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더니티의 수도, 파리 - 자본이 만든 메트로폴리스 1830-1871 ㅣ 현대의 고전 13
데이비드 하비 지음, 김병화 옮김 / 글항아리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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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

온갖 유령 — 국가, 사적 소유권, 보나파르트주의, 마음의 지배 등 — 이 횡횡하던 때. 들라크루아와 마네, 쿠르베의 그림, 발자크와  플로베르, 보들레르의 소설, 청년 마르크스와 <자본>의 성숙한 마르크스 사이. 여기에 ‘1848년, 파리’가 존재한다. 1848년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데이비드 하비는 묻는다. 


20세기 문화와 예술, 자본이 한데 어울려 끓어오르던 곳이 뉴욕이라면 19세기의 ‘용광로’(melting pot)는 단연코 파리였다. 19세기 파리는 모더니티 이전의 모든 것을 혁파하고 ‘근대 도시’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데이비드 하비는 <모더니티의 수도, 파리>에서 근대와 전근대의 ‘단절'은 근대성이라는 신화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이 허구적 신화를 해체하기 위해  하비는 자신의 사상적 기반과 역사지리학 관점 위에 도미에의 풍자화, 발자크와 플로베르, 보들레르의 문학 작품을 적절하게 엮는다. 


에투알 개선문을 중심으로 방사형으로 정렬된 파리는 제2제정의 권위를 위한 정치적인 설계였다. 그리고 이 설계의 중심엔 오스만이 있었다. 직선의 기하학과 기계공학적 묘기는 위고식으로 표현하면 볼테르와 디드로의 꿈을 계산한 것이었다(455). 자본의 순환을 위해 직선으로 구획된 도시에서 업무의 분할과 이에 따른 위계는 특정 경험 영역을 구성하지 못하게 한다. 수공업 장인은 산업자본가의 공장 시스템에 밀려나게 되고 구체적 노동은 추상적 노동이 된다. 1848년 <공산당 선언>의 내용처럼 자본은 독립적이고 개성을 갖는 반면 살아 있는 사람은 그 순환에 종속되고 개성은 말살된다. 제2제정기의 산업 혁신자 풀로의 주요 목적은 정확성과 생산 속도의 증가, 그리고 “노동자들의 자유의지의 감축”이었다. 하지만 일꾼들이 게으르고 다루기 힘들다고 험담해대던 그조차 

파리는 사람들이 세계의 다른 어느 곳보다도 열심히 일하는 도시다. (…) 지방에서 파리로 온 노동자들이 모두 버텨내지는 못한다. 여기서 생계를 꾸리려면 힘든 일을 너무 많이 해야 하기 때문이다. (…) 파리에서는 도급제로 유지되는 직업이 있는데, 그 일을 20년간 하다보면 노동자는 불구가 되고 탈진해버린다. 다행히 그때까지 목숨을 부지하고 있다면 말이다.

라고 시인할 수밖에 없었다(288). 공산주의 유령은 아직도 배회중이다.




1848

1847년부터 끊임없이 제기된 선거 개혁 요구는 1848년 혁명에서 주요 쟁점 중 하나가 되었다. 혁명의 주도자는 노동자, 학생과 더불어 부르주아였지만 자본으로 도시를 장악한 부르주아지는 보통선거를 통해 정치판에서도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대중을 위한 사회 정책들이 하나 둘 붕괴하고 노동자는 자본주의 화폐 권력에 굴복해갔다. 예술가들 역시 아카데미의 권위와 시장 논리에 휘둘렸다. 이러한 경험적 일치는 쿠르베나 보들레르 같은 보헤미안을 혁명에서 노동자의 편에 서게 했다. 하지만 6월의 봉기는 정부에 의해 무자비하게 진압되고 노동자는 차라리 루이 나폴레옹에게 표를 몰아주면서 민주주의를 포기한다. 그나마 견딜 만한 보나파르트주의를 선택한 것이다. 1848년 12월 제2공화국이 탄생하고 대중과 부르주아지는 완전히 갈라선다. 


