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걸어도 걸어도 - Still Walking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영화속에서 며느리는 말한다.
" 누구나 숨어서 듣는 노래 하나쯤은 가지고 있기 마련이다. "
숨어서 듣는 노래는 노래일 수도 있고, 혹은 남에게 말하지 않았던 비밀일 수도 있다.
영화는 큰 아들의 기일을 맞아 오랫만에 어머니 아버지를 찾아 한자리에 모인 가족들을 보여준다.
남편을 사별하고 아이를 데리고 작은 아들과 재혼하여 시댁이 불편한 며느리는 그날 저녁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하고
자동차 세일즈를 하는 남편, 활달한 두 아이들과 함께 온 딸은 이 기회에 이 집에 들어와 살아도 좋다는 허락을 얻고 싶어한다.
어머니는 무뚝뚝한 남편에게 불만이 많고
일만 하느라 자상한 아버지와 좋은 남편이 되지 못했던 아버지는 역시 어느 자리에도 어울리지 못하고 혼자 서재에서 있고 싶어한다.
어느 집이나 같겠지만
같이 살고 있거나, 오랫동안 같이 살았던 가족인데도
잘 아는 것 같아도 사실은 잘 모르고
서로 같은 경험을 했지만 다르게 알고 있기도 하고
다른 때에 다른 사람이 똑같은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그리고 약간씩은 다 이기적이다.
어머니가 숨어서 몰래 듣는 노래인 <블루 라이또 요꼬하마>
고등학교 때 일본어 선생님이 좋아한다며 몇 번 불러 주었던 노래를 오랫만에 듣게되어 반가웠는데 서정적인 멜로디가 착착 와서 귀에 감겨 입속을 맴돈다.
걸어도 걸어도 작은 조각배처럼
나는 흔들리고 흔들려서 당신의 품 속에.....
요꼬하마 블루라이또 요꼬하마
영화 속 이 노래에는
엄마가 오랫동안 마음 속에 담아 둔 비밀과
이 영화의 제목이 함께 담겨있다.
영화는 전체적으로 참으로 깔끔하게 잘 짜인 흰 레이스 같은 느낌인데
레이스의 한코 한코를 만드는 것은 가족들끼리의 대화이다.
갈등과 정을 서서히 드러나게 만드는 대화를 따라 가다보면 커다란 그림이 그려진다.
물론 하나하나의 장면도 참 예쁘다.
특히나 무심한 척 다른 사람의 심중을 찔러대는 엄마의 대사가 압권이다.
그리고
튀긴 옥수수를 만지작 거리거나 백일홍나무 (배롱나무) 꽃과 함께 하늘거리는 아이들의 손놀림이라든지
카메라를 벗어나 마당에서 일어나는 수박깨기 놀이
무덤으로 가는 예쁜 길, 몇 번 등장하는 노란 나비 같은
언뜻 중요해 보이지 않는 작은 부분들이 기억에 남는 영화다.
이 감독이 만든, 막막한 슬픔을 안겨주었던 <아무도 모른다>에 비해서는 밝고 경쾌한 편이지만
그의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만들었다는 영화답게 결말은 서글프다.
그동안 나는 바쁘다는 핑계로, 아니면 이만큼 했으면 됐겠지 하는 생각으로 가족이 원하는 것들을 해 주지 못했구나 하는 아쉬움이 절절히 배여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