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미술 강의 - 순수 미술의 탄생과 죽음
조주연 지음 / 글항아리 / 2017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주기적으로 환기하지 않으면 머릿속에서 휘발되는 현대미술.
동시대의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보고 느끼는가. 현대의 ‘미술하기‘는 무엇일까.

그림은 우주 달력에서 12월 31일 밤 11시 59분 정각, 인간의 시간으로는 3만 년 전에 처음 출현했다고 하니, 그림의 발명은 문자의 발명보다 앞서도 한참이나 앞섰다고 할 수 있다. 요컨대, 미술의 역사는 문자로 기록된 역사보다 훨씬 더 길다. 최소한 다섯 배 더 길다.

순수 미술의 탄생이라는 미증유의 예술적 성취를 이룩한 현대 미술의 반란이 순수 미술의 죽음이라는 반예술적 파괴로 귀결되고 만 현대 미술의 종착점에서, 그 너머로 나아가려는 동시대 미술이 물어야 할 질문은 다시 근본적인 것, 즉 ‘무엇을 볼 것인가?’ 그리고 ‘내가 본 것을 다른 이들과 어떻게 나눌 것인가?’가 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호러북클럽이 뱀파이어를 처단하는 방식
그래디 헨드릭스 지음, 강아름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태생적으로 연애세포 부족인지 달달 로맨스도 별로 좋아하지 않고 책이나 영화에서 첫눈에 상대방에게 전기 파바박⚡️ 하는 대목은 그럴 수도 있겠군(영화니까, 소설이니까)하며 넘어가는 나. 그런데


그 전기 파바박⚡️이 어떤 느낌인지 알 것 같기도. 단 두 페이지 만에 별 다섯 개를 누르는 책이 나올 줄이다. '호러'도 달갑지 않은 마당에 무슨 무슨 클럽, OO모임, XX회 류의 미스터리 제목을 많이 봐온 데다가 (이제와 이런 얘긴 미안하지만) 호러북클럽, 뱀파이어 처단 이런 거 좀 가벼운 느낌이라..... 언젠간 읽을 수도, 하고 만 책이었건만. 유머, 필력, 내용, 그냥 다 취향 저격. 첫눈에 꽂혀 별 다섯 매겨 놓고 좀 성급했나 소심함도 앞서지만,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어디로 튈지 모르게 미친 듯 내달리는 호러북클럽. 습지쥐가 뭔가 궁금해서 찾아봤는데 고담시 지하철 쥐 떼에 비하면 귀여운 생물인 듯. 그 '쥐 떼'는 고담시에서 온 걸지도............ 용맹한 래그태크여. 이 작품, 호러물답게 살벌하다. 근데 웃겨... <뱀파이어에 관한 아주 특별한 다큐멘터리>가 떠오르는 호러코미디

인줄 알았으나 뒤로 갈수록 묘하게 쓸쓸하다. 유머와 묘사는 여전히 재미진데 여섯 여성의 활극이 절정으로 치달을수록 처절함도 뚝뚝 흐른다. 이 분위기 반전, 뭐지. '진짜' 호러는 싫다고. 두 페이지 만에 별 다섯은 역시 성급했나......

싶었으나



단 한 편의 시라도 주머니에 있다면 우리는 죽음을 걸어서 건널 수 있다. 읽고, 쓰고, 사랑하는 것이야말로 우리를 구원하는 삼위일체다.


크리스티앙 보뱅 <환희의 인간>, 《협죽도》 중에서




보뱅의 글에서 시를 미스터리로 바꾼다면 맹렬히 읽고, 온몸으로 쓰고, 싸워서 죽음을 건넌 그들. 그들은 끝까지 갔다. 구원하고 구원받았다.


어제 몸소 겪은 황당무개함을 생각하며 그래도 살아지는 게 삶이고 그래서 지금은 눈앞의 일을 공략하고 내일은 내일의 일을 할 것이고 그러다 때가 왔을 때 끝까지 가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댓가는 치르겠지만.



📖

뭐든 좋을 대로 생각하라지. 우리는 잘못을 저질렀어. 아이들한테 평생 지고 갈 상처를 남겼을지도 몰라. 샌드위치를 얼리고, 운전해주는 걸 잊고, 이혼도 했지. 하지만 때가 왔을 때 우리는 끝까지 갔어.


<호러북클럽이 뱀파이어를 처단하는 방식> 중에서





엄마=모성애의 화신 이라는 등식에 왠지 반발심이 들지만 모성이 본능이기 전에 의무일 수밖에 없는 1990년대 미국 남부, 교회 공동체를 생각해보면 주부들의 사투는 더욱 절절해지는 것이다.

