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따위 안 읽어도 좋지만 - 세계적 북 디렉터의 책과 서가 이야기
하바 요시타카 지음, 홍성민 옮김 / 더난출판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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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어린시절 나는 강원도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집에서 30분은 족히 걸어가야 만날 수 있었던 서점은 항상 깔끔하고 조용했다. 책들은 눕혀져서 얌전하게 주인을 기다렸고 주인 아저씨는 책들이 놓인 나무 단 사이의 길목을 오가며 흐트러진 책이라도 있을까 각을 맞추셨다. 안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미닫이 유리문은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기라도 하듯 항상 문고리 두짝이 정확히 맞춰져 있었다.

 

그러던 중, 6학년 1학기가 끝나갈 무렵 친구 하나가 팔이 다쳐 깁스를 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선생님의 부름으로 책 한권을 사서 친구네 집으로 병문안을 가게 되었따. 그 때 처음으로 서점으로 내 몸을 쑥 들이밀었다. 나도 서점에서 책을 살 수 있다라는 당당함을 증명하듯 말이다.

그 후 나는 서점에 가서 책 표지를 어루만지며 이리저리 여행을 하다 모아둔 용돈으로 명작동화를 한 권을 샀다. 고이 들고 내 책상 서랍에 넣어두고는 다른 형제들 몰래 책을 읽었다. 책표지라도 닳을까 책장이라도 찢어질까 귀하디 귀한 손길로 어루만지며 읽어나갔다.

- "갖고 싶은 책은 제 발로 찾아야지. 앞에 온 애는 엄마 차로 왔잖아."    - 17쪽

세월이 흘러 지금은 책을 읽겠다고 마음먹지 않아도 읽게 된다. 검색창을 띄워도 신간을 알려주고, 친절하게 책 속의 주인공은 누구인지,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는지, 책이 전하고자는 하는 의미는 무엇인지를 다 알 수 있게 되었다. 내가 굳이 시간내어 읽지 않아도 어디 가서 읽은 사람 흉내정도는 낼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대형서점을 꽉꽉 채우고 있는 많은 책들은 우리가 손을 뻗지 않아도 베스트셀러, 스테디셀러 등으로 이름표를 달고 훑어볼 수 있도록 친절하게 전시되어 지나가는 이들의 눈길에 한 번, 손끝에 한 번, 결국은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보이지 않은 힘을 가동시킨다.

 

책은 힘이다. 그리고 힘을 가졌다.

두고두고 가까이 하며 읽는 이의 마음을 따스하게 만들어주는 힘이 있고, 경험해 보지 못한 세상을 열어보이며 마치 만나고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힘, 삶이 벅차고 힘겨울 때 위로가 되어 아낌없는 응원을 보내주는 힘, 슬픔이 가슴에 차오를 때 슬픔을 있는 그대로 보듬어주는 함께의 힘, 이렇게 우리는 책을 통해 그 기운을 얻고 그 기운으로 또 다른 삶의 방향을 정하기도 한다.

- 사람이 백 명 있으면 각기 다른 백 가지 독서법이 있다. 책의 어디에 영향을 받고 공감하는지는 오롯이 독자의 몫이다. 그렇다, 독서법에 정답은 없다. 독자는 책의 책장을 편 순간, 작가가 쓴 문장에 깃든 신비한 힘을 이해하는 자유를 얻는다. -11쪽 

 

하바 요시타카님의 "책따위 안 읽어도 좋지만" 이라는 글자 뒤로 '~ 손해는 네 몫이야.'라고 말하는 듯하다. 그래서 더 읽어보고 싶어졌는지도 모른다. 사람은 자기만 손해보는 일은 절대 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읽고 나서 후회하더라도 , 못 읽고 후회하고 싶지는 않은.

북 디렉터로 활동한 하바 요시타카님이 소개해 준 많은 책들을 작가님의 시선과 감정으로 따라가면서 약간은 벅차기도 했고 지루하기도 했으며,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무엇일까 한참을 생각에 잠겨보기도 했다. 그 동안 읽어왔던 책 소개와는 다른 느낌을 받아서였을까? 책을  이야기하면서 작가의 의도를 짐작해보기도 하고, 책 속에 담긴 의미를 찾기 위해 재탐색의 기회를 만들어주기도 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작가와 책의 만남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 뒤로 책을 읽는 이의 관점 그리고 여행지와 일상, 스포츠, 삶의 진정한 의미 등 우리가 그 동안 접하지 못한 분류 작업을 통해 테마를 나누고 그와 어울리는 책들을 소개하며 그 속에 담긴 일상을 자연스럽게 펼쳐 보이며 읽는 이에게 자연스럽게 스며들도록 이야기를 펼쳐 놓았다. 책이 하나의 도구로 불리는 현대 속에서 그 도구를 어떻게 활용하고 내 것으로 만들어가느냐에 따라 우리의 삶은 분명 달라질 것이다. 도구가 도구로 이용되면서 삶의 질을 높혀준다면 책 속 이야기는 세상 밖으로 나와 자유롭게 뻗어나가며 많은 이들의 가슴을 적셔주리라 의심치 않는다.

