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광
렌조 미키히코 지음, 양윤옥 옮김 / 모모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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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죄 없는 소녀가 죽었다. 능소화나무 아래서. 

꾹꾹 눌러오던 각자의 기억을 쏟아내며 모두가 나오코를 죽였다고 고백한다. 그 기억은 태평양전쟁 말기, 일장기가 휘날리던 기차역을 지나 남태평양 어느 섬으로까지 거슬러 간다. 2차 세계대전 말 '남태평양의 섬'으로만 등장하는 그곳. 이국적인 형형색색의 꽃들이 가득한 그곳은 <파이 이야기>의 식인섬을 떠올리게 한다.


능소화는 한여름 태양을 향해 자라고 이름처럼 하늘을 능가할 만큼 고고한 꽃이다. 태양을 삼킬 듯 피어나던 그 꽃은 떨어졌다. 남태평양의 섬에서 소녀가 묻혔을 때 하늘에서는 만다라화가 내렸다. 


소설은 일본의 전쟁 범죄를 직접적으로 비판하진 않지만, 한 가족의 치정극을 통해 패망 후 일본 사회의 부조리를 아우른다. 우리와도 맞닿아 있는 세대와 시대의 광기. 이국적이다 못해 처연한 느낌마저 자아낸다. 이는 일본 특유의 정서와 신앙이 꽃과 나무로 비유되어 발하는 빛깔 때문일지도. 



🖋

작렬하는 하얀빛, 하얀 태양. 

뫼르소는 총을 쐈고 나오코 꽃이 되었다.




#2

나오코는 왜 죽었는가. 

한여름 태양 아래 벌어지는 사건은 내내 마음을 짓누른다.    

노인은 퍼뜩 내뱉는다. "저기 종려나무 밑에 파묻고 갔어." 

남태평양의 섬에서 그랬듯 소녀는 묻혔다.

    

예수가 십자가를 지기 위해 예루살렘에 들어설 때 백성들은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맞이한다. 종려나무는 승리와 영광, 부활을 상징한다. 묵시록에는 어린양 옆에 흰옷을 입은 무리가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서 있다. 이 흰옷을 입은 사람들은 어린양의 피로 자기들의 옷을 빨아 희게 하였다. 그러므로 태양도 그 어떠한 열기도 그들에게 내리쬐지 않을 것이라 했다.  


밀교나 국가신토와 달리 소설에 기독교적 색채는 크게 드러나지 않는다. 하지만 저 '종려나무'라는, 허허로운 한마디에 내 짓눌린 마음이 희망을 찾고자 한다면 억지일까. 그렇지 않으면 이 소설은 태양 빛에 눈이 부시다 못해 앞이 보이지 않는 어둠으로 남을 것만 같다.


11장

꽃이다... 만다라화가 하늘에서 쏟아지는 빛 방울과 함께 바다로 흩어져 내렸다... 나는 고향 땅의 절에서 했던, 꽃을 뿌리며 부처님을 공양하던 산화 공양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원체 신앙심이 약해서 내가 믿는 신이라야 그 당시 모두가 믿던 일본의 천왕뿐이었지만, 그래도 고향 땅 절에서 스님이 독경을 하며 종이꽃을 뿌리는 의식에는 익숙해져 있었던 것이다. 종이가 아닌 진짜 꽃을 그 사람의 자취는 바다에 흩뿌리고 있다.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 순간 나는 그 모래사장에 무릎을 꿇고 찐득한 꿀물 때문에 나도 모르게 두 손을 맞붙인 자세로 저 멀리 사람의 자취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우연히 그것을 향해 기도하는 자세를 취한 것이지만, 물론 내가 기도하고 있다는 것도 알지 못했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그 일로 괴로워할 수만은 없었다. 그 시절을 다른 모든 사람들처럼 전쟁이라는 대규모의 범죄에 대한 책임 따위는 이미 지나간 일로서 잊어버리고, 어떻든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

내 손을 움직이게 한 것은 보살이나 운명의 힘 따위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내 의지였다.

