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더니티의 수도, 파리 - 자본이 만든 메트로폴리스 1830-1871 현대의 고전 13
데이비드 하비 지음, 김병화 옮김 / 글항아리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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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

온갖 유령 — 국가, 사적 소유권, 보나파르트주의, 마음의 지배 등 — 이 횡횡하던 때. 들라크루아와 마네, 쿠르베의 그림, 발자크와  플로베르, 보들레르의 소설, 청년 마르크스와 <자본>의 성숙한 마르크스 사이. 여기에 ‘1848년, 파리’가 존재한다. 1848년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데이비드 하비는 묻는다. 


20세기 문화와 예술, 자본이 한데 어울려 끓어오르던 곳이 뉴욕이라면 19세기의 ‘용광로’(melting pot)는 단연코 파리였다. 19세기 파리는 모더니티 이전의 모든 것을 혁파하고 ‘근대 도시’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데이비드 하비는 <모더니티의 수도, 파리>에서 근대와 전근대의 ‘단절'은 근대성이라는 신화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이 허구적 신화를 해체하기 위해  하비는 자신의 사상적 기반과 역사지리학 관점 위에 도미에의 풍자화, 발자크와 플로베르, 보들레르의 문학 작품을 적절하게 엮는다. 


에투알 개선문을 중심으로 방사형으로 정렬된 파리는 제2제정의 권위를 위한 정치적인 설계였다. 그리고 이 설계의 중심엔 오스만이 있었다. 직선의 기하학과 기계공학적 묘기는 위고식으로 표현하면 볼테르와 디드로의 꿈을 계산한 것이었다(455). 자본의 순환을 위해 직선으로 구획된 도시에서 업무의 분할과 이에 따른 위계는 특정 경험 영역을 구성하지 못하게 한다. 수공업 장인은 산업자본가의 공장 시스템에 밀려나게 되고 구체적 노동은 추상적 노동이 된다. 1848년 <공산당 선언>의 내용처럼 자본은 독립적이고 개성을 갖는 반면 살아 있는 사람은 그 순환에 종속되고 개성은 말살된다. 제2제정기의 산업 혁신자 풀로의 주요 목적은 정확성과 생산 속도의 증가, 그리고 “노동자들의 자유의지의 감축”이었다. 하지만 일꾼들이 게으르고 다루기 힘들다고 험담해대던 그조차 

파리는 사람들이 세계의 다른 어느 곳보다도 열심히 일하는 도시다. (…) 지방에서 파리로 온 노동자들이 모두 버텨내지는 못한다. 여기서 생계를 꾸리려면 힘든 일을 너무 많이 해야 하기 때문이다. (…) 파리에서는 도급제로 유지되는 직업이 있는데, 그 일을 20년간 하다보면 노동자는 불구가 되고 탈진해버린다. 다행히 그때까지 목숨을 부지하고 있다면 말이다.

라고 시인할 수밖에 없었다(288). 공산주의 유령은 아직도 배회중이다.




1848

1847년부터 끊임없이 제기된 선거 개혁 요구는 1848년 혁명에서 주요 쟁점 중 하나가 되었다. 혁명의 주도자는 노동자, 학생과 더불어 부르주아였지만 자본으로 도시를 장악한 부르주아지는 보통선거를 통해 정치판에서도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대중을 위한 사회 정책들이 하나 둘 붕괴하고 노동자는 자본주의 화폐 권력에 굴복해갔다. 예술가들 역시 아카데미의 권위와 시장 논리에 휘둘렸다. 이러한 경험적 일치는 쿠르베나 보들레르 같은 보헤미안을 혁명에서 노동자의 편에 서게 했다. 하지만 6월의 봉기는 정부에 의해 무자비하게 진압되고 노동자는 차라리 루이 나폴레옹에게 표를 몰아주면서 민주주의를 포기한다. 그나마 견딜 만한 보나파르트주의를 선택한 것이다. 1848년 12월 제2공화국이 탄생하고 대중과 부르주아지는 완전히 갈라선다. 