 

나는 여전히 책을 좋아한다. 전문지식 용어의 책을 여전히 벅차하여 일상을 꿈꾸는 소설과 시 그리고 동화와 그림책을 항상 가까이 하며 그 속에서 또 다른 나를 발견하기도 하고 미처 꺼내지 못했던 내 자신을 찾는 기회를 갖게도 한다. 그리고 그 책들을 읽으면서 내가 한 번 더 기억하고 싶은 부분에 포스트잍을 붙여 놓고 시간이 지난 뒤 그 부분을 살며시 들춰보며 혼자 흐뭇해하는 것이 내가 책을 대하는 태도이며 그 재미로 나는 항상 읽는 책과 포스트잍을 짝처럼 대우해준다. 내가 읽은 책들이 하나둘 늘면서 책장의 공간이 좁아지는 순간이 올 때 나는 짜릿함을 느끼며 내가 여전히 책을 만지고 읽고 정리하는 삶을 살고 있음에 감사함을 느낀다. 나는 이 감사함을 돋보기를 쓰고 한참을 들여다보아야 하는 호호할머니가 될 때까지 느끼며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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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는 아이, 소동 높새바람 39
김경희 지음, 양경희 그림 / 바람의아이들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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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엄마'라는 이름표를 처음으로 달아준 나의 첫작품은 초등학교 5학년이다.

5학년 2학기 사회 시간에 역사를 배운다. 역사를 지나가듯 들은 몇가지 아는 지식으로 빠르게 나가는 학교 진도를 따라가기엔 무리일 거라는 판단이 들어 작년 2학기 무렵부터 함께 역사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시중에 나와 있는 역사 지식책과 온라인 강의를 통해 우리나라 역사에 대해 찬찬히 알아가게 되었다. 이것이 내가 배운 역사의 시작이며 내가 가진 역사의 깊이이다.

학창시절동안 배운 나의 역사는, 시험을 보기 위해 벼락치기로 외운 몇가지 암기 지식일 뿐이었다는 사실과 그 동안 잊고 지내면서도 너무나 당당했던 나의 무지를 현실로 깨닫게 되었다.

 

조선이 건국하고 너무나 평온했던 200년. 그 동안 국제 정세는 변화하고 있었으나 조선은 사화로 시작된 싸움이 깊어져 나랏일을 한다는 충신이라는 자들 또한 정치와 외교 뿐 아니라 백성들의 안위까지 나 몰라라 한 채 자기네들의 밥그릇 챙기기에 급급하였다. 일본이 곧 쳐들어올 것임을 암시했음에도 불구하고 조선은 안일한 태도로 있다가 임진왜란이란 거대한 전쟁을 치르게 된다. 물론 우리 역사속에 등장하는 이순신과 권율, 그리고 의병 곽재우 등의 활약으로 일본을 몰아내는데 성공한다. 이는 백성이 나라를 지켰으며, 백성이 이 나라의 주인임을 말해주는 가장 큰 증거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조선은 임진왜란으로 일본에 사절단을 보내게 되며 우리만의 문화를 그들에게 전수해야만 하는 의무를 갖게 된다. 일본인들에게 환대를 받고 있는 사절단의 그림만 보면, 우리를 귀하게 여기고 우리의 문화를 배우고자 하는 일본인들의 열망을 엿볼 수 있어 어깨에 힘이 절로 간다. 그러나 그 뒤에 감춰진 이야기를 듣노라면, 허울좋은 문화 교류일 뿐 두 눈 뜨고 우리의 문화를 일본에 넘겨주는 꼴 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화가 난다. 그림의 화려함 속에 감춰진 우리 장인들의 고통과 한이 얼마나 깊었을까 말이다.

 

춤추는 아이 소동, 홍이는 할아버지를 찾아 일본으로 건너가 돌아오지 않는 아버지를 찾아, 첩자라는 누명을 벗기고자 사절단으로 뽑히기 위해 한양으로 올라간다. 양반들의 틈바구니에서 차별과 괄시를 받으면서도 자기가 왜 일본땅에 가려고 하는지 목적을 잊지 않고 참고 견디며 드디어 일본땅을 밟고, 조선의 도자기 기술을 뺏기 위한 일본의 감시 속에서 아버지를 만나고 조선행 배에 몸을 싣는다. 아버지를 비롯해 고향땅을 그리워하며 일본의 감시 속에서 도자기를 구우며 언젠가는 조선에서 구하러 오겠지 하는 희망만 품고 살아야 하는 조선의 백성들. 그들이 조선을 고향으로 생각하고, 자기 나라라고 생각하는 그 마음을 나라가 알고 품어줬더라면 그들의 깊은 주름은 평온하기만 했을 것이다.   