다시는 주부를 얕보지 말라.


번역서 제목은 그린 부인의 존재감이 살짝 묻히는 감이 있는데 원제는 <The Southern Book Club's Guide to Slaying Vampires>다. (호러)북클럽 보다는 '남부'에 방점이 있는 듯. 뱀파이어가 복수인 것도 눈여겨 볼 부분.


그 '전투' 후 래그태그와 프랑켄위니가 겹쳐보이는 건 왜일까. 그놈의 영생의 비법을 래그테그가 알았더라면.

별 다섯은 그냥 두기로 하자. 북클럽이니까.




📖

문을 박차고 들어와 슬리크를 에워싼 심폐소생팀 때문에 구석으로 밀려난 키티는 그래도 멈추지 않고 고요히 입술만 움직이며 책을 읽었다. 거기 적힌 단어들을 기도문처럼 속삭였다.


<호러북클럽이 뱀파이어를 처단하는 방식> 중에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너의 퀴즈>

퍼즐 맞추기, 십자말풀이 포함 퀴즈나 수수께끼를 좋아한다. 학생 때 동아리에서 재미 삼아 퀴즈 '놀이' — 정말로 시시껄렁한 놀이 — 를 했을 때 빠른 속도로 정답을 맞히는 나를 보고 나중에는 팀 파트너도 놀랐던 기억이. 후후훗.  


2023년 일본추리작가협회상 수상작이고 '추리'에 꽂힌 나는 안 그래도 좋아하는 퀴즈(퍼즐) 소재이기에 두근두근 책을 펼쳤다. 한데 추리물도, 미스터리도 아닌 퀴즈 덕후의 성찰기랄까. 그야말로 "퀴즈 덕후의 순정"에 관한 이야기다. 


모든 기를 동원하여 문제 유추하기, 버튼 누르기의 절묘한 타이밍, 필사적인 정답 찾기 과정 등 덕후 아니면 표현하기 힘든 미묘하고 섬세한 퀴즈 테크닉이 미시마 레오와 혼조 기즈나를 통해 펼쳐진다. 후반부에 뻔하지만 살짝 감동적인 연출도 있는데 역시나, 장르 속성답게 '반전'이 있다. 
"인생이라는 정답 없는 퀴즈"를 풀어간다라, 멋진 표현이다. 인생은 좌충우돌의 연속이고, 타이밍이며, 답을 찾는 과정이고, 틀려도 끝이 아니니까.



<29초>

주인공이 순진한 건지, 눈치가 없는 건지.... 읽을수록 고답으로 목이 막힌다. 오랜 시간 참고 살아 온 약자의 처지는 이해한다. 한번 어그러지기 시작한 인생의 조각은 나비의 날갯짓이 되어 삶이 소용돌이 치고 의도대로 되는 일도 없으니까. 하지만 십 대 시절 질풍노도를 겪은 후 착한아이 증후군(+가스라이팅)에라도 걸린 건지 세라의 나이브한 사고, 대책 없는 행동에 짜증이 스멀스멀. 아니야. 소설이니까 속 편하게 책장 팔락이며 구시렁거리지 나였어도 사고 정지가 왔을 거야, 생각하면서도 상황도 인물도 다 너무 답답. 단지 남녀 대결 구도를 만들기 위한 캐릭터 소모는 아닌가 싶고, 러시아 '마술사'는 굳이 왜 등장한 건지? 폼은 다 잡더니 자기는 할 일 다 했다?? 아무래도 작가는 통쾌한 반전을 위해 밑밥을 까는 것 같지만 사태가 이 지경인데 주인공은 사태 파악이 안 되는 것 같아 또 답답.


결국 사이다를 주긴 한다. 김이 다 빠지고 그마저도 타이밍이 너무 늦어서 문제지. 난 이미 목이 메어 쓰러졌다. 



<올빼미는 밤에만 사냥한다> 

초반, 미스터리한 커플과 오컽트스러운 전개, 노르딕 스릴러, 무엇보다 형사가 등장하는 수사물이라는 점에서 흥미가 일었으나 레이먼즈?? 라몬즈 아닌가? 외래어 표기법이 어찌 되는지 몰라도 전설의 펑크록 밴드 '레이먼즈'라니. 너무 평범해져 버렸다.


노르웨이의 지독한 추위에 뭉크 형사는 선조들에게 원망 섞인 한탄을 한다. 이 얼마나 "역사적인 실수"인가.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 햇빛 한 줌 안 드는 척박한 곳에 터를 잡았냔 말이다. 그래 춥겠지. 엄청. 하지만 노르웨이는 석유가, 석유가 있잖아. 바이킹의 선견지명이여. 이 책, 유전 발견 전에 나온 소설인가.


