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목소리를 그릴 수 있다면 - EBS 라디오 X 카카오 브런치 <나도 작가다> 당선 작품집
EBS 라디오부 오디오천국 <나도 작가다> 외 기획 / 롱테일북스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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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쓴 글을 직접 낭독하고 소개합니다.

내 목소리를 세상에 들려주고 싶은 분, 작가를 마음에 품은 분,

라디오 디제이를 꿈꾸는 분의 이야기를 찬찬히 모아 들려드립니다.

모든 이야기가 책이 되는 기적을 꿈꾸며,

꿈을 품은 분들이 그 꿈에 한 발짝 다가갈 수 있도록

발판이 되어드리고 싶습니다.

EBS 라디오부 오디어 천국 <나도 작가다>

 

 EBS 라디오 Ⅹ 카카오 브런치 <나도 작가다> 공모전에서

당선된 60편의 빛나는 이야기를 담은

『너의 목소리를 그릴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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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작가다>라는 글귀에 마음이 흔들린다. 책을 읽고 리뷰를 쓰는 것이 나의 글쓰기 전부가 된 지금 나에게도 한 때 방송작가를 꿈꾸기도 했고, 그림책 작가의 길을 권유받았던 나에겐 동경하는 맘을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지금은 작가의 길을 걷지 않음이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모른다. 세상에 글 잘쓰는 사람들이 넘칠 만큼 많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남편이 가끔 지원해 줄테니 더 늦기 전에 글 쓰는 게 어뗘냐고 묻는다. 그 때마다 내 대답은 항상 같다. 나에게서는 절대 나오지 못할 다양한 스토리를 세상으로 내 놓는 작가들의 글을 읽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그렇다. 난 오늘 60명의 새로운 작가를 알게 되었고, 그들의 글을 만났다. 글쓰는 이들의 기억과 감정 그리고 그것을 통해 배운 삶의 의미를 함께 나누는 시간을 갖게 됨으로 충분히 행복했다.

  

 

 

"뜀뜰이 왜 무서워?" "그냥 무서워."

"왜?" "넘어질 것 같단 말이야."

"넘어질 수도 있지." "넘어져서 손목이 꺽이면 어떡해."

"그러면 깁스해야지. 깁스하고 싶어 했잖아. 멋져 보인다고."

"넘어지면 애들이 놀릴 거야." "놀리면 어때. 놀리라고 해."

"놀림 받는 거 싫어." "그러면 뛰어넘을 수 밖에 없어."

 

『너의 목소리를 그릴 수 있다면』 점위에 올라서서 20쪽

 

 

 

『너의 목소리를 그릴 수 있다면』은, 3차에 이어 이루어진 공모전을 통해 당선된 작품이 실린 책으로, <시작과 도전>, <실패와 두려움>, <나를 나답게> 3개의 주제로 각 20편씩의 이야기를 담는다.

누구나 한 번은 겪을 수 있는, 누군가는 이미 겪었을, 앞으로 겪게 될 이야기를 통해 기억을 들춰보고 지나간 시간을 돌아보는, 잔잔함 속에 번져오는 파동에 울컥하기도 하고 미소가 절로 지어지기도 한다.

 

 

둘째가 태어난 후 염색체 검사를 했고 결과지에도 21번 자리에 세 개의 염색체가 선명히 보였다. 나는 정말로 장애아의 엄마가 되었다. 아이 키우기는 두 번째지만 장애를 가진 아이는 처음인 초보 장애아 엄마가 되었다. 살면서 단 한번도 내 미래일 것이라고 생각해 보지 않은 그 길이 내 앞에 펼쳐졌다. 바라던 미래는 아니지만, 초보 장애아 엄마의 삶을 살기로 했다. 기왕 택한 일, 나는 아주 열심히 해볼 참이다. 『너의 목소리를 그릴 수 있다면』 장애아의 엄마가 되기로 했다. 46~47쪽

 

 

내 옆집 이야기를 듣다가 순간 울컥해지는 때가 있다. 『너의 목소리를 그릴 수 있다면』이 그렇다. 내 이야기는 아니지만, 내 옆집 이야기쯤으로 읽고 있다가 순간 나의 마음에 열기를 불어넣는 이야기가 있다. 나라면 어땠을까 하는 입장을 바꿔볼 용기조차 나지 않는 이야기 앞에서 초라해지는 나를 만나기도 하고, 평범한 일상임에도 그 순간에 함께 한 이들과의 시간을 온전히 기억하는 이야기 앞에서 부러움으로 몇번을 되새김하기도 한다.

