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르트루트 폰 르포르 책이 국내에 한 권도 번역된 게 없나 보네. 검색하니까 헤르만 헤세의 <게르트루트>만 나오는 거 보면. 로베스피에르의 공포 정치에 맞서 카르멜회 수녀들이 순교한 사건을 바탕으로 독일 작가 르포르는 1931년 <단두대에 선 최후의 여자>라는 소설을 쓴다. 이후 프랑스 작가 조르주 베르나노스가 이를 영화 대본으로 각색 하던 중 사망하고 어찌저찌하여 마침내 프랑시스 풀랑크가 오페라로 만들어 이탈리아 스칼라 극장에서 초연.

아무튼, 게르트루트 폰 르포르의 <천국의 문>을 기대 안 하고 검색했는데 아예 작가의 책이 한 권도 안 나온다. 흠. 그래, 덥고 습하고 실내외 온도차로 몸은 더 축축 처지니 즐거운 소설을 읽자.



<디 아더 미세스>
읽으면서 설마? 했는데 그 설마 맞았고, 후반부 얼레벌레 힘 빠지는 진행도 좀... 그래도 필력 있는 작가인지 술술 읽힌다.


<사악한 목소리>
부록 에세이가 난 더 좋았다.


<매스커레이드 게임>
히가시노 게이고의 죄와 처벌, 용서와 속죄의 메시지.


<형사 부스지마 최후의 사건>
세상 악당 때려 잡는 악마 형사 부스지마. 우후, 우후후, 우후후후.


<아기 판다 푸바오>
너무 더워서 읽었다... 늘어질 땐 귀여운 거 보는 게 최고.
판다 눈이 저렇게 초롱초롱한 줄 몰랐다. 흑과 백의 조화가 신의 한 수인 생명체인 듯.


<회색 여인>, <석류의 씨> 등 휴머니스트에서 나온 미스터리(?) 몇 권 더 읽을 예정이고 소설 외 읽은 것 정리해야 하는데 죽어라 안 하고 있다. 날씨만큼 흐물흐물 늘어진 내 정신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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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롱뇽과의 전쟁>
서문만 읽는데도 별 다섯 개 찍고 싶다. <평범한 인생>, <RUR>로 빠져든 카렐 차페크의 세계. <곤충 극장>, 오른쪽 왼쪽 주머니 이야기도 빨리 읽고 싶은데 계속 안 읽고 있다. 제일 좋아하는 걸 가장 마지막으로 미루는 버릇을 고쳐야 하는데 말이다.

쏜살문고의 <개를 키웠다 그리고 고양이도>는 기존 <개와 고양이를 키웁니다>와 같은 책인 듯한데 다셴카 사진이 실려 있다. 폭스테리어가 원래 귀엽긴 한데 다셴카, 정말 귀엽다. <개와 고양이를 키웁니다>에는 카렐 차페크의 형 요제프의 개성 있는 일러스트가 실렸다. 정원 가꾸기 책도 쏜살문고에서 나왔던데 펜연필독약에서 나온 판본(요제프 차페크 그림)과 뭐가 다른가 봤더니만, 이슈가 있었네.




<미궁>
추리/미스터리로 알고 봤는데 현학적 문체에 기묘한 스토리 전개로 내 머릿속이 미궁이 되어 버렸다. <미궁>은 (장르적 의미의) 미스터리가 아니다. 작가 나카무라 후미노리는 이쿠타가와상 수상자라고 하는데 <편의점 인간>을 읽었을 때의 실수를 또 하고 말았군. 메시지는 둘째치고, 문체 때문에 난 이 책 적응 불가... 그만큼 작가의 지문은 확실한 셈이다.




<블랙 쇼맨과 환상의 여자>
이 작품에 알라딘 별 두 개는 — 별 반 개가 안 되니 어쩔 수 없다 — 좀 미안한 감이 있는데 세 개는 줄 수 없었다.

