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마리아 엘레나 바스케스. 

하지만 사람들은 언제나 나를 밀라라고 불러."















'속삭이는 자 시리즈' <속삭이는 자>, <이름 없는 자>, <미로 속 남자>

첫 번째를 읽은 후 세 번째 <미로 속 남자>를 읽었다. 시리즈인 만큼 세계관을 공유해서 반가운 인물들이 등장하고 다음 시리즈를 예고하듯 소설은 끝난다. "이름은 본드, 제임스 본드."라고 읊조리는 것이 트레이드마크가 된 어느 영화처럼.


<미로 속 남자> 역시 전작처럼 교차 서술이다. 근데 <속삭이는 자> 때도 살짝 그랬지만 읽다 보니 게이고의 <장편소설 살인사건>이 생각나는 건 왜일까. (내 멋대로 상상해 버린 탓에) 묘한 노기와 웃음도 났지만 작가 이력이 묻어나는 도나토 카리시만의 필치라 할 수 있겠지.


그러나 <속삭이는 자>가 앞심(?)의 소설이라면 <미로 속 남자>는 뒷심의 소설이랄까. 뒤로 갈수록 노기가 누그러들어 마지막에 이르면 오호, 라는 호기심 어린 감탄사가 나온다. 카리시 덕에 개성 있는 형사 캐릭터를 만난 것 같다.


또 다른 매력을 풍기는 캐릭터는 브루노 젠코라는 사립 탐정이다. 직업 특성도 그렇지만 고독을 곱씹으며 사는 인물로 다다이즘 미술품과 글렌 굴드 마니아다. 경매로 사들인 — 본인 왈 "몇 안 되는 미친 짓" — 다다 작품과 굴드의 음반이 안식처나 다름없다. 특히 굴드의 1959년 잘츠부르크 실황 음반을 듣는 장면은 캐릭터 구색 맞추기를 넘어 전체 서술 구조와 작풍을 암시하는 세심함이 돋보인다. 


'앞심'이 달리긴 했지만 이런 소설 속 장치로 불쑥 영매니 애정 행각(?)이니 해서 나를 놀라게 한 <속삭이는 자>보다는 <미로 속 남자>에 쪼금 더 점수를 주고 싶다. 속편에 대한 기대와 함께. 마리아 엘레나 바스케스. 밀라의 다음 이야기가 어떻게 펼쳐질까?


+ 앗, 불현듯 떠오른 건데 프로파일러의 '독특한 수사 방식'이 빙의라던가.... 뭐 그런 건 아니겠지. 설마. (영매의 충격이 아직도...)

++ 영매 무조건 싫어! 이건 아니다. 신비한 능력을 지닌 인물이 등장하는 수사물도 재밌게 본 게 많다. 하지만 증거에 입각+적절한 미스터리와 여운을 더한 것이 좋다는, 결국 내 맘대로 취향...



"신이 어린아이라는 거 모르셨어요? 그래서 우리 인간을 아프게 하면서도 정작 본인은 모르시는 거랍니다."

— 미로 속 남자 中 (30장)

















'하자키 시리즈' <하자키 목련 빌라의 살인>, <진달래 고서점의 사체>

몇 년 전 귀여운 곰이 그러진 <녹슨 도르래>로 일상 미스터리라는 장르를 접했다. 저자인 와카타케 나나미는 코지 미스터리의 여왕으로 불리며 이쪽에선 매우 유명한 모양. 평소라면 코지 미스터리? 그게 뭐야, 콧방귀 뀌고 읽지 않을 터였으나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탐정'이란 문구에 홀려 손에 잡은 책. 하무라 아키라에 심히 감정이입이 되는 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지만 장르 이름답게 소소하게, 편안하게 즐겼더랬다. 그때의 기억을 떠올려 <하자키 목련 빌라의 살인>을 읽었는데 역시나! 


사건에 집중하기보다 사건을 둘러싼 군상 묘사가 일품이다. 하자키 목련 빌라 주민 면면은 내가 만났고 만나는, 또 만날 이웃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 아, 물론 살인 사건에 휘말리는 건 사양이다. 어쩐지 명랑 시트콤의 장면이 자동 재생되는 건 웃는 얼굴을 한 개, 되바라진 쌍둥이 자매, 그리고 형사반장과 경사 콤비 때문일 수도. 읽다 보면 나도 모르게 히토쓰바시 군 파이팅! 을 외치게 된다. 해서 읽고 있는 <진달래 고서점의 사체>에 히토쓰바시가 등장하지 않아 내심 서운하지만 이쓰키하라에게 다시금 소소한 응원을 보낸다.
















<홍학의 자리>

그 '반전'에 놀라긴 했는데 너무 작정하고 쓴 것 같아 마이너스랄까. 

오히려 술술 읽히는 데 더 점수를 주고 싶다. 작가의 다른 작품을 읽어봐야겠다.


<변두리 로켓: 가우디 프로젝트>

냉혹한 음모가 난무할 줄 알았건만 너무 따뜻해서 그만 어색해져 버렸다. 범죄 소설을 너무 읽었나 봐.

 

그리고 여전히 읽을 게 산더미인 게이고 작품들.


몇 년 주기로 추리물을 몰아 읽긴 하는데, 올해는 게이고 읽기라는 (목표 아닌) 목표 탓일까. 그 어느 때보다 많이 읽는 것 같다. 이 숨 가쁜 느낌은 뭐지. 장르적 감흥이 슬슬 사라지려고는 하나 이참에 쿰쿰하게 쟁여만 두던 책들도 빛을 보게 해야지. 찬 바람 불기 전까지. 특히 <13.67>과 <동트기 힘든 긴 밤>은 반드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