아무 죄도 없는 여자애가 그곳에 죽어 있었다. 이제부터 시작될 멋진 장래와 느닷없이 단절된 채, 그 자리에 죽어 있었다.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 몹시 손해나는 일이라는 듯 항상 어둡고 무표정하고 애교도 귀염성도 없는 그 아이를 나는 항상 마주 대하기가 껄끄러웠다.

하얀 빛에 불타서 나는 또 다시 나 자신을 잃었다. 단지 내 손만이 먼 옛날의 죄를 기억하고 제멋대로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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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 고서점의 사체 하자키 일상 미스터리
와카타케 나나미 지음, 서혜영 옮김 / 작가정신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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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다에 와서 소리를 질러보는 게 나쁜 짓은 아니잖아. 누가 뭐라고 하든 바다는 상처 같은 건 입지 않을 거야. 잠자코 불만을 들어줄 뿐, 앙갚음 같은 걸 하려 들지는 않을 거야. 일부러 여기까지 빗속을 달려왔잖아. 하고 싶은 대로 하고 홀가분해지면 되는 거야. 암, 그렇고말고.

나쁜 놈아!

말도 안 돼. 이건 뭐야. 어떻게 된 거야. 어째서 바다가, 바다인 주제에 앙갚음 같은 걸 하는 거냐고.


+ + +
하무라 아키라 급의 불운을 자랑하는 아이자와 마코토의 앞날은 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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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마리아 엘레나 바스케스. 

하지만 사람들은 언제나 나를 밀라라고 불러."















'속삭이는 자 시리즈' <속삭이는 자>, <이름 없는 자>, <미로 속 남자>

첫 번째를 읽은 후 세 번째 <미로 속 남자>를 읽었다. 시리즈인 만큼 세계관을 공유해서 반가운 인물들이 등장하고 다음 시리즈를 예고하듯 소설은 끝난다. "이름은 본드, 제임스 본드."라고 읊조리는 것이 트레이드마크가 된 어느 영화처럼.


<미로 속 남자> 역시 전작처럼 교차 서술이다. 근데 <속삭이는 자> 때도 살짝 그랬지만 읽다 보니 게이고의 <장편소설 살인사건>이 생각나는 건 왜일까. (내 멋대로 상상해 버린 탓에) 묘한 노기와 웃음도 났지만 작가 이력이 묻어나는 도나토 카리시만의 필치라 할 수 있겠지.


그러나 <속삭이는 자>가 앞심(?)의 소설이라면 <미로 속 남자>는 뒷심의 소설이랄까. 뒤로 갈수록 노기가 누그러들어 마지막에 이르면 오호, 라는 호기심 어린 감탄사가 나온다. 카리시 덕에 개성 있는 형사 캐릭터를 만난 것 같다.


또 다른 매력을 풍기는 캐릭터는 브루노 젠코라는 사립 탐정이다. 직업 특성도 그렇지만 고독을 곱씹으며 사는 인물로 다다이즘 미술품과 글렌 굴드 마니아다. 경매로 사들인 — 본인 왈 "몇 안 되는 미친 짓" — 다다 작품과 굴드의 음반이 안식처나 다름없다. 특히 굴드의 1959년 잘츠부르크 실황 음반을 듣는 장면은 캐릭터 구색 맞추기를 넘어 전체 서술 구조와 작풍을 암시하는 세심함이 돋보인다. 


'앞심'이 달리긴 했지만 이런 소설 속 장치로 불쑥 영매니 애정 행각(?)이니 해서 나를 놀라게 한 <속삭이는 자>보다는 <미로 속 남자>에 쪼금 더 점수를 주고 싶다. 속편에 대한 기대와 함께. 마리아 엘레나 바스케스. 밀라의 다음 이야기가 어떻게 펼쳐질까?