살아 숨 쉬는 거대한 작업장. 거리와 실내가 저마다의 성격을 표출하는 곳. 감정을 가진 “가장 유쾌한 괴물". 발자크의 파리다. 발자크는 대범하게 펜을 놀려 끊임없이 동요하는 공간의 ‘심리지리학’을 만들어냈다. 도시의 생태와 그 주민들의 인격은 서로 거울에 비친 영상 같은 관계다(84). 발자크의 만보객은 도시의 비밀을 캐고 소유하겠다는 열망 속에 대로라는 시詩를 누빈다. 하지만 파리를 자기만의 특별한 목적에 맞게 개조하여 소유한 것은 오스만과 개발업자, 자본가와 시장 논리였다. 플로베르의 <감정 교육>에서 프레데리크는 유령처럼 이리저리 도시를 떠다니고 소외와 익명 속에 실제와 몽상 간의 경계는 영원히 흐려진다. 플로베르는 외과의사가 메스를 놀리듯 정교하게 펜을 놀린다. 오스만이 야심 차게 과업을 완수한 1869년. 플로베르의 펜 끝에서 파리는 하나의 “정태적이고 독립적인 예술 작품”으로, “실증주의 미학”으로 제시된다. 감정과 신체는 사라졌다. 정치체로서의 도시, 양육적인 사회공화국의 전망도 숨이 멎었다.


보들레르의 만보객은 구경하면서 구경거리가 되는 — 참여하면서 관망하는 — 자로 바로 그 자신이다. 예술가와 부르주아 사이, “최고의 조화가 우리의 것”이 되리라는 장밋빛 전망이 깨진 후, “충분히 빠르게 나아가지 못한다는 것, 종합을 도출하고 손에 넣기도 전에 우리를 끌고 가던 유령을 놓칠지도 모른다는 것이 두렵다”는 보들레르의 얘기는 현재를 대하는 플로베르의 딜레마와 공명한다(32). 하지만 하비는 온통 이렇게 서두르는 바람에 엄청난 양의 인간 잔해, 무시할 수 없는 “뿌리 뽑힌 무수한 인생”이 남겨진다고 쓴다. 랑시에르가 말한 마르크스주의 예술가의 '현재의 지체'(lateness)가 떠오르는 대목이다 — "현재의 지체에서 추출한 예견의 힘"으로 새로운 미래를 구축하라. 




에마는 왜 죽어야했나

하비는 오스만의 신화에 의구심을 보이면서도 자본주의에 의한 '규모'의 변화는 전적으로 “차원이 다른 것"이었다고 짚는다. 벤야민이 ‘아케이드 프로젝트’에서 이 점을 다루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면서 말이다. 또한 아주 다르게 보이는 영역인 플로베르의 글쓰기를 들어 설명하는 점도 흥미롭다. 플로베르의 소설 <보바리 부인>에 등장하는 개인은 자기 완결적이다. 에마 보바리는 평범한 시골 의사의 아내로 소녀 시절 탐독했던 문학에 빠져 낭만적이고 이국적인 삶을 꿈꾼다. 그녀는 당시 급부상한 부르주아지와 새로운 사회, 새로운 삶을 욕망하는 민주주의적인 임의의 개인을 상징한다. 그런 에마는 왜 죽어야 했는가? 


랑시에르는 플로베르의 소설을 ‘인상주의 시학’으로 규정한 바 있다. 플로베르는 문학이 예술로 부합하는 데 있어서 문체의 힘을 제1 가치로 여겼다. “문체는 사물들을 보는 절대적인 방식”이라고 했는데, 여기에서 절대적이라는 것은 어떤 원리나 규범에서 자유롭다는 것을 의미한다. 재현 규범의 해체는 반재현이 아니라 모든 재현 방식에 대한 권리를 인정하는 것이다. 랑시에르가 '문학성'이라고 부르는 이 지점은 버지니아 울프가 인상은 모든 방향에서 "원자의 끊임없는 소나기로 내린다"고 표현한 것과 닿아있다. 


에마의 죄는 꿈 꾸어서는 안 되는 삶을 욕망한 것도, 문학(예술)과 실제의 삶을 혼동해서도 아니다. 에마는 일상의 사소한 감각 체험을 그 자체로 순수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무언가에 귀속시키고 대상화하여 욕망했다. 그녀는 창가에 통통 튀어 오르는 꿀벌의 움직임, 미사 중 촛불의 신비로움을 그 자체로 향유하지 못하고 이 미적 정서와 감각에 구체적인 형상을 부여한다. 랑시에르는 따르면 에마는 플로베르가 벗어나려고 했던 고전적 관점을 그 원인이 되는 실체에 끊임없이 귀속시키면서 예술의 근대적 이해를 정초하는 미적 체험의 고유성을 무화시켜버렸다. 에마는 낭만파 주인공처럼 애인에게 버림받고 절망하여 목숨을 끊는 것이 아니다. 몽상 속에 떠돌다 눈덩이처럼 불어난 빚 때문에 비소를 삼킨다. 


