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력의 배신 - 열심히만 하면 누구나 다 잘할 수 있을까?
김영훈 지음 / 21세기북스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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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독단 활동 첫 도서! 출간 전부터 도서를 보내주셔서 미리 읽을 수 있어 기뻤다 :) 어떤 자기계발서들은 힐링 에세이보다 더 큰 위로를 주기도 한다. 저자가 이성적으로 그러나 유쾌하게 건네는 말들을 결국 모두 모아보면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 "열심히 해도 안될 수 있으니 너무 상처받지 마라!"로 읽힌다. 다정한 교수님의 열정적인 강의를 듣고 나온 것만 같다.

함께 읽을 책으로 <노력의 기쁨과 슬픔, 올리비에 푸리올>도 추천한다. '1만 시간의 법칙은 틀렸다'는 동일한 주제를 다루며, 너무 열심인 우리를 위한 회복의 철학이 담겨 있다. 철학자가 쓴 자기계발서이다. 이 두 권만 다 읽어도 성공과 실패에 대해 완전히 다른 가치관을 갖게 될 것이라 자신한다. 우리의 '노력'이 건강하고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길 소망한다. 새로운 시야를 통해 더 단단한 마음으로 삶을 살아갈 수 있길!


우리는 '노력 신봉 공화국'에 살고 있다.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최선을 다해 노력하면 잘할 수 있다고 믿는다. 무언가에 대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지 않고 포기하는 건 큰일 날 소리다. 우리 실패의 모든 이유는 노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니까. 무조건 '열심히', '노오력'을 해서 이뤄내야만 기꺼이 그것을 누릴 자격이 생긴다. 하지만 정말 노력만 하면 누구나 다 잘할 수 있을까? 연세대 심리학과 김영훈 교수는 이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예체능을 전공하며 입시생 때부터 '노력'에 대한 날 선 지적을 많이 받아 왔다. 내가 '열심히' 했다고 말하는 건 범법행위나 다름없었다. 하루에 3시간씩만 자며 매일 연습 또 연습을 이어갔음에도, 1일 1식으로 샐러드만 먹으면서도 죄책감을 느꼈다. 밤을 새는 친구도 있을 텐데, 아예 굶는 친구도 있을 텐데.. 하고 말이다. 계속해서 내가 하고 있는 건 '최선의 노력'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채찍질했다. '노력 신봉 사회'에서 입시를 겪은 많은 이들이 비슷한 경험을 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결과는 어땠는가? 모두가 자신이 노력한 만큼의 결과를 얻었는가? 전혀 아니다. 어떤 이들은 노력 이상의, 또 어떤 이들은 노력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결과를 받는다. 이 이유는 무엇일까? 이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저자는 이 모든 상황 속에서 노력과 재능이 성과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과학적 증거를 밝힌다. 공부, 입시, 다이어트 등.. 우리가 직접 겪는 상황들을 통해 노력의 배신을 쉽게 풀어 설명한다. 더불어 노력의 효과를 객관적으로 분석하며 깜짝 놀랄만한 분석 수치를 제시한다. 어떻게 이런 결과가? 싶어 저자의 주장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샌가 고개를 끄덕이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결국 재능은 모든 노력을 압도하고, 노력조차 재능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동시에, 결코 노력에 대해 폄하하지 않는다. 오히려 반드시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고 말한다. 직접 시도해 보고, 부딪쳐보고, 경험해 보며 최선의 노력을 해봐야만 자신의 재능과 능력을 파악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안타깝지만 노력하지 않는 것에 대한 명분을 찾으려는 사람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책이다.

이 책은 최선의 노력을 다했음에도 실패한 사람들이 더 열심히 하지 못한 것을 탓하는 모습을 보고, 더는 노력이라는 이름으로 자신과 타인을 가혹하게 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저자의 바람으로 쓰여진 책이다. 그러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노력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을 가혹하게 대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최선의 노력을 다하더라도 실패할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실패했다면 과감히 포기를 선택할 수도 있다. 이에 대해 패배감을 느낄 필요도, 부끄러워할 필요도 없다. 노력은 절대 성공의 유일신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혹시 성공했다 할지라도 그 성공에는 명분이 없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성공은 그저 운이고 우연이다. 그러니 타인을 함부로 판단하지 말며, 성공했다면 운 좋게 받은 혜택을 기꺼이 나누는 것이 당연하다.

더불어 성공과 실패의 여부에 대해 개인적 책임보다 사회적 책임을 묻는다. 정부가 적극적으로 책임을 담당하며, 어떤 재능과 능력을 갖추고 태어나도 문제가 되지 않을 사회적 환경과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저자의 말에 의하면 이것이 정부의 가장 중요한 책임이고 의무다. 이제 이 다음이 궁금해진다. 정부가 어떻게 그런 사회를 만들 것인가. 이상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정말 그런 내일이 오길 바란다.