+ 앗, 불현듯 떠오른 건데 프로파일러의 '독특한 수사 방식'이 빙의라던가.... 뭐 그런 건 아니겠지. 설마. (영매의 충격이 아직도...)

++ 영매 무조건 싫어! 이건 아니다. 신비한 능력을 지닌 인물이 등장하는 수사물도 재밌게 본 게 많다. 하지만 증거에 입각+적절한 미스터리와 여운을 더한 것이 좋다는, 결국 내 맘대로 취향...



"신이 어린아이라는 거 모르셨어요? 그래서 우리 인간을 아프게 하면서도 정작 본인은 모르시는 거랍니다."

— 미로 속 남자 中 (30장)

















'하자키 시리즈' <하자키 목련 빌라의 살인>, <진달래 고서점의 사체>

몇 년 전 귀여운 곰이 그러진 <녹슨 도르래>로 일상 미스터리라는 장르를 접했다. 저자인 와카타케 나나미는 코지 미스터리의 여왕으로 불리며 이쪽에선 매우 유명한 모양. 평소라면 코지 미스터리? 그게 뭐야, 콧방귀 뀌고 읽지 않을 터였으나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탐정'이란 문구에 홀려 손에 잡은 책. 하무라 아키라에 심히 감정이입이 되는 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지만 장르 이름답게 소소하게, 편안하게 즐겼더랬다. 그때의 기억을 떠올려 <하자키 목련 빌라의 살인>을 읽었는데 역시나! 


사건에 집중하기보다 사건을 둘러싼 군상 묘사가 일품이다. 하자키 목련 빌라 주민 면면은 내가 만났고 만나는, 또 만날 이웃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 아, 물론 살인 사건에 휘말리는 건 사양이다. 어쩐지 명랑 시트콤의 장면이 자동 재생되는 건 웃는 얼굴을 한 개, 되바라진 쌍둥이 자매, 그리고 형사반장과 경사 콤비 때문일 수도. 읽다 보면 나도 모르게 히토쓰바시 군 파이팅! 을 외치게 된다. 해서 읽고 있는 <진달래 고서점의 사체>에 히토쓰바시가 등장하지 않아 내심 서운하지만 이쓰키하라에게 다시금 소소한 응원을 보낸다.
















<홍학의 자리>

그 '반전'에 놀라긴 했는데 너무 작정하고 쓴 것 같아 마이너스랄까. 

오히려 술술 읽히는 데 더 점수를 주고 싶다. 작가의 다른 작품을 읽어봐야겠다.


<변두리 로켓: 가우디 프로젝트>

냉혹한 음모가 난무할 줄 알았건만 너무 따뜻해서 그만 어색해져 버렸다. 범죄 소설을 너무 읽었나 봐.

 

그리고 여전히 읽을 게 산더미인 게이고 작품들.


몇 년 주기로 추리물을 몰아 읽긴 하는데, 올해는 게이고 읽기라는 (목표 아닌) 목표 탓일까. 그 어느 때보다 많이 읽는 것 같다. 이 숨 가쁜 느낌은 뭐지. 장르적 감흥이 슬슬 사라지려고는 하나 이참에 쿰쿰하게 쟁여만 두던 책들도 빛을 보게 해야지. 찬 바람 불기 전까지. 특히 <13.67>과 <동트기 힘든 긴 밤>은 반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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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싸움 중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심연을 오랫동안 들여다본다면, 그 심연 또한 너를 들여다볼 볼 것이기 때문이다. 

📕 니체 <선악의 저편 중 中> 


+ + +

오랜만에 괜찮은 범죄/스릴러 소설을 만났구나, 기뻤다. 별 다섯을 줘도 좋겠어. 맨슨 패밀리나 옴 진리교, 인민사원 사건이 떠오르고 시각적으로는 미드 <한니발>식 장면이 그려지며 몰입하던 중, 영매가 웬 말인가. 지극히 취향의 문제지만, 신종 데우스 엑스 마키나도 아니고 작가들이 갑툭 영매를 끌어들일 땐 영 당황스럽다. 2/3까지는 정말 좋았는데. 