 

열심히는 살지 못해도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싶다.

열심히 살아야지만 의미 있는 삶은 아니니까.

그런데 차라리 열심히 사는 게 의미 있는 삶을 사는 것보다 쉬운 것 같다. 의미 있는 삶, 그게 참 어렵다.

『너의 목소리를 그릴 수 있다면』 나는 어떤 의미로 남고 싶은가. 61쪽

 

하루가 모여 역사를 이루듯, 우리가 지내온 시간이 삶이 되고, 그 속에서 우리는 살아갈 의미를 찾는다. 때로는 의미찾기에 너무나 많은 에너지를 쓰기에 쉬이 지치기도 하고, 내가 찾고자 한 것이 무엇인지도 잊게 마련이다.

 

나의 삶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애쓴다고 다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었고, 손에서 놓았다고 해도 다 사라진 것도 아니었다.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동안 수십번 잃을 것이고, 그 수십번 흔들릴 것이고, 단 몇 번 손에 넣을 것이다. 고된 삶에 가끔 비춰지는 햇살에 우린 다음을 기다리고 또 다른 꿈을 꾸게 된다. 이렇듯 삶은 나의 징징댐의 나약함을 봐주지 않지만 절대 나의 열심에 등돌리지 않는다는 것, 이것 하나로도 충분히 살아볼만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솔직히 나다운 게 무엇인지, 내가 어떤 향기와 색깔을 내는 사람인지 아직 답을 내리지 못한다. 그러나 한 가지는 안다. '나다움'이란 내 본연의 리듬을 표현해 낼 때 나온다는 것. 타인의 시선에 갇히지 않고, 내 마음이 시키는 일을 할 때 비로소 나다워진다는 것을 말이다. 짙은 화장을 하고 뾰족구두를 신고 향수를 뿌리는 게 내가 아니라, 발이 부르트고 땀에 흠뻑 젖어 헉헉대면서도 재밌어서 춤을 연습하는 게 바로 나였다. 나답게 살기 위한 나의 춤바람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너의 목소리를 그릴 수 있다면』 내 안의 리듬을 찾아서. 277쪽


 

『너의 목소리를 그릴 수 있다면』의 60편의 이야기를 읽는 동안 나의 삶을 들여다본다. 나와 사는 모습도 하는 공부도 꿈도 다르지만, 겁많고 불안한 그들에게서 나의 10대를 추억했고, 그들의 지침에 나의 20대가 보였고, 새로운 길을 가고자 애씀에 나의 30대가 떠올라 마음이 아렸다. 40대인 지금의 나는 그들의 이야기에 공감하며 나의 삶을 돌아보고, 앞으로 나의 삶을 생각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우리들이 들려주는 이야기 『너의 목소리를 그릴 수 있다면』은,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열심히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보내는 소리없는 응원으로 잔잔하게 마음에 녹아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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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아이드 수잔
줄리아 히벌린 지음, 유소영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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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책을 선택하는데 있어서 까다롭지는 않지만, 약간의 편식이 있는 편이다. 그래서 가끔은 '도전'이라는 마음으로 책을 선택해서 읽으려고 시도하기도 한다. 내가 이번에 도전하게 된 책은 바로 "스릴러"라는 장르의 『블랙 아이드 수잔』 이다.


데이지 꽃을 닮은 노란 꽃이 만개한 곳, 그곳에 맨발의 소녀가 기운없이 누워있는 듯한 모습이 그려진 표지가 궁금증을 일으키고, 동시에 분명 내 생각보다 더 깊게 들여다봐야 하는 이야기가 펼쳐질 것만 같은 두려움이 살짝 고개를 든다.


