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질문 - What is Your Wish?
오나리 유코 글.그림, 김미대 옮김 / 북극곰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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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의 짝을 스물 두살 초여름에 만났다.

친구라는 이름으로 처음 만나 '꽃다운 나이'라는 20대를 함께 보내고 30대에  부부로 가정의 울타리를 만들었으며,

40대인 지금은 두 아이의 부모로 서로를 보며 나이가 들어감을 인정하며 함께 살아가고 있다.  

우리는 20대에 서로의 호칭을 그대로 사용한다. '여보', '당신'보다는 이름의 끝글자로 '~야' 또는 '~씨'로 부른다.

예의가 없다는 말보다는, 여전히 친구처럼 살면서 소꿉장난 하듯이 재미있게 살고 있다는 말을 들으며 살고 있다.


우리는 상대방을 향한 기대를 안고 만난 것이 아니었기에 서로에 대한 환상이 없다.

그러기에 우리는 실망이 적고 서로가 잘하고 못하는 것을 너무나 잘 알기에

잘하는 사람이 먼저 나서서 하고, 못하는 사람은 그 뒤를 따라가며 놓치는 부분이나 도움을 필요로 하는 부분에 힘을 보탠다.

우리는 잘하는 것을 더 잘하려고, 못하는 것을 잘하기 위해 애쓰며 살지는 않는다.

서로가 인정하는 범위에서 노력하며 자연스럽게 도움을 나누며 그렇게 우리는 15년을 더불어 한다.


우리 부부는 만난지 20년이 지나고 있다.  매일 반복되는 출근길 아침 우리는 하루도 빼놓지 않고 현관앞에서 아침 인사를 나눈다.

화이파이브와 서로를 위한 엄지 척으로 최고의 힘을 불어넣어주고 입맞춤으로 서로의 하루를 응원한다.

내 뒤로 또는 내 앞으로 두 아이를 세우고 줄지어 이어지는 아침 인사는 우리 가족의 아침 풍경이며 이것으로 서로에 대한 안부를 대신한다.

퇴근시간 벨소리 또는 번호키 소리에 현관으로 뛰어가는 두 아이들. 아빠의 가슴을 향해 전력질주해서 뻗어가는 에너지는

힘든 하루를 보낸 아빠에 대한 감사함과 만남의 반가움이 어우러져 서로에게 편안한 기운을 전한다.


나란히 걸어가며 입을 맞추는 남녀 한쌍의 모습에서 사랑이 시작되는 연인들을 위한 지침서라는 느낌을 받았다.

책장을 넘기면서 나도 모르게 설레고 얼굴이 발그레해지는 것이 가슴을 따뜻함으로 감싸주었다.

이야기가 시작되기 전, 속지에는 손을 꼭 잡고 걸어가는 연인 중 남자가 발 앞에 놓인 꽃 한송이를 넘어 지난다. 그 뒤를 따라 걷는 여자도 꽃을 넘어 발을 내딛는다. 여자는 지나온 길을 돌아보며 꽃의 상태를 살펴본다. 그렇게 남녀 한쌍은 서로가 함께 한 방향으로 걸어가며 서로가 서로를 닮아가며 서로가 사랑하듯 주위의 작은 생명까지도 사랑하며, 그 사랑을 나누고 있다.

서로를 닮아간다는 말이 그림으로 충분히 느껴진다.

 


 

우리는 때로 서로의 마음을 의심하고, 내가 온전히 그의 마음에 가득찼는지 확인할 때가 있다.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사람이라면, 다가온 기회를 잡을 세라 달달하고 가슴을 울리는 말로 상대를 안심시키겠지만

오글거리고 손끝이 저릿한 느낌이 들어 표현하는 것이 힘든 사람이라면, 짤막한 대답으로 표현을 다 했다고 할 수도 있다.

나 또한 달고 부드러운 말을 못하는 사람인지라, 쉽지 않은 순간들이 가끔 찾아들 때면 몇번씩 속으로 되뇌이며 연습의 시간을 갖는다.

한 번 하면 두 번하기는 쉽다고는 하지만, 매번 망설이게 되고 큰 맘 먹고 하고는 깊은 숨을 내쉰다.

스스로 대견하기도 하고 큰 산 하나를 넘은 듯한 후련함이 찾아들기 때문이다.


『행복한 질문』속에 등장하는 남녀의 대화를 들으면서 오글거리는 손발과 가슴이 찌릿찌릿해지는,

몸과 마음에 여러 변화를 한꺼번에 안겨준다.

현실에서 이렇게 대화를 나누기는 쉽지 않은 일이지만,

상대가 원하는 대답이 무엇인지 알고, 그 말을 받아주고 그대로 표현해주는 것,

이것이 서로에 대한 사랑을 확인하고 간직해주는 믿음의 시작임을 느낄 수 있었다.


 

참 예쁘다. 혼자 다녀오라고 해도 가지 못할 길인지 알면서도 묻는 여자의 마음을 남자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가지 못할 걸 알면서 허락하는, 멋짐만을 챙기는 것이 아니라

혼자 가는 것이 불안하고, 혼자 남은 내가 당신이 보고 싶어 힘들 거라는 자신의 마음만 바라보고

눈물바다에 빠져 죽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대답,

물어보는 이는 받는이의 사랑으로 따뜻하고, 대답하는 이는 자신의 곁에 머물러줄 상대가 있기에 따뜻할 수 있다.

