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행복한 질문 - What is Your Wish?
오나리 유코 글.그림, 김미대 옮김 / 북극곰 / 2014년 3월
평점 :
나는 나의 짝을 스물 두살 초여름에 만났다.
친구라는 이름으로 처음 만나 '꽃다운 나이'라는 20대를 함께 보내고 30대에 부부로 가정의 울타리를 만들었으며,
40대인 지금은 두 아이의 부모로 서로를 보며 나이가 들어감을 인정하며 함께 살아가고 있다.
우리는 20대에 서로의 호칭을 그대로 사용한다. '여보', '당신'보다는 이름의 끝글자로 '~야' 또는 '~씨'로 부른다.
예의가 없다는 말보다는, 여전히 친구처럼 살면서 소꿉장난 하듯이 재미있게 살고 있다는 말을 들으며 살고 있다.
우리는 상대방을 향한 기대를 안고 만난 것이 아니었기에 서로에 대한 환상이 없다.
그러기에 우리는 실망이 적고 서로가 잘하고 못하는 것을 너무나 잘 알기에
잘하는 사람이 먼저 나서서 하고, 못하는 사람은 그 뒤를 따라가며 놓치는 부분이나 도움을 필요로 하는 부분에 힘을 보탠다.
우리는 잘하는 것을 더 잘하려고, 못하는 것을 잘하기 위해 애쓰며 살지는 않는다.
서로가 인정하는 범위에서 노력하며 자연스럽게 도움을 나누며 그렇게 우리는 15년을 더불어 한다.
우리 부부는 만난지 20년이 지나고 있다. 매일 반복되는 출근길 아침 우리는 하루도 빼놓지 않고 현관앞에서 아침 인사를 나눈다.
화이파이브와 서로를 위한 엄지 척으로 최고의 힘을 불어넣어주고 입맞춤으로 서로의 하루를 응원한다.
내 뒤로 또는 내 앞으로 두 아이를 세우고 줄지어 이어지는 아침 인사는 우리 가족의 아침 풍경이며 이것으로 서로에 대한 안부를 대신한다.
퇴근시간 벨소리 또는 번호키 소리에 현관으로 뛰어가는 두 아이들. 아빠의 가슴을 향해 전력질주해서 뻗어가는 에너지는
힘든 하루를 보낸 아빠에 대한 감사함과 만남의 반가움이 어우러져 서로에게 편안한 기운을 전한다.
나란히 걸어가며 입을 맞추는 남녀 한쌍의 모습에서 사랑이 시작되는 연인들을 위한 지침서라는 느낌을 받았다.
책장을 넘기면서 나도 모르게 설레고 얼굴이 발그레해지는 것이 가슴을 따뜻함으로 감싸주었다.
이야기가 시작되기 전, 속지에는 손을 꼭 잡고 걸어가는 연인 중 남자가 발 앞에 놓인 꽃 한송이를 넘어 지난다. 그 뒤를 따라 걷는 여자도 꽃을 넘어 발을 내딛는다. 여자는 지나온 길을 돌아보며 꽃의 상태를 살펴본다. 그렇게 남녀 한쌍은 서로가 함께 한 방향으로 걸어가며 서로가 서로를 닮아가며 서로가 사랑하듯 주위의 작은 생명까지도 사랑하며, 그 사랑을 나누고 있다.
서로를 닮아간다는 말이 그림으로 충분히 느껴진다.

우리는 때로 서로의 마음을 의심하고, 내가 온전히 그의 마음에 가득찼는지 확인할 때가 있다.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사람이라면, 다가온 기회를 잡을 세라 달달하고 가슴을 울리는 말로 상대를 안심시키겠지만
오글거리고 손끝이 저릿한 느낌이 들어 표현하는 것이 힘든 사람이라면, 짤막한 대답으로 표현을 다 했다고 할 수도 있다.
나 또한 달고 부드러운 말을 못하는 사람인지라, 쉽지 않은 순간들이 가끔 찾아들 때면 몇번씩 속으로 되뇌이며 연습의 시간을 갖는다.
한 번 하면 두 번하기는 쉽다고는 하지만, 매번 망설이게 되고 큰 맘 먹고 하고는 깊은 숨을 내쉰다.
스스로 대견하기도 하고 큰 산 하나를 넘은 듯한 후련함이 찾아들기 때문이다.