"안타까워할 것도 없고, 비난할 것도 없고, 충고할 필요도 없다. 일차적으로는 내게 주어진 재능과 환경에서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주어진 것을 내버려 두는 죄를 범하는 것이다. 이차적으로는 그것의 결과를 다른 사람과 나눠야 한다. 이것은 의무이자 책임이다. 마지막으로 그 사람들을 나와 같이 존귀하고 존엄한 친구로 대해야 한다."(272쪽)

노력의 배신, 김영훈 (21세기 북스)


🔖 #책속의한줄

(106p.) 노력은 재능과 상관없이 누구나 원하면 열심히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재능을 가진 사람들의 전유물이라는 것이다. 즉 재능이 원인이고 노력이 결과라는 말이다.

(112p.) 한마디로 정리하면 성과에서 재능이 노력을 압도하는 첫 번째 이유는 재능이 있어야 노력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노력은 아무나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139p.) 날씬한 사람은 날씬하게 태어났을 뿐만 아니라, 체질적으로 식탐이 적어 많이 먹지도 않는다. 뚱뚱한 사람은 뚱뚱하게 태어났고, 체질적으로 많이 먹을 수밖에 없다. 날씬한 사람은 적게 먹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없지만, 뚱뚱한 사람은 먹고 싶지만 먹지 않기 위해 엄청나게 노력해야 한다. 노력만 놓고 따지자면 뚱뚱한 사람이 날씬한 사람보다 훨씬 더 많이 한다.

(167p.) 노력은 근본적으로 자기조절 능력이다. - '포기하지 말고 열정을 가지고 끈기 있게 노력하는 것'은 타고난 성격적 특질이다. 그래서 타고난 똑똑함처럼 이런 특질을 능력이다. 특별히 성실성과 깊은 관련이 있으므로 이 특질은 자기조절 능력이다.

(176p.) 불가능한 수준은 아니지만, 충분히 포기하고 싶은 수준이다.

(180p.) 노력 신봉 공화국에서는 노력이 가치를 상실한다. 모두가 최선의 노력을 다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이 최선의 노력을 하면 노력은 경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없게 된다.

(198p.) 어떤 학생이 공부를 잘할까? 어떤 학생이 서울대·연세대·고려대에 입학할까? 어떤 학생이 수능에서 높은 점수를 받을까? 모두 같은 질문이다. 답은 그리 어렵지도 않다. 공부를 잘하는 이유는 세 가지뿐이다. 첫 번째는 '똑똑함'이고, 두 번째는 '부잣집'이고, 마지막 세 번째는 '노력'이다.

(212p.) 중요한 점은 어떤 재능을 가치 있게 인정해 주는지는 시대마다 다르고, 이것은 개인이 선택하거나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271p.) 안타까워하고 불쌍히 여기는 태도 역시 교만이다. 교만한 태도를 보이려면 적어도 당신이 이룬 성공에 대한 명분과 정당성이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성공한 사람이나 실패한 사람 모두 명분과 정당성이 없기는 매한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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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여 마땅한 사람들
피터 스완슨 지음, 노진선 옮김 / 푸른숲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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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푸른숲 #여름비독서단 으로 선정되어 선물받은 책! 해외 독자들에게 큰 사랑을 받고, 국내에서도 2016년 초판 발행 이후 지금까지. 무려 7년간 꾸준히 읽히고 있는 베스트셀러, 영미 스릴러 소설이다. 검증된 작품 답게 흡입력이 엄청나다. 꽤나 두께가 있어서(약 500쪽) 하루만에 다 읽을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웬걸. 앉은 자리에서 페이지 넘기는걸 멈출 수가 없었다. 정말 술술 읽힌다. 줄거리를 한 줄 요약하자면.. <'릴리' 라는 여자가 모든 문제를 살인으로 해결하는 이야기> 라고 할 수 있겠다. 여름밤, 긴 호흡으로 읽을 시원한 스릴러 소설로 적극! 추천한다.

릴리의 문제 해결 방식은 살인이다. 치밀하고 계획적이다. 심지어 담담하기까지 하다. 원래 테드를 주인공으로 정했으나 쓸수록 릴리에게 매료되어 주인공을 바꿨다는 작가의 말이 백번 이해가 된다. 이 아래로는 *스포주의 !!! 반전에 반전을 더하는 내용인만큼, 조금의 스포도 원치 않는다면 다 읽고 다시 찾아주시라. 함께 감상을 나누길 바란다. 특히나 1부에서 2부로 넘어갈 때 느꼈던 짜릿함을 여러분도 꼭 느껴보시길! ;)


생생하게 살아 있고, 생생하게 혼자인 기분.