맨발의 소녀 이름이 수잔일까? 하는 나의 의문은 책장을 넘기면서 알게 된다. 소녀의 이름은 테시 그리고 테사. 그녀가 그 동안의 삶을 끝내는 그 곳에, 두려움과 또다른 삶을 살게 하는 그 곳에 피어나는 노란색 꽃의 이름이 '블랙 아이드 수잔'이다. 생명력이 강하고 번식력이 왕성한 블랙 아이드 수잔, 강렬한 노란색이 어떤 장소에서는 그리고 누군가에게도 외롭게도 쓸쓸하게도 위협적으로 만들어줄 수 있음을 처음으로 느껴본다.

1995년 테시는 열여섯 소녀였다. 그녀는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삶의 끝이자 시작을 맞이하게 된다. 전혀 알지 못하는 여자들 속에 버려진, 유일한 생존자로 기억을 잃은 채 깨어난다. 선천적으로 심장 박동수가 느린 그녀였기에 연쇄살인범에게 죽었다는 믿음을 주기에 이르렀고, '유일한 생존자'라는 끔찍한 이름표를 갖게 된 한 사람이 되었고, 딸을 둔 엄마가 되었다.




죽은 시체들 곁에서 살아남은 테시는, 그녀의 주위에 흐드러지게 핀 블랙 아이드 수잔에 빗대어 '수잔'으로 불린다. 가장 끔찍하고 두려웠던 그 시간 속에서 살아남았다는 그녀가 생명력이 강한 '블랙 아이드 수잔'에 비유되어 불린다는 것이 나는 내내 마음이 불편하다. 마치 그녀의 삶을 유일한 생존자로 각인시키는 것 같아 지나온 그녀의 시간을 존중받지 못한다는 느낌에 그녀의 삶이 얼마나 팍팍했을까 마음이 쓰인다.


기억에 없는 살인과 연쇄살인범, 그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테사에게는지켜야 하는 열세살 딸 찰리가 있다. 그리고 그녀의 주위에 끊임없이 피어나는 '블랙 아이드 수잔'. 과거의 자신에서 자유롭지 않은 현실과 딸의 안전을 장담할 수 없는 두려움이 그녀를 더더욱 불안하게 만든다.


누구일까? 평범했던 소녀의 일상을 한순간에 바꿔버린 그는.

누구일까? 딸을 지켜내기 위해 두려움과 맞서도록 만든 그는.


테사는 준비한다. 1995년 그 때 사건의 가해자로 지목된 사형수가 진짜 범인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하기 위한 증인이 되기 위해. 기억을 잃은 그녀가 범인이 아님을 밝혀낼 수 있을까, 정말 그가 범인은 아닐까. 현실과 과거의 시간을 번갈아 가면서 보여주는 『블랙 아이드 수잔』은 독자가 이해하고 밝혀내는 시간보다 훨씬 빠르듯 하면서도 어느 순간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어 답답증을 일으키고, 어느 순간 휘몰아치는 전개가 스릴러에 낯선 나를 몇번씩 쉬기를 권유해 온다.


'유일한 생존자'의 삶을 살아야 했던 테사, 그리고 절대 나와 같은 삶을 살게 할 수는 없기에 두려움에 떨게 하는 딸 찰리, 지금은 멀어졌지만 한때 참 좋았던 친구 리디아와의 관계,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된 사형수를 위한 증언까지, 내가 상상하고 추측하는 것과 모두 다르게 흘러가는 이야기 『블랙 아이드 수잔』


스릴러를 입문하는 독자에게 초반 1부가 약간은 지루하고 답답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스릴러가 주는 예민한 감정을 건들어주는 충분한 요소는 결코 놓치지 않았음을 장담한다.