과학과 이성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악은 여전히 만연하다. 영적인 힘을 빌려 이 물음에 답을 구하고 싶은 건 인간 본성일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뇌과학과 더불어 명상이 각광받는 것만 봐도 그렇다. 해서 과학수사에 잠재의식까지, 다방면에서 '속삭이는 자'를 뒤쫓는 긴장감은 대단했다. 하지만 영매의 등장은 행간 속에서 '속삭이던' 서스펜스를 일순 내쫓았다. 쩌렁쩌렁 고함을 지르듯. 


사건을 위한 사건 만들기, 작위적인 설정의 2부 후반은 적잖이 맥 빠지긴 했으나 가속도가 붙던 독서에 오히려 좋은 브레이크가 된 것 같다. 아니면 바로 도나토 카리시의 다른 책을 읽느라 밤새 내 눈이 죽어났을 테니. 



+ 법의학 박사 레너드 브로스의 검시 능력과 프로 정신을 높이 사는 건 좋은데 멀쩡한 이름 두고 "모두들 그를 챙 박사라고" 부르는 것도 브레이크랄까. 좀 쉬었다 <미로 속 남자>를 읽어 보련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의 이야기를 믿고 싶어 했다. 스티브는 괴물로 취급하기엔 너무나 ‘멀쩡해‘ 보였기 때문이다. 평범한 자신들과 너무도 닮은꼴이었기 때문이다. 역설적이게도 그의 뒤에서 누군가가 조종하고 있다는 생각, 정체를 알 수 없는 미지의 인물이자 정말로 사악한 존재가 있다는 생각이 오히려 그들을 안심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던 것이다. (43장)

누군가를 자주 접하다 보면, 그 사람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만 알고 보면 아는 게 하나도 없는 법이지.
— 고란 게블러

그 누구보다 그 말을 이해해야 했던 건 그녀였다. 그에게 이런 말을 던졌던 그녀였으니까. "왜냐하면 제가 바로 그 어둠 속에서 걸어 나온 사람이거든요. 그리고 가끔씩, 그 어둠 속으로 다시 들어가야 하고요."
고란 역시 수시로 그 어둠 속에 빠져들었었다. 그런데 어느 날, 거기서 나와 보니 뭔가가 그를 따라붙었던 것이다. 절대로 떼어 낼 수 없었던 뭔가가. — 밀라 엘레나 바스케스 (44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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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 히가시노 게이고 모아 읽기 中



'하쿠바 산장'이 '백마 산장'이라니. 읽다 보니 봤던 거구나, 하는 작품이 몇 있지만 하도 오랜만에 읽으니 처음 읽는 것과 별반 다르지도 않더라는.


가장 마지막으로 읽은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은 나도 인기 작가의 화제작을 바로 읽었어! 하는 뿌듯함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이 독서 경험이 4, 5년 전이라고 느꼈는데 그게 글쎄, 책 출간되고도 좀 지난 2014년에 읽은 거라니! 아아. 내 기준에서 신간 접수라면 접수긴 한데, 왜 이렇게 게이고의 책이 화수분처럼 느껴졌는지 알 것 같다. 그리고 정말 화수분 맞더라. (표지도 바뀌는) 개정판이라는 함정, 끝도 없이 발굴, 출간되는 예전 작품들까지. 


한 작가의 작품 모아 읽기는 처음이다. 2016년 셰익스피어 사거 400주기를 맞아 도전했으나 — 책 좀 읽자는 빛 좋은 구실이 더 맞지만 —  실패, 독서에 이유 따윈 없다는 나름의 합리화 후 읽고 싶은 대로 읽다가 2022년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다작왕 게이고의 작품에 손을 대고 말았다. 올해 안에 '독파'하긴 어렵지만 (알라딘 북플에 따르면) 가장 많이 읽은 작가 톨스토이가 곧 게이고로 바뀔 것은 분명하다. 