살아 숨 쉬는 거대한 작업장. 거리와 실내가 저마다의 성격을 표출하는 곳. 감정을 가진 “가장 유쾌한 괴물". 발자크의 파리다. 발자크는 대범하게 펜을 놀려 끊임없이 동요하는 공간의 ‘심리지리학’을 만들어냈다. 도시의 생태와 그 주민들의 인격은 서로 거울에 비친 영상 같은 관계다(84). 발자크의 만보객은 도시의 비밀을 캐고 소유하겠다는 열망 속에 대로라는 시詩를 누빈다. 하지만 파리를 자기만의 특별한 목적에 맞게 개조하여 소유한 것은 오스만과 개발업자, 자본가와 시장 논리였다. 플로베르의 <감정 교육>에서 프레데리크는 유령처럼 이리저리 도시를 떠다니고 소외와 익명 속에 실제와 몽상 간의 경계는 영원히 흐려진다. 플로베르는 외과의사가 메스를 놀리듯 정교하게 펜을 놀린다. 오스만이 야심 차게 과업을 완수한 1869년. 플로베르의 펜 끝에서 파리는 하나의 “정태적이고 독립적인 예술 작품”으로, “실증주의 미학”으로 제시된다. 감정과 신체는 사라졌다. 정치체로서의 도시, 양육적인 사회공화국의 전망도 숨이 멎었다.


보들레르의 만보객은 구경하면서 구경거리가 되는 — 참여하면서 관망하는 — 자로 바로 그 자신이다. 예술가와 부르주아 사이, “최고의 조화가 우리의 것”이 되리라는 장밋빛 전망이 깨진 후, “충분히 빠르게 나아가지 못한다는 것, 종합을 도출하고 손에 넣기도 전에 우리를 끌고 가던 유령을 놓칠지도 모른다는 것이 두렵다”는 보들레르의 얘기는 현재를 대하는 플로베르의 딜레마와 공명한다(32). 하지만 하비는 온통 이렇게 서두르는 바람에 엄청난 양의 인간 잔해, 무시할 수 없는 “뿌리 뽑힌 무수한 인생”이 남겨진다고 쓴다. 랑시에르가 말한 마르크스주의 예술가의 '현재의 지체'(lateness)가 떠오르는 대목이다 — "현재의 지체에서 추출한 예견의 힘"으로 새로운 미래를 구축하라. 




에마는 왜 죽어야했나

하비는 오스만의 신화에 의구심을 보이면서도 자본주의에 의한 '규모'의 변화는 전적으로 “차원이 다른 것"이었다고 짚는다. 벤야민이 ‘아케이드 프로젝트’에서 이 점을 다루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면서 말이다. 또한 아주 다르게 보이는 영역인 플로베르의 글쓰기를 들어 설명하는 점도 흥미롭다. 플로베르의 소설 <보바리 부인>에 등장하는 개인은 자기 완결적이다. 에마 보바리는 평범한 시골 의사의 아내로 소녀 시절 탐독했던 문학에 빠져 낭만적이고 이국적인 삶을 꿈꾼다. 그녀는 당시 급부상한 부르주아지와 새로운 사회, 새로운 삶을 욕망하는 민주주의적인 임의의 개인을 상징한다. 그런 에마는 왜 죽어야 했는가? 


랑시에르는 플로베르의 소설을 ‘인상주의 시학’으로 규정한 바 있다. 플로베르는 문학이 예술로 부합하는 데 있어서 문체의 힘을 제1 가치로 여겼다. “문체는 사물들을 보는 절대적인 방식”이라고 했는데, 여기에서 절대적이라는 것은 어떤 원리나 규범에서 자유롭다는 것을 의미한다. 재현 규범의 해체는 반재현이 아니라 모든 재현 방식에 대한 권리를 인정하는 것이다. 랑시에르가 '문학성'이라고 부르는 이 지점은 버지니아 울프가 인상은 모든 방향에서 "원자의 끊임없는 소나기로 내린다"고 표현한 것과 닿아있다. 