이렇게 행복은 나만이 아닌 서로가 함께 느꼈을 때 진정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 날, 튀김을 하는 내 곁에 작은 아이가 돕고 싶다고 의자를 받치고 섰다. 내가 위험하다고 주방에서 나가달라고 부탁했다.

아이는 움직이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그 모습을 보던 나의 짝이 위험과 화상에 대해 말하며 당장 내려올 것을 명령했다.

그러자 아이는 따져 물었다.

"그럼 엄마는. 엄마도 위험하고 화상 입을 수 있는데. 왜 괜찮아?"

짝은.

"엄마도 위험해. 하지만 엄마는 어른이라 너보다 더 조심할 수 있어."

아이는,

"그래도 엄마도 화상입을 수 있어. 그럼 엄마 얼굴에 흉터 남아."

짝이 말하길.

"맞아. 엄마도 기름에 데이면 화상입고, 얼굴이 지금처럼은 안 되겠지.

그렇게 되면 슬프고 마음 아프겠지만 우리 가족은 엄마의 원래 모습을 알고 있으니까

이겨낼 있어.

그리고 평생 아빠가 엄마 옆에 있어 줄거니까 괜찮아.

그런데 넌 앞으로 하고 싶은 일 하고, 좋아하는 사람도 만나야 하는데,

당당하게 나설 수 있는 용기 있어? 용기를 다 배울 때까지는

 

아빠랑 엄마가 위험한 일은 허락할 수 없어."

아이는 슬그머니 내려와 의자를 치우고 식탁에 앉아 나의 일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내가 어떤 모습일지라도 내 곁에 있어준다는 짝의 말에 울컥했다.

20년전보다 생기를 잃어가고, 눈가에 목에 주름이 지고, 피부는 점점 나이듦을 알리듯 변화하고 있는데도

여전히 내 곁에 머물러주겠다는 말. 그 어떤 달달한 말보다 나의 마음에 파장을 일으켜주었다.

사랑은 표현이고, 믿음은 느끼는 것이다.

『행복한 질문』을 읽으면서 달달한 말 나누지 못하는 우리 부부지만

서로는 여전히 곁에 머무기를 바라며,

그 머뭄이 오래도록 함께 하리라는 믿음이 있음을 확인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새로 시작되는 사랑을 앞둔 많은 이들에게 질문과 답을 가르쳐주는 사랑 지침서.

서로가 서로를 향하고 있을 때 가장 따뜻한 시선이 오고 가고 있으며,

심장은 가장 빨리 뛰고 있음을

영화의 한 장면을 보여주듯 그려놓았다.

읽는 동안 따뜻했고, 읽는 내내 사랑스러웠다.

나의 사랑도 이들과 함께 행복하다.

 

『 지금 곁에 있는 사람에게

때로는 얼굴이 빨개지도록 쑥스러운 한마디를

대로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한마디를

그렇게 마법 같은 한마디를

건넬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우연한 만남에 감사하며. 』

 

우연하게 만나 함께 한 나의 짝에게

오늘은 나의 마음을 담은 한 마디를 꼭 건네고 싶다.

감사함을 담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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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릿마리 여기 있다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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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자원봉사를 꼭 한 번 해보고 싶다는 막연한 희망을 갖고 있었다. 여러 매체를 통해 자원봉사의 역할과 분야를 살펴본 뒤 가까운 복지관의 의뢰로 장애인의 컴퓨터 활용과 외출을 도와주는 일을 맡게 되었다. 나보다 나이가 10살이나 많은 아저씨와의 만남은 사회 초년생인 나를 당혹스럽게 하였다. 너무나 조심스러워서 눈높이를 맞추어 컴퓨터를 가르친다는 것이 조금씩 벅차오고 부담으로 자리했다. 그 분과의 만남이 이어지면서 내내 내 머릿속에서는 내가 왜 이 일을 선택했을까? 무엇을 기대했던 것일까? 내가 정말 그 분을 가르칠 만한 능력을 갖추고 있는가?’하는 물음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런 나의 마음을 그분이 먼저 살펴봐 주시고 힘들지 않냐고, 꼭 컴퓨터를 가르쳐야 하는 건 아니라고, 사회 친구가 하나쯤 필요했을 뿐이라고 먼저 마음을 열어주셨다. 그러나 난 너무 어리고 준비가 되지 않은 봉사자였다. 그 분의 열린 마음을 나의 무능력을 탓하며 봉사자 명단에서 내 이름을 삭제하게 되었다.