<블랙 쇼맨과 이름 없는 마을의 살인>으로 새로운 레귤러 캐릭터로 자리한 블랙 쇼맨. 갈릴레오 유가와는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고, 가가도 가버리고 (슈헤이 시리즈를 만들어서 슈헤이+가가 조합은 무리인가), 본격까지는 아니어도 블랙 쇼맨을 메인으로 한 탐정물일까 내심 기대했는데,

히가시노 게이고 특유의 ‘칵테일 미담 릴레이‘였다. 개인적 아쉬움과 약간의 심통이 섞인 별 두 개 — 정확히는 별 두 개 반, 딱 ‘중간‘ — 이다. 몸풀기는 끝났다. 게이고옹, 다음번엔 블랙 쇼맨의 개성을 살린, 한바탕 쇼타임을 기대해 봐도 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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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 추리물을 좋아하는 입장에서 <방주>의 플롯은 매력적이다. 제목에서 아이러니를 자아내는 반전도 — 뇌 정지까진 아니지만 — 좋았다. 다만,

극한의 클로즈드 서클에서 군상 묘사가 단순하다. 생판 남도(물론 끼어있지만) 아니고 친구 사이에 벌어진 살인 사건이다. 시체와 함께 물리적으로 고립된 상황, 도덕성과 자존감의 밑바닥을 파고드는 일련의 전개는 밋밋하다 못해 조금 세게 말하면 유치하다.

전자책으로 읽었는데 전체 페이지를 보고 (종이책이 350페이지가 넘는다) 내밀한 전개를 기대했으나 기계적으로 페이지가 흘러가니 문제집 정답 확인하듯 마지막으로 건너뛸까 싶게 설정이 무색하다. (페이지 다 어디에 쓴 겁니까...) 트릭 사수를 위해 다른 요소는 최대한 배제하는 의도라기엔 작법도 평이하다.

현대 본격물에서 기상천외한 트릭이 나오기는 힘들다. <미스터리 클락>처럼 갈 데까지 가보자, 작정한 게 아니라면. <미스터리 클락>은 도.대.체.가.알.아.먹.을.수.가. 없.다. 그래도 정신 나간 트릭에 정신 나간 캐릭터 보는 맛은 있다. <녹스 머신>도 외계어가 쏟아지는 부분은 정신이 아득하지만, 트릭을 엮는 메시지 — 지식 탐구의 열망, 신본격의 미래, 고전에 대한 경외 — 가 있다. 트릭 자체가 아니라 트릭이 들어간 ‘이야기‘를 한다. <방주>에는 개연성 이전에 이야기가 부족하다.

본격 추리물 역시 문학성을 담보해야 미래가 있다는 취지에 작가들은 입을 모은다. <눈먼 자들의 도시> 정도는 아니라도 <방주>만의 (포스트)아포칼립스를 풀어갔다면 무의미한 페이지도 줄고 제목의 여운도 한층 깊었을 텐데. 뭐 역자의 말대로 후던잇+와이던잇을 결합한 오락 소설로 일독했으니 됐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난 수수께끼를 좋아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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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델, 에셔, 바흐 - 영원한 황금 노끈, 개역판
더글러스 호프스태터 지음, 박여성.안병서 옮김 / 까치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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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는 반복, 자기 복제, 되먹임 고리로 완성한 영원한 황금 노끈.
푸가는 못 써도 귀는 있다. 6성 리체르카레, 브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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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스테르담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24
이언 매큐언 지음, 박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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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 갈라놓은 욕망, 죽음도 갈라놓지 못한 위선. 네 남자의 머리끄덩이 싸움에서 최후의 승자는... 두둥.

이들 [예술가들]은 — 그중에서도 소설가가 최악이다 — 친구와 가족에게조차 작업시간뿐 아니라 조는 시간, 신책시간을 비롯하여 침묵하는 매 순간과 우울증과 만취상태가 모조리 변명의 여지가 있는, 고도의 목적을 담은 행위라는 믿음을 주려고 집요하게 애쓴다. 클라이브가 보기에 그건 평범함을 감추려는 제스처에 불과했다. 그 역시 예술의 숭고함을 의심치 않았지만 부당한 행동은 예술의 일부가 아니었다.

비웃어 마땅한 사진들이었고, 실제로 비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클라이브는 어딘지 경외심을 느꼈다. 우리는 서로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다. 우리는 빙산처럼 대부분 물에 잠겨 있고, 눈으로 볼 수 있는 사회적 자아만이 하얗고 냉랭하게 밖으로 솟아 있다.

단어에서처럼 문장에서도 그런 일이 일어난다. 클라이브가 목요일에 쓰고 금요일에 부친 엽서로 의도한 바는 - 자넨 ‘해고돼도‘ 싸-였다. 그러나 화요일 해고의 여파 속에서는 - 자넨 해고돼도 ‘싸‘- 라고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월요일에 엽서가 도착했다면, 아마 다르게 읽혔을 것이다. 이것이 그들 운명의 희극적 성격이었다. 빠른우편으로 보냈다면 피차 좋았을 텐데. 어찌 보면 다른 가능성은 없었다는 것이 그들 운명의 비극적 성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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