시작으로 반세기 시대 조류에 쓸리고 발버둥 치는 인간 군상을 곱씹게 된다. 

1963년 지쿠호 미이케 탄광 사고가 추리 소설의 얼개에 담겨 각 인물의 '주판알'과 '독'은 저마다의 업을 짓는다. 미카와 갱 탄진 사고는 전후 최악의 탄광 사고라고 한다. 사고 40년이 지나 피해 보상 소송은 마무리됐지만 에너지 전환 정책과 맞물려 소리 없이 밀려난 폐광 노동자들은 여전히 일산화탄소 중독 후유증에 시달렸다.

소설 속 한 문장이지만 지쿠호에는 한국인, 조선적이 많았다. 식민지 강제징용으로 끌려온 이들이 터를 이룬 것이다. 이 때문인지 폐광촌 이야기는 더욱 마음을 짓누른다. 60년대 미이케 노동 투쟁은 총노동의 패배로 끝났지만 전후 일본 노동 안전 운동의 분기점이 된다. 하지만 이조차 남의 일인 사람들이 있을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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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항공기 사고가 일어난 지 30년이 되는 해라는 뉴스는 TV에서도 여러 번 나왔다. 성대한 위령제가 열렸고 유족과 일본항공 사원, 지역 주민들이 그날을 애도했다. 단독기 사고로는 세계 최다인 520명이 목숨을 잃은 그야말로 끔찍한 사고였다. 매년 사고가 일어난 날이 다가오면 사람들의 기억을 환기시키는 뉴스가 꼭 나온다. 절대 잊을 수 없고 두 번 다시 같은 사고가 일어나서는 안 된다며 호소했다. 그것은 옳은 동시에 중요한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사망자 수에 필적할 정도의 희생자를 낸 탄광 사고가 과거 자주 일어났다는 이야기는 이제 그 누구도 입에 올리지 않는다. 1963년 일어난 미쓰이미이케미카와 탄광 탄진 폭발 사고 때는 458명의 사망자가 나왔다. 살아남은 이들은 일산화탄소 중독증 환자가 되어 죽음에 버금가는 고통에 시달렸고 내 아버지도 그 중 한 명이었다. 1965년에는 미쓰이야미노 탄광에서 가스 폭발 사고가 일어났다. 희생자는 237명. 지하 갱도에서 일어난 탄광 사고로 수많은 이들이 한꺼번에 사망했지만 그런 일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


일본항공기 사고보다 고작 4년 전 일어난 호쿠탄유바리 탄광의 가스 유출 사고 때는 갱내 화재를 진화하려는 광부들을 그대로 남겨 두고 갱도에 물을 쏟아 부었다. 갱도를 수몰시키는 방법은 살 수 있는 사람도 전부 내팽개치는 것이었다. 지하에 있는 광부들은 불길과 물길로 목숨을 잃었다. 마지막 시신을 찾은 건 사고가 일어난 지 반년이 흘러서였고 최종 사망자는 93명을 기록했다. 이후 나라에서 석탄 에너지 정책을 전환하자 땅 밑에서 일어난 사고들은 모조리 역사의 그늘 속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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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세기를 관통하는 시대 흐름과 '껍데기'라는 인물은 <13.67>의 어떤 이를 떠오르게 한다. 추리 소설로는 다소 아쉬운 면면이 있지만 비단 추리물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점도 맞닿아있다. 





<서장 다나카 겐이치의 우울>

콧바람 내뿜으며 술술 읽거나 어처구니가 없어서 책장을 탁 덮거나. 물론 난 전자다. 한데 (한국인의 피 때문인지 쓸데없는 예민함인지) 다나카 서장이 몰두하는 프라모델 종류는 은근히 거슬린다. 이런 찜찜함에 별 하나 뺀다. 결국 '잃어버린 것'을 찾지 못하는 걸 보면 엘리트 관료주의를 풍자하는 고도의 장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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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놀라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뭐가 ‘좋았어!’라는 거야? 이 사람들은 들개가 아니야. 미친개야!


나도 모르게 몸을 뒤로 젖혔다. 이 들개들, 자신의 주먹이 으깨져라 후려치다니……. 전혀 제어가 안 되고 있어. 역시 미친개야. 나와는 태생이 달라.


아버지도 들개였어. 


역시 관료다워! 대단하다, 엘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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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락의 아내>

자기 고백에 온도가 있다면 톨락의 그것은 노르웨이의 겨울보다 차가울 듯하다. 그의 이야기에 자꾸 몸서리가 쳐지는 건 내가 추위를 싫어하는 탓이겠지.

간결한 호흡으로 무미건조함과 애수를 넘나들며 이토록 찝찔한 내용을 담아내는 작가의 공력이 만만치 않겠다 싶은데 저자 소개를 보니 노르웨이 대표 작가인 모양이다. 번역된 작품으로 동화 몇 편이 있는데 <톨락의 아내>가 보여주는 특유의 형식과 필치는 이런 이력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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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내 곁에는 잉에보르그도 없다. 내 삶의 작은 불빛이 꺼져버린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내 곁을 떠나지 않은 것도 있다. 그것은 바로 과거의 나. 변하지 않은 나. 듣고 있나?


왜 모두들 내게서 세상을 빼앗아 가려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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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고 모아 읽기'라는 번듯한(!) 이유라지만 올해는 (추리) 소설 편중의 해였다. 소설 한두 권 읽은 해도 있더니 이놈의 독서 편식은 고쳐지지 않는다. 그리고 게으름도. 정리는 도대체 언제쯤 할 수 있으려나. (하기는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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