 

우리는 누구나 처음 시작은 어설프다. 나의 생각과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는 현실에 막막함을 맛보며 나에게만 일어나는 듯한 상황 앞에서 좌절하고 자신의 잘못이라고 단정 짓고 그 일을 매듭짓는다. 그것이 누군가를 미워하고 괴롭히는 것보다는 훨씬 내 맘을 편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는 따지고 할퀴는 가운데 상처 입을 수 있는 내 마음에 대한 방어기제를 사용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브릿마리는 지금 불편하다. 가정주부로 살아온 삶을 탈출하여 사회에 첫발을 내딛었기 때문이다. 본인이 원한 일이기는 하지만 해야만 한다는 현실이 그녀를 더 불안하게 하며 주위를 돌아볼 여유를 주지 않는다. 고용센터 직원과의 상담에서 한 치의 여유도 찾아볼 수 없으며, 센터 운영의 방침 정도는 그녀에게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는다. 브릿마리는 영리하지 못한 여자이며, 애교로 자신의 편으로 끌어당기지 못하는 평범하고 책임감 강한 아내이며, 남에게 피해주지 않으며 자신의 영역을 잘 지켜내는 이웃집 아줌마이다. 이런 그녀는 남편에게 아이들에게, 이웃들에게 이성적이며 냉소적인, 그래서 재미없고 사교적이지 못한 인물로만 제한되어진 삶을 살아왔다. 그녀가 이런 삶을 선택한 것은 절대 아니다. 다만 세상에서 그녀의 유일한 편이 되어준 언니의 죽음은 든든한 울타리를 빼앗아갔고, 엄마의 죽음은 그녀에게 남은 마지막 온기마저 빼앗아가는 가혹한 일이었다. 홀로 세상에 서야 했던 그녀에게는 자신의 감정을 감추고 작은 티끌이라도 닦아내야 하는 것으로 자신의 존재에 의미를 부여하게 된 것이다. 자신의 손길이 닿은 살림살이들은 상대방으로부터 자신를 각인시켜 주는 또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을까 한다.

 

고용센터에서 브릿마리에게 준 첫 직장은, 폐쇄 조치를 기다리고 있는 작은 마을 보르그의 레크리에이션 센터의 관리인이다. 산업화의 발달로 재개발의 바람이 일고, 경제의 침체로 많은 이들이 실업자가 되어 너도나도 도시로 일자리를 찾아 떠나고 마을엔 낙오자라고 이름 지어진 몇몇 사람들만 자리를 지키며 살아가는, 지방정부에서는 처치 곤란의 아주 작은 마을이다. 뭐 하는 제대로 있지 않고, 먼지는 뽀얗게 쌓였으며, 여기저기 얼룩이 묻어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곳, 슈퍼도 보건소도 정비소도 모두 한 곳에서 해결되는 곳, 학교에 갈 시간도 챙기지 못하여 거리를 쏘다니며 이방인에 대한 적대감만 가득한 아이들이 있는 곳, 그곳에 브릿마리가 사회인으로 첫 발을 내딛는다. 모습에서 말투, 그리고 행동하나까지도 맘에 드는 구석 하나 없는 이 곳에서 짜여진 틀 속에서만 움직이는 브릿마리는 앞으로 어떻게 버텨낼 수 있을까.

- 화분에는 흙만 담겨 있는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그 밑에서 꽃들이 봄을 기다리고 있다. 겨울에는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 것에도 가능성이 있다고 믿으며 물을 주어야 한다. 브릿마리는 자신의 마음속에도 그럼 믿음이 있는지 아니면 그저 그러길 바라는 마음뿐인지 더 이상 알 수가 없다. 어쩌면 들 다 없는지도 모른다. 68~69

 

브릿마리는 세상에 혼자 남겨졌다. 남편의 품에서, 안락하고 정돈된 집으로부터 말이다. 브릿마리는 앞으로 적응해야 한다. 모든 걸 한 곳에서 해결하는 곳의 주인인 휠체어 탄 미지의 여인에서 엉덩이에 가시가 달린 못된 소리로 툴툴거리는 보르그의 사람들 그리고 장님은 아니지만 시력이 매우 안 좋은 집주인 뱅크와 저녁마다 스니커즈를 먹으러 찾아오는 쥐까지. 브릿마리는 자신이 가꾼 침실과 발코니 그리고 남편의 다려진 셔츠의 정돈됨이 너무나 그립지만 그 시간 속에 있었던 자신의 시간을 그리워하거나 그 자리로 다시 돌아가고 싶은 간절함은 느끼지 못한다. 그 공간 속에 있던 브릿마리는 고정된 형체였을 뿐 살아서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이며 자신에게 자유라는 향수를 뿌려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 ‘현재 위치.’

가끔은 내 현재 위치가 어딘지만 정확히 알고 있으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더라도 훨씬 수월하게 살아갈 수 있다. 186

브릿마리는 보르그에 남아 희망을 노래하는 아이들을 만난다. 부모를 잃고 투쟁하듯 살아가는 아이들과 경제 침체의 영향으로 파산된 가정에서 자신을 감추며 살아야 하는 아이들, 부모의 고된 삶을 함께 나누며 침묵하는 아이들을 만나면서 하루하루를 자신의 의지로 살아가는 그들의 삶에 자신도 모르게 들어가 있으며 그들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그러나 브릿마리는 그들을 동정하거나 어설픈 위로와 조언을 하지 않는다. 그들의 상처는 상처일 뿐 그가 아니기 때문이다. 겉으로 보이는 그들의 슬픔이 그들의 본모습이 아니라는 것을 그녀는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딱딱한 말투와 정형화된 삶의 규칙이 브릿마리의 전부가 아닌 것처럼 말이다.