집콕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상상 이상의 반전으로 놀라움과 흥분의 감정을 일으켜주는 『블랙 아이드 수잔』 적극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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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경계성 성격장애입니다
민지 지음, 임현성 그림 / 뜰book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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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현대인들이 겪는 다양한 정신적 증상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어떤 증상을 일으키고, 어떤 병명이 있는지조차 자세히 알지 못하는, 이 부분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정신적으로 받는 고통이 신체적 고통만큼이나 괴롭고 힘들다는 것을 친구를 통해 경험했기에 소담의 뜰Book의 『나는 경계성 성격장애입니다』 제목을 보는 순간, 한번쯤은 어떤 증상이 있고 어떤 고통을 겪어야 하는지 알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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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친구는 당당한 소녀였다. 약속 시간에 늦는 친구를 두고 메몰차게 돌아설 수 있는 자기 주장이 강한, 어디가서도 당당할 절대 기죽지 않을 거라 생각한, 유일한 친구였다. 그런데 결혼과 함께 찾아온 외로움과 친정엄마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우울증이 찾아와 자해를 하고 자살 시도를 하며 폐쇄 병동에 입원을 하게 되었다. 그 후 많은 시간이 지나고 지금은 안정적으로 직장생활을 하며 새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정신적인 아픔이 얼마나 힘겨운 것인지,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까지 피폐하게 만들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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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경계성 성격장애입니다』의 글쓴이 '민지'는 실제로 경계성 성격장애를 겪은 환자로 자신이 그 동안 겪은 아픔과 절망적인 순간을 담담하고 때로는 격양된 목소리로 지난 날을 회상한다.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해 발버둥쳐보고, 포기해버리고 싶은 순간 자신을 놓아버리기를 반복한다.


그녀의 십대를 마주하는 순간, 온 몸에 가시가 돋힌 듯 아프고 숨죽여 아팠다. 엄마에게 고통을 주지 않기 위해, 엄마에게 고민을 안겨주지 않기 위해 혼자 아파야 했던 그녀의 고통이 그대로 전해져 떨리고 숨이 차오른다. 혼자 감동하기 힘든 일들이 그녀의 자유를 차단하고, 맑았던 그녀의 세상에 먹구름이 드리우는 날들이 늘어져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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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우리들이 지내온 평범한 십대를 건너뛰고 포기와 도전으로 이십대를 맞이한다. 새로운 변화가 올 수 있을 거란 나의 기대와는 달리 그녀는 여전히 곡예를 넘듯 불안한 날들을 지내고, 사랑이란 감정이 싹트지만 그것을 지켜낼 마음이 단단하지 않으며, 자신 하나조차도 건사할 에너지가 고갈되어 버린다.

나라는 존재가 있기는 한 걸까.

직장을 다니고, 밥을 먹고, 대화를 하고, 잠을 자는 몸뚱이는 있는데, 어째서 나는 나를 인지할 수 없을까.

나는 어디서 나타났으며, 언제 어디로 왜 숨어버린 것일까.

대체 언제쯤 나는 나를 찾아, 누구도 아닌 순전한 나로서 존재할 수 있을까.

『나는 경계성 성격장애입니다』 158쪽

 

그녀의 곁에는 가족이 있다. 그녀가 응급병동을 찾고, 손목에 많은 선이 그려지고, 새로운 증상들이 생겨나고 더욱 심해지는 상황 속에서도 곁을 지켜주는 어머니가 있었고, 언니가 있었다. 그들의 존재가 그녀의 불안한 심리를 변화시킬 수는 없지만, 그녀가 흔들리다가 돌아와 쉬어갈 수 있는 공간이 있음에 그녀는 결코 자신을 버리지 않을 용기를 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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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다양한 증상으로 응급실부터 폐쇄 병동에 입원하는, 심리적 불안감에 살고 있지만,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들을 놓치지 않는다. 공부하고 취업하고, 글을 쓰고, 사랑을 하고, 그녀는 자신만의 영역을 넓혀가는데 온 힘을 다하며 새로운 자신과 마주할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 애씀에 감사하고 불안한 내 마음에 온기가 찾아든다.

그녀는 말한다.

"아프면 비명을 지르세요."

아프다고, 나 아프다고. 나는 상처받았으며, 그 상처를 준 사람은 누구인지에 대해 소리쳐야 한다.

죽음은 잠시 미뤄 둬도 괜찮다.

가족이든 친구이든 가까운 지인이든 아무도 없다면 대중에게라도, 나라에라도 소리쳐야 한다. 가해자를 찾아 가해자가 엄벌을 당하는 모습을 당신은 반드시 두 눈으로 확인해야만 한다.

그러니 당신은 아직 죽어서는 안 된다.

당신의 잘못은 없다.

당신은 당신의 상처를 돌보고 당신 스스로를 보살펴주고 당신 자신을 안아주어야만 한다.

무엇보다 먼저 할 일은 '나는 아프다.'라고 소리쳐 말해 널리 알리는 것.

아픈 건 죄가 아니다.

아픔을 참지 마라.