이 소설은 '미아 & 뭉크 시리즈'의 두 번째 작품이다. 첫 번째 작 <나는 혼자 여행 중입니다>를 읽지 않은 상태지만 <올빼미는>을 읽는 데 지장은 없는 듯하고, 다음 작이 <사슴을 사랑한 소년>인 걸 보면 마약, 오컬트, 자연(동물)이 시리즈 테마인가 보다. 미아 형사는 어떤 과거를 지나왔길래 저렇게 '각성제 인간'으로 묘사하는 걸까. 형사로서 타고난 감, 일종의 신기를 메타포로 표현하는 건지 의식과 무의식을 약을 통해 넘나드는데 괜찮은 건가 쓸데없이 신경 쓰인다. 



<펫숍보이즈>

영국 신스팝 듀오 Pet Shop Boys를 떠올리게 하는 제목 때문에 뭘까 싶어 고른 책. 제목 그대로 펫숍을 무대로 귀여운 일러스트가 함께 펼쳐지는 일상 힐링물이랄까. 이런 펫숍만 있다면 세상이 좀 더 아름다울 텐데! 
4만 년 전, 회색 늑대와 인간은 서로 길들이고 길들여졌다. 인간과 동물은 어떤 식으로든 관계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마지막 에피는 묵직하게 남는다.


----- 인간은 먹이사슬을 뛰어넘어서까지 다른 동물을 품에 안으려고 하는 습성을 지닌, 동물계에서 가장 외로운 생물입니다.   
(...) 펫숍은 친구 같은 반려동물과 함께 지내며 행복을 느끼는, 그런 인간이라는 동물을 돕기 위한 장소입니다. 그리고 인간으로서, 동물들이 정말로 행복하다고 느끼기를, 끊임없이 기원하는 곳입니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초보자를 위한 살인 가이드
로절린드 스톱스 지음, 류기일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제목이 왠지 가벼운 일상추리물 같아 오가기 tts로 골랐는데 진지하지만 유쾌한 문체에 안타까움과 빵터짐이 주거니 받거니. 할매들의 지난 세월에 내 삶을 비춰보기도, 현재의 작당모의에 내 미래를 투영해 보기도 한 소설.
할매들의 우정과 용기, 약자들의 연대에 박수를. 끝이 좋으면 다 좋다고 했던가. 나도 나잇값 하면서 늙고 싶다.

그나저나 두꺼비 남자의 행태에 두꺼비가 불쌍해질 지경. 두꺼비는 콩쥐도 도와준 착한 생물인데! 허나 이 두꺼비도 울고 갈 빌런이 있으니....

세상이 바뀌었어요. 모두를 돌봐주는 사회는 이제 존재하지 않아요. 그건 이상이죠, 정말. 안 그런가요? 하나도 현실적이지 않아요. 이상을 꿈꾸는 건 끝났어요. 스스로를 돌볼 줄아는 사람들과 그러지 못하는 사람들이 남았어요.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도와줘야해요. 그건 가끔은 불쾌한 일을 해야 한다는 의미고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림자 소녀
미셸 뷔시 지음, 임명주 옮김 / 달콤한책 / 2014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베르니를 가봐야겠다, 다짐이 선 <검은 수련> 때도 그랬지만 풍광을 글로 옮기는 작가의 필력이 탁월하다. 미스터리 소설을 읽으면서 대게는 곁가지(?) 설명은 휙휙 읽게 마련인데 미셸 뷔시의 글은 정황 묘사에서 이미지와 색감이 절로 그려진다. 무생물인 자동차마저 귀엽다. 그래서 캐릭터 묘사가 다소 성에 차지 않는 걸까. 특히 여성이 스테레오타입 — 어떤 의미로든 — 에 가까운데 <그림자 소녀>에서 ‘소녀‘는 미치광이 말비나 아닌가 싶게 릴리가 매력이 없다. 말비나 역시 서브 캐릭터의 전형이긴 하지만. 말비나-마르크 콤비(?)로 기울어지면 내가 이상한 건가.
아니! 작가가 지리학과 교수라네. 지형이나 풍속 묘사가 생생하더라니.

고통은 여러 고통이 더해져 커지는 게 아니라 큰 고통이 작은 고통을 밀어내는 법이다. 어쩌면 그건 다행인지도 모른다.

마틸드가 18년 동안 탐정을 고용할 만큼 미쳤다면 그녀의 남편은 청부 살인자를 고용할 만큼 참을성이 없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