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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이담 소설 ‘구보씨와 더불어 경성을 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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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현학(考現學, modernology)’이라는 것이 있다. ‘고고학’의 짝패로서 발안된 개념으로, 현대의 풍속과 세태를 조사·기록하는 학문을 가리킨다. 이 방법론을 문학 쪽에 적용할 때 탄생하는 것이 세태소설이다. 우리 문학사에서 세태소설의 대표작으로 우선 떠올릴 법한 작품이 박태원(1909~1986)의 장편 <천변풍경>(1936)이다. 청계천변의 인물 군상을 집단 주인공 삼은 이 소설은 당대의 풍물과 습속을 여실히 재현함으로써 소설을 일종의 사회사적 연구자료로 쓰일 수 있게 한다. 이보다 2년 먼저 발표한 중편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역시 고현학적 연구 대상으로서 흥미롭다. 주인공 구보가 뚜렷한 목적(지) 없이 경성 시내를 만보하는 이야기를 담은 소설은 당시의 거리 모습과 건물들, 사람들과 탈것 등에 관해 중요한 ‘증언’을 해 주기 때문이다.
건축과 도시계획을 공부한 소장 학자 조이담(38)씨가 쓴 <구보씨와 더불어 경성을 가다>(바람구두)는 박태원 소설의 고현학적 측면을 포착하고 발전시킨 흥미로운 저작이다.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에 상세한 주석을 덧붙인 후반부, 그리고 박태원이 이 소설을 쓰기까지를 또 하나의 소설로 쓴 <경성 만보객 - 신 박태원 전>이 그것이다.
<경성 만보객>은 3·1운동이 있던 1919년 4월1일 박태원이 경성사범대학부속보통학교에 입학하는 장면으로 시작해, 이태준의 권유로 <조선중앙일보>에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을 연재하기로 하고 원고지 앞에 앉는 장면으로 끝난다.
구보라는 이름에 얽힌 사연
지은이 조씨는 ‘구보씨’ 탄생의 전사(前史)에 해당하는 이 이야기를 30여 개의 짧은 단락으로 나누어 서술한다. ‘소설’이라고는 했지만 박태원 자신이 남긴 글과 당시의 신문·잡지 기사 등을 근거로 쓰여졌기 때문에 완전한 허구와는 다르다. 가령 박태원이 자전적 중편소설의 주인공 이름으로 ‘구보’를 삼은 내력을 들어 보자. 태원의 작은아버지 박용남은 조선인 최초의 개업의가 된 사람으로 그가 경영하던 공애의원은 친형인 태원의 부친 박용환의 공애당약방과 나란히 광통교(광교) 근처 청계천변에 자리잡고 있었다. 이런 집안 배경 덕분인 듯 태원은 어려서부터 동무들이 입은 상처를 곧잘 치료해 주곤 했다. 이 때문에 당시 경성의전의 일본인 교수였던 이의 이름을 따서 친구들이 그에게 붙여 준 별명이 바로 ‘구보’였고 그 역시 그 이름을 일종의 호로 기꺼이 사용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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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차와 자전거, 두루마기와 기모노가 혼재하던 종로 거리의 풍경(위). 역시 치마 저고리와 기모노가 공존하던 현재의 신세계 앞 광장(아래). 1930년대 서울의 풍물을 담은 박태원의 소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에 주해와 함께 또 다른 소설을 곁들인 독특한 책 <구보씨와 더불어 경성을 가다>가 출간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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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박태원 전’에 주인공 박태원 못지않게 높은 비중으로 등장하는 인물이 한위건과 이덕요 부부다. 박용남의 후배로 태원 집안에 자주 드나들었던 한위건은 3·1운동의 학생 지도자 중 한 사람으로 <동아일보> 기자로 있으면서 비밀리에 조선공산당에 가담한 인물이다. 이덕요는 일본 동경여의전에서 유학한 뒤 의사자격시험에 합격한 재원으로 미모 또한 출중해서 잡지 <삼천리> 1935년 11월호의 한 기사에서 장안 최고의 미인으로 꼽힐 정도였다. 두 사람은 그러나 한위건이 조선총독부의 검거를 피해 상하이로 망명하고 이덕요 역시 그 뒤를 따르면서 상하이로 근거지를 옮기게 되는데, 그곳에서 <아리랑>의 주인공 김산(장지락)과 악연을 맺게 된다. 이 작품에는 이들말고도 춘원 이광수와 최서해, 윤심덕과 윤치호 등의 실존 인물이 크고 작은 비중으로 등장한다.
“박 선생은 서울 토박이에다 동경 유학까지 다녀와 누구보다 도회적인 감수성에 깨어 있으니, 그 장점을 잘 살린다면 틀림없이 우리 조선문단에 큰 이름을 남길 것이라 기대하오.”
지은이의 치밀한 고증 돋보여
<경성 만보객>의 마지막 장에서 <조선중앙일보> 학예부장이었던 이태준은 이런 말과 함께 박태원에게 소설 연재를 제안한다. 그 결과 탄생한 작품이 <조선중앙일보> 1934년 8월1일부터 9월19일까지 연재한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이었다. 책 후반부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주해본은 1934년의 어느 날 정오께부터 이튿날 새벽 2시까지 열네 시간에 걸친 구보의 행적을 추적자처럼 뒤쫓으면서 그의 동선에 잡힌 건물과 풍물, 당시의 습속과 사회적 배경 등을 철저하게 파고든다. 구보(박태원)의 집이 있던 자리가 지금의 한국관광공사와 엘지다동빌딩 앞 청계천변이었다든가, 화신상회에서 동대문행 전차를 타고 종로를 통과하여 동대문에서 한강행으로 바꿔 탄 뒤 오간수교를 건너 훈련원 터와 황금정을 지나 조선은행 앞에 도착한 전차 여행이 총 5.7㎞ 거리에 30분 정도 소요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든가, 지금의 청진동 골목 입구에 있던 친구 이상의 다방 ‘제비’의 이름이 1923년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투척하고 자결한 김상옥 의사의 별명에서 온 것이라는 등의 사실들이 지은이의 꼼꼼한 조사를 통해 드러난다. 이밖에도 ‘경성의 경제권력지도, 어제와 오늘’ ‘화신백화점, 이상과 박길룡’ ‘구보씨는 왜 전화기를 빌렸을까?’ ‘경성 사람들의 스카이라운지’와 같은 흥미로운 제목의 꼭지 글들이 배치되어 입체적인 독서를 돕는다.
<구보씨와 더불어 경성을 가다>는 지은이 조씨의 치밀한 고증에 더해 당시 엽서와 사진첩 등에서 가져 온 사진 200여 컷을 곁들여 한층 실감을 높인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에는 제임스 조이스의 소설 <율리시즈>가 언급되어 있고, 조이담씨는 <율리시즈>의 주인공 레오폴드 블룸의 이름을 딴 ‘블룸씨의 날’(6월 16일)에 대해 각주로써 설명하고 있다. 그렇다면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연재가 시작된 8월1일을 ‘구보씨의 날’로 삼아 독자들이 소설 속 구보씨의 동선을 따라 현대의 서울을 산책해 보는 이벤트는 어떨까.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