 

홍이를 따라 시장에서 한양, 한양에서 일본으로 먼 길을 따라가면서 조선전기와 후기로 넘어가는 그 중간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었으며, 일본과 조선의 외교 관계에 대해 알 수 있었다. 사절단 그림으로만 만나볼 수 있었던 역사의 한 장면을 실감나게 표현된 글을 보면서 우리의 뿌리는 백성에게 있으며, 그 뿌리를 잡고 백성을 위하는 또 다른 백성이 있기에 조선은 건재했으며, 지금의 대한민국으로 일어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라 생각한다.  

 

동화로 꾸며진 역사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느끼는 것이 있다. 우리의 과거는 파헤치고 열어보면 그 속에 우리가 모르던 보석들이 알알이 박혀있으며, 그 속에서 우리는 또 다른 우리의 역사 한 장을 배우게 되는 계기가 된다. 우리의 미래인 아이들에게 이야기로 풀어낸 역사동화, 이것은 단순히 이야기가 아닌 어른들이 미래에게 과거의 시간을 들려주는 귀한 시간인 것이다.

오늘도 나는 이 나라의 백성으로 태어남이 자랑스럽다. 권력에 눈이 멀어 나라를 뒷전으로 생각한 그들이 있었지만, 나라를 위해 애쓰는 많은 백성이 있었고, 그 백성의 힘으로 일군 나라. 대한민국은 그래서 앞으로도 건재할 것이기에 나는 한 나라의 백성으로 희망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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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슬픔
공광규 지음 / 교유서가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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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가 어느 새 마흔을 넘어섰다. 어릴 적 마흔을 넘은 선생님들과 동네 어른들을 보면서 저 나이가 되면 뭐든 잘하고 막힘이 없으며, 무엇이든 원하는 것을 이뤄낸 완성됨을 의미하는 숫자로 기억되었다. 그러나 내가 맞이한 마흔은 여전히 바둥거리며 이루고자 하는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모른 채 헤매며 서툴고 후회와 반성을 되새기며 스스로를 괴롭히는 시간이다. 짧고도 짧지 않은 나의 삶을 돌아보면 내내 마음에 담아두었던 일, 창피하고 후회스러운 순간, 인생의 전환기를 맞이할 수 있었던 결정 등 나름의 사연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누구나 한 번쯤은 겪었을 법한 인생이지만 나의 인생을 글로 담아두고 싶다는 생각이 요즘 문득 문득 든다. 후회는 후회되는 대로, 대견함은 뿌듯함으로, 가슴 한켠에 자리잡은 응어리는 터트려 상처딱지를 앉도록 스스로를 위로해주고 싶다. 그 때마다 자신의 시간을 담담히 글로 써내려가는 작가를 포함한 예술가라는 그들이 참 부럽다. 글이든 그림이든, 소리든 동작이든 다양한 방법으로 스스로 위로하고 껴안을 수 있는 용기를 가진 그들이 말이다.

우리 아빠는 광부셨다. 저학력에 가진 기술 하나 없이 결혼을 하고 첫아이를 낳고, 밥벌이를 위해 시작한 것이 사촌형을 따라간 강원도 탄광촌이었다. 깜깜한 굴 속에 모자에 달린 렌턴에 의지하여 석탄을 캐며 젊은 시절을 보내셔야 했다. 가진 것이라고는 옷 가지 몇 벌뿐 지켜 내야만 했던 자식만 넷.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무서워도 싫어도 가야만 했던 지하 굴 속. 천성적으로 겁이 많고 긴장을 잘 하며 소심한 우리 아빠. 지금도 여전히 은행. 병원. 관공서를 혼자 못 가신다. 엄마를 대동하거나 만만한 나를 불러서 가야 큰 소리 치고 너털웃음 지으며 여유있는 척 하며 일을 보신다. 그런 사람이 깜깜한 어둠을 뚫고 그 길을 갔을 때는 책임감이란 자동시스템에 전원이 켜졌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탄광이 폐광하고 도시로 올라온지 30년이 훌쩍 넘은 지금. 아빠는 여전히 동굴을 못 들어가신다. 입구부터 시작된 어둠은 그가 천성적인 겁쟁이임을 여실히 보여준다. 말씀으로는 지겹도록 들어가본 굴 안 봐도 그 속을 훤히 알기에 돈 주고는 안 들어간다 하시지만, 그의 굵은 손마디와 딱딱해진 손바닥에 서린 땀이 그가 그동안 짊어졌던 짐이 얼마나 무겁고 힘겨웠는지 느낄 수 있게 해 준다. 어린 자식들 앞에서 술마시고 맥없이 쓰러지며 한맺힌 울분과 눈물을 보여야만 다음 날 다시 갱에 들어갈 수 있었던 그 옛날, 왜 그리 아빠를 원망하고 미워만 했을까. 아빠는 왜 단단하고 무쇠같은 존재로만 있길 바래왔던가. 그의 눈물 한 번 닦아주지 못한 것이 이렇게 후회되고 죄송스러울지 그 때는 왜 몰랐을까.