『나는 경계성 성격장애입니다』 192~193쪽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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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완쾌하지 않았다. 지금도 여전히 순간 자신을 괴롭히는 행위를 저지르고 말기도 한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을 미워하지 않는 용기를 내고 있다. 자신의 공간에서 자신을 일으켜세우고, 자신의 일상을 자신으로 채워나가는 연습에 매진하고 있다. 나는 그녀가 사회의 일원으로 일어서고 있음에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

 

『나는 경계성 성격장애입니다』의 글쓴이 '민지'는 말한다. 여전히 성장하지 못하고 있으며, 여전히 참아내며 울기를 잘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나온 아프고 슬펐던 과거를 글로 담아낼 용기를 냈으며, 더 많은 이들이 그녀를 통해 아픔을 소리칠 수 있는 용기를 얻길 바란다.

 

아픔은 참고 이겨내는 것이 아니라 소리치고 사방팔방에 소문내야 한다는 것, 그것이 바로 그녀를 통해 세상을 알리고자 한 것이다.

"아프면 아프다고 소리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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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사이트 오브 유
홀리 밀러 지음, 이성옥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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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살아가는데 '한 치 앞을 알지 못 하기에' 살아갈 만하다고 했다. 무언가를 선택하고 결정할 때 딱 한 번만이라도 앞을 내다봤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을 가져보지만, 그건 인간의 힘만으로는 알지 못한다. 그러하기에 우리의 삶은 뉘우침과 좌절, 도전과 안타까움을 반복하며 또 다른 나를 만들어가는 기회를 구하게 된다.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감당해 낼 수 없는, 정확한 날짜와 시간의 미래에 일어나는 일들을 알 수 있다면 과연 그 삶은 행복하기만 할까? 예견된 시간에 그 일을 막을 수 있을까? 어떠한 선택이 좀 더 나은 삶을 살게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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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엘'이라는 한 남자와 '캘리'라는 한 여자가 함께 하는 사랑은, 한결같고 깊이 있고 따뜻하지만 영원히 함께 하기엔 함께 부딪쳐야 하는 한계점이 존재한다. 그것이 그들을 아프게도 하지만, 그것이 서로를 더 깊이 새기는 또 다른 사랑으로 성장시키기도 한다.


조엘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일어날 일을 미리 알 수 있는 '예지몽'을 꾼다. 9살 무렵 처음으로 꾸게 된 꿈으로 그는 사랑하는 엄마의 죽음도 여동생의 둘째 출산 그리고 친아버지가 따로 있지 않을까 하는, 그 동안 알지 못했던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다. 조엘은 3년 후 엄마의 죽음을 알게 된 그 날부터 괴롭고 아슬아슬한 시간과 싸우지만, 끝내 엄마의 삶을 바꿀 수는 없었다. 조엘의 특별한 재능을 알고 있던 엄마가 보낸 마지막 눈빛에서 조엘은 삶을 마감할 시간을 주지 않은 원망의 뜻을 읽게 되고, 성장하면서 내내 그 날 그 눈빛에 괴로워하며 살아간다.


조엘의 남다른 재능은 생부로부터 전해진 유전적 요인임을 알게 되고, 엄마의 곁을 떠났던 것과 그를 찾아오지 않은 것 그리고 엄마의 마지막에 인사를 하기 위해 들렀던 이야기를 전해 들으면서 남다른 재능이 아득하게 깊은 슬픔을 안기기도 하지만 때로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더 나은 삶을 살 기회를 줄 수도 있음을 알게 된다.


캘리는 친한 친구의 죽음을 애도하며 벗어나지 못한 채 간절히 원했던 것조차 기억나지 않을 만큼 나약해질 때쯤 카페에서 종업원과 손님으로 만나게 된 조엘에게서 사랑이란 감정을 키우게 된다. 캘리는 꿈꾸는 것이 괴로운 조엘의 불안증과 불면을 함께 나누고 그것을 치유할 방법에 대해 고민하고 나눈다. 캘리는 조엘의 비밀스럽고 특별한 재능을 그대로 인정하며 조엘이 꿈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를 바래본다.


