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냄새 - 세종도서 교양부문 선정작 책고래아이들 6
추경숙 지음, 김은혜 그림 / 책고래 / 2017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린 시절 우리 아빠는 광부였다. 갱도에 들어가야만 했던 우리 아빠.

겁은 많고, 겁많은 걸 누구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은 자존심 센 우리 아빠는 14년 동안 처자식을 책임져야 하는 광부로 살았다.

하루 일을 마치고 깨끗하게 씻고 퇴근하는 아빠의 모습에서 나는 광부의 삶이 얼마나 고되고 힘든지 전혀 눈치 채지도 못했고, 아빠의 삶이 어떤 것이지 궁금하지도 않았다. 아빠의 삶이 궁금해 하기엔 내가 너무 철없고 어렸던 것 같다.

광산이 폐광되고 서울로 올라온 우리 아빠.

자식 넷을 키우기엔 가진 기술이 없기에 서울에서의 삶이 녹록치 않았다. 늘 일자리를 찾아 헤매며 공사판을 전전긍긍할 때의 우리 아빠에겐 항상 땀에 절은 냄새와 비와 살냄새가 뒤섞여 매캐한 냄새가 났다. 저녁을 먹고 나면 뉴스를 틀어놓고 잠에 취하셨다. 텔레비전을 꺼 드리고 방에 불을 끄고 돌아서면 비누로도 지워지지 않은 아빠의 고단한 냄새가 방 안 가득 찼다.

그렇게 힘들게 자식 넷을 키워낸 분인 걸 알면서도 난 아빠의 존재를 참 많이 감춰두었다. 아빠의 직업이 떳떳하지 못해서, 아ㅃㅏ의 말투가 다정하지 못해서, 아빠와 나의 간격은 늘 일정선을 달리고 있어서 등 다양한 이유에서 난 아빠의 존재를 불편해 했다.


아빠의 비린내 나는 냄새가 불편한 담이와 근사한 하얀 가운으로 멋들어진 직업의 의사지만 환자에게 치여 지쳐있는 아빠의 모습에 실망하는 상민이 그리고 세상의 때를 가장 잘 벗겨내는 그렇지만 아빠를 자신있게 드러내지 못하는 태양이.

세 명의 아이들이 아빠의 직업으로 빚어내는 갈등을 소재로 '축구'라는 공통어를 만나 서로를 알아가는 이야기, 『아빠 냄새』


담이는 친구들의 입에서 흘러나온 '비린내'라는 말에 아빠의 남색 조끼와 싱싱수산이라고 크게 쓰인 모자가 떠올라 친구들에게 아빠의 직업을 말하는 일은 하지 않겠다고 결심한다. 아빠는 싱글벙글 회를 뜨면서 손님들을 맞이하고 아빠의 가게에 있는 생선들에 대해 자부심이 넘쳐난다. 아버지의 가게에 축구를 함께 하는 상민이 아버지가 찾아오면서 담이는 아빠의 직업이 더 불편하게 느껴진다. 상민이 아빠의 직업은 의사. 아빠와는 너무나 다른 직업을 가진 상민이이가 내심 부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상민이는 담이가 전학오는 순간부터 내내 마음이 불편하다. 담이가 오기 전까지는 축구하면 오상민이었는데, 이젠 담이의 뒤에 자신의 이름이 붙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담이만큼 하기 위해 애쓰고 있지만 담이만큼의 실력은 되지 않는다. 상민이는 아빠가 의사라는 것에 자부심을 갖지만 아빠는 환자와 광어회. 이 두가지만 알 뿐 상민이에 대해 알려고 하지도 알려고 할 시간도 없다. 바쁘다는 이유로 축구하는 상민이에게 광어회를 배달시키는 것으로 아빠의 할 일을 대신한다. 아빠 직업에 대한 조사 숙제로 아빠의 병원으로 친구들을 데리고 갔지만 많은 환자들에게 치여 친구들은 하나 둘 떠나고 지쳐있는 아빠의 모습에 상민이는 상처 받고 돌아선다.


태영이 아빠는 동네 자그마한 목욕탕의 사장이자 때밀어주는 아저씨다. 태엉이는 세상에 많은 사장님 중에 아빠가 제일 별로라고 생각한다. 아빠의 직업을 기자라고 속이기까지 하려는 마음을 가진 태영이는 담이에게 아빠가 목욕탕에서 사용하는 때수건을 건네면서 아빠의 직업을 사실대로 말할 수 있는 날, 담이와 친하게 지낼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하는 작은 기대감을 갖게 된다.


담이와 상민. 태영이의 축구 경기 속에서 세 아이의 아빠가 자연스럽게 만나 어우러진다. 아빠들의 직업이 아닌 아이의 아빠로 만나 서로 공을 향해 달려가고 골을 위해 온 몸을 던지는.

세 아이는 아빠들의 어울림에서 직업의 우월함이 아닌 나를 위한 아빠의 모습을 만날 수 있었으며, 아빠가 가진 직업에 대해 숨기려고 했던 자신의 생각은 자신의 생각일 뿐, 친구들에게 그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느끼는 시간이 되었을 것이다.


나 또한 아빠의 직업과 아빠에 대해 마음을 열고 받아들이기까지 참 오랜 시간이 흘렀다.

몇년 전, 광부를 다룬 다큐를 보면서 아빠의 젊은 시절이 깜깜한 갱도와 함께 흘러갔구나 생각하니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나이 70이 넘은 지금도 택배 기사 올 때마다 은행 갈 때마다 확인하고 또 확인하는, 겁쟁이 우리 아빠가 매일 아침 갱도 안을 들어갈 때 얼마나 숨 죽이고 두 주먹 불끈 쥐고 들어갔을까 생각하니 마음 한 켠이 아려온다. 아빠는 이제 동굴은 절대 못 들어가는 본래의 아빠로 돌아왔다. 동굴 속이 마냥 신기한 손자들이 할아버지의 손을 잡아끌어도 멀찌감치 쳐다볼 뿐 들어가지 않는다. 자식 위해 참아냈던 14년.


항상 곁에 있기에 너무나 당연하게 여기며 그것이 주는 고마움을 우린 눈치채지 못하는 것 같다. 그리고 너무나 늦게 그것을 눈치채고 후회하거나 반성하게 된다. 세 아이의 모습을 보면서 그들의 철없음에 나를 떠올렸고, 아빠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는 모습에서 너무나 늦게 깨우친 나를 반성하게 되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