-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인생이다. 그래서 아버지들은 늘 실패의 삶을 산다. 늘 결핍의 삶을 살다가 죽는 존재가 아버지다. 48

오늘을 사는 그의 삶은 행복할까. 귀농하여 혼자 살면서 계절마다 택배 상자를 올려다보내며 잘 받았냐고 전화하시는 그 목소리를 들으며 여전히 자식의 삶에 관여하고 사시는 지금 그는 행복할까. 암 수술을 받던 날, 수술 대기실로 들어갈 때 긴장해서 자식 목소리에 흔들리던 그 눈동자를 잊을 수 없는데, 회복하고 나와서는 그 동안 못 잔 잠 다 잔 거 같다고 아무렇지 않은 듯 말씀하신. 나의 아버지는 지금쯤이면 행복하실까.

정말 오랜만에 어린 시절 기억을 떠올려보았다. 그러면서 그 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여전히 철부지 자식이며 여전히 내 곁에 건재해 주기만을 바라는 미운 자식으로만 곁에 있다는 것이 내 스스로 깊은 숨을 내쉬게 한다.

공광규님이 회상하는 어머님과 아버님 그리고 시골집을 맞으면서 절로 나의 부모님과 어린 시절 힘들게 살면서도 나만의 꿈을 꾸던 그 곳이 떠올랐다. 몇해전 가족 여행 길에 찾아간 시골집은 이미 다 철거되고 들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나 있었다. 우리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나의 집. 자취도 없이 사라지고, 우리 아이들은 집이 없어졌다는 그 말을 한참동안 이해하지 못한 채 돌아왔다. 공광규님이 시골집을 두고 모텔에서 자야만 했던 그 시간 모텔에서 울고. 여섯 식구 힘들다 하면서도 옹기종기 모여살았던 그 장소가 말끔히 사라진 그 시간, 나는 마음으로 깊이 울었다.

여고시절. 문예창작반으로 동아리 활동을 하며 문학소녀의 꿈을 꿀 때가 있었다. 일주일에 몇 편의 시를 써서 선배에게 검사를 받고 수정을 하고 다시 쓰고 하며 나름의 글을 쓴다고 폼잡았던 시절이었다. 그 때는 왜 고민하는 척, 왜 깊은 고민을 하는 척하며 글을 썼는지 지금도 여전히 알지 못한다. 내가 알고 있는 세상은 지극히 평범하고 한정적인데 내가 마치 그들의 심정을 다 알고 있는 듯, 그들의 존재 이유를 다 아는 듯 글에 그 의미를 모두 담아내려고 했다. 그리고 그걸 나보다 1살 많은 선배가 고쳐준다고 내 맘에 수많은 상처를 내주었다. 그때 썼던 시 중에 여전히 알 수 없는 것이 '나그네'와 '새벽'이란 제목을 달고 있는 시 두편이다. 나그네가 누구인지도 몰랐을 나였을텐데, 새벽을 맞이해보지도 못한 나였을텐데 무슨 힘으로, 무슨 생각으로 그 시를 썼는지 모르겠다. 여전히 모르겠는 그 두 편의 시가 가장 많은 칭찬을 받았으며, 수상의 기쁨으로 이어져 텅 비어있을 뻔한 생활기록부의 한 공간을 채워주었다. 지금은 어른 흉내낸 여고생의 척을 눈감아주신 결과로 받아들인다.

강에서 올라온 물고기가 /   처마 끝에 매달려 참선을 시작했다 

햇볕에 날아간 살과 뼈  /  눈과 비에 얇아지는 몸 

바람이 와서 마른 몸을 때릴 때  /  몸이 부서지는 맑은 소리        95. 수종사 풍경

 

아마 달이 함박웃음을 터뜨리는 날은  /  보나마나 수달네 개구쟁이 아이들이

매화꽃잎 위에 똥을 싸 놓고서는  /  그걸 매화향이라고 울길 때일 것입니다.    98. 병산습지

 