에마의 죄는 꿈 꾸어서는 안 되는 삶을 욕망한 것도, 문학(예술)과 실제의 삶을 혼동해서도 아니다. 에마는 일상의 사소한 감각 체험을 그 자체로 순수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무언가에 귀속시키고 대상화하여 욕망했다. 그녀는 창가에 통통 튀어 오르는 꿀벌의 움직임, 미사 중 촛불의 신비로움을 그 자체로 향유하지 못하고 이 미적 정서와 감각에 구체적인 형상을 부여한다. 랑시에르는 따르면 에마는 플로베르가 벗어나려고 했던 고전적 관점을 그 원인이 되는 실체에 끊임없이 귀속시키면서 예술의 근대적 이해를 정초하는 미적 체험의 고유성을 무화시켜버렸다. 에마는 낭만파 주인공처럼 애인에게 버림받고 절망하여 목숨을 끊는 것이 아니다. 몽상 속에 떠돌다 눈덩이처럼 불어난 빚 때문에 비소를 삼킨다. 


<보바리 부인>은 프랑스 최초의 위대한 모더니즘 소설로 평가받는다. 오스만이 전근대를 폐기하면서 파리를 설계했듯 플로베르는 에마를 죽임으로써 문학성을 정초했다. 하비는 낭만주의의 목이 잘린 1848년 이후에야 플로베르가 제 목소리를 찾았다고 적는다. “위대한 세기가 태어나려면 한 위대한 인물이 사라져야” 한다는 위고의 표현에서, 에마는 ‘위대한 인물’은 아니지만 그녀의 죽음은 플로베르에게 새로운 시대 —  문학의 근대성 — 를 정초하는 “창조적 파괴”의 구심점이었다. 오스만, 플로베르, 보들레르 그리고 마르크스에 이르기까지 1848년 이후에야 모두 본연의 모습을 찾아냈다는 사실은 단절로서의 근대성이라는 신화에 힘을 보태주었다(35). 1848년 전후의 사고와 실천의 흐름에서 분명 이 시기의 경험이 크게 작용했고 하비는 바로 이 점에 주목한다. 




무덤에서 요람으로

파리는 발자크의 유쾌한 괴물에서 보들레르의 창녀로, 그리고 졸라의 타락한 야수가 된다(466). 외과의사의 메스도 소용없는, 내장이 드러난 채 피흘리는 여성. 투기의 대상이고 탐욕의 제물이 된 여자가 할 수 있는 일이 혁명 봉기 밖에 더 있겠는가? 하비는 다시 묻는다. 하지만 1871년 사건은 파리와 여성 모두에게 비극의 클라이맥스이자 하나의 종말이 되었다.


몽마르트르 언덕 꼭대기. 사크레쾨르 바실리카가 파리를 굽어보고 있다. 사회 각계각층의 모금으로 건축한 성당인데 이국적인 비잔틴 양식의 돔으로 유명하다. 사크레쾨르는 기독교 전통에 반하는 모든 불경한 것 — 나폴레옹 3세와 제2제정, 코뮌의 악령과 피의 일주일 등 — 을 모조리 지워버려야 했고 아바디가 설계한 “동방적인” 디자인은 그 임무에 충실했다.


로지에르 거리의 순교, 외젠 발랭의 골고다 수난, 제2제정의 악덕과 불경은 사크레쾨르의 장엄한 돔과 새하얀 대리석 아래 잠들어 있다. 이 성심의 기념물은 운명의 변덕과 역사의 이율배반 속에 무덤에서 요람으로 거듭나기를 소망해왔다. 이곳에 묻힌 역사를 알고, 그 지점의 빛과 투쟁의 원칙을 이해하는 자만이 소망을 이룰 것이라고 하비는 마무리한다. 