 

브릿마리는 어른의 손길이 필요한 보르노의 이름없는 축구단의 코치가 되어준다. 그들을 위한 출석부를 만들고, 유니폼을 빨아주고, 바보 훈련도 열심히 시키며 뻣뻣해서 금방이라도 부러질 것 같은 브릿마리의 마음이 점점 그들에게 굽어지고 그들이 바라는 것을 위해 자신의 몸과 감정을 움직이며 그들과의 소통의 문이 열리기 시작한다. 한 번도 진지하게 본 적이 없는 축구 경기를 보르노 코치가 되어 참여한 경기에서 점프하며 골인에 환호성을 지르고 쉰 목소리로 축구 경기는 그저 그랬다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축구에 왜 열광하는지 아직도 이유를 모르겠다고 답하는 앙큼한 여자로 돌아온다.

- 조그맣게 몇 걸음 걸어가서 있는 힘껏 공을 찬다. 이제는 공을 차지 않을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244

- 그녀는 보르그에서 그런 사람이 되었다. 여벌옷을 트렁크에 챙기고 축구 경기장에 가는 그런 사람이. 368

브릿마리는 여전히 그녀답다. 고운 말도 남을 위로하기 위한 따뜻한 말도 건네지 못한다. 하고 싶지만 하지 못한다. 하면서 살아본 적이 없으며 자신을 지켜가면서 살아가는데 너무나 오랜 세월을 보냈기 때문이다. 그런 그녀에게 슬픔이 찾아온다. 소리를 치고 자신이 온 힘을 다해도 자신이 이겨낼 수 없는 일.

 

부모를 일찍 잃어야 했던 남매의 첫째 새미가 동생들 곁을 떠나게 된다. 복수심에 불타는 막내와 오빠의 죽음과 동생의 복수라는 현실에서 말을 잃은 베가. 그들의 어깨에 손을 올리는 것이 위로의 전부인 브릿마리. 그들은 지금 닥친 현실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들에겐 어떠한 희망도 보이지 않으며 위로도 사치일 뿐, 그들의 현실은 냉혹하기만 하다.

- ”사이코는 위험한 또라이가 됐고 새미도 그걸 알지만, 새미는 예전에 자기 동생을 업고 도망쳐줬던 친구를 배신할 수 있는 그런 애가 아니거든요. 어쩌면 보르그는 단짝 친구를 선택하는 호사를 누릴 수 있는 곳이 아닐지도 모르죠.”

우리는 보르그 안에서 최선을 다해요. 늘 그래왔어요. 하지만 저 아이들 안에서 끓어오르는 불길이 조만간 주변 사람들이나 아이들이 자신을 잡아먹어버릴 거예요.” 229

새미는 자신의 아픔을 함께 나눠준 친구를 져버리지 못한다. 그것이 보르그 아이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배려이며 의리이다. 어른들이 남긴 상처를 이겨내는 방법이었는지도 모른다. 새미를 엄마이자 아빠로 의지하며 살아온 여동생 베가는 오빠의 죽음 앞에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듯 아무 말도 눈물도 흘리지 않는다. 베가는 쓰러질 수 없다. 오빠는 없지만, 오빠 대신 책임져야 할 동생 오마르가 남았기 때문이다. 브릿마리는 아무것도 입에 대지 않는 베가를 보면서 절망을 느낀다. 이렇듯 슬픔과 절망은 자기의 입장에서 느끼는 것이고, 그것은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다만 그가 그 속에서 나오기를 묵묵히 기다려주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을 브릿마리는 알아간다. 그리고 베가는 낡은 공 앞에서 오열을 토한다. 그들에게 축구는 기쁨이고 슬픔이고 실패이고 상처이고 치유제다. 그러기에 그들은 축구를 간절히 원하며 다치고 부러져도 축구를 외면할 수 없는 것이었다.

- 아이들이 탄산음료 캔 사이를 왔다 갔다 달리는 동안, 브릿마리는 그 옆에 서서 거품처럼 온몸으로 번지는 행복감을 느끼며 훈련 자체도 그렇고 그걸 맞든 사람들한테도 그렇고 잘 어울리는 이름이네.”라고 아주, 아주 조용히 중얼거린다. 몇 번이고 중얼거린다. 211

 

브릿마리에게 또 한 번의 결정의 순간이 온다. 한번도 꿈꾼 적 없는 보르그의 생활, 그것이 그녀에게는 마지막 삶의 종착지일 수도 또 한번의 삶의 전환기일 수도 있다. 그녀가 어떤 삶을 원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녀가 보르그에서의 있었던 시간을 그의 삶에 분명 빛이었을 거라 장담한다.

- “우리 어머니가 평생 사회복지 쪽에서 일을 하셨거든요. 그 쓰레기들 한복판에서, 그게 가장 두툼하게 쌍인 곳에서 눈부신 이야기가 탄생된다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셨어요. 그래서 모든 게 보람을 갖게 된다고요.” 그녀는 미소와 함께 그 다음 문장을 전한다.

