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시즘의 서곡, 단눈치오 - 시인, 호색한, 전쟁광 걸작 논픽션 15
루시 휴스핼릿 지음, 장문석 옮김 / 글항아리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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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눈치오에 관한 32개의 짧은 이야기 -
책을 읽다 보니 떠오른 게 프랑수와 지라를 감독의 <글렌 굴드에 관한 32개의 짧은 영화>다. 32개의 짧은 이야기를 묶어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의 예술 세계와 삶의 궤적을 쫓았다. 굴드만의 파격적인 연주와 기행을 표현하기에 더 없는 영화 문법이다. <파시즘의 서곡, 단눈치오>는 단눈치오라는 인물을 32개의 에피소드로 엮었다. 총 3부로 구성되어 에피소드마다 제목이 붙었다. 창, 영광, 초인, 피, 만화경, 속도, 번제의 도시, 제5의 계절 등. 마치 빅데이터로 추출한 키워드 같다. 단어만으로도 단눈치오의 삶과 시대의 조류가 그려지니 말이다. 저자 루시 휴스핼릿은 이 ‘키워드’를 중심으로 선언문적인 문체와 언어 유희로 단눈치오의 삶의 순간을 영화의 한 장면처럼 보여준다. 시각적인 언어로 글을 쓴 단눈치오의 전기라는 점에서 작가의 영리한 작법이 아닐 수 없다.

흥분한 군중과 꽃으로 가득한 분위기. 1919년에 9월 피우메를 점령한 단눈치오는 연단에 올라 다음을 반복한다. “여기 내가 있습니다. 이 사람을 보십시오 Ecce Homo.” 빌라도 본디오 총독이 광분한 군중에게 말한다. “에케 호모 Ecce Homo.” 빌라도 총독은 예수를 가리키며 이야기했지만 단눈치오는 자신을 지칭하여 이야기했다. 일찍이 니체 역시 이를 패러디하여 자서전 <이 사람을 보라>를 썼다.

단눈치오 인생에서 가장 극적이고, 세계사에서도 기이한 사건 중 하나인 피우메 점령으로 책은 시작한다. ’이 사람을 보라’는 이 책 1부의 제목이다. 니체가 그랬듯 요한복음 19장 5절에서 따 온 제목은 대번에 ‘가브리엘레 단눈치오’라는 인물에 시선을 돌리게 한다. ‘수태 고지'를 뜻하는 이름에 걸맞은 시작이다. 단눈치오의 정치, 예술관 형성 전반에 니체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있다는 것 또한 암시한다. 1부 ‘이 사람을 보라’는 서설 격으로 단눈치오라는 인물과 생애의 ‘요점정리’라고 할 수 있다.



- 시인이 통치하는 곳 -
이른 아침 광장. 이브닝드레스를 입은 여성들이 총을 들고 모여있다. 사랑과 전쟁을 외치는 군중도 있다. "강철 머리"라 불리는 스킨헤드 패션이 시작된 곳. 성인 보통선거권과 절대적인 양성평등을 헌법으로 지정한 곳. “시학의 정치”를 약속하는 곳. 소설이나 영화에서 나올 법한 이곳은 시인 단눈치오가 통치하는 피우메  — 현재의 리예카 — 다. 

시인은 자신의 피우메를 가리켜 “비루한 바다 한가운데서 빛나는 탐조등”이라고 불렀으나 이내 바람에 실려 떠다니다 점화되어 세계를 불태워버렸다(13). 형형색색으로 도배된 ‘얼룩소’의 도시. 공화국의 미덕과 소돔과 고모라가 공존하는 무대에서는 모든 것이 가능했기에 가치를 둘 것이 없었다. 마찬가지로 시인의 “다중 영혼”을 외면화한 비토리알레(단눈치오의 저택)에서는 모든 것이 마땅히 있어야 할 곳에 있지 않았다.   

영국 낭만주의 시인 바이런은 자유롭고 통일된 이탈리아의 비전을 가리켜 “정치의 시학 그 자체”라고 불렀고 이는 단눈치오에게 시와 정치가 합체되어 영광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줬다(149). 하지만 통일된 이탈리아에서 ‘낭만’이 끼어들 자리는 없었다. 시인은 고향 아브루초 지역선거에서 당선된 후 새로운 세계 질서를 창출하기 위해 ‘시학의 정치’를 설파했으나 재선에 실패한 후 정치의 시학을 집필하고 민주주의를 비난하는 송시를 쓴다. 피우메 입성 후 단눈치오는 다시 시학의 정치를 떠올린다. 시인에게는 언제나 새로운 시가 필요했다. 