'사랑'앞에 소극적이었던 그에게 캘리가 사랑이란 이름으로 다가왔고, 그의 꿈에선 캘리의 죽음과 마주하도록 한다. 캘리의 죽음과 더불어 너무나 행복한 모습의 캘리를 본 조엘, 조엘의 꿈 속에 나타난 자신의 모습을 알고 싶지 않은 캘리, 다가올 미래의 불행을 담담히 받아들이되, 그날을 위해 살고 싶지 않아 조엘의 곁을 떠나기로 마음 먹은 캘리.


미래를 내다보는 한 남자 조엘과 현실을 당당하게 살아가고픈 한 여자 캘리, 서로를 그리워하며 '사랑'이란 이름으로 가슴에 새겨진 서로가 마지막을 함께 하는 이야기 『더 사이트 오브 유』 가을의 스산함을 촉촉한 온기로 적셔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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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라와 모라
김선재 지음 / 다산책방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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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다산북스에서 '미공개 서평단'을 모집하는 공지를 보고 설렘을 가득안고 신청했다. 책을 선택할 때 작가의 이름만으로 선택하지 않는 나에게, 제목도 작가도 모른 채 글 먼저 만날 수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신청 이유가 되었다.

'미공개'인 만큼 정말 아무것도 쓰여지지 않은, 꽤 두꺼운 재질의 광택지로 몸단장을 마친 책이 나에게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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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를 열고 들어가면서 만난 책은, 페이지마다 '다산북스'를 새겨 놓아 무척 의미있는 이벤트에 내가 참여한 것만 같아 뿌듯했다. 정식 출간을 앞두고 이벤트성으로 기획한 책임에도 재질부터 디자인까지 신경썼음이 감각적이고 존중받는다는 느낌이 들어 참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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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은 노, 이름은 라. 그녀의 이름은 노라. 기억도 유품도 특별할 것이 없는 아버지를 떠나보내고, 엄마와 단둘이 남게 된 그녀의 삶은 서걱서걱 모래알을 씹는 듯 온기가 없다. 인생은 각자 살아가는 것이라고 말하는 엄마는 언행일치라도 하듯 노라의 인생에 참견하지 않으며, 그녀의 꿈조차도 관심두지 않는, 자신의 영역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행복의 조건이 될 수 있을거라 믿었던 아들도 남편도 잃은 엄마에게 노라는 불필요한 존재가 되고, '어쩔 수 없지'라는 말로 노라의 삶까지도 나약하고 무기력하게 만들어 버리고 만다.

노라는 열심히 살아간다. 아버지의 존재는 희미해지고, 엄마의 다급함과 무관심 그리고 경멸에 찬 눈빛 속에서 자신을 꽁꽁 동여매고 삶의 주체가 되어 살아간다. 타인과의 관계를 배우지 못한 노라에게 사회라는 공간은 한없이 버거운 존재이지만 그녀는 버티고 버텨내며 자신의 몫은 해내는 인간으로 성장하고 있다. 다만 그 누구와도 관계의 고리를 형성하지 못한 상태로라는 것이 안타깝다.

미안하지만 미안하다고 말하는 마음, 그 말을 한 번쯤 나도 해보고 싶었던 마음, 그 런게 있었다. 그 마음이 어떤 모양인지 들여다본 기억은 없다. 그건 오래된 마음이고, 오래전 마음이니까.

노라와 모라. 78쪽

 

성은 양, 이름은 모라. 마치 노라와 자매인 것 같은, 자매로 엮일 운명을 타고 난 듯, 꽤나 닮은 이름을 가진 그녀 양모라.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엄마, 자식을 건사해야 하는 것이 부모의 도리임을 인지조차 하지 못한 아빠, 그들 사이에서 모라는 타지로 보내지고 그 누구의 보살핌도 관심도 받지 못한 채 스스로 자신을 키워나간다. 엄마의 사라짐은 가족이라는 끈마저 사라지게 만들고, 서로의 존재 여부조차 때로는 궁금하지 않은 관계가 되고 만다. 엄마 없는 아이가 된 모라는 곧 아빠조차 없는 아이가 되고, 외로운 현실에서 눈물조차 흘리지 못하는, 그녀의 눈물을 받아줄 이가 세상에 하나 없다는 현실을 그녀를 더욱 외롭고 쓸쓸하게 만든다.

 

괜찮지?

아버지는 늘, 그렇게 말했다.