시를 배웠다. 시는 모르는 것을 아는 척해서 써서는 절대 공감을 얻을 수 없는 글이다. 그리고 그것의 마음을 진정으로 느끼고 살펴볼 눈과 마음이 있어야만 글로 태어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공광규님의 '수종사 풍경과 병산습지' 두 편의 시를 읽으면서 어린 아이의 순수함과 그 속에서 참아내는 고통을 충분히 알고 있는 성인의 성숙됨을 모두 느낄 수 있었다. 엄마를 따라 절에 가면서 처마끝에 매달려 낭랑한 소리를 내는 풍경이 참 좋다 했으면서도 그 속에 감춰진 고통을 몰랐으며, 바람이 몸을 때릴 때 참아내며 내는 그 소리를 좋다고만 한 내 귀와 마음은 또 얼마나 철부지였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개구쟁이 수달네 아이들이 매화꽃잎에 똥을 싸놓았다. 그걸 매화향이라고 우긴다. 그걸 다 알고 있는 달이 함박웃음 떠뜨리면서 거짓말에 속아넘어가주고 우리는 그 매화꽃향을 맡으로 여행길에 오른다. 생각만 해도 웃음이 절로 나며, 매화꽃을 볼 때마다 어딘가에서 몰래 훔쳐보고 있을 수달네 개구쟁이를 찾아볼 것만 같다. 못 찾으면 그 날 밤 달님에게 어디에서 우릴 훔쳐보고 있었냐고 물어봐야할 것만 같다.

- 현실감과 생동감 있는 시를 쓰려면 현실에 관심을 가지고 상상력을 발휘해야 한다. 물론 시인이라고 다 올바른 지식인은 아니지만 올바른 지식인이라면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우리 인간을 살기 어렵게 하는 사회의 문제가 무엇인지 밝히고 따져야 한다.  101

 시를 쓰는 일은 내 존재를 확인해가는 여러 가지 방식 가운데 하나인 것 같다.  115~117

시는 시다. 이어지는 글로 해명할 수있는 산문과는 다르게 짧은 문장과 몇 단어로 읽는 이에게 느낌을 그대로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공광규님의 시와 그 속에 얽힌 이야기를 읽으면서 그 분의 세상을 바라보는 눈과 추구하는 삶이 어떤 빛깔인지 떠올려보게 된다. 또한 나의 느낌이 실제와 다르다하더라도 그 또한 글이 주는 또다른 매력이라고 수달형제들처럼 억지 웃음지어보고 싶어진다.

 

정말 오랜만이다. 나의 지나간 시간들을 돌아보게 하면서 동시에 지금의 나를 만나게 하는 시간을 갖게 하는 책을 말이다. 공광규님의 글을 한 권의 책으로 만난 것이 처음이지만 마치 작가님의 삶을 모두 들여다본 듯한 착각이 일게끔 많은 생각을 하게 하였다. 내가 지금 살아가고 있는 지금 이 시간을 내가 잘 어루만지며 걸어가고 있는지, 느끼면서 주위를 살피며 살아가고 있는지 문득 걸음을 멈추게 한다.

지난 달부터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지를 배우는 인문학' 강의를 듣고 있다. 부쩍 생각이 많아진 요즘, 공광규님의 산문집을 읽으면서 나에 대해 더 깊게 생각하게 되었고, 사람이 살아가는 근본적인 의미에 대해 더 깊게 생각하게 하는 여운을 남겨준다.

-사람들은 경쟁과 속도를 현대적 인간의 보편적 선으로 알고 있다. 같은 길을 빨리 가려고 대로에서 무리들과 경쟁한다. 그러다보니 부딪히고 막히고 싸우는 것이다. 차라리 나만의 오솔길을 가는 것이 편하고, 실제로 그것이야말로 인생의 경쟁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190

나를 중심으로 뻗어간 나의 주변의 사람들. 그들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수많은 시간들. 그 시간들 속에서 나는 나다움을 잊어서는 안 된다. 잘나고 멋진 나보다는 나를 가장 아끼는 나로 살면서 주변을 돌보면서 그들의 삶에 나다움을 심어주는 그런 나로 살아가고 싶다. 공광규님이 말한 나만의 오솔길. 나는 나만의 오솔길 위에 나다움을 키워내며 나로 인해 주변인들의 삶에 잠시나마 위안을 안겨주는 그 순간을 만들어주는 그런 삶을 살아가고 싶다.  

공광규님의 글을 읽은 동안 참 따뜻하고 위안을 받았다. 그 위안 속에 나를 향한 따뜻한 시선을 느낄 수 있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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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실
김별아 지음 / 해냄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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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은 칼보다 무섭다 했다. 당장 목을 겨누지는 못하지만 서서히 숨을 끊을 수 있을 만큼의 고통을 안겨 준다. 그 고통은 삶 전체를 황폐하게 만들어 놓을 만큼의 힘이 존재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한 번 쓰여져 세상에 나오면  진실은 중요치 않다. 믿는자에 의해 진실이 되는 것이다. 세상이 바뀌고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는 현실에서도 여전히 해명이란 진실은,  믿는자에 대한 마지막 몸부림이 되어 억울함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갖게 하고, 진실은 묻히고 또 다른 거짓이 진실로 둔갑한다.