<모더니티의 수도, 파리>는 1848년 혁명 전후로 파리가 어떻게 변이했는지, 자본과 근대성이 어떻게 특정한 장소와 시간에 만났는지, 이 만남에서 사회적 관계와 정치적 상상력이 어떻게 상호작용했는지 역사지리학적 관점으로 재구성한다. 그럼으로써 오늘날 ‘반지구화 anti-globalization 운동’에서 어떠한 메아리 — 푸르동, 푸리에, 르루, 카베 — 와 공명할 수 있다면, 1840년대 프랑스에서 약간의 역사적 교훈을 얻고 그 이해가 좀 더 깊어질 것이라고 쓴다. 또한 발자크의 재능을 빌어 "깊은 어둠 속에 혼자 있는"지도 모를 부르주아 전체 역사를 그려보기도 한다. 하비가 벗겨낸 근대성의 허물을 쫓으며 독자는 묻는다. 오늘날 우리에게 창조적 파괴의 구심점은 어디인가? 




* 참고서적

<모던 타임스: 예술과 정치에서 시간성에 관한 시론>, 자크 랑시에르, 현실문화연구, 2018년

<미술은 철학의 눈이다> 中 '13장 랑시에르의 미술론 - 표면의 탐험가 오귀스트 로댕', 박기순, 문학과지성사, 201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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팡타그뤼엘리즘


이 책을 읽는 친애하는 독자들이여,

모든 정념을 떨쳐버리시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며 성내지 마시기를.

악하거나 추한 것은 없다 해도,

웃음에 관한 것 외에 완벽함은 거의 찾기 힘들 테지만,

당신들 마음을 상하게하고 괴롭히는 큰 슬픔을 보면,

다른 이야깃거리가 내 마음을 끌 수 없음을

여러분은 이해할 것이오.

눈물보다는 웃음에 관하여 쓰는 편이 나은 법이라오.

웃음이 인간의 본성일지니.


.



문학과 지성사, 가장 널리 읽히는 판본.

미래를 책임질 청소년 세대, 나아가 부모 세대를 위한 '체계적이고 혁신적인 세계문학 축역본의 정본 컬렉션' 이라는 설명 때문에 읽어 보고 싶은, 살림의 '생각하는 힘'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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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시즘의 서곡, 단눈치오 - 시인, 호색한, 전쟁광 ㅣ 걸작 논픽션 15
루시 휴스핼릿 지음, 장문석 옮김 / 글항아리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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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눈치오에 관한 32개의 짧은 이야기 -
책을 읽다 보니 떠오른 게 프랑수와 지라를 감독의 <글렌 굴드에 관한 32개의 짧은 영화>다. 32개의 짧은 이야기를 묶어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의 예술 세계와 삶의 궤적을 쫓았다. 굴드만의 파격적인 연주와 기행을 표현하기에 더 없는 영화 문법이다. <파시즘의 서곡, 단눈치오>는 단눈치오라는 인물을 32개의 에피소드로 엮었다. 총 3부로 구성되어 에피소드마다 제목이 붙었다. 창, 영광, 초인, 피, 만화경, 속도, 번제의 도시, 제5의 계절 등. 마치 빅데이터로 추출한 키워드 같다. 단어만으로도 단눈치오의 삶과 시대의 조류가 그려지니 말이다. 저자 루시 휴스핼릿은 이 ‘키워드’를 중심으로 선언문적인 문체와 언어 유희로 단눈치오의 삶의 순간을 영화의 한 장면처럼 보여준다. 시각적인 언어로 글을 쓴 단눈치오의 전기라는 점에서 작가의 영리한 작법이 아닐 수 없다.

흥분한 군중과 꽃으로 가득한 분위기. 1919년에 9월 피우메를 점령한 단눈치오는 연단에 올라 다음을 반복한다. “여기 내가 있습니다. 이 사람을 보십시오 Ecce Homo.” 빌라도 본디오 총독이 광분한 군중에게 말한다. “에케 호모 Ecce Homo.” 빌라도 총독은 예수를 가리키며 이야기했지만 단눈치오는 자신을 지칭하여 이야기했다. 일찍이 니체 역시 이를 패러디하여 자서전 <이 사람을 보라>를 썼다.

