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따위 안 읽어도 좋지만 - 세계적 북 디렉터의 책과 서가 이야기
하바 요시타카 지음, 홍성민 옮김 / 더난출판사 / 2016년 10월
평점 :
절판


어린시절 나는 강원도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집에서 30분은 족히 걸어가야 만날 수 있었던 서점은 항상 깔끔하고 조용했다. 책들은 눕혀져서 얌전하게 주인을 기다렸고 주인 아저씨는 책들이 놓인 나무 단 사이의 길목을 오가며 흐트러진 책이라도 있을까 각을 맞추셨다. 안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미닫이 유리문은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기라도 하듯 항상 문고리 두짝이 정확히 맞춰져 있었다.

 

그러던 중, 6학년 1학기가 끝나갈 무렵 친구 하나가 팔이 다쳐 깁스를 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선생님의 부름으로 책 한권을 사서 친구네 집으로 병문안을 가게 되었따. 그 때 처음으로 서점으로 내 몸을 쑥 들이밀었다. 나도 서점에서 책을 살 수 있다라는 당당함을 증명하듯 말이다.

그 후 나는 서점에 가서 책 표지를 어루만지며 이리저리 여행을 하다 모아둔 용돈으로 명작동화를 한 권을 샀다. 고이 들고 내 책상 서랍에 넣어두고는 다른 형제들 몰래 책을 읽었다. 책표지라도 닳을까 책장이라도 찢어질까 귀하디 귀한 손길로 어루만지며 읽어나갔다.

- "갖고 싶은 책은 제 발로 찾아야지. 앞에 온 애는 엄마 차로 왔잖아."    - 17쪽

세월이 흘러 지금은 책을 읽겠다고 마음먹지 않아도 읽게 된다. 검색창을 띄워도 신간을 알려주고, 친절하게 책 속의 주인공은 누구인지,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는지, 책이 전하고자는 하는 의미는 무엇인지를 다 알 수 있게 되었다. 내가 굳이 시간내어 읽지 않아도 어디 가서 읽은 사람 흉내정도는 낼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대형서점을 꽉꽉 채우고 있는 많은 책들은 우리가 손을 뻗지 않아도 베스트셀러, 스테디셀러 등으로 이름표를 달고 훑어볼 수 있도록 친절하게 전시되어 지나가는 이들의 눈길에 한 번, 손끝에 한 번, 결국은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보이지 않은 힘을 가동시킨다.

 

책은 힘이다. 그리고 힘을 가졌다.

두고두고 가까이 하며 읽는 이의 마음을 따스하게 만들어주는 힘이 있고, 경험해 보지 못한 세상을 열어보이며 마치 만나고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힘, 삶이 벅차고 힘겨울 때 위로가 되어 아낌없는 응원을 보내주는 힘, 슬픔이 가슴에 차오를 때 슬픔을 있는 그대로 보듬어주는 함께의 힘, 이렇게 우리는 책을 통해 그 기운을 얻고 그 기운으로 또 다른 삶의 방향을 정하기도 한다.

- 사람이 백 명 있으면 각기 다른 백 가지 독서법이 있다. 책의 어디에 영향을 받고 공감하는지는 오롯이 독자의 몫이다. 그렇다, 독서법에 정답은 없다. 독자는 책의 책장을 편 순간, 작가가 쓴 문장에 깃든 신비한 힘을 이해하는 자유를 얻는다. -11쪽 

 

하바 요시타카님의 "책따위 안 읽어도 좋지만" 이라는 글자 뒤로 '~ 손해는 네 몫이야.'라고 말하는 듯하다. 그래서 더 읽어보고 싶어졌는지도 모른다. 사람은 자기만 손해보는 일은 절대 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읽고 나서 후회하더라도 , 못 읽고 후회하고 싶지는 않은.

북 디렉터로 활동한 하바 요시타카님이 소개해 준 많은 책들을 작가님의 시선과 감정으로 따라가면서 약간은 벅차기도 했고 지루하기도 했으며,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무엇일까 한참을 생각에 잠겨보기도 했다. 그 동안 읽어왔던 책 소개와는 다른 느낌을 받아서였을까? 책을  이야기하면서 작가의 의도를 짐작해보기도 하고, 책 속에 담긴 의미를 찾기 위해 재탐색의 기회를 만들어주기도 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작가와 책의 만남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 뒤로 책을 읽는 이의 관점 그리고 여행지와 일상, 스포츠, 삶의 진정한 의미 등 우리가 그 동안 접하지 못한 분류 작업을 통해 테마를 나누고 그와 어울리는 책들을 소개하며 그 속에 담긴 일상을 자연스럽게 펼쳐 보이며 읽는 이에게 자연스럽게 스며들도록 이야기를 펼쳐 놓았다. 책이 하나의 도구로 불리는 현대 속에서 그 도구를 어떻게 활용하고 내 것으로 만들어가느냐에 따라 우리의 삶은 분명 달라질 것이다. 도구가 도구로 이용되면서 삶의 질을 높혀준다면 책 속 이야기는 세상 밖으로 나와 자유롭게 뻗어나가며 많은 이들의 가슴을 적셔주리라 의심치 않는다.

 

나는 여전히 책을 좋아한다. 전문지식 용어의 책을 여전히 벅차하여 일상을 꿈꾸는 소설과 시 그리고 동화와 그림책을 항상 가까이 하며 그 속에서 또 다른 나를 발견하기도 하고 미처 꺼내지 못했던 내 자신을 찾는 기회를 갖게도 한다. 그리고 그 책들을 읽으면서 내가 한 번 더 기억하고 싶은 부분에 포스트잍을 붙여 놓고 시간이 지난 뒤 그 부분을 살며시 들춰보며 혼자 흐뭇해하는 것이 내가 책을 대하는 태도이며 그 재미로 나는 항상 읽는 책과 포스트잍을 짝처럼 대우해준다. 내가 읽은 책들이 하나둘 늘면서 책장의 공간이 좁아지는 순간이 올 때 나는 짜릿함을 느끼며 내가 여전히 책을 만지고 읽고 정리하는 삶을 살고 있음에 감사함을 느낀다. 나는 이 감사함을 돋보기를 쓰고 한참을 들여다보아야 하는 호호할머니가 될 때까지 느끼며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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