 

내가 오늘 만난 이는 탄실이란다. 김명순이라는 이름을 가진 최초의 여성 근대 소설가.

너무나 낯선 이름에 정말? 우리나라에 여성 소설가가? 언제? 라는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에게 다가왔다. 너무나 낯선 이를 만나러 가는 첫 관문인 표지와 차례를 보면서 오랜 세월 우리에게 잊혀져 있어야만 했던 진실은 무엇일까라는 구체적인 의문이 시작되었다.

탄실에게는, 기생의 딸이자 첩의 딸이라는 시작점부터 그녀의 삶은 피폐화 되었다. 자신의 출생의 그늘을 지우기라도 하듯. 세상 누구도 따라오지 못할 만큼 열심히 공부했고, 자신을 따돌리고 외롭게 버려두는 현실에 맞서기 위해 자신을 규격화하여 가둬 두며 살았다. 따돌리고 비방하고 없는 소리 지껄여도 두 손 불끈 쥐고 해명의 가치도 없다는 듯 자신의 삶을 꾸려 나가는 단단한 여인의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그것이 그 시대의 남성들에게 도전이라고 받아들여졌을까. 단단한 껍질 속에 감춰둔 그녀의 진짜 모습을 보고자 하는 이기심과 남자라는 이름 앞에 철저히 무너져내리는 여성을 보고자 하는 욕망으로부터 탄실은 첫 순정을 빼앗기고 만다. 몸도 마음도 상처투성이가 된 그녀에게는 부정과 음침함, 색을 밝히는 신여성이라는 꼬리표가 붙고, 가면에 가려진 그녀의 삶을 치욕과 모멸로 치부하기에 이른다. 이 얼마나 억울하고 분통터지는 일이던가. 탄실에게 자신의 남성성을 과시한 그는 손익에 맞춰 새로운 인생을 걷지만, 탄실의 인생은 내리막길의 시작을 알린다.

탄실의 삶은 참 녹록치 않다. 잠깐의 반짝거림은 긴 어둠을 열어주고, 긴 어둠에서 발버둥치면 칠수록 그녀를 더욱 잠식시켜 버린다. 탄실은 쓰러지지 않으려고 더 공부하고 더 애쓰며 자신의 무너진 마음을 일으켜 세우려 애쓴다. 쉬지 않고 글을 쓰고 악기를 연주하고, 신문기자로 활동하며 문장 하나 낱말 하나에 의미를 살피며 세상과 끊임없이 싸우고 자신의 의지를 굽히지 않는다. 그러나 세상이 그래서였을까. 그녀의 의지는 번번히 허물어지고 갈 곳 없는 한없이 처량한 신세로 만들어준다. 글쟁이는 가난뱅이라고 했던가. 탄실의 가난은 글을 썼기 때문이었을까. 엄마와 이모. 동생들까지 나서서 그녀에게 용돈을 쥐어주지만 그녀는 항상 가난했다. 그리고 항상 새 일자라를 찾아 다녀야만 했다. 탄실은 항상 배움이라는 도피처에서 헤어나지 못했으며 평양과 도쿄를 오가며 자신의 새로운 삶을 꿈꾸었다. 그녀의 삶은 도전과 실패의 연속이며 그 속에서 그녀는 황폐해져갔으며 사랑이라는 감정에 메말라가며 어떤 것이 사랑인지, 무엇을 사랑이라고 믿어야 하는 것인지 조차 알지 못한채 서른이라는 나이를 맞이한다.

 

탄실의 삶을 들여보며, 그녀가 왜 실패를 거듭했어야 했는지, 왜 해명도 한 번 하지 않고, 진실을 밝히려고 투서도 한장 남기지 않았으며, 자신을 능멸한 남자들 집에 들어가 아내들에게 폭탄 발언조차도 하지 않았는지 이해할 수 없는 순간순간이 있었다. 탄실이 세상을 향해 소리치려는 그 시기 우리나라는 여성은 남성을 존중해야 하며, 남성의 죄를 덮어주는 희생양에 지나지 않았다. 어떠한 진실은 계란으로 바위치기 밖에 되지 않는 여성의 사회적 지위는 바닥이었다. 그 속에서도 남자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글을 쓰고 신문에 연재하며 작품 활동을 쉬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그녀는 여성의 사회 진출의 첫 문을 열어준 이임에 틀림없다. 그럼 탄실에게 친구는 어떤 존재였을까. 같은 여성의 입장에서 탄실의 도도함과 깊은 학식 그리고 당당함은 견제의 대상으로 보여주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일본과 치열한 투쟁의 시대였던만큼 누구에게나 혼란스럽고 힘들었다. 그 상황 속에서 자신의 갈 길을 묵묵히 걸어가며, 남자들의 권력 앞에서 당당했던 그녀의 무너짐은 카타르시스적인 희열을 안겨주었을 것이다. 나보다 잘 배웠다는 여자도 남자의 권력을 등에 업고 지내는 나약하고 부도덕하다는. 힘든 자신을 위로하려는 보상심리가 작용한 것 같다. 그 시대를 살았던 문학소녀이자 음악 감상을 취미로 가진 탄실은 미움의 대상이며, 어려운 처지의 많은 사람들에게 위안의 대상이 된 사회의 희생양으로 남을 수 밖에 없었다.