단눈치오 인생에서 가장 극적이고, 세계사에서도 기이한 사건 중 하나인 피우메 점령으로 책은 시작한다. ’이 사람을 보라’는 이 책 1부의 제목이다. 니체가 그랬듯 요한복음 19장 5절에서 따 온 제목은 대번에 ‘가브리엘레 단눈치오’라는 인물에 시선을 돌리게 한다. ‘수태 고지'를 뜻하는 이름에 걸맞은 시작이다. 단눈치오의 정치, 예술관 형성 전반에 니체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있다는 것 또한 암시한다. 1부 ‘이 사람을 보라’는 서설 격으로 단눈치오라는 인물과 생애의 ‘요점정리’라고 할 수 있다.



- 시인이 통치하는 곳 -
이른 아침 광장. 이브닝드레스를 입은 여성들이 총을 들고 모여있다. 사랑과 전쟁을 외치는 군중도 있다. "강철 머리"라 불리는 스킨헤드 패션이 시작된 곳. 성인 보통선거권과 절대적인 양성평등을 헌법으로 지정한 곳. “시학의 정치”를 약속하는 곳. 소설이나 영화에서 나올 법한 이곳은 시인 단눈치오가 통치하는 피우메  — 현재의 리예카 — 다. 

시인은 자신의 피우메를 가리켜 “비루한 바다 한가운데서 빛나는 탐조등”이라고 불렀으나 이내 바람에 실려 떠다니다 점화되어 세계를 불태워버렸다(13). 형형색색으로 도배된 ‘얼룩소’의 도시. 공화국의 미덕과 소돔과 고모라가 공존하는 무대에서는 모든 것이 가능했기에 가치를 둘 것이 없었다. 마찬가지로 시인의 “다중 영혼”을 외면화한 비토리알레(단눈치오의 저택)에서는 모든 것이 마땅히 있어야 할 곳에 있지 않았다.   

영국 낭만주의 시인 바이런은 자유롭고 통일된 이탈리아의 비전을 가리켜 “정치의 시학 그 자체”라고 불렀고 이는 단눈치오에게 시와 정치가 합체되어 영광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줬다(149). 하지만 통일된 이탈리아에서 ‘낭만’이 끼어들 자리는 없었다. 시인은 고향 아브루초 지역선거에서 당선된 후 새로운 세계 질서를 창출하기 위해 ‘시학의 정치’를 설파했으나 재선에 실패한 후 정치의 시학을 집필하고 민주주의를 비난하는 송시를 쓴다. 피우메 입성 후 단눈치오는 다시 시학의 정치를 떠올린다. 시인에게는 언제나 새로운 시가 필요했다. 


- 예술성과 귀족성의 물줄기 -
당대 이탈리아 최고 배우 엘레오노라 두세를 비롯하여 수많은 귀족 여성들과 염문을 뿌리고 다니다 못해 그녀들을 파국으로 치닫게 한 ‘옴 파탈’ 단눈치오. 그는 짧막한 키에 누렇고 들쭉날쭉한 치아의 볼품 없는 남자였지만 자신의 대머리를 “초인의 두개골”로 둔갑시켜 미래주의의 광채처럼 번뜩이게 만들 수 있었다. 그는 미래주의 이전에 속도와 기계가 주는 유쾌함을 찬양했다. 미래주의 예술가들이 다양한 감각을 하나의 순간적인 체험으로 만들 가능성을 실험하기 전에 단눈치오는 이미 고대와 근대를 넘나들며 상호 침투적인 텍스트를 생산했다. 휴스핼릿은 이를 창 pike — 이 책의 원제이자 로맹 롤랑의 표현 — 에 비유한다. 단눈치오는 자신이 원하는 것이라면 뭐든지 꿰어 게걸스럽게 소화한 뒤 더 나은 표현으로 세상에 내보냈다(23).