브릿마리 씨가 저의 눈부신 이야기예요.” 404

 

문을 살짝 열고 놀란 눈을 동그랗게 뜬 회색빛 머리카락을 가진 브릿마리 부인의 모습에서 세상으로의 첫발을 내딛는 아이들의 호기심 가득한 순진한 표정을 만날 수 있었다. 한 남자의 아내로 아이들의 엄마로 살아온 시간에서 벗어나 를 찾아가는 여행길에 오른 브릿마리. 이것은 용기이며 두려움의 시작이다. 생활에 안주하며 살아가는 젊은 우리들에게 브릿마리의 도전과 시작은, 누구에게나 처음은 서툴고 어렵고 부산스러우며 실수투성이에 소통의 단절로 힘들 수 있음을 인정할 수 있는 용기를 준다. 그리고 그 단계를 거치는 과정에 힘을 실어주며, 자신을 온전히 내려놓았을 때 진정한 삶이 시작됨을 알 수 있게 해 준다. 나이를 들면서 지나온 시간을 되짚어볼 때 항상 마음 한 켠에 남아있던 봉사와 장애인 아저씨. 브릿마리 부인의 어설프지만 진심어린 위로를 통해 '처음이라 그랬어. 어린 네 나이엔 실수할 수 있는 거야.'라고 사회 초년생이었던 나를 보듬어주게 되었다.

 

브릿마리 여기 있다는 독립 불가능할 거라 생각했던 브릿마리 부인의 홀로서기를 바탕으로 보르그의 아이들의 슬픔과 희망을 노래하였다. 누구에게나 하나쯤 가지고 있는 슬픔과 절망, 그 뒤에는 상처뿐 아니라 분명 희망이 있으며 그것을 함께 해 주는 손길이 있음을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다. 브릿마리 부인이 핸드백을 힘주어 잡은 두 손으로 새 삶을 걸어나갔듯 내 삶을 위해 온 힘을 다해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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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 가위 - 세종도서 교양부문 선정작 책고래마을 11
용달 글.그림 / 책고래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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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작은 아이 학교 가는 길을 배웅하러 아파트 단지를 돌아 나가면 가방을 멘 고만고만한 녀석들이 씩씩한 발걸음으로 학교로 향하는 뒷모습을 볼 수 있다. 추위에 떨까봐 걱정을 한 엄마들의 손길이 멀리서도 느껴질 만큼 잘 챙겨입은 모습들이다. 등에 멘 책가방과 손에 들린 실내화가방 기본에 학원 이름이 찍힌 가방을 어깨와 가슴을 가로질러 장착해서 걸어가는 아이들의 뒷모습은 '오늘 하루도 바빠요.' 라고 대신 말해주는 듯 하다.

 

현재 우리와 살아가고 있는 학생들은 학교가 원하는 학생으로만 살아가고 있다.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것을 배우는 것이 아닌, 학교가 다음 학교를 진학시키기 위해 세운 기준에 맞추어 배우고, 배우기 위해서, 배우는 것만을 위해서 끊임없이 반복하며 하루를 쉼없이 살아간다.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엄마들에게서 가장 많은 질문이 "공부 어려워요?", "시험 때문에 스트레스 많이 받죠?", "받아쓰기는 어떻게 해요?" 하나부터 열까지 학습이고, 엄마의 스트레스가 벌써부터 시작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초등학교는 말 그대로 기초적인 학문을 닦고, 넓은 세상을 가기 전 사회를 배우고 친구들과의 소통을 하며 자신을 찾아가는 교육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초등학교가 학문의 시작이 되었다.

 

초등학교 5학년이 된 큰 아이는 매일 한숨이다. 왜냐고 물으면 늘 대답은 같다. 모둠끼리 수행평가 준비를 해야 하는데, 다 시간이 안 된다고, 이렇게 맞추면 하나가 안 되고, 저렇게 맞추면 또 하나가 안 되고, 과제 연구보다 시간 조율에 더 많은 시간과 스트레스를 소비한다. 학원 때문에 학습지 선생님이 오시는 날이라서, 외부 수업이라 나갔다가 들어오면 바로 저녁 먹어야 해. 이유도 다양하고 다니는 학원또한 다양한 것이 요즘 아이들의 모습이다. 학교는 모여서 고민하고 서로 의견을 나누면서  성장시켜 나가자는 취지에서 시작된 평가인데, 시간을 맞추다 지친 아이들은 서로 각자 파트를 나눠서 짜집기 하는 것으로 대신하며 마무리까지도 서로 떠넘기기 일쑤이다. 자신이 못하겠다고 했음 고마운 마음을 가져야 하는 건 우리 부모세대의 마음이며, 지금의 아이들은 친구가 한 결과물을 보고 평가만 하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애쓴 사람은 자신의 정성과는 상관없이 검사받는 기분으로 친구들의 평가를 받으며 짜증을 내고 사소한 다툼으로  마무리가 되기도 한다. 소통을 위한 수행평가가 아이들에게는 평가의 실력만 키우게 하는 부작용을 낳은 것이다.

 

손잡이가 빨간 가위는 시계를 오려 놓았고, 시계 속에서 도망이라도 가려는 듯 굳게 주먹을 쥔 더벅머리 한 남자 아이가 그려진 표지는 색상이 주는 효과에서인지 몽환적이고 새로운 세계로의 여행을 떠날 듯한 느낌을 준다. 빛바랜 청색과 대조적으로 빨간 손잡이의 가위, 이야기 속의 중심이 주는 버팀과 주목을 받기에 딱 좋은 색상이 가위와 시계가 가진 역할이 무엇일까 궁금증을 일게 한다.