 

세상으로 나와 당당히 서고 싶어했던 탄실. 김명순.

그녀는 가족으로부터 남자로부터 세상으로부터 짓밟히고 짓이겨졌지만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최선을 다하였다. 세상이 그녀의 단단한 심지를 받아낼 준비가 되지 않아 그녀를 쓸쓸하게 등져야 했던 그 시대. 그녀는 그 때를 어떻게 기억하며 눈을 감았을까.

기생의 딸로 낳은 엄마를 엄마로 부르고 싶지 않았던 그녀는 엄마의 이름조차 모른 채 살아간 자신의 지난 날을 되새기며 얼마나 깊은 상처 하나를 가슴에 묻었을까. 탄실을 만나는 내내 마음이 아리고 답답했다.

 

세상을 향해 날아가는 날개를 꺾어버린 그 순간, 그녀는 꺾인 날개를 젓고 또 저어 새로운 둥지를 찾고, 새로운 세상을 찾아 날고 또 날았다. 그러나 세상에 김명순. 이름 석자를 알리지 못한 채 날개를 접어야만 했다. 거짓을 진실로, 진실은 또 다른 결과로 만들어지는 세상의 이야기는 김명순에게서 끝나지 않았다. 여성이라서, 흑인이라서, 장애인이라서,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그들을 약자라는 틀에 가두고 그들의 현실을 부각시키며 밟고 올라서려는 많은 이들에게 탄실의 억울한 누명과 힘들었던 삶은 되새김질의 기회를 만들어 주기에 충분하다.

 

세상이 아팠던 그 때 그 시절. 자신의 누추한 삶을 감추기 위한 희생이 필요했던 그 시절.

 

많은 이들의 시기와 괄시를 받으며 꿋꿋하게 살아가야만 했던, 살아냈던 탄실. 김명순 작가에게 고개를 숙여 그녀의 힘겨운 삶을 애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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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레시피
테레사 드리스콜 지음, 공경희 옮김 / 무소의뿔 / 2016년 7월
평점 :
절판


한동안 남편이 식탁을 책임져 주었다. 앞치마를 두른 남자들이 다양한 매체에 등장하고 누구나 할 수 있을 것 같은 가능성을 보여주는 레시피로 자극이 되었던 그 무렵이었다. 평소에도 자주 요리를 해 왔던 남편이 색다른 요리로 식탁을 채워주고, 두 아이를 조수로 임명하면서 함께 주방을 채워주니 지켜보는 내 맘도 안정되고, 식탁 앞에 앉은 두 아이의 표정 또한 달라졌다. 땀 흘리며 셰프 흉내를 낸 신랑도 매우 만족해 했다. 이것이 소박하고도 참 소중한 추억이며 일상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우리가 두 아이의 곁에 얼마나 오래도록 이 모습으로 살아갈지 잘 모르겠거니와 지금과 같은 평온함이 언제까지 우리 곁에 함께 해 줄지 또한 모르기 때문이다.

 

가끔 사고 소식을 들으면서 혼자 남은 자식 또는 부모. 그들은 앞으로 얼마나 깊고 어두운 터널을 건너야 빛을 볼 수 있을까 한없이 걱정스럽고 함께 죽음을 맞았다면 혼자 남는 외로움과 두려움은 몰랐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도 하곤 했다. 그래서 한때 남편에게 우린 정말 사고로 떠나야 한다면 네 명 함께 가야 한다고 말하곤 했다. 참 모질고 잔인한 말이긴 하지만 아이들이 혼자 견뎌내며 살아야 하는 그 시간을 누가 곁에서 봐 줄 것이며, 부모만 남는다 해도 두 아이를 떠나보내고 어떻게 서로의 얼굴을 바라볼 수 있을까 너무나 무섭기 때문이었다. 그 때마다 남편은 말한다. 네 명이 다함께 살아남으면 된다고.

 

인생레시피』란 제목과 더불어 책소개 글을 보면서 내가 걱정하고 두려워했던 그 뒷이야기를 미리 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궁금증을 해결해 줄 것이라는 기대를 품은 반가움과 걱정스러움으로 책장을 넘기게 되었다.

