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Fifty years of Europe~!!
아, 쟌 모리스의 이 책을 영문판으로 집어들 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몸과 맘이 함께 파르르 떨린다. 그렇게 런던에서의 어느 전율로 기록된 순간, 나와 만난 이 책은 이제 내 갈길을 보여주는 나침반이 되었다.
나는 '박유안'이라는 필명으로 이 책을 번역했고, 지금도 같은 분야의 다른 책들을 기획, 번역, 출판하는 일을 업으로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쟌 모리스를 책으로만 만났을 뿐이지만, 그녀의 스토리를 워낙 자주 읽고 접한 탓인지, 이젠 평생지기처럼 다정한 할머니로 내 기억에 자리잡았다.
게다가 이 책, <50년간의 유럽여행>은 막상 유럽에서 몇 년을 살다온 나로서도 도무지 알 수 없는 정체인 유럽을 직접 애정어린 유럽인의 시선으로 살펴볼 수 있는 책이라는 점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유럽을 하나로 묶는 힘은 무엇인가? 종교인가? 예술인가? 길인가? 정치인가? 열강들인가? 그 물음들 하나하나에 대해 쟌 모리스의 성실한 펜끝은 유럽을 누비고 다닌 50년을 기록했다. 아름다운 기록 한 편 한 편이 마치 앨범 속 사진 한 장처럼 보여주는 것보다 더 많은 비하인드 스토리를 은은하게 전해준다. 무릇 앨범 속 사진이란 게 그렇지 않은가... 아스라한 기억, 흐뭇한 미소, 잔잔한 감동...
게다가 쟌 모리스는 제트시대의 플로베르라 할 만큼 탁월한 문장력과 깊이 있는 사고의 소유자가 아닌가. 그녀의 글은 무릎에 멍이 들게 할 정도로 기가 막히다. 적재적소에 곁들이는 비유와 상징은 두고두고 여운으로 남는다.
번역자로서 곁들이는 읽는 법:
절대 내리 전체를 읽을 일 아니다. 50년 묵은 빈티지 와인을 맛보듯 음미 또 음미하라고 어느 영어권 리뷰어는 얘기했는데, 50년의 사연을 간직한 사진첩을, 게다가 유럽이라는 말썽꾸러기의 50년을 정리한 사진첩을 누가 휘리릭 넘겨보겠는가. 차근차근, 하루에 한 장만 읽어도 괜찮다. 한 장을 읽어도 사나흘의 food for thought를 던져주려니,,, 그런 느긋함으로 읽을 일이다.
다 읽은 뒤, 오호라, 유럽이란 게 이런 거였어, 한 마디 내뱉을 수 있다면 쟌 모리스도 역자인 나도 성공이라고 하겠다. 하지만, 그런 느낌 못 받는다한들 또 어떠랴. 우리는 쟌 모리스처럼 타고난 유럽인도 아니며, 유럽에 대한 생리적 애정을 지닌 존재들도 아닐지니... 그저 풍요로운 글 잘 읽었다는 느낌만으로도 흡족할 책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