 

비구름을 잔뜩 머금은 먹구름을 연상케하는 더벅머리 친구 건이는 늦잠으로 지각을 한다. 지각을 했을 때의 기분과 교실에서의 상황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건이는 학교로 향하는 발걸음이 너무 무겁고 학교가 너무 멀게만 느껴진다. 마치 학교가 멀어서 지각을 할 수 밖에 없는 듯한 분위기에서 건이의 마음을 살짝 건드려주었다. 어떤 핑계를 대서라도 지각에 대한 당당한 변명을 하고 싶은 마음, 이것은 건이 뿐만 아니라 약속에 늦은 어른들과 지각을 하게 된 엄마 아빠의 마음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교실문을 열고 들어선 건이의 표정엔 울음과 두려움, 불안감이 겹쳐져 너무나 힘든 싸움을 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나의 이 생각은 건이에게 있는 마법가위로 부터 자유롭게 해방되고 만다. 뭐든 맘대로 지우고 없앨 수 있는 마법가위. 바로 건이의 손에 있는 마법가위이다. 건이는 빙글빙글 도는 숫자때문에 자유를 빼앗기게 된 시계를 과감히 자르고, 학습 중심의 교육으로 정형화된 학생들을 키워내고자 애쓴 선생님들께 오후 하루 쉴 수 있는 여유를 주는 베짱도 부린다. 쇠창살 사이로 보이는 선생님들의 표정엔 하나같이 우울하고 지각으로 혼자 교실로 들어섰던 건이의 표정을 그대로 하고 있어 누구나 원하지 않는 일을 하게 될 때는 어느 누구도 행복할 수 없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건이는 마법가위로 시간이 멈춘 기쁨을 혼자서 쓰지 않는다. 친구들과 다함께 놀이동산을 맘껏 뛰어다니며 함께 하는 세상에서만 느낄 수 있는 활기참과 기쁨, 자유를 만끽한다. 아이들의 얼굴엔 웃음이 떠나지 않으며 누구 하나 지친 내색없이 뛰어다니며 영원한 자유의 세상을 꿈꾸는 듯 행복한 표정들이다. 우리 아이들이 진정한 원하는 시간은 바로 지금, 이순간일 것이다. 시간에 맞추고, 점수에 맞추고, 어른들의 눈에 차는 행동을 보여하는 그야말로 짜여진 틀 속에서 절대 벗어나지 말아야 하는 우리 아이들에게서는 절대 찾아볼 수 없는 표정을 그림책 속의 아이들은 짓고 있다.

 

아이들이 세상에 나와 부모를 향해 처음 지은 미소, 그 미소 한번에 육아의 스트레스, 고부간의 갈등 등 모든 시름이 다 사라졌던 기억, 한번쯤은 갖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차차 아이들이 자라면서 아이들의 미소보다는 아이들이 가지고 온 상장과 숫자 속에서 그 미소를 찾으려고 애쓰는 안타까움 속에서 살아가는 부모가 되었다는 것이 너무나 슬프다. 아이들의 환한 미소는 좋은 대학 가면 저절로 웃게 될 거야. 하는 착각은 이제 그만해야 한다. 한 번 잃은 미소를 다시 찾기는 쉽지 않은 일을 수도 아주 쉬운 일일 수도 있다. 그 때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주어진 '오늘'이란 시간이 그 때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 아이의 미소는 우리 부모의 몫이며 책임이다. 아이들의 웃음이 집안에서 밖에서 학교에서 마을에서 들릴 수 있도록 그들의 세상을 인정해 주고 그들에게 주어진 '자유'라는 권리를 찾아주어야 한다. 우리 아이들의 미소를 책임지는 어른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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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붕 위 루시 북극곰 꿈나무 그림책 22
김지연 글.그림 / 북극곰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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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를 다니는 두 아이의 학교에 볼일이 있어 잠깐 들리면 쉬는 시간에 자유롭게 앞 뒤 공간을 이용하여 공기와 카드놀이, 보드게임을 하느라 삼삼오오 모여 웃음꽃이 피고 사뭇 진지한 모습까지 볼 수 있다. 이렇게 즐겁게 친구와 어울리는 아이들이 수업을 마치면 바로 집으로 돌아와 조금 밖에 못 놀았다고 아쉬워한다. 날씨 좋은 날, 나가서 놀라고 하면 모두 하교 후 다음 스케줄이 있어서 함께 놀 친구가 없다고 집에서 놀겠다고 한다. 하루에 3~5개의 스케줄을 소화해야 하는 아이들에게 놀이터는 가면 안 되는 곳이 되었고, 친구와 노는 것은 가당치도 않은 일이 되어 버렸다. 아이들이 서로 어울리며 몸을 부딪치고 서로 다른 의견을 조율해가면서 다투기도 하고 화해도 하면서 함께의 즐거움을 배워야 할 기회를 놓치고 있음에 부모로 어른으로 안타까움이 절로 생긴다.