​원하지 않았던, 상상조차 하지 않았던 죽음이라는 문을 열어야만 했던 엄마 엘레노어. 그녀는 평범한 일상 생활 가운데 가슴에 멍울이 잡히는 아찔한 순간을 맞는다. 그것이 전환점이 되어 그녀의 삶을 또다른 방향으로 안내하게 한다. 여덟살 어린 딸을 두고 엄마 자리를 비워야 한다는 현실 앞에서 그녀는 결코 나약한 모습으로 남지 않으려 노력하고  무너져가는 자신을 일으켜 세운다. 그리곤 딸에게 엄마가 꼭 필요할 때, 엄마의 부재로 힘겨움도 가슴으로 끌어안으려 할 때를 위해 편지를 쓰기 시작한다. 그 동안 딸과 함께 해 왔던 요리와 그녀의 엄마를 통해 배운 요리들의 레시피를 쓴다. 레시피와 함께 딸의 모습을 담은 사진과 그에 얽힌 추억 그리고 엄마가 너의 곁에 있음을 알리며, 함께 있어 주지 못함에 대한 미안함을 담담하게 글로 남겨두었다. 그 편지는 딸 멜리사가 스물다섯살이 되던 해에 전달된다.

 

죽음을 앞둔 엄마가 딸에게 쓰는 편지, 얼마나 애닳고 아팠을까. 자신에게 찾아온 암덩어리가 얼마나 원망스러웠으며, 그 결과를 부정하고 싶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을 받아들이며 어린 나이에 엄마의 빈자리를 받아들여야만 하는 딸에 대한 미안함과 성장통을 겪으며 힘든 시간을 혼자 경험해 나가야 하는 그 아픔을 함께 하지 못함에 또 얼마나 마음이 아플까 싶어 엘레노어의 담담한 편지글에 더 마음이 아파왔다.

그리고 여덟살 멜리사가 스물다섯살이 되어 엄마의 편지가 담긴 책을 받고 먹먹해 하는 모습과 아빠와 남자친구에게 보이지 않으며 숨죽여 한장한장 넘길 때 멜리사의 감정에 어떤 변화가 찾아올까 내내 함께 숨죽여 읽게 되었다.

엘레노어가 떠난 빈자리는 남은 자들에게는 너무나 힘겹다.

남편 맥스는 사랑을 하고 싶고 사랑에 대한 그리움이 절실하다.  다시 사랑을 한다는 것이 두려운 현실로 다가오며 먼저 등을 돌리고 엘레노어와 했던 그 사랑의 빛을 찾아 가슴을 열려고 한다. 혼자 남은 남편의 외로운 사랑에는 용기가 없다.

딸 멜리사는 남자친구의 프러포즈 순간이 두렵다. 한 남자의 부인이 되고, 아이들의 엄마가 된다는 미래의 시계가 멜리사를 두렵게 한다. 타인을 향한 따스한 눈빛이 서툴고 자신의 감정 표현이 어색한 멜리사를 보면서 엄마의 사랑이 세상에 대한 자신감마저 잃게 한 건 아닌가 싶었다.

 

'가족'이란 구성원이 '가정'이라는 울타리 속을 채우고 있을 때는, 서로에 대한 믿음이 있다. 부모라는 사람이 나를 보호해 줄 것이며, 자식이란 나의 핏줄들이 우리 사랑을 충분히 받고 있을 거라는. 그러나 가족 구성원 하나가 누구도 원하지 않는 가운데 홀연히 자취를 감춰버리면 남은 자들의 혼란은 안정이라는 시간을 찾지 못한 채 오래도록 깨진 믿음으로 상처를 받으며 살아가게 된다. 엘레노어의 남편도 딸도 빈자리로 인한 상처로 새로운 삶에 첫발을 떼기를 두려워한다. 결정하는 순간에 찾아오는 상처가 너무나 확대되어 자신을 내려다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엘레노어의 편지를 보며 멜리사가 과거를 회상해보고, 아빠의 모습을 다시금 바라볼 때 안도의 숨이 쉬어졌다. 그들이 살아갈 내일은 상처가 추억이 되고, 추억이 현실이 되어 당당한 발걸음을 내딛을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인생레시피』 속에 담긴 엘레노어의 담담한 표현과 요리에 담긴 맛과 의미를 통해 함께 한다는 것은 단순히 같이의 의미로만 단정지을 수 없는 그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음을 느꼈다.

나는, 내 곁에 있는 사람, 부족하고 서툰 사랑으로 서로를 조율해가는 그 사람이 진정한  내 사람이며, '엄마'라는 이름표를 지어준 두 아이에게 세상의 두려움과 맞서 싸울 수 있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줄 사람이다. 나는 함께 하는 이들과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 인생으로 발전시키며 서로를 더 강하게 끌어안으며 살아가고 싶어졌다. 그들에게 나는 '함께'하는 인생으로 살아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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