괜찮냐고. 괜찮지 않냐고.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고. 다, 괜찮다고.

나는 어느 순간부터 그게 아버지가 스스로에게 하는말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건 질문이면서 동시에 다짐 같은 말이어서 우리는늘 괜찮아야 했다.

[중략]

그 과정에서 나는 취향이나 취미를 익히기 전에 타인의 호감을 사는 법을 먼저 배웠고, 아버지는 말을 줄이고 줄인 말 속에 말을 숨기는 습관을 들였다. 우리는 늘 괜찮았다. 그러니까, 괜찮다는 말은 아버지와 내가 서로에게 할 수 있는 유일한 위로 같은 거였다.

이제 … 그만하면 됐어.

노라와 모라. 123~124쪽

 

갑자기 죽은 남편을 둔 여자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아내를 둔 남자가 만나 새로운 가족이 된다. 그 가족의 울타리에서 만난 노라와 모라. 재혼 가정에서 그들의 관계는 언니 동생도 친구도 아닌 한 방에서 생활하는, 누구 하나 먼저 말하지 않아도 보이지 않는 선을 절대 넘지 않는, 철저한 개인적인 삶을 살아가는 그들로 살아간다. 그렇게 그들은 7년을 살았다지만, 결국 가족으로 연결되지 못하고 각자의 삶을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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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20년, 모라는 노라에게 연락한다. 함께 가주었으면 하는 곳이 있기에. 그렇게 재회한 그들은 노라에게는 새아빠, 모라의 친부의 마지막을 알리는 화장장으로 향한다. 서로 다른 기억을 가진 두 사람의 재회는 그다지 슬프지도 반갑지도 않다. 함께 할 때만큼 거리가 있고, 굳이 말하지 않고, 그 어떤 것도 궁금해하지 않는.

서로 다른, 서로 닮은 상처를 가지고 살아가는 노라와 모라. 그들은 서로에 대해 알지 못한다고 말하지만, 그들은 서로가 가진 상처가 무엇인지 알기에 적당한 거리에서 바라만 본다. 어설픈 행동이 상대의 상처를 건드리기도 할까 조심스럽고, 그 어설픈 행동의 댓가로 내 상처가 상대에게 드러날까 두렵다. 드러내지 못하고 꾹꾹 눌러담아야만 했던 응어리가 가슴에 내려앉은 지 오래, 그것이 얼마나 무겁고 곪았는지도 모른 채 성인이 된 두 사람은 여전히 아프고 여전히 타인의 시선이 부담스럽다.

왜? 왜요?

나는 그렇게 물을 수밖에 없다. 묻지 않고는 살 수 없는 마음이 있듯이, 이유를 알고 싶은 마음들이 있다. 나는 모르고 그들은 아는 마음과 나는 알고 그들은 모르는 마음. 그 사이에 우리가 있다. 이유를 묻지 않으면 도저히 알 수 없는 마음들. 그건 아주 오래되고 사적인, 비밀들이고 그 비밀들이 이야기를 만들고 덧붙이고, 이어갈 거다. 내가 묻고, 또 묻는 이유다.

노라와 모라. 186쪽

 

 

가족이라고 생각했던 흔적들이 서서히 걷히고, 오로지 두 사람이 남았다. 기억마저 사라져가는 시간만큼 힘들면 힘든 대로, 나약하면 나약한 대로 자신을 책임져온 두 사람은 그렇게 자신들의 자리를 만들어간다. 흔들렸어도 돌아갈 자리가 있는 그들은 비록 부모의 보살핌은 받지 못했지만, 자신을 수용하고 스스로 버팀목이 되어 하루하루의 삶을 살아간다. 가슴 한 켠에 담아둔 상처는 모두 치유될 수 없지만, 상처에 앉은 상처딱지만큼 그들은 성장할 것이고, 새봄의 싹이 트듯 서로가 함께 했던 그 짧았던 시간만큼의 온기를 그리움으로 기억할 날이 올 거라 믿고 싶다.

그들에게도 따듯한 햇살은 비추고 있을 테니까.

 

있거나 없는 것.

그건 우리들의 잘못이 아니니까.

손가락에 감기는 바람이 천천히 말라간다.

한낮의 햇빛.

아직은, 눈이 부시다.

노라와 모라. 19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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