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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 가위 - 세종도서 교양부문 선정작 ㅣ 책고래마을 11
용달 글.그림 / 책고래 / 2016년 11월
평점 :
아침에 작은 아이 학교 가는 길을 배웅하러 아파트 단지를 돌아 나가면 가방을 멘 고만고만한 녀석들이 씩씩한 발걸음으로 학교로 향하는 뒷모습을 볼 수 있다. 추위에 떨까봐 걱정을 한 엄마들의 손길이 멀리서도 느껴질 만큼 잘 챙겨입은 모습들이다. 등에 멘 책가방과 손에 들린 실내화가방 기본에 학원 이름이 찍힌 가방을 어깨와 가슴을 가로질러 장착해서 걸어가는 아이들의 뒷모습은 '오늘 하루도 바빠요.' 라고 대신 말해주는 듯 하다.
현재 우리와 살아가고 있는 학생들은 학교가 원하는 학생으로만 살아가고 있다.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것을 배우는 것이 아닌, 학교가 다음 학교를 진학시키기 위해 세운 기준에 맞추어 배우고, 배우기 위해서, 배우는 것만을 위해서 끊임없이 반복하며 하루를 쉼없이 살아간다.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엄마들에게서 가장 많은 질문이 "공부 어려워요?", "시험 때문에 스트레스 많이 받죠?", "받아쓰기는 어떻게 해요?" 하나부터 열까지 학습이고, 엄마의 스트레스가 벌써부터 시작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초등학교는 말 그대로 기초적인 학문을 닦고, 넓은 세상을 가기 전 사회를 배우고 친구들과의 소통을 하며 자신을 찾아가는 교육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초등학교가 학문의 시작이 되었다.
초등학교 5학년이 된 큰 아이는 매일 한숨이다. 왜냐고 물으면 늘 대답은 같다. 모둠끼리 수행평가 준비를 해야 하는데, 다 시간이 안 된다고, 이렇게 맞추면 하나가 안 되고, 저렇게 맞추면 또 하나가 안 되고, 과제 연구보다 시간 조율에 더 많은 시간과 스트레스를 소비한다. 학원 때문에 학습지 선생님이 오시는 날이라서, 외부 수업이라 나갔다가 들어오면 바로 저녁 먹어야 해. 이유도 다양하고 다니는 학원또한 다양한 것이 요즘 아이들의 모습이다. 학교는 모여서 고민하고 서로 의견을 나누면서 성장시켜 나가자는 취지에서 시작된 평가인데, 시간을 맞추다 지친 아이들은 서로 각자 파트를 나눠서 짜집기 하는 것으로 대신하며 마무리까지도 서로 떠넘기기 일쑤이다. 자신이 못하겠다고 했음 고마운 마음을 가져야 하는 건 우리 부모세대의 마음이며, 지금의 아이들은 친구가 한 결과물을 보고 평가만 하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애쓴 사람은 자신의 정성과는 상관없이 검사받는 기분으로 친구들의 평가를 받으며 짜증을 내고 사소한 다툼으로 마무리가 되기도 한다. 소통을 위한 수행평가가 아이들에게는 평가의 실력만 키우게 하는 부작용을 낳은 것이다.
손잡이가 빨간 가위는 시계를 오려 놓았고, 시계 속에서 도망이라도 가려는 듯 굳게 주먹을 쥔 더벅머리 한 남자 아이가 그려진 표지는 색상이 주는 효과에서인지 몽환적이고 새로운 세계로의 여행을 떠날 듯한 느낌을 준다. 빛바랜 청색과 대조적으로 빨간 손잡이의 가위, 이야기 속의 중심이 주는 버팀과 주목을 받기에 딱 좋은 색상이 가위와 시계가 가진 역할이 무엇일까 궁금증을 일게 한다.
비구름을 잔뜩 머금은 먹구름을 연상케하는 더벅머리 친구 건이는 늦잠으로 지각을 한다. 지각을 했을 때의 기분과 교실에서의 상황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건이는 학교로 향하는 발걸음이 너무 무겁고 학교가 너무 멀게만 느껴진다. 마치 학교가 멀어서 지각을 할 수 밖에 없는 듯한 분위기에서 건이의 마음을 살짝 건드려주었다. 어떤 핑계를 대서라도 지각에 대한 당당한 변명을 하고 싶은 마음, 이것은 건이 뿐만 아니라 약속에 늦은 어른들과 지각을 하게 된 엄마 아빠의 마음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교실문을 열고 들어선 건이의 표정엔 울음과 두려움, 불안감이 겹쳐져 너무나 힘든 싸움을 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나의 이 생각은 건이에게 있는 마법가위로 부터 자유롭게 해방되고 만다. 뭐든 맘대로 지우고 없앨 수 있는 마법가위. 바로 건이의 손에 있는 마법가위이다. 건이는 빙글빙글 도는 숫자때문에 자유를 빼앗기게 된 시계를 과감히 자르고, 학습 중심의 교육으로 정형화된 학생들을 키워내고자 애쓴 선생님들께 오후 하루 쉴 수 있는 여유를 주는 베짱도 부린다. 쇠창살 사이로 보이는 선생님들의 표정엔 하나같이 우울하고 지각으로 혼자 교실로 들어섰던 건이의 표정을 그대로 하고 있어 누구나 원하지 않는 일을 하게 될 때는 어느 누구도 행복할 수 없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건이는 마법가위로 시간이 멈춘 기쁨을 혼자서 쓰지 않는다. 친구들과 다함께 놀이동산을 맘껏 뛰어다니며 함께 하는 세상에서만 느낄 수 있는 활기참과 기쁨, 자유를 만끽한다. 아이들의 얼굴엔 웃음이 떠나지 않으며 누구 하나 지친 내색없이 뛰어다니며 영원한 자유의 세상을 꿈꾸는 듯 행복한 표정들이다. 우리 아이들이 진정한 원하는 시간은 바로 지금, 이순간일 것이다. 시간에 맞추고, 점수에 맞추고, 어른들의 눈에 차는 행동을 보여하는 그야말로 짜여진 틀 속에서 절대 벗어나지 말아야 하는 우리 아이들에게서는 절대 찾아볼 수 없는 표정을 그림책 속의 아이들은 짓고 있다.
아이들이 세상에 나와 부모를 향해 처음 지은 미소, 그 미소 한번에 육아의 스트레스, 고부간의 갈등 등 모든 시름이 다 사라졌던 기억, 한번쯤은 갖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차차 아이들이 자라면서 아이들의 미소보다는 아이들이 가지고 온 상장과 숫자 속에서 그 미소를 찾으려고 애쓰는 안타까움 속에서 살아가는 부모가 되었다는 것이 너무나 슬프다. 아이들의 환한 미소는 좋은 대학 가면 저절로 웃게 될 거야. 하는 착각은 이제 그만해야 한다. 한 번 잃은 미소를 다시 찾기는 쉽지 않은 일을 수도 아주 쉬운 일일 수도 있다. 그 때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주어진 '오늘'이란 시간이 그 때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 아이의 미소는 우리 부모의 몫이며 책임이다. 아이들의 웃음이 집안에서 밖에서 학교에서 마을에서 들릴 수 있도록 그들의 세상을 인정해 주고 그들에게 주어진 '자유'라는 권리를 찾아주어야 한다. 우리 아이들의 미소를 책임지는 어른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