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이 모든 걸 말할 때가 있다

"네그리, 페데리치 그리고 깁슨-그레엄"이라는 제목이 모든 걸 말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써놓고 보니...




네그리는 널리 읽히는 정치경제 이론가다

모르긴 몰라도 세계 곳곳에(곳곳의 학자/지식인들에게) 

그의 영향력을 미쳤을 게다



맑스로부터 줄곧 이어지는 

'재생산 노동' 폄하가 여성에 대한 억압, 

여성의 사회적 지위 저평가로 

이어졌다고 보는 건 이제 여러 세대에 걸친 

여성주의 정치경제 비판의 축적된 성과다.




이번에 발간된 페데리치의 <혁명의 영점>도 

그런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재생산 노동'의 혁명적 가능성을 발현시켜, 

가정과 공동체 내에 자본에 맞서는 대항권력을 

만들자는 페데리치의 견해는 

사실 깁슨-그레엄이 20년 넘게 주장하고 실천해온

공동체경제 만들기와 크게 겹친다. 


(실제 아마존에서 봐도 페데리치의 독자와 

깁슨-그레엄 독자가 겹치기도 한다.)




페데리치의 이번 한국어판에는 감정노동을 다룬 13장이 추가됐는데, 거기서 

"알리 혹실드 vs 네그리"의 전선을 그리며 네그리를 신랄하게 비판한다.


네그리와 하트의 <제국> 등을 거론하며, 

무한확장하는 자본주의(혹은 자본주의 담론)의 

전형을 거기서 찾을 수 있다고 

비판의 근거로 삼는 깁슨-그레엄에 비춰봐도, 

여성주의 정치경제 비판은 거대 자본주의

담론의 해체로부터 시작하는 것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네그리는, 과도한 확장의 과정 안에서 자본주의가

얇아지거나 찢어지기 시작하며 결국 저항의 시작점과

‘코뮤니즘의 섬’을 만들어 낸다고 보았으나, 

이는 이미 임노동이 탄생하던 자본주의 태생부터

시작된 과정일 뿐인 게 된다, 여성주의 정치경제

해체에 따르자면 말이다. 과도하게 확장된 자본주의가 

아니더라도 자본주의는 늘 비자본주의의 지원 없이는 존재할 수 없었던 것이라는 인식, 

그것이 페데리치의 공유재론이나 깁슨-그레엄의 공동체경제론이

기존 정치경제학에 혁명적으로 기여하는 부분이다. 자본주의의 바깥은 틀림없이 있다는 인식, 

심지어 자본주의가 바깥이기도 하다라는 인식, 그런 인식의 바탕 위에서 

새로운 경제담론이 싹터야 하는 것이기에. 



보다 구체적으로, 페데리치 인터뷰에서 거듭 얘기되는

"가사노동에도 임금을 지급하라"는 운동으로부터 

각종 공동체 단위에서의 가사/돌봄노동의 공동화, 집단화 등

비자본주의 과정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날로 드높아질 것이기에

페데리치의 원론과 깁슨-그레엄의 각론이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키며 

feminism-sensitive한 새로운 사회구성체 논쟁을 이끌 것을 기대해본다. 



* 더불어 읽고픈 책, 하나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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