이 순간 내 유일한 동반자는 어린 나, 쳇을 우물에 밀어 넣은 아이 뿐이었다. 우리의 시선이 마주쳤고 우린 서로 말할 필요도 없었다. 생존이 가장 중요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것이야말로 삶의 의미였다.

따라서 다른 사람의 생명을 빼앗는 것은 여러모로 살아 있음을 보여주는 가장 훌륭한 표현이었다. 내가 눈을 깜빡이자 어린 나는 사라지더니 내 안으로 들어왔고, 우린 함께 뉴욕 시로 향했다.

죽여 마땅한 사람들, 피터스완슨 (376p.)

타인을 향한 릴리의 당당한 정죄가 읽는 내내.. 안타까웠다. '죽여 마땅한', '살아봐야 가치가 없는' 등의 가치판단이 얼마나 오만한 것인지 그녀가 알았어야 했는데. 유년시절부터 찬찬히 비틀린 자아가 어떻게 파멸하는가, 릴리를 보며 그 과정을 읽었다. 물론 흔히 '싸이코패스'라 불리는 본성의 영역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린 시절부터 미성숙한 부모 밑에서 보호받지 못하고, 스스로 살아남아야만했던 생존본능이 그녀의 비틀어진 삶의 방식을 구체화했다고 생각한다. 생존이 유일한 삶의 의미라는게 얼마나 슬픈 일인가. '그렇게도 죽여대는 것'이 타인의 죽음을 보며 대비되는 자신의 생존을 감각하기 위함이라고 생각하면 씁쓸한 마음이 든다. 동정하는 것이 아니다. 이해하는 것 또한. 다만 자꾸만 그녀를 응원하는 마음이 피어오르는 것은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그럼에도 우리가 릴리를 응원하게 되는 이유는 그녀가 살인자인 동시에 피해자이고, 우리 마음속에도 죽여 마땅한 사람들이 하나쯤 있기 때문이다. 릴리는 우리의 그런내밀하고 어두운 욕망을 대신 실행하는 인물이다." (옮긴이의 말 中)

노진선 역자의 '옮긴이의 말'을 읽으며 가려웠던 부분이 시원해졌다. 그녀의 살인은 비윤리적이지만, 죽임을 당한 자들의 불의(不義)를 보면 '죽어도 싸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릴리의 동기를 이해하고, 릴리의 주변인들에 같이 분노하면서 말이다. 그게 다 내 안에도 릴리가 있어서, 그래서 그랬구나.

결말 이후 릴리는 어떻게 될까? 릴리의 범죄가 마침내 모두 드러날지, 혹은 영원히 땅 속에 묻힐지. 모든 가능성과 판단을 독자에게 맡긴 것이 흥미롭다.


이 부분 번역을 보며 감탄했다! 원작에는 영어로 어떻게 쓰여있을지 궁금하다😂 위에도 언급했듯, ‘옮긴이의 말’도 번역도 정말 좋았어서.. 덕분에 더 풍부하고 즐거운 독서 경험이 되었다. 소설을 읽고 저자보다 역자가 궁금해지긴 처음! #노진선 역자님, 감사합니다🫶🏻


🔖 #책속의한줄

(124p.) 3루에서 태어난 주제에 자기가 3루타를 쳤다고 생각하는 인간들.

(125p.) 내게 잘 보이려고 노력헀다. 모두 계획된 술수였다 할지라도 나는 그런 수고가 기특했다.

(140p.) 내 아내와 잔 것에 대한 벌이라서가 아니라 지구상에서 브래드가 사라지는 것은 좋은 일이기 때문이다.

(145p.) 하지만 페이스는 내 곁에 있었고, 나는 그녀를 알게 되었기에 달리 상상할 여지가 없었다.

(213p.) "몰랐네요. 그러니까 신념(faith)을 잃었군요."

(240p.) 그녀는 내 눈에서 뭘 봤을까? 우물 밑바닥에 떨어진 쳇을 봤을까? 에릭 워시번을 넘어선 우리의 공통점을 봤을까?

(254p.) 그해는 분노에 들끓는 엄마의 길고 긴 독백으로 기억된다

(407p.) 나는 계속 생존할 것이다. 초원에서의 그날 밤, 쏟아지는 별빛 속에서 얻은 깨달음을 간직한 채. 그것은 내가 특별한 사람이고, 남과 다른 도덕성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깨달음이었다. 정상적인 인간이 아닌 동물, 소나 여우, 올빼미의 도덕성을.

