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추리소설의 해 vol. 1에 이어서



③ 와카타케 나나미

'하무라 아키라'를 만난 것 역시 작년 즐거움 중 하나. 가만, 절판 외 나나미 작품은 다 읽은 것 같은데? 뜻하지 않은 '와카타케 나나미 모아 읽기' 달성인가.


- 하자키 일상 시리즈

몇 년 전 읽은 <녹슨 도르래>를 계기로 '코지'한 미스터리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해서 같은 작가의 <하자키 목련 빌라의 살인>을 골랐다. 유쾌+상쾌+통쾌의 무언가가 필요했던 때 살인+코지의 조합이라니, 딱 아닌가. 기대는 어긋나지 않았다. <진달래 고서점의 사체>로 기대치는 절정으로 올라가 하자키 일상 시리즈 독파. 하지만... <고양이섬 민박집의 대소동>은 나의 하자키 시리즈가 이렇게 끝나다니, 라는 탄식만이 남았다. <어두운 범람>과 <이별의 수법> 이후 읽어서 인지, 제목에 한껏 부풀었다 그 반작용인지, 둘 다 인지. 하여튼 고양이는 죄가 없다.





























단편은 '일어난 것'이고 장편은 '여파'라고 했던가. <어두운 범람>과 <이별의 수법>만큼 이 분야의 좋은 보기는 없으리라. '하무라 아키라'의 다음 시즌은 언제일까. 초기 활약도 궁금하지만, 그의 소망대로 일흔일곱 살 탐정 하무라 아키라를 바라본다. 















나의 미스터리한 일상 / 나의 차가운 일상

작가의 풋풋한 시절 초기 작품으로 현재 나의 (구닥다리) 감정선과 괴리를 실감한 와카타케 일상 시리즈. 


<나의 미스터리한 일상> 1991년 데뷔작. 단편으로 구성된 연작이다. 각 단편이 주인공 와카타케 나나미가 일하는 회사 사보에 1년에 걸쳐 연재되다가 <<조금 긴 듯한 편집 후기>>와 <<마지막 편지>>에서 12개의 사건은 하나의 미스터리로 연결된다. <<마지막 편지>>로 "조금 긴 듯한" 꼬리를 더 늘린다 싶지만, 일상 미스터리 특유의 경쾌하면서도 일본식 괴담의 기묘한 분위기가 독특하다.


<나의 차가운 일상> 회사원 와카타케 나나미가 친구(인 듯 친구 아닌 이)의 죽음을 둘러싼 모종의 사건을 파헤친다. 구성이나 설정에서 재기 발랄함이 도처에 묻어있긴 한데 수습이... 무엇보다 '일상적'이지 않다! 하무라 아키라의 전신을 만난 데 의의를 두련다. 


<나쁜 토끼> 30대 초반의 프리랜서 탐정 하무라 이야기. <저주토끼>랑 은근히 헷갈린다. 정리할 때마다 바꿔 적는다. 제목이 비슷한 것도 있지만 '어둠'을 우화적으로 이야기하는 점에서도 그렇다. 토끼 상야등. 부조리의 신에게 낙점받은 지 오래라는 자조에 어둠 공포증까지 더해진 하무라에게는 성물 같은 물건이다. 40대에 접어든 그가 여전히 온갖 액운을 등에 업고도 발로 뛰는 탐정으로 살게 해주는. 부디 하무라의 토끼가 '저주 토끼'는 아니기를. 그러고 보니 올해가 토끼해던가. 2023년 부디, 복 토끼여 오라.
















📖 

토끼 상야등을 콘센트에 꽂고 다른 전등을 껐다. 토끼는 침대 옆에서 통통하게 살이 찐 채 둔탁하게 빛났다. 

아주 조금의 빛만 있으면 나는 살아갈 수 있다. 눈을 감았다. 

 - 나쁜 토끼, 다시 전초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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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물건에는 사연이 있게 마련이다. 

- 저주토끼 중





④ 가와이 간지 

- 데드맨 / 단델라이언 / 드래곤플라이 / 구제의 게임

가와이 간지가 내세우는 수사 기법 애브덕션 abduction. 이 추론법은 '귀추법' 혹은 '최선의 설명 추론 inference to the best explanation'이라는 명칭답게 상상력을 자극하면서 추리물에 — 진부하냐 참신하냐에 상관없이 —  제법 잘 녹아든다. 














문제는 읽은 모든 작품에서 이게 골자라는 거다. <데드맨>이 흡족한 킬링타임용, 오락 소설이었다면 이후 작품에서는 이 애브덕션이 발목을 잡는다. 이게 가능한가 싶은 설정과 전개는 후반부에서 범인/탐정/형사가 들려주는 마법의 장광설로 싹 정리된다. 저자가 오가닉 마니아인지 생태 관련 지식을 잘 써먹는데 마법의 애브덕션까지 더해지니 <단델라이언>과 <드래곤플라이>는 설정을 위한 서사가 돼버렸다. 제목부터가 민들레, 잠자리라고 하면 모양이 안 산다. 


애브덕션 월드가 하도 공고해서 가부라기 특수반의 활약상도 매번 별다를 게 없다. 그래도 각자의 개성은 확실해서 읽는 재미는 쏠쏠하다. 작가가 패션에도 박식한지 4인방의 개성에 따른 복장 묘사가 인상적이다. 새삼스럽지만 말끔한 슈트에 가죽 구두를 신은 형사라니 살짝 위화감이 든다. 그러고 보니 일본 형사는 커리어가 아니라도 어느 정도 갖춰 입는 듯한데 내 머릿속 표본이라 신빙성은 없다.