헤밍웨이가 인정할 정도로 단눈치오는 “성스러울 정도로 용감한 사람”이었다. 이카로스를 흠모하는 시인은 정치라는 공연 예술과 캠페인이라는 군사 예술에 몸을 사리지 않았다. 아킬레우스의 전투 함성에서 차용한 '알랄라!'를 외치고 전쟁에서 한쪽 눈을 잃었으며 알프스산맥을 넘어 적국의 상공에서 전단지를 뿌려댔다. 그에겐 이 모든 것은 위에 있는 사람, ‘초인 above-person'의 행위였다. 단눈치오는 “무정하고 죄의식 없이 태양빛을 받으며 노래를 흥얼거리고 비행"했다(580).

그는 삶과 예술에서 에너지와 의지는 있었지만 도덕이나 이념이란 것은 모르는 사람이었다. 휴스핼릿은 단눈치오가 니체와 상당 부분 유사하다고 이야기한다(292-294). 확실히 단눈치오는 니체처럼 숭고한 개인과 디오니소스적인 도취를 찬양했다. 그는 자신의 귀족적이고 특별한 이름을 사랑했다. 라틴 사람이라는 것에 자부심을 느꼈고 앵글로색슨인과 게르만인을 야만인으로 불렀다. 하지만 니체는 민주주의는 물론 전체주의, 국가주의, 민족주의를 부정했다. 적어도 ‘공동체’와 ‘주의’(ism)를 혐오했다는 점은 분명하다. 따라서 니체가 말하는 개인, 귀족성, 엘리트주의의 ‘물줄기’는 그 원천이 아닌 흐름이다. 


- 인생의 드라마 -
단눈치오는 예술적인 비전을 그리는 데 천재였다. 캠페인으로 수많은 사람을 선동해서 움직이게 했다. 하지만 정작 그 자신은 만성적인 결정장애가 있어 양극단을 오락가락했으며 결정적인 순간에 늘 회피하기 일쑤였다. 피우메 점령은 단눈치오 인생의 빛나는 드라마였지만 미래주의자 마리네티의 말처럼 그는 이 드라마의 혁명적인 위대성을 이해하지 못했다(769). 아니 이해할 생각이 없었다. 단눈치오에게 피우메는 예술적 상상력의 산물이자 때론 따분한 즉흥 무대였다. 그를 붙들어 맨 것은 이 무대에서 연기하는 디오니소스적인 해방의 순간이었다(680). 

그가 연기한 캐릭터는 고색창연하면서도 최신 유행을 타는 어떤 것이기도 했다. 그는 물리적 파괴 수단보다는 선전 수단을 선호했고, 본질적으로는 현대적 세련미를 과시하고 있었다. 그는 신기한 것을 좋아하는 홍보 대사였으나, 동시에 기사도 시대에서 유래한 중세 영웅, 그러니까 군마를 비행기로 대체한 중세 영웅이기도 했다. (115)

단눈치오의 숭배자들 역시 “강철 머리”를 자처하며 대의가 아니라 인간 — 시인이 연기한 인물 — 을 따르고자 했다. 신념이나 계획이 필요할 때면 시인은 언제나처럼 주저했다. 단눈치오가 무솔리니를 좋아하지 않은 것은 무솔리니가 “천박한 모방자”이기 때문이었다. 파시스트 강령 쓰기를 거부한 것 역시 다른 사람의 밀집대형에 “정렬할” 생각이 추호도 없었기 때문이었다(800). 하지만 시인은 죽은 뒤 강제로 “정렬”되었다. 그를 열렬히 표절한 독재자에 의해 “파시즘의 세례 요한”으로.