(452p.) '죽어 마땅한'과 '죽여 마땅한'의 차이는 무엇일까? 'deserve to die'가 아닌, 이 책의 원제에도 나오는 'worth killing'은 살인자로서의 정체성과 능동성을 드러내는 표현이다. 누군가의 죽음을 보고 죽어도 싸다고 말하는 데 그치지 않고, 내가 직접 살인을 실행하리라는 의지. 주인공 릴리의 성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제목이라고 할 수 있다. (옮긴이의 말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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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디베어는 죽지 않아 안전가옥 오리지널 27
조예은 지음 / 안전가옥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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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과 정말 잘 어울리는! 무려 '호러 스릴러 판타지 청춘 로맨스' 소설이다. 안전가옥이 서울국제도서전에서 선보인 신간으로, 귀여운 곰돌이 궁댕이를 보자마자.. 데려오지 않을 수 없었다. 키링까지 함께♡ 소설을 다 읽고 키링을 다시 보니..(눈물) 이 기특한 곰돌이 같으니라고..! 이걸 달고 다니면 해피 스마일 베어가 곁에서 든든히 지켜줄 것만 같다.


예상치 못한 전개로 흘러가는 소설을 숨 가쁘게 따라갔다. 결말에 다다랐을 때는 서운하기까지 했다.. 안돼! 끝나지 말아라! 화영아 도하야 너네 앞으로 어떻게 사는지도 보여줘라!! 등장인물들의 다음이 궁금해지는 소설은 참 좋은 이야기인 것 같다. 여기서 끝입니다. 안녕~ 하는 것보다 내 마음대로 그들의 설레는 미래를 꿈꾸게 될 때, 책을 닫고도 이야기는 계속된다. 그렇게 쌓인 무수한 이야기들이 내 삶 곳곳에 스며들어 생동감을 준다. 말 그대로 '生動感', 생기 있게 살아 움직이는 듯한 느낌. 특히 몸보다도 마음의 생동감이 커진다. 지루한 일상의 풍경이 나만 아는 하나의 이야기로 이어지는 경험은 짜릿하다. 이제 동네 곳곳에 저수지만 봐도, 컨테이너 박스들만 봐도. 저기가 혹시.. 화영이 갔던 저수지? 도하가 있던 컨테이너...?! 하면서 혼자 신나게 곱씹겠지. 오싹하면서도 달짝지근한 이야기에 푹~ 빠져, 덕분에 즐거운 초여름이었다.


어딘가 커다란 구멍이 생겨 버린 두 사람이

서로의 구멍을 살과 피와 솜뭉치로 채우는 이야기

- 작가의 말 中

테디베어는 죽지 않아, 조예은 (안전가옥)


화영은 슬픔의 자리에 복수라는 새로운 목표를 채워 넣은, 아직 엄마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한 아이다. (프로듀서의 말 中) 하나의 감정을 온전히 흘려보내지 못하면 반드시 다른 오답의 감정이 그 자리를 채운다. 그리고 속인다. 너는 슬픈 게 아니라 화난 거라고, 실망한 게 아니라 미운 거라고, 사랑해서가 아니라 증오해서 그런 거라고. 분리가 어려워진다. 그러니 오답엔 깔끔하게 빗금을 치고, 진짜 마음을 들여다볼 줄 알아야 한다. 슬픔의 자리는 슬픔으로. 복수의 자리는 복수로. 이제는 화영이 그 두 가지의 마음을 분리할 수 있게 되었기를 바란다. 엄마를 떠올리며 억울하고 분한 마음이 들기보다는 그저 그리운 마음, 슬픈 마음, 혹은 행복했던 추억들을 떠올렸으면 하고. 복수를 떠올릴 때는 후련한 감정으로 뒤도 돌아보지 않았으면 한다. 복수란 건 결국 자기 자신에게도 괴로운 일일 테니까. 그저 화영의 남은 생(生)이 복수를 위해서 혹은 무언가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자연히 흘러가 바란다. 매일이 그럴 수는 없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주 행복하면서. 화영은 그럴 수 있을 것이다.

