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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함 110호의 우편물 - 개정판
이도우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이도우님의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은... 어쩐지 감상문 쓰기가 참 아깝다. 어렵기도 하고.
어제 밤에 너무나 피곤했고 일찍 잠자리에 들고 싶었는데, 그럼에도 내 정신은 전혀 피곤하지 않았던지 오히려 시간이 지날 수록 더 똘망똘망- 정신이 깨끗해 졌다. 아무생각없이 이 책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방 불은 끄고 작은 스텐드를 켜고- 어차피 나쁜 눈, 그냥 읽어버리자. 읽으면서 너무 새로웠다. 확실히 지금의 나는 2년전의 나와는 달리 꽤 많이 변해버린 것 같다. 어쩌면 좀 나쁜 쪽으로...
자정부터 해서 오늘 이른 4시까지 책을 읽으면서 어느새 눈물을 흘리면서 보개 되었다. 이런 주책.
진솔은 어쩐지 아주 쓸쓸한 사람이다. 외로움에 익숙해져 있고, 좀 소심하기도 하지만 꼬장꼬장 자존심도 있고, 아프고 힘든 게 싫어서 먼저 발을 빼버리는 것도. 이제 외로움에 좀 익숙해졌다는 그녀.
딱히 열정이 있는 것도 아니고 꿈이 있는 것도 아니다. 오랫동안 한 여자를 봐왔고, 바라보기만 해야한다고 참아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이 책을 읽으면서 왠지 신선했던 점은 결혼을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나름 동인지의 결말은 서로 영원한 사랑을 하는 것이고-그것이 집착이든 죽음이든 뭐든-, 로맨스소설은 아름답고 의미있는 결혼과 출산 그리고 행복한 미래가 아니던가. (특히 결혼과 출산 부분에서는 나라의 홍보보다 더 홍보가 되기도 한다. 출산율 떨어진다, 결혼하는 사람이 감소하고 이혼율이 높아진다-이런 기사보다 훨씬 더 꿈을 꿀 수 있게 해준달까.) 그런데 결혼이 없다는 점. 마지막 부분에서 암시 아닌 암시로, 할 것 같긴 하지만 말이다.
이 책은 읽고 있으면, 비유가 이상할지도 모르겠지만, 나도 아직은 늦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내 이성관이라던가 연애관이라던가, 다 비추어볼 때, 열심히 살다보면 이렇게 나와 가장 비슷하고 잘 맞는 사람을 만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럴 만큼 진솔은 가끔하는 작은 취미생활 외에는 일에 투자를 해왔고, 특별해지고 싶다거나 좀 더 유명한 작가가 되야겠다거나, 방송국안에 파벌에도 관심도 생각도 없었다. 그저 맡은 일 묵묵하게 하는 타입이랄까, 너무 깊은 인간관계에 겁도 내는... 로맨스소설치고는 아주 평범한 사람. 정말 옆에 있을 것 같은 사람.
뒤에 글쓴님 후기를 보면 나오는 말을 살짝 인용하면서 말해보자면, 세상 사는 것도 힘이 든 데 거기다 사랑까지 보탤 기운이 없는 진솔에게 어느날 서서히 다가온 사랑. 그 소심하던 여자가 사랑앓이도 해보고, 큰 용기를 내서 건에게 고백을 하게 된다. 건은 예바른 거절 비스무레한 말에 그래도 기다려 보겠다는 말을 하던 진솔. 이 말을 하면서도 기뻐하고 좋아하던 모습에 마음이 너무 짠~했다. 하지만 얼마지 않아 선우와 애리의 문제때문에, 그리고 순간의 진심을 뱉어버린 건때문에 진솔은 아주 상처를 받게 된다. 진솔뿐만 아니라 이 말을 들었던 애리도, 애리를 포기해야 할 지도 모를 선우도... 그리고 말을 내뱉아버린 건도.
건은 진솔과 대화를 하고 오해를 풀고 싶지만, 진솔은 다시 제 마음속으로 꽁꽁 숨어버린다. 건 같은 경우에는 지친 짝사랑에 힘이 빠질 때 진솔과 알게 되고, 충격받았을 진솔을 위해 잠시 시간을 두는 그 동안에 진솔은 건을 피해 도망가버린다. 이 부분에서 생각한 점이... 건 같은 남자는 참 좋다. 따뜻하고, 사람의 마음도 잘 헤아릴 수 있다. 시인답게(?) 섬세한 마음씀씀이도 가지고 있고 그런데 그 점이 오히려 진솔이 도망갈 기회를 준 거 아닌가. 그렇게 멀어진 마음은 너무 슬펐다.
아, (동생말로는) 나도 꺽어지는 20대인가보다. 불같은 사랑도 좋지마는 점점 작고 평범하고 우리 둘에게만 특별한 이야기가 계속 땡긴다. 늙었나. 그런 의미에서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은 아주 딱! 맞는 글이다. 평범한 일상속에서, 평범하게 사람들을 만나고, 생각하고, 음악을 듣고, 일을 하고... 자연스러운 만나게 그냥 만나고 싶고, 그냥 그립고, 그냥 사랑하는 이야기를 아주 담백하게 풀어내고 있다. 내가 사랑하는 것 처럼. 그래서 아무렇지도 않은 척 했던 진솔이 컴퓨터가 고장나서 글을 못 쓰고 수리기사는 시간이 되도록 나타나지 않고 계속 일이 엎친 데 겹치자 결국 터져버리는 그 때. 그 때 부터 나도 눈물을 흘리면서 책을 읽는 것 같다. 끝까지 담담한 척 하는 진솔도 슬펐고, 안타깝게 진솔을 놓치고 힘들어하는 건도 슬펐고... 그런 점을 너무나 담담하게 글로 표현되 있는데 또 왜 그리 슬픈지.
이렇게 새벽 4시까지 책읽는다고 지금 6일 새벽 4시쯤까지 잠을 못 이루고 있다. 행복하고 행복할 수 있는 글이다.
중간중간 내가 먹고 싶은 예쁘고 아릿한 문장들도 많고, 기억나는 부분도 많고.
★ Eunyoy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