<파시즘의 서곡, 단눈치오>는 원제 The Pike처럼 단눈치오 인생의 장면 장면을 꿰어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 저자는 아이러니와 블랙 유머로 신낭만주의 성향의 시인이 극단적인 우파 반란의 찬동가로 변모하는 과정을 쫓는다. 단눈치오 개인과 역사의 물줄기를 따라가다 보면 독자는 “예술적 재능과 섬세한 감수성, 정치적 극단주의 및 폭력 취향”이 어떻게 상호 침투하는지 보게 된다. 900쪽에 달하는 방대한 책이지만 꼭 순차적으로 읽지 않아도 좋을 만큼 32개의 에피소드가 유기적으로 짜여있다. 잘 꿰어진 글줄은 독자에겐 보배다.

이제 보니 굴드의 영화와 이 책이 32라는 숫자를 공유한다는 것은 재미있는 우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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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스킨트의 데뷔작 <콘트라베이스>. 모노드라마로 1981년 뮌헨에서 초연되었고 84년에 독일어로, 87년에 영문 번역으로 출간되었다. 이후 독일어권 나라에서 가장 자주 무대에 오르는 희곡 중 하나가 되었다. 책장 정리를 하다 문득 손을 뻗어 잡고선 그대로 읽어버렸는데 예의 그 무미건조한 유쾌함은 콘트라베이스 연주처럼 처연하면서도 묵직하다. 


<콘트라베이스>에서 화자는 슈베르트의 교향곡 8번 외 모차르트, 브람스, 바그너, 슈트라우스의 <살로메> 등 관련 작품을 줄줄이 — 음악가답게 — 언급한다. 그 중 카를 디터스 폰 디터스도르프 Karl Ditters von Dittersdorf의 <더블베이스 협주곡 2번 E장조>는 단연코 "콘트라베이스의 즉위식"이라며 극찬. 


런던심포니 수석연주자 리나트 이브라기모브 Rinnt Ibragimov의 D장조 연주. 




콘트라베이스의 파가니니 조반니 보테시니 Giovanni Bottesini의 <더블베이스 협주곡 2번 B단조>. 역시 이브라기모브 연주인데 삼현 더블베이스로 연주한다.




존 윌리엄스의 쉰들러 리스트 테마를 콘트라베이스로. 최고다.





저는 무게가 있어요. 정확하게 따지면 제 악기가 무게가 있는 겁니다. 그것이 이 악기가 갖고 있는 속성 중 제 마음에 꼭 드는 유일한 것입니다. 이것을 제외하면 별다른 것이 없습니다. 그 외에는 모든 것이 뒤죽박죽일 뿐이지요. (33)


정말 실제적으로 따져보았을 때 어느 누구도 콘트라베이스를 아름답게 연주하지 못합니다. 아무도 하지 못해요. 유명한 독주자들도 하지 못하는데, 그것은 콘트라베이스에 높은 음이 없다는 것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에 연주자의 능력보다는 악기의 물리적인 면과 더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높은 음이 전혀 없기 때문에 소리가 항상 암울하게 들리지요. (54)  


그래도 이런 암울함이 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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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년 전부터 철학을 공부하고 있고, 최근에야 박사학위를 받게 된 제 친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생각한다는 것은 아무나 심심풀이로 해보는 것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어려운 점이 많습니다.> 그는 - 제 친구는 - 예를 들자면 굳이 자리를 잡고 앉아서 <하머클라비어> 소나타를 연주해 보이지는 않을 겁니다. 그렇게 할 수 없을 테니까요. 하지만 그가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것을 누구나 믿을 테고, 그리고 사람들은 아무 거리낌 없이 그러한 전제를 바탕으로 더 많은 생각들을 하게 될 것입니다. 바로 이 점이 요즘 흔하게 저질러지고 있는 큰 실수라고 제 친구는 말합니다. 그런 실수 때문에 우리 모두 함께 멸망하게 될 큰 재난이 곧 닥친다는 겁니다. 그 말에 대해서 저는 옳다고 생각합니다. 더 이상은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이제 정말로 옷을 갈아입어야 됩니다. (96-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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