흔히들 '쌍방구원'이라고 부르는 서사를 좋아한다. 서로가 서로를 구하는 이야기. 언제나 이렇게 기꺼이 서로를 구하는 이야기에는 면역이 없지. '나는 나만이 구원할 수 있다, 타인에게 기대는 것은 멍청한 짓이다, 혼자서 이겨내야 한다..' 등등의 자립을 강조하는 문장들이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구원은 셀프지. 하지만 이것만이 전부라고 단언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삶의 어떤 한순간에서 기꺼이 서로를 구해낼 수도 있다. 나 역시 스스로를 단단하게 만들어 무너지지 않으려 부단히 애쓰던 때가 있었다. 누구에게도 속마음을 말하지 않고 '혼자' 이겨내야만 그게 진짜 강해지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예상대로. 손쓸 수 없는 강풍에 치명타를 맞고.. 그대로 부러졌다. 부러진 밑동은 자연치유되지 않았다. 오직 사랑하는 타인들의 손길에 의해서만 조금씩 새살을 돋울 수 있었다. 그 과정을 겪으며, 오래 잘 살기 위해서는 기꺼이 타인에게 기댈 줄도 알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갈대처럼 바람에도 유연하게 흔들리며, 주변 갈대들과도 속삭이며. 매 순간 온몸에 힘을 주기보다는 긴장을 풀고 흘러갈 줄도 알아야 한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우리의 삶은 단거리 경주가 아니라 평생의 마라톤이니까. 서로의 페이스메이커가 되어주며 함께 달려야 지치지 않을 수 있다. 이 소설의 화영과 해피 스마일 베어(안에 갇힌 도하)가 그러했다. 그들은 복수라는 하나의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와중도 서로의 페이스메이커가 되어 결정적인 순간에 서로의 이유가 된다. 타인이 삶의 이유가 되는 것만큼 운명적인 일이 또 있을까? 나 역시 화영과 도하가 그랬듯 누군가의 해피 스마일 베어가 되어 타인을 구함으로써 서로를 구원하고 싶다. 그들 역시 지금처럼 서로 기대며 앞으로 또 생길 서로의 구멍들을 채워주길.

❤️‍🩹🧸🪓🩸


🔖 #책속의한줄

(8p.) 흉기란 남의 살에 박혀 있는 순간을 제외하곤 언제든 나 역시 상처 입힐 수 있는 것. 태어날 때부터 쥐고 태어난 게 아닌 이상 영혼 정도는 팔아넘겨야 간신히 손잡이를 쥘 수 있는 법이다.

(60p.) 답이 없다는 건 끝이 없다는 것.

(187p.) 그 슬픔은 어디서 오는 걸까? (...) 슬픔은 화영으로부터 온다.

(188p.) 복수에 실패한 화영은 분명 행복하지 않겠지만, 복수에 성공한 화영이 행복해질 지도 확신할 수 없었다. 슬픔은 바로 거기 서 오는 것이다. 불확실한 행복의 가능성으로부터.

(-p.) 그러니 나는 총과 칼을, 진실과 복수를 돈을 주고 살 거다.

(-p.) 곰 인형 도하: nevertheless.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답이었다.

(327p.) 도하는 다가가 화영의 손 위에 제 손을 올렸다. 그리고 화영을 향해 말했다. "끝나고 해야 할 일이 있잖아. 넌 내 팔이랑 귀를 꿰매 줘야 해. 알지?"

(348p.) 화영은 나지막이 답했다. 아니? 내가 왜 죽어? 난 살 거다. 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곰 인형을 꿰매는 것.

(349p.) 화영은 있는 힘을 다해 몸을 둥글게 말아 파도처럼 밀려오는 먼지와 재, 그리고 피 냄새로부터 도하를 지켜 냈다. 흙바다에 누워 바라본 야무의 밤하늘에는 별이 하나도 없었지만, 화영은 이것도 꽤 운치 있다고 생각했다.

(360p.) 어딘가 커다란 구멍이 생겨 버린 두 사람이 서로의 구멍을 살과 피와 솜뭉치로 채우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습니다. 길고 지루한 우리 일상을 버티게 하는 건 아주 사소한 기억과 어느 정도의 체념, 그리고 애착 인형처럼 꿋꿋이 곁에 남아 있는 다음을 향한 기대감이라고 믿습니다. 그 기대감이란 현실의 것일 수도, 가상의 이야기를 가리키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어느 쪽이라도 상관없다고 생각합니다. - 작가의 말 中

(361p.) 화영과 도하, 이 두 아이가 이야기 중심에서 엎치락뒤치락하며 자기 자리를 잡아가는 과정을 그저 지켜보았습니다. - 담당 프로듀서의 말 中

(362p.) 그러나 화영은 순진하다기보다는 슬픔의 자리에 복수라는 새로운 목표를 채워 넣은, 아직 엄마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한 아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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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초는 영원히 위픽
황모과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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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면서 가진 타인의 시간은 몇 초나 될까? 무수한 사람들과 부대끼며 지내고 있지만, 정작 그들의 눈을 10초도 바라본 적이 없다는 점이. 사랑하는 이들에게조차 그러지 못했다는 점이. 마음을 콕콕 쑤셨다. 돈이면 다 되는 세상에서도 절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 있지. 시간, 그리고 마음. 그러니 사랑하는 이에게 줄 수 있는 가장 값비싼 선물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이다. 그 시간은 단순한 흐름의 의미 이상을 갖는다. 시간을 내어준 기꺼운 마음까지 더해져 영원으로 남겠지.


