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깅의 기초>

...초판이 1967년인 걸 몰랐네.
온갖 러닝앱이 난무하는 이때 이 책에 실린 12주차 프로그램을 스스로 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 싶고
초판일과 내용을 고려할 때 101 매뉴얼은 아니고 조깅을 시작한 이들이 읽어볼 만한 고전이 맞을 듯.



인상적인 문장

① 1킬로미터를 4분 21초(?!?!)보다 빠르게 뛰는 것은 조깅이 아니라 달리기다.
천천히 달리면 되는 줄 알았지 조깅과 달리기를 가르는 기준이 있는 것도 몰랐지만 4분 21초라니. 선수 수준 아닌가. 거북이 친구인 나에게만 놀라운 것인가.

② 훈련이지, 혹사가 아니다. 절대 전력을 다하지 말라.
12월 영상 1도인 어느 날 호기롭게 나갔다가 2/3 지점에서 긴급 후퇴. 햇빛 드는 코스는 괜찮았는데 해가 없는 곳으로 들어서서 맞바람까지 맞으니 동태가 됐다. 맞은편 달리는 어르신에게 경외의 눈빛을 보내고 오들오들 떨면서 돌아왔다.

미친 짓이었다. 요즘 들어 달리기할 때 관절도 전과 다른 느낌인데 자신을 너무 과신했다. 방구석에서 요가나 할 걸. 나에게 달리기는 훈련도 아니고 생존을 위한 '조금 빨리 걷기'일 뿐인데 혹사가 웬 말이냐.




<64>

밀크레프는 '천 겹'의 크레이프라는 이름처럼 크레이프를 얇게 켜켜이 쌓아 만드는 게 관건이다. 요코야마 히데오가 밀크레프를 만들면 정말 천 겹을 쌓아서 만들 것 같다. <64>가 그렇다. 천 겹의 소설. 그 밀도가 부담스러운 순간도 있지만 계층과 층위가 켜켜이 만나 하나의 종장을 이루는 촘촘함에는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10년을 매만져 소설을 내놓은 작가는 말한다. "제 스타일로 완성한 이야기의 정원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천천히 구경하십시오." 




📖
미카미는 구라마에의 보고서를 읽었다. 왠지 모르게 그러고 싶었다.


저도 모르게 목소리가 떨렸다.
익명 발표의 어두운 일면과 정면으로 맞닥뜨린 기분이었다. 익명이라는 천이 뒤덮은 것은 기쿠니시 하나코의 이름이 아니라 메이카와 료지라는 한 인간이 이 세상에 살아 있었다는 증거였다. 불행한 결말을 맞이했다고 해도, 평생 단 한 번 신문에 이름이 실릴 기회를, 그 기사를 본 누군가가 그의 죽음을 애도할 기회를, 익명 문제를 둘러싼 갈등에 빼앗긴 것이다.


미카미는 보고서를 든 손을 힘없이 내렸다. 기자들의 태도는 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다들 그를 보고 있었다. 모든 눈동자가 미카미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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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현경 홍보 담당관 미카미 모리유키는 형사부에서 홍보실로 발령난 것을 좌천이자 ‘낙인’으로 여기는 조직 내 경계인이다. 정보 유출에 민감한 형사들에게 미카미는 경찰 동료라기보다 외부인에 가깝고 홍보실 직원들에겐 어차피 때가 되면 본적으로 떠날 형사부 사람이다.

조직 내 엘리트 관료와의 갈등, 언론과의 대립, 거기에 고등학생 딸의 가출까지 일련의 사건에서 자신의 존재를 입증하기 위해 분투하는 미카미의 모습은 때론 자기 연민과 자조의 다름 아니다. 경찰 소설의 ‘멋있는 주인공‘과는 거리가 멀다. 외모까지 대놓고 못생겼다고 나온다. 미카미를 쏙 빼닮은 딸은 신체이형장애를 겪다 집을 나갔다.

인간은 불완전하고 삶의 궤적은 가냘픈 철사처럼 구부러지고 펴지기를 반복하면서 방향을 잃고, 그럼에도 길을 찾고, 어지러운 모양만큼 생채기를 내지만 어느덧 새살도 돋는다.

이런 점에서 <64>는 성장 소설이라 할만하다. 쇼와 64년에 일어난 아동 유괴 살해 사건과 모방 범죄로 긴박하게 내달리는, 미스터리 소설의 짜릿함보다 경무과 조사관 후타와타리의 "흰자와 검은자가 평범하게 어우러진 눈"을 지긋이 바라보는 미카미의 담담함. 딸의 "생존의 조건"을 바라는 용기. <64>의 천 겹이 만들어 낸 클라이맥스는 이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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