<보바리 부인>은 프랑스 최초의 위대한 모더니즘 소설로 평가받는다. 오스만이 전근대를 폐기하면서 파리를 설계했듯 플로베르는 에마를 죽임으로써 문학성을 정초했다. 하비는 낭만주의의 목이 잘린 1848년 이후에야 플로베르가 제 목소리를 찾았다고 적는다. “위대한 세기가 태어나려면 한 위대한 인물이 사라져야” 한다는 위고의 표현에서, 에마는 ‘위대한 인물’은 아니지만 그녀의 죽음은 플로베르에게 새로운 시대 —  문학의 근대성 — 를 정초하는 “창조적 파괴”의 구심점이었다. 오스만, 플로베르, 보들레르 그리고 마르크스에 이르기까지 1848년 이후에야 모두 본연의 모습을 찾아냈다는 사실은 단절로서의 근대성이라는 신화에 힘을 보태주었다(35). 1848년 전후의 사고와 실천의 흐름에서 분명 이 시기의 경험이 크게 작용했고 하비는 바로 이 점에 주목한다. 




무덤에서 요람으로

파리는 발자크의 유쾌한 괴물에서 보들레르의 창녀로, 그리고 졸라의 타락한 야수가 된다(466). 외과의사의 메스도 소용없는, 내장이 드러난 채 피흘리는 여성. 투기의 대상이고 탐욕의 제물이 된 여자가 할 수 있는 일이 혁명 봉기 밖에 더 있겠는가? 하비는 다시 묻는다. 하지만 1871년 사건은 파리와 여성 모두에게 비극의 클라이맥스이자 하나의 종말이 되었다.


몽마르트르 언덕 꼭대기. 사크레쾨르 바실리카가 파리를 굽어보고 있다. 사회 각계각층의 모금으로 건축한 성당인데 이국적인 비잔틴 양식의 돔으로 유명하다. 사크레쾨르는 기독교 전통에 반하는 모든 불경한 것 — 나폴레옹 3세와 제2제정, 코뮌의 악령과 피의 일주일 등 — 을 모조리 지워버려야 했고 아바디가 설계한 “동방적인” 디자인은 그 임무에 충실했다.


로지에르 거리의 순교, 외젠 발랭의 골고다 수난, 제2제정의 악덕과 불경은 사크레쾨르의 장엄한 돔과 새하얀 대리석 아래 잠들어 있다. 이 성심의 기념물은 운명의 변덕과 역사의 이율배반 속에 무덤에서 요람으로 거듭나기를 소망해왔다. 이곳에 묻힌 역사를 알고, 그 지점의 빛과 투쟁의 원칙을 이해하는 자만이 소망을 이룰 것이라고 하비는 마무리한다. 


<모더니티의 수도, 파리>는 1848년 혁명 전후로 파리가 어떻게 변이했는지, 자본과 근대성이 어떻게 특정한 장소와 시간에 만났는지, 이 만남에서 사회적 관계와 정치적 상상력이 어떻게 상호작용했는지 역사지리학적 관점으로 재구성한다. 그럼으로써 오늘날 ‘반지구화 anti-globalization 운동’에서 어떠한 메아리 — 푸르동, 푸리에, 르루, 카베 — 와 공명할 수 있다면, 1840년대 프랑스에서 약간의 역사적 교훈을 얻고 그 이해가 좀 더 깊어질 것이라고 쓴다. 또한 발자크의 재능을 빌어 "깊은 어둠 속에 혼자 있는"지도 모를 부르주아 전체 역사를 그려보기도 한다. 하비가 벗겨낸 근대성의 허물을 쫓으며 독자는 묻는다. 오늘날 우리에게 창조적 파괴의 구심점은 어디인가? 




* 참고서적

<모던 타임스: 예술과 정치에서 시간성에 관한 시론>, 자크 랑시에르, 현실문화연구, 2018년

<미술은 철학의 눈이다> 中 '13장 랑시에르의 미술론 - 표면의 탐험가 오귀스트 로댕', 박기순, 문학과지성사, 201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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