소설은 ‘나’의 시선으로 전개된다. 지루하던 ‘나’의 학교에 전학 온 ‘류비’는 말한다. "네가 움직임을 멈추고 날 10초 동안 바라본다면, 난 널 볼 수 있어. (...) 내가 널 사랑하게 만들고 싶다면 내게도 그 순간부터 10초는 더 줘야 해. 그럼 우리는 서로 볼 수 있고 사랑할 수 있어." 동체시력이 나쁜 류비는 움직이는 사물이나 사람을 볼 수 없지만, 10초 이상 가만히 있는 것은 발견할 수 있다. 바로 하루 종일 엎드려 자는 ‘나’와 같은 사람이 그러하다. 그렇게 누군가의 10초는 누군가에게 영원이 된다.

잘못 들어선 산책길에서 작품을 구상했다는 작가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그렇게 잘못 들어서야먄 알 수 있는 숨겨진 아픔들이 있다. 이제는 밖으로 나올 때이다. 교실을 박차고 나온 그들에게 이어질 환대와 연대가 기대된다. 그래, '특별한' 아이들에게는 문제가 없다. 그들을 가두고 '망상증'이라 이름 붙인 사람들이 문제지. 그러니 변할 필요도, 고칠 필요도 없다. '나'같은 속도로 세상을 사는 사람들이, 류비 같은 눈으로 세상을 보는 사람들이 다 같이 머리를 맞대는 마을을 만들 필요만 있다. 그들이 어떻게 모이든, 어떤 마을을 만나든, 새로운 곳을 만들든 그 모든 방식을 응원한다.

눈을 맞추는 것부터 시작하겠다. 이제는 눈을 맞추고, 서로의 눈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기적이 일어날 수 있음을 안다. '나'와 류비 그리고 특별한 아이들 덕이다. 시작부터 천천히 나아가 그들이 마침내 시설을 박차고 나올 때 느꼈을 환대와 연대를 함께 이어나가고 싶다.

그러니 함께 기적을 일으키자고 손을 내미는 저자의 제안에 기쁘게 응하겠다. 서로를 위해 조금 더 기꺼워질 우리가 있기에 내일을 낙관한다.

계속 바라볼 거니까, 계속 사랑할 거니까 !


🔖 #책속의한줄

(21p.) 줄곧 무인의 세계 속에 살던 류비는 그 순간 누군가를 환대한다. 세상이 조용해지면 류비의 세계는 북적거리기 시작한다.

(27p.) “10초는 길어. 생각보다 영원에 가까운 시간이야. (...) 내게 필요한 방식대로 자신의 시간을 기꺼이 사용할 사람은 별로 없어. 그게 10초든, 영원이든.”

(45p.) “내 앞에 서주기만 하면 그걸로 완성이야. 내 방식대로 맞춰주는 사람, 내 요구대로 따라주는 사람, 내가 보는 세상을 같이 상상해주는 사람을 만났으니 이미 완벽하지. 10초는 덤이라고.”

(47p.) 그렇게 서두르면 당신은 류비의 세계엔 아예 존재하지 않아요.

(76p.) 같은 실수를 해도 똑같은 누명을 써도 만회하는 데에 누구나 똑같은 질량의 에너지가 드는 건 아니라는 걸.

(85p.) 나와 류비가 같이 살려면 어떤 마을을 만나야 할까.

(90p.) 요즘처럼 약하고 무력한 자들이 정말로 취약한 상황에 내던져진 채 각자도생이라는 말까지 듣는 일은 가혹할 만큼 징벌적입니다. 이 징벌은 정말 공정하고 공평하느냐고 따져 묻고만 싶습니다.

(90p.) 찰나의 순간밖에 가지지 못한 사람들의 10초에 불과한 시간이 영원이 되는 기적을.


위픽 타이포랑 표지 컬러 최고다 오른쪽 상단의 하트 이모지 보자마자 반했다.. 너무 사랑스럽잖아!

정말 오랜만에 읽은 #sf 황모과 작가님 ..🫶🏻

역시 내가 조금 더 편애하는 소설들의 코어는 무조건 SF다…

SF최고, SF만세, SF가 세상을 구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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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에 대하여
김화진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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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마음을 읽기 위해 마음과 마음 사이를 무수히 오가는

그 헤아릴 길 없는 왕복 운동, 그 지난한 마음 읽기의 실패는 사랑이다. 마음 읽기는 알 수 없다는 막연함과 끝내 모르겠다는 실패 속에서만 가능하다. 실패 속에 있을 때만 우리는 사랑을 한다.