간단한 & 대중없는 소회


<살인의 문>

확실히 처음 읽는 게이고의 작품. 일본에서 2000년대 출간됐지만 한국엔 비교적 최근에 소개됐다.
은은하게 체기가 드는 작품이다. 하필 정말로 고구마를 먹고 보느라 이게 고구마 때문인지 책 때문인지 분간이 안 되더라는. 도대체! 몇번이나 걸려드는 거냐, 경악하며 주인공을 한심하게 생각하다가 문득 생각을 고쳐먹는다. 사기꾼은 걸려들 사람을 귀신같이 찾아 문다는데 다지마는 그야말로 완벽하고 손쉬운 먹잇감이었던 것을. 부분부분 나 자신이 투영될 때면 연민도 들었다(그리고 저렇게까지, 아직까지는, 호구 잡히지 않은 나의 삶에 감사를).


사기 수법들이 지나치게 고루한 것은 책이 2003년도에 출판되었다는 점, 또 이야기는 과거 시점으로 전개되는 것을 생각하면(공중전화만 존재하는 시절이다!) 요즘 시대 현란한 스미싱 같은 것이겠지 납득할 만하다. 그보다 의외인 건 노인에 대한 사회적 정의 혹은 시선이다. 저 시대에 70이라는 나이는 판단력이 흐려지고 사회적으로 고립되는 존재였나? 일본은 훨씬 전부터 고령화 시대에 들어갔을 텐데 노령 세대에 대한 인식이나 시선이 너무 구시대에 머물러 있는 느낌이다. 사회파 추리 소설이라면 좀 더 예리한 렌즈가 필요하지 않나 했는데 <추리소설가의 살인사건>을 읽고 나니 게이고 특유의 '돌려 까기'인가 싶다. 



<추리소설가의 살인사건>

장편인 줄 알았는데 단편집이다. 2020년에 출간됐지만, <살인의 문>처럼 2000년대 초반 작이다. 
8개의 단편이 깔깔 유모어집....스런 코드인데, 나 이런 거 좋아하나 봐. 아, 블랙 유머 & 메타 소설이라고 하면 좀 있어 보이려나. 후후. <명탐정의 규칙>, <명탐정의 저주>의 냄새가 물씬 나는데 기조는 전자에 좀 더 닿아있다. 읽다 보니 문득 <33분 탐정>이라는 일드가 떠오른다. 경찰이 몇 분 만에 말끔하게 해결한 사건을 사설탐정이 방송 시간을 보장하기 위해 33분 동안 재수사하는 게 일종의 '규칙'. 즉, 아주 어처구니가 없는 드라마다. 물론 나는 깔깔대며 보긴 했다......



<블랙 쇼맨과 이름없는 마을의 살인>

본격 추리물의 향기가 살짝. '블랙 쇼맨'이라는, 레귤러 캐릭터의 낌새를 풍기는 인물이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큰 얼개는 다소 심심하고 빤하지만 전직 라스베이거스 마술사 블랙 쇼맨은 제법 매력 있다. 코로나 시국이 배경이라 게이고의 작품에서 모처럼 21세기 동시대성도 느꼈다. 후반부~에필로그에서 <방과 후> 감성이 돼버렸지만.

일본 추리물은 같은 문화권에서 공유하는 특질 때문에 술술 읽히다가도 계층, 성별에서 특유의 일본 문화가 도드라질 때면 역시 외국 소설이구나 싶다.


게이고 소설을 내리읽다 보니 패턴이 확실히 보이고 또 한두 끗 차이로 내 취향은 아니지만 쉽게, 잘 읽힌다. 초, 중반 흡인력도 좋고. 이러니저러니 해도 40년이 다 돼가는 필력에는 이유가 있는 법이다.


 

게이고의 소설만 읽을 순 없으니 — 게이고 월드에 갇힐 순 없다! — 다른 작가도 몇몇 읽는 중.



