『행복한 질문』속에 등장하는 남녀의 대화를 들으면서 오글거리는 손발과 가슴이 찌릿찌릿해지는,
몸과 마음에 여러 변화를 한꺼번에 안겨준다.
현실에서 이렇게 대화를 나누기는 쉽지 않은 일이지만,
상대가 원하는 대답이 무엇인지 알고, 그 말을 받아주고 그대로 표현해주는 것,
이것이 서로에 대한 사랑을 확인하고 간직해주는 믿음의 시작임을 느낄 수 있었다.

참 예쁘다. 혼자 다녀오라고 해도 가지 못할 길인지 알면서도 묻는 여자의 마음을 남자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가지 못할 걸 알면서 허락하는, 멋짐만을 챙기는 것이 아니라
혼자 가는 것이 불안하고, 혼자 남은 내가 당신이 보고 싶어 힘들 거라는 자신의 마음만 바라보고
눈물바다에 빠져 죽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대답,
물어보는 이는 받는이의 사랑으로 따뜻하고, 대답하는 이는 자신의 곁에 머물러줄 상대가 있기에 따뜻할 수 있다.
이렇게 행복은 나만이 아닌 서로가 함께 느꼈을 때 진정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 날, 튀김을 하는 내 곁에 작은 아이가 돕고 싶다고 의자를 받치고 섰다. 내가 위험하다고 주방에서 나가달라고 부탁했다.
아이는 움직이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그 모습을 보던 나의 짝이 위험과 화상에 대해 말하며 당장 내려올 것을 명령했다.
그러자 아이는 따져 물었다.
"그럼 엄마는. 엄마도 위험하고 화상 입을 수 있는데. 왜 괜찮아?"
짝은.
"엄마도 위험해. 하지만 엄마는 어른이라 너보다 더 조심할 수 있어."
아이는,
"그래도 엄마도 화상입을 수 있어. 그럼 엄마 얼굴에 흉터 남아."
짝이 말하길.
"맞아. 엄마도 기름에 데이면 화상입고, 얼굴이 지금처럼은 안 되겠지.
그렇게 되면 슬프고 마음 아프겠지만 우리 가족은 엄마의 원래 모습을 알고 있으니까
이겨낼 있어.
그리고 평생 아빠가 엄마 옆에 있어 줄거니까 괜찮아.
그런데 넌 앞으로 하고 싶은 일 하고, 좋아하는 사람도 만나야 하는데,
당당하게 나설 수 있는 용기 있어? 용기를 다 배울 때까지는
아빠랑 엄마가 위험한 일은 허락할 수 없어."
아이는 슬그머니 내려와 의자를 치우고 식탁에 앉아 나의 일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내가 어떤 모습일지라도 내 곁에 있어준다는 짝의 말에 울컥했다.
20년전보다 생기를 잃어가고, 눈가에 목에 주름이 지고, 피부는 점점 나이듦을 알리듯 변화하고 있는데도
여전히 내 곁에 머물러주겠다는 말. 그 어떤 달달한 말보다 나의 마음에 파장을 일으켜주었다.
사랑은 표현이고, 믿음은 느끼는 것이다.
『행복한 질문』을 읽으면서 달달한 말 나누지 못하는 우리 부부지만
서로는 여전히 곁에 머무기를 바라며,
그 머뭄이 오래도록 함께 하리라는 믿음이 있음을 확인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새로 시작되는 사랑을 앞둔 많은 이들에게 질문과 답을 가르쳐주는 사랑 지침서.
서로가 서로를 향하고 있을 때 가장 따뜻한 시선이 오고 가고 있으며,
심장은 가장 빨리 뛰고 있음을
영화의 한 장면을 보여주듯 그려놓았다.
읽는 동안 따뜻했고, 읽는 내내 사랑스러웠다.
나의 사랑도 이들과 함께 행복하다.
『 지금 곁에 있는 사람에게
때로는 얼굴이 빨개지도록 쑥스러운 한마디를
대로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한마디를
그렇게 마법 같은 한마디를
건넬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우연한 만남에 감사하며. 』
우연하게 만나 함께 한 나의 짝에게
오늘은 나의 마음을 담은 한 마디를 꼭 건네고 싶다.
감사함을 담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