실패하는 여덟 편의 소설을 통해 작가 김화진이 쓴 것은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려는 지치지 않는 열정일 것이다. 그 열정은 우리를 애타는 마음의 온도보다 더 뜨겁고 깊은 곳에 데려다 놓는다. - 박혜진(문학평론가)

나주에 대하여, 김화진

내 마음을 잘게 조각내어 하나씩 소설로 만든 것만 같았다. 읽는 내내 정말.. 정말 좋았다. 20대, 딱 이 시기에 이 소설을 만나 큰 행운이라고 생각했다. 나조차 설명할 수 없었던 복잡한 내면이 여덟 편의 작품을 통해 꽤나 구체화되었다. 적어도 내가 나를 이해해 줄 수 있을 정도가 되었음은 틀림없다. 동시에 나는 소설 속 모든 인물이자, 철저히 그 인물일 수 없었다. 모든 마음을 ‘이해한다‘고 말하는 것이 얼마나 무책임한지 알기 때문에.

각 단편 속 모든 인물들이 계속해서 내게 말을 걸어오는 느낌이었다. 네 마음을 내가 안다고, 나도 그렇다고. 이렇게까지 솔직하고 부끄러운 내 마음을 들여다보라고. 나도 네 가장 못난 부분을 닮은 구석이 있다고. 언제나 가장 큰 위로는 '혼자가 아님'을 느끼도록 해주는 것이 아닐까?

특히나 <꿈과 요리> 를 읽는 동안, 나는 수언이자 동시에 솔지였다. 잔잔히 꿈을 향해 나아가 자신의 자리를 만드는 수언과 타올랐다가 이내 일상으로 돌아가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는 솔지. 서로를 동경하고 질투하고 애정 하는 두 사람의 마음이 내 안에도 가득하기 때문에. 특히나 97쪽, 수언의 다짐이 몇 년 전 내가 적어두었던 일기와 상당히 유사해서 깜짝 놀랐다.


꿈을 이루는 것에 실패하고, 사랑에 실패하고, 이해에 실패하고, 용서에 실패하고, 극복에 실패하고. 그럼에도 내일을 살고. 또다시 사랑을 이어가고. 수언에서 솔지의 삶으로 넘어가겠다고 결심하던 때에. 그러니까 오랜 꿈을 접기로 한때에 말이다. 대단한 무언가가 되지는 못하더라도 일상을 사랑스럽게 살아내는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했었다. 저자의 소설 속 인물들이 그러하듯, 앞으로 누군가 내게 삶을 어떻게 살고 싶어? 하고 묻는다면 김화진의 소설 속 인물들처럼 살고 싶다고 답할 것이다.



해설과 작가의 말까지 작품이다.. 모두 꼭 이어서 바로 읽어주시길! 여운이 더 진하게 남을 수 있도록!

그리고 박혜진 평론가님.. 많이 좋아합니다🥺 소설에 평론가님의 글이 같이 실려 있다고 하면 더욱 소장하고 싶어진다ㅎㅎ 이런 제 짝사랑의 고백도 읽혀진다면 어느새 사랑일까요?🩷


나에게는 그 무엇보다 소설이 중요하고,

소설을 읽고 쓰는 일이 좋고 행복하다고 언제나 말하고 싶었다.

(작가의 말 中)

나주에 대하여, 김화진

민음사티비를 통해 알게 된 김화진 편집자님, 영상 내에서도 자신의 일을 향한, 소설을 향한 애정이 마구마구 느껴져서 저 사람 참 사랑스럽구나, 자신의 일에 애정을 다하는 모습은 저렇게 빛이 나는구나- 생각했었다. 그리고 이렇게 책으로, 소설로 만난 김화진 작가님은 내 생각보다 더 더 사랑이 가득했다.

타인의 마음을 이리도 잔잔히 들여다볼 수 있는 사람이라니. 그리고 사랑이라니. '김화진 소설의 코어는 역시나 마음이며 사랑'(소유정 평론가)이라는 평처럼, 사랑으로 가득 찬 마음을 이렇게 소설로 풀어낼 수 있음에 동경하고,

그걸 읽을 수 있는 독자라 행복하고.

작가님의 세계에서 소설이 중요한 만큼, 소설을 읽고 쓰는 일이 행복한 만큼. 나 역시 행복한 마음으로 그 세계에 살고 있다고. 우리는 서로가 있기에 외롭지 않다고. 덕분에 앞으로도 기쁘게 당신을 기다린다고 꼭 전해드리고 싶다.