나카야마 시치리 <표정 없는 검사>

'개구리 남자' 시리즈를 쓴 나카야마 시치리 작품. 시치리도 은근 작품이 많다.



이마무라 마사히로 <마안갑의 살인>

본격 밀실 살인사건이고 평이 무척 좋아서 기대했는데 도통 감흥이 없...... 만성피로에 눈도 침침한 요즘이지만 유난히 글줄도 머리에 안 들어와 일단 접었다. 시차를 두고 다시 읽어 봐야겠다(고 생각은 하지만 과연). 
사실 내 (늙은이) 감성과 맞지 않는 부분이 큰 거 같다... 난 홈즈나 푸와로 세대였어... (그리고 게이고...)
그나저나 일본 추리 소설은 ㅇㅇ갑, ㅇㅇ관 시리즈가 너무 많다. 



길리언 플린 <나를 찾아줘>

내가 이 책을 갖고 있었다니 헛웃음 나네. 빌려 읽었는데. 

영화의 명성에 힘입어 샀다가 어딘가 두고 잊어버린 듯. 발이 달려서 사라졌다 (에이미처럼) 돌아온 게 아니라면 말이다. 장서가 중 종종 같은 책을 또 사는 경우가 있다고 하지 않는가. 책이 워낙 많으니까 까먹는 것도 당연하다. 근데 내가요? 이런. 얼마나 정신머리 없이 사는 것인지(그나마 대여해서 읽은 게 다행).


각설하고, 추리/스릴러 소설 찾다 퍼뜩 생각난 게 이 책이라 대.여.해.서. 읽었는데 초반부가 고비였다. 닉 파트는 그럭저럭 했다. 근데 에이미의 일기는 재미도 없고, 묘하게 신경을 긁는 것이 이게 작가의 의도라면 대단하다 싶었는데 역시나 광인의 수기였다는. 


구닥다리(?) 세대인 나는 문체부터가 잘 들어오지 않았다. 세련된, 젊은 감성은 다 사라졌나 봐... 교차 구성이나 그에 따른 작가의 필력에는 고개가 끄덕끄덕 하지만 몰입이 안 되서 따분하기까지 한 전개는 누군가 입담 좋게 떠드는 걸 들어야’만’ 할 때의 기분, 혹은 아수라장에 휘말린 '아싸'의 심정이랄까. 근데 책이 두꺼운 만큼 오기도 생겨서 무는 썰어야겠단 심정으로 읽어나간 끝에 1부 후반부터 드디어! 숨통이 트였다.


하지만 구닥다리 스타일인 나는 후반부에서 다시 숨이 턱 막혀버렸으니. 이대로 끝나기엔 에이미가 벌인 난장이 마을 수준이 아닌데? 론다 vs 에이미의 제2 라운드를 내심 기대했는데 FBI 뭐하는 겁니... 아차, 수사물이 아니란 걸 다시 한번 상기하며 묵직한 마지막을 곱씹어 본다. 나름의 정의 구현(?)이 시작된 건지도. 누구를 위한 정의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제2 라운드의 서막이 열린 것은 분명하다. 
내친김에 영화도 봤다. 수미쌍관을 이루는 에이미의 뒤통수, 아, 느낌이 왔다. 단단한 옥수수 알 같은, 강바닥의 화석 같은, 빅토리아 시대의 품위 있게 생긴 머리가 뭔지. 에이미의 뒤통수로 다음 막을 예고하며 영화는 끝난다. 



피터 스완슨 <그녀는 증인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 <죽여 마땅한 사람들>

관심 있던 작가 피터 스완슨. 근작인 <그녀는 증인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를 먼저 읽었다. 미친자 vs 미친자 구도에 (흔한 클리셰라) 생각지도 않던 다중 인격을 오랜만에 접하니 제법 신선했다. 해서 기대치가 급상승하여 스완슨의 초기작이자 대표작인 <죽여 마땅한 사람들>을 냉큼 읽은 후 <죽여 마땅한 사람들>이 왜 그의 대표적인지 깨달음과 동시에 설마 이게 작가의 레퍼토리인가, 라는 의구심으로 다른 작품에 흥미가 식어버렸다. 그래도 최신작 <8건의 완벽한 살인>은 구성이 좀 달라 보여 조만간 읽을 예정. 이 작품도 '스완슨 월드'면 그의 세상과는 한동안 거리를 두게 될지도 모르겠다. 