<구제의 게임> 골프라는 흔치 않은 소재, 원주민 학살에 얽힌 전설이 어우러져 신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예사롭지 않은 설정이다. 그래서 어김없이 마법의 애브덕션으로, 거기에 진화심리학까지 더해져 살인 사건의 진상이 밝혀진다. 하버드 출신(진화심리학 전공) 천재 골퍼에 의해서. 골프 설명이 지루하지 않은 건 의외였다. 




⑤ 나카야마 시치리 

- 웃어라, 샤일록 / 표정 없는 검사 / 작가 형사 부스지마 / 시즈카 할머니에게 맡겨 줘

<작가 형사 부스지마> 내부 고발 소설인가? 우후, 우후후, 우후후후. (부스지마 웃음소리)

출판계 풍자 때문인지 책 만드는 사람들만 줄줄이, 업계 하나 사라질 듯 죽어 나간다. 반복되는 패턴으로 식상할 찰나 들려오는 웃음소리. "우후, 우후후, 우후후후." 시치리 작품은 이야기는 차치하고 직업이나 성격에서 캐릭터 특징이 돋보인다. 부스지마 역시 중독성 있는 웃음소리로 여운을 남긴다.














<시즈카 할머니에게 맡겨 줘> 코지 미스터리에 맛들린 김에 — 하무라 아키라의 미래를 상상하면서 — 골랐다. 그런데 시즈카 할머니는 전직 판사로 안락의자 탐정이라네? 원래 내 취향의 뿌리는 안락의자 탐정이니까, 그리고 할머니가 발로 뛰면서 열일하는 것도 현실성이 없지 않은가. 이런저런 합리화로 시작한 책은 아무 감흥 없는 상태로 중도 하차하게 되었으니. 시치리도 여러 서랍을 가진 작가로 국내 출간작이 꽤 된다. 워낙 순서 없이 읽어서 시치리 월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지만, 시즈카 할머니는 시치리 월드에 맡겨 두기로. 



⑥ 넬레 노이하우스 

안 읽었다고 철석같이 믿고 읽은 두 권이 재독이었다. 그럼에도 생각이 날듯 말듯, 플롯을 '추리'해가며 읽었다. 추리소설 읽기에 최적화된 나의 두뇌. 후후. 가만 보니 타우누스 시리즈 중 <영원한 우정으로> 빼곤 다 읽었네. 2/3 이상이 기억 휘발이지만.



⑦ 기타 몇 권






















<기만의 살의> 서간체가 돋보이는 정통 미스터리. 글줄을 잘 따라가면 '범인들'이 누구인지 알아채는 건 어렵지 않지만 후더닛이 아닌 최후의 '와이더닛'에 방점이 있다. 


<리슐리외 호텔 살인> 초반부 하차 위기를 겪으며 찔끔찔끔 읽어가다 어느새 개성 넘치는 인물들에 푹 빠져 아, 읽기 잘했구나 나 자신을 칭찬했다. 고진감래.


<정체> 사회적으로 심리적으로 고립된 존재, 자기 목소리를 삼키는 데 익숙한 이들이 소리 내어 외치다.


📖 

터질 듯한 절규가, 울부짖음이 법정 안에 울려 퍼진다.

마이도 외쳤다. 있는 힘을 다해 계속 외쳤다.

들리고 있을까.

이 목소리가, 당신에게 닿고 있을까…




<그 거울은 거짓말을 한다> 나츠메 형사 vs 키요마사 검사 구도가 인상적이다. 의대 입시에 얽힌 사건이다 보니 학원물 느낌도 난다. BGM이 머릿속에서 자동 재생. we all lie🎵


<유리고코로> 살인 고백이 담긴 수기에서 '나'는 유리고코로에 집착한다. 아이 때 유리도코로(안식처)를 잘못 알아들은 것이지만 성인이 된 나에게 안식처는 여전히 유리고코로다. 유리고코로가 없는 나는 나만의 안식처를 만들기 위해 살인을 한다. 

소설은 심연의 불가사의한 파장을 헤집는다. 액자 구성으로 들어간 살인자의 수기는 몰입감을 더한다. 서늘하고 미묘하던 파장은 후반부에서 크게 일렁인 후 잠잠해진다. 의미가 없는 '유리고코로'처럼. 전반부의 흡인력과 기세가 무색하다. 너무 따뜻해져 버렸다. 

저자 누마타 마호카루는 승려를 비롯한 여러 직업을 거쳐 56세에 데뷔했다. <유리고코로>는 2011년 출간이니 63세에 쓴 소설이다. 서늘하고 얼얼한 그것. 작가의 이력만큼, 시간만큼 거쳐와야 느낄 수 있는 감각이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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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소설 분포는 일본 80 / 기타 외국 15 / 한국 5 정도 되는 것 같고,

러시아도 아닌 일본 이름이 이리 헷갈릴 줄이야. 확실히 전두엽이 녹슬었나 보다.

'추리소설 읽기' 덕분에 독서의 총량은 늘었지만 달이 아닌 손에 집중하지는 않았나 생각해 본다. 

갑자기 많이 먹으면 체하는 법.

2023 독서는 하던 대로, 소소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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