   

 

아름다움을 즐길 줄 아는 고양이 루시는 햇살이 가득 쏟아지는 날씨 좋은 날, 지붕 위에서 바라본 풍경의 아름다움에 푹 빠져든다. 그 아름다움은 그 누구에게도 빼앗기고 싶지 않을 만큼 평화롭고 최고의 풍경이었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 밝게 빛나는 태양, 한적한 시골 마을의 평화로움을 한 눈에 내려다보는 이 시간이 루시는 마치 자기 세상 같아 황홀하며 이 아름다움을 혼자만 만끽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긴다. 나와 너는 다름을 이렇게 느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지붕 위의 루시를 올려다보는 친구들은 루시가 느끼는 행복을 함께 느끼고 싶어 했지만 루시는 용납하지 않는다. 지붕 위에서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혼자만의 시간을 누린다. 친구들이 함께 공놀이할 때도, 머리를 맞대고 먹이를 먹을 때도, 나른한 오후의 낮잠을 즐길 때도 루시는 그보다 더 좋은 것을 누리고 있음을 과시하기라도 하듯 즐거움도 배고픔도 졸음도 참아 이겨낸다. 루시가 느끼는 행복은 과연 얼마나 될까?

 

몸을 굴리며 놀고 싶은 자유와 허기짐, 따스한 햇살 아래 몸을 누이는 편안함 그것을 모두 포기할 만큼 아름다움이 좋았을까? 루시는 나만이 누리는 그 여유가 오직 나에게만 주어지는 그 삶을 너무나 갖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것만 있으면 세상 어느 것도 부럽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찬란한 햇살아래 도도한 자세의 루시도 시간이 지나면서 지쳐감이 느껴진다. 루시의 눈동자의 크기와 눈썹의 변화, 입꼬리의 길고 짧음과 입꼬리가 향하는 방향에 따라 달라지는 감정의 변화가 너무나 선명하게 표현되고 있어 책장을 넘기다가 다시 앞으로 돌아오게 만드는 묘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

 

 

 

지붕 위를 지키기 위한 루시의 노력은 친구들과 함께 하지 못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이건 루시의 선택이었다. 다만 자신의 선택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몰랐을 뿐이다. 루시의 마음이 하늘에 닿았을까. 화창하던 날씨는 곧 비를 내리고 친구들은 하나둘 집으로 돌아간다. 멀어져가는 친구들의 뒷모습을 바라볼 때 루시는 비만큼이나 마음속으로 후회의 눈물을 흘린 건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마지막까지 자리를 하고 있던 루시도 지붕을 내려와 집으로 향한다. 지붕 위에서 내리는 비를 맞으며 앉아 있던 루시는 어떤 마음이 들었을까? 늘 행복하고 아름답기만 했던 풍경도 잠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까? 이는 마치 우리들의 삶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 같다. 오늘 행복하다고 항상 모든 걸 다 누리며 사는 것도 아니고, 오늘 하루 힘들다고 내일 또 힘들다고 할 수 없는 우리의 인생을 잠깐 보여주는 듯 하다.

 

비가 개이고 하늘엔 따스한 햇살이 내리쬔다. 오늘은 루시가 어떤 결정을 내릴까? 루시는 친구들을 향해 잠깐!”하고 외친다. 그리곤 다함께 지붕 위에 올라가 풍경의 아름다움을 공유하게 된다. 루시는 내린 비와 함께 자신의 욕심을 말끔히 씻어 내린 것 같다. 햇살만큼이나 따스한 미소를 지으며 친구들과 나란히 앉은 모습이 너무나 편안해 보인다. 루시는 알았다. 함께 하는 것이 얼마나 따스하고 즐거운지를 말이다. 루시는 풍경의 아름다움도 함께였을 때 더 아름답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지금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고양이로 지붕 위에 앉아있다는 것 또한 느꼈을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아주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인간과 인간 사이의 소통이 도구의 발달로 점차 멀어지고, 혼자 즐기는 문화가 다양해지면서 함께의 의미 또한 소홀해지고 있어 마음이 아프다. 사회로 발돋움하기 시작하는 우리 아이들이 ’, ‘가 아닌 우리의 의미를 바르게 알고 함께 하는 소통의 문화에서 배우고 발전해 나갔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지붕 위 루시혼자에서 함께가 되었을 때의 밝은 미소처럼 우리 사회 또한 함께 걸어서 따뜻한 사회로 변화되길 소원하며, 어른의 한 사람으로 노력해야 함을 절실히 깨닫는 시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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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동이와 원더마우스 북극곰 꿈나무 그림책 21
조승혜 글.그림 / 북극곰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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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에는 동동이 한 분이 있다. 항상 바쁘면서도 제일 여유가 넘친다. 나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대답이 들어온다. 그리고 5분이 지난 후 다시 확인에 들어가야만 몸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런 후 나의 시선이 동동이에게 향해 있음을 감지한 동동이는 씩 미소를 날리며 다음 행동을 개시한다. 내 손안에 들어오는 작은 아이였을 때 기다림 없이 엄마인 내가 척척 해 주었기에 아이가 스스로 할 기회를 빼앗겨서 그런 건 아닐까? 아님 여전히 엄마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걸까? 많이 고민하고 속상해하며 아이에게 빨리 빨리라는 말로 재촉하며 다그치기에 이르렀다. 유독 내 아이만 이런 건 아닐까 하는 불안감과 함께 말이다.