안티 투오마이넨 <사장님 아무거나 먹지 마세요>

오래간만에 북유럽 스릴러 감성 좀 느껴보고자 고른 책. '헬싱키 누와르', '블랙 코미디 스릴러', '버섯 회사 CEO의 독버섯 중독 사건' 등의 문구를 보고 안 고를 수가 없었다. 
사우나, 아이스크림, 숲과 버섯, 그리고 하미나 마을 — 핀란드의 여름 흥취가 밀려온다. 다만 '핀란드 유머'에 익숙해지는 덴 시간이 필요할 듯. 



미치오 슈스케 <용서받지 못한 밤>

놀라움 1. 오래전에 읽어서 내용은 기억에 없지만 <달과 게>의 분위기가 물씬 풍겼는데 세상에, 작가가 같다. 
놀라움 2. <사장님 아무거나 먹지 마세요> 후에 읽었는데 본의 아닌 버섯 공부를.... 접점이라곤 전혀 없을 두 작품에서 이게 웬일이람. 


🍄 두 작품으로 알게 된 버섯

맛있는 식용버섯
- 깔때기뿔나팔버섯
- 꾀꼬리버섯
- 그물버섯
- 곰보버섯
- 흰우단버섯


아무거나 먹으면 안 되는 종류

- 흰알광대버섯 : 일명 '죽음의 천사'. 이름에 '광대'가 들어가면 영 좋지 않다. 

- 마귀곰보버섯: 이름부터 '마귀'가 들어간다. 유사/가짜곰보버섯이라고도 부른다.

속/과에 따라서 비슷한 이름이라도 식용이냐 독버섯이냐 갈린다.

이것도 독서의 성과라면 성과겠지. 



박연선 <여름, 어디선가 시체가> 🎧

추리 소설이라기보다는 한 여름밤의 꿈같은 시골 마을 해프닝. 두왕리 산골에 유배된 삼수생 강무순이 화자다. 특이한 제목 덕분에 알고는 있었지만, 딱히 읽지는 않았던 책이다. 근데 오디오북이 있네?

저자가 드라마 작가란다. 그래선지 라디오 드라마를 듣는 것 같다. 찰진 대사와 묘사에 웃음이 터진다. 흡인력도 있다. 


하지만 그 재치 넘치는 문체가 시종일관 이어지니 좀 피곤하기도. 읽는 책으로 봤다면 이 소설의 매력을 제대로 체감 못했을(안 했을) 것 같다. 드라마 작가가 쓴 소설이라 오디오북에서 그야말로 빛을 발하는 듯. '주마등'이라고 화자를 달리해 따로 뽑은 구성도 좋았다. 




구라치 준 <두부 모서리에 머리를 무딪혀 죽은 사건>

나는 두부를 좋아한다. 그냥 먹고, 부쳐 먹고, 튀겨 먹고, 조림으로 먹고 삼시세끼, 한 달 내내 먹을 수 있다. 수분이 적은 단단한 두부는 별다른 양념을 하지 않아도 고소해서 특히 좋아한다. 근데 두부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혀 사람이 죽었단다. 내가 사랑하는 두부가 살인 무기가 될 수 있다니. 두부가 이렇게나 위험한 물건(?)이었다니. '두부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혀 죽은 사건'이 가능하단 말인가?