누군가의 사랑을 읽는 일이 이렇게나 행복하구나, 🫶🏻


🔖 #책속의한줄

(15p.) 나도 너를 보러 여기까지 왔어. - 「새 이야기 中」

(19p.) 천희가 떠나서 나는 슬프다. 그 문장만을 생각하며 단순하게 슬퍼할 수 있었다. 단순하게 슬퍼할 수 있다는 게 그렇게 후련한 일이라는 걸 처음으로 깨달았다. - 「새 이야기 中」

(74p.) 규희는 더 이상 숨을 쉬지 않는다는 사실은 왠지 선명해서. 그렇지, 규희야 너는 지금 숨을 쉴 수 없지. 나만 쉴 수 있어서 미안해. 그런 마음으로 조금만 내쉬어도 겨울 허공에 하얗게 티가 나는 숨을 간신히, 조금씩 참아보았다. 참 멍청하지. 안다. - 「나주에 대하여 中」

(85p.) 그렇게라도 의미를 찾는 삶이 자신의 삶보다는 낫지 않은가 생각하기도 했다. 생각하기도 한 게 아니라 오래 생각하다보면 늘 그쪽으로 생각이 매듭지어졌다. 그래도 쟤가 나보다 낫다, 그래도 쟨 뭘 하잖아, 그런 식으로. - 「꿈과 요리 中」

(96p.) 팍팍한 현실에서 수언에게 동력이 되는 것은 꿈뿐이었다. 그것에만은 눈치를 보거나 후회하고 싶지 않다는 단호함이었다. 절박함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 「꿈과 요리 中」

(97p.) 수언은 자신이 특별하다고 여기지는 않았다. 되고 싶다고 해서 반드시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고 그런 일은 아무에게도 없으며 자신 역시 똑같다고. 잘하면 되겠지만 잘해도 안 될 수도 있는 거라고. 될 때까지 하겠지만 결국 안 되었을 때 누구의 탓도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누군가는 그렇게까지 비장한 게 우습다고 할지 몰라도 그래야 했다. 자신을 싫어하지 않기 위해. 열심히 한 것까지만 후회하지 말자고 생각했다. 그 이후는 생각하지 말자. 미래는 잘 모르니까. 안되어도 누구를 탓하며, 그걸 가지고 핑계를 대거나 알리바이를 궁리하며 꿈을 포기했네 어쩌네 하고 연극적으로 과장되게 굴기는 싫었다. - 「꿈과 요리 中」

(99p.) 나도 어쩐지 꼭 지키고 싶은 것이 있는 것 같은데 생각해 보면 무엇을 지키고 싶은지 잘 모르겠고 오로지 지키고 싶다는 태도만이 나 자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의 굴레에 빠질 때 그랬다. 자신을 돌아보면 그저 망하지 않는 것, 망하지 않음을 위해 전력을 다해 살고 있는 것 같았다. - 「꿈과 요리 中」

(170p.) 한 사람이 하나의 세계라서, 가끔 너무 무섭지 않니? - 「척출기 中」

(173p.) 나쁘지만, 더 나빠지고 싶지 않은 마음에 가까웠다. 귀가 닫히자 마음들이 살아 움직였다. 그 궤도가 보였다. - 「척출기 中」

(177p.) 네, 전 그냥 다른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과거를 남기지 않은 채로.

잘 안되죠?

안되죠, 저는 그냥 저더라고요.

그걸 전부 포함해서, 우리는 이전과 달라졌다고 하죠. - 「척출기 中」

(189p.) 내 불안을 설명하고, 납득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동안 그 모든 말들을 내가 듣잖아요. 그렇게 불안을 구체화하면 견딜 수 없을 것 같았어요.

그렇게 말하는 은주는 약해 보였다. - 「정체기 中」

(220p.) 문득문득 이 침묵이 실은 내가 선택한 게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들 때. 그럴 때 나는 희미해진다. - 「쉬운 마음 中」

(240p.) 선배, 저는요... 사실 사람들이 좋아요. 제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그리고 그 사람들이 저를 좋아한다는 게 좋아요. 이런 걸 좋아한다는 사실이 너무 촌스럽고 의존적이고 속이 빈 것 같다는 걸 알면서도. 그래서 그 사실을 들키지 않으려고 애쓰면서도 가끔 이렇게 털어놓고 싶어져요. - 「쉬운 마음 中」

(247p.) 이게 크나큰 속임수고 덫이어도, 다 망하더라도, 결국 또 아니더라도 한 번은 소리내어 말해보고 싶었다. - 「쉬운 마음 中」

(309p.) 항상 소설집이라는 형태를 좋아했다. 거기에는 기다림이 포함되어 있어서 그런 것 같다. 작가가 소설을 쓰기를, 발표하기를, 기다리고, 또 적당한 편수가 모이고 그것이 실제로 출간되기까지 기다리는 일. 소설을 그렇게까지 기다려주는 사람들과 세계가 있다는 사실이 뿌듯했다. 그런 세계에서 일할 수 있다는 게 좋았다. - 「작가의 말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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