 

속이 시원하다. 세상에 우리 집 동동이가 또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나의 불안감은 저만치 사라지고 입가에 미소가 절로 지어지는 동동이. 바로 북극곰 출판사에서 따끈따끈한 신간으로 나온 동동이와 원더마우스가 고민으로부터 탈출시켜주는 나의 특효약이 되어 주었다.

 

동동이는 엄마의 말에 여전히 침대 위에 누워 있고 게임과 이별을 할 줄 모르며, 쇼파에 누워 간식을 먹으며 TV시청에 빠져 학교 가는 시간도 스스로 챙기지 못한다. 동동이의 일상이 반복되던 어느 날 아침 대답과 동시에 입이 벌떡 일어나 샤워하고 양치하고 밥을 먹는다. 그리고 학교도 입이 먼저 출발하기에 이른다. 놀란 동동이는 입을 따라 욕실로 식탁으로 학교로 뒤따르며 정신없이 교실에 앉는다. 우리의 동동이가 이렇게 재빠르게 움직이는 모습은 처음인 듯 하다.

친구와의 생활은 좀 다를까, 그렇지 않다는 것이 우리 동동이의 일관된 모습이다. 축구하자는 친구의 권유에 대답과는 달리 가방 멘 채 서 있는 동동이. 축구골대에 골인을 하고 돌아오는 입의 여유로움. 친구들까지도 동동이보다는 입이 축구를 잘 한다고 부추긴다. 골이 잔뜩 난 우리 동동이는 입을 꽁꽁 묶어 달면서 , 내가 공만 차 봐라. 바르셀로나도 간다.”한다.

 

   

 

어떻게 되었을까? 우리의 입은 정말 빠르다. 바르셀로나 운동장에 턱 하니 자리를 잡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 없어진 입을 찾고 또 찾지만 동동이는 찾을 수 없었다. 이미 동동이의 말을 실행에 옮긴 입이니까. 뉴스 해외토픽으로 입을 찾은 동동이는 바로 비행기에 오른다. 운동장을 누비는 입을 향해 뜰채를 휘두르는 동동이는 땀이 송골송골 맺혀 떨어진다. 당혹감이 어린 얼굴에서 우리 집 동동이를 만날 수 있었다. 기다리던 엄마가 화내기를 포기하고 앞서서 대신 일을 치르고 나면 우리 집 동동이가 짓는 바로 그 표정이다. 그 때마다 웃어주며 엄마가 우리 동동이 위해서 봉사했다.”라고 말해주었더라면 함께 기분 좋을 수 있었을 텐데 엄마인 나의 기분이 앞서서 무표정으로 일관하고 말았다. 엄마를 보면서 우리 집 동동이는 얼마나 마음이 불편했을까 이제야 아이의 감정을 바라보게 된다.

   

입을 찾은 동동이는 다시는 못 도망가도록 꽁꽁 묶어 집으로 향한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할 말이 남아 있다. “네가 달나라를 가 봐라. 내가 못 잡나.”

동동이는 이제 입을 찾는데 선수가 되었다. 달에 누워 우주를 바라보며 입과 함께 멋진 휴가를 보내고 있으니까. 달나라 다음에는 어디로 가려 할까 자꾸만 궁금해지는 동동이의 입니다.

 

   

 

우리 집 동동이는 항상 말한다.

이 책 조금밖에 안 남았어. 이거 마저 읽고 하려고 했어.”

지금 책상 정리 중이었어. 정리해서 나온 먼지랑 같이 버리려고 했어.”

과일 먹고 양치하려고 했어.”

맞다. 안 하려고 한 건 분명 아니었다. 엄마가 말하니 대답을 미리 해 놓고 자기 스케줄에 맞춰 다음 행동을 하려고 했던 것 뿐이었다. 그러나 대답과 행동의 시간 차이가 나다보니 엄마인 나로서는 기다리기 보다는 다그침이 먼저가 되었던 거 같다.

 

말이 먼저 앞서고 행동은 뒤로 미루는 아이들의 모습을 동동이와 입으로 사실적으로 표현한 그림책 동동이와 원더마우스첫 장을 넘기면서부터 터지는 웃음은 마지막 장이 나올 때까지 웃음이 멈추지 않았다. 그 즐거움과 재치는 아마도 아이도 나도 서로의 모습을 보고 있기 때문에 감정의 선이 배가되었던 것 같다. 하려고 하는 아이, 했으면 좋겠는 엄마, 기다리기가 힘든 친구. 서로가 원하는 것을 빨리라는 말 속에 담아내려고만 했던 것이 아이를 스스로 할 수 없게 만든 건 아닐까 하는 반성이 되었다. 조금 늦어도 기다려주고, 아이와 발 맞춰 나가는 속도를 가져준다면 입과 몸이 따로 움직이는 동동이는 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오늘부터 우리 집 동동이에게 기다림의 미덕을 베풀어보려고 한다.

나는 입을 찾으러 바르셀로나나 달나라로 모험을 떠나게 할 간 큰 엄마가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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