이게 헛소리가 아닌 게 바나나를 영하 40도에서 얼리면 못도 박을 수 있다고 한다. 따라서 이론상 두부도 흉기가 될 수 있다. '두부 사건' 관계자인 과학자 — 일명 매드 사이언티스트 — 의 과학적 소견이다. 하지만 사건이 일어난 밀실은 두부를 얼릴 수 없다. 현장엔 오직 산산이 으깨진 두부뿐. 사건의 전말은 무엇인가?


<두부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혀 죽은 사건>은 구라치 준의 단편이다. 표제가 된 이 작품 외에 5편이 더 있다. 황당무계한 제목 때문에 읽은 <두부 모서리>는 발랄한 아이러니와 블랙 유머로 무장한 현대물일 거란 예상과 달리 태평양 전쟁 말기가 배경이다. 수세에 몰린 일본군은 신무기 개발에 열을 올리고 갖은 SF 요소가 난무한다. 뱅뱅돌이 안경을 쓴 미친 과학자가 등장하는 이유다. 두부는 어느새 미스터리 첩보물(?)의 단서로 둔갑, 사건은 마무리된다.   


두부가 흉기라는 존재감을 상실한 지점부터 이야기는 심심하게 흘러간다. 내용도 인물도 좀 빤한 거 아닌가. 그래도 맛깔난 문장 덕에 읽는 재미는 있다. 두부 모서리가 머리를 깨는 만큼의 임팩트는 아니지만. 


멜론 인형 탈을 쓴 주인공이 사건을 해결하는 <네코마루 선배의 출장> 역시 정직한 추리물이다. 선배가 기이한 인형 탈을 쓰고 멍청이 코스프레를 하는 '악당'인 줄 알았는데 그냥 괴짜 선배일 뿐이고, 목을 가누지 못하는 인형 탈은 단순 출장 도구였다. 이후론 이야기는 (또다시) 예상대로 흐른다. 모범 답안 같은 전개지만 캐릭터 보는 맛은 역시 쏠쏠하다. 괜스레 나도 인형 탈 마냥 머리를 근들근들 해본다.


알고 보니 네코마루 선배는 구라치 준의 레귤러 캐릭터라고 한다. 이미 구라치 준을 접한 독자라면 나 같은 허튼 추측은 하지 않았을 터. 또 '두부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혀 죽어라'는 일본 속담이란다. 역자 후기에 의하면 어리석고 둔한 사람을 조소할 때 하는 말이라고. 재밌는 표현이다. 좀 더 찾아보니 우리말 '접시 물에 코 박고 죽는다' 쯤 된다고 한다. 오호, <두부 모서리>가 새롭게 읽힌다. 태평양 전쟁과 대본영, 특무첩보기관, 미치광이 과학자. 얼리지 않은 두부에 맞아도 깨질 머리들 아닌가. 


'두부 모서리'와 비슷한 표현으로 '우동으로 목매어 죽어라'가 있단다. 우동 가락에 목이 졸려 죽은 사건이라고 없을까만 그래도 두부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혀 죽은 사건만 할까.

어쨌든, 상식적인 우리에게 두부는 위험하지 않다. 맛있을 뿐.


<두부 모서리>를 포함 6편 모두 '사건'에 충실한 단편으로 모나지 않은, 어쩌면 심심한 소품이다. 하지만 맨 두부 같은 담백함이 구라치 준의 다른 작품에 구미를 당기게 한다. 아는 일본 추리소설 작가가 몇 없어서 이번에 구라치 준을 알게 된 건 소소한 수확이다. 


근데 구라치 준은 작품을 적게 쓰는 것으로 유명해서 냉장고가 텅텅 비어야 일을 한다는 농담이 있을 정도란다. 아니, 소식이라도 하시나. 작품 검색을 하니 국내에 두 편 더 출간됐는데 그나마 하나는 절판...... 뭐, 화수분 게이고에 비하면 한 권만 더 읽으면 되니까 어렵지 않은 도전이겠군.


+ 와, 이거 책 넣는 것도 일이구나. 힘들어.... 정성 들여 쓰는 분들의 수고로움을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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