- 예술성과 귀족성의 물줄기 -
당대 이탈리아 최고 배우 엘레오노라 두세를 비롯하여 수많은 귀족 여성들과 염문을 뿌리고 다니다 못해 그녀들을 파국으로 치닫게 한 ‘옴 파탈’ 단눈치오. 그는 짧막한 키에 누렇고 들쭉날쭉한 치아의 볼품 없는 남자였지만 자신의 대머리를 “초인의 두개골”로 둔갑시켜 미래주의의 광채처럼 번뜩이게 만들 수 있었다. 그는 미래주의 이전에 속도와 기계가 주는 유쾌함을 찬양했다. 미래주의 예술가들이 다양한 감각을 하나의 순간적인 체험으로 만들 가능성을 실험하기 전에 단눈치오는 이미 고대와 근대를 넘나들며 상호 침투적인 텍스트를 생산했다. 휴스핼릿은 이를 창 pike — 이 책의 원제이자 로맹 롤랑의 표현 — 에 비유한다. 단눈치오는 자신이 원하는 것이라면 뭐든지 꿰어 게걸스럽게 소화한 뒤 더 나은 표현으로 세상에 내보냈다(23).

헤밍웨이가 인정할 정도로 단눈치오는 “성스러울 정도로 용감한 사람”이었다. 이카로스를 흠모하는 시인은 정치라는 공연 예술과 캠페인이라는 군사 예술에 몸을 사리지 않았다. 아킬레우스의 전투 함성에서 차용한 '알랄라!'를 외치고 전쟁에서 한쪽 눈을 잃었으며 알프스산맥을 넘어 적국의 상공에서 전단지를 뿌려댔다. 그에겐 이 모든 것은 위에 있는 사람, ‘초인 above-person'의 행위였다. 단눈치오는 “무정하고 죄의식 없이 태양빛을 받으며 노래를 흥얼거리고 비행"했다(580).

그는 삶과 예술에서 에너지와 의지는 있었지만 도덕이나 이념이란 것은 모르는 사람이었다. 휴스핼릿은 단눈치오가 니체와 상당 부분 유사하다고 이야기한다(292-294). 확실히 단눈치오는 니체처럼 숭고한 개인과 디오니소스적인 도취를 찬양했다. 그는 자신의 귀족적이고 특별한 이름을 사랑했다. 라틴 사람이라는 것에 자부심을 느꼈고 앵글로색슨인과 게르만인을 야만인으로 불렀다. 하지만 니체는 민주주의는 물론 전체주의, 국가주의, 민족주의를 부정했다. 적어도 ‘공동체’와 ‘주의’(ism)를 혐오했다는 점은 분명하다. 따라서 니체가 말하는 개인, 귀족성, 엘리트주의의 ‘물줄기’는 그 원천이 아닌 흐름이다. 


- 인생의 드라마 -
단눈치오는 예술적인 비전을 그리는 데 천재였다. 캠페인으로 수많은 사람을 선동해서 움직이게 했다. 하지만 정작 그 자신은 만성적인 결정장애가 있어 양극단을 오락가락했으며 결정적인 순간에 늘 회피하기 일쑤였다. 피우메 점령은 단눈치오 인생의 빛나는 드라마였지만 미래주의자 마리네티의 말처럼 그는 이 드라마의 혁명적인 위대성을 이해하지 못했다(769). 아니 이해할 생각이 없었다. 단눈치오에게 피우메는 예술적 상상력의 산물이자 때론 따분한 즉흥 무대였다. 그를 붙들어 맨 것은 이 무대에서 연기하는 디오니소스적인 해방의 순간이었다(680). 

그가 연기한 캐릭터는 고색창연하면서도 최신 유행을 타는 어떤 것이기도 했다. 그는 물리적 파괴 수단보다는 선전 수단을 선호했고, 본질적으로는 현대적 세련미를 과시하고 있었다. 그는 신기한 것을 좋아하는 홍보 대사였으나, 동시에 기사도 시대에서 유래한 중세 영웅, 그러니까 군마를 비행기로 대체한 중세 영웅이기도 했다. (115)

단눈치오의 숭배자들 역시 “강철 머리”를 자처하며 대의가 아니라 인간 — 시인이 연기한 인물 — 을 따르고자 했다. 신념이나 계획이 필요할 때면 시인은 언제나처럼 주저했다. 단눈치오가 무솔리니를 좋아하지 않은 것은 무솔리니가 “천박한 모방자”이기 때문이었다. 파시스트 강령 쓰기를 거부한 것 역시 다른 사람의 밀집대형에 “정렬할” 생각이 추호도 없었기 때문이었다(800). 하지만 시인은 죽은 뒤 강제로 “정렬”되었다. 그를 열렬히 표절한 독재자에 의해 “파시즘의 세례 요한”으로.

<파시즘의 서곡, 단눈치오>는 원제 The Pike처럼 단눈치오 인생의 장면 장면을 꿰어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 저자는 아이러니와 블랙 유머로 신낭만주의 성향의 시인이 극단적인 우파 반란의 찬동가로 변모하는 과정을 쫓는다. 단눈치오 개인과 역사의 물줄기를 따라가다 보면 독자는 “예술적 재능과 섬세한 감수성, 정치적 극단주의 및 폭력 취향”이 어떻게 상호 침투하는지 보게 된다. 900쪽에 달하는 방대한 책이지만 꼭 순차적으로 읽지 않아도 좋을 만큼 32개의 에피소드가 유기적으로 짜여있다. 잘 꿰어진 글줄은 독자에겐 보배다.

이제 보니 굴드의 영화와 이 책이 32라는 숫자를 공유한다는 것은 재미있는 우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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