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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무늬 미용실 ㅣ 북극곰 꿈나무 그림책 28
홍유경 글.그림 / 북극곰 / 2017년 4월
평점 :
나는 책이 참 좋다. 한장 한장 넘길 때마다 다음에 벌어질 일들이 무엇일까 궁금해지고 맘을 졸이며 책장을 넘기게 하는 그 순간이 너무나 좋다. 당연한 흐름은 흐뭇하고 편안해서 좋고, 예상치 못한 흐름은 놀라움과 작가의 창의력에 감탄할 수 있어서 좋고, 어쩜~ 하는 깜찍한 흐름은 미소가 절로 지어지고 한참동안 책장에 머물며 재치가 부러워 좋다.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설레는 맘으로 책장을 넘기는 순간을 정말 오랜만에 만난 듯 싶다.
오늘 내가 만난 그림책이, 딱이다.
당연하고도 놀랍고 깜찍하기까지 한 이야기, 바로 『줄무늬 미용실』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줄무늬 미용실이라는 미용실 헤어컷 광고지가 『줄무늬 미용실』의 표지 그림이다.
어느 컷이든 원하는 컷이면 무엇이든 다 할 수 있으며, 요즘 잘 나가는 헤어스타일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는 친절한 안내와 같은 광고지 표지만 보고는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 지 감히 상상할 수가 없다.
너무나 앙증맞은 사자소녀가 줄무늬 미용실을 앞에 두고 주먹을 말아쥔다.
미용실 방문을 앞두고 결의를 다지는 듯, 눈빛이 빛나고 입은 꾹 다물었으며, 주먹에 힘이 잔뜩 들어가있다.
사자소녀의 미용실 첫 방문.
얼룩말 미용사의 다정한 말투와 잔뜩 긴장된 사자소녀와의 첫만남.
너무나 대조적인 두 인물의 표정에서 뭔가 심각한 일이 벌어질 것만 같이 가슴이 두근거려온다.
두 인물의 표정이 어떻게 바뀌어갈지, 그들 앞에 놓여진 문제에 대해 궁금증이 든다.

모자 속에 감춰둔 사자소녀의 꼬불꼬불한 머리카락이 공개되는 순간,
여유롭던 미용사의 표정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다.
보이는 것만 믿은, 너무나 단순한 실수를 저지른 셈이다.

곱슬머리를 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머리카락의 로망. 바로 쭉쭉 뻗은 마술과 같은 머리 스타일.
꼭 한 번은 하고 싶었던, 항상 도전해 보고 싶었던 스타일.
미용사는 사자소녀의 스케치를 보고 머리에 마법을 걸어주리라 호언장담하고
본격적인 곱슬머리 시술에 들어선다.

여기서 잠깐!
한번에 성공하는, 사자소녀가 너무나 행복해 하는 모습으로 단순하게 흐름을 잡았다면
난 절대 좋은 그림책을 만났다고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미용사의 손길과 열로 조금씩 지쳐가는 사자소녀.
그렇지만 그림 속 내 모습을 상상하며 기대에 찬 얼굴로 변해갈 쯤
거울에 비친 모습을 보고 사자소녀는.
어떻게 이럴 수가!
곱게 내려간 머리 사이로 보이는 돌돌 말려진 머리카락들이
하나씩. 세가닥씩, 그 보다 더 많이씩
뿅! 뿅! 원래의 사자소년의 모습으로 돌아오고 만다.
사자소녀의 놀라운 표정과 도전 실패에서 갖게 되는 좌절 그리고 어떠한 방법으로도 불가능하다는 현실 직시.
그 모든 것이 내재된 표정에서 안타까움이 절로 일었다.

왜 안 되었을까?
중화를 제대로 못 해 준 탓일까?
모발이 너무 두꺼워서 파마가 잘 안 먹는 탓이었을까?
얼룩말 미용사는 손님의 기분을 맞춰주고
손님이 원하는 머리스타일을 잘 만들어내는
동네 어디에나 있는 그런 미용사가 아니었다.
상처받은 사자소녀의 머리에 과감히 가위를 높이 드는 얼룩말 미용사.
미용사의 손에서 새롭게 탄생한 사자소녀의 스타일은
정말 누구도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모습이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어떻게 할 수 있었을까?
얼룩말 미용사는 파마약으로도 풀어지지 않는 곱슬머리 사자를 손님으로 맞아
고군분투 끝에 마무리짓지만,
사자소녀의 울음만 자극했을 뿐, 원치 않는 결과를 낳게 된다.
그러나 얼룩말 미용사는 절대 그만두지 않는다.
사자소녀가 가진 본래의 특성을 잘 살린 새로운 스타일의 머리를 탄생시킨다.
사자가 가진 이미지를 살리고
꼬불꼬불 사방으로 도망다니는 머리를 얌전히 한 자리에 모일 수 있도록 만든
미용실에서 사자소녀는 자신이 가진 곱슬머리가 언제든 새로운 변화를 꿈꿀 수 있는 확신을 갖게 되었으며
자신이 멋진 사자임을 잊지 않게 되는,
감추려고만 했던 단점이 매력이 되어 빛을 발하는 순간,
사자소년의 자신감은 최고였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우리에겐 누구나 한 가지 또는 그 이상 감추고 싶은 것이 있다.
이는 우리가 더불어 살기 위한 필요조건이며, 좀 더 나은 나를 꿈꾸기 위한 필수조건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약점이라 여긴 것을 내내 감추기만 하고 세상 빛을 못 보면
그것은 항상 약점일 수 밖에 없지만
세상에 내보이는 그 순간, 그것은 약점이 아닌 또 다른 힘을 발휘하게 된다.

사자소녀에게 '곱슬머리'는 약점이자 단점이었다.
모자 속에 감추었던 자신의 약점을 세상으로 꺼내보이는 그 순간
자신의 약점과 마주서게 된다.
자신의 약점이 약점인채로 남아 상처를 받는 순간도 분명 있겠지만
상처가 아물어가는 과정 속에서 약점의 힘은 점점 미약해질것이며
약점을 보완하기 위한 또 다른 면역 기능이 강화되어
새로운 매력으로, 새로운 강점을 찾아내는 순간을 만나게 될 것이다.
약점과 마주하는 그 순간, 자신을 믿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